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은 기간이 일반적으로 미국과 소련은 그리고 그들의 협력자, 서부 블록과 동구권 사이에 지정학적 긴장이 조성된 시기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다. 역사학자들 그 시작점과 끝점에 시작된 일반적인 트루먼 독트린의 3월 12일 1947년 소련의 해산에 261991년 12월에 발표 걸쳐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없기 때문에 대규모 직접적으로 두 초 강대국 사이의 싸우고 있었는데[1]용어는 냉전지만, 그것들은 각각의 주요 지역 분쟁 대리 전쟁으로 알려진을 지지했다 사용된다. 갈등은 국제적 영향력이 이 두 초 강대국에 의해 북반구와 지정학적 이념적 싸움에, 그들의 일시적인 동맹과 나치 독일과 제정 러시아 일본을 상대로 1945년에 우승한 기반을 두고 있다.외에도 핵 무기 개발과 재래식 군사 배치로부터[2], 지배를 위한 다툼이 심리전 선전 캠페인, 스파이, 광범위한 수출 금지, 스포츠 경기에서 라이벌 관계와 우주 경쟁은 같은 기술 경시 대회 같은 간접 수단을 통해 표출되었다.
냉전과 제 3세계
기존의 냉전체제 개념으로는 20세기 후반 국제질서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구사를 구성하는데 한계가 크다.
미국과 소련의, 혹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이념적 제도적 팽창 경쟁이라는 냉전 혹은 냉전체제 개념은 역사적 사실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존재하지 않은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세력 팽창을 기도하고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가나 세력을 적극적으로 지지․지원한 것도 핵무기를 비롯하여 무기 경쟁을 일삼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두 나라는 경쟁만 한 것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문제들을 놓고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속내를 터놓고 협력하기도 했다. 물론 경쟁과 적대를 중심에 놓는다면 협력은 부차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 그리고 두 진영 사이의 대결이라고 선전되었던 베트남전쟁의 경우 양국의 협력은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더구나 미국과 소련이 다른 경우에서도 유사하게 협력했다면 냉전의 개념과 이미지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둘째, 제3세계의 ‘역사성’을 어떻게 이해할것인가? 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제3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세력 확대 대상으로서의 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3세계 국가들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추구하려는 주체적이고 공세적인 일종의 프로젝트였다.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빈국을 망라하는 제3세계는 다양한 역사적 경험과 이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배와 수탈을 경험하거나 제국주의 지배 이후 빈곤과 혼란을 공통으로 겪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에 공감했다. 냉전 시기는 16세기 이래 제국주의 역사의 마지막 단계에 속하며, 식민지를 경험한 세계 인민들이 독립과 탈식민지, 그리고 근대국가 건설 과업을 추진해간 과정과 맞물린 시기였다. 제3세계 앞에 놓인 모델은 소련식과 미국식, 그리고 그들 스스로 내세운 독자적이고 중립적인 것이었다. 특히 비동맹운동은 독립, 평등, 평화, 정의, 번영 등 유럽의 근대성 모델들이 담을 수 없었던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대의를 추구했다. 그러나 그 대의는 유럽과 여타 세계, 혹은 부국과 빈국 사이의 힘의 차이, 그리고 역사적 이상과 현실의 벽에 부딪쳐 좌절되고 말았다.
냉전체제 이해든 새로운 지구사 모색이든 기존의 강대국 중심, 혹은 냉전 중심의 접근방식으로는 문제가 있다.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와 탈식민주의, 소련식 혹은 미국식 팽창주의, 제3세계의 기획과 선택 등의 상호관계를 어떻게 ‘위계’ 지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