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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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g of Japan (1870–1999).svg일본 제국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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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大日本帝國
Empire of Japan

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황실.svg
국기 국장
八紘一宇
팔굉일우

(1940-1946)
상징
국가 기미가요
君が代
위치
파일:Japanese Empire (orthographic projection).svg

■ 본토 (내지)
■ 식민지 및 위임통치령 (외지)
■ 괴뢰국 및 태평양 전쟁 당시 점령지

1868년 1월 3일 ~ 1947년 5월 2일
성립 이전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에도 막부 연합군 점령하 일본
에조 공화국
류큐 왕국 미국 통치기 류큐 열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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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7년 대정봉환
• 1868년 왕정복고의 대호령, 메이지 유신
• 1879년 류큐 왕국 병합
• 1889년 대일본제국 헌법 공포
• 1890년 대일본제국 헌법 시행
• 1894년 청일전쟁 개전(~1895년)
• 1904년 러일전쟁 개전(~1905년)
• 1910년 대한제국 병합
•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 1918년 일본의 시베리아 개입(~1925년)
• 1923년 관동 대지진
• 1929년 대공황
• 1931년 만주사변
• 1932년 만주국 건국
• 1936년 2.26 군사반란 발생
• 1937년 중일전쟁 개전(~1945년)
•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 1945년 연합국에 항복, 연합군의 본토 점령
• 1946년 일본국 헌법 공포
• 1947년 일본국 헌법 시행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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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북아시아, 남아시아, 오세아니아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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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 (1868~)
• 지시마 열도 (1875~1945)
• 오가사와라 제도 (1876~1945)
• 류큐 제도 (1879~1945)
• 타이완 섬 (1895~1945)
• 관동주, 가라후토 (1905~1945)
• 조선 (1910~1945)
• 남양 군도 (1919~1945)
• 만주 (1932~1945)
• 내몽골 (1936~1945)
• 중국 동부 일대 (1937~1945)
•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1940~1945)
• 홍콩, 서태평양 일대 (1941~1945)
• 알류샨 열도 (1942~1943)
• 인도네시아, 말레이, 필리핀, 동티모르, 싱가포르, 브루나이, 미얀마, 인도 동부 일대 (1942~1945)

수도

헤이안쿄 (1868년)
교토부 (1868년~1869년)
도쿄부 (1869년~1894년)
히로시마현 (1894년~1895년)
도쿄부 (1895년~1943년)
도쿄도 (1943년~1947년)

면적 690,021km² (1933년)
8,510,000km² (1942년)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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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05,200,000명 (1940년)
민족 야마토족, 한민족, 한족, 류큐족, 아이누족, 윌타족, 니브흐족, 대만 원주민 등
언어 공용어 일본어
지역어 대만어, 관화, 객가어, 한국어
문자 한자, 가나 문자
종교 세속 국가 (명목상) 국가신토 (사실상)
군대 일본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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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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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일본 엔(¥) 및 기타 조선 엔, 타이완 엔 등.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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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 메이지 (1868~1912)
다이쇼 (1912~1926)
쇼와 (1926~1947)
시간대 UTC+9

개요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 일본 제국(日本帝國) 또는 일제(日帝)는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 열도와 그 식민지를 통치했던 국가이다. 1868년 1월 3일부터 1947년 5월 2일까지 존속했다. 동양에서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한 뒤, 아시아 각국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패전으로 인한 연합군의 점령 이후 일본국 헌법이 제정됨으로써 체제가 붕괴되었다.

상징

국호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이름 '일본'의 유래에 대한 내용은 일본/국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국호인 '대일본제국(大だい日にっ本ぽん帝てい國こく)'은 1889년에 공포된 대일본제국 헌법에서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있으며, 1890년 헌법 시행으로 정식 국호가 되었다.

당초 이토 히로부미가 메이지 천황에게 제출한 헌법안에서는 "일본제국(日本帝國)"으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헌법안을 심의하는 추밀원회의의 석상인 테라시마 무네노리(寺島宗則) 부의장이 황실전범에 "대일본(大日本)"이라 되어 있으므로 문체를 통일하기 위해 헌법에서의 표기를 이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헌법 기초자인 이노우에 코와시(井上毅) 서기관장은 국명에 '대(大)'를 붙이는 것은 스스로를 존대하는 경향이 있어 대내외에 발표하는 헌법에 대(大)를 써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으나 결국 추밀원 의장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재정에 의해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으로 결정되었다.

대일본제국이라는 국호가 대정봉환 때부터 1947년 일본국 헌법 시행 이전까지만 쓰인 것은 아니다. 일례로 대정봉환 이전인 1854년, 에도 막부도 미일화친조약을 맺을 때 제국일본(帝國日本)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 다만 에도 막부가 자국에 대한 국호를 공식적으로 통일한 것은 아니어서 일본(日本), 일본국(日本國), 대일본국(大日本國), 제국일본(帝國日本), 제국대일본(帝國大日本), 일본제국(日本帝國), 혹은 그냥 간단히 제국(帝國) 등의 국호를 모두 사용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대정봉환으로 천황에게 권력이 넘어갔을 때에도 달라지지 않아, 여전히 정식 국호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상태로 넘어가고 저 위의 여러 호칭들이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 모두 쓰였다. 그러다가 1936년이 되어서야 모든 공문서에서 국호를 대일본제국으로 통일하였고, 항복 이후에 일본국 헌법이 공포, 시행되기 전까지 내부 공문서나 외국과의 조약에서 대일본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한다.

당시 일본 제국은 국호 앞에 '대(大)'자를 붙여서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이라고 칭했으나 현대 한국에서는 '일본제국'이나 '일제' 또는 '제국주의기 일본'라는 표기를 많이 쓴다. 사실 일제는 대일본제국의 줄임말이 아니라 일본의 제국주의 혹은 제국주의 세력을 일컫는 단어에서 비롯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이 당시 일본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한국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용어로 <일제 강점하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에서처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 당시 정식국호인 '대일본제국'이 아닌 통칭인 '일본 제국'을 사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고대 로마는 왕정이었을 때를 로마 왕국, 공화정일 때를 로마 공화국, 제정이면 로마 제국이라고 하듯 국체로서 'Empire of Japan' 혹은 'Japanese Empire'를 '일본 제국'이라고 칭하는 것이 틀린 표기는 아니다. 일본 뿐만 아니라 당대 제국 또는 식민제국의 이름을 '국호(약칭)' + '제국'으로 부르는 용례는 많다. 당장 '오스만 제국'도 정식 국호는 '숭고한 오스만 국(Devlet-i ʿAlīye-i ʿOsmānīye, Sublime Ottoman State)'에 가깝지만 오늘날에는 튀르키예 내부에서도 '오스만 제국(Osmanlı İmparatorluğu, Ottoman Empire)', 일본에서도 '오스만 제국(オスマン帝国)'이라고만 부르며 '숭고한 오스만(崇高なるオスマン)'이라든지 '대 오스만(大オスマン)'이라는 명칭은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그 연원을 자세하게 밝힐 때에만 쓴다.

