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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월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건국되었다.
 
1492년 월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건국되었다.
 
== 경제 ==
 
== 경제 ==
월영계국가답게 굉장한 폐쇄성에 광신적인 국가주의, 반공주의를 국시로 삼아왔으며 편집적일 정도로 외부침략을 우려해왔다. 특히 냉전이후 공산주의의 침략을 극도로 두려워하며 대비해 자력갱생의 경제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여 세계적인 중화학공업 대국이자 제조업국가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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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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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계국가답게 굉장한 폐쇄성에 광신적인 국가주의, 반공주의를 국시로 삼아왔으며 편집적일 정도로 외부침략을 우려해왔다. 특히 냉전이후 공산주의의 침략을 극도로 두려워하며 특히 섬나라 특성상 고립되는것을 대비해 자력갱생의 경제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여 세계적인 중화학공업 대국이자 제조업국가화 되었다.
  
냉전덕분에 반공을 국시로 삼았기에 이에 편승하여 역시 강력한 반공정책을 펼치는 월영국과 미국 두나라로부터 상당한 경제지원을 받았다. 무엇보다 쇄국중이었던 월영국이 미국과 통상하려면 무조건 매천을 거쳐야했다. 이는 월영국이 쇄국중에도 매천, 민월과 유일하게 통상을 했기때문이다. 80년대이후 월영국이 공식적으로 쇄국을 포기했지만 여전히 미국-대양주 무역을 매천국의 중계무역에 거의 의존하는 중이다. 그왜에 민월국 상대로 무역과 제조업상품을 판매하며 상당한 이득을얻고있다. 이때문에 매천국은 세계적인 무역국가이며 해운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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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덕분에 반공을 국시로 삼았기에 이에 편승하여 역시 강력한 반공정책을 펼치는 월영국과 미국 두나라로부터 상당한 경제지원을 받았다. 무었보다 쇄국중이었던 월영국이 미국과 통상하려면 무조건 매천을 거쳐야했다. 이는 월영국이 쇄국중에도 매천, 민월과 유일하게 통상을 했기때문이다. 80년대이후 월영국이 공식적으로 쇄국을 포기했지만 여전히 미국-대양주 무역을 매천국의 중계무역에 거의 의존하는 중이다. 그왜에 민월국 상대로 무역과 제조업상품을 판매하며 상당한 이득을얻고있다. 이때문에 매천국은 세계적인 무역국가이며 해운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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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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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국은 세계적인 금은산출국으로 매천열도는 세계의 섬들중에서 단위면적당 금은 산출량이 순위귄내에드는 섬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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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에 세계최초로 연은분리법에 성공한 이래로 금은본위제를 토대로한 전근대 화폐경제체제를 구축한다. 이를위해 세금을 토지세 하나로 통일하고 모든 납세 및 결제는 은화로 통일하여 화폐사용을 강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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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경제 이념적으로는 구 유교의 지나친 소규모 농촌공동체 중심의 검소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지역단위 자급자족 경제 체제를 지양하고 16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대립하던 개신유교내의 경세치용학파와 중상학파를 황제가 무력을 사용하여 통일하고 국가이념으로 영씨왕조 성립이후 이를 체택, 중농-중상주의 병진노선을 추진해 부국강병정책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부국강병책은 높은세율, 잦은백성동원 때문에 국부는 증가할지 몰라도 백성들을 피곤하게 하고 괴롭게 한다하여 구유교에서 금기시하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영씨왕조는 유생들을 파묻고 경전들은 불태워가며 강력하게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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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매천국의 탄탄한 농업생산력을 기반으로하여 상품작물의 재배확대,광산개발,공장제수공업의 대규모 육성, 전국적인 국도망의 개통, 수레보급과 사용 장려, 수운과 운하의 확장및 정비사업 등을 통하여 유통망 형성과 함께 대규모 국가주도 토건을 통해 전국규모 화폐시장경제를 구축하고 국내상업의 진흥과 해양무역의 확대를 장려하여 시중에서 17세기 후반부터 어음발행과 은행업무가 은천,교주 중심으로 시작되면서 지폐발행이 본격화되었다. 즉 신용경제가 원시적으로 출현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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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막대한 상업자본력을 쌓아올려 근대사회로의 맹아를 싹틔우다 개항이후 이를 토대로 근대화와 산업화에 성공했다. 이는 산윌대상들의 자금지원과 조선,항해술이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고 하며 월영국과의 무역과  상업거래도 한몫하였다. 개항이후 2차산업혁명에 편승하며 관치경제체제하 토지개혁과 함께 계획경제를 성공적으로 실시하여 중화학 공업국이 되었으나 50년대 1차내전(매천제위계승분쟁, 매천(좌우)내전)으로 공업시설이 파괴되면서 경제성장과 공업생산력이 한때 둔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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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50년대 후반부터 경제부흥과 정상국가로의 복귀를 국가최고의 지상과제로 삼아 국민의 근면함과 높은 저축률, 체제순응성과 저임금,보호무역정책등과 무엇보다 냉전이 시작되자 대규모 중화학 공업육성정책에 힘입어 공업력을 60년대 초반에 내전이전으로 회복시켰다. 또한 역대 황제들은 가난이 있는곳에 공산주의가 스며든다고 판단하며 군주정에대한 여른악화를 불식시키고자 부의 재분배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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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의 재분배에는 매천인과 신월인만이 그 과실을 맛볼뿐 의령계는 배제되어 사회전반에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하면서 결국 60년대 말부터 곪다가 터져버렸고 80년대 2차내전이 터지면서 의령지역이 쑥대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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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매천은 80년대 거품경제를 만끽했는데 이유는 총리들이 표를 잃는것과 국민사기 저하를 두려워해 전시경제 총동원과 부동산통제정책을 모두 거부해서였다. 그러다 종전과 함께 90년대 버블이 터져버렸지만 전후복구와 평화무드로 그럭저럭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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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종결이후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전후복구를 위하여 건설에 몰빵한탓에 90년대 성장율은 그럭저럭 회복하였으나 이후 의령은 돈먹는 하마가 되었고 오늘날도 매천국의 남북 소득격차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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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70년대 후반부터 중화학공업을 유지하며 IT,BT,금융,우주항공등 첨단및 서비스 산업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그 산업 비중이 이동하고 있는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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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비중은 2015넌 기준 3차산업은 69% 2차산업은 25% 1차산업은 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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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업과 농림수산업이 활발하여 비중은 5퍼센트로 산업국가 치고는 높은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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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8일 (수) 10:15 판

