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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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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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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 | 국장 | |||||||||||||
| 八紘一宇 팔굉일우 (1940-1946) | ||||||||||||||
| 상징 | ||||||||||||||
| 국가 | 기미가요 君が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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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Japanese Empire (orthographic projection).svg ■ 본토 (내지) | ||||||||||||||
| 1868년 1월 3일 ~ 1947년 5월 2일 | ||||||||||||||
| 성립 이전 |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 |||||||||||||
| 에도 막부 | 연합군 점령하 일본 | |||||||||||||
| 에조 공화국 | ||||||||||||||
| 류큐 왕국 | 미국 통치기 류큐 열도 | |||||||||||||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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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7년 대정봉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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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 일본 제국(日本帝國) 또는 일제(日帝)는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 열도와 그 식민지를 통치했던 국가이다. 1868년 1월 3일부터 1947년 5월 2일까지 존속했다. 동양에서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한 뒤, 아시아 각국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전으로 인한 연합군의 점령 이후 일본국 헌법이 제정됨으로써 체제가 붕괴되었다.
상징
국호
이름 '일본'의 유래에 대한 내용은 일본/국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국호인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은 1889년에 공포된 대일본제국 헌법에서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있으며, 1890년 헌법 시행으로 정식 국호가 되었다.
당초 이토 히로부미가 메이지 천황에게 제출한 헌법안에서는 "일본제국(日本帝國)"으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헌법안을 심의하는 추밀원회의의 석상인 테라시마 무네노리(寺島宗則) 부의장이 황실전범에 "대일본(大日本)"이라 되어 있으므로 문체를 통일하기 위해 헌법에서의 표기를 이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헌법 기초자인 이노우에 코와시(井上毅) 서기관장은 국명에 '대(大)'를 붙이는 것은 스스로를 존대하는 경향이 있어 대내외에 발표하는 헌법에 대(大)를 써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으나 결국 추밀원 의장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재정에 의해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으로 결정되었다.
대일본제국이라는 국호가 대정봉환 때부터 1947년 일본국 헌법 시행 이전까지만 쓰인 것은 아니다. 일례로 대정봉환 이전인 1854년, 에도 막부도 미일화친조약을 맺을 때 제국일본(帝國日本)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 다만 에도 막부가 자국에 대한 국호를 공식적으로 통일한 것은 아니어서 일본(日本), 일본국(日本國), 대일본국(大日本國), 제국일본(帝國日本), 제국대일본(帝國大日本), 일본제국(日本帝國), 혹은 그냥 간단히 제국(帝國) 등의 국호를 모두 사용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대정봉환으로 천황에게 권력이 넘어갔을 때에도 달라지지 않아, 여전히 정식 국호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상태로 넘어가고 저 위의 여러 호칭들이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 모두 쓰였다. 그러다가 1936년이 되어서야 모든 공문서에서 국호를 대일본제국으로 통일하였고, 항복 이후에 일본국 헌법이 공포, 시행되기 전까지 내부 공문서나 외국과의 조약에서 대일본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한다.
당시 일본 제국은 국호 앞에 '대(大)'자를 붙여서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이라고 칭했으나 현대 한국에서는 '일본제국'이나 '일제' 또는 '제국주의기 일본'라는 표기를 많이 쓴다. 사실 일제는 대일본제국의 줄임말이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 혹은 제국주의 세력을 일컫는 단어에서 비롯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이 당시 일본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한국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용어로 <일제 강점하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에서처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 당시 정식국호인 '대일본제국'이 아닌 통칭인 '일본 제국'을 사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고대 로마는 왕정이었을 때를 로마 왕국, 공화정일 때를 로마 공화국, 제정이면 로마 제국이라고 하듯 국체로서 'Empire of Japan' 혹은 'Japanese Empire'를 '일본 제국'이라고 칭하는 것이 틀린 표기는 아니다. 일본 뿐만 아니라 당대 제국 또는 식민제국의 이름을 '국호(약칭)' + '제국'으로 부르는 용례는 많다. 당장 '오스만 제국'도 정식 국호는 '숭고한 오스만 국(Devlet-i ʿAlīye-i ʿOsmānīye, Sublime Ottoman State)'에 가깝지만 오늘날에는 튀르키예 내부에서도 '오스만 제국(Osmanlı İmparatorluğu, Ottoman Empire)', 일본에서도 '오스만 제국(オスマン帝国)'이라고만 부르며 '숭고한 오스만(崇高なるオスマン)'이라든지 '대 오스만(大オスマン)'이라는 명칭은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그 연원을 자세하게 밝힐 때에만 쓴다.
