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민주연합공화국

독일민주연합공화국
Deutsche Demokratische Union Republik
獨逸民主聯合公和國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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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국장
Proletarier aller Länder, vereinigt euch!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상징
국가그대에게 자유의 왕관을
Freiheit dir im Siegerkranz
지도
독일 제국 영토.png
1949 ~ 통일이후
분단이전통일이후
대독일국
(나치독일)
독일민주연합공화국
역사
1944년 거국내각수립
1947년 총파업
1948년 독일혁명(1948) 발발
1949년 독일연합공화국 성립 (군정 종식)
1991년 독일통일
지리
위치중부유럽
수도베를린[2]
면적357,386km
인문환경
인구2019년 83,783,942명
언어독일어
종교개신교, 가톨릭
민족독일인
정치
정치체제의회공화제 다원제 연성제
국가원수최고인민회의주석(국가주석)[3]
정부수반연합 총리
주요 국가주석B. 그뤼네발트
주요 실권자콘라드 아데나워
앙겔라 메르켈
경제
통화페니히, 연합마르크

독일민주연합공화국은 서유럽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상징

국호

독일민주연합공화국은 독일어로 Deutsche Demokratische Union Republik, DDUR 이라고 쓴다.
참고로 구동독은 독일인민공화국으로 Deutsche Volks Republik, DVR 이라고 쓴다. 영어로는 각각 GDUR,GPR이며 ISO코드는 GDU,GPR이다.

국기

이른바 부활바이마르공화국과 이후 수립된 구국인민거국내각 통칭 거국내각에 대한 강력하 계승의식과 실패한 바이마르공화국과 1948년 혁명의 기억때문에 흑금적 3색기대신 독일통일이후부터 바이마르 시대와 나치집권기를 제외하면 독일의 전통국기인 흑적백 3색기를 고수하고있다. 분단이후 양독일이 같은 국기를 사용하여 구분이 되지않자 서독이 먼저 국장을 넣었고 동독도 몇년후 별을 넣어 구분했다.

국가

그대에게 자유의 왕관을(Freiheit dir im Siegerkranzdms)은 영국국가와 음이 같으며 본래 독일제국시절 비공식 국가였다. 실패한 바이마르공화국과 나치독일이 사용한 독일인의노래가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며 가사에서 독일이 패전으로 포기한 영토가 포함된다는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국민투표에서 간발의 차이로 패배해 최종적으로 이곡이 선정되었으며 대신 가사는 폐지되어 연주만하는 연주곡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국화

수레국화

국장

독일국 시절부터 전통적으로 계승해온 흑백적 3색기 바탕에 밀이삭은 농민을 제도용자는 기술자와 학자를 망치는 노동자를 의미하며 밀이삭을 감고있는 리본의 배색은 독일 흑백적 3색기에서 유래했다.

역사

독일민주연합공화국의 헌정사
부활바이마르구국거국인민내각
독일노동자평의회정부독일연방국독일연합공화국독일민주연합공화국

7월 의거

1944년 7월 볼프스산체에서의 히틀러 암살사건이 성공하였고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정부 요인들이 모두 폭사하였다. 이후 반나치인사들 중심으로 바이마르공화국의 부활이 선언되었으며 나머지 살아남은 나치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시작되었으며 동시에 서방국가들에게 강화를 요청하였으나 소련과의 계속전쟁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이를 연합군이 받아들일리가 없었다. 특히 전국토가 점령된 프랑스나 독소전에서 수천만명단위가 희생된 소련은 반드시 베를린에 삼색기와 적기를 내걸어야만 이 전쟁이 끝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좌파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거국내각이 수립되고 소련과의 협상을 지속했지만 무조건 항복외엔 소련이 요구하는것이 없었으므로 평화교섭은 결렬되었다. 결국 1945년 5월 독일은 패망하였다.

