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체부르크(구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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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베크왕국국장.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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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베크왕국국장.png
KMS 라체부르크.png
『 구국함救國艦 - Retterschiff 』
KMS 라체부르크
KMS Latzeburg
기본 정보
국가 뤼베크 왕국 국기.png 뤼베크 왕국
소속 뤼베크 왕국 국기.png 뤼베크 왕립해군
함급 로스토크급 구축함
함번 3[Z3]
제원
기준배수량 1,950t
만재배수량 2,500t
전장 119m
전폭 12.1m
표준 흘수 3.7m
만재 흘수 4.3m
최대속력 37노트 (68.5km/h)
항속거리 최대 약 3,000해리
승조원 205명
무장
주포 127mm 50구경장 단장포 5문[1]
대공포 37mm 2연장 기관포 2기, 20mm 단장 기관포 4기
어뢰 533mm 4연장 어뢰발사관 2기[2]
장갑
현측 장갑 15~20mm
갑판 장갑 15~20mm
포탑 장갑 15mm
동력원
보일러 와트너 보일러 4기
주기 2축 추진 기어드 터빈
최대 출력 42,000 shp
기타 디젤 보조 발전기 2기
약력
건조 뤼베크 왕국 국기.png 1934년 10월 20일, 팀멘도르퍼슈트란트
진수 뤼베크 왕국 국기.png 1936년 6월 17일, 팀멘도르퍼슈트란트
취역 뤼베크 왕국 국기.png 1937년 3월 4일, 하일리겐하펜
침몰 뤼베크 왕국 국기.png 1940년 4월 9일, 비스마르
함장 빈센트 말렌테 (Vincent Malente / 초대)
클라우스 리히터 (Klaus Richter / 제2대)
전과
격침 경순양함 1척
상륙정 2척
대파 상륙정 1척
중파 구축함 1척
소파 구축함 2척
기타
자매함 KMS 로스토크
KMS 오이틴
KMS 비스마르
KMS 퀼룽스보른

개요

『 구국함救國艦 』
『 Retterschiff 』

KMS 라체부르크(Königliche Marines Schiff Z3 Latzeburg)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뤼베크 왕립해군의 로스토크급 구축함 3번함이다. 함명의 어원은 現 뤼베크 왕국 라체홀름 주의 주도인 라체부르크.

뤼베크 침공의 비스마르 전투에서 해안포와 협공하여 나치 독일의 9,000t급 경순양함 뉘른베르크를 격침시킨 화려한 전과가 있는 함선이며, 이후 해당 전투에서 크릭스마리네의 구축함 3척에 의해 비스마르 만에서 격침당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설정상 존재하는 군함이다.

함생

1934.10.20 ~ 1940.04.09

건조와 진수, 취역

KMS 라체부르크 처녀항해.png
팀멘도르퍼슈트란트에서 하일리겐하펜으로의 처녀항해를 하는 KMS 라체부르크[3]

1930년대부터 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점점 유명무실해지고, 이에 따라 각국의 해군력 증대가 시작되면서 뤼베크 왕국 또한 국가 차원의 일자리 증진 겸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약화되어 있던 해군력의 증대를 추진하게 된다. 이에 1934년 로스토크급 구축함 프로젝트가 총 5척 건조를 목표로 시작되고, 라체부르크는 그 중 3번함(Z3)로 1934년 10월 20일 팀멘도르퍼슈트란트 조선소에서 건조가 시작되어[4] 1936년 6월 17일 진수, 1937년 3월 4일 뤼베크 왕립해군의 정식 군함으로 취역한다.

뤼베크 침공

비스마르 전투

1940년 4월 9일, 나치 독일이 베저위붕 작전의 일환으로 뤼베크 왕국을 침공하면서 뤼베크 침공이 개전한다. 이 때 하일리겐하펜, 페마른 등 북부 항구에 있던 대다수의 자매함들[5]과 타 군함들은 수도 뤼베크로 이동해 영국의 구출작전 시행을 기다리며 버텼으나, 라체부르크는 독일군이 비교적 일찍[6] 목표로 삼고 공격한 비스마르에 정박해 있었기에 미처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독일군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경순양함 뉘른베르크 격침
뤼베크 침공 비스마르 전투 뉘른베르크 침몰.png
KMS 라체부르크와 해안포의 협공으로 격침당하는 경순양함 뉘른베르크

1940년 4월 9일 오전 7시 31분, KMS 라체부르크는 자신보다 3~4배가량 큰 규모의 함선인 라이프치히급 경순양함 뉘른베르크를 격침시킨다.

사실 이 엄청난 전공은 라체부르크 자체의 능력에 더해 엄청난 행운이 따라준 결과였다. 아래는 당시 경순양함 뉘른베르크의 상황이다.

