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지방자치단체 | 기초지방자치단체 | 비자치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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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시 | 자치구 | 행정동 | 통 |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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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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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 읍·면 | 행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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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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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시 | 읍·면 행정동 |
행정리 통 | |||
특정시 | 일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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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자치시 | |||||
부 | 자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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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 읍·면 | 행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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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구 | 행정동 |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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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국의 행정 구역(文洲國의 行政 區域)은 문주국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지역에서 1개의 특별시, 5개의 광역시, 1개의 특별자치시, 9개의 도, 1개의 부 이상 총 17개의 행정구역은 광역지방자치단체로 분류된다.
역사
- 부(部)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부(府)는 설치되지 않았으나 부(部) 폐지 이후 부(府)가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 도(道)를 설치하고 나서 부(府)를 폐지하였다가 부활하여 대도시에 설치하였다.
- 지역발전을 위해서 행경제(行京制)[1]를 시행하였다가 오경제(五京制)[2]를 시행하였다. 그 후 조선을 따라서 양경제(兩京制)[3]를 시행하였다.
- 부(府)를 폐지하고 시(市)를 설치하였으나 이후 광역행정구역으로 부활하였다가 현재 목단부만 존속하고 있다.
-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가 설치되었다.
행정구역 현황
연성특별시(連城特別市)
옛 지명과 행정구역은 연주부, 연주목 등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경기도청이 위치하였다가 광복과 동시에 경기도 양주군(현재 경기도 양주시)으로 이전하였다.
행정 구역
- 강남구(江南區)
- 강북구(江北區)
- 서구(西區)
- 중구(中區)
- 남구(南區)
- 성북구(城北區)
- 양천구(楊川區) : 바로 옆에 양주시 양천동이 존재함으로 내호동을 양천동으로 개명하지는 못하였다.
역사
- 1973년 중구가 강서구(江西區)와 성서구(城西區)로 개편되었다.
- 1986년 성서구와 강서구가 중구로 통합되었다.
- 1986년 강남구에서 지금의 양천구 지역을 편입하면서 남구가 분리 및 신설되었다.
- 2006년 남구에서 내호구(內湖區)가 분리 및 신설되었다.[4]
- 2006년 북구 및 성북구 일부를 합쳐 서구를 신설하였고 북구 및 성북구 잔여지역을 성북구로 통합하였다.
- 2012년 7월 1일 내호구가 양천구로 개명되었다.
장연광역시(長淵廣域市)
- 동구(東區)
- 서구(西區)
- 중구(中區)
- 남구(南區)
- 북구(北區)
역사
- 1990년 장연읍, 동면 일대가 장연시로 송천읍, 서면 일대가 해서시로 분리 승격되었으며 장연군이 용연군(龍淵郡)으로 개칭되었다.[5]
- 1991년 용연군 용연면이 용연읍으로 승격되었다.
- 1993년 해서시에 통합요청을 했으나 거절되었다.
- 1993년 장연시에 3개구가 설치되었다.[6]
- 1996년 해서시와 만해군의 광역시 통합승격 시도에 반발하여 시승격을 요구하였다.
- 1997년 장연시와 용연군이 장연시로 통합되었으며 동구와 남구가 동구로 통합되고 3개 일반구가 추가로 설치되었다.[7]
- 1999년 경기도 장곡시 파평구가 편입되었다가 경기도 장곡시로 환원되었다.
만해광역시(灣海廣域市)
행정 구역
- 동구(東區)
- 서구(西區) : 광역시 소재지이다.
- 남구(南區)
- 해서구(海西區)
- 광평군(光平郡)
역사
- 1994년 만해군 남면 광평리 일대에 광평면을 신설하였다.
- 1996년 만해군과 해서시가 만해부 에 관한 통합을 추진하였다.
- 2000년 만해군과 해서시가 통합하여 만해부로 승격되었다. 해서시가 해서구로 개편되었으며, 동면이 동구로 만해읍, 서면, 군내면이 서구로, 남면(군도리 제외)이 남구로, 광평면과 남면 군도리가 광평군으로 승격되었다.[8]
능강특별자치시(陵江特別自治市)
옛 지명 및 행정구역은 능강현, 능강군, 능주군, 능주목, 능강시 등이었다. 능강특별자치시는 2013년 1월 1일 능강특별자치시 설치에 관한 법률에 의해 부로 승격되었다. 모혜연의 묘가 모혜동(慕惠洞)[9]에, 모강우의 생가가 강우동(康優洞)에 위치해있다.
역사
- 부군면 통폐합 당시 능강면을 능강부로 승격하였고 교외지역을 능주군(陵州郡)으로 하였다.
- 1986년 능주군 모혜리 외 5개 리를 합쳐 모혜면을 신설하였다.[10]
- 1989년 모혜면이 모혜읍으로 승격되였다.
