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세계 4대 주요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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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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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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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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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불교 佛敎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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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불교기 법륜
계통 인도-이란 계통 종교
└ 인도 계통 종교
유형 이신론(자연종교)
창시 창시자 석가모니
창시 시기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5세기경
지역 성도
주요
신앙 지역
전 세계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일대
규모 신도 약 5억 7천만 명 (세계 4위)
경전 불경

개요

불교(한자:佛敎) (영어:Buddhism) (도그리어:बौद्ध धर्म)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고, 불경경전으로 삼는 종교이다.

종교라는 한자어를 맨 처음 만들어낸 종교이기도 하다. 유교, 도교, 경교 등이 모두 부차적인 가르침이고 불교가 으뜸 가는(宗) 가르침(敎)이란 뜻으로 표현한 데서 시작되었다.[1]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다음으로 교세가 크며, 절대자로서의 을 섬기지 않는 종교 중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2]

핵심 교리

自歸依法歸依自燈明法燈明
(자귀의법귀의자등명법등명)
"스스로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라. 스스로를 진리의 등불로 삼아, 그 진리에 의지해 살아가라.”
대반열반경에 실린 석가여래의 마지막 설법

무아(無我)

'아트만'이 없다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 an-atman 의 번역어로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교리이다.[3] 불교의 가르침의 시작이자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숫타니파타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4장에도 언급된다.

‘이것은 내 것이다.’ 또는 ‘이것은 어떤 다른 자의 것이다.’ 하는 생각이 없다면,
내 것이라는 것이 없으므로, 그는
‘나에게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습니다.
숫타니파타 4장의 15.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 대한 경(attadanda sutta)

'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우연한 사고나 세월이 변함에 따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 괴로움이 생긴다.

우리는 내 몸을 항상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죽으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건강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재산, 사회 등의 모든 것이 마찬가지이다. 내 마음대로 되길 원하지만, 현실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다수이다. 한때는 '내 것' 이었던 것들도 언젠가는 '내 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된다.

언젠가 상황이 변해, 보내 주어야 할 때가 오면, 붙잡지 않고 보내 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

변(變)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내 것' 또한 변해가며, 변해가는 '내 것'에 괴로워한다. 삼법인에서 제행무상, 아함경의 '무상-고-무아' 등이 여기에 해당. 근본 불교에서도 무아와 연결하여 기본적으로 설명하였다. 이후 연기에 적용되어 여러 변화의 기본이 된다.

탐진치(貪瞋癡)

괴로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될 3가지 악덕인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말한다. 이 역시 가장 오래된 가르침 중 하나이다. 숫타니파타에서 그 원형을 알아 볼 수 있는데 요약하자면

  • 동굴에서 떠나라. 스스로가 "좋다"고 생각한 것에 머물려고 하는 마음가짐을 '동굴'에 비유하였다. 동굴 속 '익숙함'과 '편안함'에 취해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지만, 결국 언젠가 상황은 변하고 가진 것을 잃어버리게 되므로 심한 괴로움을 느낀다. 아무리 괴로워도 '이때까지의 익숙했던 상태'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상황이 다시 좋게 바뀌길 하염없이 기다린다.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괴로움은 심해지나, 이때까지 했던 것들이 생각나서 동굴을 떠나지도 못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대로 계속 괴로워하든지', 아니면 '변해버려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버리고 자기 인생을 살든지' 하라는 것이다. 건강에 대한 슬픔과 자신의 재산,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의 사랑, 사회생활, 사람의 죽음에 대한 걱정도 동굴에 해당된다.[4][5][6]
  • 내가 옳다고 남을 비난하지 마라. 내가 옳다고 여겨서 '나는 이렇게 한다'고 뽐내면서 가르치거나, 그렇게 하지 않는 다른 사람을 비하하지 말라'는 것.[7] "내가 옳다"는 생각이 들면, 남에게 반드시 말하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싸움이 일어난다.[8]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 "내가 틀렸다"는 것을 옳다고 여겨, 스스로를 비난하며 '자신의 일'이나 '실패 후 새로운 시도' 자체를 포기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스로가 스스로와 싸우는 셈)
  • 결점 없는 완벽한 순수를 찾지 마라. 보고 듣고 느껴지는 그 어떠한 진리나 가르침에도, 결점없는 완벽한 순수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점 없이 완벽하고 순수한 깨달음이 있다고 믿어서, 그 깨달음을 묻고 다니며 찾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따름이다. 그것이 진리라고 해서, 종교적 가르침이나 삶의 깨달음이라고 해서, 그 말을 따르거나 하진 말아야 한다. 설사 완벽하고 순수한 진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자신 스스로가 그러한 완벽한 순수를 구현해내기란 불가능하고, 삶을 더 괴롭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완벽한 순수를 찾았는데, 완벽을 추구하여 도리어 괴로워진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니, 이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삶은 애초부터 괴로움에서 떨어질 수 없는 것인데,[9] 왜 괴로움이 없는 삶(진리)이 있다고 믿어 그것을 찾아다니는 것인가? [10][11]
  • 최고를 생각하곤 비교하지 마라. 어떤 것을 최고라고 생각하면, 최고가 아닌 다른 것을 볼 때는 '수준이 낮다'며 비교하게 된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어떠한 것에도 "최고"를 두지 말라는 것. '좋아하는 것'을 두게 되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 지고, 여기에 매달리게 되어 집착이 되므로 괴로워진다. 이렇게 비교는 집착의 씨앗이 되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이다. [12]
차례대로, '가진 것'에 대한 집착, '견해'에 대한 집착, '결점(완벽)'에 대한 집착, '더 좋은 것'에 대한 집착이다.[13] 여기서 앞의 3가지가 탐진치(탐욕, 성냄, 어리석음)에 해당한다.

