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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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국기.png 사우디아라비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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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아라비아 왕국
[1] ٱلْمَمْلَكَة ٱلْعَرَبِيَّة ٱلسَّعُوْدِيَّة
Kingdom of Saudi Arabia
width=80%width=55%
국기국장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محمد رسول الله
하나님 이외의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
상징
국가군주를 찬양하라
النشيد الوطني السعودي
국화대추야자
Date Palm
역사
#black,#ddd 네지드 왕국-독립
#black,#ddd 건국 1926년 1월 8일
#black,#ddd 승인 1927년 5월 20일
#black,#ddd 통합 1932년 9월 23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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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리야드(الرياض / Riyadh)
최대도시제다(جدة / Jeddah)
면적2,149,690 ㎢
내수면 비율0.7%
접경국요르단 국기.png요르단, 이라크 국기.png이라크, 쿠웨이트 국기.png쿠웨이트, 카타르 국기.png카타르, 아랍에미리트 국기.png아랍 에미리트, 오만 국기.png오만, 예멘 국기.png예멘, 바레인 국기.png바레인[2]}}}}}}}}}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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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34,814,000명(2019년) / 세계 41위
인구 밀도15.92명/km^^2^^(2019년) / 세계 174위
출산율2.04명(2018년) / 세계 111위
기대 수명74.08세(2018년)[3] / 세계 93위
HDI0.857[4]
민족아랍인[5]
공용 언어아랍어
공용 문자아랍 문자
국교이슬람(와하브파)
군대사우디아라비아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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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단일국가, 전제군주제
민주주의 지수167개국 중 159위[6]
국왕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세자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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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목 GDP$7,792억 8,900만(2019년)
1인당 명목 GDP$22,865(2019년)
GDP(PPP)$1조 8,985억(2019년)
1인당 GDP(PPP)$55,704(2019년)
화폐단위리얄
신용 등급Moody's A1
S&P A-
Fitch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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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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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연호이슬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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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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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남한 단독수교(1962년)
국제연합(UN) 가입1945년 10월 24일
무비자 입국 가능기간한국→사우디아라비아 : 불가능
사우디아라비아→한국 : 30일
주한 대사관서울특별시 용산구 녹사평대로26길 37}}}}}}
ccTLD
#black,#ddd .sa
국가 코드
#black,#ddd 682, SAU, SA
국제 전화 코드
#black,#ddd +966
여행경보
철수권고사우디-예멘 국경 인근 180km 지역 [7]
특별여행주의보철수권고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8]
사우디아라비아 국기.png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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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틀:영상 정렬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전제군주제 국가다. 수도는 '정원'이라는 의미의 리야드(الرياض, Riyadh).

과거에는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었다. 지금은 베네수엘라, 미국, 러시아 등에 밀리지만, 그래도 OPEC(석유 수출국 기구)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이다. 비록 채굴량에서는 아주 약간 밀리게 됐지만 사우디의 석유 채굴 원가는 다른 산유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국토면적은 약 215만㎢. 세계에서 12번째로 넓은 국가이자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넓은 국가이다.[9] 아랍 연맹에서는 알제리(약 238만㎢)에 이어 두 번째로 넓고 아시아에서도 중국, 인도, 카자흐스탄에 이어 4번째로 넓은 나라이지만[10] 온통 사막이라 사람이 살 만한 땅은 좁은 편이다.

거주 인구는 약 3,300만 명(2017)으로 중동에서 사우디의 입지와 영토 면적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적은 편이다.[11] 이 중 외국인 비율이 33%가량 되며 그중 인도인이 250만 명으로 가장많다. 서남아시아에서는 이란(약 8200만)과 이라크(약 3800만)에 이은 규모이며 1950년대 당시 인구가 채 400만이 되지 않는 312만에 불과했던 걸 생각하면 인구 증가율이 엄청난 나라이다. 1인당 평균 식구 수가 6.3명으로 세계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인구 밀도는 11.5명/㎢으로 아라비아 반도 나라들이 다 그렇듯이 꽤 낮다.