45년봉기

45년 노동자평의회가 결성되었으며 노동자의 정부로 선포되었으나 아직까직 건재하던 거국내각이 이를 당연히 승인하지 않았다. 거국내각 인사중 좌파측 상당수가 이에 반발하여 거국내각을 이탈해 평의회 정부에 합류했다. 그러나 동서연합군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연합국은 거국내각정부만을 승인하고 평의회 정부는 해산하였고 동서독 양쪽에서 불법화되었다. 노동자평의회는 지하조직화 되었다.

47년 독일총파업

47년 노동자평의회는 동서독분단과 반 노동자, 친 자본주의적인 서독 단독정부수립 에 반대하며 합법노조와 함께 총파업을 일으켰다. 그리고 일부지역에서는 해방구를 선언하며 각지역에 지역인민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각 인민위원회를 조정하기 위한 전독일인민정치협상회의가 결성되었고 인협의결사항을 집행하기위한 최고집행기구로서 초대 최고인민위원회가 선출되었다. 지방행정은 인협이 정부역할을 최인회가 담당하였으며 입법기구이자 헌법작성을 위해 인민대회를 결성하였다. 즉 오늘날 독일의 정치조직은 이미 이때 성립되었다.

48년 3월혁명

48년 인민대회에서는 동서독 통일노동자정부 수립을 선언하며 독일연방국 성립을 선언하였다. 당연히 서방연합국은 반발하였고 동독을 앞세운 소련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지도부가 장악되어가자 결국 연방국내 자유주의 성향인사들이 반발하며 대거이탈, 서독측에 합류하면서 정부수립 8주만에 멸망했다.

결국 연합공화국은 해산되었고 불법단체화 되었으며 동독과 서독의 분단이 확정됨에따라 양독으로 갈라졌으며 서독에 잔류한 인원들은 일부는 서독정부에 참여하거나 합법노조로 참여해 준법투쟁을 시작하였으며 나머지는 지하세력으로 계속 남아있었다. 동독으로 간 인원들은 그대로 동독정부에 참가한다.연합공화국 정부와 정치조직은 노동자의정부 혹은 비공개정부라는 이름을 유지한채 지하조직으로 남아있었다.

독일연합공화국

49년 서독정부가 수립되다. 구 거국내각인사들은 반나치성향, 히틀러암살의 공로, 서방과의 강화노력등을 인정받아 대부분의 인사들이 서방 연합국들에 의해 사면되었다. 기민련과 공산당은 프로이센 군국주의자들이 부활했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이들은 혁명실패로 동서독 주류정당들중 갈곳이 없어진 민사주의-사민주의자들 대부분을 실패한 혁명에도불구하고 받아들이며 초대 총선거를 앞두고 민주사회주의국가당을 창당하였다.

한편 기민련과 기사련내에서 반 콘라드아데나워 인사들이 대거 민사국당에 입당하였으며 전향공산주의자들을 받아들여 당원들의 스펙트럼음 매우 다양해졌고 빅텐트 정당이 되었다.

이들은 히틀러 암살을 성공시킨 독일민주화의 영웅이자 순교자라는 이미지를 내세워 독일인들의 죄책감을 덜면서도 실패한 혁명에대한 노동대중의 아쉬움 덕에 손쉽게 집권할수 있었지만 당성향이 잡탕이 된덕에 경제정책은 사회자본주의를 내세우게 되었으며 정책방향은 꽤나 보수적이었다. 이때문에 일부인사들이 반발하며 도로 우익정당이나 좌익정당으로 돌아가거나 신당을 창당했다. 그중일부가 오늘날의 독일 기독교민주사회주의 인민혁명당을 세웠다.

결국 서방국가들의 의심과 마찰이 생겼으며 소련의 사주를 받아 동독간첩들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이 당내 좌익들을 포섭하거나 제거하며 지분을 착실히 늘려나가면서 극좌화되었다. 그리고 지지율이 상당히 떨어졌다. 당내 우익들또한 상당수가 이탈하거나 권력을 잃었다. 이들은 동서독의 총선거를 통한 합의통일, 미군철수를 요구하였다. 결국 내각제국가에서 여당이 분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으나 민사주의자들은 사민주의자들과 연정을 통해 어떻게든 원내 1당은 지켰지만 다음 총선거에서 대패하는데 공산주의자들을 집권시키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기민련과 연정을 선언하여 민사-기민/기사-사민 3당연립이 결성되었다.

