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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논쟁의 핵심은 '사물을 수단으로 바라보느냐, 목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견해가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가톨릭]]와 [[정교회]]에서 성화나 성상에 대해 우상숭배와 연결해서 생각하는 분위기가 없다는 것은 이 사물들을 마치 [[부적]]처럼 그 자체에 무슨 신적 영험이 있거니 하고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느님에게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만일 [[십자고상]]이나 [[예수]]상, 제대에 절하면서 그 성상과 제대가 어떤 신비한 힘을 나에게 줄 것이라고 믿거나 바란다면 그것은 분명 우상 숭배나 다름없는 것일 테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가톨릭]]/[[정교회]] 신자는 없다.성상에 대한 가톨릭 교리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명백히 선언되었다. | 사실, 이런 논쟁의 핵심은 '사물을 수단으로 바라보느냐, 목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견해가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가톨릭]]와 [[정교회]]에서 성화나 성상에 대해 우상숭배와 연결해서 생각하는 분위기가 없다는 것은 이 사물들을 마치 [[부적]]처럼 그 자체에 무슨 신적 영험이 있거니 하고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느님에게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만일 [[십자고상]]이나 [[예수]]상, 제대에 절하면서 그 성상과 제대가 어떤 신비한 힘을 나에게 줄 것이라고 믿거나 바란다면 그것은 분명 우상 숭배나 다름없는 것일 테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가톨릭]]/[[정교회]] 신자는 없다.성상에 대한 가톨릭 교리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명백히 선언되었다. | ||
{{인용문1|"그리스도의 성상과 그 동정 성모와 성인들의 성상을 모시며, 특히 성당내에 모시는 것이 옳다. 또 모든 성상에 경의를 표하여야 한다. 이는 성상 자체에 무슨 신성이나 덕능이 있어서가 아니며, 또 성물 자체에 무슨 기도를 드리려 해서가 아니다. 일찍이 이교도들이 우상에게 무슨 희망을 두듯이, 성상에게 무슨 미신적 신뢰를 두어서가 아니다. 다만 성상이 상징하는 대상에게 무슨 존경의 뜻을 표시할 뿐이다. 즉 우리가 성상에 입맞추거나 그 앞에서 모자를 벗거나 무릎을 꿇는 것은 그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숭배하고, 성모와 여러 성인들을 공경하는 것이다"(Sess. XX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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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7일 (목) 18:22 판
개요
우상숭배(偶像崇拜, idolatry)는 각종 자연물, 인물로 초자연적 존재의 형태를 만들거나, 또는 그것을 상징하는 형태로 만들어 숭배하는 것을 지칭한다. 이러한 행위는 세계의 거의 모든 민족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통 종교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며,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도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는 주로 금기시되는 행위이다. 비 아브라함 계통 종교들에서는 보통 금기의 정도가 덜하거나 많이 없는 수준. 단, 같은 우상숭배 금지를 다루는 종교들에서도 세부적인 개념 정의나 실제 적용에서는 종교간에 차이가 많이 난다. 상세한 점은 후술.
종류
토테미즘
독수리 동상, 장승 등을 세워놓고 비는 행위.
신체숭배
사물이나 특정한, 혹은 몇몇 종류의 생물체에 신령(神靈)이 깃들어 있는 신체(神體)라고 여기고 숭배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런 경우가 대표적인 우상숭배이다. 신토나 샤머니즘 등에서 이러한 개념이 존재한다. 신체는 자연물이 되기도 하며, 석상이나 제단과 같은 인공물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원시시대 일부 유물 중에서 신체의 일부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있는데 이는 같은 맥락이다. 특히 남성, 여성의 생식기를 극대화 시키는 다산의 상징이 많다. 참고로 이는 현재도 힌두교 시바 신의 사당 등지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종교적 상징물
교리적으로 신체(神體)와 같은 관념은 부정하지만 단순히 일반 신도들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특정한 상징물을 만들어 제시한다. 이러한 상징은 석상과 같은 구체적인 사물이나 인물을 묘사하는 그림에서, 단순한 무늬나 도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단 하나의 상징물조차 존재하지 않는 종교는 오히려 드물거나, 대부분 그 종교에서도 극단주의 종파에 해당한다. 보통 우상숭배 금지 교리를 지닌 종교들에서도 대부분 이 종교상 상징물은 우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우상인지, 종교상 상징물인지의 정의에 대한 세부적 차이는 교파간/종교간마다 상당히 크게 존재한다.
화물 신앙
Cargo Cult
오지의 부족민들이 생전 처음 보는 총이나 비행기, 자동차 등을 보고 그 사물을 본따 만들어 그 사물을 떠받드는 사상이다. 파푸아뉴기니 등지에서 특히 자주 보이는 현상인데, 이는 오지에 비행장을 건설하고 비행기들이 드나들자, 원주민인들이 그것을 신이라고 생각하거나, 마법과 같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여겨 자체적인 종교 의례를 도입하고 신봉하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화물 신앙 문서로.
