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안 왕국/기업

본 문서는 올리비안 왕국의 기업을 나타내는 문서이다.

기업설정은 각 기업을 창설한 각 회원분께서 하였음

길버트 그룹

길버트 그룹은 1974년 창설된 올리비안 왕국의 사기업이자 세계적 기업이다. 중화학공업, 조선업으로 시작하여 점차 관광업, IT산업으로 2차 산업 중심 기업에서 3차 산업, 4차 산업 중심 기업으로 변화했으며 길버트 몰 타워, 길버트 디자인센터 등 여러 국가사업에도 참여한 바 있다.

최근에는 그룹 일가에서 정치가 또한 배출하여 상당히 이슈가 되고 있다.

경영진 목록
<<<길버트 그룹 회장 : 길버트 리길버트 그룹 부회장 : 기르벗 리>>>
길버트쇼핑 사장 : 기르버 리길버트무역 사장 : 기르버르 리길버트전자 사장 : 길버르 리월드와이드항공 사장 : 기르벝 리
길버트중공업 사장 : 길버 리길버트오일 사장 : 길보트 리길버트리테일 사장 : 길봇 리길버트엔터테인먼트 사장 : 기르봇 리
길버트식품 사장 : 기르버르 리

이 외 계열사는 너무 많아 일부만 서술하였다.

ㅁ 역사

중국계 이주노동자 2세 길버트리가 삼촌이 운영하던 구멍가게 길버튼상회에서 부터 시작된다. 길버트리는 가게를 물려받아 사업을 확장하였고, 1974년 올리비안 왕국에서 길버트건설을 설립, 마천루 건설업에 뛰어든다. 그후 여러가지 분야로 사업을 확장시키며 1979년, 올리비안 기업 최초로 해외 진출을 한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때 당시 아시아에 많은 투자를 해 피해를 보기도 하였으나 극복하고 성장, 지금의 세계적인 길버트그룹을 이룩하였다.

DH 그룹

DH 그룹은 1981년 올리비안 왕국에 진출을 시작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유망의 기업 중 하나이다. 군수업을 중심으로 기업이 운영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무기들을 수출하고 있다. 올리비안 왕국도 DH 그룹의 무기를 구매, 배치하고 있는 상태이다.

ㅁ 역사 (가상세계관이 약간 가미되었습니다)


대한왕국 참고

1902년 구한말에 고종이 공화파들의 테러로 사망하고 순종이 그 뒤를 이어 즉위하는데 순종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조선반도 점령을 앞두고 있는 일제에 맞서 러시아와 동맹을 채결하고 뛰어난 외교활동으로 미국의 중재하에 열강들 사이에서 한반도가 완충지대로 인정받게 된다. 일제가 조선반도 점령에 실패해 대륙진출에 차질이 생기자 조선에 전쟁을 선포하려 했으나 러시아와 중국이 일제가 조선반도를 점령할 경우 일제가 두 국가에 동시에 대항할 정도로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조선보호를 선언했고 결국 일제는 조선반도의 점령을 포기한다. 그러나 조선을 경제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여러가지 수단을 이용했고 순종은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한상회를 세우고 자신의 둘째 아들인 이현을 회장으로 세운다.

대한상회는 만주를 시작으로 주변국을 상대로 돈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한국에 당시 불던 애국주의 열풍으로 한국에서 큰 이익을 얻어 사업 기반을 다진다. 마침 중일전쟁이 벌어지고 일제가 대한산업(대한상회에서 이름을 바꿈)에 조선 내 공장 건설 및 이용을 요구했고 전쟁특수를 누리면서 대한산업은 무기 및 중공업 기술 또한 갖춘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을때 조선은 재빨리 친미정책을 펼쳤고 마찬가지로 소련의 후방기지와 중국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며 큰 이익을 창출했다. 이후 국공내전을 겪으며 군사기술을 올린 대한산업은 중화인민공화국이 공산주의자 군인이였던 김일성을 지원하여 세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왕국(조선의 새 이름)을 침공하여 한국전쟁이 시작되었을때 최초로 민간군사기업을 출범시키고 전쟁이후 황폐화된 대한왕국을 재건하기 위하여 산업지원에 뛰어들면서 21세기에 들어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최상위권에 드는 기업이 되었다.

