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우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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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우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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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연표

마라우타 역사 연표
제3공화정: 마라우타 인민연방
2016년 7월 2016년 7월 29일인민 총궐기 대회
시민경비대 및 국군 해산
제2공화정 마라우타 연방 멸망 선언, 마라우타 인민연방 설립 선언
언론 통제 실시
언론 통폐합 실시
2016년 7월 30일무기 수거 거부에 대한 조치
2016년 7월 31일해방전선 다에시(Daesh) 가담, 성난 인민
8월 2016년 8월 11일인민중재대회
2017년 10월 2017년 10월 6일인민당, 종교 통제 정책 발표
2017년 10월 8일집단지도체제 중앙정무위원회 출범
2017년 10월 25일교육문화부 인민연방 문화 유산 계승 및 보존 발표
2017년 10월 26일인민당, 하늘미르 왕국 하늘미르 공산당 축전 발송
한빛민주공화국 반공 3원칙 발표
하늘미르 왕국 보수정권, 공산당 배제 사건
2017년 10월 28일인민당, 붉은 장미 원칙 시행
재무산업부,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11월 2017년 11월 9일인민당, 인민연방 법령 폐기 공포
12월 2017년 12월 23일인민연방 종교정책 완화
2018년 3월 2018년 3월 18일인민당, 집단지도체제 일부 변경
6월 2018년 6월 10일조국재건위원회 창설
2018년 6월 17일자치주의 독립, 창 연합 결성
7월 2018년 7월 3일몰도바 사건 발생
2018년 7월 13일중앙정무위원회, 인민 총궐기 대회 2주년 성명 발표
2018년 7월 15일제1차 연방준비제도 회의 소집 및 관세전쟁
2018년 7월 22일언론 자유화 선언 폐기 위기
9월 2018년 9월 29일마라우타 연방 공화국 제2대 대통령 최형주 서거
2018년 9월 30일마라우타 인민연방 헌법 제정

고대 시대

중세 시대

근대 시대

독립 및 합병 이전의 마라우타 역사

제1공화정: 마라우타 연방 공화국

건국기

네팔 왕실 멸망, 불안정한 내각

네팔 왕국에는 국민의 폭넓은 지지로 성군이라고 평가 받았던 비렌드라 국왕이 건재했기에 왕정붕괴를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01년 발생한 참극은 네팔의 국체를 완전히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2001년 6월 1일 비렌드라(비렌드라 비르 비크람 샤 데브, वीरेन्द्र वीर विक्रम शाह, Birendra Bir Bikram Shah Dev) 왕과 아이슈와라 왕비를 비롯한 9명의 왕족들이 나라얀히티 왕궁에서 사망하게 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궁정만찬사건으로도 불리는데, 이 왕실 학살 사건의 범인은 바로 디펜드라 왕세자였다.

디펜드라 왕세자는 라나 가문 소속인 데브야니 라나 여인과의 약혼을 했지만, 비렌드라 국왕과 왕비가 가문의 이유로 반대했다. 정확한 학살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정황 증거를 볼 때에 디펜드라 왕세자가 자신의 결혼을 반대한 이유로 국왕 부처와 당시 만찬을 즐기고 있던 다른 왕족들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네팔 법에 의해 디펜드라 왕세자는 왕이 되었으나, 혼수상태에서 즉위한 셈이었고 그 자신도 학살 도중 부상을 입어 즉위한 지 며칠만에 사망하였다.[1] 이 사건 이후 비넨드라 전 국왕의 동생인 갸넨드라(갸넨드라 비르 비크람 샤허 데브, ज्ञानेन्द्र वीर विक्रम शाहदेव)가 국왕에 취임하게 된다.

왕실의 참극으로 충격과 혼란에 빠진 네팔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한 것은, 평소 거만한 언행으로 국민들의 반감을 샀던 갸넨드라가 국왕에 즉위했다는 소식이었다. 갸넨드라 국왕 또한 이러한 반감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공포정치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2005년 2월에 갸넨드라 국왕은 총리를 공석으로 만들고 자신이 직접 관장하는 내각을 구성하겠다면서 '정국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하였고 정부 주요기관에 왕실 군대를 배치하였다. 그러면서 언론의 사전 검율을 의무화 하고, 정치인 부정부패 감사기구를 설치하여 정치인들에 대한 감시를 시작하였다. 2006년 1월에는 반왕정 집회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야권 지도자 107명을 구금 및 가택 연금 조치하였고, 수도인 카트만두 시내 전역에는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무장 병력을 배치하였다.

이렇게 시행된 조치들은 역대 최대 규모의 시위와 유혈사태가 불러왔다. 의사, 변호사, 언론인, 국영기업 직원들 등 지식인 계층까지 시위 대열에 합류하며 극렬하게 갸넨드라 국왕에게 저항하였다. 갸넨드라 국왕은 결국 2006년 4월 24일 항복을 선언하였고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गिरिजा प्रसाद कोईराला) 전 총리가 과도정부의 수반이 되었다. 과도정부 내각은 국왕의 군대 통수권의 박탈, 면책 및 면세특권 박탈, 22개 국왕 임명대사 소환, 판사 및 육군원수에 대한 인사권 박탈, 왕위계승자 임명권 박탈을 단행하였다.

그리고 네팔은 점차 탈왕정의 기조를 보이는데, 이는 2007년 1월 15일에 공포된 과도정부 임시헌법(Interim Constitution of Nepal)에서도 드러난다. 이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은 입법 절차와 국가의 수입 및 지출에 관한 규정 등에서 국왕의 영향력을 배제하였다. 같은 해 12월 23일에 국민투표에서 최종적으로 네팔은 군주제 폐지를 결정하였고 2008년 5월 28일에 네팔 제헌의회에서 압도적 찬성 속에서 왕정 폐지와 공화정 도입을 이뤄진다. 이는 "네팔연방민주공화국"의 탄생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자리였다. 네팔의 갸넨드라 국왕이 의회에 의해 실각하고 망명하면서 네팔의 샤(shah) 왕가이 붕괴하고 민주공화정이 시작되는데, 이를 첫번째 마라우타의 역사적 신호탄이라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왕정에서 공화국으로 급격히 변모한 탓에 네팔의 정국은 극도로 혼란스러웠고, 새로이 구성된 내각 또한 흔들리기 시작한다.

처음 수립된 네팔 공화국의 정부는 그대로 코이랄라 총리가 이끌고 있었다. 제1차 네팔 헌법은 의회내각제를 중심으로 하되, 대통령을 두는 이원집정부제를 국체로 두고 있었다. 혼란기를 수립한 코이랄라 총리는 신임 투표에서 다수표를 받아 공화국 최초의 총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민주화 당시 맹활약한 네팔의 양대 정당인 네팔 의회당(नेपाली कांग्रेस), 네팔 공산당(नेपाल कम्युनिष्ट पार्टी)을 포용하는 한편 갸넨드라 전 국왕을 지지하는 네팔 국민민주당(찬드파) 세력과도 연대하는 거국내각을 꾀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시작부터 좌초되었다. 1996년부터 네팔 왕정에 선전포고를 하고 인민전쟁을 이끌어온 네팔 공산당의 국방위원장이자 당수였던 푸시마 카말 다할(पुष्पकमल दाहाल)은 프라찬다(प्रचण्ड), 곧 '독한 놈'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강경한 마오주의자였다. 그는 왕당파 세력인 찬드파가 거국내각에 참여하는 것에 격하게 반발했으며, 특히 '부르주아 세력의 온상'이자 '네팔 왕정의 협력자'들로 가득찬 네팔 의회당을 인정하길 거부했다. 네팔 정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프라찬다는 의회를 보이콧하는 한편, 코이랄라 총리가 친왕당파라는 여론전을 펼쳤다. 결국 점차 거세지는 여론의 압박에 못 이긴 코이랄라 총리가 사퇴하고 말았다.

코이랄라 수반의 사퇴는 겉으로 보기에는 프라찬다의 승리였으나, 결과적으론 반공산계열을 뭉치게 하였다. 네팔 의회당의 당수였던 수실 코이랄라(सुशील कोइराला)와 왕정 당시 보건장관을 역임했던 람 바란 야다브(रामवरण यादव)는 네팔 의회당과 국민민주당 사이의 연대를 이뤄냈다. 이는 "네팔 공산당이 집권할 경우 왕실의 흔적을 지우겠다"는 프라찬다의 강경 발언이 국민민주당에게 큰 위기감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연대를 통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네팔 의회당은 기습적으로 표결을 진행했고, 이로 인해 제2대 총리로 수실 코이랄라가 당선되었다. 이어 공석이던 최초의 대통령에는 야다브가 당선되며 네팔 공산당은 정치 정국에서 수세에 몰렸다. 프라찬다는 네팔 의회당과 국민민주당의 연대를 야합으로 규정하고 장외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는 네팔 공산당이 네팔 공화국의 정통성을 부정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었는데, 이는 마오주의자 게릴라들의 습격이 산발적으로 발생하면서 현실이 되었다. 네팔 공산당은 마오주의자 게릴라들의 습격 배후로 의심받았으나, 의회 내 다수당이었기에 코이랄라 총리와 야다브 대통령은 네팔 공산당에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네팔 의회당을 비롯한 원내 정당들은 네팔 공산당을 게릴라들의 배후로 비판하였으며, 이는 제2대 총선에서 그대로 반영되어 네팔 의회당이 네팔 공산당을 누르고 원내 제1당이 되었다. 하지만 제2대 대선에서 농촌과 도시 프롤레타리아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프라찬다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현상이 발생하였다. 프라찬다는 코이랄라 총리와 네팔 의회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마오주의자 게릴라들을 사면하는 평화 정책을 펼치고 동시에 게릴라들이 점거한 지역에는 고도의 자치권을 약속하였다. 그 결과 게릴라와 네팔 공화국 간의 내전은 점차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이처럼 네팔 공화국은 상당한 혼란이 이뤄지는 와중이었으나 그나마 주변국인 부탄이나, 인도의 시킴(현재의 오르만), 중국의 티베트에 비하면 국가의 정체가 온전히 유지되는 편이었다. 또 게릴라와 정부 사이의 협상으로 무력 투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네팔의 군부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억제되었다. 이러한 네팔의 경험은 이후 네팔이 카트만두에서 마라우타 건국준비위원회를 준비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부탄 왕국 멸망, 군부의 분열

부탄에서는 2009년 1월 4일 부탄의 왕추크 국왕이 갑작스러운 피살로 인해 세상을 떠나자 혼란스러운 부탄 왕실을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나타난 부탄 군부의 쿠데타로 정부가 전복된다. 이로써 왕실은 축출, 상당수의 왕족이 타국으로의 망명을 선택하거나 혹은 가택연금 상태에 놓였다. 망명한 왕족 가운데 종친부의 실세였던 아히야 왕추크는 부탄 임시정부를 타국에 수립했으나, 왕실 주도라는 비판과 함께 실질적인 실효를 거두지 못한 노력으로 평가되었다.

부탄에서는 군부 집권 이후 부탄의 군부에 반발하는 간헐적인 시위가 발생했었고 민주화를 위해 노력 했다. 하지만, 다수 시민들의 노력과 달리 부탄 군부는 권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부탄의 재야세력들과 시민세력들이 은밀히 모여 군부-재야의 정치적인 견제와 불안정한 균형이 지속되는 가운데 2009년 4월 23일 민족당에 소속되어 있던 아라타 키부파가 부탄 군부의 실세세력인 이닌 하리파를 암살하면서 이 균형과 견제는 깨졌다. 이닌 하리파는 오르만 출신으로, 부탄으로 부모가 이주한 뒤 자수성가한 비 부탄계 군부의 수장이었다. 아라타 키부파 역시 오르만 출신으로, 민족당에서는 당시 하리파를 암살하기 위해 부탄인보다는 하리파의 동향인이라 하리파가 마음놓기 좋은 당원을 물색하던 도중 키부파를 찾고 그를 중용하였다. 키부파는 하리파 장군의 심장부근에 2발을 쐈고 또 복부에 1발을 쏜 뒤에 나머지 3발 중 2발은 문을 열고 달려드는 부탄군 고위장성 2명에게 발사 마지막 1발은 자신의 머리에 겨누고 자결하였다. 그의 시신은 이후 불태워졌고 주위의 이크라 강에 뿌려지게 되는데 이후 이크라 강은 민족당원들과 독립투사들의 성지로 불리게 되었다.

한편, 부탄의 군부 실세인 하리파 장군의 암살 이후 부탄에서는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발생하게된다. 부탄의 수도인 팀푸에서만 2만~7만명, 부탄 전역에서 15만~20만에 달하는 엄청난 시위가 발생하였다. 시위 도중에 투입된 군부대마저 시위에 휩쓸려 함께 시위대에 동참하는 사태까지 이르자 군부는 급속도로 분열하였다. 시위를 찬성하는 군부의 국민파와 시위에 반대하는 군부파로 나뉘게되었고 대립하는 와중에 결국 국민파를 군부파가 체포하게 된다. 군사재판에 올린 군부파가 이 대립에서 승리한 듯 보였으나 시민들이 국민파 장군들이 갇혀있는 교도소를 공격하였다. 그들을 풀어주고 군부파의 집으로 몰려가 군부파 장군들을 체포함으로서 일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재야세력-시민단체세력-국민파장군 이라는 3각 구도가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 자신들에게 조금 더 유리하게 하려는 계산이 깔려있게 되고 이는 새 내각을 수립하는 데 오래걸리게 되었고 결국 부탄은 오랜 기간 무정부상태가 발생한다. 무정부상태였으나 이 시기 시민들은 각자의 도시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였고 비록 최고 기관인 내각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지방자치단체의 장들이 솔선수범하여 일을 처리하자 정부가 없음에도 정부가 돌아가는 기이한 현상이 부탄에서 발생한다.

피의 강토크, 인도로부터 유혈 독립 운동

인도인 다수가 신앙하는 힌두교가 아닌 인도 시킴주에서는 이슬람교가 우세한 까닭에 인도정부로부터 각종 차별을 받아왔다. 종교적으로는 과거로 부터 시작된 고질적인 인도내 종교 다툼인 다신교를 믿는 힌두교와 유일신 숭배하는 이슬람교의 다툼이었고 시킴주 주민이 힌두교 성향이 강한 다른 지역에 들어가면 시킴주 주민이라는 이유로 학대를 당하거나 멸시를 받는 등 대놓고 종교 차별을 하였다.