GDP는 20위 정도지만 IMF 투표권 12위, 외환보유고 4위, 국방비 순위는 3위 수준이다. (다만 연합뉴스 기사에서는 4위라고 한다.)

국가 상징

국명

정식 국명은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المملكة العربية السعودية, al-Mamlakah al-‘Arabiyyah as-Su‘ūdiyyah)이며 '사우드 가문의 아랍 왕국'이라는 뜻이다. 간단하게 사우디(السعودية, as-Su‘ūdiyyah)로 부르기도 한다. 아라비아는 물론 아랍에서 나온 말이지만 아랍의 어원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국기

사우디아라비아 국기.png
  • 국기에 쓰인 아랍어 구절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محمد رسول الله 알라 이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라는 뜻으로 이슬람의 유일신 신앙 고백인 샤하다이다.[12] 국기에는 술루스체(ثلث)로 쓰여 있다. 이슬람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구절이기 때문에 사우디에선 국기를 함부로 게양하지 않으며, 조기로 게양할 수도 없다. 또한 문구가 뒤집혀서 보이지 않도록 국기를 만들 때 같은 도안을 두 장 프린트해서 안쪽끼리 맞대 박음질해 만든다.[13] 즉 국기의 뒷면이 앞면과 동일하다(대부분의 나라는 뒷면이 앞면의 거울상).
  • 샤하다 아래에 있는 검
와하브 왕국의 국왕 이븐 사우드가 추가한 것으로 잠정적으로 알라와 이슬람 율법을 수호하고 이교도(기독교, 유대교 등 적대세력)로부터 알라와 이슬람을 사수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국기를 게양할 때 항상 검날 끝은 깃대 방향으로 위치한다. 따라서 뒷면은 앞면의 검이 뒤집힌 형태이다.
이슬람에서 신성시하는 색으로, 전승에 따르면 천국에서 사람들이 녹색 옷을 입는다고 한다. 이슬람 국가들의 국기를 보면 녹색이 들어간 경우가 많다. 심지어 카다피가 쫓겨나기 전의 리비아 국기는 아무런 도안 없이 그저 녹색이었고, 지금도 국기 아랫부분은 녹색이다. 아랍 국가들은 녹/적/흑/백 4색의 범아랍색을 기본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아랍 혁명) 당시 쓰던 깃발을 기본으로 하고, 사우디가 4색기를 쓰지 않음은 아랍 혁명 세력을 이라크, 요르단으로 밀어내고 건국했기 때문이다.

국가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국가는 النشيد الوطني السعودي‎ (an-Našīd al-Waṭanī as-Saʻūdī‎,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이다. 본래는 가사 없는 국가였으나 1984년에 이브라힘 하파지(إبراهيم خفاجي)의 가사가 공식 채택되었다.

역사

틀:서아시아의 역사

고대

3억년 전 판게아 시절에는 지금처럼 덥지도 않고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한 푸른 땅이었다. 하지만 대륙이 이동하면서 국토의 거의 대부분이 황량한 사막(아시아 최대의 사막인 룹알할리 사막과 네푸드 사막, 다흐나 사막 등 분포)과 구릉지역이 되었고 인구도 별로 없어서 사라센 제국 이전에는 통일된 국가가 성립된 적이 없었다. 그냥 토후 부족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낙타 끌고 장사해 가며 하루 먹고 사는 헐벗은 동네였을 뿐.[14] 남부지방과 특히 중요한 메카, 메디나 지역은 유대교를 믿던 힘야르 왕국의 세력권이었는데, 무함마드가 출생하기 약 반세기 전에 악숨 왕국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이후 한동안 악숨 왕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악숨은 가혹한 통치로 인한 반발 등으로 영토를 유지하지 못하고 홍해 너머로 다시 쫓겨간다. 이후는 힘의 공백지대가 되어 소규모 부족들과 도시들이 난립하는 각축장이었다. 아무튼 이 지역은 토착 신앙과 함께 유대교(힘야르 왕국), 콥트교(악숨 왕국), 네스토리우스교(로마로부터의 망명자) 등이 병존하고 있었으므로 아브라함계 종교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이는 곧이어 등장하는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일으키는 일종의 토대로 작용하였을 것이라 추측된다.

