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3세

Royal Coat of Arms of the United Kingdom (St Edward's Crown).svg
대영제국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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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 of the United Kingdom
빅토리아3세.png
Victoria III
출생2021 / 07 / 11
잉글랜드 런던 버킹엄 궁전
사망2021 / 10 / 17
잉글랜드 런던 버킹엄 궁전
장례식2021 / 10 / 17
버크셔 윈저 윈저성 세인트 조지 예배당
묘소윈저성 세인트 조지 예배당
재위기간2021.07.30 ~ 2021.10.17
이름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
신체152cm
배우자에든버러 공작 앨버트 공
자녀장남 조지 7세, 차남 제2대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아버지헨리 1세
어머니마거릿
형제자매X
종교영국 성공회
복무X
빅토리아 시대(Victoria Era)는 뭐 영국 역사상 가장 최전성기죠.
—  운영자 루이스의 말
짐은 입헌군주로써 헌법을 수호할 거고 국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와 의회가 국민들을 대표해 선출되었으니 그들의 의견이 곧 국민들의 의견이라 생각하고 정부의 조언을 받는게 군주로써 당연한 의무이니깐요.
—  궁내부의 질문에 여왕의 답변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윈저 왕조의 제5대 국왕. 2021년 07월 30일부터 2021년 10월 17일까지 재위한 영국 국왕이며, 헨리 1세와 마거릿 왕비의 장녀이다. 1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군주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른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전성기의 영국을 통치한 여왕이였고, 이 시기 영국은 경제적인 선진국이 되는 동시에 긴 치세를 통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따라 오늘날의 영국 군주제를 확립했다. 이 시대를 빅토리아 시대(Victoria Era) 라고 칭한다.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작위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왕국의 여왕, 신앙의 수호자, 인도의 여제, 캐나다의 여왕, 호주의 여왕, 뉴질랜드의 여왕, 남아프리카 연방의 여왕, 몰타의 여왕, 나이지리아의 여왕, 파푸아뉴기니의 여왕, 말레이의 여왕, 대한국의 여왕, 지브롤터와 홍콩의 여왕, 버뮤다와 자메이카의 여왕, 가터 기사단장, 바스 기사단장, 영국령 인도 기사단장 빅토리아 여왕 폐하
— 공식적인 칭호
영국에서의 문장Royal Coat of Arms of the United Kingdom (St Edward's Crown).svg
스코틀랜드에서의 문장Royal Coat of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png
모노그램빅토리아2.jpeg

* 빅토리아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Victoria (2021년 07월 11일 ~ 2021년 07월 30일)
* 여왕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2021년 07월 30일 ~ 2021년 10월 17일)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서론

영국의 여왕이자 인도 제국의 여제이며 캐나다와 호주의 군주였으며 빅토리아 3세 여왕의 존재 자체가 대영제국의 상징이다.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군주이기도 하지만, 영국의 제국주의를 상징하기도 한 군주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라는 기록을 갖고 있었지만 엘리자베스 5세 여왕이 그 기록을 깨면서 두 번째로 밀려났다. 또한 매번 열리는 여론 조사에서 가장 호감 받는 군주, 성군 1위 라는 평가를 받으며 현재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군주이다. 같은 왕호를 쓴 빅토리아말부 1세와 빅토리아 2세는 재위기간이 매우 짧아 인식에서 거의 없어 빅토리아 3세 여왕을 빅토리아 여왕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어린 시절

빅토리아3세1.png

어린 시절 빅토리아 3세 여왕

2021년 07월 30일 헨리 1세 국왕과 마거릿 왕비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마거릿 왕비는 빅토리아 공주가 마치 푸딩같다며 매우 좋아하였다. 앨버트 1세 국왕의 퇴위 이후 다신 이런일을 막고자 당시 영국 궁내부에선 차기 여왕이 될 빅토리아 공주에게 4살때부터 교육을 엄하게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7월 13일에 테스트를 봤는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빅토리아 공주가 제일 잘 봤다고 한다. 이에 감동 받은 헨리 1세 국왕은 빅토리아 공주의 입지를 더욱 높여주기 시작했다. 엘피스 제국이 망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영국 정부가 합병을 제안했으나 유에가 부운영자 혹은 공주 등을 달라 요구하자 마거릿 왕비가 이에 격노하였다고 한다. 빅토리아 공주가 말렸다고..

