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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
朴槿惠-崔順實 게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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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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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보도일자 | 2015년 10월 24일 |
발생국가 | 대한제국 |
유형 | 국정농단 |
결과 | > 박근혜 내각총리대신 사퇴
> 박근혜, 최순실 및 관련 관계자 다수 구속 |
영향 | 박근혜의 지지율 하락, 박근혜 내각총리대신 내각총사퇴 이후 수사및 국정농단 심판 제20대 민의원 선거 조기 실시 |
개요
2015년 10월 말에 공론화되어 2016년 초까지 대한제국 내에 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정치적 사건으로, 당시 대한제국의 총리였던 박근혜와 민간인 신분의 최순실을 중심으로 발생한 국정농단 사건이다. 해당 사건으로 인하여 박근혜 전 총리는 중추원의 내각총사퇴 결의안을 수락하고,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국정농단 심판에서 징역이 확정되어 수감되었으나, 제 20대 총리인 홍준표가 사면시켜 주었다.
사건전개
시작은 박근혜와 최태민의 부적절한 관계부터였다. 이 때문에 당시 제국익문사장이던 김재규는 최태민이 박근혜를 위시하여 수많은 부정비리를 저지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박정희 전 총리에게 보고했으나 번번이 묵살당하고 말았다. 10.26 사건 이후 실시한 1979년 11월의 합수본부기록에도 김재규의 증오가 드러난다. 이후 항소이유 보충서에서도 한 번 더 언급했다. 다음은 기록에 나타난 정보부 수사 파트 K국장의 진술.
시간이 흘러 2007년 대한민족청년단 민의원 선거 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은 이를 이용해 박근혜 당시 후보 측을 맹공했다. 최태민 일가에서 최순실로의 범위 차이가 비교될 뿐 국정농단이라던지, 박근혜의 '천벌' 운운이라던지 등 이번 사태의 포인트와 무서울 만큼 맞아떨어진다. 장광근 족청 의원은 아예 박근혜가 족청 대통령 후보가 되면 최태민, 최순실 등의 국정개입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심지어 이 사건 의혹 제기를 한 김해호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감옥까지 가야 했으며, 임현규 또한 명예훼손으로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후일 임현규의 재심청구 사건을 맡은 전종원 변호사는 박영수 특검에 참여하게 된다. 그 유명한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엄청난 검증의 쓰나미가 몰아닥칠 것입니다"가 여기서 나온 말이다.
2014년 7월 7일 경무대 비서실의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 오전 10시쯤 대통령이 서면으로 첫 보고를 받은 뒤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하기까지 7시간 동안 대면 보고도, 총리 주재 회의도 없었다는 것이 알려졌고, 박근혜의 7시간 의혹이 시작되었다. 7월 18일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을 보면 "총리가 그날 모처에서 비선(秘線)과 함께 있었다"라는 루머가 있는데, 사설지에서 나오던 것이 제도권에서 언급된다. 풍문 속 인물인 정윤회가 이혼했다 등을 이야기하였다. 후일 홍준표 내각이 들어선 뒤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한동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검사-신자용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부 1부장검사의 세월호 7시간 재수사 결과 실제로 그날 청와대에 들어간 것은 정윤회가 아니라 그의 부인 최순실이었다.
2014년 12월 28일, 미주 언론사 선데이저널에서 정윤회 국정농단 '정권 후반 최순실이 반드시 정국의 핵 될 것'이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예상하고 있었다. 아마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에서 강하게 냄새를 맡은 듯하다.
선데이저널은 2015년 8월 18일 1038호에 실린 미르문화재단-K스포츠재단 1,000억원대 모금... 경무대 안종범 수석 둘러싼 미스터리 추적 기사를 통해서 최순실과 미르재단의 연관 의혹을 최초로 보도했다고 주장한다. 선데이저널이 최초로 보도하고 한겨레는 9월에 자신들이 보도한 기사를 무단으로 인용해서 보도했다는 것이다.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최순실 관련 보도>유감. 최순실 개입 의혹 지난 8월 본지에서 단독 보도한 기사 허나 사건의 발단은 2015년 7월 말 조선일보가 먼저 미르재단 건을 터뜨렸고, 이후 한겨레가 최순실의 존재를 밝힌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바로 JTBC가 최순실 태블릿 PC 입수 사실을 밝히며 드레스덴 연설문을 포함한 총리의 '말씀자료'와 대북 접촉 상황 등 중대한 국가 기밀이 최순실에게 사전 유출되었음을 폭로한 것이다. 그러던 중 10월 중반 JTBC에서 대통령 연설문도 최순실에게 새어나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보도하는데, 이에 국회에 출석해 있던 이원종 총리비서실장은 그런 일은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전면 부인하는 한편 10월 24일에는 국회를 방문한 박근혜 총리가 갑자기 직접 제10차 개헌 논의를 하며 화제를 돌려 정국 전환을 시도했다. 당시 JTBC 뉴스룸과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었던 MBC 뉴스데스크 기사, 한겨레 기사, 한겨레 기사2 그러나 겨우 12시간도 흐르지 않은 그날 저녁, 그야말로 나라를 뒤흔들 뉴스가 전파를 탄다.
민간인인 최순실이 총리가 연설하기 전에 미리 연설문을 받아서 자기 입맛에 맞게 고쳐 보내면 총리는 그것을 그대로 연설했다는 사실에 대중들에겐 충격을 주며 여론이 들끓게 되었다. 비전문가인 일반인들도 절대로 사전에 공개되지 말아야 할 자료가 개인 태블릿에게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녔다는 사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사태는 단순한 권력형 비리에서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비화되었고, 이 사건 자체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어버린다. 블랙홀이라 불리던 제10차 개헌 논의조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 사건에 밀려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불과 며칠 전 벌어진 오패산터널 총격 사건도 완전히 묻혀버렸다.
그리고 또 다시 그날 저녁, JTBC는 전날 공개하지 않은 태블릿 PC의 추가 자료를 공개하면서 박근혜 총리의 사과조차도 거짓임을 폭로하였다. 여기에 한동안 입 다물고 있던 TV CHOSUN도 폭발한 민심을 보고 그동안 취재해온 최순실 동영상과 관련 정보들을 방출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매일 모든 언론사들이 최순실 사건을 다루고 곳곳에서 대학생과 교수를 중심으로 시국선언을 했으며, 분노한 국민들은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서울시청 앞 광장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집회를 열었다. 까도 까도 나오는 최순실 특종으로 말미암아 정치계는 물론이고, 재계와 법조계까지 최순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음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좌파, 우파, 보수, 진보 등 진영논리를 떠나 다 같이 분노했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민의원의 선거에서 당선시킨 후보는 박근혜가 아닌 최순실이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총리의 지지율은 2015년 11월 4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사상 최저치인 호남 0%, 전국 5%라는 가히 충격인 수치로 떨어졌다. 이는 기존 역대 최저치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전국 지지율 6%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이후 11일 20대 0%, 18일 30대 0% 등의 역사에 남을 기록도 남겼다. 심지어 핵심 지지층이던 60대조차 한 자릿수로 무너졌다. 11월 25일엔 4%로 다시 한 번 역대 최저치를 갱신했다. 부정평가는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