아울러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의 고유명사를 어떻게 표기할지는 언어의 사회성에 근거하여 도의적 합의를 찾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마치 아돌프 히틀러 집권기 나치 독일을 당시의 정식 명칭인 '대독일국(Großdeutsches Reich)'으로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 일본에서도 '일본 제국'이라는 용어는 종종 쓰였으니 역사성이 없는 명칭인 것도 아니다. 정 반대로 한국어에서도 '대-' 자를 붙여서 부르는 예시로는 '대영제국'이 있는데, 이 경우는 한자어 명칭 문단 참조.

국기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일장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일장기
width=65%
공식 명칭 일장기
日章旗
속칭 히노마루
日の丸
채택일 1870년 2월 27일 (관습상)[1]
  1. ↑ 1999년까지 법률로 국기가 지정되지 않았다.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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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867년 대정봉환을 통해 천황에게 권력과 정권이 이양되고, 1868년 1월 3일에는 '왕정복고의 대호령'의 발표를 통해 500여 년 전의 겐무 신정 때처럼 에도 막부와 함께 막부의 구시대적 직책인 정이대장군, 섭정, 관백 등을 싸그리 폐지하면서 성립되었다. 메이지 유신이라 불리는 개혁개방을 통해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동양에서는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 한반도와 중국 대륙은 근대화를 성공시키지 못한 채 내전에 빠지거나 주변 강대국들에게 휘둘렸다. 1889년에는 대일본제국 헌법이 제정되고 이듬해인 1890년 제국의회가 개설되어, 입헌군주제의 기틀이 완전히 마련되었다.

일본 제국은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를 표방하여,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자 청나라, 러시아 제국 등 주변국과 전쟁을 거듭하며, 그 과정에서 러일전쟁의 승전을 통해 비유럽권 국가가 최초로 근대 유럽 열강을 상대로한 전면전에서 승리하는 역사적 의의를 남겼다. 결과적으로 일본 제국은 타이완섬, 남사할린, 만주의 조차지 다수의 식민지를 할양받았으며 뒤이어 한반도까지 강제로 병합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협상국 측에 가담하여 승전하고, 전후 국제 연맹의 상임 이사국이 되었으나, 대공황을 계기로 총리가 암살되는 등 정치적 혼란이 일어나 결국에는 군부가 권력을 잡는 군사독재 및 천황제 익찬 국가로 전락하였다. 이 시기부터의 일본 제국이 일본 내에서도 부정적으로 평가되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이후 국방 및 전쟁 업무의 수행이 국가의 최우선 목표가 되는 군국주의의 길로 들어선 일본 제국은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같은 파시즘 국가와 손을 잡고 추축국의 일원이 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때 자행된 전쟁 범죄는 현재의 외교 관계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후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에 패배하여, 포츠담 선언을 기초로 한 무조건 항복 후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황실과 정부가 종속되었고, 1946년 11월 3일에 일본국 헌법이 공포, 1947년 5월 3일에 시행됨으로써 체제가 붕괴되었다.

대일본제국 헌법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대일본제국 헌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889년(메이지 22년) 헌법 반포 약도
1889년(메이지 22년) 헌법 반포 약도
새 황거에서의 헌법 발포식 그림(아다치 깅코 安達吟光 그림)
새 황거에서의 헌법 발포식 그림(아다치 깅코 安達吟光 그림)

대일본제국 헌법(大日本帝國憲法)은 1889년(메이지 22년) 2월 11일(일본의 건국기념일)에 공포되어 1890년(메이지 23년) 11월 29일에 시행된 근대 입헌주의에 기초한 일본 최초의 근대적인 헌법이다. 현대에는 공포 당시의 천황인 메이지 천황의 이름을 따서 메이지 헌법(明治憲法)이라 부르거나 단순히 제국 헌법(帝国憲法)이라고도 부르며, 현행 일본국 헌법과 대비해서 구 헌법(旧憲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1876년 제정되어 1878년 정지된 오스만 제국 헌법을 제외하면 아시아 최초의 근대 헌법이다. 제73조 개헌 절차를 거쳐 1947년(쇼와 22년) 5월 3일 일본국 헌법이 시행되었다.

헌법 발포의 칙어에서 "불마(불멸)의 대전"(不磨ノ大典)이라고 명시했기 때문인지 일본국 헌법으로 대체될 때까지 한번도 수정이나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대한제국의 대한국 국제, 청나라의 흠정 헌법 대강에도 영향을 주었다.

정치

내각

일본 제국은 독일 제국이 그러했듯 행정부의 권력이 막강하였다. 천황의 신임을 받는 내각과 관료 집단의 위상은 중의원보다 우세하였다. 특히나 군주의 권위는 독일 제국보다 높지만 실권은 훨씬 못 미치는 기형적인 구조는 내각의 독재적인 행정력을 만들어내었다. 내각은 초기에는 율령제의 태정관으로 구성되어 주요 번벌과 다이묘들의 회의체로 시작하여 이후에는 집단지도체제로 구성되었다가 제1차 이토 내각이 수립되며 내각제로 개편된다. 다만 연대책임이 핵심인 내각제임에도 초기에는 메이지 천황이 구로다 기요타카 총리의 사표만 수리하고 나머지 각료들은 유임시키고는 산조 사네토미를 잠정 총리로 임명하는 등 정계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내각제가 틀을 잡아가면서 차차 일본 제국만의 헌정 질서가 수립된다.