빅토리아 공주는 영국 역사상 가장 인기 많은 공주라고 봐도 무방하다. 10대가 되기전부터 수많은 영국 남성들의 호감형이 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고 항상 언론에 국왕 부부가 아니라 빅토리아 공주가 실렸다. 방문하는 곳 마다 남성들이 다가와 고백을 하였다. 빅토리아 공주는 정중하게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페브리즈 라는 인물이 과격스러운 애정을 표현하며 사귀자고 빅토리아 공주에게 고백했는데, 헨리 1세 국왕이 이에 매우 격노한 탓에 이리 말하였다.

왕세녀를 건들면, 강력히 조치해서 눈앞에서 없애버릴거니 근위대는 이를 관찰하라, 또 이상한짓거리하면 궁내부 조언없이 강력히 조치할것이다!
— 페브리즈에게 헨리 1세 국왕이

사건이 점점 커지자 빅토리아 공주와 페브리즈가 곧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문이 영국에 떠돌았는데 덧붙여서 페브리즈가 아름답다고 말하는게... 무슨 문제라도? 라고 하였다. 그러자 마거릿 왕비가 아직 5살도 되지 않은 아긴데요... 라고 하였다. 당시 영국 총리던 라인코리아도 페브리즈 편에 서면서 왕실에 분을 쌓자 헨리 1세 국왕은 처벌을 할려했으나 불체포특권을 가지고 있던 라인코리아 총리의 체포는 불가능했다.

빅토리아3세4.png

10대 시절 빅토리아 3세 여왕

빅토리아 공주의 어머니인 마거릿 왕비는 매우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선왕 앨버트 1세 국왕의 내란국가에 가입한다던지 내란범을 자기 아버지라 지칭한다던지 궁을 마음대로 나간다던지 온갖 스캔들을 뿌리고 다녀 빅토리아 공주가 불안해 하였다고 한다.

7월 21일 야팅이 마거릿 왕비가 죽었다고 헛소문을 퍼트리며 마거릿 왕비가 자아칭찬 한 것들이 역겨워 고소하겠다며 쌩쇼를 벌였다. 그러자 빅토리아 공주가 마거릿 왕비를 대신해 야팅에게 논리적으로 말한뒤 설득하여 고소하지 않았다고....

빅토리아 공주는 베네치아 공화국 등을 헨리 1세 국왕과 방문하며 장차 여왕으로써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많은 타국 국민들도 공주를 국왕보다 더 반겼다고 한다. 빅토리아 공주가 그러다 영국령 몰타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때 몰타 총독과 데이트를 한다는 소문이 급격하게 퍼져 영국 왕실은 소문을 퍼트린 윤석을 처벌했다. 그러다 7월 30일에 어머니 마거릿 왕비가 사망했다. 근데 몇시간도 안되서 요한이라는 인물이 헨리 1세 국왕과 라인코리아 총리의 아이피를 딴 뒤 테러하라 협박하여 헨리 1세 국왕과 라인코리아 총리는 런던을 테러하였다. 헨리 1세 국왕은 이에 책임지고 아버지 앨버트 1세 처럼 양위를 선언하며 왕위를 포기했다. 빅토리아 공주는 20대도 되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왕위에 오르게 된다.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여왕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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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식 직후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찍은 사진