더구나 인도 중앙정부로부터 받는 주 지원 정책의 차별을 물론이거니와 국비 지원 사업, 국가정책 사업에서 후순위로 물러나기 일수였다. 하지만, 해마다 내는 중앙 분담금은 증가하게 되었고 시킴의 재정은 악화되어 가기만 했고 시킴 주민의 삶은 나아지기는 커녕 더 어두워져만 갔다. 혜택은 못 받게 되고 내는 세금은 증가하니 시킴의 민심이 흉흉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종교적 · 문화적 · 경제적 박해로 민심이 어두운 가운데 시킴의 독립운동가인 제소르 하마단에 의해 독립이 주장 국명으로 오르만을 할 것을 결의했다. 1981년 독립운동가이자 군사지도자인 제소르 하마단의 암살이후 그가 만들었던 민족당이 거의 붕괴상태까지 갔었지만 이후 새로운 연립내각이 등장하였다. 민족당이 주축으로 다시금 독립운동을 진행하였고 IR(India Resister;인도 저항군)을 이용하여 무장독립을 꾀했다. 1984년 새로운 당대표인 주바 쓰하가 아흐마드 리두 술루피야를 비롯한 소장파 세력을 만들어 논리적인 독립 운동을 주장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종교차별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살았던 시킴 주민들이 인도의 힌두교 원리주의자가 내각 정권을 잡게 되면서 시킴 주민의 오랫동안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정권을 잡은 힌두교 원리주의자 총리는 타 종교 배척·차별 정책을 더 강화하고 힌두교 개종을 협박 또는 회유하는 정책을 내세웠다. 2009년 2월 18일 참다 못한 오르만의 이슬람교도들이 단체로 궐기하게 되고 1주 동안이나 주도인 강토크의 강토크 주청사 등을 점거하고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에 반발한 인도군이 긴급 투입하였고 무차별한 학살과 강제진압 함으로서 사망 102명, 부상 2천여명이라는 이른바 피의 강토크(Bloody Gangtok)사태가 벌어지게된다. 마라우타에서는 정부 주관으로 매년 이 날을 기념하여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라싸의 학살, 티베트 자유동맹 결성

인도의 북서부 지역 히마찰 프라데시 주 다람살라에 위치한 티벳 망명정부는 티벳의 독립을 비폭력 운동을 전개하며 티벳의 독립을 전 세계에 촉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 14세는 중국정부에 기존의 주장인 완전한 독립국가 대신에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사항을 티벳인들이 관할하는 고도의 자치를 보장할 경우 중국의 일부로서 티베트를 수용할 수 있다고하며 기존의 독립운동 노선과는 다른 방향으로 타협하게된다.

이와 차별화시키는 티벳 내 소장파 세력이 티벳 내에서 형성하게 된다. 이들 소장파 세력은 2009년 3월 1일 독립선언을 하게 된다. 이에 중국 정부은 강제 진압을 실시하였고 티벳 망명정부 추산 사망 140여명, 부상 5천여명, 실종사 221명이라는 엄청난 유혈사태가 발생한다. 이 사건을 라싸의 학살(Genocide of Lasa)[2] 이라고 한다. 중국 정부의 무자비 학살의 참극을 본 티베트 주민들은 극도의 분노감을 갖게 되었고 2009년 3월 17일 이러한 소장파 세력들과 지지자들의 힘을 합해서 티베트 자유동맹(Tibet Liberty Alliance)이 티베트에서 결성되었다. 기존의 망명정부 독립운동인 비폭력 운동과 다른 무장독립 노선을 걷게 되었다. 이 시기 이전까지 티벳 독립운동사는 티벳 망명정부를 통해 온건·대화가 주류였다면, 자유동맹이 형성되고 나서부터는 대화로 독립을 하자는 온건파와 자유동맹과 같이 무장독립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자는 강경파의 2갈래로 나뉘게 된다. 티베트 자유동맹은 완전한 독립국가가 아니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망명정부와 독립운동 노선적인 면에서도 다른 모습을 보이게된다.

제2공화정: 마라우타 연방

제3공화정: 마라우타 인민연방

인민 총궐기 대회

제2공화정인 마라우타 연방의 마지막 대통령인 오적동이 하야를 선언과 동시에 정치적으로 망명을 떠나고 내각은 총 사퇴하여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마라우타 연방의 국민들은 혼란이 왔고 정부가 없는 국가에서 불안한 삶을 지속해왔다. 주 정부는 치안을 강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주민들에게 무정부 상태의 마라우타 연방은 집단 노이로제에 걸린 것 처럼 아비규환의 상태였다. 마라우타 연방 정부청사에서는 매일 같이 시위가 일어났고 시민들은 마라우타 연방의 무기력한 정치인에 대해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마라우타 연방의 무정부상태가 한달 이상을 지속하였다.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조직 직후
에리히 델프트(Erich Delft) 당서기장 모습

이러한 무정부 상태를 수습하려는 의지 조차 없는 정치인과 정당 가운데 에리히 델프트는 마라우타 연방의 개혁 정치인들, 군부 세력, 시민 세력, 지역 유지(有志), 주 정부와 정치인, 경찰, 지식인, 직공단체와 농민단체 세력을 합세하여 2016년 7월 27일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을 조직하였다. 에리히 델프트 당 서기장은 당 설립 추진위원회에서 "무정부사태에 대한 인민당 논의"를 발표하였다. 이러한 사태가 방치되고 있는 것에 대해 최악의 상태라고 평가를 하였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에서 조차도 마라우타를 더 이상 신경쓰고 있지 않거나 마라우타에 신경 쓸 정도로 여력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고 말하며 마라우타 연방의 갱생은 외부의 도움으로 이뤄진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라우타 연방의 정치 체제, 시민 시스템, 외교 정책, 문화 인프라, 연방 형태, 운영 방식(행정) 등 다양한 부분에서 개혁 방향을 언급하며 국정 운영 방향을 인민의 사회당 중심으로 이끌것이라는 것을 예고하였다.

2016년 7월 29일 이 날은 마라우타 인민연방의 출발점이자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의 집권을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인민의 사회당은 인민 총궐기 대회를 인민당 마라우타 지역당 위원회 사무소에서 열었다. 인민 총궐기 대회는 인민당 당서기장인 에리히 델프트는 직접 연사로 나섰다. 기자들 앞에선 에리히 델프트 당서기장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자켓 안주머니에 있는 종이를 꺼냈다. 그것은 인민당 정치국에서 결정문이었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때서 연설하기 시작했다. 연설 어조는 상당히 강하고 힘찼다.

연설하는 에리히 델프트(Erich Delft) 당서기장 모습

친애하는 마라우타 인민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은, 드디어 오늘 아침 긴급 정치국 회의를 개최하여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습니다. 현재 이 나라는 완벽한 무정부상태에 이르었으며, 따라서 우리 인민당은 조국과 더 나은 가상국가의 미래를 위하여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우리 인민당은 온 인민에게 우리 당을 지지하는 인민 총궐기 대회를 열 것을 요청하고, 동시에 현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 외사 4권을 완벽히 장악해 임시 인민대표자회의를 조직하였음을 밝힙니다.

인민당이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이 아름다운 나라가 더 이상 혼란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공중에 붕 떠버린 인민의 권력을 다시 인민의 손에 돌려주기 위함입니다. 또한 우리가 궐기하는 이유는 가상국가계의 극심한 침체기가 도래한 작금의 현실 속에서 마라우타 역시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고, 마치 새벽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이 나라를 일깨우기 위한 것입니다.

임시 인민대표자회의는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첫째, 임시 인민대표자회의는 인민을 대표하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행정, 입법, 사법, 외사를 총괄하는 기관으로서 기능할 것입니다.
둘째, 현행 헌법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새로운 신헌법의 초안을 만들 것입니다.
셋째, 가상국제연합의 국제적인 규약들을 충실히 이행하고 우리 우방과의 유대를 다시 회복할 것입니다.
넷째, 연방의 인민을 위한 여러 정책들을 실시할 것입니다.
다섯째, 마라우타 연방의 제2공화국은 사실상 몰락했음을 확인하고 제3공화국인 마라우타 인민연방을 선포할 것입니다.
여섯째, 일전에 인민당에서 밝힌 개혁 정책들을 충실히 이행한 뒤 총선거를 통해 정권을 평화로이 이양할 것입니다.
일곱째, 인민 총궐기 대회 기간 중 마라우타 내 일체의 정책은 임시 인민대표자회의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인민대표자회의에는 마라우타의 인민 중 인민당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인민 여러분, 여러분은 본 임시 인민대표자회의와 인민당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동요 없이 각인의 직장과 생업을 평상과 다름없이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이 아름다운 나라는 이 순간부터 다시금 일어서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제2공화정이 세워지던 때와 같이 인민 개개인의 단결과 인내, 용기와 전진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민당에 대한 전폭적인 응원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비바 마라우타!

— 인민당 정치국 상임위원, 인민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임시 인민대표자회의 의장, 인민당 서기장 에리히 델프트 인민 총궐기 대회에서

마라우타 통신 "인민당, 구국의 결단 발휘"

개혁, 마라우타 인민연방 설립

시민경비대 및 국군 해산

2016년 7월 29일 에리히 델프트 정무위원장은 인민 총궐기 대회 이후 처음으로 시행한 개혁은 시민경비대 및 국군 해산이었다. 과거 마라우타 연방은 시민경비대 등의 과정을 거쳐 군을 창설할지에 대해 첨예한 논쟁을 벌였지만, 본국의 마라우타의 경우에는 시민경비대가 존속되었지만 그 산하 연방들의 경우 군이 해체되지 않아 상당히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연방보다 본국의 힘의 불균형 상태가 나왔고 이에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면서 마라우타 군부대 일부가 불순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첩보가 들어와 이와 같이 결정했다.

첫째, 마라우타 연방에 소속된 모든 국가의 군인들은 해산할 것.
둘째, 군인들은 모든 무기를 각 지역에 위치한 지역당 위원회에 반환할 것.
셋째, 각 지역당 위원회는 조속한 시일 내로 지역군사위원회를 조직할 것.
넷째, 해산된 군인 중 원하는 자는 지역군사위원회에 적당한 자리를 마련할 것.

—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에리히 델프트

제2공화정 마라우타 연방 멸망 선언

마라우타 제2공화정은 막을 내렸다. 이제는 인민들의 공화국, 제3공화정의 시대이다.
 
인민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임위원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정치국 상임위원은 제2공화정인 마라우타 연방의 멸망을 공식화 하였다. 오적동 대통령과 안드레아 총리가 사임하고 내각의 총사퇴로 무정부 상태가 되면서 마라우타 인민들은 상당한 고통을 겪어야 했고 행정, 사법, 입법, 외사 기능이 마비된 배경을 설명하였다. 인민당 정치국 상임위원들은 회의를 열고 협의 끝에 결론을 지었다. 제2공화정은 이미 그 역할을 다했고 제2공화정을 대체 할 수 있는 새로운 정부와 정권, 정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데 모두 동의하였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마라우타 제2공화정인 마라우타 연방에 대해 멸망을 선언하고 제3공화정인 마라우타 인민연방의 수립을 선언하였다.

마라우타 역사 마라우타연방멸망.jpg

첫째, 2016년 7월 29일부로 마라우타 연방의 제2공화정은 멸망하였음을 밝힌다.
둘째, 2016년 7월 29일부로 마라우타 연방의 제3공화정이 시작되었음을 밝힌다.
셋째, 마라우타 연방의 제3공화정의 공식 명칭은 [마라우타 인민연방]으로 한다.
넷째, 마라우타 제2공화정까지의 외교적인 관계는 제3공화정에서 그대로 계승한다.
다섯째, 인민연방은 최대한 조속한 시일 내로 멸망의 여파를 수습하도록 한다.

—  인민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임위원

언론 통제 실시

2016년 7월 29일 마라우타 인민연방 설립에 반감을 가지는 일부 편향된 언론들을 안좋게 본 인민의 사회당일정기간 언론관제 실시하였다. 서기국에서 발표한 언론 통제는 "갑작스러운 국가 정체의 변경은 인민들로 하여금 크나큰 혼란을 몰고 올 수 있다."라는 명분을 내새웠다. 그러면서 "자유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공동체와 사회의 안녕을 위해 일정부분 제약될 때도 있기 마련이다." 라고 하며 언론관제(言論管制)를 실시하였다. 인민 총궐기 대회 기간동안 언론의 자유로운 발행은 금지되고 인민대표자회의나 서기국, 인민당의 허가를 받은 언론들만 발행을 하고 있는 것을 허용해 사실상 사전 검열이라는 언론사 내부에서 불만이 나왔지만 쉬쉬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첫째, 인민 총궐기 대회 기간 동안 언론의 자유로운 발행을 금한다.
둘째, 인민대표자회의나 서기국, 인민당의 허가를 받은 언론들의 발행만 허한다.
셋째, 다만 그 발행에 있어서 검열을 실시하지 않는다.
넷째, 잘못된 정보의 전달은 엄히 금한다.

—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서기장 에리히 델프트

언론 통폐합 실시

2016년 7월 29일 마라우타 인민연방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서기국(현, 서기처)은 언론통폐합 강제 실시(서기국 제2호 문서) 하였다. "마라우타의 오랜 자랑 중 하나는 바로 뿌리 깊은 언론 시스템이다. 마라우타 통신, 알 비에, 시민의 소리, 알베로 뉴 미디어 등 다양한 언론사들이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며 마라우타의 문화를 꽃피웠고, 과거에는 국제 사회 또한 마라우타를 언론의 국가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나친 언론사의 과잉화는 뉴스의 질을 떨어트리고 마라우타 언론계 전체의 역량을 저하시키고 말았다."며 언론 통폐합 실시 배경을 설명하였다.

첫째, 연방언론협회는 마라우타 인민연방의 언론들을 대표하는 기관임을 다시금 재확인한다.

둘째, 언론중재위원회를 연방언론협회의 산하 기관으로 통합한다.

셋째,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은 언론사를 통합한다.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중앙연방방송과 그 산하 기관 : 중앙연방방송, 중앙연방TV, 중앙연방 라디오, 가온누리미디어와 그 산하 기관 : 가온누리미디어, 가온누리 1TV

넷째, 활동이 저조한 언론사를 통합한다.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Vox Media Cooperation와 그 산하 기관 : Vox Media Cooperation·프레임Frame·요지경瑤池鏡→ 알베로뉴미디어
월드타임즈와 그 산하 기관 : 월드타임즈 → 시민의 소리
Nations와 그 산하 기관 : Nations → 시민의 소리

다섯째, 향후 활동이 기대되는 언론사는 유지된다. 다만 향후 활동이 저조할 경우 서기국의 판단에 따라 통폐합 된다.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
신문연파, 마라우타 연합통신

—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서기국 당 서기장 에리히 델프트
알비에 신문 삽화 "언론 통폐합 조치"
MAP-TV "국기경례 퍼포먼스"

이를 두고 언론계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언론협회 내부에서도 친 인민당파와 반 인민당파로 나뉘었다. 친 인민당파는 이번의 조치는 활동이 없고 저조한 언론사를 폐업과 통합을 시키면서 활발한 언론만 남겨 언론사 활동에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했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표출했다. 반면에 반 인민당파는 중앙연방방송을 비롯한 5곳의 언론기관과 산하기구 5곳, 도합 10곳의 언론사가 문을 닫게 되면서 이를 언론계와의 전쟁이라 선포하고 즉각적인 반응에 나섰다. 중앙연방방송에 소속된 직원들은 인민당 당사 앞에서 시위를 계획하였으나 경찰들에 의해 체포되어 가택연금 조치에 처해졌고, 각 대학의 언론학에 종사하는 교수들 또한 인민당 서기국을 향한 항의공동서한을 발표하였다. 또한 연방대학교수회는 "이번 조치는 언론자유화선언을 위배하는 폭압적인 조치"라며 통폐합된 언론사의 자유를 존중해줄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상당수 언론들이 통폐합을 두려워해 올바른 보도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인민당 서기국이 향후 추가적인 통폐합을 실행하지 않을 것을 확언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서기국 언론위원회는 "제대로 된 언론의 역할도 하지 않았으면서 통폐합을 이야기할 때만 벌떼처럼 일어난다"며 "이러한 언론의 특수성을 이용하는 곳들은 블랙기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추가적인 통폐합을 하지 않겠다는 발표에 대해서는 "당이 개입하는 것은 그 기관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에 한한다"며 확답을 회피하였고 마라우타의 네티즌들은 "언론 통제가 의심된다."라고 하며 반발하는 분위기였다.

