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선국 인종"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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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 '''늘 자비롭고 너그러운 군주셨으며 온 백성의 총애를 받으셨다. 그러므로 인종이라 묘호를 정한다.''' | '''2023년 3월 11일, 인종의 묘호가 확정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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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2대 국왕.''' 묘호는 인종(仁宗), 시호는 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 휘는 경(曔), 연호는 경진(更進).
  
'''조선의 제2대 국왕.''' 묘호는 인종(仁宗), 시호는 '''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이고 휘는 '''경(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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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국 태조|태조]]와 [[현빈심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대조선국 태조|태조]]가 즉위한 이후 [[조선 왕조]]가 개국되며 조선 초대 왕세자(王世子)에 책봉되었다. 왕세자 재위 시절 많은 병증이 있었다. 부왕 [[대조선국 태조|태조]]의 승하 이후 백성들의 많은 지지속에서 56세의 나이로 보위에 올랐지만, 조선의 문화 컨텐츠가 하나 둘 붕괴되고 있을때 [[대조선국 인종|인종]]이 별다른 손을 쓰지 않아 조선은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재위 29일차인 2023년 3월 10일, 향년 72세로 승하하였다.
  
[[대조선국 태조|태조]]와 [[현빈심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56세의 나이로 즉위하였으며 온 백성의 총애와 사랑을 받았고 늘 베풀줄 알고 국가를 위해선 뭐든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늦은 나이로 즉위하여 얼마 재위하지 못한 채 향년 72세로 훙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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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왕조.png|width=30]] '''업적'''==
  
==[[파일:현재2.png|width=30]] '''즉위전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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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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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 복구 지휘
  
2022년 11월 8일, [[대조선국 태조|태조]]와 [[현빈심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27일간 왕세손으로 있다가 증조부 [[환종]]이 왕위에서 내려오며 아버지 [[대조선국 태조|태조]]가 왕위에 올랐다. 이후 12월 11일 조선의 왕세자로 공식 책봉되었다. 이후 12월 17일에 광주 이씨의 [[휘빈이씨]]를 세자빈으로 맞이한다.
+
'''〈 외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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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공화국 전쟁 지휘
{{인용문| '''세자 저하께서 몸이 편찮아지셨으며 고열(高燒)이 나셨다. 세자 저하께선 동궁전 자선당 침전에 저녁부터 누우셨으며 병상이 악화(惡化)되고 있었다.''' |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1권''' }}
 
{{인용문| '''세자 저하께서 오후 4시 40분 진찰을 하였는데 고열(高燒)이 지속되고 정신이 혼미하시고 기침은 날이 갈수록 커졌고 이목구비에 출혈이 반복되어 주상전하께서 내의원(內醫院)을 만드셨으며 혜민원 어의가 겸직하게 하셨다. 초대 어의인 정어의가 밤에 급히 도착하여 세자저하에 몸을 진찰(診察)하고 탕약(湯藥)을 올렸다.''' |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1권''' }}
 
{{인용문| '''세자저하께서 병상이 회복(回復)되고 있으나 아직 완전히 회복(回復)되진 않았다. ''' |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1권''' }}
 
 
 
인종은 '''왕세자일 때부터 많은 병'''을 겪고 있었으며 아픈일이 많아 세자시강원을 빼먹는 일도 많았다. 세자빈이던 [[현빈심씨]]가 세자를 잘 간호하였다고 전해져내려온다. 내의원이 동궁전에 설치된 만큼 어의가 세자의 거처인 자선당으로 가는일이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고 한다. 그러다 12월 27일, 아들 [[대조선국 성종|성종]]을 얻게된다. 아들을 얻은 세자는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하지만 세자빈 [[휘빈이씨]]가 당시 주상이던 아버지 [[대조선국 태조|태조]]와 왕후 [[신덕왕후]]와 사이가 멀어지고 있었으며, [[신덕왕후]]가 화난 채로 자선당에 찾아와 [[휘빈이씨]]의 종아리를 칠려하자 [[대조선국 인종|인종]]과 [[대조선국 성종|성종]]이 말렸다고 한다.
 
 
 
결국 부인 [[휘빈이씨]]가 1월 5일 세자빈 지위에서 폐위되고 병이 걸려 사망한다. 1월 7일 문경 서씨의 [[정안왕후]]를 새 세자빈으로 맞이하였다. 하지만 [[정안왕후]]는 왕실 적응이 어려워 '''각종 정신 질환'''을 겪었기 때문에 인종은 탐탁치 않아하였다. 이후 2월 1일부터 2월 5일까지 대리청정을 하며 '''텍사스 전쟁을 승전'''으로 이끌었다.
 
