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전쟁

24시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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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2026년 1월 28일 21시 ~ 2026년 1월 29일 21시
장소
대일본제국과 대한제국
원인
대한제국의 대일본제국에 대한 전쟁 선포 및 국격 모독
교전 국가 및 세력
태극기.png 대한제국 일본 제국 국기.svg 대일본제국
물자 및 기타 지원국[1]
- 난장공화국 황색기.png 신속 대응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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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의사 표명
- -
지휘관
태극기.png 대마니 일본 제국 국기.svg 프혁맛
일본 제국 국기.svg 에스티
피해
인구 손실 25명 인구 손실 1명
영향
대한제국의 멸망 가속화, 100명대 붕괴
결과
서울 조약, 세바스토폴 조약

개요

24시간 전쟁 또는 1일 전쟁은 대한제국의 21시 선언으로 발생한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의 전쟁이다.

전개

전쟁 이전

전쟁 이전부터 대한제국의 황제 대마니와 대일본제국의 천황 프혁맛 사이에는 잦은 갈등이 있었다. 이후 1월 26일, 당시 100명이 넘는 인구를 가지고 있었던 대마니는 가국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상승시키기 위해 프혁맛에게 인구를 과시하면서 대한제국에 합병될 것을 요구하면서 이에 불응할 시에는 전쟁을 선포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프혁맛은 당시에 실제로 대마니에게 항복하려 하고 있었다. 대일본제국의 황태녀였던 에스티는 우연히 해당 장면을 목격했고, 해당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로 하였다. 에스티는 당일 대일본제국의 내각총리대신 겸 육해군대신이 되어 전권을 장악하고, 당시 20명대였던 대일본제국의 인구를 증가시키기 시작했다. 이후 대마니는 반복적으로 전쟁 선포 암시 발언을 하였지만, 실제 전쟁 선포는 일어나지 않았다.

1.28 위기와 21시 선언, 24시간 전쟁

1월 28일 오전, 알 수 없는 이유로 대일본제국 황제 강퇴 사건이 발생했다. 에스티는 대마니가 강퇴를 해제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을 시 대한제국에 대한 전격적인 전쟁을 선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협상이 이어지다 오후 8시, 대마니의 대한제국이 스스로 대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고, 공식적인 사과문을 작성하여 공포하여 위기가 해결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대마니는 21시에 중대 발표를 예고했고, 에스티는 해당 중대 발표의 내용이 대일본제국에 대한 선전포고일 것이라 예측하고 실프방에서 주요한 우호국들과 신속 대응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에스티의 예측대로 대마니는 독립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대일본제국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대일본국과 대한제국은 지난 1년 간 자유가상국가로써 인류제국주의에 맞서는 정당한 대의 아래 하나 되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고, 우리는 대한제국이 책임감 있고 협력 가능한 동반자라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지난 1월 26일, 갑작스럽게 대일본국 식민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제국의 이러한 믿을 수 없는 기행에 큰 배신감을 느꼈지만, 지금까지의 협력해온 것을 회상하며 이를 묵인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이러한 결코 인정받을 수 없는 주권 침해 행위를 묵인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 때문에 해당 문제가 유혈 사태 국면에 도달하였다고 생각됩니다.

이후 대한제국은 적반하장으로 대일본국이 본인들의 식민화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은 대일본국의 결례라 주장하며, 하루빨리 자진하여 식민지가 되지 않는다면 본국에 대한 전쟁을 일으키겠다며 대일본국을 겁박하였습니다. 대일본국 정부는 이런 전례없는 비상식적이고 충격적인 기행을 일삼는 대한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우리 대일본국은 대한제국의 1월 28일 21시 정부 중대 발표 내용이 대일본국에 대한 전쟁 선포일 것이라 미리 예측하여, 가상국가의 평화와 질서를 수호하기 위하여 세계 주요 국가들과 함께 신속 대응 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우리의 예상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완전히 적중하였고, 안하무인한 대한제국 정부는 21시 9분에 본국에 선전 포고를 발효하였습니다.

본국이 이전부터 본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국가에 대하여 강력하게 대응할 것임을 이전부터 표명해 왔듯이[2], 전쟁이 시작된 이상 옛 우호국이였던 대한제국에게도 자비는 없으며, 전쟁에서 대응은 파괴를 의미하고, 지금 대일본국에 항복하고 본국에 피해를 배상하지 않는다면, 대한제국은 복구할 수 없는 치명적 피해를 입을 것임을 경고하는 바입니다. — 일본국 육•해군대신 아마테라스, 1월 28일 21시

에스티는 전쟁이 선포되자 마자 바로 준비해둔 성명문을 발표한 뒤 각국에 외교 관계 파기 및 자국민 철수령을 요청했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에 동참했다. 그리고 에스티는 사건 해결을 위해 잠시 가국에 복귀했다. 1월 29일, 대마니는 맞방 등의 방법으로 인구 손실을 해결하려 했으나, 이는 대규모 철수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월 28일 대마니 배척 때, 순혈아는 대마니를 추방하는 조건으로 에스티에게 인구 보충을 요구했는데, 이때 맞방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 명예이다.