MAP-TV는 사옥에서 제2공화정 마라우타 연방 국기 경례 퍼포먼스를 하였고 국가 제창도 이어졌다. 카르마 국장은 인민당에 대한 항의 뜻으로 펼친것이라고 말하며 언론 통폐합 조치에 강한 불만을 내세웠다.

알비에 "인민당, 언론에 재갈을 채우다.
MAP - TV "사옥에서 국기 경레 퍼포먼스"

무기수거 거부에 대한 조치

수거한 무기들을 확인하는 인민당 지역군사위원회 위원 모습

하지만, 다음날 2016년 7월 30일 일부 군부대와 군인들은 이에 대한 반감을 느끼고 무기 반환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무기 수거하는 과정에서 무기 반환을 거부하는 등의 행태를 보였다. 중앙군사위원회는 긴급하게 회의를 갖고 이 사안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하였다. 에리히 델프트 정무위원장은 이를 두고 "인민의 도구여야 할 군부가 인민의 지지를 받은 우리 인민당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움직임을 벌이려는 것은 곧 국가와 민족을 위한 혁명과 인민당에 반기를 들고 반군 세력으로 스스로를 규정지었음에 다름없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무기 수거 거부에 대한 조치를 시행하였다.

첫째, 무기를 수거하는 자들은 각 지역의 군사위원회에 소속된 위원과 청년단원으로 할 것.

둘째, 무기를 수거한 뒤 각 지역의 군사위원회는 청년단을 무장시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것.

셋째, 지역군사위원회는 새로운 군부가 조직되기 전까지 각 지역의 치안을 경찰과 함께 관리할 것.

넷째, 지역군사위원회는 청년단원에 의한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

다섯째, 만약 청년단원에 의해 인민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는 행동이 이뤄질 시 즉각 처벌할 것.

여섯째, 무기 수거를 거부하는 군부대는 설득하고 교전이 발생할 경우 즉각 중앙당과 중앙군사위에 보고할 것.

일곱째, 심각한 수준의 교전이 발생할 경우, 교전 상대자인 군부대를 반군으로 규정해도 무방함.

여덟째, 인민당의 지지기반은 인민과 도덕적 당위성임을 인지하고 교전이 끝난 후에도 반군 포로를 잘 대우해줄 것.

—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에리히 델프트

무기를 자진 수거한 자는 군사위원회 소속 위원과 청년단원의 직위를 부여하였고 이들을 지역군사위원회로 배치하여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며 당근책을 내새웠다. 하지만, 무기 수거를 거부하는 군부대나 인민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행동을 한 자는 즉각 처벌하는 등의 조치등 협조를 거부하는 자는 엄격한 채찍도 뒷따랐다.

개혁 반발 움직임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의 각종 개혁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자가 많았다. 국내외적으로 인민당의 개혁을 독재적, 독선적이라고 평가하는 단체들이 많았다. 제2공화정 마라우타 연방의 자치주였던 한빛민주공화국정대성명의의 주석 성명을 대변인이 발표하였다. "인민당의 개혁은 공산화이며, 주민들의 정당한 시위투쟁을 언론탄압과 구세력의 발악으로 모독하고 경찰병력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살벌한 분위기 마져 조성한다."라고 하였다. 언론 관제 조치를 언론탄압이라 평가하고 일당독재를 강행하려는 태도에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국내에서는 유토피아당의 이호진 당대표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마라우타 인민연방의 혁명이 과연 잘된것인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혁명의 방향이 마라우타 6가지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고 판단하고 우리당(유토피아당)을 포함한 여러 정당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개혁시에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연설하는 인민당 당서기장 에리히 델프트

인민당도 이런 잡음이 국내외에서 나오는 것에 대해 불편한 기류가 형성되었다. 인민당 당서기장인 에리히 델프트는 마라우타 지역당 위원회 사무실 기자회견장에서 일부 국가(한빛민주공화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불안과 경계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평가하며 내심 불편한 기류를 표현하지 않을려고 하였다. 그러면서, "현재 침체된 정국에서 마라우타를 바꾸기 위한 사실상의 유일무이한 조치는 혁명을 통한 국가적인 초기화이다. 인민당의 이런 움직임은 마라우타를 바꾸기 위한 조치이고, 실제로 마라우타의 인민들 역시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마라우타의 인민을 우롱한다는 등의 외세의 프로파간다는 마라우타 내부를 흔드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며 혁명의 당위성을 설명하였다. 또한, "마라우타의 이번 혁명은 관료주의와 다양한 규제로 인해 억제되어있던 온 인민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함이다. (중략) 따라서 마라우타 인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우리 인민당은 국제사회의 지나친 내정간섭에 있어서 지양해줄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며 국제사회에서 지나친 내정간섭을 자제해줄 것을 촉구하였다. [1]

내부에 대해서는 당서기장 성명을 통해 정면돌파와 적극 해명 그리고 타 정당과의 소통을 주창했다. "우리의 혁명에 반대하는 일체의 세력은 우리 당의 외형적인 특징 - 이를테면 당서기장, 정치국, 서기국, 인터내셔널가의 지지 등을 보고 우리를 공산주의자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공산당의 외형을 딴 것은 단지 그것이 우리가 정당을 꾸려나감에 있어서 가장 효율적이고 최적화되어 있다고 판단하여 따랐을 뿐, 인민당 구성원들 모두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라서 그렇지 않습니다."며, 인민당은 공산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자일지라도 정치적 스탠스(기조)는 민주주의자 또는 공화주의자인 사람이 많으며 평등주의자, 자유주의자, 자주주의자인 이들도 있다고 강조하고 동시에 범 이념정당임을 강조하였다. 이번 개혁의 원인인 제2공화정 무능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당시 행정부'의 무능이 아닌 '제2공화정'에 소속된 이들, 즉 행정부 뿐만 아니라 마라우타 온 인민들의 무능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제2공화정의 붕괴는 인민들이 책임을 회피하여 사회가 무너진 것으로 보고 이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인민 개개인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설명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부 자유가 억제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것을 언급했다. 마라우타의 재건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즉각적으로 언론 관제를 풀겠다고 천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타 정당과 소통하기위해 노력할 것이며 서로간의 벽을 허물고 허심탄회 이야기 해볼것을 요청하였다.

해방전선 다에시(Daesh) 가담, 성난 인민

2016년 7월 31일 국영언론인 마라우타 통신은 제1공화정 마라우타 연방 공화국을 괴롭혀왔던 해방전선 잔존 세력이 안사르 칼리파 마라우타(Ansar Kahalifa Maraouta)로 이름을 바꾸고 다에시(Daesh)에 가담하였다는 것을 보도하였다.

2016년 8월 6일 시민의 소리 보도에 따르면 인민당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군부 해체 과정이 신속하게 진행된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 안사르 칼리파 마라우타의 등장으로 군부는 기꺼이 인민당에 협력하겠다는 공식적인 발표를 하였다. 당시 마라우타 임시 참모총장이던 알버트 지함 전 국방장관은 성명서를 통해 "저 악마같은 다에시의 줄기가 이 평화로운 조국에까지 뻗혀서는 안 된다"며 온 병력은 기꺼이 인민당에 협력해 테러 조직의 소탕에 앞장서야 한다고 밝혔다. 군부 해체 과정에서 내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예측한 외신의 반응과 달리 각 군부대는 차분하게 무기를 인민당에 넘기면서 군부 해체 작업을 원할하게 진행하였다.

한편, 같은날 내각 총 사퇴 이후 장관들을 설득하기위해 노력하였지만 좌절되어 은거해있던 안드레아 마라우타 연방 총리는 원통한 마음으로 사퇴서를 읽으며 공식적으로 사임을 표명하였다. 그간의 무정부 상태를 방기한 책임이 있었기에 인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아 있었다. 인민들은 이전 연방 정부가 무능하여 새 인민연방 정부가 수립된것이라면서 이전 연방에 대한 분노와 인민당에 대한 지지를 동시에 표현하였다. 인민들의 화는 알파 언노운 전 대통령으로 향하여 자택 앞에서 시위를 진행하였다. 성난 인민들을 피하여 알파 전 대통령은 고향인 부탄주 동부탄도 트리시앙체로 도피하였다.

시민의 소리 "군부 해체 작업, 순조롭게 진행 중"
총리직을 사퇴하는 안드레아 전총리
알파 전 대통령 시민들의 분노로 유배행

인민중재대회

인민당은 유토피아당국민의회의 개최 요구를 비롯한 기성 정치권 목소리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하였다. 현재는 무정부상태가 해소되지 않은 지금에서 국민의회에 대한 인민의 참여율이 낮다고 판단하여 인민중재대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결정 하였다.

첫째, 인민대표자회의의 예비 대회라고 할 수 있는 인민중재대회를 개최한다.

둘째, 인민중재대회의 참여 대상자로 각 정당의 정당인을 원칙으로 하나, 관심있는 인민의 참여 또한 허용한다.

셋째, 인민중재대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의결한다 :
1. 주요 예정 업무( http://cafe.naver.com/maraouta/6257 ) 관련 각 당의 의견 청취
2. 인민대표자회의 이후 열릴 총선거 관련 각 당의 의견 청취

넷째, 인민중재대회는 8월 8일 오후 8:00(20:00)시에 개최하여 8월 9일 오후 9:00(21:00)에 마감한다.

다섯째, 인민중재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각 당은 추가적으로 논의하고 싶은 내용을 공시할 수 있다.

—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중앙정치국

2016년 8월 11일 인민당 주도하에 인민중재대회가 개최하였다. 인민당을 비롯한 유토피아당. 사회민주당, 자유공화연합 관계자가 참여하기로 예정되었지만 인민당 주도하에 인민중재대회가 개회하는 것에 반발하여 사회민주당과 자유공화연합은 참석하지 않았다. 인민당은 인민중재대회를 통해 유토피아당과 마라우타 정당 통폐합, 행정부 일원화, 마라우타 헌법 개정, 관료주의적 요소 등 다양한 의제를 놓고 논의하였다. 유토피아당은 조기 총선을 개최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인민당에서는 총선이 먼저 실시할 경우에는 개혁이 중지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총선은 잠시 미루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합의문을 통해 유토피아당은 인민당의 개혁에 협조하기로 최종 결론을 냈다. 하지만, 사회민주당과 자유공화연합이 빠진 인민중재대회여서 반쪽자리 중재 결과라는 비판이 있었다.

집단지도체제 중앙정무위원회 출범

하나의 나무보단 여럿의 나무가 더 튼튼하다.
 
인민의 사회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2017년 10월 7일 알비에는 지난 1년동안의 마라우타 인민연방을 평가하는 사설을 기고하였다. 알비에는 사설에서 인민당이 집권후 언론사의 절반 가량 이상이 사라졌고, 당에 비판적인 교사와 교수들 상당수가 해고를 통보 하였고, 사회는 시위가 격렬해저 사회가 혼란스럽다고 하며, 마라우타의 6가지 정신인 자유, 자주, 민주, 평등, 평화, 공화의 나라가 아닌 회유, 세뇌, 실망, 통제, 독단, 공포의 마라우타 인민연방이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언론 활동률은 80%가 저하되었고 경제활동 40%가 저하되었고, 실업률이 8% 증가하고 자살률이 3%가 증가한 수치를 제시하였다.

인민당도 독재와 독선이라는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현 상황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며 2017년 10월 8일에 집단지도체제 출범을 결정하였다. 인민당에서 혼자서 담당했던 연방 업무를 실제 정부 역할을 하는 중앙정무위원회 (약칭, 정무위원회)를 구성하여 집단지도체제를 실시하였다. 훗날 정무위원회는 마라우타 인민연방 정무원의 모태가 된다. 정무위원회의 구성 인원은 정무위원이다. 정무위원의 정원은 11명이고, 기존의 행정장관직을 공통으로 맡게 된다. 정무위원회 위원장은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겸임한다. 정무위원의 임기는 3개월로 최소한도로 설정놓고 당 중앙위원회 심사를 통해 선출한다. 제1기 집단지도체제가 공식 출범하였고 정무위원회는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임위원과 서기국의 당서기 출신들이 대거 진출하였다. 인민당은 인민의 대표자를 뽑는 만큼 여러 직업군의 인민대표자를 선정하였고 인민연방의 안정을 위해 지역 안배가 고려되어 네팔 출신 4명, 티베트 출신 3명, 부탄 출신 3명, 오르만 출신 1명으로 구성하였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인민당의 "책임을 회피하기위해 면피성으로 만들어진 집단지도체제 아니냐?" 면서, "인민당 출신의 중앙정무위원회는 그 나물에 그 밥이다."라고 평가절하하였다.

첫째, 마라우타 제2공화정 시절의 행정장관직을 통합하여 집단지도체제를 꾸린다.

둘째, 집단지도체제의 명칭은 '중앙정무위원회', 약칭 '정무위원회'로 한다.

셋째, 정무위원회의 구성원은 '정무위원'이며 정원 11명으로 하고, 기존 행정장관직을 공통으로 맡는다.

넷째, 정무위원회의 위원장은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겸임한다.

다섯째, 정무위원은 마라우타 제2공화정 시절의 행정각부 및 행정각처의 행정장관직을 수행하되, 다만 업무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정무위원 개개인의 고유 행정장관직을 지정한다.

여섯째, 정무위원의 임기는 3개월을 최소한도로 하고, 당 중앙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선출한다.

일곱째, 정무위원의 임기는 당 중앙위원회의 승인이 있을 시 무기한을 최대한도로 둔다.

—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정치 제1기 집단지도체제 출범… 각 지역 및 정치세력 고려한 안배"

인민당, 종교 통제

종교는 인민의 진통제다. 하지만 진통제를 적당히 맞지 않으면 쇼크사에 이를 수 있다.
 
— 인민당 당서기장 에리히 델프트

마라우타 인민연방의 종교계에 인민당 통제의 먹구름이 다가왔다. 2017년 10월 6일 인민의 사회당은 종교 관련 서기국 방침을 발표하며, 인민연방내 종교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명분은 자유로운 종교활동을 보장하고 특권 사제계층의 횡포를 차단하기 위함을 내세웠다.

