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티나 내전

개요

아르티나 역사상 최악의 전쟁
현 아르티나 연방을 만들어준 전쟁이자 현제까지도 남아있는 섬들간의 갈등 섬안의 갈등,분열을 만들어준전쟁

아르티나 내전 전 상황

아르티나 왕국
왕실은 좀 불안한시기였다

1934년

케마 그로리 크라시 왕(76)이 사망한이후 13살의 타나 그로리 크라시 여왕이 왕위를 이어받게되었는데 역사적으로 다른국가에서는 여왕이 존재하긴 했으나
아르티나는 처음여왕을 모시는것이였고 어린여왕이였기에 왕국내에서는 향후 미래에대한 백성들의 우려가많았다 혹여나 몇몇귀족들이 여왕을 앞에 세우고 자기들끼리
힘 싸움을 하지않을까라는 생각이 많았다 이후 왕실은 루타공작과 루카푸장군이 잘 보좌하면서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데 성공하고있었다
다만 백성들은 왕실일을 정확히 알수는없기에 여왕이 잘할수있을까?,잘하고있나?,라는 불안감만 있던 시기였다

이시기부터 동부지역 섬에서 노동권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있었고 흑색지역(바바트 섬)에서도 왕정에 대한 비판시위가 일어나고있었다
특히 흑색지역은 공화주의자들이 프랑스혁명을 운운하며 크라시 섬 주민들과 함깨 공화국을 세워야한다는 의견이 지대했다

사우저트 섬에서 르타 내브다가 군중들앞에서 노동자의 인권과 인민의 권한에대한 연설을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공산당을 창당한다는 선언을하였다
공산당의 활동은 1930년대 부터 있어왔긴했으나 비밀스럽게 활동하고있었으나 대놓고 공산주의 연설에 창당선언을했으니
이시기 왕국이 얼마나 힘이 꺾였는지 알수있는 부분이기도하다

1935년

나르 섬,씨탬프 섬 1935년도 충돌사건

나르 섬과 씨탬프 섬 주민간의 사이는 역사적으로 부터 굉장히 좋지않았다 이 두섬은 크라시대왕에게 복속하기전부터 갈등의 역사가 이어졌다고하기도 한다
천년 앙숙관계라고도 칭하기도하는데 양지역 백성들간에 주먹다짐은 기본옵션이고 서로 칼과 활을 쏘고 말리던 병사들에게 무기를 휘둘기 까지해서
아르티나왕국이 건국되고 지금의 아르티나 연방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도 살벌한 지역중하나이다

당시 씨탬프 섬은 1928년 부터 공산주의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1935년 아예 판을치기 시작했다 왕국에서도 단속을하긴 했으나 케마 왕 전부터 국민들에게 어느정도 자유를
보장했기 때문에 경고만 줄뿐 특별한 조치는 하지못하였다
나르 섬같은 경우에도 공산주의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씨탬프 때문이였다
씨탬프 섬의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는걸 보고 "역시 피부터 글러먹은 씨탬프 반역자 새X들" "니들의 붉은깃발은 느그 부모피 빼서 만들었냐?" 등등 조롱을했고
혹여나 길을지나다 공산주의을 옹호하면 "네가 씨탬프 새X냐?" 온갖욕을 먹거나 폭력을 당했기 때문에 나르 섬 내부의 공산주의는 힘을쓰지는 못했다 다만 공화주의자들은 꽤나있었다

사건은 나르 섬 씨탬프 섬 인접마을에 계양되던 아르티나 왕국기가 공산주의자들에게 계양대에서 떨어져서 불태워지자 이에 열받은 나르 섬 주민 50명이 총을 들고가서 공산주의자들에게 총을쐈다
열받은 공산주의자들도 반격하면서 19명이 사망 40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후 군이 나서서 이들을 모조리 체포하고 주동자를 재판으로 넘겼는데 나르 섬에서 재판이 이뤄졌고 일방적으로 나르 섬쪽 주동자에 대해서 5개월형을 선고 씨탬프 섬 사람들에게 14년을 선고했다
당연히 가족들과 공산주의자들 반발했으나 받아들여지지않았다 나르 섬 주민들은 왕정을 찬양하는 축제을 벌였고 왕정에 대한 지지도가 급상승했으나
씨탬프 섬 사람들은 이를 갈았다 왕정에대한 반감이 심해졌다

