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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상'''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천원군( 지금의 천안시 )에서 태어났다. 중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였고, 졸업 후에는 여의도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10년 정도 근무하였으며, 한나라당 당적으로 서울시의원에 당선되었으나 한국에서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며 하늘미르로 귀화하였다.
 
'''조윤상'''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천원군( 지금의 천안시 )에서 태어났다. 중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였고, 졸업 후에는 여의도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10년 정도 근무하였으며, 한나라당 당적으로 서울시의원에 당선되었으나 한국에서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며 하늘미르로 귀화하였다.
  
===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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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던 그는 [[하늘미르 국가사회주의당]]이라는 정당에 입당하였다. 이곳은 '김윤문(한비자씨의 부계인 것으로 밝혀졌던 계정)' 씨가 당대표로 있던 곳으로, 윤상은 이 정당을 통하여 하늘미르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그 후 누오로 관구장에 당선된 조윤상은 김윤문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당의 대표대행을 맡게 되었고, [[한비자]]와 [[이맹박]]의 보수성향 신당이었던 '''공화당'''을 만드는 데 합의했다.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던 그는 [[하늘미르 국가사회주의당]]이라는 정당에 입당하였다. 이곳은 '김윤문(한비자씨의 부계인 것으로 밝혀졌던 계정)' 씨가 당대표로 있던 곳으로, 윤상은 이 정당을 통하여 하늘미르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그 후 누오로 관구장에 당선된 조윤상은 김윤문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당의 대표대행을 맡게 되었고, [[한비자]]와 [[이맹박]]의 보수성향 신당이었던 '''공화당'''을 만드는 데 합의했다.
  
==== 본격적인 정치, 잘못된 판단은 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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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정치, 잘못된 판단은 덤 ==
 
공화당의 디자인위원장을 맡으며, 공화당의 디자인을 비롯한 홍보ㆍ기획을 총괄하다시피 하였으며, 그가 만들어냈던 공화당의 총선 공약집은 준수한 퀄리티의 디자인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비자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탈퇴에 공화당은 흔들렸고, 결국 총리 후보 선출 및 지도부 조기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렸다. 그는 총리 후보 선출에 민창원을, 당 대표 선거에는 본인이 직접 출마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아 힘을 모았었다. 이 당시 민창원은 " 경선도 공천관리위원장이 총괄 한다. " 란 억지 아닌 억지를 통해 당원보다 국민의 비율을 높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경선을 이끌어가려 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창당 이래 역대 최대의 내분을 겪었고, 결국 총리 후보로는 [[이맹박]]이 선출되었다. 조윤상은 당시 최고위원에 당선되며 당직을 건지긴 하였다.
 
공화당의 디자인위원장을 맡으며, 공화당의 디자인을 비롯한 홍보ㆍ기획을 총괄하다시피 하였으며, 그가 만들어냈던 공화당의 총선 공약집은 준수한 퀄리티의 디자인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비자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탈퇴에 공화당은 흔들렸고, 결국 총리 후보 선출 및 지도부 조기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렸다. 그는 총리 후보 선출에 민창원을, 당 대표 선거에는 본인이 직접 출마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아 힘을 모았었다. 이 당시 민창원은 " 경선도 공천관리위원장이 총괄 한다. " 란 억지 아닌 억지를 통해 당원보다 국민의 비율을 높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경선을 이끌어가려 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창당 이래 역대 최대의 내분을 겪었고, 결국 총리 후보로는 [[이맹박]]이 선출되었다. 조윤상은 당시 최고위원에 당선되며 당직을 건지긴 하였다.
  