이때당시 비공개정부는 노동자평의회와 노조중심으로 독일의 독자사회주의화를 주장하며 크레믈린의 지령을 받는 스탈린주의자와 대립하고 있었는데 노조와 좌익세력 약화를 바라던 기민당과 연정중이던 민사-사민당 덕에 합법단체로 인정되었다.

아데나워는 총리에 오르면서 강력한 권력으로 독일경제의 부흥, 소련에 맞서기위해 강력한 중공업산업의 부활, 미군의 주둔을 유지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안정적인 권력기반이 필요했다. 비록 혁명은 실패했지만 독일의 노동자평의회 세력은 노동자 인터내셔널의 지지와 지원하에 강력하게 남아있었기에 이들을 포섭할 필요가 있었다. 이로서 55년 이른바 대타협이 성립되었다.

대타협과 독일민주연합공화국의 출범

55년 개헌을 통하여 이른바 비공개정부가 정식으로 정부조직으로 포함되었고 독일은 형태상 2중정부체제를 가지게 되었으며 인민대회와 전인협은 독일국회 양원과 통합되었으나 법원은 일반법원과 노동자법원, 군법원으로 분리되었다. 노동자정부 수장들은 분기당 1회씩 연4회 비토권외엔 별다른 권력은 없었고 모든의사결정은 다수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여론만 잘 활용한다면 총리와 내각의 안정적인 정무수행이 가능했다.독일은 경제부흥에 성공하였고 이를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기민당내각의 작기집권으로 사회의 보수화는 필연적이었다.

67년 팔레비 방독 반대시위 진압도중 독일 대학생이 우익깡패에게 맞아죽었다. 이를 계기로 대학교 운동권들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적군파가 창설되었고 해를 넘겨 68년이되자 결국 5월혁명이 발생했다. 이에 곧 독일의 고도성장과 정상국가화 추진의 부작용으로 소외되고 불만이 쌓인 일반시민들과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성난 시위대는 본 총리관저와 인민대회 의사당을 점거하고 방화하였다. 결국 기민당정부는 붕괴되었고 연정은 해체되어 민사국-기민혁-사민 3당연정이 집권했다. 신임총리는 사민당의 빌리브란트가 되었다.

빌린브란트의 동방정책으로 동구권과 화해, 수교를 추진하였고 서독은 공산국가들에 의해 승인되었다.

독일의 가을

76년 적군파에 의해 대통령관저와 총리관저가 공격당했고 이 와중에 대통령은 사망했다.

겨울공화국

비상시국을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한뒤 기사당과 기민당 의원들의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사민당을 동독간첩으로 몰아 정권에서 축출한 사건이다.

독일의 봄

민사당측은 독일의 정국이 안정되었다고 생각하였으며 통일 추진에서 각당의 지원이 필요하며 국련통합을 원하여 기사,기민당의 정치금지를 해금했고 사민당과 재연정을 추진하였다.

통일

91년 동독이 연합에 가입하는 형태로 통일되었다.

자연환경

영토

지형

생태

자원

인문환경

인구

언어

종교

교통

행정구역

정치

정당

행정

연성자치제(Union Provinz Directory System)를 체택하고 있다. 본래 도연합제를 체택하여 주연방제를 폐지했으나 강력한 도정부권한과 광대한 관할영역을 등에업고 지방세력이 중앙권력에 도전했던 역사적 경험과 실패한 독일1948년 혁명때문에 건국과 동시에 도는 허급화(사문화)시키고 대신 도 아래 성정부를 설치하여 사실상 성이 1급 행정구역이다. 성과 동급인 행정구역으로 과거 도시주 내지는 자유도시를 거의 계승한 5개의 원할시가 있다. 성 하위행정구역으로는 성할시와 현을 설치하며 원할시 아래에는 구를 설치한다.

