소나무 Korean red pin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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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 | Pinus densiflora (Siebold & Zucc) | |
분류 | ||
계 | 식물계Plantae | |
분류군 | 관다발식물군Tracheophytes | |
겉씨식물군Gymnospermae | ||
문 | 구과식물문Pinophyta | |
강 | 구과식물강Pinopsida | |
목 | 구과목Pinales | |
과 | 소나무과Pinaceae | |
속 | 소나무속Pinus | |
종 | 소나무P. densiflora |
개요
소나무목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성 겉씨식물. 좁은 의미로 쓰일 때는 동아시아와 러시아 동부 지역에서 자생하는 적송(학명: Pinus densiflora pinus는 라틴어로 '산에서 나는 나무'라는 뜻이며, 종소명 densiflora는 '빽빽하게 돋아나는 꽃'을 의미한다.)만을 가리킨다. 넓은 의미로 쓰일 때는 아시아 뿐만이 아니라 북미, 유럽 등 북반구 온대~아한대 지역에 걸쳐 자생하는 소나무속(Pinus)의 여러 종들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침엽수이다.
명칭
솔방울, 솔잎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순수 한국어로 소나무는 원래 '솔'로 불리었다. 이 밖에 솔나무·소오리나무라고도 한다. 소나무란 말은 '솔', '나무'가 합성될 때 따님, 부삽같이 'ㄹ'이 탈락되어 생긴 말이다. '솔'의 뜻은 명확하지 않으나, 삼국시대 때의 고대 한국어 관련 기록에서는 초성에 ㅂ이 첨가된 어형으로 풀이할 수 있는 사례들이 존재하며, 따라서 'ᄡᆞᆯ'로 시작되는 단어였을 가능성이 있다. 일부 학자들은 나무 중에 우두머리란 뜻인 수리(독수리할 때의 그 '수리')에서 시작되어, 이후 →술→솔로 변형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한자는 松(소나무 송)을 쓰는데, 뜻 '木(나무)'와 소리 '公(공)'을 합친 형성자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나무 중에서도 최고의 작위(公: 공작)을 가진 나무(木)라는 뜻으로 만든 회의자로 해석하기도 한다.
상세
보통 침엽상록수의 경우에 중심 줄기가 곧게 일자로 높게 뻗는 것이 특징이나, 소나무는 중심 줄기가 휘어져서 구불구불하게 자라므로 각자의 환경에 따라 나무마다 구부러지는 모양이 다르다. 즉, 각 개체는 저마다 특유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험한 환경일수록 이러한 구부러짐을 더 관찰할 수 있으므로 그 줄기에서 자연을 이겨내는 나무의 강한 생명력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나무껍질은 적갈색이며 나이를 먹을수록 표면이 거북이 등껍질과 같은 모양으로 갈라지는데, 이 모양이 마치 철갑을 두른 듯 보인다고도 하여 이를 애국가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게다가 상록수이기도 하니 냉해도 잘 견뎌서, 어떠한 엄혹한 추위에도 이를 견뎌내고 힘을 뿜어내는 그런 기상을 보여준다고 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은 나무이다.
율곡 이이는 세한삼우(歲寒三友) 세월의 추위를 함께 할 세 명의 벗을 말한다.로서 송(松) · 죽(竹) · 매(梅)를 꼽았고, 윤선도는 시조 오우가에서 소나무를 벗으로 여겼으며,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에서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를 위해 그 고결함을 기리는 마음에서 겨울철 소나무를 그려주기도 했다. 또한 전해내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꿈에서 소나무를 보면 벼슬을 할 징조이고 솔이 무성함을 보면 집안이 번창하며 꿈에서 송죽 그림을 그리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하며, 반대로 꿈에 소나무가 마르면 병이 날 징조로 해몽하기도 한다. 이렇듯 가장 흔히 접하는 대표적인 상록수인데다가 비바람과 눈보라의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푸르니 절개와 의지의 상징으로 여겨져 충정, 지조와 같은 유교적 덕목과 엮어서 많은 사랑받았던 것이다.