1936년

왕궁침입 사건

내전의 서막을 알린 사건이다
일부 과격파들이 크라시 섬으로 가서 왕궁앞에서 시위를 한 사건인데 초기 알려질 당시 왕궁에서 시위를 했을뿐인데 총을쐈다는 말이 돌아 이후 내전으로 벌어지는데 사건은 달랐다

애초에 과격파들이 온다는 사실에 비상이 걸렸고 루타공작이 강경진압해야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으나 여왕이 왕궁에 직접적인 위협이 없는 이상 강경진압은 자제해달리는 부탁을하였다
왕궁앞에서 왕국기를 불태우는 패기를 보였고 왕국기를 불태우는것은 엄연히 불법이기 때문에 그즉시 체포했어야했으나 근위대와 치안병력들은 그저 지켜보기만 하자
과격파들은 물러나는듯 했으나 밤중에 기습시위를 다시 벌였고 몇명은 몰래 왕궁으로 들어가다가 사살되었다

이후 이 사건은 전국에 퍼지게 되었고 아르티나 왕국은 사실대로 해명했으나 변명으로 치부되고 받아들여지지못했다
이 사건때문에 보로트 섬에서 내전에 대해서 중립을 표명하는 이유가 되기도한다

아르티나 내전 진행

아르티나 내전
아르티나 내전6.png
시기
1936년 11월 10일 ~ 1947년 12월 05일
장소
아르티나 전 지역
원인
왕궁에 시위자들이 근위대의총에 사망후 공산주의자들과 공화주의자 국민군이반란
교전국
아르티나 왕국군.png 아르티나 왕국
보로트 섬
(국민군이 테르 섬 침공이후합류)

아르티나 공산당.png 아르티나 공산당 (왕국과 동맹후)
아르티나 국민군.png 아르티나 국민군
아르티나 공화군.png 아르티나 공화군


아르티나 공산당.png 아르티나 공산당 (왕국과 동맹전)
지휘관
왕국공산연합.png 아르티나 왕국공산연합

아르티나 왕국군.png 타나 그로리 크라시
아르티나 왕국군.png 매낸 그로리 루타
아르티나 왕국군.png 하베론 루카푸
아르티나 왕국군.png 이트 로메이
아르티나 왕국군.png 메브 토프
아르티나 공산당.png 르타 내브다
아르티나 공산당.png 하티 세케스
아르티나 공산당.png 라이타이 포트
아르티나 국민군.png 아르티나 국민군

아르티나 국민군.png 아르베트 요크르
아르티나 국민군.png 데트 캄
아르티나 국민군.png 포트 스미스

아르티나 공화군.png 아르티나 공화군

아르티나 공화군.png 라인 씨파트
결과
왕국공산군의 승리
피해
최소300만명 사상자발생
영향
왕국과 공산당 평화조약에따라 아르티나연방 성립
지역갈등심화
주요전투
알티 전투
흑색 침공
알티 스코프전투
나르 306고지 전투
테르 섬 공격
청색 3섬 전투
ㅡ 3파전이후 ㅡ
적흑 전쟁
귀향 작전
모토포브레 시 탈환
ㅡ 청군 적군동맹 ㅡ
청적 1차 공세
베르사르 섬 전투
청적 2차 공세
흑색 공세(리글로,햅퍼전투)
바바트 종말의날

