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석

정문석
鄭雯奭
정문석프로필.png
이름정문석
국적Wubon flag.png월본
출생일1972년 07월 27일
출생지월본 조번도 신번연구 신수보2촌
신체정보175cm, 59kg
혈액형A형
본관대정 정씨
27세손 '雯'자 항렬
학력신수보소학교
신수보중학교
남량고등학교
경당대학 기계공학 학사
경당대학 경영공학 석사
직업기업인, 정치인, 예능인
가족배우자
슬하 2남 1녀
종교개신교
성향중도보수, 실용주의
소속 정당월본태보당 상징.png월본태보당
의원 선수3
의원 대수2, 3, 4, 5
경력NP Gruppe 회장
前 월본 부총리
월본태보당 임시총재
월본국토교통설정위원
월본 의정의원
월본 경제산업성 대신
前 월본 조번도지사
대부여 대전광역시
서명Munsekisign.png

정문석(鄭雯奭, 1972년 7월 27일~)은 월본 출신의 사회운동가, 기업인, 정치인이다. 1992년 현 NP Gruppe의 모태가 되는 엘리멘탈공업을 설립하였고, 2006년 8월 NP Gruppe로 개칭하였다. 11년 5월경 상장하여 주식회사로 등극, 약 5년 만에 NP Gruppe의 위치를 대기업으로 끌어 올리는데에 성공한다. 2018년 3월경까지 페레이션의 총리를 역임하였으며, 2018년 6월부터 월본 국토해양성의 대신으로 재임 중이다.동년 8월, 모창민(월본) 총리 취임 이후 자유민주당 부총재 및 경제산업성 대신으로 임명되었으며, 월본 제 4대 부총리에 취임한다. 2019년 3월, 자유민주당 당수직을 사임하고 월본태보당을 창당, 당수를 역임 중이다.

생애

유년기

1972년 7월 27일 월본 신수보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으로 정문영 NP Gruppe 대표이사와 동생으로 정문정 대정대학교 총장을 두고 있다. 신수보초등학교-신수보중학교-남량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91년 경당대학교 신세대기계공학과에 입학하여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1996년 경당대학교 경영공학과 입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경당대 대학원 1년생이던 1996년에는 현 NP Gruppe의 전신이 되는 엘리멘탈공업을 설립하였다.

엘리멘탈공업 시절

엘리멘탈공업은 당시 건설기계 제작과 중공업을 하는 회사였으나[1], 90년대 후반부터 '밀레니엄' 정보화 흐름이 가속화되며 중공업 분야에서 진입 3개월 만에 철수하고 엘리멘탈전자[2]에서 피처폰을 내놓았으나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에는 세계 경제 상황이 좋지 못했는데, 이 때 쓰라린 실패를 겪고 나서 해외의 게임기나 휴대폰 등등 웬만한 기기들을 닥치는 대로 분해,조립하면서 연구에 매진한다. 공장설비가 멈추어 수입이 들어오지 않아 대출금도 상환하기 어려웠을 때, 마지막 카드도 영 시원찮아 최후의 보루로 내놓은 게임기가 월본의 어린이들 사이에서 크게 히트하는 한편 메시지 단축번호 기능을 도입한 휴대폰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어 순식간에 벼락부자가 되게 된다. 정문석 본인은 이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라고 훗날 회고하였다.

사회운동가로서의 정문석

사회운동가로서의 정문석은 당시 '국민폰' 보급운동을 주도하였다는 점에서도 사회운동가로 평가되나, 2008년 경부터 불황이 시작되자 취약계층 지원과 자선구호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이유는 어려운 시절에 살았던 본인의 어릴 적 기억이 되살아나선 안 된다라고.

NP Gruppe 회장으로서의 정문석

그는 엘리멘탈전자 국민폰 보급의 경험을 되살려 낮은 가격, 좋은 품질, 사용자의 만족을 우선하고 있다. 믿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기업의 사명이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2006년 엘리멘탈공업의 이름을 NP Gruppe로 개칭하고, 11년 상장하여 중심이 되는 NP Gruppe는 지주회사 겸 그룹 전체를 통칭하게 되며, 하위 회사들은 계열사로 분류되는데 재계에서는 사실상 NP Elektronik이 지주회사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평. 월본 내수 경제 회복에 최선을 다하고자 이익을 최대한 줄였으나 원자재는 계속해서 좋은 품질의 것을 사용하였다. 가격을 올릴 때에는 올릴 이유를 상세히 공시하며 올리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밝혔는데 NP 제품 특징이 처음 출시 이후 가격을 잘 내리지 않아 가격 인하는 크게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3] 이러한 행보와 경당대학교의 권위를 크게 신장시키는 대외활동 전개로 경당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정치인으로서의 정문석