심지어는 왕이 지나가는데 가지를 들어 길을 비켜주었다고 높은 벼슬을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보은 속리 정이품송도 있다. 애국가에도 바람과 서리에 굴하지 않는 절의와 기개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군가나 민중가요에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가사가 나온다. 소나무가 메인 소재인 푸른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든지… 또한 오래 사는 나무로 알려져서 장수를 나타내는 십장생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옛부터 소나무를 귀하게 여겨 숲을 가꾸고 함부로 벨 수 없게 만들었으며 국가의 허락을 맡고 나서야 벌목이 가능했다. 삼국시대 때에는 마을 주변에 소나무 숲을 가꾸었고 고려시대부터는 함부로 벨 수 없었으며 국가의 허락을 맡고 나서야 벌목이 가능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 관아에서 봉산, 금산이라고 나무를 베지 못하는 구역을 정하기도 했다. 단순한 규제 외에도 비변사와 각 지방 군관을 동원한 대규모 나무 심기를 시행하였다. 1788년에는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산림법인 송금사목을 제정했다. 또, 주민들끼리 스스로 송계(松契)를 조직해 함부로 나무를 베거나, 입산하는 사람을 견제하기도 했기 때문에, 금산구역이 아니라고 해도 소나무를 함부로 벨 수 없었다. 그래서 관청에서 관리하는 소나무 목재는 값이 어마어마했다. 이 문제를 지적한 사람이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다. 정약전은 저서 《송정사의》에서 소나무 베기를 금지하기보다는, 사유든 국유든 소나무를 심고 가꾸면 세금혜택을 주며 식목을 장려하고, 산허리 위로 화전을 금지함이 차라리 좋지 않겠느냐는 요지로 비판했다. 그러나 동생 정약용은 형의 주장을 두고 목민심서에서 평하기를 "바람이 불면 솔씨가 떨어져 자연히 송림을 이루니 가꾸기만 하며 되지 뭐하러 심는가?" 하였다. 대규모 나무심기에도 불구하고 목재로 자라는 데 장시간이 걸려 공급이 수요를 쫒아가지 못했다.
마을을 수호하는 신목 중에서도 느티나무 다음 가는 비중을 차지한다. 소나무 가지는 부정을 물리치고 제의공간을 정화하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출산 때나 장을 담을 때에 치는 금줄에 숯·고추·백지와 함께 소나무 가지를 거는 것도 잡귀와 부정을 막기 위한 것.
생태학적으로는 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따뜻한 기후와 적당한 햇빛을 좋아한다. 나무 높이는 25~35 m이고 뿌리, 잎에서 타감작용을 일으키는 갈로탄닌이라는 천연 제초제를 분비하는 특성 때문에 진달래 진달래는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Alleopathy'에 의한 강력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타 식물의 생장을 억제한다.와 철쭉 정도 외에는 소나무숲에서 함께 자랄 수 있는 식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소나무를 심으면 주변에 잡초가 잘 안 자란다. 대신 입혀놓은 잔디 떼도 죽기 때문에 무덤가에는 웬만하면 소나무를 심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 무덤가에 자주 심는 나무가 측백나무이다. 심지어 자신의 동족도 타감작용에 의하여 소나무 숲에서는 소나무 묘목조차 잘 자라지 않는 지경이다. 이것은 소나무가 양수인 점도 한몫한다. 성목의 그림자에 가려 유목이 충분한 햇빛을 받지 못하면 죽기 때문에 캐노피가 완성된 소나무 숲에서는 소나무 유목이 자라기 힘들다. 그래서 산림과학에서는 송림을 동령림, 즉 수령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숲으로 본다 동령림은 대부분 인공림임에도 불구하고 극양수인 소나무는 예외라는 것. 그런데 무덤가에 소나무 대신 측백나무를 심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주나라에서는 무덤가에 심는 나무도 신분에 따라 정해졌다. 백성들의 무덤에는 버드나무를 심었고, 이후에도 신분에 따라서 나무가 갈리다가 제후의 무덤에 심는 나무가 바로 측백나무였다. 그리고 소나무는 황제를 위한 나무였다.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소나무는 가장 고귀한 나무였기 때문에, 황제에게 걸맞는 손재라고 해서 황제릉 주위를 송림으로 둘렀다. 이 영향인지 왕릉은 기본적으로 송림을 기본으로 하였다. 경주시에 있는 신라왕릉들은 대부분 송림으로 둘러싸여 사진가들의 단골 출사장소가 되었고, 고려왕릉도 북한의 열악한 관리상태 때문에 찾아보기 어렵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송림을 조성했다. 조선왕릉도 송림을 원형으로 해서 다른 상록수들이 섞였다.이렇다보니 양반 이후의 집안 무덤에서는 원래 있던 소나무 곁에 조성하는 경우는 별 수 없기야 했지만 없던 소나무를 일부러 심어서 묘원을 조성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행위였고, 자연스럽게 소나무보다는 측백나무를 선호했다. 사실 소나무가 근처에 있는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한다고 하지만, 묘지목은 기본적으로 무덤에 대놓고 심는 것이 아니라, 무덤 주위를 빙 둘러서 경계를 삼는 것이기 때문에 묘역이 지나치게 좁지 않다면 소나무의 영향력이 봉분이나 그 인근까지 미칠 일이 없다.
