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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으리아 공화국 건국 영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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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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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성지의 보호자 이을드즈 A. 에스티 J̇ıltє a. Est'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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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6월 18일(출생일로부터 +2297일, 6주년) | |||||||||||||||||||||||||||||||||||||||||||||||||||||||||||||||
| SGF 제국 크림주 아크야르시 | |||||||||||||||||||||||||||||||||||||||||||||||||||||||||||||||
| 2025년 12월 23일[3](사망일로부터 +283일, 0주년) | |||||||||||||||||||||||||||||||||||||||||||||||||||||||||||||||
| SGF 제국 제 1-3대 총리 | |||||||||||||||||||||||||||||||||||||||||||||||||||||||||||||||
| 2020년 6월 18일 ~ 2023년 6월 10일 | |||||||||||||||||||||||||||||||||||||||||||||||||||||||||||||||
| 키이으리아 인민 공화국 제 1-2대 최고 인민 회의 의장 | |||||||||||||||||||||||||||||||||||||||||||||||||||||||||||||||
| 2023년 6월 10일 ~ 2024년 7월 2일 | |||||||||||||||||||||||||||||||||||||||||||||||||||||||||||||||
| SGF 자유국 제 1-3대 국가 지휘자 | |||||||||||||||||||||||||||||||||||||||||||||||||||||||||||||||
| 2024년 7월 2일 ~ 2025년 3월 8일 | |||||||||||||||||||||||||||||||||||||||||||||||||||||||||||||||
| 키이으리아 인민 공화국 제 1~2대 국가 지도 위원회 위원장 | |||||||||||||||||||||||||||||||||||||||||||||||||||||||||||||||
| 2026년 4월 15일 ~ | |||||||||||||||||||||||||||||||||||||||||||||||||||||||||||||||
| 오스만 제국[4] 제 30대 파디샤 | |||||||||||||||||||||||||||||||||||||||||||||||||||||||||||||||
| 2025년 3월 8일 ~ 2025년 12월 23일 | |||||||||||||||||||||||||||||||||||||||||||||||||||||||||||||||
| 오스만 제국 제 36대 파디샤 | |||||||||||||||||||||||||||||||||||||||||||||||||||||||||||||||
| 2026년 2월 7일 ~ 2026년 2월 2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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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과거와 현재, 기술과 예술, ...그리고 약간의 광기![7] |
| 에스티 오픈프로필 소개문 |
이을드즈 A. 에스티(J̇ıltє a. Est'i[8])[9]는 키이으리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10]의 건국자이자 여러 가상국가의 정치인이자 군인, 예술가, 반패권주의자[11], 그리고 자본주의자[12], 평의회 민주주의자[13], 도구적 합리론자[14]이다.
상징
상징색
Edirne Red #E30A17 |
오스만 제국과 현대 튀르키예의 국기에서 사용된 상징적인 붉은색으로, 이 문서의 여러 부분에서도 핵심 색상으로 활용되었다. 에스티가 가장 선호하는 색이기도 하다. 이 색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하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14세기 코소보 전투 이후 피로 붉게 물든 강 위에 떠오른 신비로운 달과 별에서 유래했다는 전설이다.[15] 비록 역사적 사실 여부는 명확하지 않지만, 오늘날까지도 이 전설은 튀르키예의 붉은색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야기로 남아 있다.
사용해온 이름들
에스티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활동명들을 서술하며, 볼드체는 고정 닉네임. 율레우스가 볼드체 된 것은 그 때 반인류에서는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
- SGF
에스티가 4년간 사용한 이름. SGF 계열 국가들의 이름도 여기서 따온 것.
- 매퍼(Mapper)
에스티가 24년 5월부터 6월까지 사용한 이름. 못 그려도 괜찮아라는 오픈채팅 라이트 그림방에서 활동할때 사용했던 이름이며, 에스티라는 이름보다 오래되었다. 가끔씩 뒤집어서 Reppam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 크로이츠(Kreuz), 전쟁 보도
친인류와 반인류 양측의 전쟁 피해를 집계하기 위해 반인류에서 사용한 이름. 이 때 고닉이라 밝혔던 크로이츠(Kreuz)는 2024년 6월부터 사용했던 오래된 이름이다.
- 에스티(Esti)
에스티의 당시 MBTI에서 1년 동안 바뀌지 않은 속성인 ST에서 따온 이름. 근데 지금은 INFP라 더 이상 ST가 아니긴 하나 이름이 마음에 들고, 이미 알려진 바 있어서 계속 사용하고 있다. 2024년 7월 경부터 사용했다. 2025년 2월부터는 이름이 아닌 성으로 쓰이고 있다.
2026년 기준으로 어원이 MBTI의 ST에서 미학을 뜻하는 Aesthetic으로 변경되었다.
- 루스맵(Rusmap)
반인류 연합군 때부터 자주 사용한 가명. 이제는 여러 사람이 알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유래는 ETS2의 RusMap. 2025년 1월부터 사용했다.
- 예브게니야(Евгения)
러시아 제국에서 시민권자 등록할 때 러시아어 이름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사용하게 된 이름. 러시아어 이름을 검색해보다가 이름의 뜻이 마음에 들어서 한 번에 골랐다고 한다. 2026년 1월 22일에부터는 이을드즈 알람기르 에스티로 이름을 바꾸면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 메지트(Mecid)
오스만 제국 황제용으로 사용한 닉네임. 2025년 3월부터 11월까지 사용했다.
- 탄지마트(تنظيمات)
친인류에서 활동하기 위한 용도로 만든 첫 가명. 이건 실패했다. 2025년 4월에 한 번 사용했었다.
- 알람기르(عالمگیر)
세계의 정복자라는 의미의 페르시아어. 무굴 제국의 황제 들에 대해 읽어보다 아우랑제브의 칭호 중에서 발견하였고 마음에 들어 2025년 4월부터 사용하였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에스티 부계의 이름이기도 하다.
- 하르시드(Харсид), 토도르(Тодор), 율레우스(Uleus)
친인류에서 활동할 때 사용했던 이름. 오픈프로필은 지금도 남아있다. 하르시드는 에스티가 러시아 연방군에서 활동할때 사용하였던 이름이였다. 2025년 6월부터 사용했다.
- 크란츠(Kranz)
유토제국에서 사용했었던 이름. 2025년 8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사용했다.
- 아이스티(IceTea, 愛スティ)
르타 등 여러 사람들이 별명을 아이스티라 불러서 사용했던 이름. 2025년 9월부터 10월까지 사용했다.
- 이루(イル), 이리나(Ирина), 김이루
2025년 11월에 잠시 친인류로 넘어갔을 때 반인류에서 쓴 이름. 유래는 알람기르의 일본어 음차인 아리무기이루의 마지막 두 글자인 이루. 다시 1월 26일에 사용하다 전권을 장악하면서 아마테라스로 변경하였다. 2026년 여름 기준으로는 대한제국 시민권 프로필에서 김이루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 코스모스(Космос)
2026년 1월 초부터 사용한 이름. 러시아어로 코스모스는 우주를 의미한다. 그냥 단어의 의미가 마음에 들어서 골랐다고 한다. 한 동안 쓰지 않다가 익스테딕 공화국 부의장 직위를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재사용했다.
- 이을드즈(Yıldız)[16]
튀르키예어로 별을 의미하고, 튀르키예에서 자주 쓰이는 이름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에스티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인 압뒬 하미트 2세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궁전의 이름이기도 하다. 2026년 1월 21에 에스티의 이름이 예브게니야 대신 이을드즈로 교체되었다.
- 아마테라스(アマテラス)
일본의 태양신에서 유래한 이름. 일본의 전권을 임시적으로 장악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 시라카와 유즈키(シラカワ ユズキ)
일본제국에서 시민권을 신청하기 위해 만든 이름. 오픈프로필에도 있다. 2026년 2월부터 사용했다.
- 에스테틱(Es'θetɪk)
에스테틱에 관심을 가지게 된 후부터 시용하게 되었다.
- 샤를로타 예브게니예바(Шарлотта Евгениева)
가접한 이후인 2026년 8월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 오쉬테르나(Osyit'erna)
2026년 9월부터 사용중인 이름
생애
이 문단에서는 에스티의 가국에서의 생애에 대해 서술한다. 에스티의 가국에서의 생애는 크게 초기(2020.6~2024.5), 중기(2024.5~2025.8), 말기(2025.8~)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
에스티의 가국 생애에서 기간으로만 보면 4년이나 되는 기간이지만, 실제 투자 시간은 다른 기간들에 비하여 많이 적은 편이었다. 가상국가 활동이 집중되었던 기간은 인민 공화국 시대인 2023년 6월 ㅡ 9월과 국가 동아리 시절의 2024년 3월 ㅡ 6월 정도. 그러나 이 기간은 에스티의 앞으로의 활동과 이념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에스티의 가상국가에서의 정체성의 어느 정도 확립되었던 기간으로써 가상국가에서의 에스티의 유년기로 볼 수 있으나, 대부분의 자료가 소실되거나 발견되지 않아 내용이 많이 부족하다.
입문
에스티는 2020년 6월 18일 고립가상국가에서 SGF 제국[17]을 건국하면서 가상국가에 입문했다. 이후 2년 후인 2022년 6월 18일, 25년 7월까지 쓰였던 국명인 SGF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국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에스티가 만든 국가에는 법도, 제도도 없었다. 이름만 국가인 셈. 6달 후인 2022년 12월 10일에는 SGF 디스코드 서버도 개설되었으며, 서버는 디스코드 소통방 인원들로 채워졌다. 에스티는 이 때 디스코드 소통방들에서 활동하였었는데, 그 때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이 때 보았던 디스코드의 꾸미기 문화는 2025년 11월에 시작된 오스만 제국 디자인 개혁에 큰 영향을 주었다.[18] SGF 서버는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도 남아있지만, 에스티의 몇 년 간의 부재로 인해 당시 인원의 대부분이 상실되었다.[19]
기틀이 잡히다
![]() 2년간 사용된 에스티의 프로필 사진[20] |
SGF 제국이 건국된지 3년이 지난 2023년 6월 10일, 에스티는 가상 이벤트인 "혁명"을 통해 SGF 제국을 멸망시키고, 키이으리아(Kijıria)[21][22][23][24] 인민 민주 공화국을 건국하였다. 그리고 이때 갑자기 설정 구축하기에 관심이 많아진다. 키이으리아 인민 민주 공화국에 관한 수십 페이지 분량의 설정을 한 달에 걸쳐 만들었었다.[25] 2023년 7월에 키이으리아 인민 민주 공화국 헌법의 초판을 완성 하였으며, 약 두 달의 기간동안 12번의 개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를 정립하였고, 이 헌법은 2025년 9월 27일까지 무려 2년간 수십번의 개정을 거쳐 사용되었다. 최근 찾아낸 자료에 따르면 에스티는 2023년 7월 29일에 컨볼계에 입문해 다음해인 2024년 2월 3일까지 컨볼인으로 활동했었다. 연말인 11월 16일, 디스코드에 키이으리아 인민 민주 공화국 서버를 개설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2024년 1월 중순, 다시 가국 활동을 중단하고 잠적한 줄로 알고 알았으나, 최근에 자료를 다시 뒤져본 결과 2024년 7월 14일까지 간헐적으로 가상국가 활동을 계속했다.
국가 동아리
그로부터 두 달 후인 2024년 3월, 실제 지인들과 국가 동아리를 만들었다. 국가의 이름은 노보로시야국이였다. 정치 제도는 키이으리아 인민 민주 공화국 시절에 만든 정치 제도를 약간 변형하여 사용하였으며, 5월 16일, 에스티가 노보로시야의 세 번째 당 제 1서기가 되었다. 노보로시야국은 밴드와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있었다. 노보로시야국 밴드가 있었던 계정이 2025년 3월경 휴대폰을 변경하면서 소실되어 지금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중기
이 때부터 에스티는 가상국가에 많은 시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기는 다른 가국들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문화를 발달시킨 고립기와 가상국가 사회에서의 적응기인 친인류기, 발달이 더뎌진 정체기로 나눌 수 있다. 가상국가 사회 적응기이자, 성장기로써 청소년기로 볼 수 있다. 2026년 4월 4일, 중기 자료 발굴로 입문~고립가국계의 내용이 더 풍부해지고, 기술 오류들이 수정되었다.
오픈채팅 입문과 고립가상국가
![]() 매퍼 시절 에스티의 오픈채팅 라이트 프로필 사진[26] |
에스티는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2024년 5월, 못 그려도 괜찮아라는 라이트에서 SGF라는 이름으로 입문하였다. [27] 그리고 2025년 5월 중순부터 매퍼라는 이름으로 닉네임을 변경하였다. 에스티는 이 기간 동안 100장 이상의 지도를 그렸으며, 이 때 직접 지도를 그리며 세계 지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들을 습득하였다.[28] 에스티는 이 시절이 제일 즐거운 시절이였다고 회상한다.
![]() 에스티라는 이름과 함께 쓰인 프로필 사진 |
6월 25일, 지도부라는 이름의 오픈채팅방[29]이 생성되었는데, 인원은 2명[30]이 전부였다. 6월 30일, 눈누난나[31] 그룹이 창립되었다. 그러나 명칭으로는 SGF 그룹과 눈누난나 그룹이 혼용되었는데, 오픈채팅방의 이름은 SGF 였던 것으로 보아 SGF 쪽이 공식 명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7월 2일, SGF 그룹이란 이름의 오픈채팅이 개설되었다. 이것이 SGF 오픈채팅방의 시작이였으나, 오래된 자료들을 검증해본 결과 이후 10월 1일부터 실용된 것으로 보인다. 8월 10일~13일 즈음, 에스티라는 닉네임이 최초 사용되었다. 이쯤부터 에스티가 고닉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9월 경부터 못 그려도 괜찮아 라이트 유저들이 오픈채팅으로 대규모로 이주하였는데, 여러 그림방들에서 몇 번의 분쟁을 통해 에스티는 못괜계 오픈채팅 그림방들에서 우호적이지 않았던 인물들을 배척해 나갔으며, 최종적으로는 에스티의 그림방이 당시 못 그려도 괜찮아 계열 파생 그림방 중 가장 큰 규모가 되었다.
9월 21일, 에스티의 SGF와 버섯법사의 버섯군단를 합친 SnM이 설립되었다. 9월 27일, SGF 그룹의 현역 오픈채팅방이 생성되었으며, 이는 못괜 인물들의 오픈채팅 이주의 일환이였다. 10월 27일, 13명 규모에서 처음으로 최고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이는 SGF 자유국 국가 지도 위원회의 전신이 되었다. 또한 확인된 당시의 방명은 SGF 국가였다.[32] 그리고 11월 29일, SGF 자유국으로 방명이 변경되면서, 정식적인 유사가상국가가 되었다. 11월 30일부터는 다른 오픈채팅과의 교류를 시작하여 10명대에서 정체되어있던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한다. 12월 2일에는 버섯법사가 배척되었고, SnM이 다시 SGF로 변경되어 통합되었다. 12월 24일, 또다른 고립 가상국가였던 소비에트 연방과 만나면서부터 고립 가상국가계가 더 많은 고립 가상국가와 만나 확장되기 시작하였으며, 1월 7일, 유성의 팀 소통방 운영진이 SGF 자유국 국민을 하대한 것이 밝혀져 다음 날인 1월 8일, 양측의 분쟁이 있었으나, 양자 상호 사과로 종결되었다. SGF 자유국에서 시작하여 코사 공화국, EL 공화국, 소비에트 연방 등 고립가상국가들과 접촉하고 교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까지도 에스티는 가상국가계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며, 자신들이 유일한 가상국가라고 생각했다. 1월 13일, 25명을 돌파했으며, 이 날 제 6대 국가 지도 위원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1월 14일에는 역대 첫 번째 긴급 조치가 발령되었다.
