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서양전쟁

남대서양전쟁
War of South Atl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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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안 왕국 영해를 지나고 있는 올리비안식 구축함)
날짜
2015년 1월 12일 ~ 2015년 2월 3일
지역
올리비안 왕국 과 주변 해역, 동브라질
이유
올리비안 왕국의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내외적 요소
교전국오이 왕국.jpg올리비안 왕국
프랑스.jpg프랑스 공화국
400px-대한왕국 태극기.jpg대한왕국(한일연합)
스페인.jpg스페인 왕국
Vhfnxnrkf.jpg포르투갈 공화국
아르헨티나.png아르헨티나 공화국
브라질.jpg브라질 공화국
기니비사우.png기니비사우 공화국
서아프리카 연합
지휘관조나단 8세(가비오이 조나단)
이 한 (김태환 대령(제독))
프랑수아 올랑드
마가리타로 블레스
아나발 카바쿠 실바
마우리시오 마키리
지우마 호세프
결과
빠른 평화협정으로 승자없는 전쟁
국방부 쿠테타(2015)
영향
국방부 쿠테타까지 발생하면서 왕국이 크게 쇠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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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해군 열병식)


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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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신형 함대지미사일

브라질은 지난 50년간 올리비안 왕국에 수차례 군사적 도발을 강행했다. 그러나 2015년 초, 브라질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떨어지자 브라질은 외부로 정치적 관심을 돌릴 필요성을 느꼈고 그 대상을 올리비안 왕국으로 지정하게 되었다. 브라질 대통령의 지우마 호세프는 올리비안 왕국의 오이리 제도에 영유권을 주장하여 어이없는 도발을 강행했고, 한편으로는 올리비안 기니비사우 연방의 불안한 형국을 이용하여 올리비안 왕국기니비사우 공화국 두 국가의 사이를 갈라놓고 기니비사우 공화국을 브라질의 동맹국으로 삼으려 했다.

당시 기니비사우 공화국은 굉장히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올리비안 왕국에 무리한 경제적 지원을 부탁했는데 연방군을 결성할 것을 요청, 기업투자를 더욱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기니비사우 공화국의 부진한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는데 올리비안 왕국은 당연히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한 번에 들어주기 어려웠고 내부로는 독립당과 정부 간의 관계가 극심하여 민주의회에서 정기회의 자체도 열리지 않아 행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기니비사우 공화국은 이를 계기로 올리비안 왕국을 신뢰할 수 없다라고 했으며, 더군다나 연방군의 결성이 이루어지고 올리비안-기니비사우 연방군의 주둔지가 기니비사우 공화국의 수도 비사우로 결정되자 올리비안 왕국을 견제하던 여러 서아프리카의 국가들이 기니비사우 공화국에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올리비안 왕국을 비난했다.

이러한 형세가 지속되고 기니비사우 공화국의 여당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당시 기니비사우 공화국 대통령인 '하이문두 페레이라'(대통령이 임기 중 사망하여 권한대행으로 앉아있었기에 정부를 유지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급기야 서아프리카로부터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올리비안 왕국에 연방해체를 통보한다. 이에 연방법에 의하여 올리비안 왕국과 기니비사우 공화국은 15일만에 연방해체되었고, 연방군도 결성 19일만에 해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가만히 있을 올리비안 왕국이 아니었다. 올리비안 왕국은 즉각 기니비사우 공화국을 비난했고, 연방군과 기니비사우 정부에 투자한 19조 8000억원을 순식간에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자 배상을 요청하고, 모든 압박 카드를 사용했다. 이때를 그냥 넘길 브라질 공화국이 아니었다. 브라질은 기니비사우 공화국과 같은 언어를 사용,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동질감을 이유로 우호관계를 선포하고 곧바로 서아프리카의 對기니비사우 국가들의 위협을 막을 수 있도록, 브라질군을 주둔시켜주겠다고 했다. 기니비사우 공화국은 당연히 이 조건을 수락했는데 사실은 브라질이 올리비안 왕국을 압박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올리비안 왕국은 기니비사우 공화국을 모든 수단으로 압박하고, 브라질을 비난, UN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소용없었다. 브라질은 이미 올리비안 왕국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조사하고 그에 따른 대응을 생각해두었기 때문에, 타격이 거의 없었고 가장 큰 이유는 기니비사우 공화국이 이렇게 빠르게 배신할 것이라는 것을 올리비안 왕국은 전혀 몰랐고 대응도 미비했기 때문이다.