한국에서야 어디를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지만, 우리가 적송이라고 부르는 Pinus densiflora 한정으로는 국제적으로 분포가 한정적이다. 한국을 포함해서 일본, 중국 동북부, 러시아 동부에서만 자생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희귀식물로 취급받아서 보호종이 되었다. #
쓰임새
쓰임새가 아주 많아서 요긴하게 쓰인다. 꽃가루는 송홧가루라고 부르는데, 차나 다식으로 만들었다. 송나라에서도 고려산 송화를 으뜸으로 쳤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의 옛 의서 본초강목이나 조선의 동의보감에도 송홧가루를 약재로 기술했다. 한방에서 잎은 각기병·소화불량 약 또는 강장제로, 송화는 이질에, 송진은 고약의 원료 등에 쓴다.
풍매화라서 꽃가루가 바람에 금세 날아간다. 송홧가루가 차나무의 잎에 앉으면 찻잎을 덖을 때 차솥이 지저분해지고 차 맛도 나빠지기 때문에, 차밭 주변에는 소나무를 키우지 않았다고 한다. 염전에서는 오뉴월에 생산된 소금을 최고로 치는데, 이유가 송홧가루 때문이라고 한다. 때문에 약간 덜 핀 걸 주머니에 모았다가 트고 나면 모은다. 송화를 모으고 불순물을 거르는 과정에 상당히 수고가 많이 드는데, 물에 탄 다음 바가지를 담아 겉에 송화가 붙게 하고 그 바가지를 깨끗한 물에 씻어 불순물을 거르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한다.
솔방울은 기름을 많이 머금은 특성 때문에 불 붙이는 데 쓰이는 불쏘시개나 연료 그 자체로 많이 쓰였다. 속껍질은 백피라 해서 생식하거나 송기떡을 만들어 먹고, 솔잎은 갈아서 죽을 만들어 보릿고개를 버티는 데 쓰였다. 특히나 소나무 껍질에는 안에 섬유질과 송진이 있어서, 소나무 껍질을 먹으면 섬유질과 송진이 뱃속에서 소화되지 않고 굳어서 치열이나 변비에 걸리기 쉬웠다. 이건 먼 옛날 얘기가 아니라 한국전쟁때 피난갔던 사람들이 겪은 일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표현 역시 여기서 파생되었다. 초근목피라는 사자성어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식재료지만, 어디까지나 기근을 버티기 위한 비상식량인 만큼 굶을 일이 없는 현대인이 맛으로 먹을 만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해충 잡는다고 약을 치기 때문에 채취 및 사용에 주의를 요한다. # 강원도, 경북 일부 지역은 산지가 많아 헬리콥터를 이용한 방제를 자주 한다. 보통 지역민에게 알리거나 임도 입구에 안내문을 설치하는데, 깨끗한 솔잎을 채취하겠다고 길이 아닌 진입로로 들어가는 바람에 경고문을 읽지 못하고 채취해 먹었다가 중독되는 사례도 있었다. 애초에 산 소유주의 허락 없이 채취하는 경우는 불법이므로 보상받을 길조차 없다. 해당 사례의 경우는 해당 공무원들이 약소하나마 용돈을 모아 위로금을 전달했다는 훈훈한 미담으로 끝났다지만...