대명강하

일본 제국의 정치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대명강하(大命降下)다. 일본 제국 헌법은 총리의 선임 방식을 명확히 규정짓지 않고 단지 천황의 임명권만 명시했다. 이럴 경우 비슷한 나라인 영국을 살펴보자면 총선 이후 제1당 대표를 자동적으로 국왕이 총리로 임명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일본은 정당정치, 의회제보다 내각이 먼저 설립되었고 당시 정치가들 대다수와 메이지 천황도 정당 정치와 의회 설립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자의적으로 총리를 임명하기엔 조정이 천 년간 실권이 없었기에 누가 적합한 인물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기에 원로라 불리는 메이지 정부의 수장급 정치가들에게 총리 후보를 추천받고 해당 인물을 임명하는 대명강하 시스템이 생겨났다.

초기 원로들은 의회의 눈치를 봐 가면서 자신들에게 우호적 인물을 총리로 임명하거나 원로들 중 한 명을 총리로 지명했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가 끝나고 다이쇼 시대에 접어들어 원로들도 노쇠해지거나 사망하였고 국민들도 헌정을 거스르는 총리 지명 방식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다이쇼 초기 원로는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사이온지 긴모치 2인만이 생존해 있었다. 1918년 호헌운동으로 원로 중심의 가쓰라 내각이 붕괴하면서 사이온지 긴모치는 선거에서 제1당 대표 하라 다카시를 총리로 지명하며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시작된다. 그러나 입헌정우회 내각이 붕괴한 이후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육군 내각이 들어서기도 하고 해군 출신 총리를 내새운 정당 내각이 들어서는 변칙적인 상황이 생겼다.

끝내는 보수파들이 귀족원 내각을 옹립하여 반동 정치를 펴는 일이 벌어지나 호헌 3파(입헌정우회, 헌정회, 혁신구락부)에 의해 쫓겨나며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완전히 정착된다. 이후 헌정회(입헌민정당)과 입헌정우회가 정권 교체를 이어가나 군부의 폭주로 일어난 5.15 사건으로 임시적인 군사정부가 들어서고 위기를 느낀 사이온지 긴모치는 해군 장성 출신 사이토 마코토를 총리로 임명하며 거국일치내각 시대를 맞이한다.

1940년 마지막 원로 사이온지 긴모치가 사망하나 이때는 이미 통제파와 대정익찬회가 정권을 찬탈한 후였고 이후 추밀원과 내각의 협의로 후속 총리를 임명하다가 대일본제국 헌법이 현행 일본국 헌법으로 대체되며 대명강하 제도는 사라진다.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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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황실.svg
일본군
日本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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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日本帝國陸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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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해군
大日本帝國海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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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와 점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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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의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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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의 괴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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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의 군정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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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일본 제국 최대 영토 지도
1942년 일본 제국 최대 영토 지도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제국으로 성장하여 제국주의 열강 중 하나가 되었다.

위 이미지는 1942년 과달카날 전투 직전의 판도로, 서쪽으로는 버마 (현 미얀마) 일대를 대부분 점령했고, 동쪽으로는 알류산 열도 남쪽으로는 솔로몬제도 일부를 점령했다. 중국전선에서는 구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수도였던 남경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국해안을 점령하고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1942년 말부터 시작된 연합국의 반격에 이 판도는 붕괴되었다.

탄생 직후부터 계산하면 일본 제국의 판도는 수십 년(78년)이다. 하지만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자신들이 침략하는 국가와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아시아 국가였다. 열강이 된 이후에도 일본은 체급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고 최대 패권을 갖추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만 어디까지나 서구 열강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아시아에서는 이미 그때 독보적 역량을 가진 국가였다. 최대 영토를 갖춘 것은 1942년 중엽 남방작전이 끝난 이후이다.

일본의 식민지와 점령지를 아우르는 일본 식민제국은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해체되었다.

아래는 일본 식민지들과 점령지를 획득한 순서로 나열.

