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족청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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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1943의 이탈리아 왕국과 1943~1945의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Whattheydo.webp 파시즘 여부 논란 있음
중앙청1.jpg
한국의 보수 정당
창당 → 대한민족청년단 → 현재
조선민족청년단
(당명변경)
대한민족청년단 신로고 새천년.png
대한민족청년단
大韓民族靑年團 | National Youth Front of Korea
약칭 족청(族靑)
표어 민족지상, 국가지상
民族至上 國家至上
슬로건 시대전환으로 새 대한을 만들자.
창당일 1946년 10월 9일[1]
통합 정당 서북청년회 , 대동청년단 [2]
자유당[3]
통일당 [4]
자유민주당 , (新) 국민의당[5]
희망의한국신당 , 민주국민당 [6]
(전부 흡수 합당)
연립여당 자유민주연합
주소 한성부 중구 을지로 5가 77번지
이념 보수주의 (대한제국)
한국 내셔널리즘
내부 계파
가부장적 보수주의
우익대중주의
국수주의
자유보수주의
보수조합주의
역사적 계파
한국식 입헌군주주의
한민족주의
파시즘
국가주의
애국주의
대중주의
한국식 파시즘
협동조합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우익 빅텐트
총재 이회창
부총재 황우여
간사장 하순봉
총무회장 이인제
정무조사회장 유승민[7]
선거대책위원장 박근혜[8]
국회대책위원장 전여옥
내각총리대신 이회창
민의원
276석 / 480석 (57.5%)
참의원
133석 / 240석 (55.4%)
당색 민족의 울(鬱) (#003050)
청년의 힘(#ce2f3b)
대한색(#0049a0)
정책연구소 민족청년연구소
청년조직 족청 로고.png 대한민족청년단 청년국(靑年局)
당원 수 4,057,545명
당가 대한민족청년단 당가
족청 신 당기.png
이 나라를 움직일 힘이 있다. 2001년 1월 족청.jpg
2001년 1월 포스터 - 이 나라를 움직일 힘이 있다.


개요

족청 이회창과 김영삼 55년.png
55년, 국가지상과 민족지상
민족수호, 성총보좌
民族守護,聖聰保佐

대한민족청년단(大韓民族靑年團)은 대한제국의 집권 여당이자 우파 빅 텐트 성향의 정당이다. 파트너인 자유민주연합과 함께 연립 내각을 이루고 있다.

약칭은 족청(族靑), 영어 약자는 NYFK(National Youth Front of Korea), Nation.Youth 이다. 1946년 창당되었으며 창당한 이래로 대부분 기간 동안 한국의 집권 정당으로 역할했다. 현 총재(당수)는 이회창이다.

오랜 기간 집권한 정당이다 보니 현대 한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따라서 대한민족청년단을 알면 한국 정치를 다는 아니지만 큰 틀에 대해 제법 파악할 수 있다.

단지삼칙

① 우리는 민족정신을 환기하여 민족지상·국가지상의 이념하에 청년의 사명을 다할 것을 기한다.
② 우리는 종파를 초월하여 대내자립·대외공존의 정신으로 민족의 역량을 집결할 것을 기한다.
③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며 원대한 곳을 바라보고(着眼遠大), 비근한 것부터 착수하여(着手卑近) 건국도상의 청년다운 순감(純感)을 바칠 것을 기한다.

상징

당기및 당 로고

한글로고타입

대한민족청년단 신로고 새천년.png

대한민족청년단의 준말인 청년단(靑年團)이 한글로 써져 있다.
1999년 제22대 총선거 기간 이후로 주로 쓰이고 있다.

당기

족청 신 당기.png

당색과 같은 수레국화와 보수주의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횃불이 그려져있다.
대한민족청년단 당사에는 가로로 대한민족청년단(大韓民族靑年團)이라고 써있다.

청년국 로고타입

족청 청년국 로고 비누끼.png

로고타입의 로고가 하단에 위치해 있고, 상단에 청년국을 상징하는 한자말인 '靑年'을 새겨넣었다.


단가

대한민족청년단의 단가

역사

1946년, 조선민족청년단이 창당하게 되었다. 이후 1948년 서북청년회와 조선민족청년단의 합당으로 대한민족청년단이 이루어졌다. 이른바 55년 체제의 시작이다.