첫째, 인민연방 내 기존의 종교 조직인 [신성그리스도교], [가톨릭], [불교]의 관리 및 관할을 중앙위원회에서 담당한다.

둘째, 종교 사목자의 관할을 인정하되, 헌금 및 종교적 부수입을 중앙위원회의 재무국에서 담당한다. 종교 사목자의 생활 여건에 필요한 수입의 경우, 중앙위원회 재무국에서 처리한다.

셋째, 사제계층의 특권 의식을 분쇄코자 [신성그리스도교 협회], [인민가톨릭교협회], [인민불제자평의회]의 인민결사를 창설한다. 기존의 종교 활동은 모두 해당 결사에서 이루어지며, 결사의 행동은 중앙위원회의 종교국의 승인을 받도록 한다.

넷째, 인민연방 내 새로운 종교의 유입이 이루어질 경우, 허가받지 않은 종교조직은 철저하게 조사하여 인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한다.

다섯째, 인민 개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존중하여 종교행위를 허가하되, 인민연방의 사회적 안정을 위하여 선교는 엄금한다.

—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중앙위원회 서기국

그 행태가 중국과 비슷하여 사제와 신자들은 마라우타가 점점 중국화 되고 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민당은 이에 전혀 개의치 않아보였다. 실제로 에리히 델프트 위원장은 천주교 신자로 알려져있었지만, 마라우타 통신과 인터뷰에서 "교황청에서 날 파문할 지언정 조국과 당에 대한 열정은 버릴 수 없다."며 종교의 규제에 대한 강한 입장을 드러냈다. 마라우타 인민연방에 산재한 사찰·교회·성당 등 종교시설에는 당분간 인민당 소속 정치위원이 상주할 방침이며, 각 종교시설의 재산·신자수·담당사제 명단 등이 확보되는 데로 조치를 집행하기로 하였다.

당시에 신성그리스도교 대교황청은 불편한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며 이러한 종교 규제가 "명백히 종교적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종교계도 종교와 관련한 인민정부의 입장이 발표된 직후 종교계의 거센 반발이 이뤄졌다. 2017년 10월 18일 신성그리스도교·가톨릭·불교 등 인민연방 내 주요 종파의 지도자들은 종교자유를 위한 연방 종교인 비상 시국회의(이하 종교시국회의)를 개최하고 연일 인민정부의 조치를 철회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마라우타 가톨릭의 메리놀수도회 원장인 존 슈머 아빠스는 "인민연방의 조치는 매우 극악한 조치"라며 "인민의 자유를 위한다는 공화국에서 종교의 자유가 박탈되는 아이러니의 극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티베트 불교의 닝마빠인 탁룽 제뚤 린포체는 "인민정부 당국의 이번 조치에 대해 불복할 것"이라며 불제자들의 불복종 운동을 추진하였다. 특히 불교계는 이번 조치에 가장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과거 중국의 압제 시절 티베트 불교의 수도자들이 대거 학살당하거나 탄압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계의 이런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에리히 델프트 정무위원장인민의 사회당은 더욱 강력한 조치와 압박 수준을 높이겠다고 하며 종교계와의 타협점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케말 토브게이 정무위원은 "종교라는 방패 뒤에 인민의 적이 있다."고 말하며 파장이 일파만파 커졌다.

마라우타 통신, 진통제도 많이 맞으면 치사량
사회, "종교시설 통제, 종교계의 거센 반발 부딪혀"

국제 공산 · 사회주의 연대 강화

인민당, 하늘미르 공산당 축전

2017년 10월 26일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하늘미르 왕국에서 실시한 하늘미르 왕국 제4대 의회의원 총선거에서 공산당하늘미르 왕국 의회에서 134석(33.3% 득표율)을 획득한 것에 대해 당 서기장 명의로 축전을 보냈다. 축전 첫 시작에 "인민당과 공산당 모두 자본주의의 병폐를 극복하고, 인민의 행복과 더 나은 세상을 이룩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가튼 길을 걷는 동도(同道)요, 동지라 할 수 있을 것 입니다."라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동질성을 언급하며 인민당이 적극적으로 연대 의사가 있다는 것을 피력하는 대목이었다. 그러면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통해 성장한 공산당이 129석의 성공을 거뒀다는 희망이라고 하며 이는 공산당의 여러 입법정책이 하늘미르의 인민의 삶을 보다 낫게 만들 것이라고 하며 축하 의사와 함께 하늘미르 공산당이 선거에서 받은 성과를 높게 평가하였다.

과거 2008년의 세계 경제위기 이후 부르주아 세력은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있고 그 결과 경제적 양극화를 넘어 사회 · 문화 · 정치 등 각 분야에서의 양극화 발생과 심화를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로 인해 세계 각지에서 인민들의 단결이 이뤄지고 있으며 정치 혁명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며, 일한 자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취해야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를 에리히 델프트 정무위원장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이전 시대보다는 더 나은 시대, 보다 진보한 시대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요, 의무이자 권리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언급한 대목에서 우리라는 표현을 쓰며 유대를 넘어 연대라는 것으로 강하게 해석되는 부분이었다.

마라우타 통신, "사회주의 동도(同道)의 승리에 매우 기뻐"

한빛민주공화국 반공 3원칙 발표

연설하는 Joseph Orantes 한빛민주공화국 한빛당 주석

인민당이 하늘미르 공산당에게 축전을 보낸 그날 국제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연대에 대해 경계를 하던 한빛민주공화국에서는 Joseph Orantes(정성현) 한빛당 주석이 공산당에 대한 반공 3원칙을 발표하였다. 반공 3원칙을 발표한 배경은 공산주의 국가의 확산에 대한 경계였다.

1) 각 국 정당에 활동하는 공산당 및 사회주의국가와는 어떠한 협상도 대화도 하지 않는다.
2) 공산당과 싸우는 다른 나라의 정치세력과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3) 공산당과 거래하는 어떤 기업도 한빛민주공화국 경내에 들어올 수 없다.

한빛민주공화국에서 합법적이고 공산당은 오직 한빛공산당 뿐이며, 그 외 폭력적인 공산비적들의 창궐을 막고자 공산당 활동을 제한하는 법안을 계획중입니다.

—  한빛민주공화국 한빛당 주석 Joseph Orantes

마라우타 인민연방의 주요 언론사인 ANM은 이것이 세계 정세가 좌·우익 이념 대립을 시작점이라고 평가하며, 당시 한비자 보수 정권 하늘미르 왕국 · 한빛민주공화국 반공세력과 마라우타 인민연방을 포함한 사회주의 · 공산주의 세력 싸움으로 번질 것을 예상하였다. 반공에 대항하여 국제적으로 연대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ANM, 세계 정세 좌우익 이념 대립 시작?

하늘미르 보수정권, 공산당 배제 사건

한빛민주공화국 한빛당 Joseph Orantes 주석이 성명을 발표하는 당일, 하늘미르 왕국에서는 공산당을 배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른바 하늘미르 반공 정책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당시, 한비자 하늘미르 왕국 총리가 친 한빛 외교정책을 펼치고 한빛국과 더 가까운 외교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한비자 하늘미르 왕국 총리는 친 한빛 외교로 경제 및 문화성장, 반공투쟁 지지한다. 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한빛국의 반공 3원칙에 동의하는 입장을 확고히 하였다. 그러면서 내각 구성을 할때에도 자당인 보수신당의 소속의 인사로만만 구성하겠다면서, 하늘미르 공산당 출신의 인사를 배제하였다. 그러면서, 공산당의 축전을 보낸 마라우타 인민연방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에게 유감의 표시를 하여 국제적인 좌파 연대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하늘미르 공산당은 즉각 블라디미르 강치 서기장 명의의 반대 성명을 발표하며, 어이없는 반공정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였다. 민주국가에서 제1야당인 본인들을 국제 정치를 따라간다는 표면적인 이유로 공산당을 제외하여 국정을 독식하려고 한다고 하며, 하늘미르 공산당은 폭력적 투쟁과 급진 혁명을 강령으로 삼은 다른 공산당과 동일시하여 반공정책의 희생양으로 몰고가는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였고 자신들의 정당은 하늘미르 왕국 제4대 의회의원 총선거에서도 협치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대승적 차원에서 총리 임명도 승인하였는데 이는 한비자 총리가 배신한 것이라고 하며 공산당과 당원들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히 하였다. 발표 말미에는 실효성도 명분도 없는 반공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을 주창했다.

인민당, 붉은 장미의 원칙 시행

역사를 돌이켜보면, 민주주의라는 '붉은 장미'는 인민의 피를 먹고 자라왔다. …하지만 더 이상 인민의 희생이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민주주의라는 붉은 장미가 마시며 자라야 할 피는 인민의 피가 아닌, 독재파쇼 정권과 파시스트의 피다.
 
— 롭상 남카 데릭, 마라우타 인민연방 초대 정무위원

2017년 10월 28일, 마라우타 인민연방 중앙정무위원회(현, 정무원)는 한빛민주공화국 한빛당 Joseph Orantes 주석의 발표와 하늘미르 왕국 보수정권의 반공정책에 대해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의 제목은 '빨강은 파랑이 부족해서 생겼다.'이다. 전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반공적 움직임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세간의 오해에 대해 설명하고 사회주의 운동을 폄훼하는 이들에게 반박하기 위해 이번 성명을 발표하였다고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하늘미르의 인민 개개인의 먹고사는 환경이 좋았다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사상이 생겨났을까? 세계의 많은 인민들이 진정 자유롭고 평등하다면, 이미 소련이 무너진 현재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사회주의의 붉은 깃발이 넘실대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사회주의 또한 완벽한 사상은 아니다.

다만 사회주의는 자유시장주의와 자본주의의 여러 모순과 병폐를 보완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사회주의는 능력이 없는 이에게 굶어 죽을 것을 강요하는 사상이 아니다. 능력이 없는 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사상이다. 또한 사회주의는 모두가 사회진출에 있어서 동일한 선에서 시작할 수 있게끔 제도를 마련하는 움직임이다. 100m 달리기를 할 때, 금수저는 40m 앞서 있고 은수저는 20m 앞서 있으며, 흙수저들만이 같은 선에서 경쟁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과연 공평하다고 볼 수 있는가? 이런 모순에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사회주의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시장주의가 부족했기에 생겼다.

— '빨강은 파랑이 부족해서 생겼다.' 中

인민당의 중앙정무위원회 정무위원 일동은 사회주의가 왜 생겼는지에 대한 고찰이 없이, 과거의 레드 콤플렉스에 빠져 그저 반공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은 파쇼나 다를 바 없다고 평가하였다. 인민당은 파쇼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를 지원할 것이고, 파쇼의 수괴들을 겨냥한 의거(義擧)에 협력할 것이라고 하며, 공산 및 사회주의 위협을 연대를 통한 공동 대응할 것을 천명하였다. 그러면서, 붉은 장미 원칙을 발표하였다.

붉은 장미 원칙 상징

붉은 장미 원칙은 공산당 및 사회주의 국가와의 연대를 강화하여 세계적으로 범사회주의 조직을 결성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사칭하며, 인민의 정당한 요구 및 움직임을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 공동 대응하고 이에 대적하는 사회주의 동맹에 대해서는 협조하고 지원할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1) 각 국 정당에 활동하는 공산당 및 사회주의국가와의 연대를 강화하고, 세계적 범사회주의 조직을 결성한다.

2) 자유민주주의를 사칭하며 인민의 정당한 요구 및 움직임을 방해하는 파쇼 조직과의 협상 및 대화는 단호히 거부한다.

3) 파쇼 조직과 대적하는 어떠한 국가의 사회주의 동맹이든 협조하며, 파쇼 치하의 인민 혁명을 지원한다.

— 붉은 장미 원칙

민주사회주의 세력은 붉은 장미 원칙에 따라 범 사회주의 조직인 '제5인터네셔널' 창설을 건의하였고, 인민당 측도 긍정적으로 검토는 하고 있으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민연방 문화유산 계승 및 보존방안 발표

2017년 10월 25일 마라우타 인민연방 정무원 교육문화부는 문화유산 및 문화재 등에 관한 정책으로 인민연방 내 문화유산 계승 및 보존 방안 계획을 발표하였다. 문화 예술에 대한 인민들의 보편적인 향유를 충족시키고 세계 만방의 국가 동도(同道)들이 역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궁금증을 해소시키기 위해 이러한 계획(조치)를 발표하며, 그 배경을 설명하였다.

마라우타 인민연방 내 문화유산은 조건을 충족한 국가중요문물역사문화지구로 나뉘게 된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2017년 10월 28일 마라우타 인민연방 재무산업부는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인민들의 문화적, 현실적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인민연방의 경제적 성장이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 규모의 계획경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타국의 대통령이 시행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벤치마킹하고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진행되던 계획경제체제 요소를 도입하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총 6차로 이뤄져있다.

① 농업 생산력 증대
② 전력·석탄 등의 에너지 공급원 확충
③ 기간산업 확충과 사회간접자본 충족
④ 유휴자원 활용
⑤ 수출증대로 국제수지 개선
⑥ 기술진흥 등

※ 정유·비료·화학·전기기계·군수 등의 기간산업과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에 집중적인 투자를 이루도록 함

— 재무산업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사회주의의 계획경제를 체계적으로 도입하였고 1치산업인 농업과 2차산업인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하는 정책과 기술 진흥정책으로 기반 산업 시설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3차산업인 관광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에 대한 부분의 정책은 없고 사회간접자본 충족에 대한 상세한 계획이 있지 않고 큰 틀에서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의지만 밝힌 점에서는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환경관련 시민단체는 마라우타 인민연방의 유구하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훼손할 수 있는 정책이라며 이는 즉각 재수정 해야 하는 정책이라며 비판을 하였다.

2017년 11월 19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보충 계획을 발표하였다. 모든 경제 정책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외국자본을 가진 외국 기업은 인민중앙공사와 합작의 형태로 운영해야 하고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민연방 법령 폐기

2017년 11월 9일 저녁 8시, 주요 언론들은 인민의 사회당의 중요한 소식을 전했다. 중앙정치국은 헌법을 제외한 기존 인민연방 법령을 폐기하고 새로운 법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임시 법으로 인민 조치가 대신하는 것으로 결정(정/17가003 인민연방 법령 폐기 공포) 하였다. 인민당이 정권을 잡은 후 인민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권은 사실상 몰락의 상태였고 인민 총궐기 대회 이후로 국민의회도 개회할 조짐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법 개정과 제정 절차는 한 건도 없는 그야말로 입법 마비 상태였다. 구 법령들은 마라우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효력을 상실한채 사문화된 문서가 되었다. 마라우타 인민연방의 인민들은 지난 무정부 기간동안 국가의 법보다는 지역 주(州) 법령(조례)를 신뢰하고 지키는 분위기였다. 국법(國法)의 권위가 주법(州法)보다 못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민당은 현행 국법 체계는 복잡하고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과 새로운 인민들의 조국을 만들겠다는 인민당의 야심찬 포부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치명적인 약점이라 생각하여 기존 법령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인민연방을 새로이 기획하고 인민들의 편의를 극대화 시키기 위해 구 법령 즉, 제2공화정 마라우타 연방 법령을 폐기하는 조치를 시행하였다.

