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왕국 Türk krallığı | |
위치 | |
건국 | 2018년 9월 23일 |
면적 | 783,356km² |
인구 | 42,832,000명 |
수도 | 앙카라 |
최대도시 | 이스탄불 |
정치체제 | 왕국, 단일국가, 왕 중심제 |
대통령 | atatürk |
공용어 | 터키어 |
화폐 단위 | 터키 리라 |
국가 | 독립행진곡 (İstiklâl Marşı) |
표어 |
터키 왕국
역사
그들은 강성한 국가를 세우고 번성하다가 BC 1200년경에 무너졌다. 그후 프리지아인과 리디아인에게 점령되었으나 동부지역은 토착왕조인 우라르투(아르메니아) 왕국 통치 아래 남아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이 BC 6세기에 이 지역을 차지했으며, 그 이후 그리스 헬레니즘 세력권 안에 들어갔다가 BC 1세기경에 로마에 넘어갔다. 아르메니아 왕국은 양대 세력인 로마 제국(뒤의 비잔틴 제국)과 동쪽의 파르티아 제국(뒤의 사산 제국) 사이의 완충국으로 남아 있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수도로 삼으면서 비잔틴 제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
11세기에 투르크 유목민의 한 집단인 오구즈족이 동쪽으로부터 침입해 들어왔다. 12세기에는 오구즈족의 일파인 카이족이 아나톨리아의 동부와 중부를 차지하고, 카이족의 오스만 1세가 오스만 왕조를 세웠다. 그들이 영토를 확장하는 초기 단계에 오스만 일족이 투르크족의 가지스(ghazis:비잔틴 제국에 대항해 싸우는 이슬람교 전사들)를 지도했다.
13~14세기 오스만족은 마침내 서부 아나톨리아와 남동부 유럽의 비잔틴 영토를 차지하고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는 발칸 국가들을 속국으로 삼았으며, 동부 아나톨리아의 투르크멘 공국을 점령했다. 15세기에는 더 나아가 발칸 속국들을 직접 통치하고,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여 유프라테스 강(동쪽)과 헝가리(서쪽)까지 영토를 넓혔다. 16세기말경에는 그 세력이 절정에 달해 발칸 제국과 중부 유럽의 헝가리,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 대부분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오스만 제국은 술탄 쉴레이만 1세(1494~1566)의 통치 이후로는 정치적·행정적·재정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1718년경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에서 투르크족을 축출했으며, 러시아는 1783년에 크리미아를 합병했다.
오스만 제국은 19세기에 발칸 제국 대부분과 이집트의 통치권을 잃었다. 19세기말에는 소수 민족과 소수 종교분파에게 지방자치를 용인했던 밀레트(비이슬람 종교자치제)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여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가 시작되었고 결국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1908년에 젊은 투르크인들이 혁명으로 제국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발칸 제국에서의 군대와 영토 상실로 인한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중 터키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편에 가담했다. 전후 아라비아의 여러 속주와 일부 지역을 잃었지만 격렬한 시민전쟁과 그리스와의 전쟁 결과 1923년 로잔 조약으로 지금의 국경선이 생겼고, 케말 아타튀르크를 왕으로 한 터키 왕국이 탄생했다.(가상국가 특정역사)
기후
지중해성기후
스포츠
축구
터키는 축구에 유럽강호라고 불릴정도로 은근 쎄다. 비록 요즘 하락세이지만 점차 다시 나아지고 있는것을 볼수있다. 아타튀르크는 UIFA 부회장이다. 그리고 리그또한 3부리그까지 있다.
기타
터키는 축구만 인기가 많지만 그다음으론 럭비, 골프등등 다른것도 인기가 많은걸 알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