타이완 섬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대만일치시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894년 일본 제국은 청나라와 조선의 종주권을 두고 청일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승전의 대가로 타이완 섬을 할양받았다. 대만인들은 타이완 민주국을 세워 저항했으나, 일본군에 의해 진압당한다.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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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조선총독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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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9월 20일 운요호 사건 일본의 근대적 군사 도발
1876년 2월 27일 강화도 조약 최초의 근대적ㆍ불평등 조약 체결. 이후, 7월에 부록과 무역규칙을 체결함.
이 조약으로 인해 조선 내 일본상품들이 무수히 쏟아지기 시작하였으며, 일본상인들이 조선내륙에 진출해 상권을 장악함.
또한, 일본으로부터 쌀이 급격하게 유출되어 방곡령 시행의 원인이 됨.
1882년 7월 23일 임오군란 군란을 제압한 청군 주둔
1882년 8월 30일 제물포 조약 군란을 이유로 일본공사관 경비 병력 주둔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 일본의 지원을 받은 급진개화파의 정변, 청군에 의해 진압
1885년 1월 9일 한성조약 갑신정변으로 입은 피해에 대한 사과 및 배상을 요구하는 일본의 함대 무력 시위. 이로 인한 조선과 일본의 협상
제물포 조약에 의거한 경비 병력 주둔 재확인
1885년 4월 18일 톈진 조약 갑신정변 이후 조선에 대한 청일 양국의 논의
파병된 청일 양국 군대 철수 및 향후 조선 출병시 상호 통지
1894년 7월 23일 갑오사변 동학 농민 혁명 진압을 위해 청나라에 파병 요청, 제물포 조약과 톈진 조약을 빌미로 일본이 파병
전주 화약 후 조선의 양국 군대 철수 요청
이를 무시한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친일내각을 구성하고 갑오개혁 추진
1894년 7월 25일 청일전쟁 서해 아산만 풍도에서 일본군이 청군을 기습하며 전쟁 발발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에 반발한 동학의 2차 봉기 및 갑오의병 발발
1895년 4월 17일 시모노세키 조약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로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속방화 상실
1895년 4월 23일 삼국간섭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압력으로 일본이 요동반도 반환
친일내각의 붕괴와 친러파의 대두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 일본이 명성황후 살해 후 친일내각을 재구성 하고 을미개혁 추진, 이에 항거한 을미의병의 발발
1895년 11월 28일 춘생문 사건 고종이 미국공사관으로 대피하려다 실패한 사건. 이 실패를 교훈삼아 아관파천을 실시함.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 고종이 감금돼 있던 경복궁을 탈출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망명
친일 내각 몰락, 친러 내각이 구성되고 근대화 추진과 대한제국 구상
1896년 5월 14일 베베르-고무라 각서 일본제국이 조선의 세력권은 러시아 제국에 포함됨을 공인함.
러일 양국이 각국의 군대를 조선에 파견하는 것을 동의함.
1896년 6월 9일 로바노프-야마가타 의정서 일본제국과 러시아제국은 조선이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차관을 도입하고자 한다면 합의하에 제공하고, 조선 내 전신선의 보호권이 러시아와 일본에 있음을 명시. 양국은 조선에서 소요사태 발생시 군대를 투입할 권한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함.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 선포 경운궁으로 환궁했던 고종이 황제에 오르고 제국을 선포, 광무개혁 추진
1898년 4월 25일 니시-로젠 협정 러시아와 일본 간 협정. 대한제국에 대한 내정 불간섭, 대한제국의 군사적 지원 요청 시 상호협상 없이는 응하지 않을 것, 한일 양국 간 경제적 교류에 대해 러시아가 저해치 않을 것을 약속
1902년 1월 30일 1차 영일동맹 일본이 대한제국에 특별한 이익이 있다고 영국이 승인
1904년 1월 21일 대한제국 중립선언 대한제국은 러·일간 전쟁 시 중립임을 세계 각국에 선언
1904년 2월 6일 러일전쟁 일본군의 러시아군 기습 공격으로 전쟁 발발. 일본군의 부산, 마산, 인천, 원산 상륙과 서울 및 경운궁 점령
1904년 2월 23일 한일의정서 일본군의 대한제국 거점 주둔
1904년 5월 31일 대한시설강령 발표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이권 강화
1904년 8월 22일 한일 외국인고문 용빙에 관한 협정서
(제1차 한일협약)
외국인 고문을 두어 일본이 국정에 간섭(고문정치)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 일본이 독도에 대한 자국 영토 편입을 일방적으로 선언
1905년 4월 1일 한일통신기관협정서 대한제국의 통신 주권 침해
1905년 4월 16일 대한제국군 감축 일본의 강요로 친위대 해산, 시위대와 진위대 감축
1905년 7월 29일 가쓰라-태프트 밀약 일본이 대한제국에 대해 종주권, 외교권을 대행할 것을 미국이 승인
1905년 8월 12일 2차 영일동맹 일본이 대한제국에 대해 정치상⋅군사상⋅경제상 특별한 이익이 있다고 영국이 승인
1905년 8월 13일 한국 연해 및 내하의 항행에 관한 약정서 대한제국의 연근해 주권 침해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 일본이 대한제국에 대해 관리, 감독, 보호할 것을 러시아가 승인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
(제2차 한일협약)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 일본인 통감이 외교권 행사(통감정치), 한국의 보호국화
을사의병 발발
1907년 7월 20일 고종 황제 퇴위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고종 황제가 이토 히로부미의 협박으로 강제 퇴위, 고종 퇴위 반대 운동이 일어났으나 일본군에 진압됨. 순종 황제 즉위
1907년 7월 24일 정미7조약
(제3차 한일협약)
일본인 차관의 내정 간섭(차관정치)
부속각서에 대한제국군 해산 명시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군 해산 시위대 해산을 시작으로 8~9월 진위대 해산
남대문 전투, 정미의병 발발
1909년 7월 12일 기유각서 대한제국의 사법권⋅교도 행정권 박탈, 일본이 대행
한국의 속령화
1909년 9월 1일 남한대토벌 10월 말까지 두달에 걸친 일제의 남한 내 모든 의병 소탕, 항일의병의 만주 이동
1909년 9월 4일 간도협약 조선과 대한제국의 간도영유권 시도 전면 수포화, 일본의 만주 철도부설권 확보
1910년 6월 24일 한일약정각서 대한제국의 경찰권 박탈, 일본이 대행
1910년 8월 29일
(체결일 8월 22일)
경술국치
(한일병합조약)
대한제국 멸망 및 강제합병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 (a)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 제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일본 제국은 운요호 사건과 그로 인한 강화도 조약(1876. 조일 수호 조규) 체결로 조선을 상대로 처음 제국주의적 모습을 드러냈으며,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후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톈진 조약을 명분으로 들며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였고, 이후 벌어진 청일전쟁(1894)의 승리를 계기로 조선에서 청의 영향권을 밀어내고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쥐기 시작한다. 이후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잠시 상실하지만, 러일전쟁의 승리와 을사조약 체결(1905. 대한제국의 외교권 강탈)로 결국 한반도를 손아귀에 쥐게 된다. 이윽고 1910년 대한제국을 병합하기 이른다.

관동주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관동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일본 제국은 청일전쟁 직후 청나라로부터 대만과 같이 랴오둥 반도를 할양받았다. 그러나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간섭으로 인해 철수한다. 이후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계기로 러시아 제국의 조차지인 뤼순 및 다롄을 점령하고, 관동주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이후 이곳은 일본군의 중국 대륙 침략의 거점으로 사용된다. 이 지역의 발해해 인근 보하이만에 엄청난 석유가 나오기에 과거 일본제국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굳이 미국과 전쟁할 일도 없어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다.

톈진시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톈진 조계 문서의 톈진 조계#일본령 톈진 (1898 ~ 1945)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청일전쟁 이후 조차하게 된 현 중국 톈진시 일부의 조계이다.

사할린 남부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일본령 가라후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할양받았다. 1943년 이후 내지에 편입된다. 원래 거주하던 인구가 작아 일본이 지배한 식민지 중 거의 유일하게 일본인 인구가 원주민을 압도했다.

미크로네시아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남양 군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일동맹을 근거로 협상국 측으로 참전해 독일제국의 식민지인 미크로네시아와 교주만을 점령하였다. 이후 교주만은 중화민국에 반환하지만, 미크로네시아는 남양제도라는 이름으로 위임통치령으로 삼았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의 전진기지로 활용되었다.

중국 대륙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일치시기(중화민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왕징웨이 정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만주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만주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31년, 일본의 관동군은 천황의 재가와 정부의 허가도 없이 류탸오후 사건을 이유로 들어 중화민국의 영토인 만주를 점령했다.(만주사변) 그러나 뒤늦게 알아차린 일본 정부는 '어쩔 수 없다'라는 걸로 애써 무시했다. 그 결과 이미 축출당한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를 초대 황제로 하여 1932년 괴뢰국인 만주국이 설립되었으며, 일본은 군국주의의 길로 치닫게 된다.