각지의 반란과 알티 혈투

공산주의자들의반란

황색지역(현:적색지역)에서 신호탄이 터졌다 이미 사우저트 섬 군장교들이 동조하는 가운데 정부시설들을 장악해나아갔고 소규모 저항이 있었으나 결국 굴복 주요시설을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르타 내브다 공산당 당수는 사우저트 관청에서 본격적인 혁명이 시작됬음을 알렸다 자세한건 내브다동지의 혁명선언
페어트 섬,요누크 섬도 결국 진압을하지못하고 공산화되었다 스티리 섬지사는 이사태에 대해 중립을 선언했지만 공산당의 지원받은 공산주의자들의 협박과 강요끝에 공산당에 굴복한다
오브레 섬방위군단장나흐 바프레은 외부세력에 의한 반란이라 간주하고 강경대응 공산주의자들과 전투을 벌였으나 결국 무너지고 방위군단장은 인민재판후 사형판결을 받긴했으나 진행되진않았고
종전이후 풀려났다 알티 섬동부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이 역시 반란에 동조했고 이후 알티 섬은 왕국군과 공산군간의 치열한 전투지역이 된다

국민군 공화주의자들의 반란

흑색사령관을 맡고있던 아르베트 요크르는 당시 흑색지역 베르사르섬,햅퍼 섬,메리엇 섬,바바트 섬 각 섬방위군단장들에게 이번 혁명의 참여를 지시했다 햅퍼 섬,메리엇 섬 군은 동조를 하고 정부시설들을 공격해 장악했으나
베르사르 섬 지사는 논의 끝에 거부하고 중립을 유지하겠다고 전달했다 이후 국민군의 지원을받은 아르티나 공화군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사실상 국민군 아래로 들어오게 된다
이들은 스스로 국민들의 병사 국민군이라 칭하고 사람들에게 지지을 받았으나 그들이 하는 행태는 영락없는 파시스트들이였다
왕국의 끄나풀이라고 고문은 기본에 죄없는사람을 왕국의 첩자으로 몰아 군중들을 선동시켰다 처형할때는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게하거나 선동을하여 구타를 해서 죽이게하는등 수법이 잔인했다
종전후 이 살인혐의에 대해 아르베트 요크르는 자신은 왕국군 처형명령을 내린적없다 말하면서 단지 흑색지역민들이 왕국의 끄나풀에게 벌을 준것 뿐이다라고 말하기도하였다

11월~12월

아르티나 공산당은 사우저트,오브레,요누크,페어트가 어느정도 확보되었다고 생각되자 알티 섬 서부로 진격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알티 섬 전투는 그야말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알티 섬 로도전투

ArmA 3 Screenshot 2017.11.17 - 19.46.07.79.png 알티 섬 로도전투2.png 알티 섬 로도전투4.png
▲진격하는 공산군

"걱정 하지마시오 알티 섬은 붉은혁명으로 이미 공산당의 땅과 다름없소"

- 알티 섬 공산군지휘관이 내브다 당수에게 보낸편지 -


알티 섬 로도전투3.png
▲로도를 방어하는 왕국군

"너희 망할매국노들에게 절대 항복하지않겠다"

- 메브 토프알티 섬 방위군단장 -

알티 섬 로도전투당시.png
▲알티 섬 상황

아르티나 내전의 시작이자 청적전쟁의 시작

알티 섬에 공산혁명이 일어나긴했지만 공산당이 확보할수있는지역은 셀리기리아와 몰피안스 지역이였다 메브 토프 방위군단장이 무장해제를 하지않으면
강경진압을하겠다고 했으나 공산당은 요지부동이였다 메브 토프는 강경진압에대해 극심한고민을했었고 알티 섬 방위군 참모들이 적극반대함으로서 실행되지는
못하였다 나중후에 알티 섬 방위군참모의 회고록에서 강경진압을 하지않은것에 대해 후회한다는 말을적기도하였다
방위군이 망설이는 사이 공산당에서는 알티 섬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였고
11월 25일 공격을 시작했다

공산군은 왕국군이 로도는 반쯤포기를 하고 폴리홀지방,아티지방에 집중할것으로 생각하고있었다
메브 토프방위군단장은 공산군이 침략해오면 땅 한톱도 줄생각이없었다 공산군이 처들어 오자 바로 대규모 대응을 지시했고 로도는 몇일간 피바다가 된다
왕국군은 열악한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버티다가 폴리홀,아티지방으로 왕국군은 후퇴하게된다
공산군은 왕국군이 분열되었을거란 생각과 달리 강경하게 저항하자 당황하였다 하지만 로도을 확보하고 적들을 물리쳤으니 침착하게 밀어붙히면 적은피해로 알티 섬을 점령할수있을거라는 생각을했다