중근세

그러다가 무하마드이슬람이 아랍 반도 및 전 중동의 역사를 바꾸었다. 무함마드 시절부터 압바스 왕조까지는 무함마드가 이 지역 대상들의 종교를 통합한 이래 쭉 영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 페르시아, 남부 해안지대에 번성하던 토후국들, 오스만 제국 등등 이 지역을 지배했다고 할 수 있는 국가들은 있었으나 뭐가 나는 것도 아니고 별 쓸데가 없는 사막 땅이었기 때문에 메카메디나 빼고는 아무도 신경을 안 썼다.[15]

실제로 아라비아 지방을 정복한 역대 왕조들은 그냥 토착 제후들이 원래 하는 것처럼 자기 마을을 다스릴 수 있도록 했다. 그나마 메카와 메디나는 신경썼다는 것도 이집트 맘루크 왕조든 오스만 제국이든 그냥 딱 형식적인 정복자들의 종교적 이데올로기 완충에게 도움이 될 만큼만 신경을 썼다지 실질적인 성스러운 도시 지방, 즉 헤자즈 지방의 행정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인 하심 가문 아래 자치로 이루어졌다. 아라비아 반도는 이슬람의 고향이지만 막상 이슬람 왕조들 입장에서도 정말 보탬이 되는 건 없는 주제에 사회 정치적으로는 악에 바친 베두인 씨족들이 꽉 잡고 있으며 한번 잘못 건드리는 벌집이 되는 골치아픈 지방이었다. 따라서 막상 역대 이슬람 제국들도 정통 칼리파 시대부터 훨씬 더 부유한 시리아, 이집트 일대를 점령하자마자 여기 있는 다마스쿠스, 알레포, 바그다드, 카이로 같은 유수의 대도시들이 이슬람 문화, 행정,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슬람 제국들의 역대 중심지는 종교, 정치 집단으로서 이슬람 자체가 팽창하면서 현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튀르크인들의 진주와 함께 아나톨리아, 나아가 오스만 제국때는 이스탄불, 동방으론 타브리즈, 이스파한 같은 페르시아나 인도의 델리 같은 다양한 장소로 확장했으나 아라비아 반도는 현대 예멘사나, 아덴 같은 무역 도시 몇개 빼곤 시종일관 이슬람의 성지란 허울좋은 타이틀 빼면 이슬람 세계 내에서도 완전 뒷전이었다. 세금 바치는 사람만 달라질 뿐 이전까지 별다를 바 없는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으나, 와하비즘의 열풍이 불면서 아라비아의 역사는 역동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근대

