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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2월 [[알렉산드르 콜차크]] 제독은 분열되어있던 백군들을 단결시키기 위해 [[영국]]의 지원하에 쿠데타를 계획했고, 1918년 11월 쿠데타에 성공하여 백군들을 모두 시베리아에 편입시키고 자신을 최고지도자라 부르며 군부독재 체제를 확립했다. 또 파리 강화 회의에도 시베리아 측 대표로 나오기를 희망하고 세르게이 사조노프를 대표로 보냈으나, 거부당했고 회의에서 제외당했다. 구 러시아 정부를 계승한 합법적인 정부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시베리아 연방 공화국을 정식으로 승인한 국가는 [[유고슬라비아 왕국]]밖에 없었다. 그래도 협상국들은 내전에서 시베리아를 지원했는데, 이들도 공산주의의 확산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18년 2월 [[알렉산드르 콜차크]] 제독은 분열되어있던 백군들을 단결시키기 위해 [[영국]]의 지원하에 쿠데타를 계획했고, 1918년 11월 쿠데타에 성공하여 백군들을 모두 시베리아에 편입시키고 자신을 최고지도자라 부르며 군부독재 체제를 확립했다. 또 파리 강화 회의에도 시베리아 측 대표로 나오기를 희망하고 세르게이 사조노프를 대표로 보냈으나, 거부당했고 회의에서 제외당했다. 구 러시아 정부를 계승한 합법적인 정부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시베리아 연방 공화국을 정식으로 승인한 국가는 [[유고슬라비아 왕국]]밖에 없었다. 그래도 협상국들은 내전에서 시베리아를 지원했는데, 이들도 공산주의의 확산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19년 적군이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하자 수적으로 열세였던 시베리아는 일반적으로 밀리는 추세였으나 그해 12월 시베리아의 강추위 속에 진격이 지체되었고, 본격적인 전투가 재개되기까지 3개월 동안 징병제를 통해 약 700만 명의 병력을 모았다. 또한 일본과 미국의 지원으로 보급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자 백군은 이듬해 역공세로 노보시비르스크 (Новосибирск) 를 탈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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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적군이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하자 수적으로 열세였던 시베리아는 일방적으로 밀리는 추세였으나 그해 12월 시베리아의 강추위 속에 진격이 지체되었고, 본격적인 전투가 재개되기까지 3개월 동안 징병제를 통해 약 700만 명의 병력을 모았다. 또한 일본과 미국의 지원으로 보급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자 백군은 이듬해 역공세로 노보시비르스크 (Новосибирск) 를 탈환하였다.
  
 
이후 전선은 교착상태가 지속되었고, 결국 1923년 종전 협정 이후 적군은 [[우랄 산맥]] 서쪽만을 영유하여 [[소비에트 연방]]을 결성하였고, 나머지 동쪽은 백군이 관할하게 되어 시베리아 연방 공화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후 전선은 교착상태가 지속되었고, 결국 1923년 종전 협정 이후 적군은 [[우랄 산맥]] 서쪽만을 영유하여 [[소비에트 연방]]을 결성하였고, 나머지 동쪽은 백군이 관할하게 되어 시베리아 연방 공화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2021년 6월 4일 (금) 11:2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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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연방 공화국
Federated Republic of Siberia
시베리아 국기.png
국기
상징국가시베리아 찬가
국화진달래
국조백조
자연환경면적 (영토)약 1380만km²
인문환경수도노보시비르스크[1]
인구약 1억 2000만명
인구밀도15명/㎢
공용 언어러시아어, 시베리아어, 몽골어
출산율1.4명
기대 수명78세
정치정치체제민주주의
국가 원수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
경제
경제체제수정자본주의
GDP약 7200억$
1인당 GDP약 6,000$
통화시베리아 루블
위치
시베리아 지도.png

개요

러시아 동부의 시베리아에 세워진 연방국가이다. 현재까지 세계에서 영토가 가장 넓은 국가이다.

상징

국기

시베리아 국기.png
시베리아의 국기. 흔히 Bisected Flag라고 불리는 2등분 깃발이다. 초록색은 시베리아의 자연환경을, 검은색은 지혜와 굳건함을 상징한다. 1924년에 채택되었다.