대매천국
Empire of Dae Maecheon
표어넓리이롭게하소서
국가연방찬가
수도매천부
최대 도시매천부
정치
황제영자영
총리
연방참사원의장
연방중추원의장
연방종심재판소장
안우석
엄충식
후쿠야 요이
야쿠트 아이신가이
역사
독립선언(월영국으로부터)1486년
 • 독립승인1490년
 • 정부수립1492년
지리
면적380,940㎢
내수면 비율0.8%
시간대MST (UTC+11)
DST없음
인문
공용어매천어
국민어매천어
지역어의령어, 산월어
인구
2018년년 어림157,820,300명
인구 밀도394.7명/㎢
경제
GDP(PPP)2020년 어림값
 • 전체4,209,131,415,509$
 • 일인당48,603$
GDP(명목)2020년 어림값
통화매천원 (MCW)
기타
ISO 3166-1MAC, MC
도메인.mc
국제 전화+80

개요

매천국(2관)국가에관한 설명

국가상징과 그 유래

국기

청색은 하늘(특히 밤하늘) 혹은 바다를 상징하며 황색은 황권(皇權)과 부귀, 달빛을 의미한다. 쌍학문은 매화와 함께 절개의 상징이다.

국장

국기에들어가는 쌍학문을 사용한다. 단 정부휘장과 황가의 가문장은 매화문장을 쓴다.

국수

국화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며 국명에도 들어가는 매화이다.

국조는 의외로 학이아닌 참매이다.

국목은 국가중점 보호종인 백송나무이다.

국명

梅川은 이나라에서 처음 설립된 도시의 이름이자 수도였으며 여기서 매천국의 국명이 유래되었다.

매천지방에 견씨왕조 초대황제인 태조가 처음들어왔을때 냇물(송암강)과 매화나무가 많다고하여 이곳에 '교주평정사 매천군영부'를 설치한게 유래이다. 이후 매천군영은 매천동영과 매천서영으로 분리되었고 동영은 동영구의 유래가되었으며 서영은 오늘날 서영강의 유래가되었다. 서영강은 현재 메워져서 없어졌고 지명으로만 남아있다.