첫째, 인민연방의 <헌법>을 제외한 모든 법령을 폐기하여 인민들의 편의를 최대한 보전토록 한다.

둘째, 인민대표자회의의 개최를 현실력 2018년 2월 안에 조치하도록 하고, 인민연방의 국민의회를 빠른 시일 내로 정상화하도록 한다.

셋째, 국민의회가 정상화하기 전까지 인민당과 정치국, 서기국, 정무위 등 일체의 인민연방 내각기관은 기존의 폐기된 법령 중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법령을 따로 뽑아내도록 한다. 이후 뽑아낸 법령을 인민연방 여건에 맞춰 다듬도록 하고, 정상화되는 국민의회의 첫번째 안건으로 올리도록 한다.

넷째, 국민의회가 개회하고 인민연방의 새로운 법령이 제정되기 전까지 인민연방의 법은- 즉,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은, - 정무위에서 공포하는 '인민조치'가 대신한다.

—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국제좌파연대 구상회담

2017년 11월 11일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국제좌파연대 구상회담 개최를 발표하였다. 에리히 델프트 당 서기장 겸 정무위원장은 직접 국제좌파연대 구상회담을 직접 발표하여 언론들과 인민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마라우타 인민연방의 동지 여러분, 그리고 하늘미르 왕국의 동지 여러분.

카를 마르크스는 역사에 길이남을 그의 명저, <공산당 선언>을 통해 다음과 밝힌 바 있습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옛 유럽의 모든 세력들, 즉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귀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비밀경찰이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신성 동맹을 맺었다." 그의 깊은 통찰은 공산주의라는 꽃을 잉태했고, 이윽고 공산주의는 유럽을 배회하며 전 세계를 흔들었습니다.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압제에 신음하는 민중을 위해 총을 들었고, 펜을 들어 인쇄소를 돌렸습니다. 반동부르주아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놀라 여러 탄압을 가했으나, 역사 속의 동지들은 단호하게 이에 맞서 그들의 자유와 민주, 평등의 가치를 지키려 했습니다. 그 결과 제국주의의 아성이 무너지고, 세계 각 민중은 자신들의 주체적인 역사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공산주의의 실험은 실패한 셈이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소련 붕괴 이후 공산주의는 사실상 사장된 사상이 되었고, 자유주의의 물결이 온 세상을 휩쓸었습니다. 하지만 카를 마르크스의 후예들은 분명히 살아남았고, 애덤스의 후예들은 심각한 모순에 부딪혔습니다.

2008년의 리먼브라더스 사태는 부패한 애덤스의 자손들이 어떻게 사회적 부를 착취하는 지, 그리고 민주주의의 매커니즘을 어떻게 훼손하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에 비해 마르크스의 자손들은 북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라는 형태로 새로운 실험과 기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험 와중에는 고난과 실패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 의미를 되새겨 볼 때, 과거 세대의 동지들에게 그들의 가치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미래 세대의 동지들에게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실험을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세계(가상국가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온갖 제국과 왕국의 계급제 사회가 무너지고 공화국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으며, 자유, 자주, 민주, 평등, 평화, 공화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고 있습니다. 무너졌던 국가들이 다시금 움틀거리고, 새로운 국가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저는 단적인 예로 인민연방과 하늘미르를 들고 싶습니다.

나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라우타 연방공화국은 무관심과 혼돈으로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그 잿더미에서 새로운 힘이 표출되었습니다. 인민들의 힘, 인민들의 지지로 인민당이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잡아 개혁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하늘미르는 어떻습니까? 오랜 세월 대의민주주의라는 허울 아래 신음받던 민중을 대변하고자 하늘미르 공산당이 창당되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모든 모습을 우리 가상국가 인민들은 지켜보고 있습니다. 역사의 대변자이자 주체인 인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존의 세계(가상국가계)에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이 새로이 시작하려 합니다. 정치적 대립으로 맺어진 동맹, 정치적 이득으로 맺어진 동맹이 아닌 사상적 공유와 평등에서 기반을 둔 새로운 동맹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연대입니다. 그 첫 발자국을 떼어 놓으려고 합니다. <국제좌파연대(가제)>의 구상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 동반자로 우리 인민당은 하늘미르 공산당과 함께 하려 합니다. 이번 <국제좌파연대>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번 회담을 통해 <국제좌파연대>의 앞으로의 행보와 방침을 구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전선이 확대되어 가상국가계의 전 인민이 진심으로 자유롭고 평등해지길 희망합니다

—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당 서기장 에리히 델프트

마라우타 인민연방인민의 사회당 국제좌파연대 손을 잡은 정당은 하늘미르 왕국하늘미르 공산당이다. 에리히 델프트 당 서기장이 축전을 보낸 후 정당간의 교류가 늘어났고 세계적으로 반공 움직임이 보이면서 그들 정당간의 연대는 강화되었다. 그러면서 국제좌파연대를 조직하며 그 동안에는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던 연대를 공식화 하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또한 국제좌파연대를 조직하면서 사회주의 · 공산주의를 추구하는 세계 여러 국가의 정당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것을 용이하게 하고 국제적으로 연대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좌파 세력을 강화 시키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국제좌파연대는 그것을 출발하는 첫 시작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발표 당일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의 서기 및 정무위원 일부가 하늘미르 공산당과의 국제좌파연대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출국하였다. 인민당 대변인실은 언론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인민당과 공산당이 국제적인 좌파연대를 수립하고자 노력 중이며, 연대를 공식적으로 출범시키기 전 합의를 위하여 출국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바라트 모한 아디카리 전 네팔공산당 당대표와 ´프라찬다´로 불리는 푸시파 카말 다할 정무위원, 칼롱 겔렉 유톡 티베트중앙공산당 당서기 등이 출국하였다.

푸시파 카말 다할 정무위원은 마라우타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인민당과 공산당의 분위기는 매우 밝다."라고 말하며 회담의 분위기가 좋았고 원할하게 이뤄진 것에 대해 흡족해 하였다. 양당 모두가 현재 국제사회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나기 적절한 때라는 데에 동의하였고 사회주의 움직임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조치가 논의되었다.

칼롱 겔렉 유톡 티베트중앙공산당 당서기는 시민의 소리와 인터뷰에서 "하늘미르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선진 의회문화이고 인민연방 역시 한 때 의회문화의 선두주자로 손꼽혔던 만큼, 국민의회가 빠른 시일내에 정상화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의회의 부활을 위한 어느정도 인민당내 기류도 형성되었다는 것도 짤막하게나마 알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ANM 1TV, 인민당 주요 인사, 하늘미르 공산당과 연대 회담차 출국
ANM 1TV, 국제적 좌파연대 구상회담 막바지... 성공하나?

제1차 국제좌파연대 국제회의

혁명을 하고도 민중이 여전히 가난하고 불행하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2017년 11월 30일 인민당은 마라우타 인민연방에서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하늘미르 공산당은 2017년 11월 11일부터 익일인 12일까지 합의한 결과에 대해 발표하였다.

1. <국제좌파연대>에 참여할 수 있는 정당은 공산주의부터 사회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사회주의' 계열이라 판단되는 정치적 결사체여야 한다. 다만 인민당은 스탈린-레닌주의와 같은 폭력혁명노선 또한 국제좌파연대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였는데, 그 이유는 독재국가의 경우 인민에 의한 폭력혁명이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민당은 좌파의 범주에 속하는 정당은 모두 수용하되, 몇 가지 기준을 정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공산당 측은 '독재국가'라는 전제 하에 폭력혁명노선의 지향이 가능하나, 민주적 논의 이후로의 혁명 추구 쪽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였다. 논의 끝에 인민당과 공산당은 좌파계열 정당을 모두 수용하되, 이에 따른 문제를 줄이고자 몇 가지 제한을 두기로 합의했다.

가. '북한'과 같이 명백하게 '독재'로 판단되는 좌파 정권의 경우, 철저하게 배격.
나. 국제적인 연대에 가입 후 독재로 판단되는 경우, 절차를 밟아 연대에서 퇴출.

2. <국제좌파연대>는 가상국가 내 좌파계열 정당들의 국제적인 연대이니 만큼, 각 당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각 당의 의사표현을 듣고 의견을 조율할 회의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공산당은 각 당의 관계자들이 과연 시간이 날지는 모르겠으나, 매달 1회 이상의 정기적인 회의를 가져서 각국의 상황에 맞게 조언 및 토론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국제좌파연대는 매달(현실력) 1회 정도 국제회의를 개최하며, 개최장소는 매달마다 각국이 돌아가며 맡기로 합의했다. 구상회담을 진행한 장소가 하늘미르 왕국이었던 만큼 <제1차 국제좌파연대 국제회의>(이하 제1차 마라우타 회의)는 인민연방에서 열기로 합의, 진행하게 되었다.

3. 한빛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반공전선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응대하되, 구체적인 논의는 인민연방에서 열리는 <제1차 마라우타 회의>에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국제회의를 마칠 때엔 반공세력에 대하여 공동 대응 논평을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 국제좌파연대 구상회담 합의문에서

위의 합의를 통해 제1차 국제좌파연대 국제회의 소위 <제1차 마라우타 회의>가 2017년 12월 1일부터, 12월 10일까지 개회하게 되었고 의제는 2가지라는 점을 공지하였고 쟁점 논의 후에는 자유 논의가 이어진다고 공지하였다.

제1차 마라우타 회의에서 논의할 ‘제1차 국제좌파연대 국제회의 의제’는 다음과 같다.

국제좌파연대 회의에 참가 정당은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마라우타 인민연방), 하늘미르 공산당(하늘미르 왕국), 하늘미르 민주당(하늘미르 왕국), 한빛공산당(하늘미르 왕국), 기독교사회당(하늘미르)(하늘미르 왕국) 이며, 개인자격으로는 스티븐 앤서니, 대부여국 황제인 해성제가 참가하였다.

국제좌파연대 제1차 국제회의 포스터
국제좌파연대 제1차 국제회의 포스터

2017년 12월 1일 인민당 레닌 대회당에서 국제좌파연대 제1차 국제회의가 개회되었다. 회의에 앞서 의장을 맡은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당서기장인 에리히 델프트인민당하늘미르 공산당간의 합의 끝에 열리게 되었으며. 국제사회에 점조직으로 흩어져 있는 좌파계열의 정당들의 연대를 꽤해 단일한 목소리를 내고 각국 좌파 정당을 지원하고 더 나아가 국제사회의 반공정적인 정서를 완화하여 사회주의 사상 또한 공존할 수 있는 토양(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목적을 밝혔다.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나, 인민당은 회의록을 일부 공개하였다.

인민당: 우선 1번째 안건에 대해 논의해보겠습니다. 회의에 참석하신 동지분들도 아시다시피 앨런제국(이하 앨런)은 나름의 법체계를 가진 국가로 스스로를 입헌민주왕국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허나 실제로는 국가최고 지도자의 의향에 의해 국가가 움직이고 법이 뒤를 따르는 기묘한 전제주의 국가입니다.

기실 이번 테러 역시 부매니저직을 매니저가 인민의 합의 없이 외부인에게 넘기면서 발생한 부분이 있습니다. 관련 법이 없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이 또한 앨런이 법에 기초하기보다 황제의 의사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음을 방증합니다.
따라서 인민당은 이번 회의를 통해 국제좌파연대의 구성원이 전제주의적 설정의 국가 및 전제주의적 실정의 국가에 어떻게 대응하고, 자국의 이러한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미르 공산당: 인민당의 고충에 대하여 잘 들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앨런제국은 공화국으로서의 개헌이 이루어진 상황이며 최초의 민주적인 국가 지도자 선출이 진행중인 상황입니다. 독재를 표방하지 않는 가상국가에서 독재가 진행중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민의를 무시하는 처사이며, 민주주의와도 맞지 않는 행위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우리 공산당은 초국가적인 국제좌파연대를 구성하는 각 정당들이 한 목소리를 내어 이들을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리는 열렬한 투사들을 위한 아낌없는 지원을 다 해야 한다고 봅니다. 외부적 차원 및 내부적 차원 모두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민당: 앨런제국이 과거엔 전제주의 형태의 국가였으나, 최초의 민주적 국가지도자 선출이 진행 중이라는 데에도 동의합니다. 한편으로, 공산당은 독재정권을 규탄하고 레지스탕스들에 대해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한다고 하였는데, 이 사항에도 동의합니다. 다만 외부적 및 내부적 차원을 돕는다는 것이 추상적이게 느껴집니다. 보다 구체적인 방법이 없을까요? 인민당 측에선 이를테면 '설정을 통한 국제의용군단 조직 및 운용', '국제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헌법 제정 및 국가조직 확립을 국제좌파연대가 지원', '망명정부 및 저항조직에 대한 국제좌파연대 임원진의 참여' 등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하늘미르 공산당: 우선 인민당의 의견을 듣고 말해보려고 했습니다. 국제의용군단의 경우 군사조직을 말씀하시는건가요? 나머지 사안의 경우 전부 동의하는 바입니다.

인민당: 설정 상의 조직이며, 군사조직입니다. 스페인 내전 당시의 '국제여단'을 새롭게 설정화 한 것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평시에는 '국제의용군단'의 회의나 정기적인 훈련만 하다가, 국제좌파연대의 소속국 및 소속정당이 도움을 요청할 시 회원국 정당들의 표결을 거쳐 지원하는 형태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연합군의 성격이니 만큼 설정을 통한 정기적인 군사 훈련 등을 추진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다만 인민연방과 같이 좌익 성향의 정당이 집권하였기 때문에 국제의용군단에 활발하게 지원이 가능한 곳이 있는가 반면, 하늘미르 공산당과 같이 야당 또는 원외 정당으로 머무는 좌익 계열 정당의 경우 지원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하늘미르 공산당이나 한빛 공산당과 같이 군사적 지원이 힘든 정당의 경우, 국제의용군단에 대한 경제적 지원 및 군사고문의 파견하는 선으로 국제의용군단에 참여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하늘미르 공산당 : 확인하였습니다. 공산당은 당의 강령에 폭력투쟁노선을 지양함을 명시했기에, 재정 지원 및 군사 고문의 수준에서 참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인민당: 확인했습니다. 공산당 측의 입장을 존중합니다. 다른 정당들의 입장을 기다려보고, 내일까지 별다른 말이 없을 경우 내일 19:00부터 두번째 안건의 토의를 진행하겠습니다.

하늘미르 공산당: 알겠습니다.