역대 올리비아 지부장
1981년~1987년 이승하1987년~1996년 권휴진 지부장1996년~2001년 최상헌 지부장현 서광인 지부장



PF 그룹

PF 그룹은 1985년 트럭 한대를 가지고 시작한 작은 운송회사에서 역사가 시작된다. 올리비안 왕국의 사기업이자 세계적인 대표운송기업으로 발전하였다.

ㅁ 역사

1985년 트럭한대를 가지고 시작한 운송 사업이 빠르게 커지면서 7년만인 1992년 세계적인 운송사가 되기 위해 선박을 도입하여 PFShipping 설립과 비슷한 무렵 긴급화물용 헬기로 PF Airways가 설립된다. 항공사업을 확장시키다가 받은 토잉카로 PFGround가 설립되는데 이때가 세계 경제위기의 최고점이었고 자본이 유출되어 회사가 흔들리면서 항공정비업을 폐업결정하고 택배사업을 운송과 바꾸고 허브 운영도 자회사로 전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PFHUB와 PF택배이다. 2000년대, 항공사업에 에어버스사의 기재를 도입하고 건설업을 시작하였으며 2003년에는 영화사업에 뛰어들면서 PFC가 세워지고 2005년, 독특하게 팝콘 사업을 영화관사업과 분리하여 Pop&Fun식품을 설립한다. 비슷한 무렵에 일본의 유니클로사를 모방하여 SPFO를 세운다. 그 후 식품사업과 의류사업에 크게 투자하면서 PF그룹이 PF홀딩스로 바뀌고 운송그룹, 식품그룹, 의류그룹, 그외 사업을 묶은 PF그룹으로 분할되면서 PF건설의 자금력 아래에서 여러 사업에 진출하게 된다. 이로써 현재의 기업 목록이 되고 항공정비업에 PF Aviation Tech로 다시 진출한다.

VIACOM 그룹(천호그룹)

VIACOM 그룹은 역사가 깊은 파라마운트 스튜디오가 올리비안 왕국으로 이전하면서 시작된 올리비안 왕국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올리비안 왕국 주요 사기업이다.

ㅁ 역사

1976년, 당시 스타트렉 더 모션 픽쳐를 제작중이던 파라마운트 픽쳐는 예산 절감을 위해 부지 이용도가 낮은 곳을 모색하던 중에 올리비안 왕국으로 이전,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로 재창립하면서 역사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단순히 영화촬영 회사에 그쳤지만 시간이 지나 1998년에는 정부와 합작으로 공기업인 천호교통공사와 천호역사운영이 출범, 2005년에는 일본의 훼미리마트와 닌텐도사와 합작하여 천호훼미리마트, 올리비안닌텐도를 설립하게 된다.

파라마운트 그룹은 추후 본사 직영으로 전환하여 미국의 바이아콤 그룹 산하로 들어가게 되는데 2007년, 그곳에서 대한왕국의 컬쳐브랜드 CJ와 합작하여 올리비안 왕국내 올리비안 CJ 창립, 투니버스의 개국, 투썸플러스 지점 개설 등이 이루어지게 된다. 현재 왕국내 지사는 그룹 산하의 건설사에 의해 건축된 파라마운트 사 건물에 입주해있다.

(여담으로 파라마운트 사 건물 상공에는 공사 창립 30주년으로 제작된 엔터프라이즈 조형물이 있다)

HL 그룹

HL 그룹은 올리비안 왕국의 대표적인 사기업이다.

ㅁ 역사

  • 1954년, HL그룹 창립자 호텔리마가 HL 올리비안 항공사를 설립하여 비치크래프트 모델 18 1대와 스틴슨 스테이션 웨건 항공기 2대를 미국에서 중고로 들여와 승객, 우편운송 사업을 시작한 것이 그 시초이다. 항공산업을 바탕으로 회사가 성장하기 시작한다.
  • 1974년, Cobalt Blue Shipping 을 설립하고 해운업에 진출하였다.
  • 1975년, HL건설을 설립하여 건설업에 진출하였다.
  • 1977년, 영화 배급사이자 게임 유통사 HL Arts를 설립하여 루카스필름과 올리비안 왕국 내에서 스타워즈 테마를 독점계약을 하였다.
  • 1980년, HL 올리비안 항공사를 Cobalt Blue Airlines 로 사명을 변경하고 Cobalt Blue 항공 자회사로 Cobalt Airport 를 설립하였다.
  • 1991년, 항공기 부품제작과 MRO사업을 하는 HL Aviation Industry 가 설립되었다.
  • 1996년, 관광업계에 진출하여 HL Tour를 설립했다. HL 투어의 자회사로 올리비안 시티 투어가 있다.
  • 2006년, 호텔과 면세점을 운영하는 거킨호텔이 설립되었다.



