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실 이 그림은 서방의 라틴 교부들과 동방의 희랍 교부들의 차이를 심각하게 왜곡한 도식화이다. 우선 라틴 신학에서 말하는 필리오퀘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각각 두 경로로 발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근원, 하나의 발출'을 의미한다. "충실하고도 경건한 고백 안에서 본인은 성령께서 영원으로부터 성부와 성자에게서, 곧 두 근원principium에서가 아니라 하나의 근원principium에서, 두 발출에서가 아니라 유일한 발출을 통하여 발하신다고 고백한다."(제2차 리옹공의회 제2회기 ,Denzinger 44판 850항)" 또한 일부 희랍 교부들 역시 성부가 성령의 유일한 궁극적 원인causa임을 말하면서도, 원인causa을 성자와 성령의 관계에 적용하는 걸 배제하진 않았다. 다시 말해서 라틴 교부들에 의하면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하지만 이 발출은 유일한 근원으로부터의 유일한 발출"이며, 일부 희랍교부들은 "성령은 성자를 통하여 성부에게서 발출"에 대하여 동의한 바 있다. |
개요
| 한편으로는 거룩한 그리스 교부들의 정식들은 설명될 수 있고 또 설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거룩한 라틴 교부들의 정식들을 비롯해 필리오퀘 역시 그렇게 설명되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각자가 지닌 고유한 독창성에 대해 온전히 존중하고 양측 간의 합의를 강조해야 한다. 6세기를 기점으로 '필리오퀘'는 서방 전통 안으로 들어갔으며, 이는 교회 간의 일치가 다른 여러 동기로 인해 분열되기 전까지 결코 교회 일치의 장애물로 간주되지 않았다. |
| 정교회 아드리아누폴리스(하드리아노폴리스) 대주교 다마스키노스Δαμασκηνός, 'Réflexions et perspectives au sujet du rétablissement de la communion sacramentelle', in 〈Oriente Cristiano〉 15 (1975), pp.7-25; 〈Irénikon〉 48 (1975), p.219.에서 인용[1] |
필리오퀘 문제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 중 하나인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라틴어본에서 한 단어인 '필리오퀘'를 둘러싸고 동방교회(정교회)와 서방교회(가톨릭과 가톨릭에서 종교개혁을 통해 나온 개신교) 사이에서 1천 년 넘게 진행중인 신학 논쟁이다. 이 문제의 단어 필리오퀘(Filióque, [filiˈokwe])는 라틴어로 '그리고 아들로부터'라는 뜻이다. 즉, '필리오퀘 논쟁'을 풀어쓴다면 '그리고 아들로부터 논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아래에 제시된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그리스어본과 라틴어본의 차이를 살펴보자. 해당 신경에서 성령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제3문단의 일부를 발췌해서 제시한다.
| τό ζωοποιόν, τό εκ τού Πατρός εκπορευόμενον, 토 조오피온 토 에크 투 파트로스 엑포레보메논 성령은 성부께서 좇아 나시며, τό σύν Πατρί καί Υιώ συμπροσκυνούμενον καί συνδοξαζόμενον, 토 신 파트리 케 이오 심브로스키누메논 케 신독사조메논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τό λαλήσαν διά τών Προφητών. 토 랄리산 디아 톤 프로피톤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
|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그리스어 원문 |
| Qui ex Patre Filióque procédit. 뀌 엑스 빠뜨레 필리오퀘 프로체딭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聖子)에게서 발하시고 Qui cum Patre et Fílio simul adorátur et conglorificátur: 뀌 꿈 빠뜨레 엩 필리오 시물 아도라뚜르 엩 꽁글로리피까뚜르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Qui locútus est per prophétas. 뀌 로꾸뚜스 에스뜨 뻬르 쁘로페따스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
|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라틴어본. 위 원문에 대응되지 않는 Filióque('필리오퀘')라는 단어가 추가되었다. |
필리오퀘 문제는 단순히 번역 과정에서 단어 하나를 추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교의적으로는 삼위일체론 및 그리스도론과[2] 관련되어있고, 부차적으로는 교회법적, 역사적, 해석학적 질문들과[3] 얽힌 복합적 문제다.