당시 다국적기업이었던 NP Gruppe였던 만큼, 정문석 역시 다양한 국가에서 정치를 해왔다. 2017년에는 페레이션에서 중도정당 허당을 창당, 이후 총리로 재임하였으며 2018년 초에는 대부여국 부여미래당에 입당하였으나 탈당하였다. 동년 7월 경에는 하늘미르 왕국의 경제부 장관을 지내기도 하였다. 정문석 본인은 그래도 월본이 가장 심적 휴식처다라며 월본에 대해 아끼는 마음을 지속해서 드러내고 있다.

18년 초에는 월본 국토해양성 장관을 맡게 되었으며 구창모(월본)총리의 권유로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였다. 동년 8월 경, 부총재로 취임하였으며, 모창민(월본)총리 내각에서 내각부총리를[4]맡게 되었다. 이후, 월본 경제산업성 역시 겸직하여 재계에 그의 입김이 막강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현재는 월본 철도 설정 개편에 전념 중이며 예상과 달리 범 친기업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발언 스타일은 대체로 직설적이다. 이에 페레이션 총리 재임 시절 폭격기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으며, 정책은 진보적이나 안보나 경제 면에서는 보수적 색채를 띠고 있다.[5] 업무에 대해 사명감이 강해서 상대 세력을 물어뜯을 때에는 과감한 각오로 임한다고 한다.

19년 1월에는 대부여국 대전시장 연임을, 19년 2월에는 자민당 부총재를 연임하게 되었다. 정문석 본인은 '월본과 대부여 두 곳에서만 활동할 계획'이라고 향후 거취를 밝혔다. 이후 여름에 가국 은퇴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언급하였다. 현재는 자민당을 탈퇴하고 월본태보당 당수로 재임 중.

이야깃거리

  • 예능 프로라던가 이런 부분에서 자주 모습을 비춘다. 딱딱한 기업인, 정치인 이미지는 아니라는 평. 발언도 가벼울 때는 몹시 가볍다. 본인 말로는 최대한 진지한 모습은 줄여나가려고 노력 중이라고 한다.
  • 조금만 친해지면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 성격이다.

평가

긍정적

친기업의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가[6]
그는 기업이 월본을 살릴 키워드라고 믿고 있는 듯 하다. 관용을 내세우고, 업무에 착실히 임하므로 공직자의 자세가 맞다고 여겨진다. 또, 그는 '쉬운 월본'으로 진입장벽을 낮출 것을 주창하는데, 이에 대해 일부 반대 의견이 있기도 하였으나 곧 효과가 증명되며 그러한 여론은 사그라들게 된다. 월본 자민당에서 온건파 인물이었다. 때문에 당내에서 영향력은 있지만 무미건조한 인물로 보이고 있다. 본인이 이 글을 쓰려니 참 묘하다.

부정적

폭탄
그의 언행은 욕설과 비속어를 최대한 자제하는 편이나 대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이 들어가 논쟁을 할 때에는 조심스럽지 못하고 예의를 갖추지 못한다는 평이 있다. 또, 정책을 쉽게 발표하지 않고 최종적으로 승인된 건만 발표하다 보니 이미지 행정 면에서는 부족한 면이 많다고 평가되고 있다. 본인은 고치려 노력 중이라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최근 들어 광폭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 전에는, 이 때문에 일부 정치인들로부터 일을 하지 않는다고 공격당하기도 하였다.

선거 이력

일시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당선 여부비고
2018.7제2대 월본 국회의원 선거자유민주당11 (52.4%)당선 (비례118번)
2018.10조번도지사 선거자유민주당17 (68.0%)당선 (1위)
2018.11제3대 월본 국회의원 선거자유민주당18 (47.4%)당선
2018.12조번도지사 선거자유민주당26 (59.09%)당선 (1위)
2019.2제4대 월본 국회의원 선거자유민주당7 (77.78%)당선

각주

  1. 이 자본력에는 부모님의 지인의 영향이 있었다.
  2. 현 NP Elektronik의 전신
  3. 애초에 NP Gruppe는 박리다매 형식의 사업구조를 취하고 있다. 만약 더 내린다면 그게 더 무섭다.
  4. 모 총리는 경제부총리로 언급하고 있다.
  5. 하지만 그가 최근 보여주었던 다양한 정책 구상은 보수적이지 않아 진보 인사로 분류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많다.
  6. 정문석이라는 사람 자체는 월본 설정을 떼고 기업모의전 출신인 만큼, 기업에 대한 사랑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