아울러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의 고유명사를 어떻게 표기할지는 언어의 사회성에 근거하여 도의적 합의를 찾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마치 아돌프 히틀러 집권기 나치 독일을 당시의 정식 명칭인 '대독일국(Großdeutsches Reich)'으로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 일본에서도 '일본 제국'이라는 용어는 종종 쓰였으니 역사성이 없는 명칭인 것도 아니다. 정 반대로 한국어에서도 '대-' 자를 붙여서 부르는 예시로는 '대영제국'이 있는데, 이 경우는 한자어 명칭 문단 참조.
국기
자세한 내용은 일장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일장기 | |
|---|---|
| 공식 명칭 | 일장기 日章旗 |
| 속칭 | 히노마루 日の丸 |
| 채택일 | 1870년 2월 27일 (관습상)[1] |
- ↑ 1999년까지 법률로 국기가 지정되지 않았다.
국가
자세한 내용은 기미가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역사
1867년 대정봉환을 통해 천황에게 권력과 정권이 이양되고, 1868년 1월 3일에는 '왕정복고의 대호령'의 발표를 통해 500여 년 전의 겐무 신정 때처럼 에도 막부와 함께 막부의 구시대적 직책인 정이대장군, 섭정, 관백 등을 싸그리 폐지하면서 성립되었다. 메이지 유신이라 불리는 개혁개방을 통해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동양에서는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 한반도와 중국 대륙은 근대화를 성공시키지 못한 채 내전에 빠지거나 주변 강대국들에게 휘둘렸다. 1889년에는 대일본제국 헌법이 제정되고 이듬해인 1890년 제국의회가 개설되어, 입헌군주제의 기틀이 완전히 마련되었다.
일본 제국은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를 표방하여,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자 청나라, 러시아 제국 등 주변국과 전쟁을 거듭하며, 그 과정에서 러일전쟁의 승전을 통해 비유럽권 국가가 최초로 근대 유럽 열강을 상대로한 전면전에서 승리하는 역사적 의의를 남겼다. 결과적으로 일본 제국은 타이완섬, 남사할린, 만주의 조차지 다수의 식민지를 할양받았으며 뒤이어 한반도까지 강제로 병합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협상국 측에 가담하여 승전하고, 전후 국제 연맹의 상임 이사국이 되었으나, 대공황을 계기로 총리가 암살되는 등 정치적 혼란이 일어나 결국에는 군부가 권력을 잡는 군사독재 및 천황제 익찬 국가로 전락하였다. 이 시기부터의 일본 제국이 일본 내에서도 부정적으로 평가되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이후 국방 및 전쟁 업무의 수행이 국가의 최우선 목표가 되는 군국주의의 길로 들어선 일본 제국은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같은 파시즘 국가와 손을 잡고 추축국의 일원이 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때 자행된 전쟁 범죄는 현재의 외교 관계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후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에 패배하여, 포츠담 선언을 기초로 한 무조건 항복 후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황실과 정부가 종속되었고, 1946년 11월 3일에 일본국 헌법이 공포, 1947년 5월 3일에 시행됨으로써 체제가 붕괴되었다.
대일본제국 헌법
자세한 내용은 대일본제국 헌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일본제국 헌법(大日本帝國憲法)은 1889년(메이지 22년) 2월 11일(일본의 건국기념일)에 공포되어 1890년(메이지 23년) 11월 29일에 시행된 근대 입헌주의에 기초한 일본 최초의 근대적인 헌법이다. 현대에는 공포 당시의 천황인 메이지 천황의 이름을 따서 메이지 헌법(明治憲法)이라 부르거나 단순히 제국 헌법(帝国憲法)이라고도 부르며, 현행 일본국 헌법과 대비해서 구 헌법(旧憲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1876년 제정되어 1878년 정지된 오스만 제국 헌법을 제외하면 아시아 최초의 근대 헌법이다. 제73조 개헌 절차를 거쳐 1947년(쇼와 22년) 5월 3일 일본국 헌법이 시행되었다.
헌법 발포의 칙어에서 "불마(불멸)의 대전"(不磨ノ大典)이라고 명시했기 때문인지 일본국 헌법으로 대체될 때까지 한번도 수정이나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대한제국의 대한국 국제, 청나라의 흠정 헌법 대강에도 영향을 주었다.