발발

올리비안 왕국은 외교전에서도 패배했고 연방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브라질은 기니비사우에 군사를 주둔시키기까지 했고, 올리비안 왕국은 군사적으로도 압박을 느끼게 되었으며 국내적으로도 상황이 흔탁치 않았는데, 제 1 야당인 독립당과 제 3 야당인 국민당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의회를 보이콧하면서 정부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때, 1월 4일과 5일, 독립당이 총리와 국왕을 동시에 해임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총리가 독립당 출신인데 독립당과 뜻이 다르고 행정부를 야당의 뜻 없이 따른다는 점에서 정권교체를 원했던 독립당 입장에서는 매우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립당은 사법부와 입법부를 대부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없이 총리를 해임하는데 성공하는데, 이때 검찰에서는 독립당이 브라질과 연통한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총리를 해임하기 위해서 최고의원위원회의 동의를 받아야 했는데 독립당이 최고의원위원회에 압력을 불어넣었다는 의심 또한 하게 되면서 독립당에 대한 검찰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국왕강제퇴위안이 의회에서 제출되고, 브라질과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검찰조사는 무산된다.

국왕강제퇴위안은 처음에 2014년 12월 26일, 최고의원위원회에서 동의 1명을 얻지 못해 무산되었는데 10일만에 다시 퇴위안이 제출되었고, 최고의원위원회의 전원일치로 국민투표 실시, 국민투표에서 76%의 동의를 얻어 국왕이 퇴위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국왕이 퇴위될 수 있었던 까닭은 정치적으로 정부가 힘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브라질과의 전쟁위기가 고조되는데도 연방이 해체되어 외교전에서도 정부가 패배, 전쟁위기는 더욱 고조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정부의 무능함이 독립당의 지지율상승과 정권교체의 희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행정부의 수반이 중간에 해임되거나 사임하는 경우는 파타나샤 정권 이후로 처음이었고 민주의회의 등장 이래 최초였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크게 조명되었다.

한편 브라질 공화국은 이때가 기회였다. 브라질 공화국은 이미 여러번 도발로 올리비안 왕국의 군사적 상황을 대충 파악해 놓은 상태였고, 기니비사우라는 동맹국을 얻었으며, 서아프리카의 지원을 약속받았고 더군다나 올리비안 왕국의 정부가 국왕이 없어 매우 불안한 형국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전쟁 적기였다.

브라질은 기니비사우 공화국의 육군을 수도와 모뷔뭰토군에 상륙할 준비를 했고, 본토에서 함대를 출격시켜 해상봉쇄를 하는 군사작전을 수립했으며, 1월 12일 모든 준비를 끝마친 브라질은 올리비안 왕국에 선전포고한다. 브라질은 당일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전개1

전쟁으로 파괴된 집.jpg
전쟁으로 파괴되었던 상점

전쟁 발발직전, 올리비안 왕국은 데프콘 4단계를 발령하고 있었는데, 발발직후 데프콘 1단계로 격상, 즉각 F-15 4편대OV1 제 2전단을 출격시켰으며 아일리아급 함과 잠수함 등 여러 해군전력을 움직였다. 그러나 브라질은 즉각 올리비안 왕국의 해상을 봉쇄시켰으며 미사일 폭격으로 왕국의 항만을 무력화시키고 기뢰 수십기를 설치해 올리비안 왕국의 해군전력이 기뢰선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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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안 왕국 연안전투함 (올바나3함) 주변의 기뢰폭발

올리비안 왕국은 서쪽으로 브라질 본토로부터 오는 해군전력과 동쪽으로 기니비사우 영토서 오는 브라질 상륙군과 미사일을 모두 방어해야 했지만 해상봉쇄와 동시에 전체적으로 포위당하면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오랜 올리비안 왕국의 동맹국이었던 프랑스 공화국스페인 왕국이 나서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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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봉쇄를 당해서 회항하는 올리비안 왕국 초계기와 구축함