동남아시아

1941년 9월 비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군대 주둔을 허가받아 일본군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자신들의 영향권 하에 두고, 그해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을 감행함으로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괌, 버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동티모르 등 서구 열강들의 동남아시아 식민지나 해외 영토를 전부 손에 넣었다.

일본은 동남아시아를 크게 두 권역으로 나누어 통치했다. 먼저 추축국의 적국인 영국, 미국 등이 지배하던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버마, 홍콩은 완전히 빼앗아 군정을 실시하고 일본 마음대로 조종하는 괴뢰국을 세웠다.

그러나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는 이 당시 프랑스가 일본의 동맹인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되어 명목상 프랑스 정부인 비시 프랑스가 세워진 상태였기 때문에, 비시 프랑스 소속인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도 따지자면 일본의 우군에 해당하므로 통치권을 완전히 빼앗진 않고, 기존의 프랑스식 지배체계와 프랑스인 관료 시스템을 인정하는 식으로 간접 통치했다.

그러다 프랑스 본토를 연합국이 탈환하면서 일본도 더 이상 이런 이중적인 통치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전쟁 말기인 1945년 3월 명호작전을 통해 일본 제국은 형식적으로 남아 있던 프랑스를 완전히 몰아내고 베트남 제국, 캄보디아 왕국, 라오스 왕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웠다.

교육

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의 교육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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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제도(新制) 구제(舊制)
소학교 심상소학교(1886.4~1941.3)[1] · 국민학교의 초등과(1941.4~1947.3)
중학교 고등소학교(2년제, 1907.4~1941.3)[2] · 국민학교의 고등과(1941.4~1947.3) · 국민학교의 특수과(1년제, 1941.4~1947.3) · 구제중학교[3] · 구제고등여학교[4] · 구제고등학교 심상과(1919~)[5] · 체신강습소 보통과 · 청년학교 보통과 · 실업보습학교
고등학교 고등중학교 예과(1896~1894) · 구제고등학교 심상과(1919~)[5] · 구제중학교[6] · 고등여학교[7] · 실업학교 · 사범학교[8] · 사범학교 예과[9] · 체신강습소 고등과 · 철도교습소 중등부 및 보통부 · 청년학교 본과
단기대학 · 고등전문학교 고등중학교 전문부(1896~1894) · 구제고등학교 고등과(1919.4~1947.3) · 대학예과 · 사범학교 본과(1943.4~1947.3)[10] · 고등사범학교 · 청년학교 교원양성소 · 도서관직원양성소 · 고등체신강습소 본과
대학 대학
대학원 대학원 (연구과)
구제전문학교는 단기대학 · 고등전문학교 과정에 상당하지만 공식 학위가 나오지 않는 고등교육기관.
구제대학 학부를 누적 수학 연령으로 따지면 신제 석사와 동일.
  1. ↑ 1886년부터 1907년 3월까지는 4년제였으나, 1890년 10월부터 1900년 8월까지는 3년제도 있었다.
  2. ↑ 1886년부터 1907년까지는 4년제
  3. ↑ 일반적으로 구제중학교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통합해서 운영했다. 구제중학교 1~3학년 과정이 신제중학교 과정에 해당한다.
  4. ↑ 구제중학교가 남자학교이니 고등여학교는 구제중학교의 여학교 버전이다. 1920년까지만 해도 수업연한이 3년·4년·5년으로 제각각이었으나, 1920년 7월에 수업연한이 5년제로 바뀜에 따라 교육과정이 구제중학교와 동일해졌다. 고등여학교 1~3학년이 신제중학교 1~3학년에 해당한다.
  5. ↑ 5.0 5.1 소학교 졸업자들 대상으로 중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교육을 4년 동안 제공함. 재정 문제로 일반화되지는 못했다.
  6. ↑ 일반적으로 구제중학교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통합해서 운영했다. 구제중학교 4~5학년 과정이 신제고등학교 1~2학년에 해당하나, 최종학력이 5년제 구제중학교 졸업인 경우에는 신제고등학교 졸업자와 학력이 같다.
  7. ↑ 구제중학교가 남자학교이니 고등여학교는 구제중학교의 여학교 버전이다. 5년제 고등여학교의 4~5학년 과정이 신제고등학교 1~2학년과 동일하나, 최종학력이 5년제 고등여학교 졸업인 경우에는 신제고등학교 졸업자와 학력이 같다.
  8. ↑ 1943년 3월까지는 5년제(1886년 4월부터 1925년 3월까지는 4년제) 5년제 중등교육기관이었으나, 1943년 4월에 사범학교령을 통해 모든 사범학교에 대하여 고등교육기관인 전문학교급으로 승격하고 본과와 예과를 만들면서 고등교육기관으로 전환되었다. 즉 중등교육기관 시절 사범학교의 4~5학년은 신제고등학교의 1~2학년이고, 사범학교의 1~3학년은 신제중학교의 1~3학년이다. 다만 5년제 중등교육기관 시절의 사범학교를 졸업한 자는 신제고등학교 졸업자와 학력이 같다.
  9. ↑ 1943년 4월부터 2년제 국민학교 고등과 졸업자를 상대로 2년 동안 교육하는 과정이었다.
  10. ↑ 1943년 4월부터 수업연한 2년의 사범학교 예과 수료자 혹은 만 16세 이상의 구제중학교 · 고등여학교 졸업자를 상대로 3년 동안 교육하는 과정이었다.
하위 틀: 일제강점기 교육기관

당대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예과, 전문학교, 대학 등을 그런 이름으로 불렀지만 패전 이후의 제도 ('신제 고등학교')와 구분하는 의미에서 구제고등학교 등 '구제'를 붙여서 칭한다.