… 후략 비공개

— 국제좌파연대 제1차 국제회의 회의록 일부 中

인민연방 종교정책 완화

2017년 12월 23일 ANM마라우타 인민연방 정부종교간의 대립이 소강상태에 들어가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ANM은 인민당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성탄절 맞이하여 에리히 델프트 인민당 당서기장과 인민연방 내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회합을 가졌다."라고 보도하였다. 종교 지도자들과 만남이 큰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관제종교단체가 아닌 종교자유를 위한 연방 종교인 비상 시국회의(이하, 종교시국회의)에 속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에서 달라이 라마 티베트 불교 수장, 마라우타천주교 존 슈머 아빠스, 오르만 이슬람교 최고지도자인 무함마드 안와리 다디이맘 등이 참석하였다. ANM 보도에서 2017년 10월 6일 인민연방의 종교 정책(통제)이 바뀔것을 관측을 내놓았는데, 그러한 관측이 맞아 떨어졌다.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서기국은 종교 업무 이관하는 예고문을 발표하였다. 인민연방 대종교 정책을 담당하던 서기국이 종교와 관련된 업무를 행정성 교육문화부로 이관한다는 내용이었다. "종교 정책의 변화가 있는 것이냐?"는 한 기자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는 답변을 내놓으면서 "[서-no.7] 조치라 알려진 종교 정책에도 일대 변화가 있을 것 이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종교계 갈등이 해빙무드에 들어서는 분위기를 반영하듯이 에리히 델프트 정무위원장는 12월 24일 성탄미사 참석을 통해 알 수 있다. 에리히 델프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것으로 알려졌지만, 2017년 10월 6일 종교 통제 정책을 시행하면서 "종교는 인민의 진통제이다."와 "교황청에서 날 파문할 지언정 조국과 당에 대한 열정은 버릴 수 없다."는 강한 어조를 들어내며 종교 통제 정책을 강하게 시행했던 그가 성탄 미사에 참석하였다는 것만 해도 굉장한 일이였고 인민연방과 종교계의 갈등이 어느정도 봉합된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미사를 집전한 폴 시믹 주교는 교구장 담화에서 에리히 델프트 당서기장의 참석을 의식하며 성탄 담화에서 모든 정치인이 올바른 각성과 방향성을 촉구하며 마라우타의 평화를 바란다고 하였다. 당시 언론은 관련 보도를 타진하면서 에리히 델프트 당서기장이 종교행사에 신자 신분으로 참석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인민당 역시 종교 정책에 있어 확실하게 변화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 대다수의 해석이었다.

2017년 12월 25일 성탄대축일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는 행사가 이어졌다. 종교통제로 인해 성탄축일 행사가 축소 혹은 개최가 불투명했지만 이러한 해빙 분위기 덕분인지 많은 사람들은 성탄 행사를 즐기고 있었다. 범기독교계(천주교 및 개신교계)는 성탄 맞이 공동발표문을 발표하며 "빛에서 빛이 나신 날, 어둠 속에 있는 이웃을 기억해야" 한다며,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였다.

인민불제자평의회 도의스님은 "교의 보살도를 행하신 서방의 대성인 예수를 기리며(성탄특별법문)""라는 법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였다. 도의스님은 "예수 그리스도는 경계가 없는 분"이라고 평가하며, "그분의 사랑은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이 서로를 정죄시하고 비난 하는것에 대해 비판하였고 이 가르침은 부처의 가르침과 같다고 하였다. 말미에 "우리는 각자의 종교의 진리와 그 근원으로 돌아가, 좀더 가까운 이웃을 상처 입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언급하며 종교의 화합을 강조하였다.

2017년은 마라우타 종교계에 있어 분열과 갈등 그리고 다시 또하나의 화합으로 가는 그런 해였다.

인민당, 종교계와 대화 시작
델프트 당서기장, 성탄미사 참석
성탄 맞이해 전국 곳곳에서 행사

집단지도체제 일부 변경

2018년 3월 18일,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2017년 10월 8일에 실시한 집단지도체제에 일부 변경 사항을 발표하였다. 인민당은 집단지도체제의 유용성을 확인하였고 집단지도체제 시행령 일부를 개정해서 다음과 같이 공포하였다.

첫째. 마라우타 제2공화정 시절의 행정장관직을 통합하여 집단지도체제를 꾸린다.
둘째. 집단지도체제의 명칭은 '중앙정무위원회', 약칭 '정무위원회'로 한다.
셋째. 정무위원회의 구성원은 '정무위원'이며 정원 11명으로 하고, 기존 행정장관직을 공통으로 맡는다.
넷째. 정무위원회의 위원장은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겸임한다.
다섯째. 정무위원은 마라우타 제2공화정 시절의 행정각부 및 행정각처의 행정장관직을 수행하되, 다만 업무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정무위원 개개인의 고유 행정장관직을 지정한다.
여섯째. 정무위원의 임기는 2년을 최소한도로 하고, 당 중앙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선출한다.
일곱째. 정무위원의 임기는 당 중앙위원회의 승인이 있을 시 무기한을 최대한도로 둔다.
여덟째. 집단지도체제에 대한 내용을 정비하여 새로운 인민헌법에 추가토록 한다.

—  인민의 사회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집단지도체제 당 시행령 개정 내용
개정전 개정후
여섯째, 정무위원의 임기는 3개월을 최소한도로 하고, 당 중앙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선출한다. 정무위원의 임기는 2년을 최소한도로 하고, 당 중앙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선출한다.

정무위원의 최소 임기를 3개월에서 2년으로 증가하였고 집단지도체제에 대한 내용을 새로운 인민헌법에 추가하도록 명시하여 차후 헌법 제정의 초석이 되었다.

조국재건위원회 창설

2018년 6월 10일, 마라우타 인민연방 중앙정무위원회(정무원 전신)는 기존의 국가경쟁력확보위원회를 조국재건위원회(일명, 재건위)로 개칭하며 재건위를 창설하였다. 조국재건위원회는 헌법과 법체계, 정치체계(사회주의 체계), 이론(공상사회국가론) 시범 적용, 국가 전체적인 시스템(설정)을 재정립하는 등을 목적으로 창설하였다. 조국재건위원회는 새로운 조국을 건설하는 마음으로 마라우타를 재건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으며, 조국재건위원회는 정무위원장 산하의 직속기구로 편성되었다. 마라우타 인민연방 인민들을 대상으로 조국 재건 방법에 관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기도 하였다. 후에 조국재건위원회는 마라우타 인민연방 헌법의 전문(前文)과 내용의 초안을 제시하였고 헌법을 제정하고 마라우타 인민연방의 법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자치주의 독립, 창 연합 결성

2018년 6월 17일, 이 날은 마라우타 인민연방의 자치주들이 각각의 독립된 국가가 되는것을 결정한 날이다. 자치주 대표(자치주의 수장), 주지사,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간부, 정무위원들이 모여 회의를 지속한 끝에 자치주를 독립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마라우타 인민연방이 자치주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지난 무정부 사태 이후 재정적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하였고 자치주들은 재정적으로 어려워진 본국에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 꽤 부담으로 작용했었다. 이전부터 자치주들은 자신의 국가로 온전하게 통치하고 싶다는 입장을 제2공화정 시절부터 내세웠다. 하지만, 여러 법적으로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독립에 관해서 지지부진하던 중 오랜 기간의 논의를 거쳐 자치주를 독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자치주의 독립과 주권국가로서 인정하였고 우선순위로 수교를 맺는것에 각 자치주 대표와 인민연방은 동의하며 합의문에 서명을 하였다. 자치주들은 다음의 국가로 독립하였다.

1) 베트남 자치주 →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2) 스리랑카 자치주 →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공화국
3) 에르체이 자치주 → 에르체이 공화국
4) 이스라엘 자치주 → 이스라엘 대공국 (왕정 복고)
5) 동투르키스탄 자치주 →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6) 한빛 자치주[3] → 해당사항 없음

마라우타 인민연방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공화국, 에르체이 공화국, 이스라엘 대공국,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에게 본국과 마찬가지로 사회 불안 및 심각한 침체를 겪고 있어 안보와 경제적 공동체를 결성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새로운 형태의 연합의 명칭은 전략적 방어와 경제 자문 보호구(S.P.E.A.R, Strategic Protect and Economic Advisory Reserve)', 일명 '창 연합(S.P.E.A.R Union)'이라 명명하였다. 창 연합에 가입한 가입국은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과 유사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한다. 제2공화정에서 자치주 연방보다는 낮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해당 국가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안보와 경제적으로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하였다.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에게는 가입 제안을 했지만 그 여부를 결정 중에 있다.

몰도바 사건 발생

2018년 7월 3일 이날은 전세계가 유럽몰도바 제2공화국을 주목한 날이었다. 몰도바 제2공화국이 2개의 국가로 분할될 위기 일발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틀전 새천년몰도바민주당(당대표: 한대중(한비자))은 라두 세르네쳐(노태현) 총리가 장기집권하며, 몰도바의 다양성을 없애고 탄압하는 동시에 민주주의 싹을 밟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통해 1,000년의 몰도바를 함께하자고 하였다. 새천년몰도바민주당은 글로벌주의를 주창하며 영토조차제 시행하고 타국에 지역별 치안관리를 주장하였다. 이에 당시 총리인 라두 세르네쳐가 반대하게 되고 새천년몰도바민주당은 이러한 것이 야당 탄압이라고 대치하게 되며, 두 세력간의 반발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최규하(이맹박) 몰도바 제2공화국 대통령은 한대중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임명하였다. 이윽고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한대중은 한정희(실제: 한비자)를 이용하여 군사정권을 일으켰다. 한대중과 한정희와의 관계는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있었고 한대중이 한정희에게 구국을 위한 개혁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은 몰도바 사태 전날인 2일에 의회를 해산하는 동시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또한 총리 관저를 점거하였고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총리 세력은 쿠데타라고 정의하였다.

라두 세르네쳐 총리도 지지 않았고 구국의 결단의 이름으로 한정희 대통령권한대행을 긴급체포를 지시하였다. 라두 세르네쳐 몰도바 공화국 총리는 "독재라고 비판해도 좋으나, 구국을 위한 결단이었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 언급하기도 하며, 의회재개를 시도하려고 하였다. 이전 대통령인 최규하는 전군을 이동시켜 다시금 몰도바 공화국의 의회를 해산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총리세력과 한정희 세력간의 군대가 조직되면서 내전이 격화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이전 기록들을 비롯하여 여러 유산들이 없어지는 등의 피해가 심해지게 되었고 유혈사태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라두 세르네쳐 총리는 자신이 있는 영토를 기점으로 하여 망명정부를 설립하게된다. 국제연합 델 마르코 사무총장에게 망명정부를 정식 몰도바 제2공화국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편 한정희 대통령권한대행 세력은 라두 세르네쳐 총리가 선언한 국가 및 망명정부를 반 국가단체로 규정하며 자신이 있는 이곳 몰도바 제2공화국이야 말로 정식 국가라고 주장했다. 이미 라두 세르네쳐는 국가 대표자가 아니며, 우리는 장기독재에 맞써 싸운 정식 정부인 동시에 불법 정부인 망명정부를 정식정부로 인정하지 말 것을 청원하기도 하였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우려어린 시선과 동시에 유감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프로이센 공화국 Oliver von Friedrich 외교통상부 장관은 분쟁 중립 원칙을 깨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투쟁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몰도바 군사정권(한정희 세력)에게 경고를 하기도 하였다. 델 마르코 사무총장은 관련자 처벌을 언급하였다.

대부여국 역시 몰도바 공화국의 망명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을 내었고 한빛민주공화국안혜연 국무총리는 울샘관(국무총리실)을 통해서 한정희 군사정권이 무모한 행보를 보일 경우 중립을 철회할 예정이며 유감표명을 하였다. 사태에 대해서는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하였다. 루마니아 왕국 역시 몰도바 망명정부를 지지하며 조차를 약속받았던 베사라비아 자치정부를 돌려주기로 결정하였고 동시에 군사정부와의 단절을 선언하였다. 와칸다 왕국도 왕궁성명을 통해 조차지 반환과 더불어 중립을 선언하면서 점점 군사정권의 힘이 빠지고 사기가 저하되기 시작했다.

마라우타 인민연방도 역시 에리히 델프트 정무위원장의 명의 성명을 발표하며 라두 세르네쳐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민주정부 수립을 지지하는 동시에 프로이센 공화국, 대부여국 등이 참여하는 평화포럼에 <몰도바 사태 전개와 향후 대처방안>을 정식 의제로 상정하여 논의를 요청하였다.

2018년 7월 6일 국제사회가 라두 세르네쳐 망명정부를 지지하는 힘으로 망명정부(임시정부)의 군대를 이용하여 쿠데타 군을 무장해제을 하며, 내각 복귀를 정식으로 선언하였다. 한정희 대통령 대행이 이끌고 있는 군사정권이 민정이양과 계엄해제, 국가재건최고회의 해체, 대통령선거 조기 시행을 약속하며 몰도바 사태의 종결된것 처럼 보였다.몰도바 정부는 국제연합과 평화포럼 대표단이 참관하는 선거를 제안하였다.

2018년 7월 8일 평화포럼이 주관하는 몰도바 사태 종결 합의문이 나왔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한정희, 라두 셰르니처 양측 모두 정계에서 은퇴한다
2. 정계가 아닌 재계, 언론계 등 다른 분야에서의 활동은 인정한다.
3. 이번에 있을 대선 및 총선에 불출마 선언 및 당적 취소
4. 6개월 후 극심한 인력난으로 국가적 위기 봉착 시 라두의 정계복귀를 인정, (국가위기가 아닌 경우 당적 회복 후 정당활동만 인정)
5. 이번 몰도바 사태(쿠데타)에 관하여 상호간 어떠한 형태의 보복 및 보상요구를 금한다.

라두 세르네쳐 총리는 합의문 이행을 통해 총리 사퇴를 선언하며, 정계를 마감하는 듯 보였지만 이에 아랑곳 하지 않은 한정희는 자신의 측근인 한대중(실제: 한비자)을 이용하여 선거에 출마하였다. 라두 세르네쳐 총리 측은 이것은 자신의 세력을 이용한 간접적 정계의 참여라고 보여진다면서 라두 세르네쳐 총리 사퇴를 번복하였다. 한정희가 합의문 서명을 끝내하지 않으면서 결국에는 평화포럼은 합의 실패로 결론 짓게되고 다시 상황은 악화하게 되었다. 평화포럼은 이후 합의 실패에 따른 유감을 표시하고 중립적인 태도로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평화포럼이 강제성에 한계에 부딪히고 합의가 실패로 돌아간 것을 본 국제연합은 몰도바에 대한 직접적인 중재에 들어갔고 늦은 저녁까지 합의 논쟁을 이어간 끝에 최종적으로 몰도바 사태 종결 합의문이 나왔다.

1항. 노태현과 한비자(한정희, 한대중)는 이 시각 이후에 몰도바 사태에 대해서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서로에게 묻지 않는다.
2항. 이번 총선, 지선, 대선에 출마하는데 서로 아무런 제약이 없어야 한다.
3항. 가상국제연합(국제연합) 조정위원회가 이번 몰도바 조기 총선과 조기 대선에 선거관리위원회로서 주도하는 것에 동의한다.
4항. 이 합의를 어길 시 어긴 자는 몰도바에서 탈퇴하여 돌아오지 않는다.