강남 그룹

강남 그룹

오이 그룹

오이 그룹은 NEO 3사 연합이라는 최고 * 최대의 그룹 연합 중 하나인 PTY 그룹의 오이 그룹이다. 오이 그룹 내에서도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지지만 대부분이 모체인 오이 그룹과 강 오이 회장의 지분이 높아, 사실상 하나의 그룹이라 봐도 된다. 올리비안 왕국에 진출한 올리비안 왕국의 사기업이다.

ㅁ 그룹 구조

오이 그룹 내에서의 4촌 관계인 강 오이와 강 진영, 이 준수의 지분 싸움이 있어 오이애니메이션, 더오이블루파크스는 강 진영이 Twich, 오이노앰알은 이 준수가 사실상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지분 구조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는 그룹 중 하나이다.

경영진 목록
<<<오이 그룹 회장 : 강 오이오이 그룹 부회장 : 강 세희>>>
오이 운송 사장 : 강 오이오이 유통 사장 : 강 세희오이 전자 사장 : 김 정빈오이 통신 사장 : 유 준석
오이 오일 사장 : 정 영진오이 화학 사장 : 정 우진오이 중공업 사장 : 최 철호오이 모직 사장 : 이 선계
오이 생명 사장 : 이 준세오이 소프트 사장 : 박 현석오이 캠퍼스 사장 : 강 세희오이 문구 사장 : 강 오이
오이 신소재 사장 : 이 진욱