  • 디리야 토후국(사우디 제1왕국)의 건국
1744년 종교학자 압둘 와하브와 토후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가 동맹전선을 결성하고 디리야[16]에 국가를 건설했다. 오스만 제국은 별 관심을 두지 않았고, 실제로 약 40년 동안 사우드의 영토는 디리야 근처의 아주 조그만 땅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우드는 그동안 칼을 갈며 병사들을 양성했고, 1780년대부터는 포풍 빠른 속도로 아라비아를 정복하여 1805년에는 메카와 메디나까지 정복한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오스만 제국은 이집트 속주 군대를 보내 1814년 전쟁을 선포하고 1818년 사우드 군은 패배하여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꿈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만다.
  • 네지드 토후국(사우디 제2왕국)의 건국
그러나 사우드 가문은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1824년 투르키 이븐 압둘라가 다시 독립국가를 선포하고 아라비아 재정복을 시도하였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오스만 제국은 맛이 가기 시작했고, 이 틈을 타 디리야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웬만한 넓이의 영토를 거느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사우드 가문의 역사 깊은 라이벌 가문인 라시드 가문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1891년 망한다. 아라비아의 판도는 오스만의 지원을 받은 라시드 가문의 자발 샴마르[17]에게 넘어갔다. 사우드 가문은 오스만령 이라크와 쿠웨이트로 도망가 후일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18]
  • 리야드 토후국(사우디 제3왕국)의 건국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통일
파일:Arabia 1905-1923.png
1902년 사우드 가문의 압둘 아지즈가 하일 토후국으로부터 리야드 지방을 탈환해 세 번째 독립국가를 건설한다. 압둘 아지즈는 1913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알 하사 지역과 카티프를 빼앗아 영역을 확대했고, 한참 티격태격하던 자발 샴마르 토후국(하일 토후국)을 제1차 세계 대전에 패전한[19] 틈을 타서 공격하여 1921년에 완전히 병합한다. 그 이후 자신감에 부푼 압둘 아이즈는 술탄을 자칭하며 국명을 리야드 토후국에서 네지드 술탄국으로 바꿨다.
한편 하심 가문의 후세인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게서 맥마흔 선언으로 아랍의 독립 약속을 받아 1916년에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켰다.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은 후세인의 차남 압둘라를 요르단의 왕으로, 삼남 파이살을 이라크의 왕으로 각각 임명했으며, 후세인 본인은 메카와 메디나를 거점으로 한 헤자즈 왕국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후세인은 아랍 통일 왕국을 세워주겠다던 영국의 처음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1924년 스스로를 모든 무슬림의 칼리프로 선언했다. 이는 많은 반발을 불러왔고, 같은 해 결국 사우드 가문의 압둘 아지즈가 후세인을 공격했다. 후세인은 키프로스를 거쳐 차남이 다스리던 요르단으로 도망갔고, 헤자즈의 왕위는 그의 장남 알리가 계승했으나 1년 만에 압둘 아지즈에게 정복당하고 이라크로 추방되었다. 압둘 아지즈는 네지드-헤자즈 이중 왕국을 다스리다가 1932년에 두 나라를 통합해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선포하고 초대 왕이 되었다. 1934년에 아라비아 반도 남부의 아시르 지방을 합병하고 지금의 국경을 완성했다.

현대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고 나서 6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석유가 발견되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근성의 사우드 왕가가 아니었다면 독립을 포기했을 것이고, 식민 상태에서 석유가 발견되었으면 지금의 국가가 아니라 헬게이트가 되었을 것이다' 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왕가에 대한 지지율이 매우 높다.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로또급 신세 역전을 한 계기는 누가 뭐래도 석유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1938년 미국계 석유회사들이 동부 담맘 지역에서 처음으로 석유를 채굴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부터 이미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밀접한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33년 세워진 사우디 최대의 석유회사인 '사우디 아람코'(SAUDI ARAMCO)의 이름이 'SAUDI ARabian-AMerica oil COmpany'에서 나왔다. 본인들 역시 석유 개발 기술력을 타국에만 의존하려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노하우를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대 파이살 국왕(1964 ~ 1975 재위)은 석유를 무기로 이스라엘을 견제하며, 동시에 보수파의 반발을 무릅쓰고 여성학교를 세웠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고질적인 고민인 먹고 마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농장과 수도관 공사를 기획하며 국가 개혁을 이끌었으나, 1975년 3월 정신병을 앓던 조카 파이살 빈 무사드 왕자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이를 두고 미국 및 유대인들이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도 있고, 개혁을 반대한 와하브 보수파들도 파이살 국왕 제거에 기여했다는 주장도 많이 제기되고 있으나, 그냥 미친 조카의 단독 범죄로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무사드 왕자는 공개처형당했다.

본격적으로 전쟁이 벌어진 적은 없으나 이라크와 국경 분쟁으로 여러 번 사소한 전투가 있긴 했다.