마거릿 왕비의 사망, 그리고 헨리 1세 국왕의 테러와 양위 이후 빅토리아 3세 여왕은 16세 라는 어린 나이로 왕위에 갑작스럽게 올랐다. 빅토리아 3세 여왕은 즉위 소식을 듣고 시녀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면서 테러당한 영국과 할아버지 앨버트 1세, 아버지 헨리 1세의 반국가행위 이후 민심이 추락한 왕실 이미지를 어떻게 회복할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20대도 되지 않은 15세 라는 나이로 왕위에 올라 2020 섭정법에 따라 섭정자가 섭정을 해야하나 아버지의 양위, 어머니의 사망, 할머니의 건강악화로 섭정자가 없어 여왕으로써 공식적인 즉위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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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3세 여왕이 대관식 직후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7월 30일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빅토리아 3세 여왕은 대관식을 치룬다. 테러 당하고 복구도 안된채 대관식을 치루는바람에 짧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빅토리아 3세 여왕은 진두지휘하며 테러를 빠르게 복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운영자 루이스가 사정상 테러복구에 지원을 못했는데 빅토리아 3세 여왕이 지휘한 끝에 복구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 복구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과 단합하며 영국 국민들은 하나로 통합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군주제의 위엄 또한 상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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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3세 여왕과 앨버트 공이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8월 4일 빅토리아 3세 여왕은 왓 가문 출신인 앨버트와 결혼을 하게 된다. 빅토리아 3세 여왕이 버킹엄궁에서 고백하여 앨버트 공이 청혼을 수락하였다고 한다. 마거릿 왕비의 장례식을 복구로 인해 치루지 않았는데 자신의 결혼식도 치루지 않았고 발코니에서 손만 흔들었다. 빅토리아 3세 여왕은 결혼식이 끝난 직후 에든버러 공작 작위를 앨버트 공에게 수여한다.

8월 10일 할머니인 이리야 대왕대비는 노환으로 인해 사망했다. 이리야 대왕대비는 앨버트 1세의 왕비로 3대의 군주를 보았다. 이리야 대왕대비는 빅토리아 여왕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그 유언이 무엇인지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고 승하한 빅토리아 3세 본인만 알고 있다고 한다. 궁내부가 공식 발표하자 많은 국민들이 빅토리아 여왕에게 애도를 표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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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3세 여왕이 차를 운전하고 있으며 조지 7세가 탔다.

8월 11일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은 켄싱턴 궁전에서 시녀들을 따돌리고 앨버트 공과 애정을 쌓았다. 생전 빅토리아 3세 여왕과 앨버트 공은 켄싱턴 궁전이 가장 좋다고 말하였다. 11일 당일 여왕 부부는 켄싱턴 궁전 정원에서 산책중이였는데 뱃속에 있던 아이가 나와 켄싱턴 궁전 정원에서 출산을 하게 된다. 낳은 아이는 조지 7세로 빅토리아 3세에 이어서 영국의 2번째 성군이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름은 조지 프레드릭 앨버트 윈저 로 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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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버킹엄궁전의 모습

조지 7세는 웨일스 공으로 책봉되었으며 버킹엄 궁전에서 여왕 부부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빅토리아 3세 여왕은 세인트 제임스 궁전, 윈저성, 샌드링엄 하우스, 크림 하우스, 켄싱턴 궁전 등 여러 궁전을 신설 및 개조하며 왕실의 위엄을 높혔다. 여러 궁전이 생기며 빅토리아 3세 여왕은 벨모랄성, 윈저성을 좋아했으며 조지 7세는 세인트제임스궁전, 앨버트 공은 켄싱턴 궁전을 쭉 좋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8월 12일 대영제국 재건이 모두 되었으며 재건을 기념하여 런던에서 2021 런던 올림픽이 개최된다. 빅토리아 3세 여왕이 개회를 선언했다. 수십명이 참가하였으며 BBC의 중계로 다른 카국인들도 지켜보았다. 이 올림픽의 성과로 대영제국 인구는 더욱 더 증가하였다. 당시 영국은 국적법을 통해 다른 카국을 오고가는데 출입국 사무소의 승인이 필요하며 국적 취득과 국적 박탈 또한 승인이 필요하고 국적 제한을 걸어두어 영국에 활동률이 집중되고 인재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국적 제한과 위 내용이 2022년 3월 엘리자베스 5세 여왕때 폐지되면서 대영제국 국민들이 타국으로 대거 유출되었다. 그래서 카국 곳곳에 대영제국 후손들이 많은 상태이다.

