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문종의 후궁 상궁 김씨ㅣ尙宮 金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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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025년 | ||||||||||
| 고려 개경 개성부 | |||||||||||
| 사망 | 미상 | ||||||||||
| 고려 개경 개성부 만월대 | |||||||||||
| 본관 | 미상 | ||||||||||
| 재위기간 | 고려 궁인 | ||||||||||
| 1033년 ~ 1053년 | |||||||||||
| 고려 상궁 | |||||||||||
| 1053년 ~ 1057년 | |||||||||||
| 고려 승은궁인 | |||||||||||
| 1057년 ~ 미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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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고려 문종의 후궁으로 성상을 모시던 상궁이였다.
출신이 천하다는 이유로 궐 내 궁녀들에게 핍박을 당하자 원통함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인물로 이후 죽은 김상궁 귀신이 궁중을 떠돈다는 흉흉한 소문이 전국으로 퍼지자 두명의 왕자와 한명의 왕녀를 낳았음에도 제대로된 존호조차 받지 못하였다.
생애
여담
후궁인 상궁 김씨가 연서한 뒤로, 궁 안에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기이한 일들이 잇달아 일어나기 시작하였다.야간 번을 서던 궁녀들은 하나같이 “죽은 김상궁의 귀신을 보았다”고 울부짖으며 혼절한 채 발견되었고, 깊은 밤이면 텅 빈 회랑에서 곡성이 들린다는 소문까지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이를 헛소문이라 여기고 쉬쉬하며 사건을 묵인하려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상궁을 집단으로 핍박하던 타 처소의 상궁들이 차례로 목을 매어 죽는 일이 벌어졌다. 더불어 황궁원 조리실의 식재료가 하루아침에 모조리 썩어 구더기가 들끓는 등 괴이한 변고가 이어지니, 사람들은 모두 김상궁의 원혼이 궁을 떠돌고 있다 수군거렸다.
끝내 이 소문은 궁궐 안을 넘어 개경 시전과 민가에까지 퍼져나가 백성들 또한 밤마다 김상궁의 귀신 이야기를 입에 올리게 되었다. 이에 내명부에서는 민심의 동요를 잠재우고자 개경 외곽에 사당을 세워 위패를 봉안하고, 무녀와 승려를 불러 진혼제를 올리게 하였다.
《고려사》〈후비전:인예왕후〉
이 사건은 고려사 후비전에 공식적으로 기록되었을 정도로 궁중에 떠돌던 대표적인 괴담 가운데 하나로 전해진다. 후궁인 상궁 김씨가 억울함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부터 궁 안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이한 현상들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특히 야간 번을 서던 궁녀들이 “흰 소복 차림의 김상궁을 보았다” 증언하며 정신을 잃는 일이 반복되었고, 이후 김상궁을 괴롭혔던 상궁들이 잇달아 의문사하자 사람들은 이를 단순한 우연으로 여기지 않았다.
당시 황궁원 조리실의 식재료가 하루아침에 썩어버리고, 궁 내 곳곳에서 곡성과 발소리가 들린다는 소문까지 퍼지며 사건은 궐 밖 민가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이를 “원혼의 노여움”이라 불렀고, 무녀와 승려들 또한 김상궁의 한이 깊다 말하며 진혼제를 권하였다고 전해진다.
결국 내명부는 더 이상의 흉흉한 소문과 민심 동요를 막기 위하여 개경 외곽에 별도의 사당을 세우고 김상궁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후 궁에서는 매년 제를 올리며 원혼을 달랬다고 하며, 한동안 밤이 되면 궁녀들이 홀로 회랑을 다니는 것을 꺼렸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이 이야기는 11대 문종때 퍼지기 시작해 무려 17대 국왕인 인종때 잠재워졌을정도로 수백년 왕실의 괴담이다.
가족관계
- 배우자 : 문종
- 장남 : 금관후 왕의
- 차남 : 변한후 왕음
- 장녀 : 왕녀 왕씨 - 서린극과 혼인
- 차녀 : 공주 - 조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