— 국제연합 몰도바 사태 종결 합의문 에서

국제연합 합의를 통해 국제연합이 주관하여 정상적으로 각종 선거가 이뤄지게 되었다. 한편 제3의 세력이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데 몰도바 공산당이었다. 라두 세르네쳐 총리 세력과 한정희·한대중 세력에 염증을 느낀 일부 국민은 몰도바 공산당을 지지하게 되었다. 몰도바 공산당은 얼마 안되서 당명을 혁명적 공산주의 전선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혁명적 공산주의 전선은 라두 세르네쳐 전 총리가 공산주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이념적 편향을 가지고 있는 자로 규정을 하였다. 한비자와 연정의 조짐까지도 보이게 되었다.

이에 대해 반감을 느낀 라두 세르네쳐 총리는 정권 퇴진 구호와 인터내셔널가를 그 예로 들며 '이것이야 말로 공산혁명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문을 하였다. 2018년 7월 10일 혁명적 공산주의자 전선은 라두 파쇼정권의 매카시즘적 발언 규탄에 대해 공식적 성명을 발표하며 단호하게 해당 발언을 규탄하고 배격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정치 사상의 자유를 짓밟고 있는 라두 세르네쳐 정권을 파쇼정권으로 규정하고 투쟁할 것이라고 공언하였고 정치사상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한 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하였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민주주의라는 '붉은 장미'는 인민의 피를 먹고 자라왔다. …하지만 더 이상 인민의 희생이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민주주의라는 붉은 장미가 마시며 자라야 할 피는 인민의 피가 아닌, 독재파쇼 정권과 파시스트의 피다.


 
— 롭상 남카 데릭

2018년 7월 12일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몰도바 제2공화국 상황에 대한 <붉은 장미 원칙> 재확인을 발표하며, 라두 세르네쳐 전 총리의 극우적 시각에 대해 유감의 입장을 표하였다. 과도한 자유를 이유로 혁명적 공산주의자 전선의 여러 주장과 요구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였고 혁명적 공산주의자 전선이 정권퇴진 구호와 정치상의 자유 보장, 인터내셔널가의 제창이 곧 국가 전복과 공산혁명을 추구한다고 볼 수 없다고 비판 하였다. 과도한 자유는 규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자유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세우며 과도함의 기준이 누구의 기준이냐는 것을 반문하기도 했다.

이어서, 이러한 것들로 인해 민주주의가 훼손하고 자유민주주의가 붕괴된다면 몰도바의 자유민주주의가 그 정도 능력 밖에 안된다는 것을 대놓고 광고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몰도바의 자유민주주의가 그토록 대단하고 완벽하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당당하게 용인하고 경쟁할 것을 주문하며 만일 경쟁에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이길 수 없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무능력과 동시에 인민의 요구를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한 것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1. 인민당은 지난 (현실력) 17년 10월 28일 <붉은 장미 원칙>( https://cafe.naver.com/maraouta/6364 )을 발표하였고, 이에 따라 각국에서 활동하는 공산당 및 사회주의 정당과의 연대를 강화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인민당은 파쇼 조직과 대적하는 어떠한 국가의 사회주의 동맹이건 협조하며, 파쇼 치하의 인민 혁명을 지원함을 공포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셰르네처 전 총리의 발언은 다소 파쇼적이고, 또 우리의 사회주의 동지를 핍박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셰르네처 전 총리가 더 강경한 입장을 보이거나, 혹은 우리의 사회주의 동지들을 핍박한다면, 인민당은 마라우타 인민의 전 힘을 모아서라도 이를 저지할 수밖에 없다.

2주년 인민연방 빛과 그림자

중앙정무위원회(정무원 전신)은 2018년 7월 13일 '인민 총궐기 대회 2주년을 앞두고'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인민총궐기의 2주년의 소회와 경과를 밝혔다. 인민 총궐기 대회를 통해 인민의 목소리를 귀기울이지 않는 제2공화정이 전복되었고, 새로운 제3공화정인 인민연방이 선포되었고 많은 인민들이 하층 계급에서 노동자계급으로 진입하여 자본주의 진영의 중산계급의 삶을 누리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국가가 안정화됨에 따라 타국과의 외교가 진행되고 있으며, 마라우타 인민연방의 국제적 위상을 높아지고 있다고 하였다. 국제좌파연대를 통하여 국제적 사회주의·공산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인민들의 힘으로 조국이 움직이고 있다고 하며 성과를 선전하였다. 실제로 국제적 위상은 물론 인민의 삶이 과거 무정부 시절보다는 나아졌다는 것이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평가하고 있다. 바야흐로 찬란한 빛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는 짙어지는 법이다.

종교 및 언론 그리고 통신, 정치등 많은 분야에서 자유가 하락된 수치가 나왔고 특히 언론자유지수가 두드러지게 급감한 현상이 보였는데 제3공화정 이전 16위에서 17위 수준으로 비교적 언론 자유지수가 높은 국가에 속했지만, 제3공화정 이후 언론 통제가 강화되자 언론자유지수는 121위로 급 하락하며 아랍에미리트와 비슷한 수준의 언론자유지수의 순위를 가지게 되었다. 마라우타 언론협회와 기자들은 중앙정무위원회와 인민당의 사전 검열과 언론탄압이 초래한 결과라며 언론의 자유 국가인 마라우타의 이미지가 완전히 먹칠한 결과라고 통탄하는 성명을 발표 하였다.

이틀 뒤 시민의 소리가 핵 개발국가의 과학자들이 밀입국하는 것을 행정성 국방부 익명의 관계자가 인터뷰한 사실을 보도하며 행정성의 핵 개발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조국재건위원회(이하, 재건위)는 중앙정무위원회(이하, 정무위)에 아래와 같은 권고안을 보냈다.

1.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이하 인민당)의 인물로만 채우던 기존의 정무위 정무위원 중 일부를 다른 정당의 당대표나 당수에게도 맡겨 다당제적 성격의 국가로 나아감과 동시에 행정력을 늘릴 것.

2. 중선거구제 또는 대선거구제를 인민연방의 선거제도에 편입시킴으로써 인민당 외에 다른 정당 또한 정무위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

3. 1당 독재에 가까운 인민연방의 현실을 개선시켜 다당제 국가로서 기능할 수 있게끔 조국재건위 또한 헌법 초안을 작성할 방침임.

현재의 일당제 대신에 다당제를 권고하고 정무위에 타 당을 참여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정치와 행정 개혁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정무위가 받아들일지 여부는 불투명 해보였으나 최근에 국민당(마라우타)의 활동과 비 인민당 계열의 레이 데 루카를 정무위에 참여한 것으로 보면 어느정도 권고안이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분위기였다.

한편 국외에서 마라우타 민주화위원회에 적극적인 지지를 하여 인민연방 정부로부터 입국 금지 당한 최형주 전 대통령(제1공화정 제2대 대통령)이 위독하다는 알 비에 기사가 나왔다. 기사에 따르면 최형주 전 대통령은 자택에서 쓰려져 콜롬보 병원에 입원 중이며, 최근 건강상태가 안 좋았지만 의식불명은 이번이 처음이다면서 최형주 대통령이 위독하다는 사실을 전하기도 하였다. 시민 중 일부는 독재자의 말로는 좋지 못하다고 하기도 했지만 다들 쉬쉬하며 입조심하고 있었다.

제1차 연방준비제도 회의 소집 및 관세전쟁

2018년 7월 15일, 마라우타 인민연방 중앙정무위원회(이하, 정무위) 정무위원장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임시의장 자격으로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회의를 소집하였다. 참석자는 추드푸드 싱게(Tshudpud Singye) 전 연방중앙은행 이사, 시드케옹 짐바(Sidkeong Zimba) 전 팀푸체리은행 은행장, 툴쿠 응게두프(Tulku Ngedup) 현 연방행정대 경제학 교수, 타시 틴레이(Tashi Thinley) 전 팀푸체리은행 티베트지점장, 팔덴 톤두프 왕축(Palden Thondup Wangchuk) 현 연방중앙은행 이사 체링 남기엘(Tshering Namgyel) 현 연방금융연수원 수석 이코노미스트, 바부람 바타라이(Baburam Bhattarai) 전 네팔공산당 원내대표 및 현 인민역사외교대 이사, 히실라 코이랄라(Hisila Koirala) 현 인민중앙공사 이사 및 인민중앙공사 금융파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등이 참석하였다.

연방준비제도가 소집된 이유는 글로벌 불황에 따른 경제 침체 대응을 하기 위한 공격적 금리 인상 여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발생 가능성 여부와 연준 개입 범위 논의, 통화가치 재조정 등 3가지 안건이 상정되었고 회의를 진행하였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 통화정책 변화
앨런제국과 하늘미르 왕국 사이에서 예상되는 무역 갈등과 인민연방 내수 침체 등 대내외적인 경제 여건이 좋지 않게 형성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여 통화정책에 중대한 수준으로 변화하기로 결정함.

2. 기준금리 5%에서 3%로 인하, 스태그플레이션 해소
제2공화국 대비 실업률이 2배 이상 증가하였고 생필품을 제외한 원자재 비용 물가가 급상승하여 스태그플레이션의 발생된다고 판단함. 따라서, 인민은행 기준금리를 종전 5%에서 3%로 인하하고 인민중앙은행과 인민중아공사와 함꼐 국가적인 사업(국비 사업) 추진을 통해 스태그플레이션을 해소하기로 결정함.

3. 화폐가치 변경 또는 화폐변경 결정
위원들 사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었음. 찬성 측은 연준과 인은은 외부 금융세력의 의도적인 마로트 가치 변화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언급하였고 또 사실상 마로트 화폐의 가치가 타국의 화폐 가치와 비교할 때 널뛰기를 하는 경향이 있고 최근 국제연합(가상국제연합)에서 보증하는 UND화폐의 등장으로 마로트의 지위가 흔들리는 상황적 배경이 존재하는 것을 논거로 제시함.

반대 측은 마로트와 우트의 가치 결정은 시장에 맡겨야 하며 연준에서 개입한다고 이것이 긍정적으로 개편될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 연준이 통화 정책을 선도한다고 하나 화폐 가치 재조정과 화폐 재도입은 통화정책이 아닌 재정정책에 가깝다고 판단함.

양측 모두 반박하는 측은 인민연방의 경제 상황이 심각하기는 하나 급격한 화폐 정책 변화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음. 통화 정책과 화폐 정책이 다르다는 반대 측의 의견에는 동의하나 반대 측과 달리 아예 화폐 가치 재조정은 말도 꺼내서는 안되고 찬성측의 화폐 가치가 왜곡ㄷ죄고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나 생각과 달리 화폐 가치가 크게 왜곡되지 않았다고 봄. 따라서 화폐 가치 왜곡에 동의하면서 금리 변경 또는 인민은행과의 논의를 통해 통화량을 조절하는 등 다른 대책이 필요함.

  • 찬성(5): 에리히 델프트, 툴쿠 응게두프, 타시 틴레이, 바부람 바타라이, 히실라 코이랄라
  • 반대(2): 추드푸드 싱게, 시드케옹 짐바
  • 중립(양측 반대)(2): 체링 남기엘, 팔덴 톤두프 왕축

결과적으로 화폐 가치 변경 또는 화폐 변경을 고려하기로 하였고 소수 의견을 고려해 빠른 시일 내로 금리 변경 또는 통화량 조절을 논의하기로 결정하였다.

국제적으로 관세전쟁이 시작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라우타 인민연방과 관련 없는 하늘미르 왕국앨런제국의 관세 정책이었다. 사건은 15일 하늘미르 왕국과 앨런제국간의 회담에서 시작하였다. 하늘미르 왕국 총리실은 한비자 총리가 회담을 위해 앨런제국으로 출발한다는 사실을 공표하며 두 국가 정상간의 회담을 알렸다. 그런데 이 회담이 문제가 되었다.

회담 초반에는 브리핑을 통해 잘 성사된 것으로 외신들은 평가하였다. 앨런제국의 괴벨스 총리와 회담에서 앨런제국에 대한 하늘미르 왕국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는 동시에 앨런기업과 면담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경제행보를 약속하는 듯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공동 기자회견도 없이 노딜로 협상이 끝난 듯 했고 한비자 총리는 총리실 관저 명의로 하늘미르는 자선단체가 아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앨런제국을 맹비난 하기 시작했다. 이유인 즉, 한비자 하늘미르 왕국 총리의 회담 태도에 대해 당시 앨런제국 경제부 장관이었던 헤르만 아리 에드리아(H.A.EdriA)가 이를 문제 삼았고 이에 대해 한비자 총리가 매우 불쾌하게 여긴것이다. 그리고 하늘미르가 앨런의 성장을 방해한 듯하게 말하는 앨런제국 경제부 장관의 언사에 대해서 비난을 하였고, 하늘미르 왕국은 적극적으로 해외 기업에게 거대한 지원금을 지원하는 등의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앨런제국이 하늘미르 왕국에 아무것도 안한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회담 형식에서도 갈등이 있었는데, 하늘미르 측은 정상간의 일대일 단독회담을 선호하였으나 앨런측은 장관을 포함한 확대 정상회담을 원하였다. 그러면서 최대 3,000운드[4]에 대해서 보복관세를 물리며, 본사를 앨런제국에서 하늘미르 왕국으로 이전할 경우 이러한 관세를 면제해주고 지원금을 주겠다고 하며 사실상의 관세전쟁의 서막을 올렸다.

앨런제국도 즉각 반응하였다. 하늘미르 왕국 왕실항의문을 보냈다. 크게 내용은 하늘미르 총리의 협박적 언사에 대한 해명 촉구, 하늘미르측 주선인 이번 회담의 의도에 대한 해명 촉구, 하늘미르와 앨런간의 외교적 관계 재정립 및 명실화 요구 등의 내용을 담았다. 주로 한비자 하늘미르 왕국 총리의 언행을 문제삼았고 특히 정상회담에서 관세를 도입하겠다고 언급하고 하늘미르 왕국에 1,000운드[5] 대규모 금융 투자를 요청의 압박에 대해서 항의하였다. 이에 대해 하늘미르 왕국 왕실은 항의문 회신을 통해 왕실은 하늘미르 왕국은 입헌군주정으로 헌법에 따라 직접적으로 내각에 간섭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선을 그었고 관세에 대한 부분은 조세법정주의를 지정한 헌법에 따라 법률로서 지정되어야 하며 이는 의회를 통과해야할 사안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하며 왕실과 내각의 연관성을 부정하였다. 하지만, 앨런제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막는 흔적이 엿보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양측의 관세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이렇게 양측이 관세폭탄을 주고받던 중에 마라우타 인민연방은 앨런제국에 대해서 대규모 관세를 매긴다는 발표를 하게 된다. 이유인 즉슨 앨런제국의 무관세 정책과 기업지원이 마라우타 인민연방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기업과의 경쟁 구도에 있어서 심각할 정도로 불평등을 만든다고 보았다. 인민연방의 무역수지는 극심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이는 인민연방에게서 앨런제국 기업들이 상당한 불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마라우타 인민연방 재무산업부는 특단의 조치로 앨런제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일체의 제품)에 대해서 최소 30%에서 최대 60%의 고관세를 부과한다고 선언하였다. 다만 다국적 기업의 경우에는 앨런제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아닌 경우에 한해서 제외한다고 선언하였다.