8월 14일부터 12월 초반까지 빅토리아 3세 여왕때부터 시작된 버킹엄 궁전 확장공사가 17번 이상 진행되었다. 버킹엄 궁전이 크기가 그리하여 10배 이상 커졌다. 이쯤 되면 알수도 있지만 빅토리아 3세 여왕은 왕궁, 보석, 무도회, 복장 등 사치스러운걸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빅토리아 3세 여왕은 헝가리를 시작으로 여러 국가를 방문하여 대영제국의 외교관계를 넓혔고 이건 훗날 대영제국 냉전사에서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8월 15일 앨버트 공이 무너진 영국 교육을 살리기 위해 여왕의 승인하에 교육권에 전권을 휘두르며 여러 개혁에 나섰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영국의 교육 시스템을 말하자면 2018년부터 시작된건데 교육을 받지 않으면 직업도 구하지 못하며 경제활동도 불가능하여 국민들에게 의무적으로 참여하게 한 시스템으로 2020년엔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다 2021년 신영국이 건국되며 에드워드 3세때 폐지되었다.

당일 대한국 정부가 영연방에 가입한다. 영국 정부는 큰 이권을 누리기 위해 친영인 대한국정부를 압박하여 여러 조약을 받아냈다. 한국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파괴하고 영국식으로 주입을 시작했으며 한국 유저들은 한국만의 고유 특성이 사라지자 재미를 잃고 한국을 대거 탈퇴한다. 한국은 대영제국에게 인구를 주는 일종의 공장이 된 셈이다. 빅토리아 시대때 있던 제국주의 사례중 대표적인 사례중 하나이다. 다음날 길버트가 잠시 넷접을 하는데 여왕은 죽은 그에게 후작 작위를 수여하였다.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에게 작위를 준 사례이다.

영국령 인도제국은 당시 전제정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여왕이 인도에 관해 관심이 없자 여왕은 칙허를 발표해 웨일스 공이던 조지 7세에게 인도를 통치하라 하였다. 곰이 당시 조지 7세를 겨냥했는데 여왕이 이에 격노하여 당시 총리던 청설모가 곰에게 징계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곰이 조지 7세, 청설모 총리와 싸접을 뜨겠다며 대난리를 치며 영국 기득권층이 그를 미친놈이라 칭하였다. 그리고 테러를 저지르고 유죄를 선고받은 라인코리아 총리가 영국의 복귀를 노리며 여왕 앞에서 왕족으로 태어나고 싶다라 발언해 여왕이 격노하며 사형선고를 내렸다. 빅토리아 3세 여왕 치세땐 여러 시스템이 발전되었으나 사법부의 사법권이 왕실과 정부의 권한이 방대해지며 그 권한이 추락하였다. 다음날 윤석 출입국 사무소 직원이 이탈리아 공화국의 유니온, 스탈린 등 이탈리아계 인물들의 입국을 거부하자고 요구했으나 여왕은 정당한 사유없이 입국을 거부할 수 없다며 입국을 수락하였다.

8월 18일 찰스 왕자가 사망했다. 찰스 왕자는 무지개 2세 여왕의 장남으로 왕위를 이어받을 운명이였으나 미숙하고 여러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사촌 앨버트 1세 에게 왕위가 가며 왕이 되지 못한 인물이다. 찰스 왕자는 어머니의 사망이후 정신병이 심해졌으며 평론가들은 비운의 왕자라고 평가한다고 한다. 만약 그가 왕위에 올랐으면 찰스 1세로 즉위했을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찰스 왕자와 거의 만난적이 없어 별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존케리라는 인물이 빅토리아 여왕과 웨일스 공 조지가 자신의 물건이며 빅토리아 여왕이 자신의 부인이라 공개 선언하였다. 이에 앨버트공이 무슨짓이냐며 화를 냈고 여왕은 존케리에게 경고를 했다.