일본제국 학제(左) - 현대 일본 학제(右) 비교
일본제국 학제(左) - 현대 일본 학제(右) 비교

조선

제국대학

도쿄대학 교토대학 도호쿠대학 규슈대학 홋카이도대학 경성제국대학① 대북제국대학② 오사카대학 나고야대학
① 국립서울대학교로 통폐합 ② 국립타이완대학으로 개칭

일본 제국 국기.svg 일제강점기 조선의 구제전문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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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조선교육령
1910~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
1922~1937년
초등교육보통학교 4년보통학교 6년
중등교육고등보통학교 4년고등보통학교 5년
고등교육구제전문학교 3~4년구제전문학교 3~4년
경성제국대학 6~7년
제3차 조선교육령
1938~1943년
제4차 조선교육령
1943~1945년
초등교육소학교 6년
(1941년 국민학교로 개칭)
국민학교 6년
(수업연한 1년 단축 가능)
중등교육구제중학교 5년구제중학교 4년
(수업연한 1년 단축)
고등교육구제전문학교 3~4년
경성제국대학 6~7년
구제전문학교 3년
경성제국대학 6년
(전시 단축 반영)

역대 천황

일본 황실 문양.svg
일본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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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
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진무 스이제이 안네이 이토쿠 고쇼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고안 고레이 고겐 가이카 스진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스이닌 게이코 세이무 주아이
고훈 시대
제15대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오진 닌토쿠 리추 한제이 인교
제20대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안코 유랴쿠 세이네이 겐조 닌켄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부레쓰 게이타이 안칸 센카 긴메이
제30대 제31대 제32대
비다쓰 요메이 스슌
아스카 시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스슌 스이코 조메이 고교쿠 고토쿠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제41대
사이메이 덴지 고분 덴무 지토
제42대 제43대
몬무 겐메이
나라 시대
제43대 제44대 제45대 제46대 제47대
겐메이 겐쇼 쇼무 고켄 준닌
제48대 제49대 제50대
쇼토쿠 고닌 간무
헤이안 시대
제50대 제51대 제52대 제53대 제54대
간무 헤이제이 사가 준나 닌묘
제55대 제56대 제57대 제58대 제59대
몬토쿠 세이와 요제이 고코 우다
제60대 제61대 제62대 제63대 제64대
다이고 스자쿠 무라카미 레이제이 엔유
제65대 제66대 제67대 제68대 제69대
가잔 이치조 산조 고이치조 고스자쿠
제70대 제71대 제72대 제73대 제74대
고레이제이 고산조 시라카와 호리카와 도바
제75대 제76대 제77대 제78대 제79대
스토쿠 고노에 고시라카와 니조 로쿠조
제80대 제81대 제82대
다카쿠라 안토쿠 고토바
가마쿠라 시대
제82대 제83대 제84대 제85대 제86대
고토바 쓰치미카도 준토쿠 주쿄 고호리카와
제87대 제88대 제89대 제90대 제91대
시조 고사가 고후카쿠사 가메야마 고우다
제92대 제93대 제94대 제95대 제96대
후시미 고후시미 고니조 하나조노 고다이고
남조 시대
제96대 제97대 제98대 제99대
고다이고 고무라카미 조케이 고카메야마
무로마치 시대
제100대 제101대 제102대 제103대 제104대
고코마쓰 쇼코 고하나조노 고쓰치미카도 고카시와바라
제105대 제106대
고나라 오기마치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제106대 제107대
오기마치 고요제이
에도 시대
제107대 제108대 제109대 제110대 제111대
고요제이 고미즈노오 메이쇼 고코묘 고사이
제112대 제113대 제114대 제115대 제116대
레이겐 히가시야마 나카미카도 사쿠라마치 모모조노
제117대 제118대 제119대 제120대 제121대
고사쿠라마치 고모모조노 고카쿠 닌코 고메이
제122대
메이지
근현대
제122대 제123대 제124대 제125대 제126대
메이지 다이쇼 쇼와 아키히토 나루히토
신대 · 천황 (계보) · 황후 · 상황
북조 (계보) · 추존 · 섭관 · 후남조