정치
내각
일본 제국은 독일 제국이 그러했듯 행정부의 권력이 막강하였다. 천황의 신임을 받는 내각과 관료 집단의 위상은 중의원보다 우세하였다. 특히나 군주의 권위는 독일 제국보다 높지만 실권은 훨씬 못 미치는 기형적인 구조는 내각의 독재적인 행정력을 만들어내었다. 내각은 초기에는 율령제의 태정관으로 구성되어 주요 번벌과 다이묘들의 회의체로 시작하여 이후에는 집단지도체제로 구성되었다가 제1차 이토 내각이 수립되며 내각제로 개편된다. 다만 연대책임이 핵심인 내각제임에도 초기에는 메이지 천황이 구로다 기요타카 총리의 사표만 수리하고 나머지 각료들은 유임시키고는 산조 사네토미를 잠정 총리로 임명하는 등 정계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내각제가 틀을 잡아가면서 차차 일본 제국만의 헌정 질서가 수립된다.
대명강하
일본 제국의 정치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대명강하(大命降下)다. 일본 제국 헌법은 총리의 선임 방식을 명확히 규정짓지 않고 단지 천황의 임명권만 명시했다. 이럴 경우 비슷한 나라인 영국을 살펴보자면 총선 이후 제1당 대표를 자동적으로 국왕이 총리로 임명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일본은 정당정치, 의회제보다 내각이 먼저 설립되었고 당시 정치가들 대다수와 메이지 천황도 정당 정치와 의회 설립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자의적으로 총리를 임명하기엔 조정이 천 년간 실권이 없었기에 누가 적합한 인물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기에 원로라 불리는 메이지 정부의 수장급 정치가들에게 총리 후보를 추천받고 해당 인물을 임명하는 대명강하 시스템이 생겨났다.
초기 원로들은 의회의 눈치를 봐 가면서 자신들에게 우호적 인물을 총리로 임명하거나 원로들 중 한 명을 총리로 지명했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가 끝나고 다이쇼 시대에 접어들어 원로들도 노쇠해지거나 사망하였고 국민들도 헌정을 거스르는 총리 지명 방식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다이쇼 초기 원로는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사이온지 긴모치 2인만이 생존해 있었다. 1918년 호헌운동으로 원로 중심의 가쓰라 내각이 붕괴하면서 사이온지 긴모치는 선거에서 제1당 대표 하라 다카시를 총리로 지명하며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시작된다. 그러나 입헌정우회 내각이 붕괴한 이후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육군 내각이 들어서기도 하고 해군 출신 총리를 내새운 정당 내각이 들어서는 변칙적인 상황이 생겼다.
끝내는 보수파들이 귀족원 내각을 옹립하여 반동 정치를 펴는 일이 벌어지나 호헌 3파(입헌정우회, 헌정회, 혁신구락부)에 의해 쫓겨나며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완전히 정착된다. 이후 헌정회(입헌민정당)과 입헌정우회가 정권 교체를 이어가나 군부의 폭주로 일어난 5.15 사건으로 임시적인 군사정부가 들어서고 위기를 느낀 사이온지 긴모치는 해군 장성 출신 사이토 마코토를 총리로 임명하며 거국일치내각 시대를 맞이한다.
1940년 마지막 원로 사이온지 긴모치가 사망하나 이때는 이미 통제파와 대정익찬회가 정권을 찬탈한 후였고 이후 추밀원과 내각의 협의로 후속 총리를 임명하다가 대일본제국 헌법이 현행 일본국 헌법으로 대체되며 대명강하 제도는 사라진다.
군사
자세한 내용은 일본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식민지와 점령지
자세한 내용은 일제강점기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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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제국으로 성장하여 제국주의 열강 중 하나가 되었다.
위 이미지는 1942년 과달카날 전투 직전의 판도로, 서쪽으로는 버마 (현 미얀마) 일대를 대부분 점령했고, 동쪽으로는 알류산 열도 남쪽으로는 솔로몬제도 일부를 점령했다. 중국전선에서는 구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수도였던 남경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국해안을 점령하고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1942년 말부터 시작된 연합국의 반격에 이 판도는 붕괴되었다.
탄생 직후부터 계산하면 일본 제국의 판도는 수십 년(78년)이다. 하지만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자신들이 침략하는 국가와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아시아 국가였다. 열강이 된 이후에도 일본은 체급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고 최대 패권을 갖추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만 어디까지나 서구 열강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아시아에서는 이미 그때 독보적 역량을 가진 국가였다. 최대 영토를 갖춘 것은 1942년 중엽 남방작전이 끝난 이후이다.
일본의 식민지와 점령지를 아우르는 일본 식민제국은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해체되었다.
아래는 일본 식민지들과 점령지를 획득한 순서로 나열.