프랑스와 스페인의 참전

프랑스 공화국스페인 왕국은 브라질과 기니비사우 그리고 서아프리카까지 전쟁에 가세하자 올리비안 왕국의 동맹국을 명목으로 참전을 선언했다. 전쟁선포 하루만이다. 프랑스의 경우, 포르뱅급 방공구축함 6척과 핵추진항공모함인 드골함을 선두로 보내고 여러 다른 구축함 및 잠수함을 세워 대규모 전단을 꾸려 기니비사우로 향했다. 서아프리카 연합은 당연 그들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통과하는 프랑스 함대를 건들 수가 없었는데, 건드는 순간 X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군사력은 브라질보다도 앞섬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당황하지 않았다. 브라질이 먼저 선전포고한 전쟁이었고, 그들의 전쟁목적이 올리비안 왕국의 정부를 완전 무력화시키는 것이 다였기 때문에 브라질은 크게 치고 바로 빠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라질이 당황하지 않은 더욱 큰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이는 뒤에서 계속 기술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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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니비사우를 폭격하기 위해 카나리아 공항서 발진하는 프랑스 전폭기

기니비사우 지역은 프랑스 전단의 도착으로 완전 초토화되었다. 기니비사우 내 주둔하던 브라질군은 이미 오이리 제도(올리비안 왕국 본토)로 모두 상륙했고, 미사일 또한 초기 오이리시(올리비안 왕국의 수도)를 폭격하면서 소모했기 때문에 브라질은 잃을 것이 없었다. 기니비사우 대통령은 긴급하게 세네갈로 도망쳤다. 프랑스군은 즉각 기니비사우에 상륙하여 남아있는 브라질과 기니비사우 세력을 제거했는데, 아쉽게도 프랑스군은 본토에 군을 상륙시켜 오이리 제도에 상륙한 브라질군을 몰아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다만 기니비사우 정부의 지지율은 국토가 초토화됨에 따라 크게 떨어지고 이는 종전과 쿠테타 종료 이후 올리비안 왕국과 기니비사우가 서로 합쳐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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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해역의 브라질 구축함을 격침한 후 모뷔뭰토 군항에 입항하는 스페인 군함

한편 스페인은 카나리아 제도를 경유하여 소규모 함대를 보내 브라질 해군이 올리비안 왕국 북쪽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기여도는 비록 적지만 브라질의 오이리 제도 해상봉쇄를 크게 저지한데에 의의가 있다.

한일연합함대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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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 상 대한왕국의 세종대왕함과 뒤따르는 호위함과 상륙함

한편 동남아시아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대한왕국 함대는 올리비안 왕국에서의 전쟁 상황을 전해듣고 기꺼이 올리비안 왕국을 돕기로 결정했다. 이는 대한왕국의 국왕인 이 한의 허가가 있었다. 대한왕국의 함대는 중화민국 타이베이로 돌아가 일본 함대와 연합하여 전쟁 3일만에 남아공으로 출항했다.

한일연합함대는 출항 20일만에 본토에 도착했으며 빠른 지원을 위해 공군지원도 이어졌다. 대한왕국의 해병대는 터키를 경유하여 본토에 강습했다.

(한일연합함대를 이끈 제독은 대한왕국의 김태환 대령이며 일본 책임자는 야마무라 히로시 부제독(자위대 중령)이다)

포르투갈의 참전

포르투갈 공화국올리비안 왕국의 오랜 동맹국이자 혈연으로 맺어진 나라다. 처음에는 참전을 꺼렸으나, 스페인까지 참전하자 의회에서 급박히 참전하기로 결정했다. 포르투갈은 의료품과 구호품을 중심으로 지원했다.

