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돈 카자크국 Don kazákskaje Gasudárstva | |||||||||||||||||
|---|---|---|---|---|---|---|---|---|---|---|---|---|---|---|---|---|---|
| 국기 | 국장 | ||||||||||||||||
| S námi Boh!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노라! | |||||||||||||||||
| 상징 | |||||||||||||||||
| 국가 | 조용한 정교회 돈을 흔들고 휘저었다 (Tišiná vskalyhnúla i vzvalnavála tíhyj Praslávny Don.) | ||||||||||||||||
| 국화 | 수레국화 | ||||||||||||||||
| 국수 | 타르판 | ||||||||||||||||
| 역사 | |||||||||||||||||
[ 펼치기 · 접기 ]
| |||||||||||||||||
| 지리 | |||||||||||||||||
[ 펼치기 · 접기 ]
| |||||||||||||||||
| 인문 환경 | |||||||||||||||||
[ 펼치기 · 접기 ]
| |||||||||||||||||
| 정치 | |||||||||||||||||
[ 펼치기 · 접기 ]
| |||||||||||||||||
| 경제 | |||||||||||||||||
| 통화 | 루블 | ||||||||||||||||
| 위치 | |
|---|---|
■ 돈 카자크국 본토 | ■ 영향이 미치던 지역 | |
지도를 불러오는 중... | |
𝗜
개요
돈 카자크국(돈 카자크어: Don kazákskaje Gasudárstva 돈 까자치예 가수다르스트바)는 동유럽과 돈강 일대에 위치한 국가로 수도는 노보체르카스크이다. 행정구역상 돈 카자크국은 로스토프주와 볼고그라드주, 이웃한 소러시아 총독부의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에 위치한 10개의 마을로 나뉘었다.
𝗜
상징
𝗜 국기
| 돈 카자크국 국기 | 전쟁기 | |
|---|---|---|
| 1696~1758 | 1758~ | 1695~1824 |
돈 카자크국은 독립 직후까지 제대로 된 국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빌헬름 1세가 대공으로서 추대되고 나서 강력한 서구화와 근대화의 일환으로 청황적기가 공식 상선기(선박에 게양하는 깃발)로 지정되고 이후 돈 카자크국을 상징하는 깃발로 자리잡았다. 파란색은 돈 카자크인, 노란색은 칼미르인, 붉은색은 나라(돈 카자크국) 혹은 국민들을 상징했다.
캅카스 전쟁으로 돈 카자크국이 러시아 제국의 제후국으로 복속된 이후로는 기존 청황적기에서 청색 방패문이 추가되었다. 의미도 전체적으로 바뀌었는데, 청색은 황제, 황색은 대공, 붉은색은 돈 카자크로 변경되었다.
청색 단색기의 중앙에 방패문을 넣어 만든 깃발은 국기는 아니고, 전능한 돈군의 전쟁기였다. 정복공 빌겔름 치세의 돈 카자크국이 대외확장을 위해 대규모 전쟁을 진행하면서 해당 전쟁기는 전능한 돈군을 대표하는 깃발로서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래서 해당 전쟁기가 폐지되기 이전까지는 공식 국기와 혼용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𝗜 국장
𝗜 국가
𝗜 승리의 천둥이여, 울려라!
𝗜 조용한 정교회 돈을 흔들고 휘저었다
𝗜
역사
𝗜
영토
𝗜
정치
𝗜 중앙정치
돈 카자크국은 건국 이래 1837년까지 대공의 1인 독재, 즉 전제정(Samadéržavije)을 유지했다. 이는 건국 당시부터 돈 카자크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초대 대공이 절대왕정에 대한 선망이 있었는데, 이를 그대로 돈 카자크국에 이식했기에 돈 카자크국의 대공은 입헌군주정과는 궤를 달리하는 권력과 부를 소유했고, 당대 러시아 제국이나 프랑스 왕국과 비슷한 막대한 권위를 휘둘렀다.
이후 정복공 빌겔름 치세에 이르러선, 러시아식 전제정까지 도입해 그 권력에 정점을 찍으면서 기존 전통적인 카자크 원로원인 크러그의 권력을 무력으로 찬탈해, 크러그가 사실상 해체되었으며 내부적으로는 부공의 개혁정책 노선을 유지하였다. 이에 기존 토착세력인 슬라브족들과 돈 카자크인들이 반발하였지만 정교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군주의 종교적 권위를 뒷받침하도록 만들었기에 반란으로는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왕정도 오랫동안 지속하지는 못했다. 캅카스 전쟁과 아조프 조약 이후, 브와디스와프 1세의 치세는 혼란의 연속이였다. 대공은 실정을 거듭하고 있었고, 러시아의 감시 강화와 수탈로 인해 민생은 더더욱 악화되었다. 이에 예밀리안 푸가초프를 주도로 푸가초프의 난을 이르켰다. 결국 푸가초프의 카자크가 노보체르카스크에 진입하는데 성공하면서 브와디스와프 1세를 폐위, 그의 아들인 브와디스와프 2세를 옹립시킨다. 이때부터 절대왕정에서 벗어나게 된다.
본래 아타만(Atamán)은 카자크 유목세계에서 원로원인 크러그에서 선출된 카자크의 대표에 가까운 개념이였다. 하지만 독일계 왕조는 이러한 전통적인 관습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으며 크러그의 전통적인 권한은 존중 하되, 아타만 위에 대공이라는 직책을 만듬으로서 통치 권력의 확보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돈 카자크국에서는 아타만이 수상과 비슷한 의미로 변형되었다. 아타만는 초기에는 상징적인 명예직에 불과했지만, 뒤로 갈수록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게된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로는 유리 샤마린의 정치개혁으로 근대적인 헌법 제정과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설치되었으며 강력한 권한을 가진 원로원인 크러그를 해산하고 입법부에 편입시켰다. 물론 군주의 권한이 여전히 전제적이였기에 언제든지 의회를 해산하거나 통과시킨 모든 법률을 무력화할 수 있었기에, "형식적 입헌군주정(Farmál’naja kanstituciónnaja manárhija)"이라는 비판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러한 애매한 개혁은 이후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격렬한 정치적 분열을 이끌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