역대 대장경 및 내무경

일본 재무성 문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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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부·대장경 (1869~1885)
메이지 정부
초대
마츠다이라 슌가쿠
2대
다테 무네나리
민부경
오키 다카토
3대
오쿠보 도시미치
4대
오쿠마 시게노부
메이지 정부
5대
사노 쓰네타미
6대
마쓰카타 마사요시
전전 대장대신 (1885~1947)
이토 내각 구로다 내각 야마가타 내각 마쓰카타 내각
초대
마쓰카타 마사요시
마쓰카타 내각 이토 내각 마쓰카타 내각
초대
마쓰카타 마사요시
2대
와타나베 구니타케
3대
마쓰카타 마사요시
4대
와타나베 구니타케
5대
마쓰카타 마사요시
이토 내각 오쿠마 내각 야마가타 내각 이토 내각 가쓰라 내각
6대
이노우에 가오루
7대
마츠다 마사히사
8대
마쓰카타 마사요시
9대
와타나베 구니타케
10대
소네 아라스케
사이온지 내각 가쓰라 내각 사이온지 내각 가쓰라 내각
11대
사카타니 요시로
12대
마츠다 마사히사
13대
가쓰라 다로
14대
야마모토 타츠오
15대
와카쓰키 레이지로
야마모토 내각 오쿠마 내각 데라우치 내각
16대
다카하시 고레키요
17대
와카쓰키 레이지로
18대
다케토미 도키토시
19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20대
쇼다 카즈에
하라 내각 다카하시 내각 가토 내각 야마모토 내각 기요우라 내각
21대
다카하시 고레키요
22대
이치키 오토히코
23대
이노우에 준노스케
24대
쇼다 카즈에
가토 내각 와카쓰키 내각 다나카 내각
25대
하마구치 오사치
26대
하야미 세이지
27대
가타오카 나오하루
28대
다카하시 고레키요
다나카 내각 하마구치 내각 와카쓰키 내각 이누카이 내각 사이토 내각
29대
미츠치 추조
30대
이노우에 준노스케
31대
다카하시 고레키요
오카다 내각 히로타 내각 하야시 내각
32대
후지이 사다노부
33대
다카하시 고레키요
34대
마치다 추지
35대
바바 에이이치
36대
유우키 토요타로
고노에 내각 히라누마 내각 아베 내각 요나이 내각
37대
가야 오키노리
38대
이케다 시게아키
39대
이시와타 소타로
40대
아오키 카즈오
41대
사쿠라우치 유키오
고노에 내각 도조 내각 고이소 내각
42대
가와다 이사오
43대
오구라 마사츠네
44대
가야 오키노리
45대
이시와타 소타로
고이소 내각 스즈키 내각 히가시쿠니노미야 내각 시데하라 내각 요시다 내각
46대
쓰시마 주이치
47대
히로세 토요사쿠
48대
쓰시마 주이치
49대
시부사와 케이조
50대
이시바시 단잔
전후 대장대신 (1947~2001)
가타야마 내각 아시다 내각 요시다 내각
-
가타야마 데쓰
51대
야노 쇼타로
52대
구루스 다케오
53대
기타무라 도쿠타로
-
요시다 시게루
요시다 내각 요시다 내각
54대
이즈미야마 산로쿠
-
오야 신조
55대
이케다 하야토
56대
무카이 다다하루
57대
오가사와라 산쿠로
하토야마 내각 하토야마 내각 이시바시 내각 기시 내각
58-60대
이치마다 히사토
61·62대
이케다 하야토
63대
이치마다 히사토
기시 내각 이케다 내각 사토 내각
64대
사토 에이사쿠
65·66대
미즈타 미키오
67-69대
다나카 가쿠에이
사토 내각
70대
후쿠다 다케오
71·72대
미즈타 미키오
73·74대
후쿠다 다케오
75대
미즈타 미키오
다나카 내각
76대
우에키 코시로
77대
아이치 기이치
-
다나카 가쿠에이
78대
후쿠다 다케오
79·80대
오히라 마사요시
미키 내각 후쿠다 내각 오히라 내각
79·80대
오히라 마사요시
81대
보 히데오
82대
무라야마 다쓰오
83대
가네코 잇페이
84대
다케시타 노보루
스즈키 내각 나카소네 내각 다케시타 내각
85대
와타나베 미치오
86·87대
다케시타 노보루
88·89대
미야자와 기이치
90대
다케시타 노보루
다케시타 내각 우노 내각 가이후 내각 미야자와 내각
91·92대
무라야마 다쓰오
93·94대
하시모토 류타로
95대
가이후 도시키
96대
하타 쓰토무
미야자와 내각 호소카와 내각 하타 내각 무라야마 내각
97대
하야시 요시로
98·99대
후지이 히로히사
임시대리
하타 쓰토무
98·99대
후지이 히로히사
100대
다케무라 마사요시
하시모토 내각 오부치 내각
101대
구보 와타루
102대
미쓰즈카 히로시
103대
하시모토 류타로
104대
마쓰나가 히카루
105-107대
미야자와 기이치
오부치 내각 모리 내각
105-107대
미야자와 기이치
재무대신 (2001~)
모리 내각 고이즈미 내각 아베 내각
초대
미야자와 기이치
2대
시오카와 마사주로
3-5대
다니가키 사다카즈
6대
오미 고지
아베 내각 후쿠다 내각 아소 내각
7·8대
누카가 후쿠시로
9대
이부키 분메이
10대
나카가와 쇼이치
11대
요사노 가오루
하토야마 내각 간 내각 노다 내각
12대
후지이 히로히사
13대
간 나오토
14대
노다 요시히코
15대
아즈미 준
16대
조지마 고리키
아베 내각 스가 내각
17-20대
아소 다로
기시다 내각 이시바 내각 다카이치 내각
21·22대
스즈키 슌이치
23·24대
가토 가쓰노부
25·26대
가타야마 사쓰키
다카이치 내각
25·26대
가타야마 사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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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경 (1873년~1885년)
메이지 정부
초대
오쿠보 도시미치
2대
기도 다카요시
3대
오쿠보 도시미치
4대
이토 히로부미
5대
오쿠보 도시미치
6대
이토 히로부미
7대
마쓰카타 마사요시
8대
야마다 아키요시
9대
야마가타 아리토모
내무대신 (1885년~1947년)
이토 내각 구로다 내각 야마가타 내각 마쓰카타 내각
초대
야마가타 아리토모
임시대리
마쓰카타 마사요시
초대
야마가타 아리토모
마쓰카타 내각
2대
사이고 주도
3대
시나가와 야지로
4대
소에지마 다네오미
5대
마쓰카타 마사요시
6대
고노 도가마
이토 내각 마쓰카타 내각
7대
이노우에 가오루
8대
노무라 야스시
9대
요시카와 아키마사
10대
이타가키 다이스케
11대
가바야마 스케노리
이토 내각 오쿠마 내각 야마가타 내각 이토 내각 가쓰라 내각
12대
요시카와 아키마사
13대
이타가키 다이스케
14대
사이고 주도
15대
스에마쓰 겐초
16대
우츠미 타다카츠
가쓰라 내각 사이온지 내각
17대
고다마 겐타로
18대
가쓰라 다로
19대
요시카와 아키마사
20대
기요우라 게이고
21대
하라 다카시
가쓰라 내각 사이온지 내각 가쓰라 내각 야마모토 내각 오쿠마 내각
22대
히라타 도스케
23대
하라 다카시
24대
오우라 가네타케
25대
하라 다카시
26대
오쿠마 시게노부
오쿠마 내각 데라우치 내각
27대
오우라 가네타케
28대
오쿠마 시게노부
29대
이치키 기토쿠로
30대
고토 신페이
31대
미즈노 렌타로
하라 내각 다카하시 내각 가토 내각 야마모토 내각 기요우라 내각
32대
도코나미 다케지로
33대
미즈노 렌타로
34대
고토 신페이
35대
미즈노 렌타로
가토 내각 와카쓰키 내각 다나카 내각
36대
와카쓰키 레이지로
37대
하마구치 오사치
38대
스즈키 기사부로
39대
다나카 기이치
다나카 내각 하마구치 내각 와카쓰키 내각 이누카이 내각
40대
모치즈키 게이스케
41대
아다치 겐조
42대
나카하시 토쿠고로
43대
이누카이 쓰요시
이누카이 내각 사이토 내각 오카다 내각 히로타 내각 하야시 내각
44대
스즈키 기사부로
45대
야마모토 타츠오
46대
고토 후미오
47대
우시오 시게노스케
48대
카와라다 카키치
고노에 내각 히라누마 내각 아베 내각 요나이 내각
49대
바바 에이이치
50대
스에츠구 노부마사
51대
기도 고이치
52대
오하라 나오시
53대
코다마 히데오
고노에 내각 도조 내각
54대
야스이 에이지
55대
히라누마 기이치로
56대
타나베 하루미치
57대
도조 히데키
58대
우자와 미치오
도조 내각 고이소 내각 스즈키 내각 히가시쿠니노미야 내각 시데하라 내각
59대
안도 기사부로
60대
오다치 시게오
61대
아베 겐키
62대
야마자키 이와오
63대
호리키리 젠지로
시데하라 내각 요시다 내각 가타야마 내각
64대
미츠치 추조
65대
오무라 세이이치
66대
우에하라 에츠지로
임시대리
가타야마 데쓰
67대
키무라 코자에몬
폐지

