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무르 칸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등장 인물 및 세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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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무르 제1대 총리 나브친 다이바 Navchin Daiv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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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릴타이 의회 공식 초상화 | ||||
| 본명 | 나브친 다이바 (유진) Navchin Daiva (Yujin) | |||
| 출생 | 2006년 7월 2일 (20세) | |||
| 리무르칸국 에르데네트주 부미 | ||||
| 재임기간 | 제1대 총리 | |||
| 2025년 8월 1일 ~ 2025년 9월 10일 | ||||
| 서명 | ||||
| 학력 | 부미 인터네셔널 학교 (졸업) 에르데네트 대학교 (사진예술과 / 학사) | |||
| 종교 | 개신교 (장로회) | |||
| 소속 정당 | 무소속 | |||
| 약칭 | ND | |||
개요
제1대 리무르 총리
상세
테스게르 토르곤 시대의 총리이다. 또 리무르 역사상 첫번째 총리이자 여성 총리이다. 고전적 급진주의 성향을 갖고 있으며, 행정 중심인 급진적인 개혁과 매 순간 끊임없는 행정력이 필요하다 호소하며 이전 리무르 칸국의 봉건적인 관료제에서 탈바꿈하여 현대적인 관료제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리무르 백성들과 서민적인 접근을 통해 소통하며 새로운 인사 모집을 서민들 위주로 했다는 방식에서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기도 하였지만, 반면 너무 서민적이고 감정적이라는1 부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임시 총리 가자루긴 사마르 총리 퇴임 이후 타이틀을 많이 가진 총리이기도 하다. 가자루긴 사마르 총리는 극우 정당 "군사청년동맹"소속 이였던 것에 반해 나브친 다이바는 첫 무소속 출신 총리가 되었고, 군부와 일부 관료들의 지지를 받았던 가자루긴 사마르 총리에 반해 나브친 다이바는 완전 정치 루키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시 테스게르 토르곤 칸의 총애를 받았던 것과 더불어 여성 인구의 증가가 추진력이 되어 나타난 결과일 수도 있다.
"왕실에 충성이 아닌 나라에 충성한다."는 임시 총리 가자루긴 사마르 총리의 영향을 꽤나 받은 것 같다. 취임 전 가자루긴 사마르 총리가 다이바 총리에게 "칸님 비위만 맞추지 말고 싸울땐 싸워라." 라고 덕담 아닌 덕담을 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덕담을 잘 새겨들은 덕분일까 사마르 총리와 비슷하게 말이 거침없었다고 한다. 테스게르 토르곤 칸과 회의를 하거나 면담을 할 때면 항상 업무 내용만 나오면 행동이 저돌적으로 바뀌었다고 하며 논리적이고 감정 없이 서술하는 토르곤 칸과 달리 저돌적이고 핵심을 추궁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다이바 총리는 주변 관료들이 겁을 먹은 것 같다. 물론 업무 할 때에만 과격한 것 이였지 막상 쉬는 날에는 칸에게 상담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펼쳐진다.
이미지로 보면 여장부 같은 인상이지만 실제로는 막상 첫 임기 후 몇 일은 퇴임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기도 하였고 사임을 할뻔한 상황도 많은 인물이였다. 반면 토르곤 칸은 다이바 총리의 사임을 받아 줄 생각이 없기도 하였고 임기를 채운다는 생각으로 일 해보라고 다독여주기도 했다. 몸이 아픈 상황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맡은 책무를 완수하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전체적인 행정과 정부인사 개혁과 서민정책을 완수하였는데, 임기 마지막 날에도 "본인은 여태 한 일이 부족하다 생각했고 아쉽게 생각한다."라고 말한 것을 보아 첫 모습과 다르게 많이 성장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세간에서는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뉜다. 국가 근대적 행정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 된 반면 감정에 의해 감정적인 정치를 했다는 인물이라는 부정적으로 평가가 나뉜다. 하나 확실한 팩트는 다이바 총리의 근대적 행정 기반을 마련한 덕분에 행정통합 공약과 내부인사 정상화 공약을 내 건 2대 총리 내정자에게 영향을 준건 물론이고, 두 공약들 모두 다이바 총리로 시작된 봉건적인 관료제를 타파하여 이어진 개혁 공약이기 때문에 지금도 대중들에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이름 나브친 다이바(영문:Navchin Daiva)의 뜻은 리무르어 Navchin(잎이 많은)과 산스크리트어 Daiva(행운/신성)이다. 테스게르 토르곤 칸이 퇴임 이후 다이바 총리가 상황에 따른 고통에서 해방되고 행복하게 살라고 해서 지어준 이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