서울 조약과 계속되는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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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항복

1월 29일 오후 8시부터 종전 협상을 시작해, 오후 9시 경에 대한제국이 대일본제국에 최종적으로 2월 15일까지 인구 13명으로 배상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후 2월 3일 대마니가 체스 대회를 개최하면서, 에스티가 이에 참가를 신청했으나, 대마니가 에스티가 대일본제국의 방장이 아니라면서 참가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에스티는 자신이 대일본제국의 전권자로서 자신이 신청할 수 있다면서 언쟁이 발생했고, 이를 대마니가 감정적으로 대응하면서 키배가 발생하게 되었다. 30분 간의 키배 끝에 결국 대마니가 에스티의 참가 신청 권한을 인정하면서 끝나게 되었다.

대한제국은 첫 날에 3명을 배상한 뒤 1주간 배상을 중단했다. 그 중에 에스티가 대한제국에서 홍보를 한 번 했는데, 이를 기점으로 다시 분쟁이 시작되었다. 대마니가 이에 대해서 벌점 20점을 부과하고 에스티를 추방하려 한 것이다. 그러자 에스티는 배상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한제국은 패전국 지위라며 해당 처벌은 무효이며, 대일본제국 신민은 배상 완료 전까지 대한제국의 국내법을 지킬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대한제국 국민들도 이에 대해서 일부 동감하며, 외교적으로 해가 되는 과도한 처벌이라고 뜻을 모았다. 이에 대해서는 밤까지 언쟁이 이어졌다.

트바트칼란드의 개입과 세바스토폴 조약, 프렌트길린 조약

이를 본 트바트칼란드 제국의 황제인 트리는 승전국이라 해도 국내법 무시는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대마니에게 트바트칼란드로 합병될 시에는 대일본제국으로부터 대마니를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에스티가 트리에게 서울 조약의 배상 책임이 트바트칼란드로 승계되냐 물었고, 트리는 합병국은 배상 책임 승계 의무가 없다고 답했고, 에스티는 키이으리아에서 대마니에게 가국계에서 영구히 배척하겠다며 인구 배상을 13명에서 8명으로 줄여줄테니 트바트칼란드로의 합병을 거부하라고 압박했다. 결국 원래도 방장을 넘기는 것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대마니는 트리의 제안을 거절하고, 2월 15일까지 배상을 완료하는 세바스토폴 조약에 서명하고 배상을 재개했다.

이후 트바트칼란드 제국의 황제 트리와 대일본제국의 내각총리대신 겸 육해군대신인 에스티가 회담을 가지고, 트바트칼란드 제국은 해당 사건에 대해서 대일본제국을 지지하고, 모든 간섭을 중단하며, 상호간의 모든 적대적인 행위를 중단하고 금지하는 프렌트길린 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에스티의 질문에 트리는 자신의 과거가 생각나서 대마니를 도우려고 했었다고 회상했다.

2차 전쟁 협박 사건

배상이 계속되던 도중, 대일본제국의 천황 프혁맛은 대마니의 배상 속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독으로 2월 12일까지 배상을 완료하지 않을 시 2차 전쟁을 선포하겠다며 대마니를 겁박했다. 대마니는 이가 부당하다며 거부하고 다시 배상을 중단하고, 프혁맛을 추방했다. 뒤늦게 해당 사건을 확인한 에스티는 프혁맛을 구박하고, 한 번이라도 더 이러한 망동을 저지를 시 내각총리대신직과 육해군대신직을 사임하고 대일본제국을 떠날 것이라며 경고했고, 프혁맛은 월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다. 타 가국인들도 대일본제국이 사실상 에스티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며, 프혁맛의 단독적인 망동을 비판했다.

이후 프혁맛이 사과문을 작성했다. 그러나 대마니는 배상을 재개하지 않았다. 에스티가 다시 대마니에게 배상을 재개할 것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다시 에스티와 대마니간의 키배가 발생했다. 키배에서는 에스티가 승리했고, 에스티가 전쟁을 선포하고 대마니를 가국계에서 완전히 배척시키겠다고 협박하자, 결국 대마니는 다시 배상을 재개하였다.

2차 세바스토폴 조약

원래 서울 조약에는 반드시 가국계 인물이나 컨볼-컨휴계 인물로 채우라는 조항이 없었으나, 에스티는 대마니가 배상을 종료한 뒤 맞방으로 채운 인원이 나가자 에스티는 이를 가국계 인물이나 컨볼-컨휴계 인물로 채울 것을 요구했다. 이후 또다시 언쟁과 협상이 이어지다, 에스티는 대마니가 맞방으로 다시 인원을 채우고, 이후에 해당 인원들이 나가서 인구 손실이 발생해도 묵인하는 대신 자신이 원할 때 언제나 자신과 체스를 둘 것을 요구했고, 대마니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를 문서화하면서 2차 세바스토폴 조약이 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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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으리아 공화국의 대외 전쟁·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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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 참전국 제외
  2. ↑ 가말 압델 나세르의 어록을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