언어와 언어습관

매천어는 한반도 동남부방언과 유사하다. 매천어는 지역별로 여러 방언이 존재한다.

북부에는 의령어가 쓰이며 의령어또한 여러 방언이 존재한다. 산월어와 매천어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다고 하며 매천어와 다른 문자체계를 자체적으로 사용중이다.

동부 도서부에는 산월어가 쓰인다. 산월어는 표기문자가 없으며 월영어 고대어(고월영어족 동북태평양어파)이기 때문에 같은 월영어족인 매천어와 엄청나게 차이가 나고 서로 못알아들어서 두 지방사람들이 상대방말을 잘하지못하면 서로 만났을때 영어를 쓴다고 한다.

정부체제와 정치

입헌군주제를 표방하나 매천국의 근대화개혁은 황제를 비롯한 위로부터의 개혁이자 황제의 양보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황제권력이 매우 강력한 반입헌군주제 혹은 반전제군주제적 양상을 띈다. 하지만 황제들은 이론과 달리 이런저런 현실적 제약때문에 황제의 전제권력을 마음것 휘두르지 않는다. 매천국은 의회설치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양원제와 의원내각제를 실시중이다.

1991년 연방협약 비준이후 연방제를 실시중이며 각 부,도는 양원제 도의회와 도총리와 내각을 선출한다.

민족

매천인, 의령인, 산월인외 많은 소수민족들로 구성된다.

종교

국교는 양명학 기반으로 국가절대주의와 황제숭배를 골자로 삼는 국가유교를 삼고있으나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매천국은 종교문제에대해서는 유사종교단체가 아닌이상은 관대한편이다.

군사

해군

현재 미국다음가는 해군력을 보유중이다. 이는 소련이 90년대 냉전종료와 함께 경제난으로 대규모 군축을 단행하였고 월영국이 쇄국정책을 포기하면서 군축에 들어가자 세계2위의 해군력을 가지게되었다.핵보유국으로 미국의 반대를 월영국의 실드로 무마시켰다고 한다.

육군

섬나라인지라 육군력이 약할것 같지만 매천국은 존속내내 본토에서는 소수민족들 특히 의령인과 400년이상을 크고작은 육전을 치뤄왔으며 근대이후로는 식민지 독립운동진압과 2차대전과 월남전, 1,2차내전의 참전국이므로 실전경험이 매우 풍부한군대이자 강력한육군국중 하나로 평가받는다.특히 북부지역은 산악지형에 섬이라는 특성에다가 강력한 의령지역 성들을 공략해야하는 공성전의 전통때문에 오늘날까지도 기갑전력보다는 포병전력과 교리가 매우 발달했다.

공군

아시아권에서 가장먼저 공군을 창설한 국가이며 현재 월영국과 함께 유이하게 아시아에서 전략폭격기를 운용하는 국가이다. 본디 공군은 육군을 근접지원하는 하늘의 포병으로서 운용되었으나 2차대전 무렵 항공기술 발달로 공군또한 발전했다.이란,월영과 함께 F-14를 공군에서 운용하는 국가이다.

역사

1492년 월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건국되었다.

경제

개요

월영계국가답게 굉장한 폐쇄성에 광신적인 국가주의, 반공주의를 국시로 삼아왔으며 편집적일 정도로 외부침략을 우려해왔다. 특히 냉전이후 공산주의의 침략을 극도로 두려워하며 특히 섬나라 특성상 고립되는것을 대비해 자력갱생의 경제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여 세계적인 중화학공업 대국이자 제조업국가화 되었다.

냉전덕분에 반공을 국시로 삼았기에 이에 편승하여 역시 강력한 반공정책을 펼치는 월영국과 미국 두나라로부터 상당한 경제지원을 받았다. 무었보다 쇄국중이었던 월영국이 미국과 통상하려면 무조건 매천을 거쳐야했다. 이는 월영국이 쇄국중에도 매천, 민월과 유일하게 통상을 했기때문이다. 80년대이후 월영국이 공식적으로 쇄국을 포기했지만 여전히 미국-대양주 무역을 매천국의 중계무역에 거의 의존하는 중이다. 그왜에 민월국 상대로 무역과 제조업상품을 판매하며 상당한 이득을얻고있다. 이때문에 매천국은 세계적인 무역국가이며 해운국가이다.