 
민창원과 조윤상은 탈당 후 신당 창당을 결심하며 민창원계 의원 70인과 함께 [[국민회의]]를 창당하였다. 짧은 역사의 정당이지만 많은 논란을 일으킨 이슈메이커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윤상은 국민회의 대표에 오르며 이맹박 세력을 비롯한 자유민주당을 공격하였으나, 다음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직에 출마하지 않으며 잠시 정치를 쉬었다. 조윤상이 정치를 쉴떄, 국민회의는 왕국의회 의장인 민창원의 1인 정당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는 "의회가 일좀 하게 해주세요" 라는 문구를 통해 '일하는 정당' 이란 이미지를 만들어 보려 한 것 같았으나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결국 국민회의는 합당을 통해 [[한울당]]이라는 새로운 세력으로 태어났고, 조윤상은 국민회의가 합당하기 전에 왕국의회 부의장직을 역임하며 남은 임기를 조용히 마쳤다.
 
민창원과 조윤상은 탈당 후 신당 창당을 결심하며 민창원계 의원 70인과 함께 [[국민회의]]를 창당하였다. 짧은 역사의 정당이지만 많은 논란을 일으킨 이슈메이커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윤상은 국민회의 대표에 오르며 이맹박 세력을 비롯한 자유민주당을 공격하였으나, 다음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직에 출마하지 않으며 잠시 정치를 쉬었다. 조윤상이 정치를 쉴떄, 국민회의는 왕국의회 의장인 민창원의 1인 정당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는 "의회가 일좀 하게 해주세요" 라는 문구를 통해 '일하는 정당' 이란 이미지를 만들어 보려 한 것 같았으나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결국 국민회의는 합당을 통해 [[한울당]]이라는 새로운 세력으로 태어났고, 조윤상은 국민회의가 합당하기 전에 왕국의회 부의장직을 역임하며 남은 임기를 조용히 마쳤다.
  
===== SBS의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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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의 시작 ==
 
한울당과 조윤상은 정치적 스탠스부터 매우 다른 정당이었다. 그는 한울당을 탈당하여 무소속 신분으로 남아 하늘미르 정계를 지켜보았으며, 딱히 정치활동을 하진 않았다. 그러던 중 앨런제국에서 SBS라는 이름의 방송국을 설립하며 언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SBS는 준수한 영상 퀄리티로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선거방송 프로그램인 '가뽕의 선택' 은 SBS의 영상미와 기술이 어느정도인지를 잘 보여주는 영상 중 하나다.
 
한울당과 조윤상은 정치적 스탠스부터 매우 다른 정당이었다. 그는 한울당을 탈당하여 무소속 신분으로 남아 하늘미르 정계를 지켜보았으며, 딱히 정치활동을 하진 않았다. 그러던 중 앨런제국에서 SBS라는 이름의 방송국을 설립하며 언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SBS는 준수한 영상 퀄리티로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선거방송 프로그램인 '가뽕의 선택' 은 SBS의 영상미와 기술이 어느정도인지를 잘 보여주는 영상 중 하나다.
  
====== 다시, 보수의 품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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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보수의 품으로 ==
 
[[하늘미르 왕국 제12대 총리선거]], 한비자 전 총리가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도전한 선거였다. 재건공산당 나노 후보 역시 만만치 않은 후보였다. 최고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재선거가 치뤄졌을때, 조윤상은 무소속으로서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한비자 캠프에 합류하였다. 한비자 후보의 슬로건들 중 하나인 ''''우리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한비자'''', ''''지키겠습니다 자유하늘미르'''' 를 만들었으며, 선거 공보물 등도 만들며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임하였고, 한비자 내각이 출범한 후 조윤상은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며, 한비자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창당한 전진당에 합류하였고, [[전진당]]은 [[하늘미르 왕국 제9대 의회의원 총선거]]에서도 승리하며 그는 다시 왕국의회에 진출하였다.
 