국제관계

경제

독일경제의 개요
경제체제 혼합자본주의, 수정자본주의, 개입주의,자유시장경쟁체제
인구 83,783,942명(2019년)
GDP 명목 GDP 총 GDP 39,48,123.56백만 USD
1인당 GDP 46,467.159 USD
GDP PPP 총 GDP PPP 4,678,568.42백만 USD
1인당 GDP PPP 53,571.191 USD
GDP대비 부채비율 국가 59.644%
가계 6.1%
고용 고용율 전체 76.7%
남자 80.5%
여자 72.8%
실업율 전체 4.5%
청년 6%
최저임금 법정최대시급 8.5UM
독일은 최저시급을 노조와 기업이 협상으로 정함
외환보유고 36,823.7백만 USD
저축율 총저축율 25.9%
가계 17%
소비자물가지수 연평균 1.7%
화폐 법정통화 연합마르크(UM)
중앙발권은행 독일연합인민은행
환율 1UIM=1.233USD

독일의 경제사

  1. 넘겨주기 1945년 이전의 경제사는 독일의 경제를 참고하십시오


독일은 DSA/CDS/SDP의 DSI 가 자주 집권하는 나라이지만 이 정당들은 딱히 국민들이 원하지 않을경우에는 무리해서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하려 들지 않는다. CDU/CSU의 우니온과 이점에서는 정책방향이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데 이는 전후 동독과 국경을 마주댄 철의장막의 최전선이라는 점과 패전국이자 전범국이라 서방 승전국들(특히 미국) 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받아와서 정책을 집행하는 데 상당히 조심스럽고 스스로를 제약해왔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민주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자들과 우익들은 눈앞에있는 공동의적인 스탈린주의자들부터 일단 쳐부수자는데에 합의하고(이른바 대타협) 쥐를 잡는데는 검은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상관없다는 모 중국주석의 말이 생각나는 독일특색의 민주사회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병행노선을 체택하였으며 무리하게 경제에서 사회주의정책을 펴지도 또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시장에 방임하는 정책을 펴지않고 중도적이고 실용적이며 균형을 추구하는 조심스러운 경제정책노선을 펴왔다.

​그리하여 냉전하 마셜플렌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유럽전후재지원을 받아가며 국방력강화와 공산주의가 발흥하는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중화학공업력 회복과 국민경제생활성장에 박차를 가하였고 그 결과가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독일의 경제부흥이다. 이시기에 동독도 이에 대항하고자 소련의 지원을 받아 경제를 전후수준으로 빠르게 회복하였고 유럽에서 양독일은 1,2세계 각진영에서 최고의 경제력을 갖춘 국가가되었다.

​냉전기간동안에는 정부-경제 통합관리, 전자통제사회주의계획경제시스템인 사이버시네틱스시스템(SCND)을 설계, 도입하려 하였으나 당시의 기술력부족과 궁극적인 목표가 기계에의한 인간개입이 최소화된 사회주의 시스템의 구상이었으므로 경제관료들의 반발로 그다지 빛을 보지못했으나 21세기들어 IT와 인공지능 산업의 부흥계획을 겸하여 지금까지 존재는하되 사실상 가동이 거의 중지중인 사이버시네틱스의 개량및 재가동을 검토중이다. 아마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할것으로 보이나 기술독재및 감시사회 도래이 논란이 있다.

​21세기에는 통일이후 통일비용 부담과 고임금과 잦은파업등으로 독일경제의 활력이 점차 감소하자 DSI의 소위 제3의길 논쟁의 결과 이른바 DSI가 내놓은 레데카플랜[4] 으로 대변되는, 노조입장에서는 심각한 우클릭때문에 노동자들과 노조의 인기를 잃어 우니온에게 집권을 허용했으나 우파정부는 레데카플랜을 수정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과감한 노동유연화로 잠시 DSI 가 재집권했지만 딱히 우익정부의 정책기조를 뒤집지는 않았으며 경제개혁을 지속추진하였다.