- 1994년 능강시와 능주군의 통합이 불발되자 모혜읍을 능강시로 이관하고 모혜동, 강우동으로 개편하였다.[11]
- 1995년 논의 끝에 능강시와 능주군이 통합하여 도농복합시인 능강시가 출범하였다. 시청을 모혜동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하였다.[12][13]
- 2006년 모혜동에 위치한 능강시청이 완공되어 이전하였다.[14]
- 2006년 지방자치법 개정에 따라서 능강특별자치시로 승격하였다.
경기도(京畿道)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수도 주변 지역이라고 하여 경기도라고 작명되었다. 도 소재지는 남양시(南陽市)이다.[15]
행정 구역
- 양주시(楊州市)
- 동구(東區)
- 남구(南區)
- 양천시(楊川市)
- 양산시(楊山市)
- 장곡시(長谷市)
- 북구(北區)
- 중구(中區)
- 파평구(坡平面)
- 남양시(南陽市)
- 남해군(南海郡)
역사
- 부군면 통폐합 당시 경기도 결성군과 앙골도 남해군을 경기도 결성군으로 통합하였다가 남해군으로 개명하였다.
- 1986년 내호동(현재 내호1~4동)을 연성부 남구로 편입하였다.
- 1995년 양주군 양주읍이 5개의 동으로 전환되면서 양주시로 승격되었다.
- 2012년 양주시 양천면 양북리, 동호리 일대가 양천동으로 승격되었다.
영평도(永平道)
영평시(永平市)와 평성시(平城市)의 앞 글자를 따서 작명한 행정구역이다.[16] 도 소재지는 하미시 영천동에 위치한다.[17] 하미시는 특이하게 설치된 행정 구역인데 영산군 2개시와 영천군 3개리를 합하여 하미면(下尾面)을 설치하여 영산군에 편입하였다가 하미읍(下尾邑)으로 승격함과 동시에 하미읍(河尾邑)으로 개명함과 동시에 영천군(永川郡)으로 이관하였다. 그 후 하미시로 승격되었다. 영천군은 주변 시군으로 분할 편입되어 폐지되였다. 여담으로 하미시와 영산군이 통합을 논의할 때마다 현재까지 5번이나 영평시(!?)에서 반대시위를 하여 무산되버렸다.
행정 구역
- 영평시(永平市)
- 평성시(平城市) : 도 소재지이다.
- 하미시(河尾市)
- 영산군(永山郡) : 부군면 통폐합 당시 영평군 교외지역에 신설되었던 행정 구역이다.
- 평해군(平海郡) : 부군면 통폐합 당시 평성부의 월경지에 설치한 행정구역이다.
역사
- 부군면 통폐합 당시 영평면을 영평부로 승격하고 잔여지역을 영산군으로 개명하였다.
- 1994년 영평시에서 삼영통합(三永統合)을 추진하였으나 무산되었다. 이 후 영천군은 하미시와 영산군에 분할 편입되어 폐지되었다. 영천군청은 기념관으로 쓰이다가 1997년 이후 영평도청으로 사용중이다.
- 같은 해 1994년 평성시, 하미시, 영천군, 영산군에서 영평시의 횡포를 보다 못하여 도청 이전을 추진하였고 1997년에 옛 영천군청으로 이전되었다.
- 2006년 도청을 평성시 동구청 본관으로 이전하였다.[18][19]
란성도(丹城道)
란주시(丹州市)의 앞 글자와 나성군(羅城市)의 뒷 글자를 따서 작명한 행정구역이다.[20][21] 도 소재지는 란주시 라란구에 위치한다.
행정구역
- 란주시(丹州市)
- 나성군(羅城郡)
앙골도(昻骨道)
도 소재지는 앙주시(昻州市)이다.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는 구 남해군과 구 서해군도 산하에 두고 있었다.[24]
행정구역
- 앙주시(昻州市) : 앙골부 소재지
- 미주시(美州市)
- 미양군(美養郡)
목단부(木丹府)
란승연의 난 당시 란승연이 최후의 거점으로 삼았던 목단성이 목단성구에 위치해있다.
행정 구역
- 남단시(南丹市) : 부 소재지이다.
- 서구(西區)
- 중구(中區)
- 목단성구(木丹城區)
- 북단군(北丹郡)
역사
-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는 목단군(木丹郡), 북단군(北丹郡))이었다.
- 부군면 통폐합 당시 목단군 목단면(木丹面), 단성면(丹城面)을 목단부로 승격하고 목단군을 목주군(木州郡)으로 개명하였다.
- 목주군 남면 일대에 남단부(南丹府)를 설치하였으나 폐지되었다.
- 목주군 남면을 목단부에 편입하였다.
- 1994년 목단시에 북구와 남구를 설치하였다.
- 1997년 목단시, 목주군, 북단군[25]이 통합하여 목단부로 승격하였다.(삼단통합 三丹統合) 목단시 남구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북구(단성동 제외)가 서구로, 북구 단성동(丹城洞)과 목주군이 목단성구로, 북단군이 중구와 북구로 개편되었다.