빅토리아3세8.png

윈저성에서 무도회가 열린 모습이다.

8월 20일 버킹엄 궁전, 8월 22일 윈저성에서 수많은 귀족가문과 평민가문들이 모인 무도회가 열리며 사교시즌이 시작된다. 여왕은 무도회를 너무나 좋아하여 일주일에 3번 꼴로 무도회를 열었으며 궁내부의 도움 없이 자신이 기획하여 연 무도회가 더 많다고 한다. 빅토리아 3세 치세땐 여성의 권리가 높아지고 사교철에 평민 가문들도 올수 있게 되며 계급 사회이던 영국에선 큰 격변을 맞이하던 시기였다.

8월 21일 김속세와 잔치국수가 버킹엄 궁전의 침입하였다. 일주일 후 잔치국수가 범죄사실을 자백하였다. 훔친 물건은 이리야 대왕대비와 찰스 왕자의 유산, 각종 왕실 보물, 편지, 왕실 물건 등 궁전 곳곳을 턴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빅토리아 3세 여왕이 매우 격노하였으며 태어나고 죽기전까지 짜증 낸 것중 가장 컸다고 한다. 잔치국수는 자진해서 감옥에 들어갔으나 김속세는 끝까지 범죄사실을 부인하며 억지를 부렸다. 법원 또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 선고를 내렸는데 김속세가 무죄 선고 받으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정보국 기밀내용을 유포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여왕은 이걸 꼼수 잡아 군주의 권한으로 그를 사형 시킨다.

8월 26일부터 의회에서 오는 각종 법안, 안건들을 앨버트 공이 일일히 간섭 하기 시작했다. 여왕은 혼자서 할 것이라 하였으나 앨버트 공은 고집과 불만을 나타내며 의회에서 오는 안건을 일일히 반대하고 하였다. 이에 궁내부가 앨버트 공과 빅토리아 여왕을 떨어트릴려고 시도하였다.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치세 중후기

8월 27일 한 인물이 로코테러를 시도했으나 관리자에 의해 강퇴당하며 진압되었다. 테러를 시도한 인물은 도이치로 영국 곳곳을 테러할려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영국 정부가 이에 텍사스 공화국의 선제공격에 가만 있지 않겠다며 제재를 준비했고 BBC 등 각종 국영방송국들도 텍사스를 비난, 조롱하는 풍자화를 내기 시작했다.

정부는 당시 왕실도 세금을 내야한다 주장했는데 빅토리아 3세 여왕이 하게 이를 승인했다고 한다. 또한 덧붙여 궁내부가 세금을 왜 내냐고 궁에서 질문하자 여왕은 궁에서 이리 말하였다고 한다.

짐은 입헌군주로써 헌법을 수호할 거고 국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와 의회가 국민들을 대표해 선출되었으니 그들의 의견이 곧 국민들의 의견이라 생각하고 정부의 조언을 받는게 군주로써 당연한 의무이니깐요.

여왕은 자신의 영토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게를 차리고 싶었는데 군주로써 위엄이 훼손된다고 궁내부에서 반대하여 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9월 4일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가 태어난다. 여왕 부부의 차남으로 태어난 앤드루 왕자는 앨버트 공이 조지 7세보다 더 사랑했다고 한다. 반면 빅토리아 3세 여왕은 조지 7세를 더 사랑했다고 한다. 애당초 여왕은 아이를 조지 7세 하나로 만족했으나 앨버트 공과 조지 7세가 여왕을 향해 애를 낳으라고 요구하였으며 앨버트 공이 특히 버럭버럭 화를 내고 소리를 치며 강력히 요구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낳았다고 한다. 앨버트 공은 요구할때 이렇게 말하였는데 왕족으로써 헌법에 위배된다고 지금까지 국민들의 비난을 받는 발언이다.