우상숭배 정의에 대한 종교별 차이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경우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 자체를 매우 큰 죄로 여긴다. 특히 개신교와 유대교의 경우 십계명에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내용이 있으며 가톨릭, 정교회에서도 십계명에 직접적으로 나와있지는 않으나, 1계명 안에 우상숭배 금지 교리도 들어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슬람에서도 일명 '쉬르크' 라 하여 알라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무거운 죄악으로 보고 있다. 구약성서를 보면 야훼의 징벌이 우상숭배에 대해선 가차없이 내려질 정도로 엄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를 주는 사이 40일이 지나자 산 아래에서 모세를 애타게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자 "우상숭배를 한 백성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모세 너만 살려 그 후손으로 새로운 백성을 세우겠다"고 말했을 정도. 모세는 이에 대해 그러겠다면 차라리 자신을 기록말살형해 달라고 대신 용서를 간청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간신히 용서받는다. 물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주동자들은 가차없이 처형된다. 유대교의 일부 전승에서는 십계명이 새겨진 비석을 던져 금송아지를 부수자 금송아지를 만든 자들과 숭배한 자들이 전부 그자리에서 죽었다는 전승이 있고, 성경의 출애굽기32장 26~28절에 따르면 모세의 명령을 받은 레위 지파에 의해 몰살당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아브라함 계통 종교들이 우상숭배에 엄격한 이유에 대해 해당 종교계에서는 고대 레반트 지역에서 형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종교들이 현대 기준으로도 매우 추잡하거나 타락한 의식들을 동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하지만, 정설은 커녕 역사적으로 인정되는 학설조차 아니다. 일단 고고학이나 역사학에서는 어떤 민족이나 문화에 대한 정성적 가치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에 추잡하다거나 타락했다거나 하는 평가로 해당민족에 대한 모욕 자체를 하지 않는다.
역사적 정설에 따르면 고대 레반트 지역은 인류문명의 발상지로서 최초의 도시국가들이 나타난 지역이며 이곳에는 동시기에 평균 20~30개에 해당하는 1만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도시국가들이 존재했다. 이들 도시국가들이 수천년간 멸망하고 다시 재건되고 하면서 수천개의 도시국가들이 역사에 기록을 남겼는데 놀랍게도 이 도시국가들마다 모두 각각의 신이 있었다. 또한 이 도시국가들이 서로 동맹과 전쟁을 거듭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어 비슷해져갔다. 그러나 고대의 정치,문화적 기술의 한계로 통일적인 판본을 이룰만큼 거대한 정치체계를 유지하지 못했으며 연속된 문화교류를 이끌지도 못했으므로 후대의 그리스-신화 같은 완전한 종교적 통합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종교들이 주고받은 부분중에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는데 이들은 해당 도시에 종속된 수호신으로서 바빌론-아카드 수메르-엘과 같은 1도시 1신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며 해당 도시 중심에 거대한 신전과 성상이 존재했었다는 것다. 이 신전과 성상은 도시의 흥망과 함께하는 것이기에 당시 전쟁당시에도 이 성상의 축소물들을 들고나가 사기를 돋구는 용도로 쓰는 비교적 작은 사이즈의 종교적 우상들도 다수 발굴되고 있다. 물론 작다고 해도 소4마리가 이끄는 마차에 실릴만한 5미터 가량의 입상들이다.
반면 당시 유대인들은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정주된 거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치 몽고의 신앙인 텡그리교의 사제들처럼 이들의 신앙을 이끄는 유대인들의 사제계급 마저도 거처가 잠정적인 것이기에 신전을 만들 수도 없고 거대한 성상을 제작할 수도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이런 사제계급들은 인구유출에 대한 경계였는지, 아니면 접경지역 특유의 흔한 선민주의적 서사 때문인지 자신들과 다른 정주민족의 모든 것을 저주하고 비난했는데 그 흔적이 정주민족의 음식인 "돼지"금지. 저주받은 카인의 자손들이나 사는 "도시"에 대한 불경, 곡물제사 금지- 새끼양 번제의식 확립등과 같은 많은 유목민족의 계율들을 만들었는데 :우상숭배" 역시 정주민족이나 가능했던 "신전" "성상" 자체에 대한 금지를 말하는 것이다.
유목민족의 종교에서 정주민족의 풍습을 부정시하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흔하게 발견된다. 이를테면 텡그리교에서 인간은 고기를 먹고 식량은 "풀"을 먹기 때문에 풀을 먹는 "초자"들은 인간이 아니며 그렇기에 이들에 대한 어떠한 행동도 인간에 대한 도덕률에 구속되지 않으며 그렇기에 얼마든지 "도축"해도 된다는 교리같은 것들이다.