타이완 섬
자세한 내용은 대만일치시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894년 일본 제국은 청나라와 조선의 종주권을 두고 청일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승전의 대가로 타이완 섬을 할양받았다. 대만인들은 타이완 민주국을 세워 저항했으나, 일본군에 의해 진압당한다.
한반도
자세한 내용은 일제강점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조선총독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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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은 운요호 사건과 그로 인한 강화도 조약(1876. 조일 수호 조규) 체결로 조선을 상대로 처음 제국주의적 모습을 드러냈으며,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후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톈진 조약을 명분으로 들며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였고, 이후 벌어진 청일전쟁(1894)의 승리를 계기로 조선에서 청의 영향권을 밀어내고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쥐기 시작한다. 이후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잠시 상실하지만, 러일전쟁의 승리와 을사조약 체결(1905. 대한제국의 외교권 강탈)로 결국 한반도를 손아귀에 쥐게 된다. 이윽고 1910년 대한제국을 병합하기 이른다.
관동주
자세한 내용은 관동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일본 제국은 청일전쟁 직후 청나라로부터 대만과 같이 랴오둥 반도를 할양받았다. 그러나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간섭으로 인해 철수한다. 이후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계기로 러시아 제국의 조차지인 뤼순 및 다롄을 점령하고, 관동주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이후 이곳은 일본군의 중국 대륙 침략의 거점으로 사용된다. 이 지역의 발해해 인근 보하이만에 엄청난 석유가 나오기에 과거 일본제국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굳이 미국과 전쟁할 일도 없어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다.
톈진시
자세한 내용은 톈진 조계 문서의 톈진 조계#일본령 톈진 (1898 ~ 1945)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청일전쟁 이후 조차하게 된 현 중국 톈진시 일부의 조계이다.
사할린 남부
자세한 내용은 일본령 가라후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할양받았다. 1943년 이후 내지에 편입된다. 원래 거주하던 인구가 작아 일본이 지배한 식민지 중 거의 유일하게 일본인 인구가 원주민을 압도했다.
미크로네시아
자세한 내용은 남양 군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일동맹을 근거로 협상국 측으로 참전해 독일제국의 식민지인 미크로네시아와 교주만을 점령하였다. 이후 교주만은 중화민국에 반환하지만, 미크로네시아는 남양제도라는 이름으로 위임통치령으로 삼았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의 전진기지로 활용되었다.
중국 대륙
자세한 내용은 일치시기(중화민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왕징웨이 정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만주
자세한 내용은 만주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31년, 일본의 관동군은 천황의 재가와 정부의 허가도 없이 류탸오후 사건을 이유로 들어 중화민국의 영토인 만주를 점령했다.(만주사변) 그러나 뒤늦게 알아차린 일본 정부는 '어쩔 수 없다'라는 걸로 애써 무시했다. 그 결과 이미 축출당한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를 초대 황제로 하여 1932년 괴뢰국인 만주국이 설립되었으며, 일본은 군국주의의 길로 치닫게 된다.
동남아시아
1941년 9월 비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군대 주둔을 허가받아 일본군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자신들의 영향권 하에 두고, 그해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을 감행함으로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괌, 버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동티모르 등 서구 열강들의 동남아시아 식민지나 해외 영토를 전부 손에 넣었다.
일본은 동남아시아를 크게 두 권역으로 나누어 통치했다. 먼저 추축국의 적국인 영국, 미국 등이 지배하던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버마, 홍콩은 완전히 빼앗아 군정을 실시하고 일본 마음대로 조종하는 괴뢰국을 세웠다.
그러나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는 이 당시 프랑스가 일본의 동맹인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되어 명목상 프랑스 정부인 비시 프랑스가 세워진 상태였기 때문에, 비시 프랑스 소속인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도 따지자면 일본의 우군에 해당하므로 통치권을 완전히 빼앗진 않고, 기존의 프랑스식 지배체계와 프랑스인 관료 시스템을 인정하는 식으로 간접 통치했다.