명상(冥想)

명색(名色)

오온(五蘊)과 행위(카르마)

연기(緣起)

공(空)

유식(唯識)

이타심

상징과 신(神)

결단

현실

종합

각주

  1. 다른 종교들(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믿음을 제1의 가치로 두는 모습'을 종교의 기준으로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교의 철학적 가치에 중점을 두는 이질적인 면모에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이 올 수 있으나, 둘 다 으뜸 가는(宗) 가르침(敎), 즉 종교(宗敎)이니 딱히 틀린 번역은 아니다.
  2. 석가모니 및 부처는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에겐 그저 '불교에서 믿는 신'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불교 교리상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최종목표 해탈까지의 과정을 안내하는 일종의 선배멘토에 가까운 존재다.
  3. 없다를 의미하는 an- 이 무(無)로 번역되었고 atman은 我로 번역된 것이다. 아트만은 '변하지 않는 나', 즉 '영혼'을 의미하므로, 안아트만인 무아는 '변하지 않는 나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의어는 아트만, 진아(眞我)다.
  4. 탐진치에서 말하는 "탐욕"의 원형이라 볼 수 있다.
  5. 집착의 뜻과 같다. 집착은 한자로 '잡을 집', '붙을 착'. 즉, 딱 잡고 붙어 있다는 뜻. 따라서 동굴에서 떠나라는 말은 '집착을 버려라'는 말과 같다. 잡지 말고 놓아버리고 붙어 있지 말고 거리를 두라는 것. 도망칠까봐 개에 목줄 걸고는 죽을 때까지 줄만 잡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목줄을 풀고 개가 스스로 다가오는지 아닌지를 시도해 볼 것인가? 놓는다고 다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거리를 둔다고 개가 도망을 칠거라곤 볼 순 없다. 도망치느냐 아니냐는 내가 개한테 어떻게 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지, 개는 다 죽어가는데 개 목줄만 잡고 있을 것인가? 삶 역시 '절대로 이것만은 놓칠 수 없다'며 붙잡고 있지만, 놓아버려야 비로소 '괴로움'에 변화가 시작된다.
  6. 괴로움이 심해지면 놓아야 될 때인 걸 알고 놓을 줄 알아야 되는데, 해온 게 아까워서 놓을 줄 모르는 것이 '집착'이다. 즉, 과거에 좋아했던 것들이 점점 변해서 이젠 내가 원하는 것이랑 다른데도 불구하고 보내주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7. 여기서 옳음은 자기만의 옳음을 뜻한다. '자기만의 옳음'으로 다른 사람을 비하하지 말라는 것. 하지만, 사회적으로 합의된 옳음으로 다른 사람을 비평하는 것까지 하지마라는 것은 아니다. 불교에서는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논하는 것들이 많다.
  8. 탐진치에서 말하는 "성냄"의 원형이다.
  9. 일체개고(一切皆苦): 모든 것은 괴로움이다.
  10. 탐진치에서 말하는 "어리석음"의 원형이다.
  11. 이는 알베르 카뮈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계속 묻는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면 결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12. 탐진치에는 해당사항이 없으나, 숫타니파타에서는 언급된다. 원래 탐진치는 4개였는데 후대에 전해지면서 가르침도 미묘하게 변하고 그중 하나는 빠져버리게 된다.
  13. 이는 최근에 팔리삼장(니까야) 보다 더 오래된 원본이 발견된 『현겁경』에서 "마음에는 네 가지 병이 있다. 첫째는 탐내는 마음과 음욕이고, 둘째는 성내고 미워하는 것이며, 셋째는 어리석음이고, 넷째는 아만심이다."라고 말한 것과 비슷하며 첫째, 둘째, 셋째는 탐진치에 해당된다. 또한 12연기 중 4취(욕취(欲取) · 견취(見取) · 계취(戒取) · 아취(我取))와도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