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

개요

부르주아란 직역하면 '성벽 안에 사는 사람'이란 말로서, 중세에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 가리키던 말이었으며, 근대 이후로는 일반적으로 자본가 계급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원

역사

구서구권

초기

성장

귀족과의 대립

유산계급화

비유럽권

비서구권

특징

비판

부르주아에 대한 풍자.jpg

"우리가 자본가들을 목매달을 때마다 자본가들은 우리가 사용할 밧줄을 팔것이다."
이오시프 스탈린

이러한 부르주아 중심의 사회구조가 생겼지만 막상 상류층으로 떠오르게 된 부르주아들도 당시 노동법이 미비했던 상황을 이용해서 하층민들을 열심히 착취해먹고, 그렇게 착취하면서 얻은 이득을 독과점하여 호의호식하며 하층민을 멸시하는 것을 보면 전시대의 봉건귀족들과 크게 다를바 없는 행태를 보여주었다. 사회주의가 그다지 커지지 못했던 미국만 해도 일반인들한테서 이들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 커져서 강도 귀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이는 다른 나라들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야경국가론이 퍼지던 시절이라 사회복지는 미비하여 어린애들도 돈을 벌기 위해서 험한 일을 했고, 죽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으며, 일반인들도 하루 12시간에 달하는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돈을 벌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시대상 자체가 이렇다보니 "기껏 귀족 하나 몰아냈더니 또 다른 귀족들이 나타나서 거들먹거린다."며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는 사회주의, 특히 반(反)부르주아 중심 사상을 외친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나 조르주 소렐로 대표되는 생디칼리즘, 거기서 영향을 받은 베니토 무솔리니와 아돌프 히틀러의 파시즘·나치즘과 같은 여러 대립성 이념들이 탄생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부르주아층의 사회 주도 초기엔 이렇다 할 제제장치가 없었고 어렵게 민주주의를 얻어냈기는 했지만 아무리 세상이 뒤엎어졌다고 해도 당장 빈민층들에게까지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까닭에[1] 부르주아층이 사실상 귀족이나 다름없는 막강한 권한을 누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당연시 되는 여성투표권도 당시에는 급진적인 담론을 취급받을정도였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수없이 다른 풍속과 전통을 가진 지방의 관습법이 굉장히 강했고, 지역 유지들 중심으로 돌아갔던 근대 이전 중세 유럽 사회는 봉건적 지주의 권력이 원칙적으로는 (역사학적으로 낭설이라 해도) 초야권 같은 루머가 생길 만큼 강력했지만 실제 지배권의 행사에서는 종교적 제약, 군주나 이웃 영주들과의 경쟁, 주민들의 집단 행동 가능성 같은 수많은 현실적 제약 탓에 봉토 내 영민들에게 나름 배풀면서, 근대적 이권 관계를 초월한 지역적 유지로서 명망을 가꾸지 않으면 그 지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애초에 중세의 봉건제 자체가 아래로부터 수렴적으로 형성된 시스템이었고, 수 많은 자잘한 봉건 영주들이 특산물, 농토, 인구를 가지고 경쟁하는 와중에 독보적인 폭정을 펼치면 바로 주민들이 다른 영주의 침략이나 상속을 사주하든지, 아님 아예 왕한테 직접 가서 실질적으론[2] 현지민들의 자치를 보장하도록 청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도 산업화 이전 인간들은 대부분 땅파먹고 살아야 하니 휴경기엔 일하고 싶어도 쉬어야 했고, 비가 와도 마찬가지였다. 인간 노동력의 착취 자체가 기술력의 한계에 묶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오히려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동시에 구시대의 정치적, 제도적 보호기제도 자유주의 혁명으로 인해 사라지면서 유럽의 빈민과 일반 민초들에게 본격 헬게이트가 열렸다. 땅 파먹고 살던 아버지, 할아버지대 보다 평균 연령, 건강 수준, 삶의 질이 오히려 바닥을 치게 된 산업 혁명기 영국 노동자들의 모습은 이후 후발 산업화 국가에서 수없이 되풀이되었으며, 부르주아들이 주장한 자유의 이름 아래 오히려 상상도 못했던 인간 소외와 착취의 수라장이 펴지는걸 목도한 유럽 사회에서 기나긴 정치적, 사상적 의미를 남겼다. 당장 좌파 쪽에서 역사적으로 인민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체제를 기만이라며 부정, 배격하는 자세도 이런 시대적 유산이 발달한 것이다. 반대로 보수 쪽에선 비스마르크의 국내 정치가 상징하듯 오히려 빈민, 노동자 계급과 연대하며 전통적인 혈통 귀족층과 노동 계급 사이에 끼어 있던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을 샌드위치로 눌러버리려는 경향이 발달했다. 이렇게 프랑스 혁명 이전 봉건적 사회 질서로의 희귀를 주장하던 반동주의자들, 생활 기반을 잃어버리고 도시 빈민화된 노동 대중의 동맹은 전간기 파시즘의 부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만큼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에 대한 이중성과, 당장 봉건적 규제가 철폐되자마자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노동 계급을 착취하려고 했던 모습은 종종 자신들의 밥줄인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반발 그 자체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3]