원래 마라우타 인민연방과 앨런제국의 사이는 좋은편이 아니었다. 과거 앨런제국의 테러사건 때 한비자 총리측의 변호인을 응웬 득 카이 국제연합 대표부장이 담당하였고 그 이전에도 앨런제국이 분할될 당시 공화정 체제인 앨런 공화국을 지원하고 쿠로-소슈티제국을 지원하는 등의 행태에서 앨런제국과 끊임없는 갈등이 보여왔기 때문이다.

양 측의 이렇게 팽팽한 갈등 속에 마라우타가 새로운 관세전쟁의 서막이 오르게 되었으나 오히려 하늘미르 왕국과 앨런제국은 관세 전쟁에 대해서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하늘미르 왕국 총리실은 총리 명의의 언론 성명을 발표하며 관세에 대해서 유보 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고 이에 앨런제국도 칼 구스타프 황제가 직접 보복관세를 철회하는 등의 발표를 하면서 양 측에서 물밑 협상이 된 것으로 당시 외교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와 관련 한 언론사의 기자가 정무원에 앨런제국 관세에 대해 철회 입장을 물었으나 당분간은 없을 거라면서 앨런제국에 대한 고관세를 적용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관세전쟁이 장기화 될 것임을 시사하였다.

언론 자유화 선언 폐기 위기

시민의 소리는 7월 22일에 "우라늄 상당량 서티베트로 흘러들어가" 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기사의 주된 내용은 과거 시민의 소리가 핵개발 의혹과 관련한 기사를 내놓자 자유로운 인민의 사회당 중앙군사위원회(이하, 군사위)의 고위 관계자가 시민의 소리 사장과 지회장들을 접촉했다는 것이다. 이를 서티베트 지회장이 규탄 성명을 발표하며 폭로를 하게 되었고 이것이 기사화 되었고 시민의 소리는 이와 관련한 사찰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시민의 소리는 서티베트로 흘러간 우라늄의 양이 증가하고 있다고 하면서 처음에는 군사위가 최근에 서티베트 지역의 원전개발에 착수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재무산업부와 국방부는 다량의 우라늄이 흘러가는 정황에 대해 금시초문이었다는 반응이었고 서티베트 지역에 대한 원전개발은 없다고 최종적으로 확인하였다. 추가적인 해명 요구에 대해서는 군사위가 확인해줄 수 없다고 하며, 핵 개발 의혹이 기정사실화 되가고 있다. 핵 개발과 관련된 시민단체인 마라우타 퍼스트가 인민연방핵개발지원 평의회를 조직하는 회의를 조만간에 열겠다고 하면서 핵개발 의혹 주장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

이러한 기사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있었던 에리히 델프트 정무위원장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에서 "언론검열을 탄탄히 해야" 한다는 모르하치 군사위 관계자의 말을 듣게된다. 같은 날 오후 마라우타 통신은 언론자유화선언 폐기를 검토 라는 기사에서, 에리히 델프트 위원장이 당 서기국 긴급총회에서 "최근 일부 언론이 조국의 중요한 대업을 가로 막으려 애쓰는 것 같다."고 말하며 당 간부에게 크게 분노를 표시한걸로 전했다. 그러면서, "언론자유화선언이 인민연방의 언론이 고삐가 풀린것 같다."라고 말하며 언론자유화선언을 폐기할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였다. 또한 "언론도 결국 우리 인민연방 조국을 위해 일하는 역군임을 다시 상기시켜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이 부분이 에리히 델프트 위원장의 언론의 기본적인 생각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언론의 자유보다는 국가 중심의 언론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훗날 국가언론방송총국이 만들어지게 된 하나의 이유가 된다.

이러한 언론자유화선언 폐기가 거의 확실시 되고 있는데 유력 언론사 관계자와 기자들은 반발에 나서기 시작했다. 제2의 언론탄압의 시작이라며 비판의 강도가 날로 높아져 이를 불의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ANM 본사는 대표이사인 안토니오 데 루카 사장이 직접 탄원 서신을 중앙정무위원회로 보냈다. 내용은 언론자유화선언 폐기 검토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며, 이는 마라우타가 건국 당시부터 지켜온 전통인 점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정부와 정치시스템이 바뀌었다고 한들 6가지의 마라우타 정신까지 지켜져야 하는 것이며, 이를 청산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정무위원회가 떳떳하다면 정보와 언론을 통제하지 말고 언론도 같이가야 하는 사회적 동반자임을 호소했다.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불법당롭상 싱가이 당대표는 마라우타의 근본정신은 불교에 있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롭상 싱가이 불법당[6] 당대표는 제3공화정 수립 당시의 에리히 델프트 위원장의 말을 인용하며 언론자유화선언의 폐기는 이와 정면으로 배치 된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셔 일방적으로 언론 통제와 국민 선동의 악용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언론자유화선언의 폐기에 대해 심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말미에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불교라면서 마라우타 6가지 정신은 불교와 가르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언론자유화선언 폐기가 언론과 정치권까지 우려와 반발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정무위는 별도의 언급 없이 조치를 무기한 연장하기로 하였다. 무명의 정무위 고위 관계자는 언론에게 이번일은 언론을 향한 일종의 경고성 메세지를 위원장이 전한거라고 말하기도 하면서 향후 언론의 행보에 대해서 더 지켜보겠다고도 하며 언론에 대한 정무위의 눈초리가 아직까지 살아있는것을 암시했다.

최형주 전 대통령 서거

나는 독재자일 것이다. 하지만 조국과 국민을 위해 한 결정이었고,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역사가 나를 평가할 것이다. 허나 심판하진 않을 것이다.


 
최형주 전 마라우타 연방 공화국 대통령

2018년 9월 29일 최형주(崔衡周) 마라우타 연방 공화국 전 대통령(2대)이 서거하였다. 스리랑카 사회주의인민공화국의 콜롬보 병원에서 별세한 것으로 마라우타 통신은 속보로 보도했고 같은날 정식 기사가 나왔다. 에리히 델프트 정무위원장은 그와 정치적으로는 대척점에 있지만 마라우타의 산 증인으로서 그가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마라우타의 한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것과 같다며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에리히 델프트 위원장은 최형주 전 대통령의 유가족을 마라우타 인민연방으로 입국하여 보호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하였다.

최형주 전 대통령은 1938년 대부여국 고려주 황해부 평산에서 출생하였고, 역사적으로는 '독재자'와 '수습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연방 수립이전의 부탄 왕실의 집사로 지냈고 제1공화정인 마라우타 연방 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초대 대통령인 나탄 마샤의 비서실장이었다. 이후, 진보통합연대를 구성하며 정치적 저변을 넓혀가며 제1공화정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마라우타의 6가지 정신 중 '민족'을 '민주'로 변경하였다. 그 배경에는 민주주의를 중요하시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그의 정신이 담겨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행정명령(대통령령) 빈번하게 사용하였고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의 민주의 가치와는 정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른 쪽에서는 이러한 것이 마라우타의 당시 경기 침체를 부흥 시키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함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알 비에 기사에서 자유를 탄압한 폭군과 사회를 안정시킨 공이 뚜렷하다고 언급한 부분이 있다.

인민연방 압력을 받게된 사건은 마라우타 민주화 위원회의 활동 지지를 선언하고 나서 부터이다. 에리히 델프트 위원장이 가장 고심하는 단체인데, 이때 최형주 전 대통령이 이 단체에 대해 지지를 선언하면서 정무위원장과 최형주 전 대통령 간의 간극은 더 커졌고 입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러한 입국금지 조치로 조국의 땅을 못 밟고 사망하였다.[7]

그의 장례는 유가족의 협의 끝에 5일장으로 사회장으로 치뤄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장례에는 레이 데 루카 외 정무위원단, 응웬 득 카이 UVN 대사 등 정치계의 여러 인물들이 참석하였다. 눈길을 끌고 있었던 것은 정계에 은퇴하고 칩거하고 있었던 무함마드 이브라힘 전 대통령(6대)이 참석한 부분이다. 무함마드 이브라힘 전 대통령은 최형주 전 대통령의 장례의 폐식 연설을 맡았다.

폐식연설에서 그는 고인의 죽음에 대해 비통하다는 말로 시작하였다. 조용히 추도사를 낭독한 뒤에 그리고 추가로 할 말을 하였다. "마라우타는 우리가 꿈꿔온 '무지갯빛의 나라'가 아님을 실감한다. 마라우타는 빨갛지 않다. 덧붙여서, 최형주가 꿈꿔온 뜻을 동지로서 이어가겠다는 상징으로라도 인민영웅 칭호를 거부하려 한다." 라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는 언론의 질문 세례를 피하기 위해 황급히 식장을 떠났다. 그의 연설을 들은 자유공화연합에서는 박수 갈채가 나왔지만 인민당 지지자들은 그에게 야유를 퍼붓기도 하였다.

최형주 전 대통령 장례식에 또 다른 유명인사가 참석했는데 바로 에리히 델프트 정무위원장이다. 앞서 정무위원단을 조문단으로 파견하여 그의 참석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 것과 달리 그가 장례식 마지막날에 직접 참석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위원장은 추도사를 하며 인민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 고인의 업적을 치하하였고 현재의 마라우타의 상황에 대해 일부 자아 반성을 하기도 했다. 인민당 지지자는 자신의 잘못이라며 눈물을 보이는 지지자도 있었다. 하지만 자유공화연합 측은 팔짱끼고 조용히 앉아 있거나 일부는 자리를 뜨기도 하며 거북한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에리히 델프트 위원장은 말을 이어가면서 "일부 반동분자들과 자본주의 사상에 찌든 이들이 최 동지의 사망 이후, 그를 팔아서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하면서 격정적인 어조로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일부 출판사[8]와 언론들이 그를 찬양하는 모습이 흡사 우상숭배와 다를바 없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인민이라면, 누군가를 극단적으로 따르고, 그를 우상시하는 것을 끔찍하게 여겨야 한다. 그러나 현재 이를 깨닫는 이가 없다는 것을 통해, 우리 인민의 맑은 사상을 누군가 더럽히고 있다는 너무나도 슬픈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장례식 후에 최 전 대통령에 대한 찬양적 서적과 기사에 대해 검열을 강화할 것을 지시하면서 최형주 전 대통령 세력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이와 별개로 최형주 전 대통령 죽음을 추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ANM은 정규방송을 줄이고 특별방송으로 편성하였다. 마라우타 가톨릭협회최형주 전 대통령에 대한 위령미사를 진행하였다.

마라우타 통신, <속보> 최형주 前 대통령, 금일 서거… "콜롬보 병원에서 타계"
마라우타 통신 델프트 정무위원장 "최동지 사망에 안타까워"
알 비에, '독재자' 최형주 타계
시민의 소리, 나탄 마샤의 후계자, 서거하다!
마라우타 통신, 정부-유가족 극적 타결… "최 前 대통령 장례 5일장, 사회장으로 치뤄질 것
알 비에, "고인의 서거에 애도할 뿐"
마라우타 통신, 델프트 정무위원장, 최 前 대통령 장례식 참석
알 비에, "마라우타는 빨갛지 않다.", "인민영웅 칭호 거부하겠다."
마라우타 통신, "고인팔이 정치만큼 혐오스러운 것 없어"

마라우타 인민연방 헌법 제정

2018년 9월 28일, 마라우타 인민연방 조국재건위원회는 마라우타 인민연방의 헌법 초안을 발표하며, 인민의회에 발의하였다. 초안은 전문(前文)을 포함하여 1장에서 10장 그리고 총 제133조로 작성되어있다. 인민 총 궐기 이후 제3공화정이 선포되었지만 기존의 법으로 정해지지 않은 불문법으로 운영하던 통치체제를 성문법으로 명확하게 한 것이다.

헌법 내용에는 주권 및 주권보호, 영토, 국내법과 국제법 관계, 통치체계, 공무원, 사회주의 경제제도, 언어 및 문화, 마라우타 6가지 정신, 인권 및 인민의 관한 권리와 의무, 국군(마라우타 인민 평화군), 국회(인민의회, 전국인민대표자회의), 정부(정무위원장, 정무원), 사법성 및 법원, 선거관리, 지방자치, 헌법의 개정 사항을 기술하고 있다.

같은 날 인민의회가 개회되었고 많은 인민들이 참석하여 자신의 의결권을 행사하였다. 압도적인 찬성 표를 얻어 개헌에 성공하였고 마라우타 인민연방은 제3공화정 수립 이후로 처음으로 헌법을 제정하게 된다. 헌법 제정 이후 중앙정무위원회는 헌법에 따라 명칭이 '정무원'으로 변경되었으나 정무위원이라는 직책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또한 정무위원장과 정무위원은 헌법 제정 이후 부터 정식으로 임기가 시작되었고 공식화 되었다. 정무위원장의 임기는 2년이며, 정무위원의 임기는 6개월이다. 정무위원장과 정무위원은 전국인민대표자회의에서 신임 의결을 하면 연임이 가능하다.

전국인민대표자회의에는 정무위원들은 당연직으로 상원의원을 겸하며 인민의 사회당 정치국은 정무위원 외에 상원의원을 호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 외에 직능단체에서 선출된 직능대표와 지역에서 선출된 지역대표로 구성된다.

에리히 델프트 정무위원장이 2018년 9월 30일 헌법을 공포하면서 공식적으로 마라우타 인민연방 헌법(인민헌법) 제정 절차가 마무리 되었다. 매년 인민헌법제정일을 기념하여 여러 행사가 열리고 있다.

주석

  1. 여담으로 왕실 학살 사건 이후 데브야니 라나는 영국으로 떠났고 얼마 안되서 인도에서 결혼 한 것으로 전해진다.
  2. 라싸의 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일로 제정되었고, 피의 강토크일처럼 정부 주관으로 추모 행사를 한다.
  3. 한빛민주공화국의 경우 해당사항이 없는 이유는 이미 실질적으로나 법률적으로 독립한 지 오래되었고, 독자적인 세계관과 세력권을 구축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바 제안에서는 우선 제외하였다. 다만 한빛 측의 요청 사항이 있을 경우 자유로이 가입과 탈퇴를 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겨두었다.
  4. 마로트화 454,023,000 규모, 2019.06.02. 환율 151,431마로트 기준
  5. 마로트화 151,431,000 규모, 2019.06.02. 환율 151,431마로트 기준
  6. 불법당은 티베트와 부탄 지역에서 유명한 정당이며, 종교정당으로서는 큰 규모의 정당 중 하나이다.
  7. 그(최형주)가 타계하기 전 이미 입국금지 조치는 해제되었으나, 병환이 너무 위독해 입국할 여력이 되지 못했다.
  8. 고토쿠 하루키, 『희말라야의 어둠의 속에서』, 하늘미르 출판사,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