그러다 프랑스 본토를 연합국이 탈환하면서 일본도 더 이상 이런 이중적인 통치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전쟁 말기인 1945년 3월 명호작전을 통해 일본 제국은 형식적으로 남아 있던 프랑스를 완전히 몰아내고 베트남 제국, 캄보디아 왕국, 라오스 왕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웠다.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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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예과, 전문학교, 대학 등을 그런 이름으로 불렀지만 패전 이후의 제도 ('신제 고등학교')와 구분하는 의미에서 구제고등학교 등 '구제'를 붙여서 칭한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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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학
교토대학
도호쿠대학
규슈대학
홋카이도대학
경성제국대학①
대북제국대학②
오사카대학
나고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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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조선교육령 1910~1922년 | 제2차 조선교육령 1922~1937년 | |
| 초등교육 | 보통학교 4년 | 보통학교 6년 |
| 중등교육 | 고등보통학교 4년 | 고등보통학교 5년 |
| 고등교육 | 구제전문학교 3~4년 | 구제전문학교 3~4년 경성제국대학 6~7년 |
| 제3차 조선교육령 1938~1943년 | 제4차 조선교육령 1943~1945년 | |
| 초등교육 | 소학교 6년 (1941년 국민학교로 개칭) | 국민학교 6년 (수업연한 1년 단축 가능) |
| 중등교육 | 구제중학교 5년 | 구제중학교 4년 (수업연한 1년 단축) |
| 고등교육 | 구제전문학교 3~4년 경성제국대학 6~7년 | 구제전문학교 3년 경성제국대학 6년 (전시 단축 반영) |
역대 천황
일본 천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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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장경 및 내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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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내각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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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당대의 주요 강대국 중 하나였지만, 극단적 전체주의 및 군국주의를 내세우며 인명을 경시하는 등 정상적인 근대 국가라 보기 어려웠으므로 일본의 몇몇 극우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다.[1] 이런 역사적 평가에는 일본 제국이 추축국으로서 군국주의의 선봉에 섰고, 수많은 인명피해를 야기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했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파시즘 국가 여부
자세한 내용은 천황제 파시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중국과 한국에서는 1930년대의 일본 제국이 파시즘 체제였다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분명 일본에도 흑룡회나 황도파 같은 파시즘 단체가 존재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술적 관점에서 일본 제국을 나치 독일이나 파시스트 이탈리아처럼 온전한 파시즘 국가로 볼 수 있는지는 여러 견해가 있다. 파시즘 국가가 맞다는 의견, 파시즘의 요소만을 차용한 단순 권위주의 체제라는 의견, 테크노크라트들을 중심으로 한 테크노파시즘 사회라는 의견 등이 있다.
관련 문서
일본 제국의 동맹국
- 나치 독일
- 이탈리아 왕국
- 헝가리 왕국
- 루마니아 왕국
- 불가리아 왕국
-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사실상 나치 독일의 괴뢰국)
- 비시 프랑스
- 크로아티아 독립국(사실상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과 헝가리 왕국의 괴뢰국)
- 태국
일본 제국의 괴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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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대동아공영권
- 대일본제국 헌법
- 교육칙어
- 히키아게샤 - 1868년 메이지 유신 뒤 1945년 일본 제국의 패전까지 해외에 살다가 귀국한 일본인들.
- 일본군
- 일본 제국 경찰
- 야스쿠니 신사 - 도쿄 치요다 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신전쟁 및 일본 제국 시기 전몰자 200만여 위를 모시고 있는데 예외적으로 막부 측 전사자들의 신위도 모시고 있다.
- 나치 독일-일본 제국 관계
관련 사건
- 메이지 유신(1868)
- 보신전쟁(1868~1869)
- 도쿄 전도(1869)
- 판적봉환(1869)
- 폐번치현(1871)
- 메이지 6년 정변(1873)
- 사가의 난(1874)
-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1875)
- 강화도 조약(1876)
- 서남전쟁(1877)
- 류큐 왕국 합병(1879)
- 임오군란(1882)
- 갑신정변(1884)
- 나가사키 청국수병 폭동사건(1886)
- 오쓰 사건(1891)
- 동학 농민 운동 진압 개입(1894)
- 청일전쟁(1894~1895)
- 삼국간섭(1895)
- 을미사변(1895)
- 의화단 운동 파병(1900)
- 러일전쟁(1904~1905)
- 을사조약(1905)
- 대한제국 군대해산(1907)
- 남한대토벌(1909)
- 경술국치(1910)
-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
- 21개조 요구(1915)
- 시베리아 출병(1918~1925)
- 3.1 운동(1919)
- 남양 군도 합병(1919)
- 간도 참변(1920~1921)
- 관동 대지진(1923)
- 제남 사건(1928)
- 대공황(1929)
- 나카무라 사건(1931)
- 만보산 사건(1931)
- 만주사변(1931)
- 만주국 수립(1932)
- 제1차 상하이 사변(1932)
- 5.15 사건(1932)
- 열하사변(1932~1933)
- 하매 협정(1935)
- 진토 협정(1935)
- 기동사변(1935)
- 2.26 사건(1936)
- 수동사변(1936)
- 중일전쟁(1937~1945)
- 할힌골 전투(1939)
- 태평양 전쟁(1941~1945)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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