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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대전·베저위붕 작전의 일부 뤼베크 침공 Die Invasion der Lübeck | |
|---|---|
| 1940년 4월 11일, 트라베강에서 빠져나가는 뤼베크 왕립해군 함정들을 향해 사격하는 독일 국방군 | |
| 기간 | |
| 1940년 4월 9일 ~ 1940년 4월 11일 (종전 후로부터 +31585일, 86주년) | |
| 장소 | |
| 뤼베크 왕국 전역 | |
| 원인 | |
| 명목상 : 뤼베크 왕국의 나치당 탄압 및 반유대 정책 미동조 실질적 : 나치 독일의 해군력 및 경제력 확보 욕구 | |
| 교전세력 | |
| 지원세력 | |
| - | - |
| 지휘관 | |
| 결과 | |
| 나치 독일의 전술적 승리 / 연합국의 전략적 승리 덴마크·뤼베크 정부 요인 및 해군 전력 일부 탈출 성공 | |
| 피해 | |
| 뤼베크 왕국 : 사상자 1,000여명·구축함 3척·항공기 43대 등 손실 덴마크 왕국 : 구축함 1척 등 손실 영국 : 사상자 30여명 |
나치 독일 : 사상자 600여명·경순양함 1척 등 손실 |
개요
뤼베크 침공은 1940년 4월 9일부터 동년 4월 11일까지 뤼베크 왕국 전역, 특히 수도 뤼베크에서 진행된 나치 독일과 뤼베크 왕국·덴마크 왕국·영국 간의 전투이다.
뤼베크 왕국의 설정 역사에 등장하는 가공의 사건이다.
배경
1939년
1940년
양측 전력 비교
| 뤼베크 왕국 | 독일국 |
|---|---|
| 24,500명[15] | 38,000명 |
• 아직 설정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정확하지 않은 대략적인 수치이다.
육군
• 뤼베크 왕국
| 병력 | 포병장비 | 기갑장비 |
|---|---|---|
| 17,000명[16] | 야포 52문 대전차포 24문 대공포 20문 |
장갑차 12대 경전차 8대 |
• 나치 독일
| 병력 | 포병장비 | 기갑장비 |
|---|---|---|
| 29,000명[17] | 야포 96문 대전차포 48문 |
경전차 약 90대 |
해군
• 뤼베크 왕국
| 병력[18] | 주력함 | 소형함 |
|---|---|---|
| 7,000명 | 경순양함 1척 구축함 7척 |
잠수함 5척 어뢰정 10척 소해함 3척 순찰정 12척 |
• 나치 독일
| 병력[19] | 주력함 | 소형함 |
|---|---|---|
| 8,000명 | 경순양함 3척 구축함 5척 |
잠수함 7척 어뢰정 10척 상륙함 20척 |
공군
• 뤼베크 왕국
| 병력 | 전투기체 | 특수기체 |
|---|---|---|
| 500명 | 전투기 20기 | 정찰기 5기 |
• 나치 독일
| 병력 | 전투기체 | 특수기체 |
|---|---|---|
| 1,000명 | 전투기 30기 폭격기 20기 |
정찰기 10기 |
전개 : 1940년
4월 9일
1940년 4월 9일, 독일군은 뤼베크 왕국 전역에 대한 공격을 개시, 항구·공군기지·해안포대 등 주요 군사시설을 폭격하며 공격을 개시하려 한다. 그러나 직후 히틀러의 긴급 지시로 항구에 대한 폭격은 전격 취소, 다른 곳에 대한 적극적 폭격도 저지된다.
