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여 가톨릭 교회의 일부를 이루는, 그러면서도 동방 예법을 따르는 그리스도교-가톨릭 교회들의 총칭.
가톨릭과의 일치
동방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의 일부이므로 교리는 전체 가톨릭 교회와 완전히 동일하나, 예법에서 고유한 권리를 누릴 수 있으며, 자체적인 교구의 설립 및 주교의 임명이 가능한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다. 여기에서 예법은 전례만을 일컫지 않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언이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듯이, 이를테면 전례와 교회 규범과 영적 유산이 속한다. 전례형식 등 “외양”은 일부 예외적인 케이스를 제외하면 라틴전례보다는 정교회나 오리엔트 정교회 전례와 공통점이 많다. 에티오피아 가톨릭 교회를 제외한 모든 동방 가톨릭 교회는 기혼자도 사제로 서품받을 수 있다. 이 부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사제직이 그 본질 자체로 요구하는 것은 아니(사제생활교령 16)"라고 분명하게 언급하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가톨릭교회와 다른 별개의 교회나 교파가 아니며, 엄연히 로마의 교황을 수장으로 하는 완전한 가톨릭 교회이다. 당장 한국의 일반 천주교 평신도도 특별한 법적 장애가 없는 한 동방 가톨릭 교회의 전례와 성사에 제한 없이 참례할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쉽게 말해 천주교 신자의 미사 참례 의무 문제에서, 로마 전례에 따른 미사를 동방 가톨릭 교회의 미사로 대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신학적으로 완전 동일한 미사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교회의 성찬예배의 경우는 특수한 경우에만 인정한다. 정교회나 교황청과 일치를 이루지 못한 일부 전통 가톨릭 단체들과 달리 가톨릭 교회법 상으로 성사의 합법성(유효성과는 별개의 개념임)을 온전히 인정받기 때문.
가톨릭 교회 내에서 로마(라틴) 예법을 따르는 교회의 비율이 압도적이긴 하지만 로마 예법이 동방 가톨릭 교회의 고유한 개별 예법들보다 우월하다고 간주되지 아니하고, 동방 가톨릭 교회 소속 추기경(대부분 해당 교회의 총대주교 또는 상급대주교가 겸한다)에겐 콘클라베의 선거권과 피선거권 역시 동등하게 주어진다. 오히려 교황령으로 반포된 가톨릭 교회의 통일 교회법전은 동방 가톨릭 교회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교회법 제1조 “이 교회법은 라틴 교회에만 적용된다.”, 자치교회별로 그 예법을 보존하기 위한 별도의 자치법규가 적용되고 있다. 동방 가톨릭 교회법으로 총 23개 동방 가톨릭 자치교회가 인정되고 있는데, 동방 가톨릭 신자는 가톨릭 총 신자수 대비 1.5%가량인 1900~2000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그 기원을 살펴보면 정교회나 오리엔트 정교회의 일부가 교황수위권을 받아들이고 가톨릭 교회와 완전 상통(full communion)을 이루어 다시 일치한 경우가 많으므로 과거에는 '귀일(歸一)교회'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나, 마론파처럼 공식적으로 교황좌와의 일치가 한 번도 끊어지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교회도 있으므로 '귀일교회'는 동방가톨릭교회 전체를 아우르는 적절한 명칭은 아니다.
가톨릭 교회 입장에서 이들 동방 가톨릭 교회는 지역과 민족에 따라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온 풍부한 전례와 전통 유산을 간직한 중요한 지체로서 재발견되고 있으며, 교황청 동방교회성에서 이 교회들을 특별히 관리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IS 때문에 많은 동방 가톨릭 교회들이 2010년대부터 존립이 위협받는 실정이다. 교황청재단 고통받는(ACN, Aid to the Church in Need)(한국지부에서는 특히 이들 동방 가톨릭 교회의 위험한 상황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며 원조한다.
목록
동방 가톨릭 교회 중 신도 수가 제일 많은 교회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이며, 그 다음은 남인도 케랄라의 시로말라바르 가톨릭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동유럽 일대 및 레반트에 몰려 있으나, 시로말란카라와 시로말라바르 교회는 남인도 케랄라에, 이탈리아-알바니아 교회는 남부 이탈리아에 있다. 루테니아 교회는 원래 현재의 슬로바키아와 우크라이나 접경지에 해당하는 루테니아가 중심지였지만, 해당 지역이 소련에 합병된 이후 동유럽에서는 거의 소멸하고 현재는 미국 피츠버그를 중심지로 하고 있다. 아시리아 동방교회도 비슷하게 1940년 미국 시카고로 중심지를 옮겼지만, 75년 만인 2015년에 이라크 아르빌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