전개2

올리비안 왕국에 브라질군이 대거 상륙했고 수도를 점령하려 했지만 왕궁 코앞에서 수도방위사령부의 격한 저항으로 왕궁 점령에 실패했고, 수도에서도 쫓겨나면서 군사적 우위권을 뺏겼다. 브라질군은 수도 위의 모붸뭰토시로 물러났고 스텔리아시 방어군에 의해 다시 서모뷔뭰토, 사살라로 쫓겨났다. 이때 브라질군이 이동하는 경로에 있던 드가드 산업단지와 드가드 국제공항, 몰레바항 등 여러 국가적 주요 시설들이 파괴되었고, 민간인이 사망, 길이 파괴되어 올리비안 왕국군이 곧바로 반격하지 못하게 하였다. 미사일 요격시스템은 심지어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아 브라질 미사일과 전투기 등이 방공망을 뚫고 상공에 진입해 계속 본토를 폭격했다.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게 되었지만, 이틀만에 여러 국가가 참전하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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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드 마을을 폭격하는 모습

거의 대부분의 기니비사우의 정부 인사가 프랑스군에 의해 체포되었고 대통령까지 세네갈로 도주하면서 기니비사우는 무정부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프랑스는 세네갈에 기니비사우 대통령을 넘겨달라고 요구했고, 세네갈은 기니비사우를 배신하고 대통령을 생포하여 프랑스에 넘겨줬다. 또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압박으로 서아프리카 연합은 브라질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브라질은 이제 혼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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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니비사우를 폭격하는 모습

2015년 1월 30일, 브라질은 최후로 올리비안 왕국의 산업시설을 폭격하기 위해 항공모함에서 폭격기 3기를 출격시켰다. 이는 브라질의 마지막 공군 출격이 되었다. 그러나 올리비안 왕국의 F-15 제 2 편대에 의해 2기가 요격당하고 브라질 전폭기는 브라질 상륙군이 점령했던 남사살라 미사일 기지 우측에 브라질군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는 올리비안 왕국군을 폭격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브라질은 이로 인해 의외로 올리비안 왕국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되는데, 약 1만명의 군사들이 하루간 사용할 수 있는 군보급품이 폭격으로 전소되었고 5천여명이 부상당했거나 전사했다. 이로 인해 남사살라 미사일 기지에 대한 공습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대한왕국 해병대의 지원까지 사살라군과 메레니치군에 대한 탈환은 열흘간 지연되었다.

2015년 2월 1일, 기니비사우 정부가 완전히 무너졌고 임시정부가 들어섰으나 이 또한 임시정부에 반하는 전 정부인사들과 군부에 의해 무너졌고 결국 내전까지 일어났다. 기니비사우 내전은 4일천하로 끝났는데 가까이 있던 프랑스군의 재진입으로 군부는 해체되었고 기니비사우는 완전히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올리비안 왕국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기니비사우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했다.

2015년 2월 2일 아침, 브라질 해군이 영해에서 완전히 철수했으며 스페인과 올리비안의 함대의 저항에 패배하며 프랑스 순양함이 브라질의 본토를 폭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올리비안 왕국의 본토는 쑥대밭이 되었지만 브라질 군이 어느정도 격퇴되었고, 브라질은 올리비안 왕국에 평화협정을 요청했다. 올리비안 왕국은 이를 거절했다.

점심, 브라질에서 미사일이 다시 발사되었다. 미사일은 브라질의 신형 함대지미사일이며 사정거리는 600km이다. 영해밖에서 미사일 6기가 발사되어 하빌리다드의 산업구역이 파괴되었다. 이 곳에는 군수공장이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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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전함에서 발사되는 함대지미사일

저녁, 브라질은 더 이상의 공격적인 태도를 멈췄다. 그리고 올리비안 왕국이 외교채널에서 브라질과 관계를 회복하고 세계평화를 위한 태도를 보여야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를 이례적으로 전폭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브라질의 평화협정 요구에도 하루간 올리비안 왕국은 브라질의 선전포고였다면서 진정 세계의 평화를 위했다면 선전포고를 할 이유도 없다며 입장을 밝혔지만 프랑스가 브라질 본토에 대한 공격에 회의적이고, 미국이 브라질을 전폭 지지하고 나선 이상, 확실히 결코 전쟁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또한 올리비안 왕국의 본토가 대부분 황폐화되었고, 인구가 급격히 감소, GDP의 약 30%의 피해가 발생한 이상, 전쟁을 더 이끄는 것은 무리였다. 반면 브라질은 본토에 대한 피해가 거의 없었고, 물론 군사적 피해는 올리비안 왕국보다 많았지만 그뿐이었다.

