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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제18대 국왕 숙종ㅣ肅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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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숙종의 왕세자 왕세자 이훤ㅣ王世子 李暄 | |
| 조선 현종의 왕자 경안대군ㅣ慶安大君 | |
| 출생 | 1635년 8월 8일 |
| 조선 한양 교태전 | |
| 본관 | 전주 이씨 |
| 이름 | 훤(烜) |
| 재위기간 | 조선 원자 |
| 1635년 8월 8일 ~ 1640년 | |
| 조선 경안대군 | |
| 1640년 ~ 1641년 8월 7일 | |
| 조선 왕세자 | |
| 1641년 8월 7일 ~ 1645년 8월 8일 | |
| 조선 국왕 | |
| 1645년 8월 8일 ~ 1662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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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조선의 왕세자. 상왕과 왕후 김씨의 적장자이자 명선공주의 남동생이며 창녕대군의 형이다.
생애
조선 국왕과 왕후 김씨 사이에서 2남 1녀 중 둘째이자 적장남으로 태어났다. 아직 만 8세가 되지 않아 대군의 신분이지만, 만 8세가 되는 대로 왕세자로 책봉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위 전
왕자 시절
어머니인 왕후 김씨를 닮아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한 기질을 보였다.
그러나 어느 날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왕족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를 지켜본 왕후 김씨는 경안대군을 엄하게 꾸짖으며 왕실의 예법과 품위를 지킬 것을 일깨워 주었다.
아직 일곱 살이었으나 산수에 관심이 많았다. 산수에 재능을 보이자 외조부 김소령은 재능이 있다며 칭찬하였다.
왕세자 시절
1641년 8월 7일 세자 책봉례가 거행되었다. 본래 책봉 시기는 만 8세 무렵이었으나, 알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이례적으로 빠르게 책봉되었다.
죽위 후
1645년 8월 7일, 부왕인 국왕이 심각한 병환으로 왕세자에게 왕위를 양위하였으나, 왕세자는 이를 반대하였다. 이에 왕후 김씨는 부왕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며 왕세자를 타일렸고, 끝내 왕세자는 양위를 받아들였다.
말년
1662년 향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붕어하였다. 갑작스러운 병세의 악화로 끝내 회복하지 못하였으며, 정확한 사인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평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한 자질을 갖춘 군주로 평가된다. 왕자 시절부터 산수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예법과 품위를 중시한 왕후 김씨의 가르침 속에서 성장하였다.
또한 부왕의 양위를 처음에는 반대할 만큼 효심이 깊었으나, 끝내 선왕의 뜻을 받들어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처럼 효성과 책임감을 함께 갖춘 인물로 평가되며, 어린 나이에도 왕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차기 군주였다.
여담
어머니인 왕후 김씨가 소복을 입은 채 근정전 앞에서 석고대죄하자, 이를 본 영의정 고씨가 "폐비..."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왕후 김씨는 "그렇다면 대군은 폐비의 아들이란 말이냐."라고 반문하였다. 마침 그 자리를 지나던 경안대군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다.
이에 영의정은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 좌의정이 한 말이라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어느 쪽의 말이 진실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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