시베리아 정부기.gif
위 사진은 시베리아의 일부 정부 기관에서 사용하는 깃발로, 하양, 초록, 검정색으로 이루어진 삼색기이다. 시베리아 독립 이후 정식 국기가 지정되기 전까지 잠깐 동안 임시 국기로 쓰였던 적이 있고, 현재에도 국기에 준하는 깃발로 많이 쓰인다.

역사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 이후 러시아는 한동안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특히 혁명의 중심지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극동은 극심한 혼란으로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극동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제국을 대신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해줄 새로운 국가 수립을 처음으로 논의하였다. 이듬해인 1918년 건국을 위한 여러 회의가 열렸다. 1918년 2월부터 이들은 4월까지 세차례에 걸친 회의를 개최했고 독자적인 군대를 편성하기도 하였다.

당시 일본 제국의 지원을 받아 볼셰비키 적군 세력과 대치하던 카자크족 출신 백군 사령관 그레고리 세묘노프 (Григо́рий Миха́йлович Семёнов, 1890~1946) 는 민족 자결을 주장하며 시베리아에서의 단독적인 정부 수립을 지원했다.

1917년 11월 17일 러시아 혁명으로 건국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은 1920년 4월 6일, 시베리아를 점령한 일본과의 완충지대를 설립할 필요성을 느껴, 극동 공화국을 설립하였다. 신생 소비에트 정부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와의 경제 협력을 통해 내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당시 일본 제국은 아시아 지역의 선진국이었으므로 소비에트 정부는 일본 제국과의 정치, 경제적인 관계를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본 제국은 이미 대한제국을 강점하고 대륙으로의 진출을 감행하고 있었다. 특히 러시아 혁명 이후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극동 시베리아 지역을 장악한 일본군은 이 지역의 정치적 지도를 바꾸려고 시도하였다. 연합국 사이에서 유일하게 철군하지 않았고, 도리어 백군을 비롯한 반혁명 세력을 지원하는 일본 제국은 소비에트 러시아에게도 잠재적인 위협이었다.

따라서 소비에트 정부는 폴란드를 위시한 서유럽의 백군 지원 세력과 일본 제국이 버티고 있는 극동이라는 양면의 위협을 완화하기 위해 극동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을 건설하였다. 다만 이것이 신생 소비에트에게 득만 되지는 않았는데, 극동이라는 지역적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완충국 건설은 해당 지역의 반발을 불러왔다. 극동의 러시아인들은 소비에트의 완충국인 극동 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고 동년 4월 11일 독자적으로 시베리아 연방 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하였다. 시베리아의 민족주의자였던 유리 글루시코모바 (Юрій Глушко-Мова, 1882~1942) 가 의장을 맡았다.

1918년 2월 알렉산드르 콜차크 제독은 분열되어있던 백군들을 단결시키기 위해 영국의 지원하에 쿠데타를 계획했고, 1918년 11월 쿠데타에 성공하여 백군들을 모두 시베리아에 편입시키고 자신을 최고지도자라 부르며 군부독재 체제를 확립했다. 또 파리 강화 회의에도 시베리아 측 대표로 나오기를 희망하고 세르게이 사조노프를 대표로 보냈으나, 거부당했고 회의에서 제외당했다. 구 러시아 정부를 계승한 합법적인 정부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시베리아 연방 공화국을 정식으로 승인한 국가는 유고슬라비아 왕국밖에 없었다. 그래도 협상국들은 내전에서 시베리아를 지원했는데, 이들도 공산주의의 확산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19년 적군이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하자 수적으로 열세였던 시베리아는 일방적으로 밀리는 추세였으나 그해 12월 시베리아의 강추위 속에 진격이 지체되었고, 본격적인 전투가 재개되기까지 3개월 동안 징병제를 통해 약 700만 명의 병력을 모았다. 또한 일본과 미국의 지원으로 보급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되자 백군은 이듬해 역공세로 노보시비르스크 (Новосибирск) 를 탈환하였다.

이후 전선은 교착상태가 지속되었고, 결국 1923년 종전 협정 이후 적군은 우랄 산맥 서쪽만을 영유하여 소비에트 연방을 결성하였고, 나머지 동쪽은 백군이 관할하게 되어 시베리아 연방 공화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1. 예카테린부르크 (입법 수도), 노보시비르스크 (행정 수도), 하바롭스크 (사법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