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가상국가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월 13일 (토) 23:57 판 (→‎개요)
12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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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12사도 중 1사도
베드로 | Pet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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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황
출생
기원전 1년 전후 추정
로마 제국 시리아 속주
사망
서기 67년 전후
또는 서기 68년 전후 (향년 33세)
로마 제국 로마

목차

개요

모두들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1]
-요한복음서 21장 15절(공동번역)

예수 그리스도12사도 중 첫 번째 사도이자, 예수 사후 1세대 교회를 지도한 인물이다. 또 다른 사도로 전해지는 사도 안드레아스의 형이다.

이러한 베드로의 중요성 때문에 가톨릭에서는 그를 초대 교황으로 보며, 개신교에서도 교황들이 베드로를 '계승'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지만, 베드로가 1세대 교회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사도였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신약 성경과 복음서에서 비중이 큰 인물로, 특히 복음서에서 계속하여 이름이 명시되어 언급되는 극소수의 인물 중 한 명이다. 나오는 횟수도 사도들 중 가장 많은데, 사도행전만 해도 사도 바오로를 제외하면 베드로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비유된 당사자이다.

신약에 반영된 서로 다른 계통의 전승들이 공통적으로 베드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바울로가 전해준 전승에 의하면 부활한 예수는 베드로, 열두 제자, 500명의 교우, 야고보, 기타 사도 순으로 발현하였다.(1고린 15장)
    • 바울로가 창설한 이방계 교회를 위해 저술한 루가 복음서-사도행전의 저자는 (넓은 뉘앙스의 단어인) '사도'를 12제자에게로 한정하고 이들의 대표로 베드로를 묘사한다. 또한 사도행전에서 바울로를 베드로와 평행 인물로 그리는데, 이 두 책이 바울로가 창설한 교회들을 독자로 염두에 뒀음을 감안하면 강조점은 "베드로만큼이나 엄청난 바울로"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 로마 지역의 이방계 교회에서 저술된 마르코 복음서는 (제자들의 부족함을 강조하긴 하지만) 베드로를 제자들의 대표 인물로 그린다.
  •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의 유대계 교회에서 저술된 마태오 복음서는 베드로를 교회를 떠받치는 반석으로 그린다.(마태오 16장)
  • 유대계 교회에 속하지만 독특한 성격이 강한 요한계 전승에선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를 제자단의 가장 중요한 두 인물로 묘사한다. 여기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요한계 전승 집단과 관련됨을 고려하면 서술 의도는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만큼이나 엄청나다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곧 서로 다른 계통의 전승들이, 공통적으로 베드로의 중요성을 당연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황권에 대한 가톨릭과 개신교의 해석 차이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초대 교회의 최중요 핵심 인물에 속한다는 건 성서학계에서 이견의 여지가 없다.

유대인들, 정확히는 '할례받은 사람들'의 사도로 '이방인의 사도'인 사도 바울로와 대비된다. 그리스도교, 특히 가톨릭에서 가장 중요한 성인 중에 하나다. 가톨릭에서는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간주하며, 정교회 역시 역대 로마 교황들을 베드로의 후계자로 인정한다.[2] 축일은 사도 바울로와 같이 6월 29일이다. 반드시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더라도, 대체적인 일반인들의 인지도도 이스카리옷 유다 다음으로 높은 편이다.

상징물은 열쇠.[3] 이유는 후술할 마태오 복음서의 내용 때문인데, 물론 다른 상징물도 많지만 열쇠는 성 베드로만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회화나 조각 등에서 열쇠를 들고 있는 성인이 있다면 100이면 100 성 베드로이다. 그래서 성 베드로 성당의 광장 역시 열쇠 구멍 모양으로 디자인되었다. 가톨릭 입장에서는 초대 교황이기 때문에 삼중관과도 연관이 있기는 한데, 삼중관은 교황 출신 성인들의 공통된 상징이기 때문에 알아보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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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바스코 페르난데스[4], 1506년, 패널에 유채, 그랑 바스코 미술관, 비제우

성격이나 행적, 그리고 전승에서의 최후를 보면 공자의 제자인 자로와 닮은 구석이 있다. 둘 다 스승이 으뜸으로 꼽은 제자였으며[5] 스승과의 친분또한 두터웠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모두 거칠고 성급하고 솔직했다. 둘 다 섬기던 스승을 위해 싸웠던 적이 있으며, 둘 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생을 바쳤다.


  1. 원문(UBS GNT5):"Ὅτε οὖν ἠρίστησαν λέγει τῷ Σίμωνι Πέτρῳ ὁ Ἰησοῦς, Σίμων Ἰωάννου, ἀγαπᾷς με πλέον τούτων; λέγει αὐτῷ, Ναὶ κύριε, σὺ οἶδας ὅτι φιλῶ σε. λέγει αὐτῷ, Βόσκε τὰ ἀρνία μου."
  2. 정교회는 가톨릭의 사도 전래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며, 교황의 수위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이의를 제기할 뿐이다. 현재 세계 정교회를 대표하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베드로의 형제인 사도 안드레아의 후계자로 간주된다.
  3. 그냥 열쇠도 아니고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다. 어디에서든 잠근다면 천국의 문은 잠길 것이고, 어디에서도 풀어내면 천국의 문이 열린다고.
  4. 그랑 바스코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5. 물론 자로의 경우에는 정말 우수한 제자였기 때문이라면 베드로의 경우에는 정확한 이유는 등장하지 않아 여러 신학적인 해석이 존재한다. 베드로의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지식하고(예수가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위 좌석이 아닌 끝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하니 그걸 그대로 실천했다), 물론 후에 배반했으나 충직했던 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