아브라함계 종교에서 이 유목민족의 계율과 현재 정주생활을 하고 있는 현실간의 갈등은 종교사적으로나 종교학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도시국가 예리코의 점령 이후 유대인들 스스로 유목민족에서 정주민족으로 변화하였고 정주민족들에게 광범위하게 퍼트려지기까지 했지만 이들의 종교 교리는 정주민족에 극도로 적대적인 유목민 종교의 교리 그 자체였기 때문에 이후에도 수많은 종교사적 사건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를테면 동로마의 성상파괴운동이라던가, 오스만의 금주령, 하나피학파의 금연령 같은 것들인데 이러한 사건들은 수만가지 일어난 사건들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현재 아브라함계 종교 전부는 어떤 형태든지 "신전" "성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이 유목생활을 하지 않고 정주생활을 하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렇기에 이들은 이 계율들을 액면 그대로 해석할 수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모호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유대교
유대교에서는 이같은 구약성경(타나크)의 우상숭배 금지교리에 따라 우상을 엄금하지만, 역사적으로도 성전 내의 계약궤 위에 장식으로 만든 천사상을 비롯해 성전 내 각종 종교적 장식 등은 허용해왔고 지금도 메노라나 시나고그(회당) 내의 벽감 부조 그림, 글씨 새기기 같은 종교적인 장식예술을 허용한다. 또한 구약 율법서의 계명에 따른 '메주자'라는 종교적 도구가 있는데, 집안 문가에 성경구절을 예술적인 부조, 그림들과 같이 작은 판에 붙여놓고 집안에서 오갈 때마다 이를 가볍게 만지면서 신앙을 되새기는 식으로 사용한다. 우상 대신 모세5경인 토라 경전을 매우 신성시한다. 여러모로 개신교보다도 종교적 상징물에 관용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독교
보편교회(가톨릭,정교회)
9문: 우상숭배란? 9답: 우상숭배는 하느님께만 속해 있는 흠숭 신에게만 바치는 경배, 즉 '신앙'을 말한다.이라는 최고의 경배를 피조물, 이를테면 조각상, 형상 혹은 사람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11문: 이 구절은 모든 종류의 형상을 금지합니까? 11답: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이 숭배하는 것과 같이, '경배를 받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 신의 형상에만 해당됩니다.' 그런즉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직접 모세에게 명하시어 예컨대 언약궤를 위한 케루빔(천사상)과 사막의 구리뱀과 같은 형상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
교황 성 비오 10세가 저술한 가톨릭 교리문답서의 제 1계명 해설 중. |
가톨릭에서는 우상의 정의를 어느 표상이나 사물로 표현되는 거짓 신(神)에게 그 신이 그런 곳에 내재한다고 믿고 하느님께 드릴 예배를 바치는 행위로 규정한다. 출처 : 가톨릭 대사전, 우상숭배. 따라서 성상(가톨릭적 종교 목적의 축복받은 상, 성모상, 예수성심상, 천사상 등) 공경과 성상을 통한 신앙생활 등을 온전히 인정한다.
보편교회에서 주로 쓰이던 성상이 '우상숭배인가 단순히 성스러운 상징인가?' 하는 문제는 중세 초기의 동로마 제국 내에서 큰 분열을 낳은 논란이었다. 성상파괴운동은 우상숭배 보다는 기독교 교리에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류가 된 기독교 교리는 예수에게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함께 있다는 것이고 그 이외의 주장은 배척하는데, 성상파괴운동 시기의 동로마 제국의 몇몇 신학자들은 성상에는 오직 사람의 모양만이 있기에 예수의 인성만이 나타나고 신성은 배제되므로,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는 네스토리우스파의 주장에 부합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성상파괴운동을 주장하였다. 물론 내부에서도 성상이나 이콘이 우상숭배인가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엄청난 논란이 있던 적이 있다.
이 문제는 정치적 문제로도 번져서, 726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 레오 3세의 성화상 파괴 칙령이 발표되었고 제국은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된다. 멀쩡히 성화상 공경을 유지하던 서방교회 역시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843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 의해 다시 성화상 공경이 승인되기까지 120년간 성상옹호자와 성상파괴론자 사이의 극심한 대립으로 말미암아 박해와 혼란을 겪었다. 정교회는 이 판결이 "이단자를 이긴 정통 신앙의 승리"라고 해석하고, 매년 사순시기 첫 번째 주일을 축일로 기념해 오고 있다. 매년 이 날이 되면 옛날 신앙의 선배들이 성상 파괴주의자들의 공격에 용감하게 대항하여 순교의 피를 흘리며 싸워 이겨서 이런 승리를 얻게 되었으며 정교회 신앙을 지켰다고 가르친다. 단, 정교회에서는 이 시기의 영향으로 성상보다는 이콘 문화가 훨씬 발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이콘 문화가 더 발달했다 뿐이지, 입체적인 조각 성상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성상파괴론자들과의 타협에 의한 결과인 것은 결코 아니다.