섭관 · 원정 · 헤이케 · 가마쿠라 · 무로마치
오다 · 도요토미 · 에도 · 내무경 · 총리

역대 내각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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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이토 히로부미 구로다 기요타카 야마가타 아리토모 마쓰카타 마사요시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이토 히로부미 마쓰카타 마사요시 이토 히로부미 오쿠마 시게노부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토 히로부미 가쓰라 다로 사이온지 긴모치
제13대 제14대
가쓰라 다로 사이온지 긴모치
다이쇼 시대
제15대 제16대 제17대 제18대
가쓰라 다로 야마모토 곤노효에 오쿠마 시게노부 데라우치 마사타케
제19대 제20대 제21대 제22대
하라 다카시 다카하시 고레키요 가토 도모사부로 야마모토 곤노효에
제23대 제24대 제25대
기요우라 게이고 가토 다카아키 와카쓰키 레이지로
쇼와 시대 전전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다나카 기이치 하마구치 오사치 와카쓰키 레이지로 이누카이 쓰요시
제30대 제31대 제32대 제33대
사이토 마코토 오카다 게이스케 히로타 고키 하야시 센주로
제34대 제35대 제36대 제37대
고노에 후미마로 히라누마 기이치로 아베 노부유키 요나이 미쓰마사
제38·39대 제40대 제41대 제42대
고노에 후미마로 도조 히데키 고이소 구니아키 스즈키 간타로
쇼와 시대 전후
제43대 제44대 제45대 제46대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 시데하라 기주로 요시다 시게루 가타야마 데쓰
제47대 제48-51대 제52-54대 제55대
아시다 히토시 요시다 시게루 하토야마 이치로 이시바시 단잔
제56·57대 제58-60대 제61-63대 제64·65대
기시 노부스케 이케다 하야토 사토 에이사쿠 다나카 가쿠에이
제66대 제67대 제68·69대 제70대
미키 다케오 후쿠다 다케오 오히라 마사요시 스즈키 젠코
제71-73대 제74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다케시타 노보루
헤이세이 시대
제75대 제76·77대 제78대 제79대
우노 소스케 가이후 도시키 미야자와 기이치 호소카와 모리히로
제80대 제81대 제82·83대 제84대
하타 쓰토무 무라야마 도미이치 하시모토 류타로 오부치 게이조
제85·86대 제87-89대 제90대 제91대
모리 요시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제92대 제93대 제94대 제95대
아소 다로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제96-98대
아베 신조
레이와 시대
제98대 제99대 제100·101대 제102·103대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 이시바 시게루
제104·105대
다카이치 사나에

← 태정대신


섭관 · 원정 · 헤이케 · 가마쿠라 · 무로마치
오다 · 도요토미 · 에도 · 내무경 · 총리

평가

당대의 주요 강대국 중 하나였지만, 극단적 전체주의 및 군국주의를 내세우며 인명을 경시하는 등 정상적인 근대 국가라 보기 어려웠으므로 일본의 몇몇 극우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다.[1] 이런 역사적 평가에는 일본 제국이 추축국으로서 군국주의의 선봉에 섰고, 수많은 인명피해를 야기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했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 ↑ 현대 일본에 우호적인 미국이나 영국 등 서방에서도 일본 제국에 대한 기본적인 논조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이는 해당 국가들의 역사 교과서 등을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이들은 직접 일본 제국과 전쟁을 치렀기에, 과거의 적국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할 여지가 없다.
'근대 일본(Modern Japan)'이 '중세주의(Medievalism)'라고 쓰여진 불상을 딛고 서서 러시아를 위협하고 있다.
'근대 일본(Modern Japan)'이 '중세주의(Medievalism)'라고 쓰여진 불상을 딛고 서서 러시아를 위협하고 있다.

파시즘 국가 여부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천황제 파시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중국과 한국에서는 1930년대의 일본 제국이 파시즘 체제였다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분명 일본에도 흑룡회나 황도파 같은 파시즘 단체가 존재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술적 관점에서 일본 제국을 나치 독일이나 파시스트 이탈리아처럼 온전한 파시즘 국가로 볼 수 있는지는 여러 견해가 있다. 파시즘 국가가 맞다는 의견, 파시즘의 요소만을 차용한 단순 권위주의 체제라는 의견, 테크노크라트들을 중심으로 한 테크노파시즘 사회라는 의견 등이 있다.

관련 문서

일본 제국의 동맹국

일본 제국의 괴뢰국

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의 괴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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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관련 사건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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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화권의 황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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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타이완섬의 역사
틀:만주의 역사

한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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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공화국 · 제2공화국 · 제3공화국 · 제4공화국 · 제5공화국 · 제6공화국
  1. ↑ 기자조선은 현대 주류 학설에서는 인정되지 않음.
  2. ↑ 한사군은 한국사 포함 여부에 대해 논쟁이 있음.
  3. ↑ 가야는 신라의 복속 이후에도 사료에서 존재가 확인되어, 7세기 중엽까지 반독립적 상태로 존속했다는 학설도 있음.
  4. ↑ 4.0 4.1 4.2 외세의 점거로 인해 한민족에 의한 정권수립이 되지 않은 경우.
주요 민족: 한민족 (예맥 · 삼한)


틀:오세아니아의 역사
틀:중국의 역사
틀:실제 몽골의 역사
틀:미얀마의 역사
틀:베트남의 역사
틀:라오스의 역사
틀:캄보디아의 역사
틀:인도네시아의 역사
틀:필리핀의 역사
틀:말레이시아의 역사

식민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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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제1차 세계대전 참전국
틀:제2차 세계대전 참전국
틀:추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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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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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1943의 이탈리아 왕국과 1943~1945의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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