1. 비스마르 앞바다는 포엘(Poel) 섬과 주변 해안선에 의해 만灣 형태이다. 게다가 당시 뤼베크 왕국의 전쟁대비 작업으로 인해 비스마르 만을 둘러싼 해안선 곳곳에는 해안포들이 다수 배치되어 적함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사방에서 뉘른베르크를 향해 포격하며 뉘른베르크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산발적인 피해를 입히는 사이, 라체부르크가 함포와 어뢰로 결정타를 가한 것이다.

2. 격침 당시 시각은 오전 7시 30분, 날씨도 흐린 데다가 비스마르의 등화관제로 인해 더욱 어두웠다. 물론 해가 뜨고 있는 상태였기에 앞이 안보이는 수준은 아니었으나, 이런 환경은 뉘른베르크가 비스마르 만을 둘러싸고 포진해 있는 뤼베크 왕국의 해안포들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

3. 뉘른베르크는 호위함 없이 비스마르 만에 진입했다. 이는 우연의 일치에 의한 것으로, 당시 크릭스마리네 사령부에서는 슈트랄준트에서 비스마르로 항해하던 뉘른베르크 함대에게 비스마르 만 바깥에서 대기하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상륙병력과 함께 만 내부로 진입하라고 무전으로 지시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뉘른베르크의 통신장비는 모종의 이유로 고장나 있었고, 이 때문에 이 명령을 듣지 못한 뉘른베르크는 단독으로 상륙병력을 이끌고 비스마르 만에 진입한 것이다.
당시 뉘른베르크의 상황

그렇게 나치 독일은 당일 오전 7시 23분 노르웨이에서 침몰한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블뤼허에 더해 단 8분만에 2척의 순양함을 잃게 된다. 이로 인해 해안포의 존재와 뤼베크 왕립해군 함정의 존재[7]를 알아차린 호위함들은 섣불리 비스마르 만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대기했다. 이들은 해안포들이 대부분 무력화된 오후 12시 30분이 되어서야 겨우 비스마르 만으로 진입하여 이곳에 있던 함선이 겨우 구축함 1척뿐이라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한편 뉘른베르크의 침몰으로 얼떨결에 따라왔던 독일의 상륙병력들 또한 라체부르크와 해안포에 의해 대부분 섬멸당하며 1차 상륙이 실패하게 된다. 이에 독일은 슈베린을 점령하고 곧바로 수도 뤼베크로 진격시키려던 육상병력을 비스마르에 투입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결국 뤼베크에 병력이 집결하고 방어태세를 갖추는 데 결정적인 시간을 벌어 준 셈이 된다. 행운이 따른 뉘른베르크의 격침이 전황 자체를 바꾼 것. 이것이 KMS 라체부르크가 현재까지도 뤼베크 왕국의 영웅적 함선으로 기억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뉘른베르크 격침 후 호위함들의 비스마르 만 진입 이전까지 라체부르크는 해안포격과 대공지원 등으로 비스마르의 방어를 적극 지원했으며, 또한 상술했듯 적 구축함들의 만 진입을 해안포 부대와 함께 틀어막아 혼자서 비스마르 만의 제해권을 5시간가량 확보한다.

최후의 결전, 침몰
뤼베크 침공 비스마르 전투 라체부르크 침몰.png
비스마르 만에 진입한 독일 구축함들에 의해 격침당하는 KMS 라체부르크
우리는 우리의 몇 배[8]나 되는 적을 쓰러트렸다.
우리는 단 한 척의 배로 이 도시의 바다와 하늘을 지켜냈다.
우리는 의무를 다했다. 이 죽음에 부끄러움은 없다.
KMS 라체부르크 함장 클라우스 리히터, 적 함대와의 결전 직전 사령부에 보낸 마지막 통신에서.

이후 오후 12시 30분, 2차 상륙 병력과 함께 만 외부에서 대기하던 크릭스마리네 구축함 3척[9]이 비스마르 만으로 진입하자, KMS 라체부르크의 제2대 함장 클라우스 리히터(Klaus Richter)는 위와 같은 통신을 남기고 마지막 결전을 치른다.

결전에서 KMS 라체부르크는 다가오는 Z2 게오르크 티일리의 선수에 어뢰를 명중시켜 중파시키고, Z14 프리드리히 인과 Z20 카를 갈스터에게는 함포를 몇 발씩 명중시키며 격침 직전까지 적 함대에 피해를 입혔다. 그렇게 최후의 저항을 마친 KMS 라체부르크는 1940년 4월 9일 오후 1시 3분, Z20 카를 갈스터에게서 발사된 어뢰에 함선 중앙부를 피격당하고 Z2 게오르크 티일리를 제외한[10] 두 척의 구축함에게 함포 세례를 받은 끝에 비스마르 만의 발피쉬 섬(Walfisch) 남단 1.2km 지점[11]에서 격침당한다. 승조원 205명 중 152명이 사망하고 53명이 생존했다. 구축함 2척에게 집중사격을 받고도 생존자가 비교적 많은 이유는 비스마르 근해의 수심이 비교적 얕기도 하고, 육지와도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침몰했기 때문이다. 생존한 승조원들은 철수하는 뤼베크군을 따라 뤼베크로 탈출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독일에 포로로 잡힌다.