이는 히틀러가 뤼베크 왕국의 해군력을 흡수하고자 했기 때문인데, 뤼베크 왕국은 무역 국가였던 만큼 해상 운송로 보호가 중요했다. 이로 인해 뤼베크 왕국은 전통적으로 국가 규모에 비해 해군의 규모가 꽤 컸고, 특히 1935년 건조를 시작해 폴란드 침공 직전인 1939년 8월 취역한 11,000t급 경순양함 KMS 프린츠 페마른은 뤼베크 왕립해군의 기함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거의 중순양함에 필적하는 거대한 함선이었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고. 또한 1934년형 구축함급으로 구성되어 총 5척이 건조된 2,000t급 로스토크급 구축함 등의 함선들은 당시 수상함 부족에 시달리던 독일 크릭스마리네에게 꼭 차지하고 싶은 전력들이었다. 이러한 함선들의 손상을 막기 위해 히틀러 및 에리히 레더 등 크릭스마리네 사령부는 루프트바페의 적극적인 폭격을 저지했으며, 이는 뤼베크 왕국에게는 큰 행운으로 작용했다.
오전
로스토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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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토크 전투의 전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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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토크 미테(Mitte)로 진주하는 독일군 |
1940년 4월 9일 오전 2시, 독일군이 로스토크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면서 뤼베크 침공이 시작된다.
침공 하루 전 덴마크에서 시작된 독일군의 군사행동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뤼베크 왕립군은 즉각 대응했으나, 이미 포격으로 혼란스러워진 상황에 로스토크 방어 계획의 핵심이었던 바르노프강의 교량 폭파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다행히 바르노프강 하류에 있는 가장 핵심적인 교량은 폭파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로스토크 남부의 교량 2개의 폭파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서 독일군 주력이 이 교량들을 통해 로스토크 남부의 미테(Mitte)로 진주한다. 이로 인해 로스토크 하류에서 이뤄진 독일군의 도하 작전도 당초 계획에 비해서는 잘 막아내지 못했고, 결국 남부 미테(Mitte)와 알트슈타트(Altstadt) 등지에서의 방어선이 돌파되고, 북부 해안에서 독일군의 상륙이 전개됨과 동시에 바르노프강 방어선 또한 붕괴, 뤼베크군은 패배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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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노프 강변에 좌초되어 저항하는 구축함 KMS 오이틴 |
이 때 독일군의 포격으로 로스토크 동항에 정박해 있던 로스토크급 구축함 2번함 KMS 오이틴(KMS Eutin)이 타격을 입고 강변에 좌초, 승조원들에 의해 대공포와 기관포를 동원한 최후의 저항을 펼치며 독일군의 바르노프강 도하를 지연시키는 데 일조한다. 오이틴함은 이후 독일군 대다수가 바르노프강 서안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오전 6시경 독일군에게 접수되지 않기 위해 자침하며 결국 자신의 함급인 로스토크에서 짧은 함생을 끝마치고 만다.
KMS 오이틴이 자침한 오전 6시경 이후 로스토크 시내의 로이터샤겐(Reutershagen) 등에서 시가전을 이어가던 뤼베크 왕립군 잔여 병력은 왕립육군 원수 하인리히 폰 로겐스도르프의 명령에 따라 바트도베란(Bad Doberan) 등에서 지연전을 펼치며 비스마르 방면으로 퇴각했으며, 이로써 뤼베크 침공의 첫 전투는 약 4시간 만에 독일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슈베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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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베린 펠트슈타트(Feldstadt)에서 야포와 대공포로 항전하는 뤼베크군 |
로스토크 전투가 시작된 직후인 1940년 4월 9일 오전 2시 30분경, 로스토크와 비슷하게 독일과의 국경에 접한 뤼베크 왕국의 대도시 중 하나인 슈베린에서도 독일군의 공격이 시작되며 슈베린 전투가 시작된다.
그러나 로스토크 전투와 달리 슈베린에서는 로스토크에서의 소식이 무전을 통해 즉시 전달된 만큼 이전부터 준비했던 포병 자산들을 이용한 전략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다. 또한 슈베린 시가지 자체가 동쪽 방면은 뤼베크 왕국 영내에서 가장 큰 호수인 슈베린 호가, 남쪽과 서쪽 방면은 오스트오르퍼 호(Ostorfer See), 노이뮐러 호(Neumühler See) 등의 크고 작은 호수가 위치해 있는 천혜의 요새였기에 독일군의 발목을 잡아 뤼베크로 진격하는 것을 최대한 늦추는 데 성공한다.
