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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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오스만국
دولت عليه عثمانیه
Sublime Ottoman state
100% 60%
국기 (1844~1922년)[1] 국장 (1882~1922년)[2]
دولت ابد مدت
불멸의 나라
상징
국가 레샤디예 행진곡
Reşadiye Marşı (1909~1918)
지도
Ottoman Empire 1683 (orthographic projection).svg
1683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최대 강역[3]
■ 오스만 본토
■ 속국 및 피보호국[4]
1299년 ~ 1922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룸 술탄국
아나톨리아 베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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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공화국
대국민의회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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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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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9년 건국
1302년 바페우스 전투
1326년 부르사 점령
1354년 갈리폴리 점령 (유럽 진출)
1389년 1차 코소보 전투
1396년 니코폴리스 전투
1402년 앙카라 전투[5]
1444년 바르나 전투
1453년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1514년 찰디란 전투
1517년 이집트 정복, 칼리파 위 획득[6]
1526년 모하치 전투, 헝가리 정복
1529년 제1차 빈 공방전
1538년 프레베자 해전
1571년 레판토 해전
1672년 포돌리아[7] 점령[8]
1683년 제2차 빈 공방전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
1718년 파사로비츠 조약
1739년 베오그라드 조약
1743-1746년 오스만 페르시아 전쟁
1774년 퀴췩 카이나르자 조약
1798년 프랑스(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
1827년 나바리노 해전
1839년 탄지마트 개혁
1853-1856년 크림 전쟁
1876년 미드하트 헌법 제정
1878년 산 스테파노 조약
1908년 2차 헌법 제정
1912-1913년 발칸 전쟁
1915-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1915년 갈리폴리 전투
1919-1923년 튀르키예 독립 전쟁
1922년 대국민의회의 콘스탄티니예 함락, 제국 멸망

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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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دولت ابد مدت
(불멸의 나라)[9]
دولت عاليه
(숭고한 나라)[10]
ممالكت مهراسا
(잘 보호받는 땅)[11][12][13]
مَمْلَكَةت رُّومُ / دیارت رُّومُ / اقليمت رُّومُ
(로마 왕국 / 로마의 땅 / 로마국)[14][15]
Osmanlı İmparatorluğu / Osmanlı Devleti[16]
(오스만 제국 / 오스만국)[17]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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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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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800년)24,000,000명[19]
(1900년)25,706,300명(비공식)[20]
(1907년)27,800,000명[21]
(1914년)16,128,361명[22]
언어 오스만어 (공용어)[23]
민족 (현대의) 튀르키예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아랍인, 슬라브인, 알바니아인, 루마니아인, 쿠르드인, 유대인, 조지아인, 페르시아인 외 다수[24]
종교 이슬람 수니파, 정교회, 유대교 등[25]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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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1299~1876, 1878~1908, 1920~1922)
입헌군주제 (1876~1878, 1908~1920)
국가 원수 베이 (1299~1383)[26]
술탄 (1383~1922)
파디샤(황제) (1453~1922)[27][28]
경제
통화 악체, 쿠루쉬
두카트[29]
리라[30]