[[하늘미르 왕국 제12대 총리선거]], 한비자 전 총리가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도전한 선거였다. 재건공산당 나노 후보 역시 만만치 않은 후보였다. 최고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재선거가 치뤄졌을때, 조윤상은 무소속으로서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한비자 캠프에 합류하였다. 한비자 후보의 슬로건들 중 하나인 ''''우리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한비자'''', ''''지키겠습니다 자유하늘미르'''' 를 만들었으며, 선거 공보물 등도 만들며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임하였고, 한비자 내각이 출범한 후 조윤상은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며, 한비자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창당한 전진당에 합류하였고, [[전진당]]은 [[하늘미르 왕국 제9대 의회의원 총선거]]에서도 승리하며 그는 다시 왕국의회에 진출하였다.
  
======= 전진당의 대표가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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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진당의 대표가 되다 ==
  
[[조윤상.PNG|섬네일|당시 조윤상 후보의 전당대회 포스터|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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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윤상.png|섬네일|전당대회 당시 조윤상 후보의 선거포스터]]
  
 
의회의원 총선거 이후 열린 전당대회에서 조윤상은 타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승리하여 당 대표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비자 내각의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증가하며 자연스럽게 전진당과 한비자 내각의 지지율도 떨어져가기 시작했다. 지방선거를 몇일 남겨두지 않고 벌어진 일이기에 야당인 [[한울당]]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전진당 내부에서조차 예측했었다. 하지만 선거는 정반대였다. 전진당이 몰표를 받으며 한울당은 광역단체장 0석이라는 대참패를 당하였고, 샤르데나 민주당은 1석을 얻었다. 그 후 2018년 8월 9일, 그의 생일에 전진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의회의원 총선거 이후 열린 전당대회에서 조윤상은 타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승리하여 당 대표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비자 내각의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증가하며 자연스럽게 전진당과 한비자 내각의 지지율도 떨어져가기 시작했다. 지방선거를 몇일 남겨두지 않고 벌어진 일이기에 야당인 [[한울당]]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전진당 내부에서조차 예측했었다. 하지만 선거는 정반대였다. 전진당이 몰표를 받으며 한울당은 광역단체장 0석이라는 대참패를 당하였고, 샤르데나 민주당은 1석을 얻었다. 그 후 2018년 8월 9일, 그의 생일에 전진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8년 8월 9일 (목) 01:46 판

조윤상
조윤상 ( Jo Yoon-Sang, 祚胤想 )
거주지하늘미르왕국 칼리아리 특별시
성별모듈:Wikidata 622번째 줄에서 Lua 오류: attempt to index field 'wikibase' (a nil value).
국적하늘미르왕국 하늘미르왕국
본관풍양 조씨
학력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경력하늘미르 국가사회주의당 대표
공화당 디자인위원장
하늘미르왕국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국민회의 창당준비위원회 위원장
국민회의 대표
하늘미르 왕국 의회 부의장
하늘미르왕국 보건복지부 장관
전진당 대표
SBS 사장
하늘미르 왕국 의회 의원
정당전진당
종교무종교
부모아버지 조상해, 어머니 김말자
형제2남 1녀 중 장남
배우자없음

조윤상 ( 祚胤想, 1977년 08월 09일 ~ )은 하늘미르왕국의 정치인이자 SBS회장이다. 여당인 전진당당 대표하늘미르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했었다.

생애

조윤상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천원군( 지금의 천안시 )에서 태어났다. 중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였고, 졸업 후에는 여의도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10년 정도 근무하였으며, 한나라당 당적으로 서울시의원에 당선되었으나 한국에서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며 하늘미르로 귀화하였다.

정치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던 그는 하늘미르 국가사회주의당이라는 정당에 입당하였다. 이곳은 '김윤문(한비자씨의 부계인 것으로 밝혀졌던 계정)' 씨가 당대표로 있던 곳으로, 윤상은 이 정당을 통하여 하늘미르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그 후 누오로 관구장에 당선된 조윤상은 김윤문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당의 대표대행을 맡게 되었고, 한비자이맹박의 보수성향 신당이었던 공화당을 만드는 데 합의했다.