한편 신성과 인성을 분리했다며 매도당한 네스토리우스파는 초기에 다른 동방 교회 교파들처럼 성상을 사용한게 사실이다. 다만 15세기경부터 이슬람 세력에 포위당하는 처지에 놓이면서 생존을 위해 성상 사용을 포기하고, 단순한 십자가 형상만을 존숭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후 가톨릭과의 일치를 놓고 분열한 뒤로 신파(아시리아 동방교회)는 계속 성상을 꺼리고 있으나, 구파(칼데아 가톨릭)는 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원이 되었으므로 성상 사용을 다시 재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개신교
개신교의 경우 종교개혁 시기부터 우상숭배에 매우 부정적이었으며, 지금도 이를 가지고 가톨릭과 정교회를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우상숭배 문제에 대해서 가톨릭과 정교회는 하느님이 아닌 존재나 대상에 초점을 두어 본다면, 개신교는 형상(십자고상, 예수상, 성모상 등)을 만들어 그것을 이교가 아닌 기독교 예식용으로 쓰는 것까지 우상숭배의 범주로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돈, 권력, 가족 등등 무엇이든지 예수 그리스도보다 다른 무언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거나 특정 상황에서 다른 무언가를 더욱 의지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에 해당한다.
대체로 울리히 츠빙글리와 장 칼뱅으로 대표되는 개혁주의(장로회 계열)에서 가장 민감해하는 편인데, 개혁주의 개신교에서는 원래는 예배당 안/밖의 십자가조차 없이 매우 무미건조한 실내로 만드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독일과 스위스, 네덜란드에서는 종교개혁 당시에 서방판 성상파괴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특히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일명 '베일던스토름'(beeldenstorm) 사건은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을 지경이다.
다만 대다수 개신교 교파는 아예 상징할 것이 없으면 곤란하기에 십자가를 예배당에 걸어놓는 것을 용인하며, 일부 극보수 성향이 아닌 이상 교육용으로 성화를 사용하는 것은 대체로 묵인한다. 당장 대한민국에서도 대형교회와 개척교회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들을 가보면 십자가는 물론이고 예수가 양치는 그림 정도는 쉽게 볼 수 있다.
의외로 칼뱅주의자들은 모든 시각적 예술을 교조적으로 금하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네덜란드의 경우 종교개혁 이전보다 오히려 공화국으로 독립한 16세기에 비종교적인 회화나 판화가 크게 발달하여 미술의 황금기로 통한다. 영미권의 청교도들도 대다수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았고, 올리버 크롬웰은 자신의 초상화를 주문할 때 얼굴에 난 사마귀까지 다 정직하게 그려달라고 할 정도였다. 이슬람과 비교하면 노골적인 종교 예술만 금했을 뿐, 세속적 시각 예술에 대해선 나름 관용적인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내의 우상숭배 범위관련 논쟁
사실, 이런 논쟁의 핵심은 '사물을 수단으로 바라보느냐, 목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견해가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가톨릭와 정교회에서 성화나 성상에 대해 우상숭배와 연결해서 생각하는 분위기가 없다는 것은 이 사물들을 마치 부적처럼 그 자체에 무슨 신적 영험이 있거니 하고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느님에게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만일 십자고상이나 예수상, 제대에 절하면서 그 성상과 제대가 어떤 신비한 힘을 나에게 줄 것이라고 믿거나 바란다면 그것은 분명 우상 숭배나 다름없는 것일 테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가톨릭/정교회 신자는 없다.성상에 대한 가톨릭 교리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명백히 선언되었다.
"그리스도의 성상과 그 동정 성모와 성인들의 성상을 모시며, 특히 성당내에 모시는 것이 옳다. 또 모든 성상에 경의를 표하여야 한다. 이는 성상 자체에 무슨 신성이나 덕능이 있어서가 아니며, 또 성물 자체에 무슨 기도를 드리려 해서가 아니다. 일찍이 이교도들이 우상에게 무슨 희망을 두듯이, 성상에게 무슨 미신적 신뢰를 두어서가 아니다. 다만 성상이 상징하는 대상에게 무슨 존경의 뜻을 표시할 뿐이다. 즉 우리가 성상에 입맞추거나 그 앞에서 모자를 벗거나 무릎을 꿇는 것은 그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숭배하고, 성모와 여러 성인들을 공경하는 것이다"(Sess. XX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