재미있는 건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하거나 전근대 사회에서 역성혁명을 주도한 인물들이 정작 그 부르주아 출신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4][5]

부르주아 출신 운동가들은 자신의 사상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강해서 독선과 극단주의에 빠질지언정 자기 진영을 배신하고 전향하는 사례는 프롤레타리아 출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들은 그 특성상 순간적인 정열이나 억압에 대한 증오와 같은 감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그 이론을 고찰할 여유가 있기에 더욱 자신의 사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극우로 대표되는 파시즘이나 극단민족주의에서도 자본가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 국가나 민족공동체를 중시하는 극우 입장에서는 자본가들이 자신들 이익을 위해서 집단을 망치거나 심지어 타국이나 반체제 조직과 결탁할 수도 있는 위험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시장과 자본가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자본가나 기업이 국가나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서 사회공익을 망치는 것나 공권력에 도전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좌익처럼 사회 전체 이익을 위하여 자본가들 권리를 제재하기도 한다. 이는 현재 중국과 러시아 청년세대가 정권의 권위주의를 지지하는 이유와 상통한데 우경화된 두 국가의 청년세대는 시진핑과 푸틴의 대표되는 권력자가 자본가의 독주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보는 탓이 크다.

여담으로 일부 자본가들은 투기, 횡령, 임금체불, 탈세 등을 자본주의 원칙이라고 주장하나, 애덤 스미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 경제학자들은 이를 범죄로 주장하지 자본주의 원칙이 아니며 원칙을 어긴 자들은 엄하게 처벌할 것을 주장했다. 자본가 비판 항목이 생긴것도 불법적인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돈을 벌려는 일부 자본가에 대한 비판이지 모든 자본가에 대한 비판이 아님을 주의하자. 오히려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한 애덤 스미스는 독점자본과 시장질서를 해지는 일부 자본가의 범죄는 시장질서를 파괴하는 심각한 범죄로 보았고 이들에 대한 극형도 주장하였다.[6]

문화

각주

  1. ↑ 실제 영국에서 빈민층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건 1885년의 일이며, 프랑스에서는 1848년 혁명으로 왕정 자체가 폐지되고 나서야얼마 뒤에 황제가 나오게 되지만 빈민층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사실 빈민층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진작에 투표권이 있었던 북유럽 지역(이쪽은 날씨가 추워서 농사짓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농민층의 지위가 높았다.)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19세기 중반-20세기 초반에 들어서야 보통선거권(남성)이 부여되었다. 여성투표권이 부여된 건 그 이후의 일이고...
  2. ↑ 왕은 멀리 있으니 왕의 직할지로 넘어가는 형식으로
  3. ↑ 반대로 국가개입을 반대하던 자본가들이 스스로 국가개입을 요구하는 모순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바로 본인들의 위기 때다. 평소 시장만능주의를 외치던 월가가 막상 본인들이 부도위기에 빠지자 정부에 손벌려 도움을 요청한 사례가 많다.
  4. ↑ 주원장 같은 예외 사례를 제외하면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남들보다는 나은 학식은 갖춘 경우가 많다. 가령 혁명의 아이콘으로 유명한 체 게바라도 지역 유지 출신이였다. 공산주의 운동의 거두인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심지어 마오쩌둥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렇게 형편이 넉넉한 부르주아 출신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집안 형편이 가난해서 신학교에 진학해야 했던 이오시프 스탈린 정도... 하지만 스탈린 역시 아버지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빈민층과는 학식이 차원이 달라서 다른 빈민층들과 동등한 수준은 아니었다. 정작 머리는 좋았지만 술에 쩔어 아들을 두들겨 팼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부르주아들은 남들보다도 교육을 많이 받은 만큼 남을 따르게 만드는 통솔력, 설득력, 사상, 현상을 분석하는 거시적 안목, 사회·정치적 운동을 지속해나갈 경제력 등을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5. ↑ 예외적으로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사령관이었다가 집권한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졸 학력으로 노동운동을 하다가 나치에 대항해 빨치산 투쟁을 한 진짜 프롤레타리아였고, 집권 이후에도 서민 생활을 하며 자식들도 그냥 공장 노동자였다고 한다.
  6. ↑ 애초에 친기업 정책과 친시장 정책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파 자유지상주의/옹호와 비판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결국 자유를 침해하는 주체와 객체가 누구인지는 일절 중요하지 않고, 그저 자유를 침해하는 자는 그 위치가 뭐가 되든 간에 반드시 처벌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