ㅁ 역사

1885년, 왕족(7촌)이었던 강규용은 조상 대대로 조금씩 조금씩 모으던 땅과 자본을 사용하여 최초로 '누사단 연필'을 창립하였다. 누사단 연필은 연필을 제작하긴 물론이고 나라의 첫 색연필 제작사이기도 하였다.
1901년, 포르투갈에서의 혁명의 여파로 살짝의 혼돈의 시기가 오던 중 가방 제조업체였던 '구시미점'을 인수하고, 사명을 '쿠데벰종합문구'로 변경하였다.
1902년 2월, 사측이 '18색 연필통 세트'를 판매 시작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그 해 3,4월은 회사 창립 이래로 최고의 매출을 거두었다. 자본금이 쌓인 회사는 자신들의 매출이 될 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회장이 직접 학교를 방문하여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18색 연필통 세트'를 상으로 지급하여 학생들에게 엄청난 이미지메이킹을 하였고, 결과는 성공하였다.
1904년, 출판사인 '비수창'을 인수함과 동시에 국내 최초의 '문제집'을 출판하였다.
1905년, 쿠데벰종합문구의 기술자가 중력에 의해 액체가 연직방향으로 떨어진다는 원리를 이용하여 휴대용 붓인 '이동붓'을 개발하였고 이 또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불량품이 다소 많이 생겼다.
1906년, 강규용 회장에서 김주환 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졌다.
1908년, 지리적 요충지임을 발견한 김주환 회장은 수리 교통을 통한 무역을 생각하였고, 이를 실행시킨다. 이것이 '라피도 운송'이다. 사실 자신 회사의 상품을 대서양 연안 국가들에게 팔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4개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쪽박을 치고 만다. 2개국은 각 멕시코, 베네수엘라, 포르투갈, 라이베리아이다. 대부분의 유럽 열강의 판매는 기술력 차이로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판매국은 5개국으로 한정되었다.
1912년,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며 잠시 휴업하였다.
1913년, 영국의 침략 당시 잠시 휴업하였다.
1915년, 친미 정책을 파기해버린 국가 덕분에 멕시코로의 수출길이 멈추었다. 최대 수출국인 멕시코로의 수출길이 막힌 것은 파격이 컸다. 그 해 김주환 회장은 한 우물만 파는 것은 위험하다며 쿠데벰종합문구에서 고무줄, 성냥, 돋보기, 줄자, 장갑, 연습장 등을 판매 시작하였고, 공장을 추가로 지으며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1916년, 국왕이 피살되면서 내수 시장은 어려워졌다.
1917년 '쿠데벰종합문구'와 '라피도 운송'을 각 '오이종합문구'와 '오이운송'으로 사명을 변경하였고, '오이시계'를 출범하였고, 3개사를 '오이 그룹'으로 칭하였다.
1918년, 3년간 지속된 포르투갈지부의 적자로 포르투갈로의 상품 판매를 중단하였다.
1919년, 오이토목공사, 오이제지, 오이제철, 오이건설, 오이금속등을 출범하였다.
1922년, 친미 루트를 타고 중개무역 및 관광경제 중심의 경제개발을 선언하여 오이문구는 맥시코로의 수출을 재개하고 오이운송은 증기여객선 2대를 주문하고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로 가는 노선을 뚫는다.
1925년, 김주환 회장에서 곽화비 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진행되었다.
1926년, 곽화비 회장은 미래 산업의 중요성을 말하며 오이제철, 오이은행, 오이경제연구소, 오이생명, 오이화재, 오이유통, 오이식품 등을 출범한다.
1939년, 오이식품에서 파는 빵이 빵집보다 비싸, 오이식품의 빵이 고급화 되어버린다. 또한 오이유통에서의 토마토 소스에 절여진 빵 캔이 미군에게 유통되었다.
1940년, 칠레에 상품 판매를 시작하였다.
1941년, 아시아의 여러 기술자와 경영자와 조우하였다.
1942년, 미국을 도와 일본에게 선전포고하였고, 미군과 오이군에 여러 물자를 대량으로 공급하여 오이제철, 오이금속, 오이유통, 오이식품이 크게 성장하였다.
1945년, 프랑스에 상품 판매를 시작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의 미군 참전으로 물자 보급량이 다소 늘어나 이익이 증가하였다.
1951년 오이군에 전투식량을 보급하도록 선정되어 오이유통이 크게 매출이 증가하였다.
1955년, 오이자동차와 오이중공업, 오이모직, 오이전지 등의 2차산업의 계열사가 출범하였다.
1958년 경제침체로 내수가 불안해지자, 기니비사우 등의 서아프리카, 일본과 남한 등의 동아시아, 핀란드 등의 북유럽에서의 상품 판매를 시작하였다.
1959년, 오이식품에서 대규모 라면 생산 라인을 구축하였다.
1960년, 영국과의 수교가 진행되며 시에라리온과 영국에서의 상품 판매가 시작되었다.
1963년, 우주산업 열광으로 오이에어로스페이스가 출범하였고, NASA의 인공위성 개발에 일부 참가하였다.
1968년 오이리 국제공항이 건설되며 오이항공, 오이여행, 오이리무진, 오이호텔 등이 출범하였다. 또한 회장은 교통의 중요성을 언급하였다.
1969년, 지하철 계획이 수립되었고, 지하 공사가 가능한 신용이 높은 기업이 많지 않아, 오이중공업이 터널과 교각 등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1974년, 오이유통은 물을 판매하는 KEOLAND를 계열사로 분리시켰고,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비웃었다.
1975년, 곽화비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하여 회장의 딸인 곽수빈 씨가 회장이 되었다.
1976년, 곽수빈 회장이 경영권을 포기하고, 강타온 회장에게의 경영권 승계가 진행된다.
1981년, 석유/화학등의 중공업 회사가 여러 출범한다.
1982년, 전기/전자/금속 등의 회사가 여러 출범한다.
1983년, 인구의 증가로 식수의 수요가 증가하자 첫 식수의 판매가 시작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 대표팀의 수송을 오이항공이 맡게 되었다. 오이-파리-쿠웨이트-서울
1989년, 생명공학 부분에서의 회사가 여러 출범한다.
1990년, 송유관수송 등의 육로수송 부분에서의 회사가 여러 출범한다.
1995년부터 첨단 산업을 이끌어나가는 세계 회사 중 하나이다.
1998년, 대규모 회사의 구조조정이 있었다. 다행히 해고된 사람은 약 1000명에 불구하였다.
1999년, 강타온 회장이 강오이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한다.

두한그룹

두한그룹은 최근에 주요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올리비안 왕국의 사기업이다.

ㅁ 역사

1950년, 중국 상하이에서 1대 회장 김두한과 부회장 상하이 조가 두한그룹을 창립하였다
1965년, 올리비안 왕국으로 두한그룹이 이전했다
1972년 11월 21일, 김두한 회장이 사망하였다
1980년, 김두한의 친아들 김주택이 2대 회장에 취임했고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스텔라 홀딩스===(삭제준비중)

스텔라홀딩스는 올리비안의 대표 사기업 중 한 곳이며 왕국 국민들로부터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스텔라홀딩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