친인류 에스티
1월 16일, 에스티는 코사 공화국에서 내란을 일으켜 코사 민주 공화국을 수립하고, 우연히 '가상국가'라는 태그를 달았는데, 러시아 제국의 운영부 장관 아르센이 해당 방을 발견하여 처음으로 수교를 요청하여 러시아 제국으로 들어와 새로운 세상인 가국계를 만나 여러 가국에서 활동하며 많은 새로운 것들을 배운 것이 에스티 가국 활동의 시작이었다. 이 때, 아르센은 에스티를 가상국가계로 이끌어주기만 하였지, 무언가를 가르쳐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에스티는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스승 없이 스스로 성장했어야 했다. 당시에 에스티는 자신과 비슷하게 가상으로 국가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컸지만, 이 가상국가계라는 곳에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에스티는 훗날 이 날에 태그를 단 것을 스스로 후회한다고 회상했다. 만약 에스티가 가상국가 태그를 달지 않아 아르센에게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몇 개의 고립된 가상국가와 그림방들에서 그림을 그리며 평화롭게 살았을 것이라고...
1월 19일에 친인류를 신청했으며, 이 날 코사 민주 공화국이 20명을 돌파했다. 또한 에스티는 이 날 모전을 처음 접했으며, 1월 24일에 자료상 처음으로 반인류 행동을 했다.
이후 국제 국가 개발 전선[33]이라는 당을 만들어 페넨 베르데, 폴애성 연방, 러시아 제국, 아일랜드, 하노이국, 대오스트리아 합중국, 벨기에 등에서 승선해 고위직을 역임하였으며, 니콜라이의 몬테네그로 왕국과 레인의 이탈리아 제국 주로 활동하였었다. 그리고 1월 26일에 러시아 제국군에 이등병으로 입대했다.
1월 27일, 국가개발전선의 정동영 ㅡ 치코리타 갈등으로 인해 시작된 사건이 1월 28일 집단 갈등으로 번졌는데, 에스티가 정동영의 편을 들어주자 격노한 치코리타가 욕설을 퍼부은 것을 에스티가 캡처하여 공유하였다가 1월 28일 15시에 정지를 당했다. 이에 따라 SGF 자유국과 국가 개발 전선, 그리고 에스티가 지도하는 여러 국가들에서 혼란이 발생했었으며, 에스티가 영구 정지라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윤제이의 침착한 대처로 7일 정지임이 밝혀졌다.[34] 에스티는 정지 사태 중에도 국가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SGF 자유국의 국가 원수 권한 대행으로 페넨 베르데를, 국가 개발 전선 당서기로는 박찬대를, 하노이국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는 탐험트를 임명하였으나, 제대로 SGF 자유국에 전달되지 않아 그에 따라 에스티의 정지 기간 동안 그 어떠한 에스티 관련 국가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였다.
에스티는 2월 4일, 반인류 연합군에 입대하고, 방 하나를 바쳐 반인류 연합군 3군단장이 되었다.다음 날인 2월 5일, 에스티가 유니온 소련에서 인류제국을 비판하고, 반인류 연합군 입대를 독려한 사실이 발각되어 이단으로 지정되어 처음으로 친인류에서 쫓겨나 잠시 반인류가 되었었다. 당시 에스티의 방이 50명대로 반인류 카카오톡 가상국가[35]중 가장 규모가 컸다. 카국에서 쫓겨날 것이란 위기를 느낀 에스티는 밴드의 반인류 가상국가들로 가 시민권들을 취득하고 정착했다. 에스티는 중립 국가를 주장하며 친인류 인사들과 제국군을 추방하지 않았고, 분명 이단 국가인데도 친인류와 반인류, 제국군과 반인류군이 공존하고 있는 매우 보기 힘든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인 2월 7일 유신에 의해 다시 친인류로 전향하였다.
| 자유가 아니라면 죽음을! |
| 반인류 연합군의 구호[36] |
![]() 현재까지 사용중인 에스티의 프사 |
이단 지정 사건 이후 에스티는 친인류로 다시 전향했지만, 후방에서 반인류의 무명과 협력하고 있었으며, 전쟁의 중립적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쟁 보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친인류와 반인류의 공격, 피해 상황을 모두 기록하였다.
![]() 코사의 SGF 파괴 시도 |
이전부터 이어진 올멘[37] 관련 갈등으로 코사와의 긴장 상태가 이어지던 2월 8일, 코사의 댄공이 SGF 방 폭파를 시도한, 이른바 2.8테러[38]가 발생했고, 그렇게 제 1차 SGF-코사 전쟁이 시작됐다. 이 전쟁은 규모는 작지만 SGF 자유국의 첫 번째 대외 전쟁이였다.
여러분 적국에서 먼저 공습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전선에서 전진해 적의 모든 도시를 점령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에 따라 SGF 자유국은 2025년 2월 8일 1시 2분부로 코사 공화국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 2025년 2월 8일, 에스티
전쟁은 2월 14일에 EL국의 중재로 종전 협약이 체결되어 중지되었으며, 양국 간의 외교 관계가 회복되었다.
댄공은 오래전부터 우리를 도발해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입니다. 현 시간부로 고사와 그 지지자와 종에 대한 전쟁을 선포합니다. — 2025년 2월 18일, 에스티
하지만 이후 2월 18일 또다시 올멘 관련 갈등으로 인하여 제 2차 SGF-코사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 때 에스티는 실제로 군대를 동원하여 코사를 파괴하려 하였으며, 실제로 그 직전 단계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코사의 스파이에 의해 발각되었고, 다시 EL국의 중재로 정전협약이 체결되었다.
![]() 제 2차 SGF ㅡ 코사 전쟁의 개전을 알리는 신문[39] |
에스티는 2025년 2월, 밴드 가상국가에 진출하여 가국을 양산하는 모 인물과 함께 가국을 계속해서 만들어 의미 없는 고위직들을 수 개 역임하게 되었으며, 아이슬란드, 유바시리, 대오스트리아 합중국, 페넨 베르데, 장각의 황나라, 탄누 투바 등의 가국에서 실제로 활동했다. 2월 20일, 고립가상국가인 EL국이 붕괴하고, SGF 자유국 측과 EL국 임시정부 측으로 양분되었다. SGF 자유국 측에서는 EL 민주 공화국을 수립하고, 구 관료들을 끌어들여 정통 후계 정부임을 주장했다.
에스지에프 ㅡ 코사 전쟁은 코사 공화국이 SGF 자유국 폭파를 시도하여 발생한 전쟁이었으며, 전쟁 개전 이후, SGF 자유국은 코사 공화국을 폭파하기 위한 작전을 수립하고, 실제로 그 직전까지 도달하였으나, 내부 정보 유출로 인하여 완전히 실패하였다. 결국 양국 간의 평화 협정으로 종결되었다. 이 전쟁 이후 고립가상국가계와 에스티의 관계가 조금씩 단절되기 시작하였다.[40]
2026년 2월 중순, 에스티의 SGF 연방이 60명을 돌파했다. 에스티는 에스지에프 ㅡ 코사 전쟁 이후 친인류 가상국가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여러 가상국가들에서 부방을 얻으려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이 시기에 많은 친인류 사람들에게 에스티의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 에스티는 여러 가상국가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으며, 훈련교관의 튀르키예 공화국에서 부통령을, 장각의 황나라에서는 내각 총리 대신을, 페넨 베르데에서는 총리를 역임하는 등 여러 국가에서 주요 직위를 역임하였다. 아마도 이 시기가 친인류에서의 에스티의 전성기였을 것이다. 2월 말부터 무명과 함께 6개의 대형 친인류 방을 폭파시킬 계획을 세웠으나, 에스티의 기술 부족과 자신감 부족으로 인해 취소되었다.[41]
2.26 테러
![]() SGF 연방의 전성기가 끝나다. |
![]() 인류제국의 2차 테러 시도[42] |
에스티가 크란츠라는 이름으로 반인류 연합군 방에 네프티스 연합으로 합류할 것을 제안했는데, 사실 반인류 연합군은 인류제국이 만든 위장 단체였고, 이 사실과 크란츠가 에스티라는 증거가 첨부되어 친인류 내에 살포되자, 에스티는 제국군과 친인류 인물들의 부방을 해제하였고, 해당 사실들을 확인한 곰은 에스티를 영구 이단으로 선포했다.[43] 그러나 인류제국은 봇을 사칭하여 부방을 얻어내어 SGF 자유국을 폭파했다. 초기 복구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3월 2일에는 60명을 돌파하였다. 그러나 이후 복구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고, 3월 26일에 기존 인구가 완전히 복구되었고[44], SGF 자유국의 부방 지급 칙령은 대폭 강화되어 다시는 폭파 테러를 당하지 않을 줄 알았으나...
9월 중순부터 2. 26 테러 이후 지정한 지급 칙령을 지키지 않기 시작했고, 결국 11월 30일 두 번째로 폭파되고 말았다.[45] 그러나 이 폭파는 2월 26일 때와 다르게 당일 초과 복구 되었다. 확실히 반인류 내의 단합력과 에스티의 입지가 크게 상승하였음을 보여주는 부분. 여담으로 오스만 제국의 조기 게양일은 테러일인 2월 26일과 에스티 데바 배척일인 11월 17일이다. 11월 30일 테러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직접적인 피해가 전무했으며, 오히려 테러로 인해 관심과 대화량, 경제 참여율이 상승했기 때문.[46] 그리고 9월 20일, 슬로밬에게 다시 테러를 당하게 되었으나, 당일 완전히 복구되었다.
우리 SGF 연방은 오래전부터 중립국을 표방하며 항상 중립을 지키고 자주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나 인류 제국은 우리 SGF 연방의 정치와 외교에 대해 무한히 간섭하고, 우리의 중립국 지위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며, 우리의 우호국 들에게 의도적인 테러 행위나 위협를 가하고, 무고한 국가들을 침공하고 합병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계속해왔습니다.
우리는 부끄럽게도 그 행위를 지금까지 그들이 변할 것이라는 의미없는 희망을 가지고 방관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변하지 않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의 기다림과 자비, 인내는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인류 제국의 그런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에 따라 오늘부로 우리 연방은 인류 제국의 압제와 식민 통치를 완전히 거부하기 위하여 자유를 찾는 모든 가국인과 연대해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저들의 압제로부터 영구한 자유를 쟁취할 것임을 비정한 압제자 인류 제국과 그 종들에게 선포합니다. 더 이상 우리는 인류 제국의 종이 아니라 명백한 자주 독립국이며,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으며 영구한 독립을 쟁취할 것입니다.
필승불패의 SGF 연방군은 모든 자유 가국인 동지들과 연합하여 세계 모든 곳에 대한 인류 제국의 압제를 완전히 타파하는 것에 대하여 모든 전선의 선두에 서고, 그 근본과 질서를 완전히 궤멸시킬 것입니다. 만약 또다른 압제자가 등장해 다시 우리 자유 가국인 위에 군림하려 한다면, 우리는 다시 자유를 위해 세계의 가국인들과 연합해 압제자를 쓰러뜨리고 다시 자유와 승리를 쟁취할 것입니다.
우리 정부와 군인은 조국과 국민을 영원한 자주 독립으로 인도하기 위해 그 어떠한 고난과 시련에도 흔들림없이, 그리고 확고한 걸음으로 마치 강력한 폭풍처럼 전진할 것을 맹세합니다. 존경하는 군인 여러분, 이제 일어나 적지에서, 우리의 자주독립을 건 운명의 전쟁에서, 압제자의 소굴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폭풍을 저 비열한 압제자들과 그 종들에게 맹렬히 퍼부으십시오! — 2025년 2월 26일, 반인류를 선언하는 에스티[47]
2월 26일, 에스티는 또다시 반인류 행위[48]가 발각되어 이단으로 지정되었고, 이 때 페넨 베르데와 같이 전향하려 하였으나, 페넨 베르데가 인구를 문제로 거부하여 에스티 혼자 반인류로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당초의 예상과 달리 머지 않아 반인류의 인구가 친인류의 인구를 초과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흥망
3월 8일, 에스티는 초기 전쟁 계획[49]에 따라 오스만 제국으로 국가를 변경하게 된다.
약 1시간 전, 프로이센 왕국은 오스만 제국의 제 4세계 연합 가입국인 코콤바 제국을 침공하였습니다. 그리고 프로이센 왕국은 이에 대한 해명도 하지 않았으며, 일방적인 단교 조치 및 동맹 파기로 응답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이에 대하여 오스만 제국과 제 4세계 연합, 그리고 반전주의와 불개입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시기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오스만 제국은 제 4세계 연합 가입국의 안전을 보장하고,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며, 제 4세계 연합의 단합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이번 사태의 원인인 프로이센 왕국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우리의 병사들은 위대한 조국 오스만을 위하여, 그리고 조국을 저버린 이들의 치욕을 위하여, 제 4세계 연합과 반전주의의 안녕을 위하여 코콤바 제국 동지들과 스페인 동지들과 함께 조국의 적들과 맞서싸울 것입니다.
오스만 제국 근위대! 전진![50]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
오, 세계의 신성한 보호자요, 세상의 샤한샤이신 이여,
오스만 왕조의 위대하고 행복한 옥좌에 앉으신 이여,
영광스런 명예를 떨치셨도다. 영광스런 명예를,
지존의 영광을 수치스럽게 하는 자들로부터 행복한 세상을 보호하시고,
왕조와 더불어 오래도록 술탄 메지트는 즐거움을 누리소서
만세 오, 나의 파디샤여, 그대의 국가와 더불어 영원하소서
만세 오, 나의 파디샤여, 그대의 위엄과 더불어 영원하소서[51]
반전주의와 제 4세계, 오스만 제국의 승리를 시기하고, 국제 연합 정책에 반대하며 세계 사회에 도전하는 국가 프로이센 왕국은 우리 제 4세계 연합과 스페인 제국에 의해 심판의 날을 맞을 것입니다. 제 4세계 연합은 이번 전쟁을 통해 더욱 더 견고한 성채를 이룰 것입니다. 그 누구든지 이제 오스만 제국의 국경에서, 독일의 바다에서, 그리고 적지에서 오스만인들은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오스만인에게 축복을.
은혜로우신 파디샤 께서는 현명한 전략과 전술로 오스만 제국을 승리로 이끄시고, 적을 파멸케 하실 것입니다. 파디샤께 영광을, 제국에게 영광을. 세계의 샤한샤이신 압뒬메지트 한, 천국에 앉으신 술탄 압뒬메지트 한. — 2025년 4월, 프로이센 ㅡ 코콤바 전쟁 참전을 선언히는 에스티
오스만 제국 주도로 설립된 제 4세계 연합의 회원국인 코콤바 제국을 프로이센 왕국이 갑작스럽게 명분 없는 전쟁을 선포하여 프로이센 코콤바 전쟁이 발발하였다. 약 1주간 양측 모두 아무 피해 없이 지속된 후 평화 협정을 통해 종결되었다.