알티 섬 아티전투

아티 전투1.png 아티 전투2.png 아티 전투3.png
1.전사한 공산군시체2.공산군에게
2.포격하는 왕국군탱크
3.포격받는 왕국군 지역

아티 전투당시 상황.png
▲아티 전투전 상황

"뒤쳐지는 순간 죽은목숨이였다"

- 왕국군 병사 -

로도에서 분전하긴했으나 로도병력은 퇴각을하고 있었다 공산군은 기세를타서 폴리홀 지방 일부을 점령하는데 성공하였고 아티쪽으로 후퇴한 왕국군을 포위섬멸하는 작전을 구상하였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 그야말로 알티 섬 왕국군은 치명타를 맞게되는것이다
알티 섬 방위군도 이점이 문제였다 7만의 병력을 구하기위해 15만명또한 위험부담을 감수해야했다 왕국군은 점령당한 폴리홀을 공격하면서 아군에게 시간을 끌어줘야했다

작전이 시작되고 아티 지방은 그야말로 불바다가 되었다 왕국군은 필사적으로 저지하였고 공산군은 끈질기게 추적하였다
로도에 있던 왕국군 병사들이 아티로 이동하고 오요타레을 거쳐 폴리홀쪽으로 퇴각이 성공함으로서 전술적으로는 왕국군이 성공했으나
아티,오요타레는 사실상 공산군에게 넘어갔다 이후 알티 섬방위군은 스코프 지방으로 전원퇴각하게된다

국민군의 중립섬 침공

아르티나 내전 국민군 베르사르점령.png 아르티나 내전 국민군 매내르섬 점령.png
1.베르사르 섬 정부청사를 장악한 국민군
2.체포되는 매내르 섬 왕국군 포로


아르티나 내전 1937년도상황.png
▲1937년 주요상황

베르사르 섬

"개자식들....."

- 피네 후라아 베르사르 섬지사 - 국민군이 베르사르 섬을 공격했다는 소식을들은뒤 한말

아르베트 요크르국민군 지도자는 베르사르 섬,리글로 섬,매내르 섬이 중립선언을 하긴했으나 이들을 국민군이 점령할 필요성을 느끼고있었다
단순히 왕국군을 압박할 의도도 있으나 왕정이 무너진뒤 공산당과 전쟁을 하기위해선 중립 섬이 왕정이 무너지고 공산화되기전에 미리점령해서 공산화의 뿌리를 잘라버릴 속셈도 있었다
이번 내전에 대해서
피네 후라아베르사르 섬지사는 어느진영도 참여하지않을것임을 밝히고 중립을 표명하긴했다
굳이 베르사르 섬 전체가 고통을 감수하기 싫었고 이 내전에대해서 중립을 표명한 섬들에게 왕국이 이해한다는 입장을 전달받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르사르 곳곳에서 왕국타도을 외치며 항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피네 후라아베르사르 섬지사는 시위가 있는곳에 가서 직접 중립표명에대한 이유와 타도파들과 토론을 일일이 하며 중립선언에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국민군이 베르사르 섬 베르사르 내부 극단적이 왕정타도파을 이끌고있던 라인 씨파트와 접촉하였고 국민군이 베르사르 섬 주민들을 도와 왕정파들을 물치겠다는 말을전달하였고
라인 씨파트는 베르사르 섬 왕정타도파와 공화주의자들은 기간에 맞춰 돕겠다는 의견을 전달하면서 마넬 파프피베르사르 섬방위군단장 역시 우리와 함깨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했다
이 소식을 들은 요크르는 기뻐날뛰었다고한다 그 즉시 데트 캄 공격사령관이 직접가서 정확한 작전과 일정을 조율했고 이후 작전이 진행되었고 한치의 저항없이 베르사르 섬청사을 장악 피네 후라아을 체포하는데 성공했고
작전시작 2시간도 안되서 베르사르 섬 동쪽지역을 장악하는데 성공하고 서쪽으로 진격했다 마넬 파프피 섬방위군단장의 항복명령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대에서 국민군에 저항을 하긴했으나 결국 모두 제압당해버렸다
베르사르 섬을 완벽히 제압한후 라인 씨파트베르사르 공화국을 선포하고 피네 후라아을 대표적인 썩은왕정의 짐승들이라 욕을하며 도시한복판에 매달아 놓았고 광기에 물든 군중들에게 발로차이고 돌에 맞는등 구타을 당하게 한뒤
병사들에게 시켜 인분을 뿌리게한뒤 몇시간뒤에 총으로 처형했다
피네 후라아는 아르티나 전역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광기로부터 베르사르 섬을 안전하게 지키고자 극단주의자들을 직접설득을하는등 노력하였으나 결국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되었다
피네 후라아가 죽은뒤 라인 씨파트는 대중연설에서 자유의 수호자 국민군과 함깨 왕정아르티나에 고통받는 국민들을 해방시키겠다 선언하였다
베르사르 공화국이라는 독립성을 가진듯한 모습이긴 했으나 국민군에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걸 알리는 선언이자 이후 전쟁에서 베르사르 섬을 피바다로 만드는 선언이였다