경제사

매천국은 세계적인 금은산출국으로 매천열도는 세계의 섬들중에서 단위면적당 금은 산출량이 순위귄내에드는 섬중 하나이다.

​이덕에 세계최초로 연은분리법에 성공한 이래로 금은본위제를 토대로한 전근대 화폐경제체제를 구축한다. 이를위해 세금을 토지세 하나로 통일하고 모든 납세 및 결제는 은화로 통일하여 화폐사용을 강제하였다.

​또한 경제 이념적으로는 구 유교의 지나친 소규모 농촌공동체 중심의 검소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지역단위 자급자족 경제 체제를 지양하고 16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대립하던 개신유교내의 경세치용학파와 중상학파를 황제가 무력을 사용하여 통일하고 국가이념으로 영씨왕조 성립이후 이를 체택, 중농-중상주의 병진노선을 추진해 부국강병정책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부국강병책은 높은세율, 잦은백성동원 때문에 국부는 증가할지 몰라도 백성들을 피곤하게 하고 괴롭게 한다하여 구유교에서 금기시하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영씨왕조는 유생들을 파묻고 경전들은 불태워가며 강력하게 추진한다.

​이로서 매천국의 탄탄한 농업생산력을 기반으로하여 상품작물의 재배확대,광산개발,공장제수공업의 대규모 육성, 전국적인 국도망의 개통, 수레보급과 사용 장려, 수운과 운하의 확장및 정비사업 등을 통하여 유통망 형성과 함께 대규모 국가주도 토건을 통해 전국규모 화폐시장경제를 구축하고 국내상업의 진흥과 해양무역의 확대를 장려하여 시중에서 17세기 후반부터 어음발행과 은행업무가 은천,교주 중심으로 시작되면서 지폐발행이 본격화되었다. 즉 신용경제가 원시적으로 출현한것이다.

​이후 막대한 상업자본력을 쌓아올려 근대사회로의 맹아를 싹틔우다 개항이후 이를 토대로 근대화와 산업화에 성공했다. 이는 산윌대상들의 자금지원과 조선,항해술이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고 하며 월영국과의 무역과 상업거래도 한몫하였다. 개항이후 2차산업혁명에 편승하며 관치경제체제하 토지개혁과 함께 계획경제를 성공적으로 실시하여 중화학 공업국이 되었으나 50년대 1차내전(매천제위계승분쟁, 매천(좌우)내전)으로 공업시설이 파괴되면서 경제성장과 공업생산력이 한때 둔화되었다.

​하지만 50년대 후반부터 경제부흥과 정상국가로의 복귀를 국가최고의 지상과제로 삼아 국민의 근면함과 높은 저축률, 체제순응성과 저임금,보호무역정책등과 무엇보다 냉전이 시작되자 대규모 중화학 공업육성정책에 힘입어 공업력을 60년대 초반에 내전이전으로 회복시켰다. 또한 역대 황제들은 가난이 있는곳에 공산주의가 스며든다고 판단하며 군주정에대한 여른악화를 불식시키고자 부의 재분배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부의 재분배에는 매천인과 신월인만이 그 과실을 맛볼뿐 의령계는 배제되어 사회전반에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하면서 결국 60년대 말부터 곪다가 터져버렸고 80년대 2차내전이 터지면서 의령지역이 쑥대밭이 되었다.

​반면매천은 80년대 거품경제를 만끽했는데 이유는 총리들이 표를 잃는것과 국민사기 저하를 두려워해 전시경제 총동원과 부동산통제정책을 모두 거부해서였다. 그러다 종전과 함께 90년대 버블이 터져버렸지만 전후복구와 평화무드로 그럭저럭 극복한다.

​내전종결이후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전후복구를 위하여 건설에 몰빵한탓에 90년대 성장율은 그럭저럭 회복하였으나 이후 의령은 돈먹는 하마가 되었고 오늘날도 매천국의 남북 소득격차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 70년대 후반부터 중화학공업을 유지하며 IT,BT,금융,우주항공등 첨단및 서비스 산업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그 산업 비중이 이동하고 있는중이다.

​산업비중은 2015넌 기준 3차산업은 69% 2차산업은 25% 1차산업은 6%이다.

광업과 농림수산업이 활발하여 비중은 5퍼센트로 산업국가 치고는 높은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