개요

상징

국호

국기

국가

역사

국력

강역

행정 구역

관료 조직

인구

외교

군사

경제

문화

세금 제도

역대 군주 목록

각주

  1. ↑ 1844년에 국기로 제정되어 제국 멸망 시까지 사용되었다.
  2. ↑ 1882년 4월 압뒬하미트 2세가 채택한 문장이다.
    국장이 들어가있는 회중시계(1)
    국장이 들어가있는 회중시계(2)
  3. ↑ 당시 군주는 메흐메트 4세(1648~1687).
  4. ↑ 왈라키아 공국 · 몰다비아 공국 · 트란실바니아 공국 · 크림 칸국 · 조지아계 번국들. 그 외에도 수많은 봉신국들을 거느렸다.
  5. ↑ 이 시기 오스만은 티무르 제국의 반속국이 되었다.
  6. ↑ 맘루크 왕조의 멸망, 명목상으로나마 카이로에서 명맥을 잇던 아바스 왕조의 멸망
  7. ↑ 우크라이나 중남부
  8. ↑ 최대 판도 구축
  9. ↑ 발음은 '데블레티 에베드 뮈데트(Devlet-i Ebed Müddet)'.
  10. ↑ 발음은 '데블레티 알리예이(Devlet-i Âlîye)' 뒤에 오스만을 붙여 틀 상단에서도 나타난 '숭고한 오스만국(Devlet-i Aliyye-i Osmâniyye 데블레티 알리예이 오스마니예)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참고문헌 : O. Özgündenli, "Persian Manuscripts in Ottoman and Modern Turkish Libraries" #, Encyclopaedia Iranica, Online Edition).
  11. ↑ 발음은 '메말리키 마흐루세(Memālik-i Mahrūse)'.
  12. ↑ 오스만 제국을 표현하는 명칭 중 제국 내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명칭이며, 이 명칭 또한 뒤에 오스만을 붙여 Memâlik-i Mahrûse-i Osmanîye(잘 보호받는 오스만의 땅)으로 쓰이기도 했다. 'memālik-i mahrūse'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잘 보호받는 영역들(영어: well-protected domains)'이라고 번역되지만, '신의 보호를 받는 영역들(영어: divinely protected dominions)'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 Kunčević, Lovro (2010). "On Ragusan Libertas in the Late Middle Ages". Dubrovnik Annals: 59.)
  13. ↑ 이와 유사하게, 이웃한 사파비 왕조의 국호 역시 '잘 보호받는 이란국(ممالک محروسهٔ ایران 마말리키예 마흐루셰예 이란)'이었다.
  14. ↑ 발음은 각각 '메믈라케티 룸(Memleket-i Rûm)' / '디야리 룸(Diyâr-i Rûm)' / '이크리미 룸(İklîm-i Rûm)'이다.
  15. ↑ 동로마 제국의 합병 이후 오스만 제국 전반기에 주로 널리 쓰였으며, 이 국호는 로마인 상류층들을 포섭하여 신민으로 삼기 위함과, 다른 한편으로는 고대 로마 영토 점령의 명분을 위해 쓰인 국호로 추정한다. (참고문헌 : Fodor, Pál (2015). "Byzantine Legacies in Ottoman Identity." in Barbara Kellner-Heinkele and Simone-Christiane Raschmann (eds.). Opuscula György Hazai Dicata: Beiträge zum Deutsch-Ungarischen Workshop aus Anlass des 80. Geburtstages von György Hazai. Klaus Schwarz Verlag: 93-108., Ergul, F. A. (2012). "The Ottoman Identity: Turkish, Muslim or Rum?" Middle Eastern Studies, 48(4): 629–645.)
  16. ↑ 발음은 '오스만르 임파라토르루우' · '오스만르 데블레티'.
  17. ↑ 오스만 당대에 쓰인 국호와는 상당히 다르다. 오스만 제국의 식자층이 문학과 행정에서 사용한 오스만어(Osmanlıca)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의 영향을 아주 강하게 받았던 반면, 현대 튀르키예어는 일반인(halk)들이 사용하던 오스만 튀르크어에서 아랍어, 페르시아어 어휘와 문법을 최대한 없애고 고대 튀르크어식 어휘 문법과 서구식 어휘로 대체하는 인위적인 언어 '정화' 작업을 거쳤기 때문이다.
  18. ↑ 오스만 제국령 아나톨리아 반도와 발칸 반도 사이에 동로마 제국이 끼어 있는 형국이었기에 소통이 어려워 동유럽(루멜리아 에얄레트)에 하나, 서아시아(아나돌루 에얄레트)에 하나, 총 두 곳의 수도를 필요로 했다.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하며 그곳을 수도로 삼으면서 두 곳의 수도는 하나로 통합되었다. 또한 에디르네가 정확히 몇 년에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되었으며 언제 수도가 되었는지는 사료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무라트 1세 대에 수도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19. ↑ 당시 8위