 
 
2월 10일에는 지밀상궁 백씨가 인종의 승은을 입어 세자후궁이 되었으며 그녀는 훗날 [[현덕왕후]]가 된다.
 
 
 
==[[파일:현재2.png|width=30]] '''조선 국왕 즉위'''==
 
 
 
국왕으로 즉위한 이조는 '''대조선국을 선포'''하고, '''[[조선 왕조]]를 창립'''하며 '''조선의 초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아버지가 사전 이야기도 없이 갑작스럽게 양위하여 많은 짐을 가지게 된 태조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사실상 상왕으로 물러나있던 아버지의 왕족 지위를 폐위시키고, 평민으로 신분을 격하시켰다. 이때 '''패륜 행위'''라는 욕을 먹기도 했으나 당시 민심이 흉흉하던 [[환종]]의 '''폐위가 꼴 좋다는 반응'''도 많았다. 다음날인 11일 장남 이경을 조선의 왕세자로 책봉한다.
 
 
 
2022년 12월 12일, 아버지 이하응이 갑작스러운 의문사로 사망한다. 태조는 아버지 이하응을 [[환종]]으로 추존하였다. 세자빈 [[현빈 심씨]]의 사망 이후 내명부가 비어있자 당시 왕대비던 [[의혜왕후]]가 간택을 통하여 안동 김씨의 [[신의왕후]]와 나주 임씨의 [[신덕왕후]]를 각각 왕후와 종1품 귀인에 책봉하였다. 왕후 김씨, 귀인 임씨가 태조와 나이차이가 30~40살이 났기 때문에 '''웃음 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2022년 12월 17일, 광주 이씨의 [[휘빈 이씨]]가 세자빈으로 책봉되며 태조는 며느리가 생겼다. 태조의 재위기간은 종교 탄압이 말할 수 없을정도로 매우 많았다. 12월 18일 가톨릭 신자들이 대대적으로 처형당하거나 탄압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를 '''덕흥 박해'''라고 한다. 19일 [[태조]]와 [[신의왕후]]의 혼례가 예정되어있었으나 [[신의왕후]]가 고뿔에 걸려 혼례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이에 태조는 [[신의왕후]]를 왕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당시 귀인이던 [[신덕왕후]]를 왕후로 책봉하였다. 폐위된 [[신의왕후]]는 당일 향년 20세로 사저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훗날 손주라 볼수 있는 [[대조선국 성종|성종]]때가 되서야 왕후로 복권된다.
 
 
 
12월 20일, 아버지 [[환종]]에 이어서 왕대비던 어머니 [[의혜왕후]]가 훙서하였다. 태조는 의혜왕후라는 시호를 어머니에게 내렸다. 27일 [[신덕왕후]]가 세자빈 [[휘빈 이씨]]를 까다가 걸려 '''태조는 [[신덕왕후]]를 교태전에 유폐'''시켰다. 하지만 유폐 이후 태어난 세손 [[대조선국 성종|성종]]과 세자빈 [[휘빈 이씨]]가 품위가 떨어지며 날이 갈수록 언행이 심해지자 태조는 [[신덕왕후]]의 유폐를 해제해주고 많은 영향력을 실어주었다. 이후 [[태조]]와 [[신덕왕후]]는 세자빈 [[휘빈 이씨]]와 사이가 '''안좋아질대로 안좋아졌다.'''
 
 
 
1월 5일, 결국 세자빈 [[휘빈 이씨]]가 자진해서 폐위를 요청하여 태조는 [[휘빈 이씨]]를 세자빈에서 폐위시켰다. 이후 폐빈 이씨라 불리던 그는 폐위된 당일 사저에서 사망하였으며 훗날 자신의 아들인 [[대조선국 성종|성종]]때가 되서야 세자빈으로 복권되었다. 1월 7일 새며느리로 문경 서씨의 [[정안왕후]]가 세자빈으로 책봉된다.
 
 
 
1월 13일, 조정의 요청으로 태조는 혜민원을 '''폐지'''하였다. 당시 혜민원은 조선의 의료시스템을 총괄하고 있었는데 여러 문제가 나오자 결국 폐지시켰으며 국가의 의료시스템을 민간 상점들에게 맡기었다. 이건 훗날 조선의 의료시스템과 복지시스템이 더 효율적이고 더 편리하게 바뀌는 원인이 되었다. 다음날 [[휘빈 이씨]]의 소생이던 원손 [[대조선국 성종|성종]]을 태조는 여러 시험을 거쳐 조선의 왕세손으로 책봉한다. 실록에 따르면 세손 책봉식 이후 여러 연회가 열렸으며 매우 성대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1월 16일에는 손자며느리로 한양 토씨의 [[원경왕후]]를 보았다. 1월 22일, 태조는 재위 50일 금경축일을 맞이하였다. 조선과 텍사스의 전쟁이 막 진행되던 시기 2월 1일부터 2월 5일까지 세자 [[대조선국 인종|인종]]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다.
 