배경을 보자면, 합당 이후 자유당의 압박 속에 족청과 자유당이 합당을 이어나가려 하였으나, 곧 4·19 혁명이 발생하면서 자유당이 붕괴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서 자유당을 사실상 족청이 흡수하게 되었다. 이런 흡수 이후, 총재였던 이범석은 김구의 다음 총리가 되었고,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서 족청의 사실상 일당우위를 확립시켰다. 박정희가 사망한 후 사실상 전두환에 의해 지워졌던 친 박정희계와 족청의 보수 본류(이범석계)는 각각 당을 이어나갔다. 친 박정희 계는 자유민주연합을, 족청은 전두환 시기의 집권정당이자 일당으로써 역할을 다했고, 노태우의 사퇴 이후부터 둘은 연정을 시작하면서 약 20여년간 각외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이것을 족민 연합으로 부른다.

창당

이범석을 중심으로 안춘생과 노태준이 지휘했던 광복군 제2지대를 주축으로하여 창설되었다.

당시의 다른 우익단체들과 차별화된 점이 상당히 많았는데 일단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모두 반대하는 제3의 노선에 있었다. 또한 다른 우익 단체들이 테러를 일삼거나 좌익 세력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족청은 이범석부터가 테러를 반대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좌익과 충돌하지 않고 청년들의 교육과 훈련에 집중했다. 민주당 등이 중심이 되거나 지원하는 극우 청년단체들은 민족주의적 대의명분의 정통성이 없었고 지나친 폭력행사로 인해서 국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었다. 그 때문에 당시 여러 우익단체들의 지나친 폭력행사를 우려하고 상대적으로 온건한 우파를 찾던 미군정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이범석 자신이 1946년 500만 원이라고 진술했었던 조선민족청년단에 대한 미군정의 후원은 1947년 거의 4배 정도가 늘어난 1900만 원으로 급증하였다.

미군정의 지원에 힘입어 조선민족청년단은 창설 1년만인 1947년 10월 경 19만9000명의 훈련생을 배출하게 되었고 1948년 가을 무렵에는 무려 115만 명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장기집권

1961년 6월 18일 ~ 2005년 8월 13일(44년 3개월), 2012년 8월 15일 ~ 2024년 8월 28일(현재)(12년)의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 몇십년간 여당으로 집권하고 있다. 이는 캐나다 자유당, 스웨덴 사회민주노동자당, 인민행동당, 제도혁명당, 일본의 자유민주당에 버금가는 장기 집권 기록이기도 하다. 실제 족청이 만들어진 46년부터 한국 민의원 선거는 1948・1952년 선거와 2005•2009년 선거를 제외하면 원내 제1당 자리는 항상 족청이 차지했고 의석수 비율도 앞의 2010년을 제외하면 4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그 탓에 족청 총재 선거는 거의 한국 총리를 가리는 자리나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족청이 너무 오랜 기간 집권해왔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는 정당 정치가 아니라 족청 내의 파벌 정치와 다름없다. 사실상 족청의 집권이 확실시 되니 족청 총재가 총리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래서 총재 선거가 다른 나라의 대선처럼 주목받는다. 한국은 족청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가 너무 오랫동안 공고히 유지되다보니 다른 당이 정권을 잡기 어렵고,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지지 기반이 약해 찰나의 실수로도 내각이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족청 외 정당들은 집권 경험이 거의 없거나 전무하기 때문에 정권을 잡으면 경험 부족으로 굉장히 미숙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족청이 전체 의석의 과반 차지 경험이 97년 이후로 거의 전무한 수준이기에 헌법 개정까지는 불가한 상황이다.

파벌

한국의 정치는 족청의 영향력이 압도적이기에 한국의 시민들은 아래의 파벌 중에서 자신과 성향이 맞는 파벌을 총리직을 얻을 수 있도록 밀어주어 자신의 의견이 수용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기도 한다.

1999년 3월 9일, 김영삼 내각의 지지율 하락세와 하나회 파문으로 국민의 비판 여론과 소속당이었던 족청의 불신이 높아지는 가운데 상도동계[9] 파벌이 자진 해산을 선언했다. 이로써 무파벌 의원들이 대한민족청년단 내 과반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향후 족청 내 파벌 간 경쟁과 견제 구도에 일대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었으나, 이회창 총재가 정치신인으로 급부상하면서 이회창계가 당권을 잡았다.