소나무 목재는 질이 좋아서 오랜 세월 동안 이용되었는데, 기둥·서까래·대들보 등 건축재, 조선용으로 쓰였다. 특히 경상북도 북부 춘양목과 강원도 태백산맥에서 나는 중곰솔은 재질이 우수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국가차원에서 좋은 소나무 목재를 보호하고자 송금비를 세우고 법령을 내려서 소나무 벌목을 금하기도 했다. '한국건물에는 무조건 소나무'라는 인식에 의문을 제기한 기사가 있다. 김치를 재조명하는 기사만큼 도발적이지만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한국 소나무는 연교차가 30도에 육박하는 한반도의 기후 때문에, 외국의 근연종들보다 목질이 더 튼튼하고 습기도 덜 먹는다. 특히나 춥고 험하고 척박한 땅에서 자란 소나무가 이런 면이 강하다 하여 '금강송'이라고 부른다. 무대 장치로 자주 이용되는 미송(미국 북서부 원산의 소나무)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미송은 톱질 몇 번만 해도 결에 따라 조각조각 박살나고, 몇 시간만 습한 곳에 둬도 심각하게 뒤틀려 열압력 처리를 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
하지만 아무리 금강송이라고 해도 태생이 소나무인 이상 진짜배기 하드우드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 한다. 소나무는 침엽수라는 특성상 소프트 우드(softwood)로 분류한다. 하드 우드(hardwood)는 대부분 활엽수이다. 이상적으로 잘 자란 금강송이 평범한 참나무와 비비는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일반 소나무와 큰 차이 없는 금강송도 흔하지만 값은 몇 갑절로 비싸고 미송의 가격과 비교하면... 미송으로 만들면 5세트는 만들 수 있는 구조물을 금강송으로는 같은 가격으로 1세트의 뼈대도 세울 수 있을까 말까일 정도.
또한, 소나무는 송진 특성상 불이 매우 잘 붙고 타는 향도 좋다. 하지만 불똥이 퍽퍽 튀고 기름기가 타면서 검은 매연이 나서, 고기를 직화로 구우면 고기가 검게 된다는 단점 때문에 가정에서 쓰기 힘들다. 하지만 조선이 소나무 벌목을 법령으로 금지한 관계로 어지간하지 않은 이상 땔감으로 무리하게 쓸 일조차 없었다. 질이 좋은 숯으로는 소나무제보다 참나무제와 물갈나무제를 더욱 쳐준다.
소나무를 불태우면 기름기 때문에 그을음이 많이 생기므로 그을음을 모아 먹을 만들었다. 이러한 먹을 송연묵(松烟墨)이라고 부른다. 본디 먹이라는 물건은 한나라 이후부터 송연묵뿐이었으나, 송나라 시대 장우(張遇)라는 사람이 식물성 기름을 태워 유연묵(油烟墨)을 만드는 법을 고안한 이후 점차 밀려났다고 한다. 그래도 먹을 갈면 소나무 향이 나고 진하게 갈면 빛깔이 칠흑이지만, 연하게 갈면 푸른빛이 나는 특징이 있어 고급으로 쳤다고. 송연묵은 약재로도 쓰였다. 동의보감 1권 내경편에서 그 약효와 용법을 적기를 "모든 출혈을 그치게 한다. 생지황즙으로 먹을 진하게 갈아서 먹거나 우물물로 갈아서 먹는다."(能止一切失血. 以生地黃汁濃磨服之, 或井水磨服之丹心)라고 하였다.
또한, 좋은 소나무 숲에서는 송이버섯이 공생한다. 소나무 자체도 좋아야 하지만, 숲 바닥에 과도한 유기물이 쌓이지 않는 환경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기적으로 죽은 가지와 관목을 제거해줘야 한다. 맛의 달인에서도 소나무 숲을 관리하지 않아 송이버섯 채취량이 급감한 일본의 현실을 두고 우미하라 유우잔이 개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송진 추출물은 페인트·니스용재, 의약품, 화학약품으로 쓰인다.
뿌리는 건류해서 송근유를 만드는데, 석유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전까지 다방면으로 쓰였다. 송근유로는 심지어 가솔린도 만들 수 있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이 원유를 수입해오던 미국을 적으로 돌리면서 석유가 부족해지자, 최후의 발악으로 써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