매내르 섬

아르티나 왕국의 뿌리라는 매내르 섬의 뿌리와 명예을 지키지 못하였구나 이럴줄알앗으면 이곳이 불바다가 되더라도 여왕에게 충성할것을......

- 몬 리루드후작 매내르 섬지사 -

멍청한 노망난 늙은이들

- 이트 로메이 -

왕국 상황
매내르 섬은 아르티나의 시조 크라시대왕이 태어난곳이며 아르티나의 역사적 중요한곳중 하나이다 그만큼 왕국의 영향이 클수밖에없었고 내전 발발당시에도 왕국의 입장을 지지하는편이였다 그러나 문제가있었다
왕국군이 크라시 섬은 고사하고 매내르 섬까지 지킬여력이 있느냐것이다 당장 이번 내전에서 왕국의 편을 들면 적들은 분명히 매내르 섬을 공격할것이고 매내르 섬의 환경과 유적지에 피해가 갈것을 우려했다
매내르 섬에 피해가 갈바에야 중립선언을 시키고 안전하게 두자는것이 몬 리루드의 생각이였고 또한 아르티나 왕국 원로들도 비슷한 생각이였다 하지만 적들이 중립선언을했다고 뻔히 왕국의 영향이 큰곳을 가만히 내버려두겠냐는 의견도 분분하였으나
결국 중립 선언을 하는것으로 결론이 났다 아르티나 왕국 원로회에서도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왕국군 지휘관들은 말도안된다면서 반발하였다 특히 이트 로메이육군대장이 특히나 분노하였고 대놓고 원로회에 가서 단체로 노망났냐면서 욕설까지
퍼부었다고 한다 열받은 원로회에서 로메이을 육군대장에서 제명시키려고도 했으나 루카푸 왕국군총사령관 결사반대했고 루타공작이 원로회와 로메이육군대장을 겨우말리면서 무마되었다
매내르 섬은 중립선언을 하였고 루카푸사령관은 소수의병력만 남긴채 크라시 섬으로 병력을 후퇴시켰다

국민군 상황
국민군은 매내르 섬의 중요성을 크게두고있었다 매내르 섬만 확보하면 인근 작은섬들도 확보되고 크라시 섬을 더압박할수있기 때문에 매내르 섬 점령을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였다
처음에 중립선언을 보고 일종의 기만전술로 받아들이고 매내르 섬안에 15만의 병력이 있을것으로 추정하고 공격을 하지않을려고 했으나 15만은 커녕 만단위도 없는것으로 파악되자 요크르와 캄은 서로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캄 흑색군공격사령관은 베르사르 섬을 점령하면 왕국군은 분명히 매내르 섬에 대규모 병력을 보낼것이라 말했고 베르사르 섬 공격과 동시에 매내르 섬을 타격할것을 구상했고 매내르 섬 공격을 베르사르 섬 공격과 똑같은날 이루어졌다
30만의 투입병력중 베르사르에 7만명만 투입되고 나머지 23만명은 매내르 섬에 투입될정도로 매내르 섬을 우선적 목표로 잡고있었다