슈베린 전투는 로스토크 전투가 종료된 4월 9일 오전 6시경 이후로도 지속되었으며, 민간인의 피난과 뤼베크군의 순차적 퇴각을 거쳐 오전 8시경 독일군이 노이뮐러 호 북부 회랑과 남부 가튼슈타트(Gartenstadt) 회랑 방어선을 돌파하여 슈베린에 입성하면서 끝이 났다.
한편 슈베린에서 퇴각한 왕립군 병력들은 일부는 비스마르로, 일부는 수도 뤼베크로 이동하여 방어를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
북부 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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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틴에서 중요 자원들을 챙겨 뤼베크로 철수하는 뤼베크 왕립육군 |
노르트하펜 주, 노르트발트 주 등 북부 지역의 경우 페마른·하일리겐하펜 항만의 해군 함정들을 제외하면 지키거나 후퇴할 시간을 벌어야 할 중요한 자산이 비교적 없었다. 이에 따라 이 지역에 주둔하던 뤼베크군의 경우 전쟁 시작 며칠 전부터 시작된 민간인 철수 작업으로 비어 있던 도시에서 남아있던 민간인들과 중요 자원들을 챙겨 뤼베크 방위를 위해 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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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격이 시작된 하일리겐하펜에서 출항해 뤼베크로 향하는 뤼베크 왕립해군 함정들 |
페마른과 하일리겐하펜 등 뤼베크 왕국 북부 항만에 정박해 있던 왕립해군 함정들 또한 빠르게 출항하여 헴멜스도르퍼 운하[20]를 거쳐 뤼베크로 철수한다.
비스마르 전투
로스토크 전투에서 뤼베크 왕립해군의 최신예 구축함 중 하나였던 로스토크급 구축함 2번함 KMS 오이틴이 좌초 끝에 자침하고, 페마른과 하일리겐하펜 등에서 왕립해군의 주 전력이 모두 뤼베크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독일군은 더 이상 동부 지역에 위협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미 모두 준비된 상태였던 비스마르에 대한 공격을 즉각 개시한다.
1940년 4월 9일 오전 7시, 로스토크에서 뤼베크군의 잔여 병력이 저항하고 있을 때 독일군은 로스토크에서 후퇴하려는 뤼베크 왕립육군 병력을 계속 공격하여 비스마르로 후퇴할 수 없도록 발목을 잡았다. 또한 전날 미리 단치히에서 슈트랄준트로 이동 배치했던 라이프치히급 경순양함 2번함 '뉘른베르크'[21]를 포함한 크릭스마리네 함선들을 오전 4시경 출항시킨다. 이들의 호위 하에 독일군 병력을 실은 상륙함이 오전 7시경 비스마르 해안에 상륙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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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토크급 구축함 KMS 라체부르크와 해안포에 의해 침몰하는 경순양함 뉘른베르크 |
그러나 당시 비스마르 항에는 로스토크급 구축함 3번함 KMS 라체부르크(KMS Latzeburg)가 정박해 있었고, 또한 포엘(Poel) 섬과 비스마르 해안에는 해안포가 다수 배치되어 있었다.
이를 알지 못하고 방심한 채 비스마르 만으로 진입한 크릭스마리네의 라이프치히급 경순양함 2번함 뉘른베르크는 곧 사방에서 퍼부어지는 뤼베크군의 해안포 세례와 예상치 못한 KMS 라체부르크의 함포 사격으로 결국 4월 9일 오전 7시 30분경 비스마르 만에서 격침당한다. 이로 인해 크릭스마리네는 단 7분여 전인 오전 7시 23분 오슬로에서 격침당한 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블뤼허(Blücher)[22]에 이어 하루에 순양함 2척을, 그것도 채 10분도 되지 않아 연달아 상실하게 된다.
뉘른베르크의 침몰을 목격한 크릭스마리네의 구축함들은 더 이상 비스마르 만으로 적극 진입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상륙작전 또한 순조로이 전개되지 못해 결국 오후 9시경에 이르러 상륙한 독일군들은 대부분 전멸한다.