올리비안 왕국은 결국 계속되는 브라질의 요청에 평화협정을 2월 3일 오후 4시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받아들였다. 브라질은 배상금을 약속했지만 액수는 50조로 극히 적었다. 50조는 올리비안 왕국의 1년치 예산밖에 되지 않았고, 전후복구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미국은 브라질의 배상금에 경제지원금을 더해 주겠다며 올리비안 왕국을 회유했지만, 그럼에도 전후복구에는 매우 부족한 액수였다.

한일연합군에서 대한왕국의 해병대는 남아있는 브라질 잔존 세력들을 몰아내기 위해 계속적으로 왕국을 지원했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연합구호작전을 펼쳐 생필품 따위가 부족한 지역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지만 정작 군사적 강국이자 올리비안 왕국의 동맹국인 프랑스는 미국을 두둔하고, 왕국이 전쟁을 멈췄으면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러한 거지같은 상황에서 올리비안 왕국이 얻은 것이 있었다. 바로 기존 영토보다 더 큰 기니비사우 지역을 통째로 얻게 된 것이었다. 프랑스의 공격으로 무정부 상태에 놓인 기니비사우 지역이 좀처럼 독립적인 정부를 세울 수 없고, 계속해서 내분이 일어나고 약탈 등의 비평화적인 상황이 목격되자 UN은 올리비안 왕국의 경찰과 잔존 군인들을 주둔시키는 것을 허락했다. 이는 예전 올리비안-기니비사우 연방을 결성한 바 있는 올리비안 왕국에 기니비사우 지역의 치안권을 대신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UN은 기니비사우에 정부가 새로 구성될때까지 기니비사우 지역을 대신 통치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미국이 이를 대신하기로 했지만, 무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니비사우에 정부가 재구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올리비안 왕국은 이 지역을 특별치안구역으로 선포하고 합병하든 자치령으로 두든 영토를 편입할 준비를 가했고 민주의회에서 합병을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아 기니비사우 공화국은 완전히 올리비안 왕국에 합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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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올리비안 왕국은 이번 남대서양전쟁으로 매우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올리비안 왕국은 경제적 피해는 물론, 군사적 피해도 압도했고, 수도에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복구는 빠르게 이루어졌는데, UN과 일부 국가들이 전폭적으로 왕국이 전후복구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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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니비사우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대한왕국 해병대

이번 전쟁에서 프랑스대한왕국은 큰 공을 세웠고, 올리비안 왕국은 이에 대해 매우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올리비안 왕국과 브라질 간의 전쟁은 빠르게 종료되었지만 많은 사상자를 낳았고, 국가적 쇠퇴를 가져왔다. 그러나 기니비사우 지역을 얻음으로써 앞으로 왕국의 잠재력이 커졌고 전후에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다만 그것은 전후복구가 순조롭게 진행됬을 때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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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게이트로 혼란에 빠진 오바마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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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당하는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한편 브라질과 미국이 공동으로 그들의 정권 지지율을 위해 전쟁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미국에는 브라질 게이트, 그리고 브라질에서는 뇌물혐의와 직권남용 등을 이유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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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올리비안 전차 OV1

반면 국내적으로는 군사 주요기지들이 파괴되고 많은 군 사상자가 발생하게 됨으로써 정부에 대한 군부의 불만이 드러났다. 지난 해에 올리비안 왕국의 신형 3세대 전차인 OV1 도입량의 30% 정도가 불량부품을 써서 고장났거나 고장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가 나오면서 대대적인 청문회가 진행되어 많은 군부 인사들이 처벌받았고(군부는 미래과학부의 책임 그리고 군수업자의 납품비리가 문제라며 처벌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입을 늦추고 기지 보수 예산지지 철회와 미사일 개발 프로젝트 중단 등 군부의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번 전쟁의 패배 아닌 패배에 정부가 군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국방부 쿠테타(2015)가 발생한다.

남대서양전쟁으로 브라질과 미국의 정권이 교체되었고, 올리비안 왕국은 기니비사우 지역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었지만 거기에 쿠테타까지 발생하면서 완전 국란위기에 놓이게 된다. 반면 반사이익을 얻은 국가는 멕시코로, 반멕시코적인 미국 정권이 무너지고, 올리비안 왕국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완화되면서 정치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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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
Edited by DUMP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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