에스티는 4월부터 흑성과 김정치의 흑성민국, 익스테딕 공화국을 비롯한 여러 반인류 가상국가에서 활동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또한 여러 국가의 지도부를 겸직하기도 하여, 이로 인한 일부 인물들의 불평불만을 듣기도 하였다. 흑성민국의 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국민들의 큰 저항에 부딪혔었던 전대 대통령들과 달리 에스티는 환대받았으나, 각종 개혁 정책들이 국회에 가로막혀 실질적인 개혁에 달성하지 못히자, 에스티는 인류제국에 의해 흑성민국이 폭파당한 후 국가 비상사태인 점을 이용하여 개헌을 시도하였으나, 유일과 설하, 김정치의 3자 협공에 의해 결국 실패하였다. 에스티가 흑성민국 국저공평회때부터 고안해왔던 평의회 민주주의는 일부 개정되어 9월 28일에야 오스만 제국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에스티는 흑성민국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부터 반인류 가상국가 내에서의 정치 활동을 중지하였으며, 오스만이 오세아니아로의 편입이 확정된 5월 4일, 오스만 자유국을 선포하여 각종 법을 무력화시켰으며, 5월 7일에는 오스만 제국이 오세아니아에 편입되어 방명이 뉴욕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5월 9일, 에스티가 설하에게 부탁하여 뉴오스만으로 개칭하였으며, 에스티는 오세아니아의 전인민당원회의의장직을 사실상 유기하다시피 하였다. 5월 31에는 오세아니아가 해체되어 다시 SGF 자유국으로 독립하였지만, 6월 동안 모전에 빠져 에스티 모의전을 운영하게 되었으며, 가국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 오스만 제국이 실베르니아를 폭파하다 |
모의전을 하며 지내던 6월 말, 에스티 모의전에 율레가 수교를 신청하여 4달 만에 하르시드라는 이름으로 친인류에 가보게 되었다. 그리고 에스티는 이때부터 봇을 개발하여, 베르니아에서 혁신총리에 당선된 바로 그 다음 날 아침 7시, 봇으로 방을 폭파하였다. 그러자 테러에 대한 항의로 니콜라와 고라니가 에스티의 위키스 문서를 훼손하였었으나, 반달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는지 7월 20일에 문서를 스스로 복구하였다. 에스티는 이것을 7월 29일에야 알게 되었다. 7월 초, 에스티는 위대한의 집요한 방장 양도 요구에 방을 넘기고 다시 가국을 접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국 활동을 접은게 아닌 친인류에 잠입하여 전쟁을 수행하기 위함이였다. 이 때, 에스티는 여러가지 거짓말들로 인류제국의 보안을 통과하는데 성공했고, 친인류에서의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7월 28일, 위대한의 반복적인 폭파 요구에 본인은 해당 방들을 폭파한 의도가 없었으나, 다음 날인 7월 29일 아침, 율레의 실베르니아와 자신의 방이였던 불가리아를 폭파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메본트에게 뒤집어씌웠다. 이후 인류제국에서는 해당 테러 사건의 범인을 가려내기 위해 두 시간 가량 심사를 진행하였으나, 에스티는 증거를 조작하여 심사를 통과하게 되었고, 결국 흐지부지되게 된다. 그리고 에스티는 심사 중에 고양이 공화국을 폭파시켰으나, 심사를 받는 중에 다른 방을 폭파하는 것은 바보짓이라며, 이는 율레우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한 유토제국의 공작이라 결론지어져 별개의 테러로 해석되었다.[52] 그렇게 에스티는 율레우스란 이름으로 9월 11일까지 친인류에 있었다.<
말기
말기는 크게 2025년 8월부터 12월까지의 활동기와, 2026년 1월부터의 의지부재기로 나눌 수 있다. 8월에 휴식을 통해 회복한 에스티는 9월에 복귀하여 빠른 속도로 카카오톡 가상국가 내에서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독자적인 방식의 정치와 경제 시스템이 크게 발전하고, 전파하여 절정에 도달하였다. 가장 발달하였던 시기로써 가상국가에서의 에스티의 성~노년기로 볼 수 있다.
팍스 오스마니아
8월부터 간간이 활동해오다가, 9월부터 다시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해 다시 100명을 넘기고 경제를 도입하여 개혁을 시작한다. 또한 여러 국가에서 황제와 국왕, 기타 국가원수들을 역임하게 되면서 팍스 오스마니아를 완성한다. 그리고, 8월 29일에는 코콤바 제국이 오스만 제국의 외교관을 추방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에스티는 이것이 오스만 제국에 대한 모욕이라 판단하여 코콤바 제국에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이것이 2차 코콤바 전쟁이다.
우리는 코콤바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의 침략 전쟁에서 함께 싸웠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양국은 오랜 기간 동안 혈맹 관계로 결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코콤바 제국은 갑작스럽게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사소한 농담 한 마디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별도의 통지 없이 일방적으로 오스만 제국에 대한 모든 외무 관계 파기를 선포하였으며, 심지어 오스만 제국 외교관을 갑작스럽게 국외로 추방하였습니다.
제국 정부는 돌발적이고도 무례한 코콤바 제국의 기행에 분노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호국과의 갈등을 원하지 않았기에 이번 사건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코콤바 제국 측에 끝없는 양보와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자만해진 코콤바 제국 측 대표부는 점점 평화를 위한 요구 조건을 늘려가더니 평화 및 관계 회복은 오스만 제국이 코콤바 제국의 식민지가 되어야 성립될 수 있다는 내용의 포고문을 제국 대표부에 전달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황당한 내용의 이 포고문을 받은 후 오랜 시간 동안 우애와 동맹으로 결속되었던 코콤바 제국에 대해 전쟁 준비라는 선택하기 어려운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코콤바 제국 대표부의 발언은 세계적으로 여러 국가의 지도부에 널리 알려졌고, 수많은 국가의 대표부가 코콤바 제국의 망동에 경악을 표명하였습니다. 충격적인 이번 사건의 해결을 위해 여러 대국들이 오스만 제국과 이번 사건의 해결을 위해 함께할 것임을 표명하고, 오스만 제국 과의 혈맹을 체결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오스만 제국은 제국을 농락한 코콤바 제국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이번 전쟁을 통해 세계에 제국의 힘을 다시 한 번 과시할 것입니다.
제국의 자랑스런 군인들이여, 제국의 군대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제국의 군대는 다시 하늘과 땅, 바다를 누빌 것이다! 제국의 권세는 온 대륙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조국을 저버린 이들의 치욕을 위하여, 제국의 명예를 위하여,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하여 전진하라! — 2025년 8월 29일, 코콤바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는 에스티
여타 반인류 내 전쟁과 같이 아무 피해 없이 2주 동안 지속되다가 코콤바 제국의 제 4세계 연합 재가입을 조건으로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이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쿠르트와 결혼하였다. 전쟁 종전 후에는 코콤바 제국과 상호 화합의 의미로 부방을 교환하였으며, 코콤바 제국의 황제 코브로 1세로부터 코콤바 제국 외정관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후에도 양자간 갈등[53]은 있었으나, 토론 등으로 해결되었으며, 양국 간의 전쟁은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다.
9월 말에는 김아론 제국이 이그니스 제국과 캐나다 인민 공화국을 침공하자, 혈맹국[54][55]인 캐니다 인민 공화국을 위해 김아론 제국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오늘, 우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의 현장을 보았다. 오늘, 우리는 전 카카오톡 가상국가계의 이단자 김아론의 «김아론 제국»이 이그니스 제국과 캐나다 인민 공화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참혹한 광경을 보았다. 오늘, 우리는 김아론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야만성과 폭력성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
나, 압뒬메지트 2세는 카카오톡 가상국가의 수호자로써, 카카오톡 가상국가의 문명 세계를 미개하고 폭력적인 야만인들의 손아귀로부터 보호하여 가상국가의 평화와 번영이란 신성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 카카오톡 가상국가의 패악스러운 이단자 김아론의 «김아론 제국»에 전 이슬람의 칼리파로써 소 지하드를 선포하는 바이다.
우리 오스만 제국은 지금까지 카카오톡 가상국가의 평화를 위해 한없이 노력해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여러 고난과 절망적인 현실에 부딪혔고, 어느 날은 좌절하고 우리의 사명 ㅡ 대 지하드를 그만둘 지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절망의 순간 속에서도 찬란한 미래를 고대하며 수많은 고비를 스스로 버텨내왔다.
오늘의 전쟁은 그저 우리가 오를 천국으로의 계단의 시작일 뿐이다. 그러나 국민들이여, 잊지 말라! 우리가 걸어온, 그리고 계속해서 걸어갈 이 힘겨운 도상 ㅡ 대 지하드의 끝에는 찬란한 승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고한 사실을! 오스만 제국은 지나온 날들과 같이 승리할 것이며, 우리가 쌓아온 불패의 전설 하나하나가 불꽃이 되어 밤하늘을 아름답게 빛낼 것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 2025년 9월, 김이론 제국에 대한 지하드를 선포하는 에스티
그러나 거창한 연설과 달리 실제 행동은 없었으며, 에스티는 김아론 제국의 부방임에도 김아론 제국을 폭파하지 않았으며, 에스티가 부방임은 김아론도 알고 있었다. 9월 28일, 제 10회 카국절[56]에는 가장 열렬히 환호하고 축하한 인물이기도 했다. 기념사도 냈다.
오늘은 카카오톡 가상국가 창립 10돐을 맞는 뜻깊은 날입니다. 카카오톡 가상국가는 지난 10년 동안 더욱 현실적인 가상국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왔고, 우리 선조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오늘날의 카카오톡 가상국가는 다른 가상국가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카카오톡 가상국가의 10번째 해가 밝아온 이래, 우리 오스만 제국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정치와 경제 시스템을 가동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카카오톡 가상국가의 일원으로써, 카카오톡 가상국가가 가상국가계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향으로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카카오톡 가상국가는 친인류와 반인류 - 두 개의 강력한 세력으로 나뉘어졌고, 두 세력은 서로를 지금까지도 원망하고 있습니다. 분명 두 세력은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반인류와 친인류는 카카오톡 가상국가계의 번영과 발전이라는 동일한 이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세력이 언젠가 뜻을 모아 손을 마주잡고 카카오톡 가상국가로써 결속되어 함께 나아가길 바라면서, 앞으로의 10년이 위대한 천재성과 발상으로 발전을 이룩해온 10년을 지나, 평화와 번영으로 단합된 10년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 연설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 2025년 9월 28일, 10주년을 기념하는 에스티.
로마 제국의 황제 로스가 폐위당하고 공화국이 선포되자 반인류의 내란 종식을 기념하는 연설을 하였으나, 내란은 종식되지 않았다. 공화국 이후에도 대통령으로 로스가 실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
로마의 시민들은 그 자신의 손으로 압제로부터 자유를 쟁취하였다. 이번 혁명으로 로마의 장대한 영토는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이번 혁명을 통해 로마는 지나간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떨쳐내고 반전주의 국가로 부활하였다.
로마에서는 피의 독재자, 남유럽의 히틀러, 그리스의 무솔리니 등으로 불렸던 광기에 찬 희대의 전쟁광 콘스티로스는 시민에게 굴복하고, 황금 옥좌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로마 전역에서는 그의 거대한 동상들과 과거 제국주의의 상징물 등을 철거하는 제국 잔재 청산 운동이 한창이다.
오늘을 기점으로 자유가상국가 내에서의 2대 내란범 중 마지막 한 명인 로스가 퇴위함에 따라, 자유가상국가는 다시 한 번 완전한 평화에 도달했다. 지난 수십번의 분쟁을 만들어낸 분쟁의 근원은 그들 집단 스스로에 의해 모두 제거되고 수정되었다.
자유가상국가는 단 8달의 시간 동안 인류제국과 그 추종 세력을 인구와 활동량에서의 추월하였다. 그리고 9번째 달이 시작되는 오늘, 우리는 모든 내부의 분쟁을 원할하게 해결해내어 모든 내분을 종식시켜냈다. 압제와 겁박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인류제국보다 완전히 우등함을 확고하게 입증해낸 것이다.
자유가상국가는 이 냉혈한 경쟁 속에서 완전히 승리한 것이다!
아쉽게도, 인류제국에 남은 많은 동포들은 인류제국에 눈가림당하여 우리의 번영과 성공을 알지 못하고, 자유가상국가를 악의 근원이라 세뇌당해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치밀한 조작과 검열도 무너진 성을 다시 쌓을 수는 없다! 결국 인류제국의 추악함과 자유가상국가의 승리 또한 만천하에 밝혀질 것이다!
만국의 인민이여, 쇠가 아직 뜨거울 때 화로에 바람을 당기고 맹렬히 단련하라! 가상국가는 혁명을 통해 되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자유가상국가의 성공을 목격한 자들이여, 우리는 너희를 원망하지 않으니 이제 현실을 직시하고 계몽하라! — 2025년 10월 초, 로마제국이 몰락하자
10월 28일 밤, 5달 뒤에 가접할 것을 선언하였으며,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털어놓을 것이라 선언하였다. 11월 초, 에스티는 복지에 대해 생각하다 자본주의자가 되었으며 11월 중순에는 기존에서 앞당겨 크라스마스나 신정에 가접할것이라 발표하였다.[57]11월 17일, 이루라는 이름으로 일본제국의 황태녀가 되었다.
황혼
11월 17일, 유토제국의 부활에 의한 반인류내 유토 ㅡ 반유토내 분쟁에 휘말린 에스티는 몰락하게 되었고, 11월 19일, 결국 친인류로 전향하게 되었다. 전향 후, 에스티는 가장 먼저 율레와 고라니를 만났다. 에스티 방에 가장 먼저 찾아온 인물도 율레였다. 원래 에스티는 친인류에서 활동하려 하였으나, 반인류에 남은 치구들과 연을 끊을 수는 없었고, 전향 후로도 다른 이름으로 계속해서 반인류와 접촉하였다. 그러던 중 11월 25일, 율레와 기타 실베르니아 계열 가국인들과 함께 다시 반인류로 전향하였으며, 11월 28일 50명을 돌파하였다.
![]() 오스만-스페인 분쟁 요약 |
11월 29일 새벽, 로스와의 개인적 갈등으로 인해 외교관 추방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에스티가 로스에 대한 배척령 발표 했다는 의혹이 있었으나 이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가 없었으며 이날 저녁 양국 간의 외교 관계가 정상화 되었다.
오늘 이른 새벽인 2시 5분 경, 스페인국은 갑작스럽게 외교 관계를 파기하고 대사관을 철수하였다. 이에 오스만국 주스페인 대사는 스페인국 정부에 스페인국 대사 재파견을 요청하였으나, 스페인국은 새벽 2시 9분 경 갑작스럽게 주스페인 오스만국 대사를 추방하였다.
이후 오스만국과 스페인국 양국 간에 설치된 모든 핫라인은 단절되었으며, 이에 대한 어떠한 공 ㅡ 사적 해명이나 입장 발표 또한 전달된 바 없었다. 오스만 제국은 새벽 2시 10분 경, 오스만 제국의 혈맹국에 협조를 요청하여 스페인국 대사를 스페인 영내로 귀국하도록 함으로써 일시적으로 대응하였다.