본격적인 정치, 잘못된 판단은 덤

공화당의 디자인위원장을 맡으며, 공화당의 디자인을 비롯한 홍보ㆍ기획을 총괄하다시피 하였으며, 그가 만들어냈던 공화당의 총선 공약집은 준수한 퀄리티의 디자인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비자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탈퇴에 공화당은 흔들렸고, 결국 총리 후보 선출 및 지도부 조기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렸다. 그는 총리 후보 선출에 민창원을, 당 대표 선거에는 본인이 직접 출마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아 힘을 모았었다. 이 당시 민창원은 " 경선도 공천관리위원장이 총괄 한다. " 란 억지 아닌 억지를 통해 당원보다 국민의 비율을 높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경선을 이끌어가려 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창당 이래 역대 최대의 내분을 겪었고, 결국 총리 후보로는 이맹박이 선출되었다. 조윤상은 당시 최고위원에 당선되며 당직을 건지긴 하였다.

민창원과 조윤상은 탈당 후 신당 창당을 결심하며 민창원계 의원 70인과 함께 국민회의를 창당하였다. 짧은 역사의 정당이지만 많은 논란을 일으킨 이슈메이커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윤상은 국민회의 대표에 오르며 이맹박 세력을 비롯한 자유민주당을 공격하였으나, 다음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직에 출마하지 않으며 잠시 정치를 쉬었다. 조윤상이 정치를 쉴떄, 국민회의는 왕국의회 의장인 민창원의 1인 정당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는 "의회가 일좀 하게 해주세요" 라는 문구를 통해 '일하는 정당' 이란 이미지를 만들어 보려 한 것 같았으나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결국 국민회의는 합당을 통해 한울당이라는 새로운 세력으로 태어났고, 조윤상은 국민회의가 합당하기 전에 왕국의회 부의장직을 역임하며 남은 임기를 조용히 마쳤다.

SBS의 시작

한울당과 조윤상은 정치적 스탠스부터 매우 다른 정당이었다. 그는 한울당을 탈당하여 무소속 신분으로 남아 하늘미르 정계를 지켜보았으며, 딱히 정치활동을 하진 않았다. 그러던 중 앨런제국에서 SBS라는 이름의 방송국을 설립하며 언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SBS는 준수한 영상 퀄리티로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선거방송 프로그램인 '가뽕의 선택' 은 SBS의 영상미와 기술이 어느정도인지를 잘 보여주는 영상 중 하나다.

다시, 보수의 품으로

하늘미르 왕국 제12대 총리선거, 한비자 전 총리가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도전한 선거였다. 재건공산당 나노 후보 역시 만만치 않은 후보였다. 최고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재선거가 치뤄졌을때, 조윤상은 무소속으로서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한비자 캠프에 합류하였다. 한비자 후보의 슬로건들 중 하나인 '우리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한비자', '지키겠습니다 자유하늘미르' 를 만들었으며, 선거 공보물 등도 만들며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임하였고, 한비자 내각이 출범한 후 조윤상은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며, 한비자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창당한 전진당에 합류하였고, 전진당하늘미르 왕국 제9대 의회의원 총선거에서도 승리하며 그는 다시 왕국의회에 진출하였다.

전진당의 대표가 되다

전당대회 당시 조윤상 후보의 선거포스터

의회의원 총선거 이후 열린 전당대회에서 조윤상은 타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승리하여 당 대표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비자 내각의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증가하며 자연스럽게 전진당과 한비자 내각의 지지율도 떨어져가기 시작했다. 지방선거를 몇일 남겨두지 않고 벌어진 일이기에 야당인 한울당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전진당 내부에서조차 예측했었다. 하지만 선거는 정반대였다. 전진당이 몰표를 받으며 한울당은 광역단체장 0석이라는 대참패를 당하였고, 샤르데나 민주당은 1석을 얻었다. 그 후 2018년 8월 9일, 그의 생일에 전진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