'"국왕이 반대하면, 이건 이야기 안해도 되는거나 다름없죠. 부군은 대체 결혼하고 애낳고 노후나 즐기면서 살아야되는게 정말 싫습니다. 내가 부군이 왜 됬을까요. 왕실 개혁을 위해섭니다.

9월을 맞이한 이후 대영제국과 텍사스 공화국의 냉전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영국과 텍사스가 냉전을 맞이하며 약 일주일 넘게 냉전은 지속되었다. 유니온 연합의 중재하에 냉전이 종식되었으나 영텍 관계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9월 9일 자메이카의 윤석이 영국에서 추방당했는데 윤석이 자메이카를 양도하지 않자 자메이카를 제재하고 공습한다.

9월 10일 빅토리아 3세 여왕이 최초, 그리고 최후로 역사상 가장 많은 순방을 시작하였다. 미국, 러시아, 베네치아, 스페인, 라리마, 스웨덴, 엘피스, 모테르, 센타크, 하메르, 상해, 몰타, 대한국, 룩셈부르크, 비잔티움, 프랑스제국 , 네덜란드 , 대독일 , 시드니 , 바티칸 , 이탈리아 , Null 등 수많은 국가를 순방하였다. 8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텍사스와 멜리나를 고립시키고자 한게 순방목적이였다. 순방이 끝난 직후 런던에 귀국한 여왕은 정신 없이 드레스를 입고 사교시즌에 참가하였는데 수많은 순방이후 많은 교통수단을 탄 바람에 토를 했다고 한다.

9월 12일 앨버트 공이 숨겨왔던 모의전이 들통났다. 당시 왕족은 영국 외에 그 어떠한 곳도 운영 및 가입이 불가능했었다. 여왕은 이에 차분히 말하며 지우라 명령했으나 앨버트 공은 왕명거역하고 지우지 않고 잠시 문만 닫겠다고 하였다. 부부 관계가 이때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것 뿐만 아니라 당일 의회에서 온 안건을 여왕이 재가할려하는데 앨버트 공이 자꾸 승인하지 말라며 윌리엄슨은 공화주의자고 그가 만드는 법은 공화제 수립 단계라며 여왕의 국사행위를 방해 하였다. 하지만 여왕은 앨버트 공을 무시하고 국사 행위를 지속했다.

9월 15일부터 시녀제가 정비되며 세인트제임스궁, 버킹엄궁 등 궁전별 시녀들이 채용되기 시작했는데 스페인 황태녀인 유에가 시녀로 고용된다. 하지만 스페인 황제가 강력히 반대하며 일국의 황태녀가 버킹엄궁전에 당당히 들어가야한다며 여왕에게 겁박하게 행동하자 여왕은 격노하며 유에를 그냥 해고 하였다. 여왕은 9월 17일 한가위 성명을 하였다.

9월 17일 밤 장남 웨일스 공 조지와 케펠 가문의 메리 양이 약혼을 발표하였다. 많은 국민들이 신부가 누구인지 궁금해하였다. 9월 22일 결혼을 앞두고 에드워드 왕세손이 태어난다. 이 또한 여왕은 결혼후 낳으라 했는데 앨버트 공과 조지 7세가 빨리 낳고 싶다며 제 2의 앤드루왕자 사태처럼 단합하여 여왕에게 강력요구했다 이에 여왕이 승인했다고..

에드워드 왕세손이 태어나 앤드루 왕자가 왕위계승권 2위에서 3위로 밀려났는데 부방 지위에서 해제될 위기에 놓이자 앤드루 왕자를 아끼던 앨버트 공이 자신의 부방을 해제하고 앤드루 왕자에게 달라 하여 부방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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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공 조지와 웨일스 공비 메리의 결혼식

세인트폴대성당에서 종이 울리기 시작했으며 약 70명이 보는 가운데 결혼식이 치루어진다.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결혼식이였다고 하며 집전은 켄터베리 대주교가 하였다. 여왕은 첫 며느리를 맞이하게 된다. 장차 왕비가 될 웨일스 공비 메리를 말이다.