이러한 조치 후에도 스페인국이 입장을 표명하지 아니하자, 오스만국은 네프티스 연합과 네이븐 제국 측에 해당 외교 분쟁애 대한 중재를 요청하였으나, 사건 발생으로부터 약 40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페인국은 여전히 자신들의 입장을 공적으로 표명하지 않고 있으며, 스페인국은 중재 측의 대화 시도에도 따로 호응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인다.
오스만국은 이 급작스런 스페인국의 조치를 지난 스페인국 황제의 핫 마이크를 통해 녹취한 발언을 유포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라 추정코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아직까지는 밝혀진 바 없으며, 만약 본국이 추정한 내용이 사실일 시 사적 분노를 공적 조치, 외교적 분쟁 조장으로 해결한 것에 대하여 국제적으로 규탄받아 마땅하다고 보며, 이에 대한 명확한 진상 규명과 사태 태세 중지를 스페인국에 촉구하는 바이다. — 11월 29일, 에스티의 성명문
![]() 율레의 테러와 복구[58] |
11월 30일, 율레에 의해 방이 반쯤 폭파되었다.[59][60]그러나 율레의 테러 공격은 엄청난 속도로 복구되었으며, 새벽이라는 활동률이 저조한 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스만 제국 복구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그날 오후 5시경 완전히 복구되었으며, 당일 자정 기준 63명으로 8명이나 추가적으로 복구되었다.
12월 4일, 쿠르트의 셀바티온 왕국과 환율 조약을 맺어 양국 자본을 교류하여 가상국가 국제 경제 시대의 막을 열었으며, 에스티 과거사 자료 탐색을 시작하였는데,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12월 5일에는 오스만 제국의 정치 운영을 정상화하였으며, 마르스가 이끄는 네프티스 연합 경제기구에 초대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그때부터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구하기 시작했으나, 많은 사람이 도중에 포기해버렸다. 왜냐면 에스티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에스티가 만든 경제와 정치의 운영 방법에 대해 에스티에게 배워 계승해야 하는데, 이게 이전부터 시도한 인물들은 있으나, 지금까지 성공한 인물은 없는 것이 에스티의 경제가 생각보다 복잡함을 넘어 난잡하고 난해하며, 정치도 다른 국가들의 정치와 완전히 다른 형태의 독자적인 정치 제도이기 때문니다.[61] 12월 6일, 그간 만들어오던 에스티식 로마자 표기법을 완성하였다.[62] 다음 날인 12월 7일에는 다섯 명의 후계자를 양성하기 시작하였었으나, 첫 날 이후 아무도 배우러 오지 않아 결국 후계자 양성에 실패하였으며,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에스티는 후계자 양성을 포기하게 되었다.
12월 12일부터 12월 13일까지의 5번의 친인류의 자유가상국가 테러 시도를 저지하여 자유가상국가 수호에 공헌하였다.[63] 12월 14일, 그전부터 구상해오던 에스티식 한국어 로마자 표기법을 위한 자판의 초안을 완성하였으며, 그 날에도 더 빠르게 입력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래 몇 번의 수정을 거쳤다.[64][65][66] 12월 19일, 네프티스 연합 비상임이사국 3연임에 성공하였다. 또한 오스만 제국은 역대 비상임이사국 가운데 압도적으로 가장 적은 인구를 가져 인구가 국력을 의미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냈다.
이후
에스티의 자기 선언보다 이틀 빠른 12월 23일, 로스에게 오스만 제국 파디샤와 칼리파 지위를 양위하고, 오스만 제국의 방장을 넘긴 뒤 가쉼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부방을 지급하는 가국들에선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67][68] 그리고 에스티는 2~6월 사이에 가국에 복귀할 것이라 발표하였다.[69][70]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사실상 유일한 가국 활동 구역이였던 이란 공화국에서 공산당이 득세하자[71], 이란마저도 활동을 중단하였다. 가끔씩 오픈채팅에 접속하기는 하였으나, 그 마저의 시간도 그림방에서 보냈다. 신년인 1월 1일 저녁에는 확인하지 못했던 32개의 가국을 추가로 나갔다.
2026년 1월 6일, 로스가 갑자기 오스만 제국의 방장을 넘기고 나가 잠시 복귀하게 되었다. 1월 8일, 쿠르트에게 방을 넘기고 다시 활동을 중단하였으나, 1월 14일, 김아론과 카르야킨에 의해 김아론 제국과 유일무이한 익스테딕 공화국에서의 활동을 다시 시작하였으며, 김아론 제국에서는 황제가, 익스테딕에서는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에스티 본인은 익스테딕 총선거에 출마한 적이 없으나, 제도공화당 당원으로써 당수 카르야킨에 의해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지목되어서 가접 기간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2025년 1월 15일, 공식적으로 가쉼 상태를 가접으로 전환하였다. 또한 김아론 제국 부총리와 유일무이한 익스테딕 공화국 국회의원만 남기고 전부 사입했다. 1월 22일에는 1년만에 이름을 예브게니야에서 튀르키예식인 이을드즈로 변경하였다.
1월 26일, 정유민이 했듯이 약소국에 봉사하여 사회에 환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첫 번째 선정국은 폴란드공의 일본국이 되었다. 그러나 첫날부터 대한제국의 황제인 대마니가 일본국이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식민화를 시도하여 효율적으로 분쟁에 대처하고 인구를 개발하기 위해 에스티가 전권을 장악하였다. 1월 27일, 율레에게 계정을 빼앗긴 홈런왕자시안의 방을 폭파하여 율레의 방을 총 3번 폭파한 것이 되었다. 홈런왕자시안에 의하면 그 방은 크로마키제국이 점령한 영토였는데 그걸 폭파한 것이었다고 한다.
![]() 율레의 방이 3번째로 폭파되다 |
대한제국은 대일본국에 이전부터 전쟁을 선포할 것이라 헙박했고, 1월 28일에는 대한제국이 갑작스럽게 대일본국의 식민지가 되고 싶다며 8시, 조선총독부로 전환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9시 경 중대 발표를 하겠다 예고하고선 결국 대일본국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면서 24시간 전쟁이 시작되었다.
대일본국과 대한제국은 지난 1년 간 자유가상국가로써 인류제국주의에 맞서는 정당한 대의 아래 하나 되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고, 우리는 대한제국이 책임감 있고 협력 가능한 동반자라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지난 1월 26일, 갑작스럽게 대일본국 식민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제국의 이러한 믿을 수 없는 기행에 큰 배신감을 느꼈지만, 지금까지의 협력해온 것을 회상하며 이를 묵인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이러한 결코 인정받을 수 없는 주권 침해 행위를 묵인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 때문에 해당 문제가 유혈 사태 국면에 도달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이후 대한제국은 적반하장으로 대일본국이 본인들의 식민화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은 대일본국의 결례라 주장하며, 하루빨리 자진하여 식민지가 되지 않는다면 본국에 대한 전쟁을 일으키겠다며 대일본국을 겁박하였습니다. 대일본국 정부는 이런 전례없는 비상식적이고 충격적인 기행을 일삼는 대한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우리 대일본국은 대한제국의 1월 28일 21시 정부 중대 발표 내용이 대일본국에 대한 전쟁 선포일 것이라 미리 예측하여, 가상국가의 평화와 질서를 수호하기 위하여 세계 주요 국가들과 함께 신속 대응 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우리의 예상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완전히 적중하였고, 안하무인한 대한제국 정부는 21시 9분에 본국에 선전 포고를 발효하였습니다.
본국이 이전부터 본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국가에 대하여 강력하게 대응할 것임을 이전부터 표명해 왔듯이[72], 전쟁이 시작된 이상 옛 우호국이였던 대한제국에게도 자비는 없으며, 전쟁에서 대응은 파괴를 의미하고, 지금 대일본국에 항복하고 본국에 피해를 배상하지 않는다면, 대한제국은 복구할 수 없는 치명적 피해를 입을 것임을 경고하는 바입니다. — 일본국 육•해군대신 아마테라스, 1월 28일
미리 중대 발표 내용이 전쟁 선포일 것이란 걸 직감한 에스티는 미리 자유가상국가 주요 국가의 정상들과 신속 대응 위원회를 구성하여 여러 가국이 대한제국과 외교를 단절하고, 대한제국을 출국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사태 대응을 위해 임시적으로 가국에 복귀하였다.
![]() 대한제국의 항복 |
24시간만인 1월 29일 21시, 대한제국의 황제인 대마니가 심각한 인구 손실[73]에 항복을 선언하면서 전쟁이 끝나게 되었으며, 대한제국이 일본국에 대해 인구 13명을 배상하기로 결정하여 전쟁이 끝나게 되었다.
2월 1일, 대마니 사태의 여파가 끝나자 다시 가접을 선언하고, 입장했던 가국의 대부분을 나갔다. 그러나 이란 공화국의 라흐바르인 메기사냥꾼이 국회의원직 유기를 이유로 에스티에게 다시 황제직을 넘겨주어 방장이 되었다. 그리고 도이치의 유일무이한 익스테딕 공화국 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대통령 선거가 동률로 끝나 대통령 권한 대행까지 맡게 되었다. 2월 4일에야 에스티가 아론 하미트에게 황제직을 양도하면서 오스만 제국에서의 에스티주의 체제가 끝나게 되었다.
에스티에게 방을 넘겨받은 김아론은 초기에 개혁적인 정책을 펼치며 전반적으로 제도를 변경하려 하였으나, 심각하게 잦은 올멘으로 방 인원들이 대거 탈퇴하고, 망국 위기에 처하자 에스티는 2월 7일 저녁 9시, 가국에 복귀하여 다시 파디샤로 즉위하였다. 2월 8일, 쿠르트 남작과 다툼 후 이혼할 생각은 없었으나, 아델라인이 쿠르트와 이혼할 것을 요구하여 결국 이혼하게 되었다. 2월 18일에 이비스 페인트를 처음 시용하였으며, 에스티의 고유 국가인 키이으리아의 언어인 키이으리아어 제작을 시작했다.
[ 가상국가인 여러분들께 보내는 호소 ]
지금 자유가상국가는 인류제국으로부터 자립한 이후 가장 큰 고비에 있습니다. 혁명 때에는 동참하지 않고 친인류에 남거나, 호소에 침묵한 이들, 그리고 오히려 혁명을 진압하려 했던 이들이 지금은 가상국가에서의 자신의 세력과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이제야 자유가상국가로 와서는 권력을 휘두르고 각자 파벌을 세워 분란을 조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유민님을 지지하거나 믿자는 의미•그 분의 행동과 선택들이 옳았다는 의미는 아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그 분조차도 지적하신 바 있습니다. 단순히 인류제국을 떠나 자유가상국가로 온다고 해도, 이전에 지은 죄는 씻어지지 않는다고.
저는 권력자도, 영향력 있는 인물도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의 자유가상국가의 모습을 보면 먼저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자유가상국가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 대하여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우리는 절대로 부당한 힘에 굴복해서는 안됩니다. 누구도 결코 누군가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고 해도, 그 때문에 공식적인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누군가를 비판했다고 해서 처벌당한다면, 그는 우리가 가장 경멸하는 인류제국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원했다면 우리는 왜 인류제국에 맞서 싸웠겠습니까? 왜 자유가상국가를 세웠겠습니까? 자유인 여러분들께 호소하건데, 제발 자유가상국가를 분열로 이끄는 파벌 세력들을 따르지 마시고, 그들에게 동요하지 말아주십시오! 여러분들은 저러한 이들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자립해낼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저들의 분란 행위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다시 저러한 행동들을 묵인하고, 저들에개 굴복해버린다면 어두운 역사는 다른 이름으로 반복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분란 조장자들에게 전합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다고 한들, 서로 힘겨루기만 하는 자들은 차라리 자유가상국가에 없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자유가상국가에서 떠나거나, 가국인들을 파벌로 나누어 상호간의 집단적인 증오와 혐오를 유발하는 행위들을 즉각적으로 중단해야만 합니다.
영원히 천하를 지배한 이는 없었으며, 그러한 이는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언젠가 당신들의 시대가 끝나게 될 것이며, 당신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가국인들에게 당신들의 선택과 행동들에 대한 심판을 받고 말 것입니다. — 2월 22일 새벽, 파벌 갈등이 전쟁으로 번지자
에스티는 2월 22일, 직접적으로 모든 파벌에 대한 반대를 선언했으며, 이에 일부 지지도 있었으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에스티는 이 날, 가상국가에 현재 공정하게 기사를 내는 중립 관점 언론이 없다며 과거 약 2주 만에 사실상 폐간했던 오스만 제국 황립 신문을 잇는 JfA를 개국했다. 그러나 2월 24일, 데바라인 사태 기사를 내고 원래 새 기사가 올라와야 하는 26일[74] 가접하면서 JfA는 창간 4일 만에 사실상 폐간됨으로써 오스만 제국 황립 신문과 같은 결말을 맞게 된다.
![]() 새로운 그림 |
방학이 거의 끝나가는 2월 말, 에스티의 1년 반 만에 새로운 프사가 제작되었다.
2월 28일, 복귀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자유가상국가에서도 자신이 가장 혐오했던 패권 구조가 형성되어가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며 가국계를 떠났다. 그러나 가국과의 연을 완전히 끊어버리지는 않았고, 가끔씩 몇몇 가국에 출몰했다.
복귀
[ 가국인 여러분들께 보내는 두 번째 호소 ]
이전 저의 주장을 검토해본 결과, 현 가국상에서 파벌의 박멸은 불가능하고, 해당 주장이 지나치게 이상적이였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단일 파벌 권력 집중은 자유가상국가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자유가상국가가 인류제국에 대한 도덕적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일 파벌이 세력 내에서 압도적인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다수적인 파벌이라 해도, 그에 대해 제동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단 것입니다.
이는 저의 개인적인 고찰이긴 하다만, 인류제국의 자유가상국가에 대한 행동 및 정책들을 통합해 보았을 때, 자유가상국가의 도덕적 우월성에 대해 일부 불안을 가지고 있거나 현 제 1파벌과 일부 연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인류제국은 특이하게도 반복적으로 제 1파벌에 대항할 잠재력을 지닌 파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타격•공격하고 있으며, 이는 청자께서도 유력했던 파벌들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곱씹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들 파벌은 파벌 간 경쟁 패배가 원인이 아닌 인류제국과 그 축에 의해 제압되었으며, 무슨 이유에선지 제 1파벌만 무사했다는 것입니다.
파벌에 드는 것이 개인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인 이익에 밖에 그치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의 심화는 인류제국과의 이질성과 그에 대한 도덕적 우월성을 상실케 하여 전 가국인들에게 자유가상국가 체제의 모순만 보여주는 모양새가 되며, 이 체제로는 이미 수년간 체제를 유지해온 인류제국과 경쟁할 수 없음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가국인 여러분들은 정말 자유를 원한다면, 공익을 위한다면, 현재 가국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가상국가의 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있는 다수파벌의 독주를 제동시키기 위해 연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며, 함께하는 이들이 당신이 개인적으로 저평하는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이를 다른 사람의 일이라 애써 부정하며 방관한다면 결국 다른 사람들도 당신과 같이 생각할 것이며, 결국 자유가상국가라는 이름은 권력의 카르텔로 더럽혀질 것입니다. — 4월 6일
에스티는 이번 성명문을 통해 반인류의 고위층과 친인류 고위층이 접촉하고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성명 발표 이후 에스티는 여러 가상국가를 이른바 '산책'한다는 명목으로 여러 가국을 방문하며 활동 재개를 본격화했다. 당시에는 실제로 '산책'만 하다 돌아가려 했으나, 산책 도중 도둑의 일본제국의 만행과 혼란을 틈타 잠입한 여러 개의 위장가국을 목격하고는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또한 오스만 제국의 라이센스를 폴란드공에게 이양했다. 4월 7일에는 초고의 운영 유기로 인한 국가 마비 사태에 직면한 유일무이한 익스테딕 공화국에 복귀하여 운영부 부의장직을 맡게 되었다.