  20. ↑ 당시 12위
  21. ↑ 당시 11위
  22. ↑ 불과 7년만에 인구밀집지역인 발칸 반도 영토들을 잃으며 인구가 500만 가까이 줄어버렸다. 이 인구조사는 오스만 제국 마지막 인구총조사로 밀레트에 따라 조사되었는데, 무슬림이 13,390,000명, 정교도가 1,173,422명, 아르메니아 교회 신자가 1,564,939명으로 집계되었다. 출처
  23. ↑ 튀르키예어를 쓰지 않는 지방에 칙령을 내리거나 공문서를 작성할 때는 현지의 언어도 함께 썼다. 종교인과 학자들은 아랍어, 학자와 문필가들은 페르시아어를 쓰기도 했으며, 오스만어는 이 두 언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4. ↑ 다만 당대에는 무슬림이냐, 정교회 기독교인이냐, 유대인이냐, 아르메니아 정교회인이냐 등을 기준으로 분류했으며 언어와 민족에 상관 없이 구분되었다. 심지어 그리스인이나 튀르키예인 문서를 가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지만 현재에는 같은 민족으로 구분하는 아나톨리아의 그리스인과 폰토스 그리스인, 북부 그리스의 그리스인, 남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을 서로 동족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위에 언급한 민족들은 19세기가 되어서야 구분되기 시작해서 20세기에야 완성되는 개념이다.
  25. ↑ 다수파는 아니지만 시아파 신자나 중동의 오리엔트 정교회 신자도 있었고 중앙 유럽 일부까지 정복한 관계로 가톨릭이나 개신교도 있었다. 짐미, 즉 비(非)무슬림들에 대한 회유책의 일환으로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를 막지 말라는 포고를 내린 적도 있었다.
  26. ↑ 베이(bey)는 본래 지방 태수라는 뜻으로, 오스만 제국이 룸 술탄국에서 떨어져 나온 나라임을 잘 보여주는 용어라고 할 만하다. 대략 왕 정도에 해당하는 술탄보다는 지위가 낮아서, 의역해서 생각하자면 '공작(公爵)' 정도라고 할 수도 있다.
  27. ↑ 황제를 뜻하는 페르시아어인 파디샤(Padişah), '술탄 중의 술탄'을 뜻하는 '술탄 에셀라틴(Sultan es-Selatin)', '로마 황제'라는 뜻의 '카이세리 룸(Kayser-i Rûm)' 등이 쓰였다. 이 밖에도 유목세계의 군주를 뜻하는 칸 칭호도 사용했고, 셀림 1세 때는 칼리파 직위를 아바스 가문에게서 승계받아 이슬람의 보편 칼리파가 되었으며 제국 말기에는 칼리파를 대표 칭호에 가깝게 부각시켰다. 이런 점은 청나라와 유사한데 청의 황제는 만주족에게는 '한', 몽골족에게는 '칸', 한족에게는 '천자'라 칭했다.
  28. ↑ 한편 유럽에서는 여전히 술탄이라 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동안 술탄이라 했던 것이 관습화된 것으로 러시아의 군주가 차르에서 임페라토르를 칭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줄곧 차르라 했던 것과 비슷한 예.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서구권(과 그 영향을 받은 한국)에선 오스만 황제들을 '술탄'이라고 부르는 관습이 일반화되어 있다. 반면 튀르키예에서는 오스만 황제들을 '파디샤'라고 부른다.
  29. ↑ 유럽의 기축 통화. 오스만이 정복한 영토나 제국의 중심지가 유럽의 지중해권 경제에 묶인 만큼 오스만 제국도 유럽의 기축 통화인 두카트를 사용해왔다. 게다가 오스만 제국의 화폐제도는 전통적인 은본위제도를 취하고 있었는데, 자국화폐인 악체나 쿠루쉬는 워낙 화폐 가치가 낮고, 소액인지라 오래 전부터 무역대금으로 안전자산인 두카트를 더 선호했다. 두카트에 대응하는 금화로 주조한 악체나 쿠루쉬를 사용 하도록 장려 하기도 했다.
  30. ↑ 오스만 제국 후기 리라화 개혁 이전에는 기본적으로 이슬람 세계와 마찬가지로 은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17세기 쿠루시화를 발행하기 이전까지 3악체=1파라 였으며, 쿠루시화 등장 이후 40파라=1쿠루시였다. 다만 은화로는 고액 결제나 유럽과의 무역에서 불편함이 있었으므로 은본위제를 채택하되 고액권으로 금화를 발행했으며, 오스만 제국의 금본위제 개혁으로 발행된 튀르키예 리라화(100쿠루시=금화 1리라)이전에는 시기마다 다르지만 이스탄불 제리 마흐부브(Zer-i Mahbûb=6.5쿠루시), 이집트 제리 마흐부브(Zer-i Mahbûb-î Mısıriye=5.5쿠루시), 제디드 마흐무디예(Cedid Mahmudiye=25쿠루시), 하이리예(Hayriye=12쿠루시), 메지디예(Mecidiye=20쿠루시), 루미(Rumî=48쿠루시), 아딜리 알튼(Adlî Altın=660파라) 등의 금화들이 발행되었으며 플로린, 리브르, 파운드스털링 등 해외금화도 유통되었다. 한편 이 금화들은 시장가치에 따라 가치가 변동되었기 때문에 시대마다 그 가치가 조금씩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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