10월 2일 새벽에 청설모, 메이지,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루이스가 웨스트민스터궁전에 있었는데 거기서 메이지, 청설모가 의견을 내며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와 반역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였다. 웨일스 공 조지 및 에드워드 왕세손을 살해 한다던지 앤드루 왕자가 조지 웨일스 공을 정신병자로 지목후 섭정을 하여 국정운영을 한다던지 왕위에 무력으로 오른다던지 왕실 전원을 처형시킨다던지 여왕을 살해하거나 웨일스 공에서 조지를 폐위시킨다던지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여왕은 새벽에 니들끼리 뭐했냐고 물었는데 루이스가 모든 사건을 여왕에게 말했다. 여왕은 하지만 일이 커질 것에 우려하여 이 사건을 은폐하였다.

10월 5일 스페인 황태녀의 결혼식이 열렸는데 여왕은 에드워드 왕세손을 보내며 앤드루 왕자에게 보란듯이 왕위계승권자들은 이미 정해져있다고 말하였다.

10월 7일 차남 앤드루 왕자와 앨리스 왕자비가 결혼식을 올린다. 앤드루 왕자는 왕위계승에서 멀어져 민가에서 많이 생활했는데 어부 부부의 자식으로 자라나 어업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평민이던 앨리스에게 빠져 앨리스 양에게 고백했다고 하였고 여왕은 결혼을 승인하였다.

10월 13일 남편 앨버트 공이 사망하며 72일간의 결혼생활이 막을 내리게 된다. 앨버트 공은 윈저성에 안장되었고 이후 윈저성에 왕실 가족이 안장되어야한다는 관례가 생기게 된다. 앨버트 공이 사망하자 여왕은 흙을 뿌렸다. 하지만 전부터 악화된 부부관계로 인해 큰 슬픔은 나타내지 않았다고 한다. 사망 몇일전만해도 앨버트공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가출을 밥말아먹듯이 했다고..

하지만 아버지와 사이가 돈독했던 앤드루 왕자는 큰 충격에 빠지며 앨버트 공이 생전에 앉던 왕좌 앞에서 왕좌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여러 왕실 가족들이 위로 했다고 했으나 빅토리아 3세 여왕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10월 15일 여왕의 직무가 날이 갈수록 많아지자 궁내부는 건강을 우려하여 직무분담을 여왕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여왕은 장남인 웨일스 공 조지에게만 직무를 준다고 하여 앤드루 왕자가 불만을 표출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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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여왕의 마지막 모습
—  스페인 공식 방문때 찍힌 사진, 즉 서거 몇시간전 모습이다.

10월 17일 스페인 황태녀 부부가 영국 버킹엄궁전에 방문하게 된다. 무도회와 각종 연회로 성대하게 맞이했으며 모든 영국 왕실 가족들이 스페인 황태녀 부부를 맞이했다. 모두 끝난 직후 앤드루 왕자는 이탈리아 공화국을 방문해 대접을 받는다. 앤드루 왕자가 방문이 끝나고 런던에 복귀하였을때 여왕이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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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행렬
80일간 영국을 통치하고, 최전성기를 누리며 청소년 시기에 갑작스럽게 왕위에 올라 미숙했으나 지금은 위엄있고 가장 자랑스러운 군주로써 영국을 통치하고 하느님의 곁으로 가신다
—  BBC
10월 17일 오후 6시 35분 영국을 대표하는 여왕 빅토리아가 승하 하셨습니다. 빅토리아 여왕폐하는 영국을 80일간 통치했다고 합니다
—  itv
여왕 폐하의 죽음에 우리 방송국 일동은 왕실에 애도를 표합니다.
—  ABC
모든 영국인들이 부모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영국 운영부