그러나 21세기를 혼돈으로 몰고 가는 중동 이슬람 극단주의 문제가 와하비즘을 등에 업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탄생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의 성지를 가지고 있는 정통성과 엄청난 양의 석유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애증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즉, 석유만 없었다면 진작에 민주주의 배달했을 놈 취급이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의 탄생을 비롯한 중동의 문제는 대부분 석유 및 지중해와 인도양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는 지정학적 요소에서 나왔다. 석유 빼고는 자원이란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2013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는 목금 주말제를 고수하다가 2013년 8월부터 목요일은 주중으로, 토요일은 주말로 해서 주말을 금토로 바꿨다.사우디에서 금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토요일에 한국에 도착하면 일요일까지 주말이 3일이 된다 동시에 대체 휴일 제도를 도입했는데 금요일토요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말에 맞춰 공휴일이 금요일에 겹치면 목요일을, 토요일에 겹치면 일요일을 대체휴일로 지정한다.

2019년 9월 1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최대 석유 시설 두 곳이 예멘 반군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이 잠정 중단됐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가동 중단 후 원자재 시장 개장과 동시에 10달러 넘게 가격이 폭등하리라는 전망도 나왔다. #1 #2 #3 #4 그런 가운데 공격의 배후로 지목된 이란이라크는 9월 15일(현지시간) 각각 자국이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을 공격했다는 주장을 반박하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1 #2 9월 20일(현지시간) 아람코의 책임자가 "9월 말까지 (원유) 생산량이 공격을 받기 전으로 완전히 회복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

사우디 정부는 국책 관광사업과 관련해 공무원 여러 명을 비리 혐의로 해임했다.#

  1. al-Mamlakah al-ʿArabīyah as-Saʿūdīyah
  2. 영토가 붙어 있지는 않으나 킹 파흐드 코즈웨이(King Fahd Causeway) 다리로 서로 이어진다.
  3. 남성 72.82세, 여성 75.47세
  4. 2018년 기준 36위.
  5. 베두윈족 27%, 기타 아랍정착민 73%
  6. 1.93점
  7. 슈케이크(Shuqaiq), 아브하(Abha), 카미스 무샤이트(Khamis Mushait) 시 포함
  8.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경보
  9. 아라비아 반도에 속한 국가 중 두번째로 큰 예멘의 4배 정도 면적이다.
  10. 적도 부근이라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만든 지도에서 보는 면적에 비해 실제 면적이 상당히 크다.
  11. 규모는 훨씬 작은 주변국가인 이라크는 3천 8백만 명, 이란은 8천만 명임을 감안하면 확실히 적은 편이다.
  12. .الشهادة 발음은 lā ʾilāha ʾillā-llāh, muḥammadur-rasūlu-llāh allāh(라 일라일랄라 무하마드 라쑬라히 알라).
  13. 미군아프가니스탄에서 민사 작전의 일환으로 각국의 국기가 그려진 축구공을 떨어트렸을 때 신성 모독이라며 항의한 적도 있는데 물론 미군은 씹었다... 그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자리잡은 실제 G20 정상들의 촬영 장소에 놓인 사우디 국기는 한 면으로만 만들어졌다.
  14. 이 시기의 아라비아 역사가 알려진 부분이 적은 것은 현대의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슬람교 창시 이전의 아라비아 역사 연구에 소홀한 탓도 있다.
  15. 이슬람 왕국들이 갈라지고 난 뒤의 지도를 보면 대개 색칠이 되어 있지 않다.
  16. 아라비아 정중앙에 있는 마을이다.
  17. 하일이라는 도시에 도읍하였기 때문에 하일 토후국이라고도 한다.
  18. 이때 하일 토후국에 병합되지 않은 동부의 소규모 토후국들이 훗날 아랍 에미리트가 된다.
  19. 자발 샴마르 토후국은 1차 대전 당시 동맹국으로 참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