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본/역사/전자 정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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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본정부.png
세이쇼 시대헤이모리 시대세이카 시대메이우 시대
나호진 정부구창모 정부모창민 정부육성준 정부이성하 정부민주우 정부
월본정부.png
공식 명칭월본 내각
The Government of Wubon
내각총리대신민주우

월본국의 정부. 월본의 국가행정 조직으로 구성되며 내각 총리대신이 대표한다. 자세한 정보는 월본/정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월본 정부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현재 인력난으로 거국일치내각을 유지하고 있다. 1대 나호진 총리 이후로 줄곧 자유민주당이 계속 정부살림을 해왔으나 여러가지 문제와 이슈 등으로 현재는 월본의 미래 민주우총리가 정권교체를 했다. 구창모 게이트 사건으로 겨우 정권교체를 한 민주우 총리가 취임 일주인만에 사임을 하려했으나 사태 수습을 위해 사표를 기각하고 복귀하였다.

나호진 정부

가상국제연합 가입(18-01-21)이전 소소하게 굴러가던 시기였다. 나호진 총리는 한달 가량의 총리 직무 수행 후 돌연 사퇴하였다.

구창모 정부

가상국제연합 가입 이후 본격적인 가국계 인물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구창모 정부는 재임 기간 중 보편적인 카페 가상국가의 틀을 월본에 적용시켜 나갔고, 세밀한 설정을 구축해 나가기 시작했다. 초기 가국련으로부터 유입이 이어질때 친 구창모계열이나 자민당으로 집중되었기에 후대 6대까지도 월본 정치계는 불균형으로 인한 여러 문제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2대, 3대 정부에 시너지가 가장 컸던 이유는 창작계 동력을 구창모 당시 총리가 잘 활용하여 정부를 잘 이끌었다고 판단한다. 월본 국민들은 이 시대를 가장 풍요롭던 시기로 평가하고 있으며 이후 동년 7월 구창모 총리의 건강상 문제로 인해 총리직에서 사임하고 불출마 선언을 하게 된다.

모창민 정부

확장 외교를 주요 성과로 꼽는다. 다양한 플랫폼의 국가와 수교를 맺고 동맹관계를 넓히는 등 외교부문에서는 역대 정부들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볼수있다. 하지만 수교만 맺어지고 후속 교류가 없다시피하고, 경제부문에서도 모창민 노믹스와 기업인 간담회 등 진행은 좋았으나 역시 실행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렸다.

육성준 정부

모창민(이맹박)정부 말기, 모창민(이맹박 분)의 가상국제연합 사무총장 출마 및 당선에 따라서 월본국 총리를 사임하게 되어 후임으로 육성준 총리를 추대했다. 당시 야당은 구창모-모창민-육성준으로 이어지는 총리 세습현상에 대해 비판을 제시하고 육성준 총리가 하는 일이 없다고 비판하는데, 이에 대해 육성준 총리측은 반발하며 여야정쟁이 심화되고 있다. 마유이(구창모 분)와 사적인 대화에서 국내 순위권 기업과 영구집권, 특정 야당 해산 등의 내용이 폭로되어 지지율이 하락했다. 이후 돌연 가상국가를 접는다는 선언으로 긴급조치 1호가 발동되기도 했다.

이성하 정부

  • 재임 기간 : 6대 2019년 1월 23일 ~ 2019년 2월 20일
  • 선거 : 없음 (권한 대행 격)

전임 총리의 돌연 사임으로 내각 공백사태가 이어지자 황실에서는 당시 신임을 받던 이성하(구창모 분)을 총리 권한 대행격으로 임명하여 사태를 수습했다. 1개월 가량의 짧은 기간 이지만 일본 공상국가계와의 교류 체결하며 월본을 일본 공상국가계와 한국 가상국가계 접촉이 이뤄졌다. 또한 가상국제연합과 일본 가공국가연합(JAINA)와의 정상회담을 중재하여 2.17 공동 선언 발표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가공국가와 협력의 시대를 여는 새로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민주우 정부

육성준 전 총리의 여파가 이때까지 이어지고 있다. 월본 정계는 5대 이후로 기득 정치인외에는 이탈하여 인력이 매우 부족해진 상황이다. 자민당 발(發) 여러 문제가 겹치고 여론이 좋지 못하자 자민당 측에서도 민주우 총리를 지지하며 단독 총리 후보에 올라 당선되었다. 전임 이성하 총리의 의견에 따라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 구성하여 위기관리하기 위한 '거국일치내각론'에 찬성했다. 취임 1주일만에 구창모 게이트 사건이 발생하여 의정원 내부에서 논쟁 중 사임을 표했지만 정국 혼란 사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혁명공산당의 어처구니 없는 안건 발의에 반발하여 의회를 해산했고 그 충격 여파로 며칠 업무 복귀를 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