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선국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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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png
조선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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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태조
제2대
영종
제3대
단종
조선 초대 국왕
太祖
태조어진.png
출생2022년 9월 30일
대조선국 한양 경복궁 자선당
즉위2022년 12월 4일
대조선국 한양 경복궁 근정전
사망2023년 2월 10일 (향년 86세)
대조선국 한양 경복궁 강녕전
정릉(貞陵)
재위기간2022년 12월 4일 ~ 2023년 2월 10일 (69일)
본관전주 이씨
조(鎺)
부모부왕 환조, 모후 의혜왕후
형제자매이벽
배우자세자빈 현빈심씨, 정비 신의왕후, 계비 신덕왕후
자녀장남 인종
종교유교
신장183cm
묘호태조(太祖)
시호성문신무정의광덕대왕(聖文神武正義光德大王)
서명이성계 싸인.png
연호덕흥(德興)

조선의 초대 국왕.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성문신무정의광덕대왕(聖文神武正義光德大王), 휘는 조(鎺), 연호는 덕흥(德興).

환조와 의혜왕후의 장남으로 태어나 왕세손(王世孫)으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왕세자(王世子)에 책봉되었으며, 무려 114일간 왕위를 기다리다가 2023년 7월 1일 73세 라는 역사상 가장 고령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명종의 재위 기간 초, 조선은 외세의 압박과 내부의 붕괴로 위태로웠지만 명종은 왕권을 안정시키고 조선을 정비하여 토대를 쌓았다.

조선왕조.png 업적

〈 정치 〉 ・ 사헌부와 승정원 재설치 ・ 과거제 재정비 ・ 한성판윤과 내의원 재설치 ・ 연호 재도입 ・ 효율적이며 실용적인 관직 확대

〈 경제 〉 ・ 경제와 토지 개혁

〈 문화 〉 ・ 카츠오브아이언 재오픈 ・ 조선 경기대회 개최

〈 교육 〉 ・ 성균관 폐지 ・ 홍문관 설치 ・ 세자시강원과 세손강서원 재설치

현재2.png 조선 국왕 즉위

국왕으로 즉위한 이조는 대조선국을 선포하고, 조선 왕조를 창립하며 조선의 초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연호는 덕으로 흥하다. 라는 뜻에서 덕흥(德興)으로 정하였다. 아버지가 사전적인 이야기도 없이 갑작스럽게 양위하여 많은 짐을 가지게 된 태조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사실상 상왕으로 물러나있던 아버지의 왕족 지위를 폐위시키고, 평민으로 신분을 격하시켰다. 이때 패륜 행위라는 욕을 먹기도 했으나 당시 민심이 흉흉하던 환종폐위가 꼴 좋다는 반응도 많았다. 다음날인 11일 장남 이경을 조선의 왕세자로 책봉한다.

2022년 12월 12일, 아버지 이하응이 갑작스러운 의문사로 사망한다. 태조는 아버지 이하응을 환종으로 추존하였다. 세자빈 현빈심씨의 사망 이후 내명부가 비어있자 당시 왕대비던 의혜왕후가 간택을 통하여 안동 김씨의 신의왕후와 나주 임씨의 신덕왕후를 각각 왕후와 종1품 귀인에 책봉하였다. 왕후 김씨, 귀인 임씨가 태조와 나이차이가 30~40살이 났기 때문에 웃음 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2022년 12월 17일, 광주 이씨의 휘빈이씨가 세자빈으로 책봉되며 태조는 며느리가 생겼다. 태조의 재위기간은 종교 탄압이 말할 수 없을정도로 매우 많았다. 12월 18일 가톨릭 신자들이 대대적으로 처형당하거나 탄압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를 덕흥 박해라고 한다. 19일 태조신의왕후의 혼례가 예정되어있었으나 신의왕후가 고뿔에 걸려 혼례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이에 태조는 신의왕후를 왕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당시 귀인이던 신덕왕후를 왕후로 책봉하였다. 폐위된 신의왕후는 당일 향년 20세로 사저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훗날 손주라 볼수 있는 성종때가 되서야 왕후로 복권된다.

12월 20일, 아버지 환종에 이어서 왕대비던 어머니 의혜왕후가 훙서하였다. 태조는 의혜왕후라는 시호를 어머니에게 내렸다. 27일 신덕왕후가 세자빈 휘빈이씨를 까다가 걸려 태조는 신덕왕후를 교태전에 유폐시켰다. 하지만 유폐 이후 태어난 세손 성종과 세자빈 휘빈이씨가 품위가 떨어지며 날이 갈수록 언행이 심해지자 태조는 신덕왕후의 유폐를 해제해주고 많은 영향력을 실어주었다. 이후 태조신덕왕후는 세자빈 휘빈이씨와 사이가 안좋아질대로 안좋아졌다.

1월 5일, 결국 세자빈 휘빈이씨가 자진해서 폐위를 요청하여 태조는 휘빈이씨를 세자빈에서 폐위시켰다. 이후 폐빈 이씨라 불리던 그는 폐위된 당일 사저에서 사망하였으며 훗날 자신의 아들인 성종때가 되서야 세자빈으로 복권되었다. 1월 7일 새며느리로 문경 서씨의 정안왕후가 세자빈으로 책봉된다.

1월 13일, 조정의 요청으로 태조는 혜민원을 폐지하였다. 당시 혜민원은 조선의 의료시스템을 총괄하고 있었는데 여러 문제가 나오자 결국 폐지시켰으며 국가의 의료시스템을 민간 상점들에게 맡기었다. 이건 훗날 조선의 의료시스템과 복지시스템이 더 효율적이고 더 편리하게 바뀌는 원인이 되었다. 다음날 휘빈이씨의 소생이던 원손 성종을 태조는 여러 시험을 거쳐 조선의 왕세손으로 책봉한다. 실록에 따르면 세손 책봉식 이후 여러 연회가 열렸으며 매우 성대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1월 16일에는 손자며느리로 한양 토씨의 원경왕후를 보았다. 1월 22일, 태조는 재위 50일 금경축일을 맞이하였다. 조선과 텍사스의 전쟁이 막 진행되던 시기 2월 1일부터 2월 5일까지 세자 인종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