 
 
{{인용문| '''주상전하께서 오후 11시 42분에 景福宮 강녕전(康寧殿)에서 승하(昇遐)하셨다. 향년(享年) 86세이시며 사인은 노환(老患)이다.''' |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4권''' }}
 
 
 
2월 10일 태조와 [[신덕왕후]]가 금혼식을 맞이하였는데 몇시간도 지난 오후 11시 42분에 강녕전에서 향년 86세로 훙서하였다. 약 일주일간 국상이 진행되었으며 묘호는 창업군주라는 의미로 '''태조(太祖)'''로 정해졌다.
 
 
 
==[[파일:현재2.png|width=30]]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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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ordercolor=#972000; width=600px; table align=center><#972000><:> {{{#ffffff '''자녀'''}}} ||<#972000><:> {{{#ffffff '''이름'''}}} ||<#972000><:> {{{#ffffff '''출생'''}}} ||<#972000><:> {{{#ffffff '''배우자/자녀'''}}} ||
 
||<#E6FFFF> 1남 ||<#E6FFFF> [[대조선국 인종|인종]] <br> {{{-2 (貞順公主)}}} ||<#E6FFFF> 2023년 4월 8일 ||<#E6FFFF> [[휘빈 심씨]], [[정안왕후]], [[현덕왕후]] <br> [[대조선국 성종|성종]] ||
 
 
 
==[[파일:현재2.png|width=30]] '''평가'''==
 
 
 
・학구열 : 공부나 학업에는 관심이 매우 적었다고 한다.
 
 
 
・성품 : 강인하고 단호하며 냉정한 성격이였으며, 늘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타입이였다.
 
 
 
・치적 : 조선의 초기 시스템을 모두 구성하였으며, 체계적인 정치시스템으로 왕권을 강화시켰다.
 
 
 
・외모 : 피부색이 어두웠다고 하며 고령이 되어서도 검은머리가 있었다고 한다.
 
 
 
・가정사 : 아들 [[대조선국 인종|인종]]과 손주 [[대조선국 성종|성종]]을 휼륭한 군주로 만들기 위해 여러 시험을 치루게 하였으며 말년엔 매우 이뻐하였고 그 결과 아들과 손주는 '''성군이 되었다.''' 허나 부인과 며느리들에겐 관심없고 딱딱하고 냉정하게 굴었다고 한다.
 

2023년 12월 5일 (화) 00:14 기준 최신판

조선왕조.png
대조선국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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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국 국왕 대리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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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조
인종
영조조
헌종
조선 제2대 국왕
인종 | 仁宗
인종어진2.png
출생2022년 11월 8일
대조선국 한양 경복궁 자선당
즉위2023년 2월 10일
대조선국 한양 경복궁 근정전
사망2023년 3월 10일 (향년 72세)
대조선국 한양 경복궁 강녕전
후릉(厚陵)
재위기간2023년 2월 10일 ~ 2023년 3월 10일 (29일)
본관전주 이씨
경(曔)
부모부왕 태조, 모후 현빈심씨
형제자매없음
배우자세자빈 휘빈이씨, 정비 정안왕후, 계비 현덕왕후
자녀장남 성종
종교유교
신장175cm
묘호인종 (仁宗)
시호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
연호경진(更進)

조선의 제2대 국왕. 묘호는 인종(仁宗), 시호는 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 휘는 경(曔), 연호는 경진(更進).

태조현빈심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태조가 즉위한 이후 조선 왕조가 개국되며 조선 초대 왕세자(王世子)에 책봉되었다. 왕세자 재위 시절 많은 병증이 있었다. 부왕 태조의 승하 이후 백성들의 많은 지지속에서 56세의 나이로 보위에 올랐지만, 조선의 문화 컨텐츠가 하나 둘 붕괴되고 있을때 인종이 별다른 손을 쓰지 않아 조선은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재위 29일차인 2023년 3월 10일, 향년 72세로 승하하였다.

조선왕조.png 업적

〈 내정 〉
・ 테러 복구 지휘

〈 외교 〉
・ 텍사스 공화국 전쟁 지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