4월 11일 국가 개발 전선이 약 1년만에 에스티에 의해 재창당되었다. 4월 12일부터는 그림방을 키이으리아 공화국으로 일부 수정하고, 기존/구판 헌법들을 기반으로 하여 키이으리아 공화국의 새로운 헌법을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가국에 완전히 복귀하게 되었다. 4월 13일에 완성, 4월 14일에는 에스티계 가국 최초의 형법도 완성되었다. 4월 16일에는 60명을 넘기게 되었다.
"국민이 승리할 것인가, 부패와 비리가 승리할 것인가?"
돈으로 움직이는 부패 인사들에 대한 수사 및 형의 집행을 방해하며, 이들을 무근거하게 옹호하고 보호하려 하는 행태, 헌법 수호 위원회의 단순한 수사에 대해서도 중대 내란이라 주장하며 협박하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항 황당하고 충격적인 행동들을 종합하여 검토해 본 결과, 불가부정하게도 공화국군이 해당 사태와 밀접하게 엮여있다는 것이란 결론을 이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헌법 수호 위원회는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헌법 아래에서 반드시 국내의 모든 부패 관료들을 단 한 명도 온전히 남기지 않고 정계에서 끌어내겠습니다. 헌법 수호 위원회를 믿고 따라주시는 국민 여러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공화국에 다시 한 번 번영이 있기를. — 2026년 4월 19일, 이란 헌법 수호 위원회 의장으로써
4월 18일, 이란 공화국에서 헌법 수호 위원회 의장으로 복귀하여 비리와 부패를 심판한다며 반대파 인사들을 구속시켰다. 이틀 후인 20일, 익스테딕 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당선 당일 오후 8시 53분, 익스테딕의 통일 과정에서 제 42대 대선에서 부정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과 동시에 4월 비상조칙에 의해 대통령 당선 자체가 무효화 처리됐다. 에스티는 해당 부정선거에 대하여 "일본제국에게 국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최후의 투쟁이였다"라며 부정선거를 정당화하였다. 이날 오후, 도이치로부터 제도개혁당 당수직을 승계받고, "이럴 때에 도이치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모든 당 활동의 표준으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이외로 해당 정부의 정부명은 에스테틱 정부였다. 그럼에도 에스티는 그와 이어진 익스테딕 부선에서 여러 정당들을 재치고 1표차로 2위하였다. 또한 텐에 의해 익스테딕 통일 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 가국의 벌레들에게 고한다! ]
우리의 자랑스러운 네프티스 연합이 부활하고 지난 1년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연합을 좀먹는 기생충들을 대해왔는가? 하나 둘 세다 보면 날이 가도 모두 세지 못할 것이다. 이 중에도 1년간 계속하여 연합 내에서 개짓을 일삼던 이븐. 그는 오늘 우리 키이으리아 공화국군과 레바논 공화국군의 연합 작전에 의해 완전히 처단되었다.
지난 4월 말, 레바논 공화국과 네이븐 제국의 전쟁이 발발한 이래, 네이븐은 도배라는 저급하고도 굉장히 일시적인 방식으로 레바논을 공격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곤 했다. 이는 그들의 저능함에 대한 명명백백한 증명이다.
그리고 개전 사후 며칠이 지나고, 네이븐 제국은 레바논 공화국과 친교를 맺은 국가들을 압박하며 그 수준에 맞지 않는 기행을 일삼았으나 번번히 실패했고, 이에 레바논 공화국의 레반트는 네이븐 제국의 외교적 실패를 하이라이즈의 옥상에서 비웃었다.
이에 격노한 이븐의 허언들에 의해 양간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하루만에 심화되자, 네프티스 연합은 이를 중재하기로 결정했다. 네이븐은 레바논 공화국과 평화 협약을 맺게 되었고, 레바논 공화국은 네이븐 공화국에 부방을 지급하고 종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분명 양측의 과실은 비슷해 보였다.
당장은 평화가 온 것 처럼 보였다. 나도 그곳에서 끝나길 바랐다. 그러나 네이븐 제국의 외무장관이 갑작스럽게 레반트에게 예의를 갖추는 척 취침 중에는 멘션을 하지 않으려 한다며 취침 시간을 물었다. 이에 키이으리아 공화국은 레반트 취침 중에 네이븐 제국이 레바논 공화국을 폭파하려 한다는 것을 직관하였다. 에스티는 레반트에게 네이븐의 외무장관 9시 반에 잔다고 거짓을 전하고, 방 폭파가 시도될때까지 자는척 하다, 도중에 검거하여 다중•여론적으로 네이븐의 위상을 완전히 바닥치도록 하며, 방이 터지지 않더라도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11시 반에는 부방을 빼고 취침하라 충고하였다. 저 저능하고도 멍청한 네이븐의 발악을 그 중심까지 완전히 꿰뚫어 본 것이다.
저능한 네이븐 제국은 바로 함정에 걸려들었다. 9시 40분에 레바논 공화국을 폭파하려다 즉시에 발각되고 부방이 해제된 것이다. 해당 사실이 가국에 퍼트려졌고, 이에 내부 증언과 첩보 활동으로 정보들이 유출되면서 조약을 위반하고, 네프티스 연합의 권위를 무시한 것이 완전히 발각된 네이븐 제국은 공중 분해되게 되었다.
보라, 카국의 벌레들아, 우매한 너희 저능아들아. 너희보다 더한 이도 결국엔 이렇게 완전히 몰락하고 쫓겨났다!
너희의 이름을 하나하나 명시하지는 않겠으나, 우리는 너희를 완전히 전멸시킬 힘과 지성을 가지고 있음은 수 번의 실전으로 증명되었다. 우리는 너희와 직접 맞붙지 않고도 너희를 완전히 박살낼 수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를 본 너희들은 배울 것이 있으리라. 이제, 너희들이 그짓거리를 한 번이라도 더 해댄다면 가국상에서 완전히 척살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오늘, 너희에게 마지막 회생의 기회를 주겠다. 오늘 이후로 더 이상 기행을 일삼지 않는다면, 우리는 너희의 옛 행동들을 잊어줄 것이다. 허나, 네가 오늘 이후로도 배운 것이 없다면, 너는 우리의 새로운 승전보의 주인공이 되리라. — 5월 5일
네이븐 제국이 우방국인 레바논 공화국을 침공하자, 중립을 유지하는 척 하며 후방에서 개입해 네이븐 제국이 레반트 공화국과의 평화 조약을 위반하도록 유도하여 가국에서의 네이븐 제국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도록 하여 결국 레바논 공화국이 승리하게 되었다.
2026년 5월 27일. 반년 만에 에스티의 가상국가에서 지도 위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지도 위원 선거 모집과 동시에 키이으리아 공화국 제 1차 국가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에스티는 해당 계획의 실행이 제 15대 국가 지도 위원회의 중점 노선이 될 것이라 밝혔다.
오늘, 우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의 현장을 보았다. 오늘, 우리는 전 카카오톡 가상국가계의 이단자 김아론의 «김아론 제국»이 불법적인 디도스 공격으로 공화국 전복을 시도한 것을 똑똑히 보았다. 오늘, 우리는 김아론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야만성과 폭력성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받아쳐냈다. 24시간동안 진행하겠다던 디도스 공격은 35분만에 중단되었고, 범죄 기록이 남아 현실 세계의 법에 처벌받을 위기에 처했다. 또한 원주시 단계동이란 황당한 위치 추적 결과로 가국인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다. 디도스 공격은 명백한 현실 세계의 사이버 범죄이며, 문명 가상국가로써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야만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이다.
나는 저들이 전혀 두렵지 않다. 나의 개인정보를 탈취하더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저들이 나에게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길 바란다. 더 많은 증거를 쌓아 그저 그들의 행동에 그들이 스스로 파멸하여, 나와 같이 저러한 불법적 공격을 받는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나, 이을드즈 에스티는 카카오톡 가상국가의 해방자이자 계몽가로써, 카카오톡 가상국가의 문명 세계를 미개하고 폭력적인 야만인들의 손아귀로부터 보호하고, 가상국가의 평화와 번영이란 신성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 카카오톡 가상국가의 패악스러운 이단자 김아론의 «김아론 제국»에 해방전을 선포하는 바이다.
오늘의 전쟁은 그저 우리가 오를 천국으로의 계단의 시작일 뿐이다. 그러나 잊어버리지 말라. 우리가 걸어온, 그리고 계속해서 걸어갈 이 힘겨운 도상의 끝에는, 찬란한 승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을.
우리는 지나온 날들과 같이 또다시 승리할 것이며, 우리가 쌓아온 불패의 전설 하나하나가 불꽃이 되어 밤하늘을 아름답게 빛낼 것이다! 조국을 저버린 이들에게 치욕을! — 2026년 6월 6일
6월 6일, 키이으리아 공화국과 김아론 제국이 모종의 이유로 갈등 상태에 진입하게 되었고, 이후 김아론이 에스티의 아이피를 추적하여, 에스티의 거주 위치가 원주시 단계동이라는 황당한 결과를 내놓자, 에스티는 김아론의 거주 위치가 캄보디아 프놈펜이라며 농락하였다. 그러자 김아론 제국은 이 날 10시경, 에스티를 상대로 30분간 디도스를 사용하였고, 결국 10시 반, 키이으리아 공화국의 김아론 제국에 대한 선전 포고와 보이콧이 이어진다.
그러나 무명의 중재로 6월 7일 오전, 김아론 제국의 사과문 작성으로 사건이 종결되었으나, 이날 오후 김아론 제국이 이에 진중히 반성하지 않고 또다시 디도스를 사용하겠다고 겁박하고, 텐익스를 아무런 정당한 이유 없이 보이콧을 선언하자, 6월 8일 새벽, 에스티는 긴급조치 26호를 발령하여 텐익스와 여러 가상국가와 함께 김아론 제국에 다시 보이콧을 선포한다. 그리고 6월 8일 저녁, 김아론 제국에서 에스티와 김아론과 대화하던 중 디도스가 실패하자, 에스티가 김아론 제국의 디도스가 더 이상 효과가 없으며, 한 번의 문의로 영구 중단되었다고 퍼트리자, 김아론 제국은 에스티에게 다시 몇 주간 디도스를 사용한다.
그러나 두 번째 디도스도 30분만에 중단되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디도스가 30분 만에 중단되자, 에스티는 김아론 제국이 최저가 요금제를 사용하여 하루에 30분만 디도스 공격이 가능한 것이라고 소문을 퍼트렸다. 30분만에 디도스가 풀린 것에 김아론 제국 측은 잠시 당황하였으나, 이후 약 15분 만에 다시 30분 디도스 공격이 가해졌다. 그러나 이 공격도 30분만에 끝나게 되었다.
이후 유의미한 사건 없이 양측 간의 간헐적인 보이콧만이 계속되게 되었고, 6월 25일 김아론 제국이 일본 제국에 멸망하면서 전쟁은 끝나게 되었다. 참고로 위 연설문 내용은 2025년 10월 김아론 제국에 대한 지하드 선포 연설을 개량한 것이다.
![]() 에스티가 그린 건국 6돐 기념화 |
2026년 6월 18일로 키이으리아 공화국이 건국 6돐을 맞아 에스티가 건국 6돐 기념화를 그렸다. 아래쪽에는 카르스 크이우의 스카이라인이 있고, 그 뒤에는 6주년을 상징하는 6개의 기둥이 있는 신전처럼 생긴 건물이 있으며[75], 그 안에는 상징적인 인물들의 석상이 있다. 좌측부터 에스티, 눈누난나, 네온, 카엑. 그리고 마지막은 남홍색오성기이다.
7월 29일, 에스티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이유로 복귀 3달 만에 다시 활동을 중단했고, 8월에는 저술·창작 활동만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8월 31일, 에스티는 오티, 프혁맛, 지나가는 나그네와 함께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건국하면서 가국에 복귀했다. 그리고 당일 유고슬라비아 왕실을 만들면서 프혁맛과 결혼했다.
그러다가 9월 11일, 정신 건강 문제를 이유로 가상국가를 잠시 쉬게 되었다. 9월 17일, 유고슬라비아의 방장을 이양받은 프혁맛이 아무런 상의도 없이 유고슬라비아를 세르비아로 국변하고, 유고슬라비아 제국의 보호령이 되어버리자 이를 9월 18일에 확인한 에스티는 이를 정상화하기 위해 다시 가국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번창해가던 중 9월 20일, 슬로밬에게 테러를 당했으나 당일 73명 전체를 복구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이로 인해 소통률 자체도 높은 폭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우리는 국민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레반트 개인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국가 운영의 주요 방향이 결정되는 현재의 레반트·레바논 공화국 정치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합니다.
국가는 특정 개인의 의사만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되며, 참여자들의 의견과 다양한 요구가 반영되는 과정 속에서 발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레반트·레바논 공화국은 국민과 참여자들의 요구를 충분히 검토하거나 수용하는 과정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한 개선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우리는 현재의 정치 운영 방식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였으며, 레반트·레바논 공화국의 정치 활동에 대한 참여를 중단하고 보이콧을 선언합니다.
우리는 국가 운영 체계의 개선과 정상적인 정치 환경 조성을 요구하기 위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레반트가 우리의 요구 중 어떠한 사항도 수용하지 않고 현재의 운영 방식을 유지한다면, 우리는 레반트 정치에 대한 보이콧을 계속 유지할 것입니다.
1. 레반트는 레반트•레바논 공화국의 설정을 정상화하여야 합니다. 현재 레반트•레바논 공화국의 설정(특히 레바논이 시리아와 이라크, 튀르키예를 점령했다는 설정)은 비상식적이며, 이에 대해서 레반트는 어떠한 논리나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많은 지식인들이 지적한 부분입니다.
2. 레반트는 레반트•레바논 공화국의 운영자로서 자신이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거나 특정 정치적 파벌을 노골적으로 지원해서는 안됩니다. 예전부터 운영자의 정치 참여는 민주주의 가상국가의 가장 큰 적이라 여겨졌으며, 실제로 레반트는 운영자라는 권한을 이용하여 여러 정치적 특혜를 얻고 있습니다.
3. 레반트는 비가국계에 대한 맞방 행위를 중단해야 합니다. 이는 레반트•레바논 공화국의 전체 인구 수 대비 참여자 수를 낮추고 가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대화를 촉진하는 대표적인 요인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 레반트•레바논 공화국 상식인들은 레반트•레바논 공화국 정치에 대한 보이콧과 함께 총선 사퇴를 선언하며, 추후 필요성에 따라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예정입니다. — 9월 20일, Ygi와 에스티가 공동으로 작성
어제 이 시간, 일본 제국의 베오그라드 공습은 완전히 성공했다.