이 문제는 지금껏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였으며, 정교회에서 '성부에게서만 발한다'는 입장을,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한다'의 입장을 취한다.[4]
필리오퀘 논쟁을 신학적으로 파악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각각의 맥락에서 ㄱ. 교의적인 이단 논쟁인지 ㄴ. 같은 교의임을 전제한 신학적 표현 논쟁인지.ㄷ.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표현 정식에 관한 규율의 문제인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각 그리스도교 종파별 입장
정교회의 입장
정교회에서 필리오퀘를 바라보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입장은 성령은 성자에게서도 발하신다는 믿음까지는 용인할 수 있으나, 로마 측에서 신경을 독단적으로 수정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입장이다(세르게이 불가코프 등).
두 번째 입장은 성부와 성자 모두로부터 성령이 나온다는 믿음 그 자체가 심각한 신학적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 ■ 우리는 『신앙의 신조』에서 성령은 "아버지(성부)로부터 나오신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가 이해하고 있듯이, 이렇게 미묘한 주제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가장 높은 진리 중에 하나인 "성령에 관한 진리"를 우리에게 밝혀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뿐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는 자리에서 그들에게 이 진리를 정확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근거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제2차 세계 공의회는 니케아에서 열린 제1차 세계 공의회에서 채택된 『신조』 중 성령에 관한 조항에 "그리고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니,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오시며"라는 구절을 추가하여, 성령에 관한 진리를 보강했습니다.
이런 간단한 계명을 어기는 것도 안 되는 것일진대, 심지어 신성과 인성을 가진 주님께서 직접 밝혀주셨고, 세계 공의회가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결정한 가장 근본적인 신앙의 교리를 바꾼다면, 그가 하느님 앞에서 져야 할 책임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정교회와 가톨릭교회의 주요한 교리적 차이점인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더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만 보충하여 설명 드립니다. 신앙의 신조에 부적절하게 추가된 "아들로부터"라는 구절의 문제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간단히 말해 이 구절은 성 삼위 하느님의 세 위격들의 관계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말하자면 두 위격(성부와 성자)이 기원으로 제시됨으로써, 성령은 성부와 성자보다 그 위상이 격하된다는 말입니다. | ||
|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정교회 교리서』 pp.164~166 |
| 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 |
| 요한의 복음서 15:26 |
요한의 복음서 15장 26절 말씀을 필리오퀘를 반대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성부가 영원히 성령을 "내쉰다". 성령은 성자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필리오케를 첨가하면 성령이 성부로부터도 나오고, 성자로부터도 나온다는 말이 되어 혼돈을 초래한다는 것이 정교회의 주장이다. 삼위(三位)가 페리코레시스(순환)에 의하여 하나를 이루고 있지만 삼위는 각각 개별적이고 독특한 위치와 역할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부는 누구인가? 성자를 세상에 보낸 분이며 성령을 내쉬는 분이다. 성부는 성자가 아니다. 성자 역시 성령이 아니다. 성자는 성령을 내쉬지 않는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하느님은 성자 하느님이지, 성부 하느님이 아니다. 오순절 마르코의 다락방에 온 하느님은 성령 하느님이지, 성자 하느님이 아니다. 보내신 하느님(성부)과 보냄을 받은 하느님(성자)(요한 16:27~28) 그리고 증거하고 진리로 인도하는 하느님(성령)(요한 16:4~14)은 각각 고유한 위격을 가지고 있으며 결코 혼동될 수 없다. 그런데 필리오케를 삽입하면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증거를 혼란에 빠뜨린다고 생각하여 정교회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러면 성령과 성자 예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성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성자가 성령을 내쉬지는 않는다. 오직 성부만이 성령을 내쉰다. 그러면 성령과 성자의 관계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관계가 있다. 있다면 과연 어떤 관계가 있는가? 성부 하느님만이 성령을 직접 내쉬지만 성부 하느님은 또한 성자 하느님의 아버지이다. 한처음부터 성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성자 하느님은 성부 하느님이 성령을 내쉴 때 항상 그 곁에서 함께 한다. 이런 식으로 정교회는 삼위 하느님의 일체성보다는 삼위 하느님의 고유성과 개별성을 혼동하지 않도록 하는데 많은 강조점을 두었다.