- 2006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자치시를 설치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남구가 남단시로, 북구가 북단군으로 개편되었다.[26] 옛 북구 산하 행정동 기준으로 북단동(구 북면)과 신북동(新北洞), 구북동(舊北洞)을 북단읍으로, 해안1동과 해안2동을 해안읍[27]으로 주북동(洲北洞)과 문주동(文州洞)[28], 문혜동(文惠洞)이 문주면(文州面)으로 전환되었다.
- 2012년 7월 1일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남단시에 있던 해안동 일부 (대안도, 만해도)가 서구 신해동으로 편입되었다.[29][30][31]
여담
- 목단성은 목단성구 단성동이 아닌 목단성구 단곡동(丹谷洞)에 위치한다.
- 나성군과의 합병을 시도하였으나 나성군에서 반발하여 무산되었다. 나성군은 목단부 편입을 하지않는 조건으로 목단성구와 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여담
- 란주시는 성씨가 가장 많은 본관이다.
- 나성군과 금성시는 성의 명칭이 그대로 지명이 되었다.
각주
- ↑ 정해진 수도가 없고 왕실과 조정이 이동하는 곳이 바로 수도가 되는 것이다.
- ↑ 평경(평성), 문경(란주 문경동 일대)→상경(란주), 동경(강평), 중경(능강), 남경(연성) 5경이다. 이후 남경은 옛 지명인 연주에서 연경으로 변경하여 명칭을 사용했다.
- ↑ 연성, 평성 2경이다.
- ↑ 양천구로 하려고 했으나 양주시 양천면(현재 양천동)이 존재하는 바람에 명칭을 내호구로 하였다.
- ↑ 명칭은 용연면에서 유래함
- ↑ 동구, 남구, 북구
- ↑ 동구, 서구, 중구, 북구
- ↑ 광평군이 최초로 광역부(광역시)에 설치된 자치군이다.
- ↑ 왜구 잔당들이 능주목의 어느 마을에 거주였고 마을이름을 혜연동으로 하려고 했으나 모혜연을 사모한다는 의미로 모혜동으로 하였다고 한다.
- ↑ 하미읍(현 하미시 하미동 일대)과 비슷한 경우이다.
- ↑ 능강시로 이관하여 통합하는 방식을 하기로 논의하였다.
- ↑ 능강시청을 쓰기에는 뭣하고 그렇다고 능주군청을 쓰기도 애매했다.
- ↑ 능주군청은 현재 능서출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 ↑ 능강시가 특별자치시로 승격하는 바람에 능강시청으로 존재한 기간은 고작 3개월뿐이다.
- ↑ 일제 시대에는 도청이 연성부에 위치하였다가 광복과 동시에 이전하였다.
- ↑ 이름만 보면 영평시를 따라서 작명한 것으로 잘못알기도 한다.
- ↑ 일제강점기 당시 평성시에서 영평시로 이전하였다가 1994년 평성시, 하미시, 영천군, 영산군에서 영평시의 횡포를 보다못하여 도청 이전을 추진하였고 1997년에 옛 영천군청으로 이전되었다.
- ↑ 별관은 옛 중구청사였다.
- ↑ 옛 도청은 영천출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 ↑ 유일하게 유래가 된 지명의 뒷 글자를 사용하였다.
- ↑ 나성군과 란주시는 라란국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란주는 라란국 시대부터 존재한 지명이다.
- ↑ 란주시 설치와 동시에 후에 라란읍으로 개명당했는데 왜 란주읍도 없는데 란주군과 란주읍을 개명하면서까지 시 명칭을 란주시로 하였는지 이해불능.
- ↑ 위치로 보나 생활권으로 보나 남구에 편입되는 것이 맞는데 란주군 당시에 편입되어 라란군을 거쳐 란주시에 통폐합된 지금까지도 라란구 소속이다. 뭐... 하북동도 중구가 아닌 남구 소속이니...
- ↑ 남해군은 부군면 통폐합 당시 결성군(決城郡)과 통합되어 그 명칭을 경기도 결성군으로 하였다가 경기도 남해군으로 개명되었다.
- ↑ 북안면(현 나성군 서북면) 제외
- ↑ 자치군은 이전에도 설치가 가능했으나 설치를 하지 않았다.
- ↑ 해안1동 일대와 해안2동 일대를 분리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해안면과 남면으로 말이다.
- ↑ 문주국(文洲國)과 한자가 다르다.
- ↑ 배편도 해안동에서 운행하고 거리상으로도 남단시가 가깝지만 지방도를 타면 해안동 주민센터가 신해동 주민센터 보다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 ↑ 위치상으로 보면 남단시에 편입 되는 것이 맞는게 아닌가 싶지만 교통문제로 이관되었던 거라 도로가 건설되었다면 현재까지도 남구였을지도 모른다.
- ↑ 애초에 서구 신동과 남단시 해안동을 통합하여 신설한 것이 신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