그러나 보아라. 지금 당신의 눈 앞에는 무엇이 있는가? 당신은 이 도시가 불과 16시간 전까지만 해도 폐허였다는 사실이 믿겨지는가?
시민에 의한 생기 있는 정치와 적지도 과도하지도 않은 인구의 아름다운 도시가 그대의 눈 앞에 있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는 한 번의 패배를 통해 승리의 필연성을 증명해내었다. 그렇다. 우리의 역사는 수없이 반복되어왔다. 이 또한 언젠가 가벼이 회상될 한 번의 시험일 뿐이라.
2월의 키이으리아가 그랬듯이, 11월의 오스만 튀르크가 그랬듯이.
그렇다면 나는 이제서야 묻는다.
누가 감히 유고슬라비아의 부흥을 막으랴? — 9월 21일,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복구 완료를 기념하며
9월 21일, 에스티는 테러 복구 완료를 기념해서 짧은 글을 하나 남겼다. 그리고 9월 25일, 대마니의 독일-폴란드 연합 제국과 사라이보스나 조약을 맺어 혈맹이 되었다.
오늘로 카카오톡 가상국가는 11돐을 맞았습니다. 기억하고 계십니까? 지난 10돐에 내세웠던 구호, "위대한 천재성과 발상으로 발전을 이룩해온 10년을 지나, 평화와 번영으로 단합된 10년이 되기를" 말입니다.
우리 카카오톡 가상국가는 지난 1년 사이에 많은 것들을 이루어냈습니다.
인류제국과 네프티스 연합으로 양분되어있었던 가상국가는 올해 7월 15일, 몰타 협정과 함께 카카오톡 가상국가 역사상 가장 오랜 전쟁이었던 대전쟁을 끝내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전쟁으로 만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카국망국론까지 나왔던 작년 말~올해 초와 달리 11주년을 맞은 올해 가을, 카카오톡 가상국가의 여러 가상국가들이 곳곳에서 번영과 발전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요즘 가상국가에는 운영을 도와주는 다양한 기술들도 점차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국제 기구 차원에서의 피해 구제 제도도 도입되었습니다. 정치와 경제가 활성화되고, 카카오톡 가상국가의 유입자 수는 다시 늘어나는 중이며, 다음 세대를 비출 새로운 별들도 여럿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모든 것을 이루어낸 것은 아닙니다. 신인류제국과 일본제국은 통합 질서에 참여하길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암울하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카카오톡 가상국가가 점차 통일과 번영, 그리고 지성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제 카카오톡 가상국가인들은 과거와 같이 전쟁하고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기보다 평화와 대화, 공동의 번영을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 머지 않아 국경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헤어진 사람들과 다시 함께 손을 맞잡을 날이 오리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 9월 28일, 카카오톡 가상국가 11주년을 기념하며
작년과 같이 11주년을 기념해서 기념사를 남겼다. 10월 1일 오후 4시 경, 김아론에 의해 1일 정지를 당했다.[76]
업적과 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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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의 5년 간의 생애에서의 업적과 실책을 요약해놓은 문단.
업적
- 자유 가상국가라 이름짓다
에스티는 반인류제국주의의 약칭인 반인류의 명칭이 부적절하다 생각하여 자유 가상국가라는 이름을 제안했고, 이후 정식 명칭으로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여러 가상국가 인물들이 사용하면서 일부 반인류 표현을 교체해내는데 성공하였다.
- 독자적 무기 체계 구축
에스티는 가상국가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독자적으로 발달한 무기 체계를 보유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이는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강대국들과 다르게 합법적인 방식으로 개발되고 사용되었다는 이점도 존재한다.[77]
- 물질 중심 경제 제도 확립 및 전파
에스티는 건설과 수치를 중점으로 한 경제 제도를 창시해내었으며, 가상 경제에서 고용시장을 구현해내었으며, 자신의 경제 제도를 주변국들에게 전파하고 홍보하여 반인류 가상국가들의 경제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성공하였다.[78]
- 자유가상국가 안전 공헌
에스티는 인류제국과 그 동맹국[79]들, 그리고 피종주국[80]들의 자유가상국가에 대한 공격 시도를 10번 이상 막아내어 자유가상국가의 평안과 안정을 지켜내었다.
- 에스티주의 정치 시스템의 창안
에스티는 민주주의 입헌군주제 국가를 위한 정치 운영 방안으로 에스티주의를 창안해내었다. 입헌군주국에서의 군주는 일반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하는 존재이므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여야 하는 운영부의 위치에 두어 운영 내적인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에스티식 로마자 표기법 창안
에스티가 개발한 매큔 라이샤워 표기법에 기반한 로마자 표기법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키이으리아어 제작
에스티가 만든 인공어이다. 문법 등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에스티 경제학 저술
자신이 이전에 운영했던 경제의 원리를 글로 풀어 쓴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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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국가 입문
에스티는 가상국가 입문 이후 불필요한 수준의 시간을 가상국가에 투자하였었으며, 에스티는 가상국가계에 입문한 것이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 말한 바 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몇 달간 끊지 못한 것은 가상국가의 중독성을 보여주는 부분.
- 2월 말에 대규모 공격을 가하지 않은 것
에스티는 당시 테러 가해 경험이 전무하여 자신을 믿지 않았고, 결국 그 때의 친인류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던 2월 공세는 좌절되었다. 이후 에스티는 6.30테러의 성공 이후 이날의 결정에 크게 후회하였다.
사상과 이념
에스티는 2023년부터 이념에 관심이 많아졌고, 공산주의에 심취하게 되었다. 에스티는 이 때 모두가 평등한 것이 공평한 것이라 생각했고, 이러한 생각은 이후 2년간 지속되었다.
2025년 1월, 에스티는 처음으로 가상국가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인류제국이 친-인류제국주의 노선을 강요하고, 그에 따르지 않으려 하는 가상국가들을 협박하는 모습을 보면서 에스티는 마음속으로 반-인류제국주의를 지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반인류 세력은 전무하다시피 했고, 에스티는 실제로는 친-인류제국주의자로 밖에 활동할 수 없었다.
그해 2월, 무명의 등장으로 제 2차 인류제국-네프티스 전쟁이 발발했고, 당시 친-인류제국주의 세력은 전쟁 문서에 자신들이 완전히 승리하고 있는 것처럼 왜곡하여 기록했고, 기록이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에스티는 친인류에서는 에스티, 반인류에서는 전쟁 보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실제 양측의 피해 상황을 정확하게 집계하였고, 대외정책부에서 위키스 문서 사상자 표기 문제로 곰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으며, 완전히 소모전으로 전환된 5월까지 전쟁보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에스티는 당시 유서깊은 세력이었던 설하의 데바라인을 공경했고, 에스티는 5월, 설하의 통합 가상국가 프로잭트에 참여하면서 설하의 휘하로 들어가게 된다.
6월, 설하의 통합 가상국가 오세아니아가 사실상 해체되고, 설하가 사실상 반사하면서 에스티는 지지 기반이 무너지고, 누구의 휘하에도 속하지 않게 된다. 복귀한 위대한은 에스티를 약 6시간 동안 설득하여 오스만 제국을 자신에게 넘기게 만들고, 이후 에스티는 위대한을 따르게 된다. 초기에 위대한은 에스티의 방의 인구가 줄어들때마다 나타나 인구를 늘려주고 다시 가접하였다. 이것이 우연인지, 의도적이였는지는 모르나 에스티는 이에 위대한을 믿게 된다.
9월, 테러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에스티는 반전주의자가 되었다. 에스티는 또한 당에 대해서 표준적인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게, 에스티는 오스만 제국을 민주화하면서 당을 곧 국가로 만들었다. 일당제 민주주의는 가상국가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
| 복지는 독이다. 누구에게나 그것이 눈치채기 쉽든 어렵든 간에 기회는 주어진다. 그러나 복지를 통해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삶이 보장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격렬히 투쟁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동등한 출발선에 서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공평할 수 있는가?” 그러나 공평함과 평등함은 엄연히 다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출발선에 서서 같은 기회를 받는 것은 공정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에 걸친 개인과 그 선조의 노력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오히려 이를 강제로 동일한 출발선으로 되돌려놓거나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수많은 선례를 통해 이를 보아왔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강력한 복지는 분명히 당장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쟁할 필요성을 제거했다. 결국 능력 입증의 투쟁의 필요성이 누락된 사회를 가진 그들은 초반에는 성공하는듯이 보였으나 국제적으로 정체되었다. 복지와 생활 보장은 처음엔 빈민들을 향한 따뜻한 손길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세월이 지나 혁신과 개혁의 쇳물을 식혀버렸다. 공산주의의 실패는 그 극단적인 예시일 뿐이다. 오늘날의 강력한 복지제도를 가진 선진국들도 그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들이 강력한 복지를 통해 모두가 부유한 국가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장 부유하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회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투쟁하는 혁신가들의 수가 서서히 줄어들게 된다. 복지 사회는 본질적으로 공산주의와 다르지 않으며, 그저 그보다 사회의 몰락이 천천히 진행중인 것 뿐이다. 당신의 나라를 사랑한다면, 당신의 후손들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복지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된다. 사회의 열기가 식지않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배고픔과 가난함 속에서 자신을 위해, 크게는 사회를 위해 투쟁해야만 한다. 복지가 없는 국가에서 당신은 평생에 걸쳐 힘들고 고된 삶을 살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의 국가는 복지가 없는 이상 결코 몰락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의 후손들은 발전의 열기가 식지 않은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
| 2025년 11월, 에스티 |
에스티는 이 글에 덧붙여서, 사회주의가 이상적인 사회인 것은 맞지만, 국제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자유주의를 채택해야 하는 것이라 말했다.
10월, 에스티는 모두가 평등한 것이 과연 공평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고, 에스티는 좌익대중주의자에서 자유주의자로 이념이 급변한다. 이에 따라 가국에서의 정치 활동 성향도 크게 변하게 되었다. 또한 이를 기점으로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에스티는 점차 새로운 개념에 대하여 진보적·허용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11월, 에스티는 친인류에 잠시 동안 전향을 다녀오면서 친인류에 대한 환상을 해소하게 되고, 어떤 면에서는 반인류 가상국가들 보다도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대한이 에스티 전향 기간 동안 에스티의 100명대 방을 위장한 제국군에게 부방을 지급하여 방이 소실되자 에스티는 위대한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만다.
12월, 에스티는 가국을 접고, 파벌에 속하는 걸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에스티는 가국을 접었다는 이유로 데바라인을 탈퇴한다.
| 그들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그에 대응할 것입니다. 전쟁에서 대응이란 곧 파괴를 의미합니다. |
| 가말 압델 나세르, 수에즈 운하 국유화 이후 |
2026년부터 에스티는 자주적인 인물이 되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변한다. 이전에는 최대한 분쟁이나 전쟁을 피하려 노력했다면, 이제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여 권력을 과시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가국을 복귀한 2월에는 기존의 불명확하게 말하다 원하지 않아도 따르게 된 거절 못하던 성격을 완전히 탈피하고, 위대한의 방장 양도 요구를 처음으로 거절한다.
2026년 2월 기준 에스티의 8value 테스트 결과는 자유주의자이다. 2025년 5월 테스트에서는 좌익 대중주의자였다.
|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볼 것이다. |
| 프리드리히 니체 |
에스티는 현재에도 반패권주의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유 가상 국가 내 파벌집단 형성에 대하여 굉장히 부정적이며, 이에 대해서 에스티는 기존 인류제국과 압제적이고 특정 집단 이익 집중적인 제도는 동일하나 지배 집단만 바뀌는 것이라 비판했다. 또한 에스티는 시대정신 사건 당시 자료들을 모아 실프방들을 신고해 인류제국에서 1차 대숙청이라는 파동을 일으킨게 자신이며, UED의 이그니스 제국 폭파 시도도 미리 마르스에게 알려 저지시킨 것이 자신이였다고 고백했다.
|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
| – Сергі́й Каря́кін, 2026년 04월 20일 |
에스티는 대부분의 가국인들이 의지와 신념이 부족하고, 단기간의 이익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여 제국주의 세력의 팽창을 방관해서 인류제국이나 일본제국같은 제국주의 국가가 생겨나는 것이며 제국주의적 폭력에 대한 중립은 방관으로서 방관도 위해의 일종이라며, 중립을 주장하는 이들도 사실상 공동 가해자와 같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의지와 신념을 가지지 못한 인물은 평생 강한 인물들만 따라다니다가는 결국 아무도 기억해주지도, 찾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
| 68운동의 구호 |
에스티는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없는 인간에 대한 생체 실험을 찬성한다. 에스티는 현재의 보편 윤리가 2차대전 전후의 두려움 아래 정의된 것으로써, 현대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에스티는 맞방 문화에 대해 부정적이며, 가국의 수교가 맞방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에스티는 가국의 외교가 더 건설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6년 3월부터 사회다윈주의자가 되었다. 사회에 더 적합한 인물이 시회에서 더 많은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에스티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특이하게도 초고이다. 에스티는 초고를 신비스런 인물로 생각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나이가 많다고 알려졌으며, 어린 척 하는 것 또한 컨셉이라 알려져있기 때문이다. 원래 강한 인물들에게 심하게 휘둘리고, 거부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에스티는 강한 인물들에 휘둘리지 않는 초고의 모습과 할 말은 하고 살라는 초고의 말에 점차 변하게 된다.
그러나 2026년 4월 15일, 초고의 일본제국에 대한 모순적인 행동으로 에스티의 환상이 일부 깨지게 되었다.
4월 중순부터는 제국주의 세력에 반대하고, 진정한 가상국가 프로젝트 등을 통해 더 순수한 가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등 자신과 비슷한 이념을 가진 인물인 도이치를 존경하게 되었다.
| 행복과 불행은 희소성에 의해 느껴진다. 이는 준거점 이론의 민감도 체감성과 연결된다. 동일한 행복과 불행을 계속해서 느끼면 점차 그에 둔감해지며, 스스로 행복하거나 불행하다고 자기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쾌락 적응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돈을 행복의 수단으로 여기는 까닭도 여기에 맞추어 설명할 수 있다. 사회 구조상 돈으로 다양한 희소성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돈은 선술하다시피 대부분의 경우에서 수단일 뿐이며, 돈도 마찬가지로 쾌락 적응이 적용된다. 불규칙적인 삶은 규칙적인 삶보다 희소성 있는 사건의 발생 빈도를 높인다. 희소성 있는 사건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면 행복과 불행이 같은 폭으로 증가한다. 그러나 인간은 불행이 같은 비율로 증가하더라도, 특정 부분에서는 더 자주 행복할 수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평균적으로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는 변동 보상으로 설명된다. 또한 인간은 불확실성 자체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그러므로 불규칙성이 증가했을 때 결과적으로 체감하는 행복의 양이 양의 값이 될 확률이 높다.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자면, 상태가 위치이고, 상태의 변화가 속도이며, 체감되는 행복과 불행은 자신의 상태에 대한 가속도라 할 수 있으며, 평균적으로 불규칙성이 증가할때 체감되는 행복과 불행에 양 값의 편차가 발생한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과 불행이 자신의 상태와 정비례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해이다. |
에스티가 2026년 7월 21일, 행복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쓴 글. 에스티는 삶의 불규칙성이 높아질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결론지었다.