매내르 섬은 4000명의 여단 한개가 겨우 존재했을뿐이고 베르사르 섬에 뭔일이났나 생각하기도 전에 기습을 받았다 매내르 섬주둔 여단장은 긴급히 병력을 퇴각시키긴했으나 자신 포함해서 3000명이 포로로 잡혀버렸고
겨우 도망친병력은 고작 300밖에 되지못했다 대부분 싸우다 사살당하거나 탈출하다가 붙잡혀버렸다
왕국군이 인근으로 병력을 파견했으나 이미 국민군에 완벽히 장악당한걸보고 크라시 섬으로 배를 돌려야했다

리글로 섬

쉽게 항복할거라 생각하지마라

- 라디티라므 하사네포 리글로 섬지사 -

필요하다면 학살도 고려해야한다

-포트 스미스 리글로 섬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을보고한말 -

리글로 섬 상황
리글로 섬지사 하사네포는 전형적인 왕정파이다 그러나 중립을 하겠다는 이유는 하나였다 너무 리글로 섬이 크라시 섬과 동떨어져있고 당장에 남쪽은 공산혁명이 북쪽은 군사반란을 일으킨 국민군과 정신나간 극단주의 공화주의자들이
판을 치고있었다 리글로 섬 내부에서도 이미 그런운동은 전개되고있었으나 다른섬들처럼 그렇게 큰편도 아니였고 온건적인편이였다 마음같아선 왕정을 지지하고싶었으나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공산당과 국민군이 동시에
몰려올경우 감당이 되지않을것이라는판단이였다 더나아가서 중립선언하는게 왕국에 오히려 도움이 될수있다고 판단한것도 있다
물론 더 중요하게 생각한것은 이 미친 내전속에서 자신이 지사로 있는 섬이자 태어날때부터 지냈던 이곳을 불바다가 되는걸 보고싶지않은것도 있었다
내전 발생이후 공식적으로 중립선언을 하였고 리글로 섬 주민들에게 중립선언에대한 이유을 설명하였다 그리 인기가 좋지못한 하사네포 섬지사였으나 리글로 섬 주민은 대다수 지지를 하였다
리글로 섬 주민들역시 자신들이 사는곳이 불바다가 되지않았기 때문이였다
베르사르 섬과 달리 섬지사와 주민들의 대다수의견이 잘맞아 떨어지는 상황이였다 물론 국민군은 중립선언 그런건 신경쓰지도 않을 생각이였다

국민군 침략전 상황
아르베트 요크르는 리글로 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있었다 당초 국민군은 리글로 섬을 점령하는데 의견이 굉장히 갈리는 상황이였다
역사적으로 크라시대왕마저 리글로 섬을 공략하는대 곤란을 겪고있었고 리글로 각지 부족들과 협상끝에 리글로 섬을 아르티나에 합류시킬수있었다
리글로 섬 칭호가 오죽하면 맹장들의 섬,진정한 전사들의 섬 이라 칭하며 리글로 섬에게 엄청난 선물과 우대를 해주며 섬주민들의 마음을 공략하는 방향으로갔었다
데트 캄 공격사령관도 부정적인 입장이였으나 아르베트 요크르국민군원수와포트 스미스흑색친위사령관이 리글로 섬 공략전을 승인하면서 작전이 진행되었다

이미 베르사르,매내르의 중립선언에도 공격해서 점령한 국민군이였기에 리글로 섬지사와 만슈 리틴리글로 섬방위군단장은 공산군을 의식하기보다도
국민군을 더욱더 의식하고 방어에 전념하고있었다 국민군이 중립섬을 점령하고 리글로 섬에대한 침공의 소문이돌고 불안감이 생기자 리글로 섬 남녀노소 가릴것없이 자원입대하고 전역군인들이 재입대을 하는등 맹장들의 섬 답게
섬을지키겠다는 의지가 굳건했다 전투는 국민군의 공습과 함깨 시작되었다

