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왕국/역사

< 잉글랜드 왕국
Ocelot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3월 16일 (토) 16:06 판

잉글랜드의 배경

잉글랜드 땅을 형성하는 섬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4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가 브레타니아라고 남긴 것이 처음이고,기원전 2세기에 폴리비어스가 브레타니아를 주석이 나는 섬으로 묘사한 것이 그 다음이다.기원전 55년에 줄리어스 시저가 '갈리아 전기'에서 잉글랜드 땅과 사람에 관해 기록한 것이 최초의 완전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것은 브리태니아와 켈트인인 브리튼 사람에 관한 것이지 잉글랜드와 앵글로색슨에 관한 것은 아니다.켈트인은 브리태니아에 살던 원주민들로,오늘날 북부 아일랜드스코틀랜드 고지대에 남아 있는 게일인들과 웨일스에 남아 있는 웨일스인 등의 조상이다.

줄리어스 시저 이후 오백 년 동안 브리태니아에서는 로마의 역사가 벌어졌고,런던을 중심으로 로마의 길이 사방으로 뻗었고,온천장인 배쓰가 로마계 브리티쉬의 중심지가 되었다.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셉티머스 세베루스 황제 등의 원정으로 스코틀랜드에 하드리안 월이라는 역사적 유물이 만들어지고,이 이남지역은 완전히 로마화되었다.남부지역에 여러 도시가ㅣ 생겨났으나 북쪽에는 아일랜드 해적과 픽트족의 침입이 잦았다.북쪽의 침입자들과 색슨인들의 침입으로 인하여 5세기 중반에 로마군이 철수하고 이 섬은 대륙에서 건너온 주트,앵글스,색슨스의 차지가 되었다.6세기 초에는 앵글로색슨의 7왕국의 기초가 확립되었다.1066년에 데인족(지금의 덴마크인)들과 노르만 민족(지금의 노르만 민족과 프랑스 민족)이 대규모로 잉글랜드를 침략하여 거주함으로써 민족 구성의 기반과 문화에 대단히 큰 변화가 일어났다.

잉글랜드의 역사는 튜튼족(지금의 독일,네덜란드,스칸디나비아 등 북유럽 민족)민족 이동이 한 축을 이루면서도 네덜란드나 독일의 역사와 구별된다.섬나라 잉글랜드는 유럽대륙과 불과 30여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은 유럽대륙과 다른 문화를 이루는 주된 원인이 된다.잉글랜드에는 주석이나 철,구리,아연 등과 같은 광물과 특히 석탄이 풍부했다.또한 넓은 초원으로 이루어진 목장의 육류와 곡물 생산은 18세기 중엽까지 유럽에 수출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했다.

잉글랜드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 유럽대륙의 지역에서는 겨울의 기온이 영하 30~40도로 내려갔지만,이 섬나라를 둘러싸고 흐르는 대서양만류는 이 나라의 겨울을 그다지 춥지 않도록 유지시켜 주었다.섬나라로서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잉글랜드는 대륙의 문화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배양할 수 있었다.

기원전 55년부터 450년경까지 오백 년 간 유지된 로마의 지배는 영국에 기독교를 뿌리내리게 했고,잘 닦인 길을 남겨놓았다.기독교는 세계종교로 발전했으므로 그 생명이 유구한 것이고,이때 만들어진 길은 지금까지도 그 기능을 잃지 않고 있을 정도이다.432년에는 잉글랜드에서 아일랜드로 성자 패트릭을 파견하였고,이후 아일랜드의 수도원은 6세기부터 9세기까지 장기간 황금시대를 구가하였다.

대륙에서 침입한 이교도들에게 접수된 브리튼 사람들의 나라는 색슨인들의 나라인 에섹스,웨섹스,서섹스와 주트의 나라인 켄트,앵글스의 나라인 이스트 앵글리아,머시아,노썸브리아 등의 7왕국으로 발전하였다.로마교황 그레고리 대제는 597년에 성 어거스틴을 파견하여 이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고 이로 말미암아 이교도들의 종교는 사라지고,잉글랜드 문화는 중세초기에 유럽대륙을 지도할 정도로 발전했다.669년에 로마에서 파견된 캔터베리 대주교 데어도어는 교회행정을 재조직하고 그레코로만 문명을 수입하여 부족국가에 지나지 않던 7왕국을 통일국가 잉글랜드로 만들고 영국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