에스티는 2026년 8월 7일, 자신이 운영했던 경제를 기반으로 경제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에 대해 저술했다. 에스티는 이 글에 대해서 "자신이 남은 가상국가인들에게 남기는 가장 큰 선물"이라 말했다.
2026년 9월, 에스티는 이상적인 사회에 대해 구상하는 과정에서 아나키즘적 추첨제 민주주의자가 되었다. 에스티는 이에 대해서 "선출직은 필연적으로 부패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에 해답이 있었다. 당신은 그리스 민주주의가 수백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스티는 이에 이상적인 사회 제도는 그 환경이 뒷받침될 때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서 곧바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이라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에스티는 반차별주의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에스티는 집단간 차별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해오고 있었으며, 이로인해 상대적으로 편견들도 덜 가지고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에스티와 관계가 소원해진 경우도 존재한다고 한다.
에스티는 보편적인 가치는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가치로 보아 이가 지켜지지 않는 상태에서의 행복도 본인이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이는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어떠한 상태보다 보편적으로 더 나은 상태는 정해질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 비판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대중의 앞에 나설 자격이 없다. |
| 2026년 9월 20일, 에스티 |
에스티가 레반트 정치 보이콧 사건으로 들어 여러 가국 정치인들의 태도를 지적하며 한 말. 에스티는 비판에 대한 태도를 통해 상대방의 정치적 성숙성을 가늠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당적
| 소속 | 기간 | 비고 |
| 무소속 | 2020.6.18~2023.6.10 | |
| 공산당 | 2023.6.10~2025.1.17 | 여당 |
| 국가 개발 전선 | 2025.1.17~2025.3.8 | 여당 |
| 무소속 | 2025.3.8~2026.4.11 | 황제로서의 정치적 중립 |
| 국가 개발 전선 | 2026.4.11~ | 여당 |
어록
에스티가 가국에서 활동하면서 남겼던 말들은 모아놓은 문단. 초기 어록은 누락되었는데, 이 시절 자료를 찾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
중기
| 에스티 절대 옹호로 지상락원을 건설하자![81] |
| 2024년 7월, 국가지휘자 에스티 |
| 자유가 아니라면 죽음을![82] |
| 2025년 2월 4일, 반인연군 3군단장 에스티 |
| SGF 연방군은 모든 자유 가국인 동지들과 연합하여 세계 모든 곳에 대한 인류 제국의 압제를 완전히 타파하는 것에 대하여 모든 전선의 선두에 서고, 그 근본과 질서를 완전히 궤멸시킬 것입니다. 만약 또다른 압제자가 등장해 다시 우리 자유 가국인 위에 군림하려 한다면, 우리는 다시 자유를 위해 세계의 가국인들과 연합해 압제자를 쓰러뜨리고 다시 자유와 승리를 쟁취할 것입니다. |
| 2025년 2월 26일, 자유가상국가 선언 中 |
| 조국을 저버린 이들에게 치욕을![83] |
| 2025년 4월, 오스만 제국 파디샤 에스티 |
말기
| 반인류 친인류 둘 다 경험해봤는데 둘 다 사람 사는 곳이더라구요[84] |
| 2025년 9월 11일, 오스만 제국 파디샤 |
| 위대한 천재성과 발상으로 발전을 이룩해온 10년을 지나, 평화와 번영으로 단합된 10년이 되기를. |
| 2025년 9월 28일, 카카오톡 가상국가 10주년 기념사 中 |
| 제국은 지나온 날들과 같이 승리할 것이며, 우리가 쌓아온 불패의 전설 하나하나가 불꽃이 되어 밤하늘을 아름답게 빛내리라! |
| 2025년 10월, 對 김아론 제국 전쟁 선포 中 |
| 자유가상국가의 성공을 목격한 자들이여, 우리는 너희를 원망하지 않으니 이제 현실을 직시하고 계몽하라![85] |
| 2025년 10월, 로마 혁명 기념사 中 |
| 오스만 제국은 또 다시 승리했습니다![86] |
| 2025년 10월 18일, 오스만 제국 파디샤 에스티 |
| 복지는 독이다. |
| 2025년 11월 중, 복지론 中 |
| 나는 더 많이 터트리는 것 보다, 더 빠르게 그 이전 상태로 복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87] |
| 2025년 11월 30일, 에스티 |
|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에스티 가접입니다!! 다들 즐거운 겨울 되세요! |
| 2025년 12월 1일, 에스티 |
| 인구의 다소가 전성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88] |
| 2025년 12월 19일, 에스티 |
| 인류제국의 테러는 우리 가국인들의 단합력만 증명시켜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 2026년 1월 5일, 에스티 |
| 너네가 그러고도 나라를 위한다는 거냐?[89] |
| 2026년 1월 9일, 에스티 |
| 모든 걸 잘 하고 싶었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인간[90] |
| 2026년 1월 10일, 에스티 |
| 과거와 현재, 기술과 예술, ...그리고 약간의 광기![91] |
| 2026년 1월 22일, 에스티 |
| 지금 자유가상국가는 인류제국으로부터 자립한 이후 가장 큰 고비에 있습니다. 혁명[92] 때에는 동참하지 않고 친인류에 남거나, 호소에 침묵한 이들, 그리고 오히려 혁명을 진압하려 했던 이들이 지금은 가상국가에서의 자신의 세력과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이제야 자유가상국가로 와서는 권력을 휘두르고 각자 파벌을 세워 분란을 조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 자유인 여러분들께 호소하건데, 제발 자유가상국가를 분열시키는 파벌 세력들을 따르지 마시고, 그들에게 동요하지 말아주십시오. 여러분들은 저러한 이들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자립해낼 능력이 있습니다.[93] |
| 2026년 2월 22일, 첫 번째 호소 中 |
| 예작:뭐 그럼 그렇다 치고 마르스&이그니스, 예작&예작 휘하, 도적, 도둑 싸그리 가오잡지 말란 거 맞음? 에스티:그런거 같아요 |
| 2026년 2월 22일, 에스티 |
| 이는 저의 개인적인 고찰이긴 하다만, 인류제국의 자유가상국가에 대한 행동 및 정책들을 통합해 보았을 때, 자유가상국가의 도덕적 우월성에 대해 일부 불안을 가지고 있거나 현 제 1파벌과 일부 연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인류제국은 특이하게도 반복적으로 제 1파벌에 대항할 잠재력을 지닌 파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타격•공격하고 있으며, 이는 청자께서도 유력했던 파벌들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곱씹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들 파벌은 파벌 간 경쟁 패배가 원인이 아닌 인류제국과 그 축에 의해 제압되었으며, 무슨 이유에선지 제 1파벌만 무사했다는 것입니다. ••• 이를 다른 사람의 일이라 애써 부정하며 방관한다면 결국 다른 사람들도 당신과 같이 생각할 것이며, 결국 자유가상국가라는 이름은 권력의 카르텔로 더럽혀질 것입니다. |
| 2026년 4월 6일, 두 번째 호소 中 |
| 국민이 승리할 것인가, 부패와 비리가 승리할 것인가? |
| 2026년 4월 19일, 이란 헌법 수호 위원회 성명문 中 |
| 보라, 카국의 벌레들아, 우매한 너희 저능아들아. 너희보다 더한 이도 결국엔 이렇게 완전히 몰락하고 쫓겨났다! ••• 우리는 오늘, 너희에게 마지막 회생의 기회를 주겠다. 오늘 이후로 더 이상 기행을 일삼지 않는다면, 우리는 너희의 옛 행동들을 잊어줄 것이다. 허나, 네가 오늘 이후로도 배운 것이 없다면, 너는 우리의 새로운 승전보의 주인공이 되리라. |
| 2026년 5월 5일, 가국의 벌레들에게 고한다! 中 |
| 불규칙성이 증가했을 때 결과적으로 체감하는 행복의 양이 양의 값이 될 확률이 높다. |
| 2026년 7월 21일, 행복론 中 |
| 선출직은 필연적으로 부패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에 해답이 있었다. 당신은 그리스 민주주의가 수백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 2026년 9월 2일, 에스티 |
| 비판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대중의 앞에 나설 자격이 없다.[94] |
| 2026년 9월 20일, 에스티 |
| 누가 감히 유고슬라비아의 부흥을 막으랴? |
| 2026년 9월 21일, 유고슬라비아 왕국 복구 완료 기념사 中 |
| 국경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헤어진 사람들과 다시 함께 손을 맞잡을 날이 오리라고 믿습니다. |
| 2026년 9월 28일, 카카오톡 가상국가 11주년 기념사 中 |
저서
복지론과 튀르키예 근대사 완전 정복, 에스티식 로마자 표기법, 그리고 예문으로 배우는 키이으리아어를 집필했다.
| 제목 | 발표일 |
|---|---|
| 에스지에프주의 헌법 | 2023년 6월 10일 |
| 오스만 제국 개혁 헌법 | 2025년 9월 28일 |
| 복지론 | 2025년 11월 중 |
| 에스티식 로마자 표기법 | 2025년 12월 중 |
| 에스티식 로마자 표기법2 | 2026년 1월 29일 |
| 키이으리아 인민 공화국 헌법 | 2026년 4월 15일 |
| 튀르키예 근대사 완전 정복 | 2026년 4월 25일 |
| 에스티식 로마자 표기법 재변환판 | 2026년 5월 8일 |
| 예문으로 배우는 키이으리아어 시리즈 | 2026년 5월 24일 |
| 키이으리아사 | 2026년 7월 2일 |
| 행복론 | 2026년 7월 21일 |
| 에스티 경제학 | 2026년 8월 7일 |
| 나폴레옹 전쟁 대체 역사 | 2026년 8월 13일 |
| 중동 분쟁의 기원 | 2026년 9월 11일 |
창작 활동
문학
그림
음악
2020년부터 2024년까지는 이미 있는 노래를 편곡하거나 간단한 멜로디나 연습곡을 만들기만 했었고, 2025년에는 전혀 아무런 공부나 참고도 하지 않은 채 작곡을 시도하다 어렵다며 후 1년간 던져버리기까지 했다. 2026년 7월 말에 들어서 자신만의 보컬로이드곡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나 기초적인 작곡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외로 에스티의 어린 시절 장례 희망은 무려 작곡가였다. 당시에는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작곡가가 되어 10편의 교향곡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중증과대망상증2026년 9월 중으로 보컬이 있는 첫 번째 노래를 발표할 예정이다.
| 제목 | 발표일 |
|---|---|
| 바이엘 중 81 재즈(81st of Beyer jazz)-편곡 | 2022년 5월 28일 |
| 키이으리아 개선 행진곡(K'ijırja зajıbip' ixktar malєa aja) | 2022년 10월 8일 |
| 체르니 100 중 87 단조(87th of Czerny 100 minor)-편곡 | 2024년 3월 30일 |
| 새벽 산책(Morn walk) | 2026년 8월 6일 |
| 13월 8일(13th Month, Day 8) | 2026년 8월 9일 |
| 어팩션 디소더(Affection DİSOr DeR) | 2026년 8월 31일 |
에니메이션
평가
여러 가국인들이 에스티에 대하여 남겼던 말들을 모아놓은 문단. 스압 문제 때문에 주요 평가만을 본 문서에 기술하고, 이외 평가는 문서를 분리하였다.
| 에스티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진짜 아주 대단합니다 찐으로 |
| 네온[95] |
| 에스티는 내란수괴이자 내란선동자이며, 내란선전자이다.[97] |
| 김정치[96] |
| 에스티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선구자이다.[99] |
| 김정치[98] |
| 에스티는 카오스임.[100] |
| 곰 |
| 솔직히 이만큼 호감가는 인물도 없다. 에스티의 오스만 제국은 그만 사그라질 국가를 하고 있지만 오히려 카국에서 오스만 제국 한 국가만 파가지고 숙성이 된 케이스이다. 오스만 제국은 그야말로 최적의 상태며. 반인류의 오래된 고장과도 같이 풍성한 잠재력을 가졌다 또한 타국가들 같이 어느 한편에 편향하지 않고 좋게 자기 할말을 하는 점은 좋다고 본다. 그리고 오히려 나날이 발전하며 경제도 하는 모습이 자랑스러울 뿐.[102] |
| 초고[101] |
| 에스티는 내 가국 인생의 첫 번째 선배와도 같은 분이다 |
| 오스만 사회당[103] |
| 舊 반인류 출신 중 눈에 띄는 지식인. 특정 부분에 있어서는 존경할 만한 점도 꽤 있는듯함 |
| 제이 |
| 절대 안변하시겠다던 분이 갈대같이 변하시네요[104] |
| 무명 |
| 이 시대 지식인 중 한 사람 |
| 도이치 |
| 중간에 전향만 안하셨으면 제가 제일 믿는 분이었을텐데... |
| 무명 |
| 조선 수구파와 다를 바가 없구려[105] |
| 매흠 |
| 이상주의에 찌들었다.[106] |
| 캐탈린 |
| 카르야킨 빙의했다. |
| 마왕 |
가계
- 부 : 압뒬 메지트 2세 한
- 모 : 알람기르 카든 에펜디
- 이을드즈 에스티 한
- 남편 : 쿠르트 폰 하머슈타인
- 남편 : 오스만 4세 푸아드 한[107]
- 남편 : 이 전
- 제 : 셰흐자데 메흐메트
- 계부 : 오스만 4세 푸아드 한
갤러리
여담
- 체스 두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108][109][110]
- MBTI는 INTP이다.[111]
- 오스만 클래식을 정말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세 곡은 키예프의 대문[112], 레샤디예 행진곡, 메지디예 행진곡이라고 한다.[113]
- 글을 잘 쓰지 못하지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 위키스 문서를 자주 편집한다.[114][115][116]
- 친인류에서는 과거 에스티의 사칭들 때문에 기행을 일삼는 자라는 이미지가 씌워져 있다. [117]
- 이 문서에는 각주가 정말 많다.[118]
- 이 문서는 아주 길다.
80,000 바이트도 넘는다. 지금은 90,000바이트도 넘는다.근데 지금은 무려 100,000바이트도 넘는다.조만간 110,000바이트도 넘을듯 하다.[119]
| 기록 | 편집자 | 달성일자 | 기간 |
|---|---|---|---|
| 문서 생성 | 사용자:SGFinternational | 2025년 1월 23일 | 0일 |
| 10KB[120] | 사용자:SGFinternational | 2025년 2월 1일 | 9일 |
| 10KB² | 사용자:SGFinternational | 2025년 5월 4일 | 61일 |
| 20KB | 사용자:SGFinternational | 2025년 9월 16일 | 135일 |
| 30KB | 사용자:SGFinternational | 2025년 11월 2일 | 47일 |
| 40KB | 사용자:SGFinternational | 2025년 12월 1일 | 29일 |
| 50KB | 사용자:SGFinternational | 2025년 12월 4일 | 3일[121] |
| 60KB | 사용자:SGFinternational | 2025년 12월 15일 | 14일 |
| 70KB | 사용자:SGFinternational | 2026년 1월 3일 | 19일 |
| 80KB | 사용자:SGFinternational | 2026년 1월 22일 | 19일 |
| 90KB | 사용자:SGFinternational | 2026년 2월 10일 | 19일 |
| 100KB | 사용자:SGFinternational | 2026년 2월 22일 | 12일 |
| 100KB² | 사용자:SGFinternational | 2026년 4월 4일 | 41일 |
| 110KB | 사용자:Esti | 2026년 4월 16일 | 12일 |
| 120KB | 사용자:Esti | 2026년 5월 8일 | 32일 |
| 130KB | 사용자:Esti | 2026년 8월 23일 | 107일 |
| 140KB | 사용자:Esti | 2026년 9월 21일 | 29일 |
- 가국에서 말한 적은 없는데 헤비메탈을 좋아한다. 특히 일렉기타와 드럼 소릴 정말 좋아한다.