현존 파벌

・ 이회창계: 고보수주의 성향의 우익 ~ 극우 파벌로 현재 회장은 이회창 총리 겸 족청 총재. 소속 회원 수는 182명이다. 소속 의원수는 민의원 64명, 참의원 21명이다. 보수 방류의 상징으로써 족청의 개혁 이미지를 띄는 가장 큰 파벌이다.

・ 이인제계: 이인제로부터 시작하는 보수방류 파벌로, 중도 우익의 성향을 띄고 있다. 현재 회장은 이인제 의원이다. 사실상 이회창의 정적이라고도 불리는 이인제의 파벌이며, 당 내에서도 이회창계와는 첨예하게 대립구도를 띄고 있다.

・ 이범석계: 이범석으로부터 시작하는 진짜 보수 본류의 파벌로, 극우 성향의 이범석-박정희주의 ~ 파시즘 성향을 띄고 있다. 현재 회장은 김정례 상임고문이다. 무려 53년간 이어진 파벌이며, 이범석 사후에도 정신을 이어받아 파벌이 유지되었다. 여전히 족청 내에서 제 3 파벌의 위치로써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 박정희계: 박정희로부터 시작하는 보수 본류의 파벌로, 우익 ~ 극우 성향의 이범석-박정희주의 성향을 띄고 있다. 현재 회장은 김윤환 정무제1대신이다. 이범석-박정희계 성향을 띄는 몇 안되는 보수 본류 계파로써 가장 역사가 깊은 파벌중 하나이다.[10] 박정희부터 시작해서 전두환까지를 통틀어 박정희계로 부른다.

・ 친박계: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세운 파벌이다. 보수 본류와 방류 사이에 존재해서 파벌 자체는 구분하기 힘드며, 가부장적 보수주의 성향을 띄고 있다. 현재 회장은 박근혜 선거대책위원회장이다. 박정희계에서 갈라진 파벌로 보고 있으며, 친서방, 친경제계획주의적 성향을 띈다.

・ 친이계: 이명박으로부터 시작하는 보수 방류 파벌로, 사회보수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다. 보수정당에서 주장하던 계획경제주의에서 벗어나 자유시장경제 도입을 외친 족청 내 사실상 유일한 파벌이며, 이회창계와 더불어 개혁 파벌로 불린다.


해산된 파벌

・ 김영삼계: 김영삼으로부터 시작하는 보수 방류 파벌로, 70-80년대 반독재, 반족청을 외치던 계파이다. 주로 보수자유주의 성향을 띄었다. 하지만 김영삼계 회장인 김영삼 당시 총리가 하나회 파문을 일으키고 내각총사퇴를 단행, 이후 정치판에서 사실상 김영삼계가 쫓겨나다시피 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진 파벌이다.

・ 민주계: 반독재, 반족청을 외치던 이들이 정치자유화 이후 족청에서 정치를 시작하면서 세운 계파이다. 하지만 1999년 3월 김영삼이 일으킨 하나회 파문으로 인하여 당에서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하면서 자체해산되었다.

제 22대 중추원

대한제국 중추원 휘장.svg 제22대 중추원 민의원
원내 구성
제22대 민의원 1999년 6월 4일 ~ 2003년 6월 5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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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여당
대한민족청년단 신로고 새천년.png
276석
자유민주연합 신로고.png
50석
야당
새천년민주당 당기.svg
136석
희망의한국신당 로고.png
6석
민주국민당 당기.svg
11석
무소속 1석
의장 ・ 이만섭
재적 480석
22
  1. ↑ 조선민족청년단 기준
  2. ↑ 1948년 8월 흡수합당
  3. ↑ 1954년 흡수합당
  4. ↑ 1955년 흡수합당
  5. ↑ 1960년 3월 흡수합당
  6. ↑ 2001년 흡수합당
  7. ↑ 당 통합의 일환으로 임명
  8. ↑ 당 통합의 일환으로 임명
  9. ↑ 김영삼계
  10. ↑ 이범석계가 최장기간의 파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