침몰 후

격침 직후인 1940년 4월 9일 오후 1시 30분, 비스마르는 독일에 의해 완전히 점령된다.

뤼베크 침공이 연합국의 전략적 승리·독일의 전술적 승리로 종료된 후, 독일은 비스마르 만의 비교적 얕은 수심으로 바닥에 착저해 있었던 뉘른베르크와 라체부르크를 비스마르 항으로 인양하여 쓸 만한 부품들을 모두 떼어내 크릭스마리네의 부품으로 쓰고, 나머지 부분들은 모두 스크랩한다.

전후

전후 뤼베크 왕국 제14대 국왕 프리드리히 5세에 의해 KMS 라체부르크에는 구국함(救國艦 / Retterschiff)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가 내려졌으며, 자매함 오이틴과 비슷하게 생존한 승조원들에게도 전원 '구국의 영웅' 칭호, 고위 훈장과 높은 명예가 주어지는 등 뤼베크 왕국의 국가적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이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KMS 라체부르크는 독일의 침공에 저항한 뤼베크 왕립해군의 긍지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 비스마르에 관련 기념관과 추모비가 세워지는 등 높은 영광과 인기를 계속 누리고 있다.

실전 기록

참전

• 제2차 세계대전
ㅤ• 뤼베크 침공
ㅤㅤ• 비스마르 전투

전과

격침 대파 중파 소파
CL 1 · LC 2 LC 1 DD 1 DD 2
나치 독일 국기.svg 라이프치히급 경순양함 LK2 뉘른베르크
나치 독일 국기.svg 지벨페리·보병상륙정 각 ×1
나치 독일 국기.svg 지벨페리 ×1 나치 독일 국기.svg 1934년형 구축함 Z2 게오르크 티일리 나치 독일 국기.svg 1934년 A형 구축함 Z14 프리드리히 인
나치 독일 국기.svg 1936년형 구축함 Z20 카를 갈스터

여담

• 이 함선의 설정은 대전기 군함을 매우 좋아하는 뤼베크 왕국의 운영자이자 국왕 제이가 독일의 실존 전함 비스마르크의 사례를 본따 각잡고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영웅적인 함선으로 만들어진 것이다.[12]

관련 문서

• 뤼베크 왕국/설정
• 뤼베크 침공

각주

  1. ↑ 선수 2기, 중앙부 1기, 선미 2기
  2. ↑ 일부는 영국 등에서 수입한 고성능 어뢰관이라는 설정이다.
  3. ↑ 1936년 6월 28일의 모습.
  4. ↑ 당시 뤼베크 왕국에서 군함을 건조할 만큼의 대규모 조선설비를 갖춘 도시는 팀멘도르퍼슈트란트, 비스마르, 하일리겐하펜, 로스토크가 있었다. 그러나 뒤의 두 곳의 경우 당시 가상적국이자 최대 위협이었던 독일과 가깝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군함은 팀멘도르퍼슈트란트와 비스마르에서 건조되었다.
  5. ↑ 로스토크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저항하다 자침한 2번함 KMS 오이틴 제외.
  6. ↑ 첫 목표였던 국경도시 로스토크와 슈베린 다음으로 공격당했다. 로스토크가 완전히 함락되기도 전인 4월 9일 오전 7시경 이미 크릭스마리네 함대와 독일의 1차 상륙병력이 비스마르 앞바다에 도착했다.
  7. ↑ 선술했듯 뉘른베르크의 통신장비가 먹통이었기에 독일 해군은 경순양함을 격침시킨 게 설마 구축함 1척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비스마르에 최소 함대 규모의 왕립해군 함선들이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한 것.
  8. ↑ 라체부르크의 만재배수량은 약 2,500t, 뉘른베르크의 만재배수량은 약 9,000t이었다.
  9. ↑ 1934년형 구축함 Z2 '게오르크 티일리', 1934년 A형 구축함 Z14 '프리드리히 인', 1936년형 구축함 Z20 '카를 갈스터'
  10. ↑ 전술한 선수 부분의 어뢰 피격으로 중파되어 더 이상 라체부르크와 맞서지 않고 비스마르 만 북부로 후퇴하였다.
  11. ↑ 53.9273°N, 11.4284°E.
  12. ↑ 당장 위에 쓰인 클라우스 리히터 함장의 마지막 통신 내용 또한 실제 역사에서 독일 국방군 육군 원수였던 프리드리히 파울루스의 항복 직전 마지막 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경순양함 뉘른베르크의 격침 또한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의 HMS 후드 격침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