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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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여우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4월 5일 (금) 19:20 판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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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국의 역사
平私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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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삼산시대

역사서에 따르면 타핀 섬(太平島)에 상륙한 첫 사람은 사이 례산(崔䴡山)이라고 한다. 그는 중국인으로, 서기 100년 쯤의 일로 알려져 있다. 타핀 섬 중부에는 사이 례산의 증손자인 사이 류진(崔流進)이 태평국을 건국하였으며 6세기까지 남하하였다. 타핀 섬 북부에는 장 메이린(張明林)이 건국한 중산국풍 잉산(風英山)이 건국한 성산국이 확장을 하다가 충돌하였고 전쟁으로 발전했었는데 종전 후 중산국은 서남부, 성산국은 동남부로 남하하였다. 이 때 중산국과 태평국이 충돌하기 시작했고 양국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1] 이후 580년 태평국이 중산국을 멸망시켰다. 삼국사에 따르면 "중산국왕 진하이(進解)가 나와 항복하였다."라고 한다. 602년에는 성산국과 전쟁을 하여 멸망시켰다. "성산국왕 잉류(英流)는 가족들과 함께 도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중산왕의 도움으로 뒤를 쫓았으나 결국 잡지 못하였다."라고 삼국사에 기록되어 있다.

통일 태평국 시대

삼국을 통일한 이후의 태평국을 말한다. 이 시기에 핀본 섬(平本島)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636년 핀본 섬을 발견한 김 난메이(金南明)는 즉각 성왕에게 보고하였으며 왕명으로 즉시 핀본 섬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후 핀본 섬에서 의산국과 처음 충돌하였으며 640년에 의산국을 정벌하였다.

중세

전국시대

이 시기는 태평국과 핀본 섬의 여러국가가 난립하던 시기이다. 핀본 섬의 국가들은 소국이었으므로 태평국이 쉽게 정벌할 수 있었다. 645년에는 영수국을, 654년에는 진국을, 659년에는 양국을[2] 정벌하였다. 661년에는 성왕이 승하하면서 무덕왕이 즉위하였고 672년에는 일산국을 정벌하였다.[3] 678년에는 영산국과 전쟁을 하였는데 규모가 큰 소국연맹체였기에 쉽게 점령하기는 어려웠다. [4] 4차례에 걸친 전쟁[5][6][7][8] 끝에 영산국이 멸망하였다.[9][10] 709년 여송국이 세력이 강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여러국가를 통합하게 하였다. 이 때 여송국은 통합에 실패하였고 웅천국은 통합하였으나 불완전했기에 여송국은 719년 태평국에 의해 멸망하였고 웅천국은 725년 내분으로 멸망하였다.[11] 711년, 경무왕이 즉위하면서 국호를 태평도사화국으로 변경하고 진양 군[12]으로 천도하였으며 군호를 군주에서 대군주로 높혀 자신을 주변국을 세력권에 두었다.[13] 이후 웅천국이 망한틈을 노려 주변국가들을 멸망시켰다.

태평도사화국

태평도사화국이 핀시 열도를 통일한 시점부터 평사국이 건국도기 이전을 태평도사화국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는 북부지방을 제외한 핀시 열도의 대부분을 영토로 두었으며 주변국과의 교역도 증가하여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한편 북부지방에는 왜구가 침략을 일삼다못해 땅을 점령하여 부족사회를 구성하였다. 739년에는 왜구가 서해안을 침략하자 격퇴하였으며 744년에는 교역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경무왕은 이를 거절하고 대규모 토벌을 시도하였고 763년 왜구를 토벌하고 핀시 열도를 통일하였다. 770년에는 경무왕이 승하하고 경문왕이 즉위하였는데 이 시대에 해양술이 발달하면서 중국과의 교류 확대, 한반도 국가와의 교류, 동남아 국가와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태평국사에는"태평성대를 이룩하여 주변국에서 감히 넘보지못하였으며 귀화하는 사람들의 수도 증가하였다".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886년 애명여왕이 즉위하면서 상황은 악화된다. 이전에도 몰락할 조짐이 보이기는 했으나 크게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덕명왕이 승하하자 애명여왕이 대처를 못하면서 갑자기 몰락해버렸다.

각주

  1. 성산국이 몇차례 지원하기도 했다.
  2. 진국과 양국은 동군연합으로 같은 국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진양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3. 진국을 정벌하는데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는데 당시 진국은 초국, 일산국 등의 국가에서 지원했는데 소국연맹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유증으로 일산국이 쉽게 망했다고 볼 수 있다.
  4. 영산국은 진국과 같은 연맹이었으나 연맹이 태평국과의 전쟁을 하자 그 틈을 타 주변국가를 세력권에 편입하였다. 이 때 일산국을 공격하기도 했으나 태평국이 침공했다는 소식에 철군하였다.
  5. 1차 678년 ~ 679년
  6. 2차 679년 ~ 680년
  7. 3차 681년
  8. 4차 683년 ~ 685년
  9. 2차 전쟁 이후 영산국이 중앙집권화를 추진하자 일부 국가들은 자립을 선택하였고 지원을 중단하였다.
  10. 영산국 멸망 후 연맹은 여송국이 주도하다가 멸망하면서 웅천국이 주도하게 된다.
  11. 여송국이 주도했던 통합방식보다는 영산국이 주도했던 통합방식이 더 효과적이었으나 영산국은 반발을 억제하지 못해서 멸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2. 현재의 진주 시 일부와 양주 시 일부
  13. 이후 핀시 열도를 통합하고 군호를 군주로 격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