인근 섬을 점령해서 포격과 공습을했어도 상륙부터 강력한 저항을받았다 이후 뚫어내고 진격을 이어나갔으나 가는곳곳마다 지뢰와 매복공격을 받았다 몇명빼고 대부분피난을가서 식량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포로가 총기를 탈취해서 국민군병사을 쏘고 도망가는건 비일비재했다 이런 상황때문에 포로을 잡지않고 바로 사살하기도 했으며 마을주민들에게도 위협하는등 양쪽진영이 그야말로 험악해졌다
리글로 섬지사는 침략받았을때 불법침략에 대한 반발로 왕국을 지지선언하겠다고 하였다 이 선언은 자칫잘못하면 공산당에게도 명분을 줄수있는 것이였으나 이미 공산당과 합의을 해놓은상태였다
처음엔 공산당에 들어가서라도 침략에 대한 방어을 하겠다는 입장이였으나 공산당이 난색을 표하자 왕국을 겉으로만 지지선언하고 만약 이 침략을 물리치면 공산당에게 적극협력하겠다는 의사을 전달하였다
르타 내브다당수가 잠깐 고민을하더니 승락했다
공식적으로 왕국 지지선언을 하게되며 적극 항전하게된다 왕국도 지지선언에 답하며 국민군과 전투을벌였다
하지만 결국 리글로 섬 절반이상이 장악당해버렸다 국민군은 항복권유을했으나 섬지사는 거부하며 항전하였다

나르 섬 306고지전투

아르티나 내전 나르 306고지전투.png
1. 306고지를 빼앗기 위해 공격하고있는 공산군

x발 누가여기가 그리 경치좋다던데 이 근처살면서 몰랐는데 이제는 알겠네

- 306고지을 지키는 왕국군병사가한말 -

이게 다 아르티나인민들을 위한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처음으로 이 혁명에대해 의구심이 드는 장면이였다

- 르타 내브다 306고지에서 촬영된 보고받은 사진들을 보며 -

지옥의 고지
306고지는 내내 고지근방은 초토화가 되었으며 원래 400고지인데 하도 포격을해서 306고지가 되었다는 농담이 있을정도로 치열했다
공산군은 알티섬에서 왕국군을 스코프지방까지 몰아붙히는데 성공하자 나르 섬에 대한 공세에 들어갔다
씨탬프 공산군은 공격전에 모병을 실시했는데 많은 씨탬프 남성들과 여성들 당시15~17살의 학생들도 올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취지 자체는 왕정을 무너뜨려서 공산주의을 퍼트리기 위해서였으나 나르-씨탬프 지역갈등때문에 사실상 나르 공격에 적극적이였다
나르 주민들 역시 공산군 아니 씨탬프인들이 내려오는걸 막기위해 왕국군에 자원입대하기도했으며 심지어 나르 섬 공화주의자들도 왕국군편에 들어서 싸웠다
하지만 결국 왕국군이 후퇴하면서 나르 섬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

스코프전투,적흑의 테르 섬 공격

내전001.png

이제는 도망칠곳도 없다 우리가 할수있는것은 빨갱이들을 죽이는것 그것뿐이다

- 메브 토프 -

전쟁터 한가운데 있으면서 중립타령하는것들이 왕국군보다 더 혐오스럽다

- 아르베트 요크르 -

알티 스코프 지역전투

다른쪽도 위험하겠죠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오시지 않으시면 알티에서 왕국을 지지했던 왕국민과 왕국군은 알티의 바다로 그대로 퐁당입니다

