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프티스를 위한 대안 Alternative für Nephthy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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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
| AfN, 대안당 | |||||
| Je Maintiendrai | |||||
| 2026년 5월 6일 (빌럼당) | |||||
| 2026년 5월 12일 (네프티스를 위한 대안) | |||||
| 자유민주주의, 강경주의 | |||||
| 중도 ~ 극우 | |||||
| 빌럼 | |||||
| 노바 | |||||
| 마왕 | |||||
| 김정치, 강프라임, 완전 비행, 마르스 | |||||
| 라인 | |||||
| 김에르메스 | |||||
| 김정치 | |||||
| 완전 비행 | |||||
| 10석 / 16석 (62.5%) | |||||
| 3석 / 5석 (60%) | |||||
| Het Wilhelmus 6절 | |||||
| AfN Blue (#2a78ff) | |||||
개요
네프티스를 위한 대안 또는 AfN은 2026년 5월 네프티스 연합 국제정당제 도입에 따라 생긴 여러 가상국가들의 연합체적 성격을 갖는 정당이다.
역대 선거 결과
| 연도 | 선거 종류 | 공천 후보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 2 0 2 6 | 네프티스 제 1대 연합위원장 선거 | 강프라임 | 21표 / 8개국 (65.33%) | 당선 | 초선 |
창당 목적
▪︎ 빌럼당 (WP)
대표: 빌럼 — 대표국: 유니온 연방
지향점: 친 연합적 빅텐트를 기반으로 네프티스 연합을 비롯하여 카카오톡 가상국가 전반에 대한 신-질서 (New-order) 확립을 목표로 한다.[1]
자료
Mijn schild ende betrouwen,
Zijt Gij, o God mijn Heer,
Op U zo wil ik bouwen,
Verlaat mij nimmermeer.
Dat ik doch vroom mag blijven,
Uw dienaar t'aller stond,
De tirannie verdrijven
Die mij mijn hart doorwondt. — 2025 5/12 제정
영상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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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빌럼당 시기
2026년 5월 6일에 창당되었을때는 창립자 빌럼의 이름을 따 빌럼당(WP)로 창당되었다. 창당 당시에는 네덜란드색을 띄는 정당으로써 구성되었다.[2] 창당 당시 지도부는 제2야당(원내 제 3당)을 지향하며 정계에 조용하고 소소하게 참여하고자 하였다. 심지어 당시 지도부는 1당 독주 방지와 타 정당의 성장을 위해 고의적으로 당원 모집을 중단하는 등의 조치까지 시행하였다.[3][4] 그러나 이러한 기조는 5월 12일에 제 1차 전당대회에서 완전히 뒤집혔다.
제 1차 전당대회
빌럼당의 당원들은 초반에 작은 정당을 지향하였으나, 소속되지 않은 국가(혹은 국가조차 아닌 단체) 가 경고에도 불구하고 무단홍보를 강행하여 사무부가 마비되는 상태가 지속[5]되자 네프티스 관료가 많았던 빌럼당 지도부는 정치적인 방향의 해결이 절실하다 판단하고 제 1차 전당대회를 개회한다. 이 전당대회에서 결정된 것들은 당의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였는데. 당명이 네프티스를 위한 대안 으로 변경된것 또한 제 1차 전당대회때 결정되었다. 이외에도 당가 영상과 당 로고 등을 제작하고, 당의 관직과 인사안이 통과되었으며 네프티스 유신 10개조 강령 등을 채택하며 당의 방향이 결정되었다.
1대 연합의회 선거 시기
국제정당제가 안정되자 네프티스 연합 지도부는 선거관리위원회를 조직하여 민주적이고 공정하게 연합 고위직을 선출하고 연합의회를 구성하여 안건을 검토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네프티스 연합 차원에서 네프티스 제 1대 연합위원장 선거가 시작되었다. 제 1차 전당대회에서 정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의한 네프티스를 위한 대안의 지도부는 당대표가 본방에서 직접 유세를 뛰거나 그리스, 프랑스 등의 대형 카국의 표를 이끌어내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였고, 선거 준비 기간 중반부터 대립구도가 세워진 통일과전진당 당수 에스티가 네프티스 회원국 투표 일자를 헷갈리는 바람에 국가표가 네프티스를 위한 대안으로 쏠리며 65.33%라는 기록적인 득표율을 거두며 연합의회에서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했다.
1대 연합의회 선거 이후
연합의회 선거 이후에도 마르스, 완전 비행등의 인사를 대거 영입하여 연합의회 의원으로 채용[6]하는 동시에 차기 선거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1차 전당대회 이후에 늘어난 당 규모에 비해 작은 조직으로 인해 6월 1일 제 2차 인사이동[7]을 시행하였는데, 이는 당 조직력을 유지하고 당의 활성도를 다음 선거 전까지 유지하기 위함으로 사료된다.
여담
각주
- ↑ 현재 신질서론은 1차 전당대회 이후로 거의 언급되지 않는중이다.
- ↑ 당가와 표어가 네덜란드의 국가와 국호를 사용하는것도 이 시기의 잔재이다.
- ↑ 결과적으로 이 정책은 국제정당제 초반에 에스티의 통일과전진당에 활성 인원층을 조금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에스티가 불참한 국가선거가 아닌 개인선거에서 조차도 우위를 점한것을 보면 옳은 조치였을수도 있다.
- ↑ 이 부분은 현재 무명의 활약으로 완전히 종식되었다.
- ↑ 네프티스 연합의회는 대한민국 총선거의 비례대표와 같이 당의 의석 수 만 배정받으며, 해당 자리의 의원은 임명하거나 교체할수 있다.
- ↑ 이 과정에서 당을 선거 중심이 아닌 행정 중심으로 개편했다고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