상륙이 사실상 실패하자, 독일은 슈베린 전투를 끝낸 후 비스마르 남부의 도르프 메클렌부르크(Dorf Mecklenburg) 인근까지 진주한 육상 병력을 이용하여 비스마르에 대한 지상 공격을 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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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뉘른베르크 격침 후 비스마르 인근 전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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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마르 남단에서 진격하는 독일군에 맞서는 뤼베크 대전차부대 |
슈베린에서 퇴각한 뤼베크군이 도착하고 약 2시간 후인 오전 10시경, 비스마르 남단·동단에서 독일 육군이 진격을 시작한다. 이에 뤼베크군은 비스마르 곳곳의 호수와 시가전, 포병 등을 적극 활용하여 독일군의 진격을 최대한 지연시킨다.
당시 비스마르로 진격하던 독일군은 위의 지도에서 볼 수 있듯 1호·2호 전차를 포함한 기갑병력과 우수한 기동력으로 빠르게 진격하던 차량화보병 병력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뤼베크군의 경우 보병과 대전차포·포병뿐이었다. 이에 뤼베크군은 남단 도로로 진입하는 기갑병력은 대전차포와 보병으로 최대한 틀어막고, 그 사이 호수를 낀 방어선에서 포병들이 포격으로 진격을 막는 방식의 전략을 시행하였다.
이를 통해 독일군은 빠르게 수도 뤼베크로 진군해야 할 귀중한 병력들을 비스마르에서 낭비하게 되었고, 뤼베크군의 끈질긴 저항으로 전투가 시작된 지 5시간가량 지난 오후 12시 30분경이 되어서야 비스마르 시외의 해안포들을 무력화시키고 포엘(Poel) 섬을 점령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야 비스마르 만에 진입할 수 있게 된 크릭스마리네의 구축함들은 그렇게 라체부르크함을 격침시키기 위해 만으로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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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마르 만에 진입한 독일 구축함들에 의해 격침당하는 KMS 라체부르크 |
| 우리는 우리의 몇 배[23]나 되는 적을 쓰러트렸다. 우리는 단 한 척의 배로 이 도시의 바다와 하늘을 지켜냈다. 우리는 의무를 다했다. 이 죽음에 부끄러움은 없다. |
| KMS 라체부르크 함장 클라우스 리히터, 적 함대와의 결전 직전 사령부에 보낸 마지막 통신에서. |
구축함 단 1척으로 적국의 주력함 1척을 격침시키고, 비스마르 만의 제해권을 확보하여 수비군이 육상 전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주고,[24] 심지어 뤼베크 공군이 빈약한 전력으로 인해 제공권을 잡지 못하자 대공사격으로 비스마르에 대한 항공 공격마저 일부분 방어한 로스토크급 구축함 Z3 KMS 라체부르크. 비스마르 방어, 더 나아가 이후의 뤼베크 공방전에까지 뤼베크 왕국에 도움을 준 라체부르크는 해안포가 대부분 무력화되고 적 함대가 비스마르 만에 진입하자 적 구축함 1척을 중파시키고 2척을 소파시킨 끝에 오후 1시 3분 발피쉬 섬(Walfisch) 남단 1.2km 지점[25]에서 독일의 1936년형 구축함 3척의 포격으로 격침당한다. 이 결전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라체부르크(구축함) 문서 참고.
라체부르크함이 격침되고 비스마르 만의 제해권을 뺏기면서 비스마르에서는 독일에 의해 해안포격과 2차 상륙이 전개되었고, 이후 오후 1시 30분경 비스마르 남단의 주요 방어선이던 피어겐회퍼 호(Viereggenhöfer Teich) 지역이 돌파당하며 비스마르는 치열한 전투 끝에 독일에게 점령된다.