- 메브 토프 -

전역에서 후퇴한 왕국군은 스코프지역에서 버티고있었다 왕국군 해군이 국민군,공산군 해군을 압도하면서 승리하고있었고 지원병력도 도착하면서 테르스 지역을 탈환할 생각을 하고있었다
한편 공산군은 스코프지역을 도저히 뚫지 못하고있었다
이곳을 빠르게 정리한뒤 나르 섬을 정리할 생각이였으나 왕국군은 잘막으며 버티고있었고 국민군이 중립선언을했던 테르 섬 북섬을 공격하자 공산군도 급히 테르 섬 남섬쪽으로 공격을 시작하였다
테르 섬지사는 왕국에 도움을 요청하고 테르 섬에서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공산군은 빠르게 알티 섬 스코프지역을 점령하고 테르 섬 점령후 흑색군보다 더빨리 보로트 섬 지역을 많이 차지하고 크라시 섬을 공략할 계획을 세우고있었다
스코프지방에서의 왕국군은 필사적으로 버티고있었으며 왕국군의 해군이 알티 섬 근방의 해상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지원이 들어오자 사기가 오른상태였다
공산군은 빠른 제압을 위해 대대적인 공격에 들어갔다


알티 스코프전투-1.png 알티 스코프전투-2.png

1.저항하는 왕국군 / 2.스코프지방으로 상륙하는 왕국군

결과

왕국군 스코프지방 사수 성공
이후 테르 섬을 공격중인 공산군에게도 영향이 가고 적흑전쟁의 원인중 하나가 됨

테르 섬 침공

이즈리 섬에 상륙해서 이미 왕국군과 전면전중인 국민군이였으나 이즈리 섬에서의 상황이 그리 좋아지지않자 보로트 섬을 통해서 크라시 섬을 침공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우선적으로 보로트 섬 이전에 테르 섬을 공략할 생각이였다 물론 두 섬다 중립선언 한곳이였으나 그런건 국민군에게 신경도 쓰지않았다
국민군은 공산군에게 자신들은 테르 북섬을 침공하여 보로트을 통하여 크라시 섬에 상륙할것이니 당신들은 남섬을 침공해달라 라는 의견을 말하곤 하루뒤 바로 테르 섬 북섬을 침공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보로트 섬지사는 바로 왕국편으로 참가하여 싸우게 되었다 어차피 다음은 자신들의 차례라는건 뻔했기 때문이였다
공산군은 중립 섬을 침공하는데에 거부감을 느끼고있었으나 테르 섬에서의 국민군이 연일 승리을 거두며 왕국군을 몰아내고 북섬의 절반이상을 차지하자 급박해진 공산군은 테르 남섬에 급히 병력을 보내 점령한다
하지만 국민군과 달리 초기에 승리하는듯 했으나 이후 진격하지 못하고 막히게된다 공산군은 알티 스코프지방과 나르 섬도 아직 정리가 되지못한지라 테르 섬 공격에대해서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국민군은 북섬을 완벽히 장악하고 테르 남섬과 보로트 섬 공격을했다

결과

국민군은 테르 북섬을 완벽히 장악하였다 남섬은 소극적인 공산군과 국민군의 협력해서 침공하나 왕국군을 뚫지는 못한다

청색 3섬 전투

이즈리 섬,보로트 섬,나르 섬 3개 지역의 전투을 말한다
테르 섬 북섬이 점령됨에 따라 보로트 섬이 위험해졌다 간간히 소수의 국민군이 상륙해서 왕국군을 괴롭히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이즈리 섬에서는 국민군과 왕국군의 전면적인 전투가 일어나고있었다 그야말로 양진영의 힘싸움의 현장이였고
나르 섬역시 공산군과 전면전중이였다
국민군은 공산군과 함깨 한번에 밀어붙힐 생각을하고있었다 나르 섬을 완벽하게 점령하고싶었던 공산군은 국민군의 제안을 수락하였고 이후 흑적군의 공세가 이어지게 된다
왕국군은 이 공세에 대해서 이미 알고있었다 국민군이 공산군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흘러갔고 왕국군 요원이 듣고 보고하였다

결과

나르 섬 이즈리 섬 보로트 섬 3섬에 대한 전면적이 공격이 이어졌고 치열한 전투 끝에 이즈리 섬은 점령지역이 변화한것은 없으나 국민군의 패배였다

나르 섬 같은경우 오히려 반격에 성공하면서 전선을 밀어냈다

이 작전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