​이때문에 다시 우니온에게 정권을 내어주었다가 최근 다시 DSI가 정권을 잡을것으로 보이나 여전히 그렇게 전향적으로 경제정책을 뒤집을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우니온정부가 국가부채를 상당히 늘려가며 확대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책을 집행하려 했으나 DSI는 독일의 역사적인 이유로 인플레이션을 막기위해 긴축재정을 검토하고있다.

​독일의 경제정책 노선은 장래의 사회주의도래를 준비하며 일단 그전까지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최대한의 경제민주화와 공정경쟁, 시장경쟁체제의 선의의 실패자에게 다시한번의 기회를 주되, 무분별하고 무조건적인 복지보다는 의욕과 능력이 있거나 자신의 소질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재능을 탐색하게도와주고 이를 최대한 살려서 사회에 복귀하도록 유도하는방침을 선호한다.

독일의 산업구조와 특징

서비스업 비중은 증가하고 있으며 제조업에서 건설, 자동차, 기계, 중화학공업등의 비중은 높은편이며IT와 전자비중은 낮은편이다.

GDP대비 독일산업비중

서비스업 제조업 건설업 농림어업
68.2% 25.8% 5.3% 0.7%

농업수산업광업

세계적인 농업대국이며 세계적인 석탄과 철광광산을 보유하고 있거나 있었다. 세계 3위의 보리,호밀생산국이자 3위의 돼지고기 생산국이다. 우유생산력은 세계 6위이다. 독일의 한해 광업생산물량은 212,196,016.000 미터 톤 이다. 광업생산량은 매해 채산성등의 문제로 후발국들에게 내어주어 감소하는 추세이다. 독일은 90%이상이 어선어업이며 지난 수년간 꾸준히 어업량이 증가해왔다. 독일은 정어리류를 연간 10만톤정도 어획한다.

제조업

독일 제조업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중세 도제 제도에 기반을 둔 직업훈련을 통한 우수 기술인력 양성
  2. 산∙학∙연 유기적인 협력을 통한 기술 개발
  3. 단기 실적에 연연하지 않는 장기적 안목의 기업 경영
  4. 고객 문제 해결 중심의 글로벌 기업 경영

을통하여 국제적인 경쟁력과 우위를 차지하고있다.

독일의 주요제품및 가공업현황

독일제조업.png

독일의 제조업상품 수출구성

  • 독일의 수출을 지역별로 보면 전체 수출의 이상이 국가 60% 서유럽국가 에 집중되어 있다.
  • 제품 형태별로 보면 수출 상품의 70%이상이 자본재 및 중간재 로 구성.
  • 수출품은 전통 제조업 상품 위주로 구성된다.
  • 자동차 기계 화학제품 3개 품목이 전체 수출품의 46.6% 를 차지 하고 있으며 IT 제품의 수출 비중은 높지 않았으나 최근 독일연합정부에서 정-력적으로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한 IT국가주도 성장전략과 부흥정책을 추진및 준비중에 있다.

건설업

세계적인 건설업국가이다. 세계굴지의 건설기업들이 독일에 많다.독일은 프랑스, 영국에 이어 유럽에서 가장 큰 건설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2016년에는 대략 7만 5,000개의 건설회사들이 106억 유로(한화 약 12조9,000억 원)에 상응하는 수익을 창출한 바가 있다. 주택지 건설이 3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공공 혹은 정부기관 투자에 의한 건설은 28%를 차지한 반면, 상업적 건설은 35%를 차지했다.