이후 오후 2시까지 시내에서 산발적인 시가전이 전개되었으며, 비스마르를 방어하던 뤼베크군 병력의 일부는 서쪽으로 빠르게 철군하여 뤼베크로 후퇴하고 일부는 독일군의 포로로 잡힌다.
비스마르 전투에서의 지연전이 성공적으로 치러지면서 뤼베크 왕국은 독일의 목표인 수도 뤼베크와 해군 함정들의 흡수를 성공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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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마르 전투 직후 전황 |
뤼베크 방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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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뤼베크의 1·2차 방어선[26] |
한편 서부·남부 전선에서는 라체부르크, 라인펠트 등의 도시가 빠르게 점령되며 뤼베크로의 진군이 이루어졌다. 이에 뤼베크에 집결한 뤼베크군 병력들은 이전부터 트라베강 등 여러 강과 하천, 참호선과 요새 등으로 구축되어있던 뤼베크의 방어선을 중심으로 전국에서의 병력 집결 및 영국의 지원 도착까지 시간을 벌며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해내고자 하였다.
뤼베크 1차 공세
라인펠트 서부로 진격한 독일군 선봉대에 의해 4월 9일 정오경 1차 공세가 행해졌으나, 트라베강과 그 지류를 따라 방어시설을 완비한 뤼베크군에 의해 저지당한다.
오후
게릴라 시행, 진격 둔화
독일군은 위에 나와있듯 로스토크, 슈베린, 비스마르 등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최대한 빠르게 진격했다. 이로 인해 뤼베크 왕국 동부 지역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 비스마르 주, 슈베린 주, 로스토크 주 등 동부 주들에서 뤼베크로 탈출하지 못한 뤼베크군 병사들과 민병대에 의해 각지에서 게릴라전이 진행된다. 이로 인해 독일군의 빠른 진격이 점차 둔화되기 시작하고, 4월 9일 새벽·오전에 엄청난 속도로 전개되었던 공세가 오후에 이르러 눈에 띄게 느려진다.
엘베-뤼베크 운하 갑문 개방
4월 9일 오후 3~4시경부터 뤼베크 서부·남부에서 독일군의 본격적인 진격이 시작되자, 뤼베크군은 뤼베크 남부 6.3km 지점의 크룸메세(Krummesse)의 운하 갑문을 완전히 틀어막고,[27] 란카우(Lankau)를 비롯한 운하 상류의 갑문들을 전격 개방하여 뤼베크 남부·서부 저지대의 독일군 진격로를 침수시킨다. 이로 인해 1·2호 전차 및 기동력 높은 차량화 부대를 앞세워 진군하던 독일의 뤼베크 공략 병력들의 진격이 크게 방해받는다.
묄른-베르켄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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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켄틴 인근에서 독일군 병력을 격파하는 뤼베크 왕립군 |
상술한 엘베-뤼베크 운하 갑문 개방을 통한 침수 작전이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4월 9일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에 독일군의 주요 진로 중 하나였던 묄른-베르켄틴 방면에서 진격하던 독일군 병력이 뤼베크군에게 격파당한다. 주요 공격선에서 나름 기갑부대까지 동원하여 진격 중이던 독일군 병력을 격파하고 진격을 잠시나마 저지한 이 사건은 뤼베크 국민들과 병사들에게 사기를 높여주는 영광스러운 승리가 된 한편 독일군에게는 크게 당황할 만한 일이었다.
이로 인해 독일군 내에서도 무차별 폭격을 비롯해 뤼베크 자체를 파괴하는 방안이 거론되었으나, 아직 뤼베크 왕립해군의 수상함과 양질의 항만 시설, 금 보유고를 비롯한 국고를 포기하지 못한 히틀러와 에리히 레더 등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는 당연하게도 뤼베크 왕국에 있어서는 더 큰 행운으로 작용했다.
4월 10일
오전
영국의 지원 개시
실제 역사와 달리 영국은 덴마크에 대한 지원을 시행하였으며, 이에 따라 덴마크는 곧바로 항복하지 않고 민간인 및 주요 인사, 해군 전력의 탈출 시간을 벌기 위한 저항을 시작한다. 이로 인해 덴마크와 노르웨이, 뤼베크로 분산된 독일군의 전력은 실제 역사에 비해 전투력이 낮아진 상태였다.