빅토리아 3세 여왕은 스페인 황태녀 부부의 접견을 마친 직후 갑작스럽게 쇠약해지더니 오후 6시 45분 버킹엄궁전에서 승하하였다. 공식적인 사망원인은 노환으로 밝혀졌으나 과도한 직무로 인한 스트레스도 한몫 한다고 전해졌다. 여왕이 생전에 참여한 공식행사만 약 280개 방문한 국가만 약 50곳으로 매우 많았다. 정부는 10월 17일부터 10월 21일까지 국가애도기간 및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여왕은 죽기전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왕이 아니다. 새로운 조지 왕세자가 앞으로 위대한 군주로 군림할것이다.
—  여왕의 유언

빅벤과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폴 대성당등 전국의 종들이 울리기 시작했고 웨일스 공 조지가 조지 7세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왕위에 오른 조지 7세는 대국민 연설을 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는 80일이라는 기간 동안 나라를 이끌어주신 여왕 폐하가 승하하셨습니다. 여왕 폐하는 안정적인 통치로 국가를 부흥시키시고 또 굳건히 지키셨습니다. 하지만 슬픔을 뒤로하고 미래로 향해야 합니다. 저는 긴 기간 동안 왕세자로 지내고 제 경험들을 활용해 이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유지하고 더욱 번영시킬 것입니다. 또한 그전과는 다른 많은 변화들이 있을 것입니다.
—  King George VII

빅토리아 3세 여왕의 장례식은 당일 밤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거행됬으며 먼저 세상을 떠난 앨버트 공 옆의 안장되었다.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재위 30일, 골든 주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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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주빌리 기념 공식초상화
하느님의 은총으로, 영국의 여왕 이자 인도의 여제, 영연방의 수장이신 빅토리아 여왕폐하는 2021년 08월 28일 기준 재위 30일을 맞이해 영국과 영연방, 인도제국과 영국 동맹국에 기념우표가 발행됩니다. God Save the Queen
—  골든 주빌리 기념 BBC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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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주빌리 기념 우표

2021년 08월 28일, 여왕은 버킹엄 궁전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것으로 즉위 30일(골든 주빌리)의 일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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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성찬례에 참여한 여왕

여왕은 다이아몬드 주빌리 일정중 하나로 감사성찬례를 참여하였다. 이후 버킹엄 궁전 앞 일대에서 각종 군기분열식, 퀴즈 게임이 열렸으며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를 구경했다.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재위 60일, 다이아몬드 주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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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주빌리 기념 공식초상화

2021년 09월 26일, 여왕은 즉위 60일(다이아몬드 주빌리)를 맞이한다. 영국 군주중 최초로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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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성찬례를 참가하기 위해 세인트폴대성당에 도착한 여왕

여왕은 다이아몬드 주빌리 일정으로 감사성찬례를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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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길거리를 행진하는 웨일스 공 조지와 요크 공 앤드루, 에드워드 왕세손

여왕의 장남인 웨일스 공 조지, 차남인 요크 공 앤드루, 손자인 에드워드 왕세손이 말을 타고 행진식을 거행했으며 많은 인파가 몰렸으며 시민들은 환호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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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킹엄 궁전 가든파티

버킹엄 궁전에서 가든파티가 열려 많은 귀족, 평민들이 참가하였고 버킹엄 궁전 정원에서 낚시, 각종 경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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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벤 앞에서 행진하는 영국군

영국군과 인도군, 영연방 군인들이 빅벤과 웨스트민스터궁전 일대에서 행진식을 열었으며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았다. 이후 퀴즈게임과 불꽃축제를 끝으로 다이아몬드주빌리 행사가 폐막하였다. 많은 국민들이 환호의 메시지를 보냈다.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자녀


자녀이름출생배우자/자녀
1남조지 7세
(The Prince of Wales)
2021년 08월 11일메리
에드워드 4세
2남제2대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The Duke of York)
2021년 09월 04일요크 공작 부인 앨리스
요크 공녀 엘리자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