금융업

  • 독일은 특수은행과 일반예금을 취급하는 일반은행으로 분류하며 자산기준 75%이상 은행개수로는 96%의 비중이 일반은행에 집중되어 있으며 기업대출의 비중이 높고 가계대출의 비중은 다른나라들에 비해 낮은편이다.
  • 특수은행은 모기지 등 특정분야에 전문화한 은행으로서 자산기준 으로 전체의 25%를 차지 한다.
  • 독일의 은행산업은 유니버설 뱅킹 시스템(universal banking system), 다수의 은행수와 경쟁적인 시장구조, 공영은행의 높은 비중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독일의 금융업의 특성

  • 대형 은행들이 자금 조달과 운용의 국제화를 통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동안 각 지역의 저축은 행 및 신협(이하 커뮤니티은행)은 자기 지역의 중소기업에 대한 관계금융 제공을 통해 이 들의 혁신을 지원하는 데 집중하였다. 커뮤니티은행들은 지역주의 원칙에 따른 제약을 극 복하기 위해 관계금융에 치중하였는데, 이를 통해 중소기업금융시장의 실패를 초래하는 정 보비대칭성을 극복하여 지역혁신시스템과 산업생태계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 내수부 진과 수출호조에 따른 잉여저축을 기업, 은행 및 보험사가 흡수하여 해외에 투자하였으며, 이는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 자산 가격 상승을 통해 수출경쟁력을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예 방하고, 고령화된 인구의 미래소득원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업 과 금융의 해외직접투자는 국내 기업의 혁신 역량 확충에도 기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관광산업

  • 독일은 유럽의 관광대국이다. 독일 연합통계청에 의하면 최소 10개 이상의 침대가 있는 숙박업소에서 외국인관광객의 숙박일 수가 2018년 1월부터 11월까지 8150만박을 달성했다. 2018년 독일 관광 지표는 4.5% 성장했고, 이는 지난 2년의 기간보다 1.4%와 3.6%씩 증가한 수치이다.
  • 독일 관광 지표는 세계 경쟁 속에서 강력한 포지셔닝을 통해 발전을 했다. 국제 연합 세계관광 기구 UNWTO에 따르면, 2018 세계 여행객 수가 5.6%로 천천히 증가(전년대비 7% 성장) 한 반면에 독일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 유럽은 독일 관광 지표의 가장 강력한 시장으로 73%의 점유율을 차지하여 4.5% 증가했다. 해외 시장은 4% 성장률을 기록했고, 특히 미국은 5.9% 증가로 10.7% 시장 점유율을 차지했다.

IT산업

사회

교육

문화

군사

독일군의 정식명칭은 독일연합인민방위군이다. 90년대 통일이후 통일비용과 통일을 용인해준 주변국들을 위하여 어떠한 군사적 야심을 보이지 않으며 혹독하게 군축을 해왔다. 또한 독일군은 자체적인 규정으로 ABC 무기의 보유를 일체 금지한다.

독일연합인민방위군 육군

독일의 육군이다.

독일연합인민방위군 해군

독일의 해군이다. .

독일연합인민방위군 공군및 반항공군

독일의 공군이다.

독일연합인민방위군 인민근위대

국가주석및 요인들의 경호와 관저및 3개의 수도경비를 담당한다.

독일연합인민내무군

타국 내무군내지는 국가헌병대에 해당한다.

독일민주연합공화국 국경/해안경비부대

준군사조직으로 국경및 해안과 강안의 경비를 담당한다. 전시에 육군및 해군에 편입된다.

독일민주연합공화국 인민노력방위대

독일의 예비군이다.

독일민주연합공화국 사회복무부대

타국의 서비스부대에 해당하며 양심적병역거부자등의 대체복무를 위한 조직이다. 내무성관할이며 간부들만 군계급과 조직을 사용하며
평시에는 조직내에서도 군계급이 아니라 직책으로만 호칭한다.

단위

법정 연호

시간대

관련 문서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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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독일 연합(Deutsches Union)이라는 명칭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수립된 혁명임시정부인 독일연방국 과 구분하기 위해 선택된 명칭이다.
  2. 입법수도이자 명목상. 행정수도는 이다. 대법원인 최고인민재판소 소재지인 작센성 라이프치히가 사법수도이다.
  3. 명목상 독일국가원수.
  4. 현실의 하르츠개혁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