이에 영국은 독일 해군에게 넘어갈 시 크릭스마리네의 전투력을 증진시켜 영국에 골칫거리가 될 수 있는 덴마크와 뤼베크의 해군 함정들을 자국으로 탈출시키기 위한 작전을 수립하고, 전날의 로스토크 전투와 슈베린 전투에서 뤼베크군의 유의미한 저항이 확인되자 4월 10일 새벽, 뤼베크 방어선 내로 공수부대 300여명을 파병하여 대공 방어 및 도시 방어를 지원토록 한다.
바트 올데슬로에 전투
오전 5시경, 독일군이 라인펠트 서남부의 바트 올데슬로에(Bad Oldesloe)를 점령하고 뤼베크 방어선 서남부 인근으로 진주한다.
팀멘도르퍼슈트란트 공세
4월 10일 오전 11시경, 오이틴 등 북부 지방을 점령하고 뤼베크 방어선 인근으로 진주한 독일군이 헴멜스도르퍼 운하 서안의 팀멘도르퍼슈트란트로 진격하여 점령한다.
4월 11일
여담
• 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모의전 시나리오가 바로 스러진 깃발 아래이다.
관련 문서
각주
- ↑ 뤼베크 왕국 홀슈타인뤼베크 왕조 제14대 국왕
- ↑ 뤼베크 왕립군 총사령관
- ↑ 뤼베크 왕립육군 원수
- ↑ 뤼베크 왕립해군 원수
- ↑ 뤼베크 왕립공군 원수
- ↑ 뤼베크 왕립육군 제2사단장
- ↑ 뤼베크 왕립해군 함대사령관
- ↑ 덴마크 왕국 글뤽스부르크 왕조 제3대 국왕
- ↑ 덴마크 왕립해군 참모차장
- ↑ 영국 왕립해군 함대사령관
- ↑ 나치 독일 초대 총통
- ↑ 나치 독일 서부해군집단사령관
- ↑ 나치 독일 함대사령관
- ↑ 나치 독일 제21군단 사령관
- ↑ 상비군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작으나, 전시 동원을 통해 징집된 병력을 모두 합산한 결과 병력 수가 많아졌다는 설정이다.
- ↑ 2개 사단, 1개 포병대대
- ↑ 3개 사단, 1개 기계화대대
- ↑ 승조원 기준
- ↑ 승조원 기준
- ↑ 가상의 운하. 팀멘도르퍼슈트란트와 뤼베크 시내를 잇는 운하로, 트라베강의 하구가 비교적 동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점을 보강하기 위해 건설되었다는 설정이다. 실존하는 호수인 헴멜스도르퍼 호를 활용한 운하라는 설정이며, 이 호수에서 운하의 명칭을 차용하였다.
- ↑ 실존했던 함선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노르웨이 해역에서 기뢰부설 등의 임무를 맡다가 종전까지 살아남았으며, 이후 소련에 인도되어 훈련함으로 쓰이다가 1960년 스크랩되었다.
- ↑ 실제로 이때 침몰했다.
- ↑ 라체부르크의 만재배수량은 약 2,500t, 뉘른베르크의 만재배수량은 약 9,000t이었다.
- ↑ 다만 여기까지는 해안포와의 협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 53.9273°N, 11.4284°E.
- ↑ 지도의 하천들 중 트라베강 하구 왼편, 팀멘도르퍼슈트란트 시내를 관통하며 흐르는 수로는 실존하지 않는 가공의 운하인 헴멜스도르퍼 운하이다. 이름은 지도에서도 확인되는 운하 중간의 가장 큰 호수에서 따왔으며, 무역도시 뤼베크로의 선박 진입 원활화를 위해 19세기경 개통되었다는 설정이다.
- ↑ 침수작전을 위해 여타 갑문보다 더욱 많은 압력을 버틸 수 있도록 개조된 상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