가톨릭의 입장
마찬가지로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아래의 구절은 가톨릭 교회의 시각인 '...그리고 성자'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 (...)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 |
| 요한 복음서 16,7 |
또한 이후 가톨릭 교회의 필리오퀘 관련 주요 문건은 아래와 같다.
| 'Propter hanc unitatem Pater est totus in Filio, totus in Spiritu Sancto; Filius totus est in Patre, totus in Spiritu Sancto; Spiritus Sanctus totus est in Patre, totus in Filio. Nullus alium aut praecedit aeternitate aut excedit magnitudine, aut superat potestate. Aeternum quippe et sine initio est, quod Filius de Patre exstitit; et aeternum ac sine initio est, quod Spiritus Sanctus de Patre Filioque procedit.' Pater quidquid est aut habet, non habet ab alio, sed ex se; et est principium sine principio. Filius quidquid est aut habet, habet a Patre, et est principium de principio. Spiritus Sanctus quidquid est aut habet, habet a Patre simul et Filio. Sed Pater et Filius non duo principia Spiritus Sancti, sed unum principium: sicut Pater et Filius et Spiritus Sanctus non tria principia creaturae, sed unum principium.
"성자께서 성부에게서 나셨다는 것은 영원하시고 시작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다는 것은 영원하며 시작이 없기 때문이다."[6] 성부의 모든 것이나 성부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그분께서는 다른 누구로부터가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가지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근원이 없는 근원이시다. 성자이신 모든 것이나 성자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그분께서는 성부에게서 가지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근원에서 나온 근원이시다. 성령이신 모든 것이나 성령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그분께서는 동시에 성부와 성자에게서 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창조의 세 근원이 아니라 하나의 근원이시듯이, 성부와 성자께서는 성령의 두 근원이 아니라 하나의 근원이시다. |
| - 피렌체 공의회 칙서: "Cantate Dominio" 야고보파를 위한 칙서[5] |
개신교의 입장
각주
- ↑ 이 인용문은 가톨릭의 이브_콩가르Yves Congar 추기경의 저서인 《나는_성령을_믿나이다》Je crois en l'Esprit Saint 제3권에서 찬성과 함께 언급되었다.(본문의 인용문도 콩가르 추기경의 이 책 한국어판에서 그대로 발췌한 것이다.) 정교회와 가톨릭의 이 두 주교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필리오퀘에 대한 논쟁은 동일한 신앙에 대한 두 표현의 문제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6세기엔 필리오퀘가 개별 교부의 견해를 넘어서 서방의 지역 시노드 차원에서 채택되었고, 동서방의 개별 교회들은 이를 친교 속에서 받아들였으며, 수백 년간 단죄되지 않았다. 가톨릭에선 필리오퀘에 대한 교의는 물론이고, 논쟁 그 자체도 동서분열의 결정적 원인이 아니라고 본다. 정교회의 경우 인용된 다마스키노스 대주교를 포함해서, 바실리_볼로토프Василий Васильевич Болотов, 세르게이_불가코프Серге́й Никола́евич Булга́ков, 파벨_에브도키모프Павел Николаевич Евдокимов 등의 성직자/신학자들이 필리오퀘 논쟁이 가톨릭과의 분열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본다. 바르톨로메오스 1세 역시도 정교 내부 담화에서 정교와 가톨릭 사이에 교의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there are no dogmatic differences between Orthodoxy and Catholicism)는 의견을 피력하여 간접적으로 필리오퀘 여부의 교의 차이를 부정했다.#
- ↑ 즉 "성령의 발출이 성부에게서만인가?","애당초 '발출'은 무엇인가?", "'발출'이라는 말에 대해 혹시 라틴 신학과 그리스 신학이 다른 정의를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등
- ↑ 즉"로마 주교는 세계공의회와 어떤 관계를 이루는가?", "톨레도 시노드를 비롯한 지역 시노드는 세계공의회와 어떤 관계를 이루는가?", "에페소 공의회가 변경을 금지한 신경은 니케아 신경인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인가?", "필리오퀘가 추가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필리오퀘가 없는 그리스어 원문의 뜻을 거스르는가?" 등
- ↑ 더 깊이 들어가자면, 필리오퀘가 없는 그리스어 원문 자체는 당연히 가톨릭-개신교의 교의를 거스르지 않으므로, 에큐메니컬(교회일치) 차원에선 필리오퀘 없는 신경도 괜찮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그러나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출한다.'는 신학적 명제가 잘못되었다는 정교회의 주장에 대해서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모두 단호히 반대한다.
- ↑ 번역 출처: 덴칭거 한국어판 1331항
- ↑ (책 속 주석)루스페의 풀겐티우스, De fide seu de regula fidei ad Petrum 1, n. 4 (J. Fraipont: CpChL 91A
[ 1968] 714 / PL 65,674AB)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