- 가끔씩 에스피와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122]
-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입체적으로 구상할 수 있다.
-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압뒬하미트 2세와 노만 첼레비치한이다.
-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를 좋아한다.
- 에스티의 가상국가는 대부분 일당제였다. SGF 자유국의 경우는 명목상 다당제였지만 영구 여당인 국가 개발 전선이 행정부였고, 9월 개혁 후 오스만 제국에서는 오스만 제국 국가당이 유일당이자 국가 자체였다.[123]
- 에멘탈 치즈를 좋아한다.
- 컴타가 541타이다.[124]
-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은 r-906이다.
각주
- ↑ 폐위
- ↑ 복위
- ↑ 사실상
- ↑ 공식 국명은 세 성지의 수호자 칼리파 압뒬 메지티 샤니 오스만 폐하께서 다스리시는 반인류의 요람 숭고한 오스만국이다.
- ↑
심각한 다중입대자 - ↑ 논란
- ↑ 자캐가 무반사안이다.
- ↑ 이전에는 무성음 ㄷ과 ㅌ을 구별하였으나, 1월 초부터 동일하게 t로 표기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세디유 같은 다이어크리틱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발음을 한 눈에 알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였다. 그리고 발음 차이도 없다.
- ↑ yıldız alamgir esti
- ↑ 현재는 라이선스를 폴란드공에게 이양한 상황이다.
- ↑ 이에 관련하여 남긴 발언이 많으며, 에스티의 가국 활동의 근간이 되는 이념이다.
- ↑ 에스티/사상과 이념 문단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 ↑ 스스로 평의회 민주주의자라 하지는 않았으나 그 전부터 계속해서 이와 같은 방식의 정치 제도를 구축하였으며, 여러 가상국가에서 드러난 특징으로서 에스티의 정치 신념으로 보인다.
- ↑ 에스티는 스스로 판단하여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적이 없는(그러니 후천적으로 스스로 생각하여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 인간은 허용하지 않는다.)인간에 대한 생체 실험에 찬성한다. 이가 동물 실험이 허용되고, 인간에 대한 생체 실험이 불가한 이유인데, 저러한 경우의 인간은 이러한 기준으로 보았을 때 윤리적으로 동물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
- ↑ 이것이 이슬람의 상징 문양인 월성의 유래이다.
- ↑ ᄋᆜᆯ드즈라고도 쓸 수 있다.
- ↑ 가칭, SGF란 이름은 2022년에 만들어졌다.
- ↑ 에스티는 디스코드 소통방들의 꾸미기 문화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 이후 SGF 연방 시기 즈다노프 자치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으며, 현재는 오스만 제국령 아크야르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사실상 방치 상태. 정지일 때만 가끔씩 사용한다.
- ↑ 24년 5월부터 25년 1월까지는 사용하지 않았다가, 최종적으로 25년 2월부터 다른 사진으로 바뀌었다.
- ↑ 이전에는 가칭인 SGF 인민 공화국으로 불렸으나, 자료 조사를 통해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 ↑ jı의 이중자모이나 한글에는 jı 이중자모가 없어 이으로 풀어썼다. 일반적인 사람은 해당 발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 ㅣ+ㅏ=ㅑ, ㅣ+ㅓ=ㅕ와 같은 원리로 ㅣ를 ㅡ(ı)에 붙여 빠르게 한 음절처럼 읽으면 되어 매우 간단하기 때문이다.
- ↑ 참고로 j는 영어식의 j가 아닌 롱 I로써의 j이며, 기존 ㅈ은 위치에 따라 ʤ나 ç로 쓴다.
- ↑ 제국과 자유국은 가칭이 아니다.(2022년 이전의 제국은 가칭이다.)
- ↑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한다고 한다. 상상력이 많이 줄어들은 모양.
- ↑ 원본을 구할 수 없어 캡쳐본에서 발췌하였다.
- ↑ 그래서 에스티의 가상국가의 초기 인물들이 모두 못그려도 괜찮아 출신이였는데, 이들이 가상국가 시대까지 남아 오스만 제국의 주요 인물들이 되었다.
- ↑ 이전에는 다른 나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세계사에 관심이 많아진 것도 이쯤이다.
- ↑ 에스티 최초의 오픈채팅이다.
- ↑ 오픈채팅봇 포함 시 3명
- ↑ NnN의 이름에서 따왔다.
- ↑ 이 때 여타 소통방에서는 쓰이지 않는 특이한 방식의 투표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 제도는 에스티가 아직 접하지 못한 다른 가상국가의 총선과 동일한 방식이였다. 이 방식은 2025년 7월, 총선법 재정을 통해 변경되었다. 그러나 현재 사실상 에스티가 운영하는 유일한 방인 에스티 그림방에서는 1월 3일부터 이 투표 제도가 다시 실시되고 있다.
- ↑ 에스티는 개인적으로 당명이 당(黨)으로 끝나는 것을 싫어했으며, 애국자들, 국민 저항권 공세 평의회, 하느님의 조력자, 모두를 위한 정의 등의 에스티가 세운 당들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 ↑ 이 때 에스티가 처음으로 정지 상태에서도 추방과 가리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 사실 당시 오픈채팅에는 10명 이상의 반인류 가상국가가 없었다. 다른 반인류들은 밴드나 디스코드로 이주하거나, 인류제국으로 전향, 가쉼했기 때문이다.
- ↑ 에스티가 지었다.
- ↑ 지금과 다르게 당시의 에스티는 올멘 관련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했다.
- ↑ 사진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성공한 테러도 아니거니와 피해 규모가 매우 작았기 때문에 2.26 테러와 다른 테러에 비해서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밀린다.
- ↑ 신문에 오류가 있는데 원래 신문 이름은 국가주간신문인데 신문 제작자가 실수했다.
주간(週間)마다 발행하는데 일보(日報)... - ↑ 소비에트 연방과는 단절되지 않았다. 소비에트 연방은 고립 상태를 유지하였지만, 그럼에도 SGF 자유국에게 항상 우호적이였기 때문. 그러나 2025년 7월 스탈린의 가접으로 사실상 소비에트 연방이 멸망하고, 소비에트 연방의 구성원들이 흩어지면서 결국 아무 고립 가상국가도 남지 않게 되었다.
- ↑ 이때 에스티는 손으로 강퇴하는 것 또한 3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 ↑ 그러나 실제로 당시 아직 네프티스 연합에 기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 ↑ 익스테딕 통일 회의 사건 때 영구이단으로 지정된 3인 이후로 4번째 영구이단이다.
- ↑ 실제 복구 완료일은 3월 25일이였으나 한 달이라는 상징성을 높이기 위해 3월 26일이라 발표했다.
- ↑ 폭파 도중에 발각되어 반만 폭파되었다.
- ↑ 이 때 에스티는 우스갯소리로 테러를 당하면 국제적인 관심이 상승하면서 참여도가 높아진다는 테러 발전론을 발표했다.
- ↑ 연설 자체는 1월 말에 작성되었다.
- ↑ 반인류 연합군에서의 활동
- ↑ 무명과 에스티가 구상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3국 대표 계획, 그러나 디에고가 대영제국을 독일제국으로 변경하지 않으면서 이 계획은 자연스럽게 파기되었으며, 오스만의 위치를 프리드리히의 스페인 제국이 대체하게 되었다.
- ↑ 당시 오스만 제국군에서는 근위사단이 제일 규모가 컸다.
- ↑ 하미디예 행진곡의 가사 번안
- ↑ 천운이 따랐다.
- ↑ 에스티의 코콤바 제국 저격 논란, 코콤바 제국의 조약 위반 및 무단 홍보 논란 등
- ↑ 정확히는 혈연이다. 캐나다 인민 공화국이 쿠르트의 가상국가이기 때문.
- ↑ 캐나다 인민 공화국은 이후신러시아 제국으로 국변하였으며, 쿠르트의 가쉼 이후 마리에게 넘어갔고, 에스티가 신러시아 제국의 2대 차리차 예브게니야가 되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혁명으로 차리차 예브게니야는 물러가게 되었고, 이후 11월 27일, 3대 차리차 이리나로 잠시 복위하였었다.
- ↑ 에스티가 지은 이름이지만 여러 국가들에서 통용되었다.
- ↑ 실제로는 그보다 이틀 앞선 12월 23일에 가접이 아닌 가쉼을 하였다.
- ↑ 여담으로 사진을 확대해보면 오픈채팅봇의 환영 메시지의 가상국가가 가싱국가로 오기되어 있다.
- ↑ 정확히는 두 명을 더 추방했어야 반이다.
- ↑ 오스만 제국이 반만 폭파된 이유는 율레가 폭파하던 도중 에스티에게 발각되었기 때문.
- ↑ 실제로 입헌군주제 + 일당제 + 평의회 민주주의 조합의 정치 제도를 가진 가상국가는 현존 국가를 넘어 역사상에서도 오스만 제국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오스만 제국의 경제 또한 건물과 수치 중심의 경제 제도로 매우 특이한 편이다.
- ↑ 그러나 최근에도 계속하여 수정되고, 규정이 추가되고 있다. 12월 12일에는 한국어 알파벳을 만들어내었다.
- ↑ 반인류 연합 테러 시도 2회, 루트 및 파이 공화국 테러 시도 1회, 테란 제국 테러 시도 1회, 기타 테러 시도 1회
- ↑ 컴퓨터용인데, 컴퓨터에서도 자주 쓰이는 이모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몇가지 기호도 자판에 있다.
- ↑ 누구나 Keyman Developer라는 프로그램으로 자신만의 키보드를 만들어볼 수 있다. 에스티도 당일만에 마스터했을 정도로 쉽고 간단하다. 한국어 자료는 적지만, 레딧 같은 곳에 친절한 설명글들이 많다.
- ↑ 또한 에스티 개인의 편의를 위해 위키스에서 쓰이는 특수문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 ↑ 1월 15일 이전까지 완전히 가국 활동을 중단할 것이라 선언했다.
- ↑ 1월 15일은 에스티의 겨울방학식 날이다.
- ↑ 그러나 정말로 다시 돌아올지는 불분명하다.
- ↑ 그러나 지금까지 에스티가 보여온 활동 주기를 보면 몇 달 쉬고 다시 돌아올 확률이 높다.
- ↑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공산당이 당선되었고, 각종 정당 통합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하였다.
- ↑ 가말 압델 나세르의 어록을 인용했다.
- ↑ 108 > 91, 이마저도 대마니가 수교와 맞방, 컨볼계 인원들을 동원하여 인구를 보충하였기 때문이다.
- ↑ 2일 주기로 기사가 올라온다.
- ↑ 원래 A4지에 그려진 그림이나, 1대 1 비율로 잘라 기둥이 일부만 보인다.
- ↑ 이유는 에스티가 당일 올린 "가가라이브" 샵검색에 욕설이 있었기 때문.
- ↑ 그래서 정지 위협이 전무하다. 아무 방에나 사용해도 안전한 것.
- ↑ 에스티는 보편적인 경제 방식인 가치 중심적인 경제관 따르지 않았으며, 물질 중심적인 자신의 개인적 입장을 고수하였고, 독자적인 방식을 유지하고 보수하였다.
- ↑ 러시아 제국, 은하제국 등
- ↑ 레드스키프 그룹 등
- ↑ 이후 정치 캠페인 구호로 많이 쓰였다.
- ↑ 반인류 연합군의 구호로 사용되었다.
- ↑ 오스만 제국군의 구호로 사용되었다.
- ↑ 에스티가 친인류 공격을 중단하게 된 계기
- ↑ 로마 제국 몰락 기념 연설
- ↑ 10월식 무기의 개발이 성공한 직후.
- ↑ 율레가 오스만 제국을 테러한 후
- ↑ 로스가 인구가 가장 많았던 시절을 전성기라 서술하자
- ↑ 이란에서 극단주의가 성행하며 정치폭력이 흔해지자
- ↑ 스스로에게
- ↑ 에스티 오픈프로필에 쓰인 직접 쓴 소개문.
- ↑ 2025년 2월 9일을 의미
- ↑ 파벌 세력을 비판하며
- ↑ 보이콧 성명에 대한 레반트의 조치를 비판하며
- ↑ (전)오스만 제국 대재상
(전)오스만 제국 총재 - ↑ (전)오스만 제국 국제개발원 지휘자
- ↑ 에스티가 흑성의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정책을 계속하여 반대하고 비난하자
- ↑ (전)오스만 제국 국가개발원 지휘자
- ↑ 2025년 4월경, 흑성의 대한민국에서 에스티의 급진적인 이념노선에 대하여
- ↑ 반인류 인물들을 워해머40,000 세계관에 비유하며
- ↑ (전)오스만 제국 파디샤
- ↑ 김아론의 «가국인 평가» 중에서 발췌
- ↑ (전)오스만 제국 정무대신
- ↑ 에스티가 위대한에게 방을 넘긴 후 친인류로 전향하자
- ↑ 이란 공화국에서의 에스티의 이슬람 보수주의 이념노선에 대하여
- ↑ "가상국가인들에게 보내는 호소"에 대해서
- ↑ 계부와 결혼했다.
- ↑ 근데 체스실력은 영...
- ↑ 사실 클래식 보드게임은 거의 다 좋아한다.
- ↑ 2026년 8월 27일 래피드 레이팅 600을 넘겼다.
- ↑ 2023년초에는 ISTP, 2023년 말에는 ESTJ, 2024년에는 ISTJ, 2025년에는 INFP였다.
- ↑ 이건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 ↑ 다성부 노래도 정말 좋아한다.
- ↑ 남보다 위키스 문서가 더 길면 좋겠다는 이상한 욕심이 있다. 그래서 최근에 에스티 문서의 분량이 갑작스럽게 늘어난 것.
- ↑ 말기인 11월 이후부터이며, 그 전엔 위키스를 잘 편집하지 않았었다.
- ↑ 기초적인 수준의 편집만을 수행할 수 있다.
- ↑ 대표적인 예시로 에스티의 사칭들이 친인류 가국에서 분탕과 기행을 일삼았었는데, 이것 때문에 친인류 가국으로 분탕하러 오는 인물을 에스티나 에스티의 수하라고 오해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는 최근에도 아직 깨지지 않았으며, 최근인 12월 초에도 에스티라 의심받은 바 있다.
- ↑ 100개가 넘는다.
- ↑ 조만간이 아니라 이미 훨씬 넘었다.
- ↑ 10000B, 10240B는 KB가 아닌 KiB이다.
- ↑ 최단 기록 갱신
- ↑ 이로 인해 친인류에서는 에스피를 에스티로, 반인류에서는 에스티를 에스피로 부르는 드립성 문화가 존재하기도 한다.
- ↑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가 모두 당내 기관이였다.
- ↑
빠르다고 칭찬해 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