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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Flag of Japan (1870–1999).svg일본 제국 관련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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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 | 1889년 2월 11일 (메이지 22년) | ||
| 시행 | 1890년 11월 29일 (메이지 23년) | ||
| 폐지 | 1947년 5월 2일 (쇼와 22년) | ||
| 링크 | 원문보기 (일본국립국회도서관) | ||
개요
대일본제국 헌법(大日本帝國憲法)은 일본 제국의 헌법이다. 메이지 천황의 치세인 메이지 시대에 제정되었기에 메이지 헌법(明治憲法)으로도 불리며, 현재의 일본국 헌법과 대비해 구헌법(舊憲法)이라고도 불린다.
1886년에 일본 정부가 주도해서 헌법초안 작성에 들어가기 시작해 1889년 2월 11일에 공포되었고 1890년 11월 29일부터 1947년 5월 2일까지 시행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개헌 절차를 거쳐 일본국 헌법으로 대체되었다.
제정배경
일본에서 헌법 제정 문제는 메이지 시대인 1880년대를 떠들썩하게 한 자유민권운동 등과 관해 있어왔다. 한창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나섰던 일본 정부는 부국강병에 매진했으나 신민의 권리에는 무관심했다. 한편 사민평등을 포함한 급격한 사회제도의 변혁으로 실권을 잃은 무사 계급은 신정부의 개혁안에 반발했다. 이들은 서양의 민권운동을 수입하여 메이지 정부를 견제하고자 했고, 이것이 일본 최초의 서양식 정치운동인 자유민권운동(自由民権運動)이다. 이 자유민권운동의 대표적인 요구사항이 헌법 제정과 의회 개설이었다. 자유민권운동은 급격한 개혁으로 인해 사회가 급변하면서 불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세력을 확장해나갔고, 결국 메이지 정부도 이들의 요구 사항을 일정 수준 수용해야 했다.
헌법 제정 과정에서 수많은 학자들이 자신들의 헌법 초안을 집필하였다. 이를 사의헌법(私擬憲法)이라 한다. 그러나 당시 일본 정부는 이를 불온한 움직임으로 받아들여 사의헌법의 작성을 금지하고, 주체적으로 헌법 작성에 들어갔다.
초창기에는 오쿠마 시게노부 등이 영국식 헌법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했으나 이토 히로부미와 그 뒤를 받치던 이와쿠라 도모미같은 주류 세력들은 그보다는 군주의 권한이 강한 외견적 입헌주의의 독일식 헌법을 선호했고 결국 오쿠마는 권력 다툼에서 패배해 배제된다. 이에 이토 히로부미는 직접 독일로 유학을 가서 헌법을 배워오는 등 나름 열을 올렸고 결국 1889년에 원조인 독일이 그랬듯 근대화 과정과 자유민권운동에 대한 타협, 군주권 확보라는 움직임의 결과 제정되었다.
특징
흠정헌법과 천황대권
우리 일본국은 처음부터 천황이 친히 세워 친히 다스리셨으니 이를 헌법의 머리(首條)에 놓는 것은 실로 우리 국체에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타국의 헌법과 그 구성체계를 완전히 달리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 (메이지 헌법은) 결코 구라파의 주권 분할의 정신에 의하여 제정되는 것이 아니다. (...) 장래 여하한 사태에 직면하더라도 (...) 상원수(上元首)의 지위를 유지하고 결코 주권을 인민에게 이전하지 않을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 헌법 기본정신을 밝히며.
국민의 권리
대일본제국 헌법은 흠정헌법이라는 성격상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소극적이고 제한이 컸는데, 이는 대일본제국 헌법의 모태인 프로이센 헌법에 비해서도 퇴보한 것이었다.
프로이센 헌법은 국민의 천부인권을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이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 법률로 제한할 수 있음을 덧붙이는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대일본제국헌법에서의 기본권은 사람이 무(無)권리의 존재로 태어났으나 천황에게 충성하는 전제하에 그가 제정한 법률을 통해 소극적으로 부여받는다는 이념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천황 개인, 실질적으로 일본 정부 눈 밖에 난 사람은 비국민으로써 권리를 무시당했다. 국민을 지칭하는 명칭도 프로이센 헌법에서는 '프로이센인'인 반면 대일본제국 헌법에서는 군주에 복종하는 소극적 개념인 '신민'이다.
식민지와 헌법
6월 3일 각의 결정병합 후의 한국에 대한 시정방침 결정의 건
1. 조선에는 당분간 헌법을 시행하지 않고 대권(大權)에 의하여 통치할 것.
1. 총독은 천황에게 직예(直隷)하고 조선에서 일체의 정무를 통할하는 권한을 가질 것.
1. 총독에게는 대권의 위임에 의하여 법률 사항에 관한 명령을 발할 권리를 부여할 것. 단, 이 명령은 별도로 법령 또는 율령 등 적당한 명칭을 붙일 것.
1. 조선의 정치는 가능한 한 간이(簡易)를 주지로 하고, 따라서 정치 기구도 주지에 따라 개폐(改廢)할 것.(후략)
— 1910년 6월 3일 일본 각료회의에서 의결된 <한국병합 실행에 관한 방침> 중 발췌. 출전: 『日本外交文書』 43-1, 문서번호 547
"합병 후에 있어서 조선인의 법적 지위는 외견상은 일본국적을 취득하나 이 때문에 조선인이 전적으로 일본인과 동일하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법에서는 차별대우가 가능하다. 다만 외국에 대해서만 일본인이 되는 것에 불과하다." — 1910년 7월 15일, 데라우치 마사타케 당시 통감의 법률 문의에 대한 일본 공법학자 야마다 산료(山田三良)의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