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토 왕국"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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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ordercolor=#00237d><table align=right><table width=400><bgcolor=#00237d><-4><:>{{{#white '''{{{+1 가무토 왕국}}}[br]ガムト王國'''}}}||
+
{{가상국제연합 중앙세계관 국가목록}}
||<-2><width=50%>[[파일:가무토 왕국 국기.png|width=200]]||<width=50%>[[파일:가무토 왕국 국장.png|100px|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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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보 양식
||<:><-2><#00237d>'''{{{#white 국기}}}''' ||<:><#00237d>'''{{{#white 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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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 끝색 = #030066
||<:><-3><bgcolor=#ffffff> {{{#black '''{{{海中燃え上がる榮光の炎}}}[br]{{{바다 속 타오르는 영광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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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 중간색 = #030066
||<bgcolor=#00237d><-3><:>{{{#white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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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두리색 = #030066
||<width=25%><bgcolor=#d00000><:>{{{#white '''국가'''}}}||<-2> [[黎明の炎]][br]여명의 불꽃 ||
+
| 범례색 = #F6F6F6
||<bgcolor=#d00000><:>{{{#white '''국화'''}}}||<-2> 호야(벚꽃난) ||
+
| 범례 글씨색 = #000000
||<bgcolor=#d00000><:>{{{#white '''국조'''}}}||<-2> 올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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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씨색 = #FFFFFF
||<bgcolor=#00237d><-3><:>{{{#white '''면적'''}}}||
+
| 국가이름 = 가무토 왕국
||<bgcolor=#ffffff><-3><:> 41,097km² ||
+
| 원어이름 = ガムト王國<br>Kingdom of Kamuto
||<bgcolor=#00237d><-3><:>{{{#white '''인문환경'''}}}||
+
| 국기 = 가무토 왕국 국기.png
||<bgcolor=#d00000><:><|4>{{{#white '''인구'''}}}||<bgcolor=#d00000><:>{{{#white '''총인구'''}}}|| 880,779명||
+
| 국장 = 가무토 왕국 국장.png
||<bgcolor=#d00000><:>{{{#white '''민족구성'''}}}||야쿠모 민족 62%, 야마토 민족 21%, 한민족 16%, 기타 1%||
+
| 표어 = 기염만장
||<bgcolor=#d00000><:>{{{#white '''인구밀도'''}}}||21명/㎢(2024년)||
+
| 원어표어 = 氣焰萬丈
||<bgcolor=#d00000><:>{{{#white '''출산율'''}}}||2.3명(2024년)||
+
| 표어 글씨색 = #000000
||<bgcolor=#d00000><:><-2>{{{#white '''공용어'''}}}|| 일본어, 한국어||
+
| 원어표어 글씨색= #030066
||<bgcolor=#d00000><:><-2>{{{#white '''종교'''}}}|| 가무토 토착 신앙 32%, 무종교 26%, 불교 21%, 개신교 19%, 기타 2%||
+
| 국가 = [[여명의 불꽃(가무토)|여명의 불꽃]]
||<bgcolor=#d00000><:><-2>{{{#white '''군대'''}}}|| 군대 미보유||
+
| 국화 = 호야(벚꽃난)
||<bgcolor=#00237d><-3><:>{{{#white '''정치'''}}}||
+
| 국조 = 올빼미
||<bgcolor=#d00000><:><-2>{{{#white '''정치체제'''}}}||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단일국가(표면상 연방국가), 단원제, 다당제||
+
| 국목 = 없음
||<bgcolor=#d00000><:><-2>{{{#white '''염왕(국가원수)'''}}}||카무라 이소네||
+
| 지도 = 46846338-9611-4E70-8183-F1106FF7B19E.jpg
||<bgcolor=#d00000><:><-2>{{{#white '''총리(정부수반)'''}}}||이바나 미하나||
+
| 역사 = '''삼국통일''' 1770년<br>'''국권피탈''' 1910년<br>'''광복''' 1945년<br>'''정부 수립 및 [[가무토 왕국 헌법|헌법]] 공포''' 1948년
||<bgcolor=#d00000><:><-2>{{{#white '''여당'''}}}|| 국민자유연합||
+
| 면적 = 41,097km²
||<bgcolor=#00237d><-3><:>{{{#white '''경제'''}}}||
+
| 수도 = 반월시
||<bgcolor=#d00000><:><-2>{{{#white '''경제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
| 최대도시 = [[반월시(가무토)|반월시]]
||<bgcolor=#d00000><:><|2>{{{#white '''전체 GDP'''}}}||<bgcolor=#d00000><:>{{{#white '''전체 GDP'''}}}|| $18,590,403,675||
+
| 전체인구 = 915,571명
||<bgcolor=#d00000><:>{{{#white '''1인당 GDP'''}}}|| $21,106||
+
| 접경국 =  
||<bgcolor=#d00000><:><|2>{{{#white '''화폐'''}}}||<bgcolor=#d00000><:>{{{#white '''공식화폐'''}}}|| 미츠네(MTN)||
+
| 민족구성 =
||<bgcolor=#d00000><:>[[ISO 4217|{{{#white '''ISO 4217'''}}}]]|| MTN||
+
| 인구밀도 = 21명/㎢
||<bgcolor=#00237d><-3><:>{{{#white '''단위'''}}}||
+
| 출산율 = 2.3명
||<bgcolor=#d00000><:><-2>{{{#white '''법정연호'''}}}|| 서력기원, UVN력, 창천(昌天)||
+
| 종교 = 국교 없음
||<bgcolor=#d00000><:><-2>{{{#white '''시간대'''}}}|| UTC+9 (가무토 표준시)||
+
| 종교 분포 =
||<bgcolor=#d00000><:><-2>{{{#white '''도량형'''}}}|| SI 단위||
+
| 공용어 = 일본어, 한국어
||<bgcolor=#00237d><-3><:>{{{#white '''ccTLD'''}}}||
+
| 지역어 = 없음
||<bgcolor=#ffffff><-3><:>.km||
+
| 군대 = 없음[* [[가무토 왕국 국가경찰|국가경찰]]과 [[가무토 왕국 해안경비대|해안경비대]]가 국방을 담당한다.]
||<bgcolor=#00237d><-3><:>{{{#white '''국가코드'''}}}||
+
| 행정구역 명칭1 = 도(島)
||<bgcolor=#ffffff><-3><:>486, KAM, KM||
+
| 행정구역1 = 3도
'''가무토 왕국'''(ガムト王國 ,Kingdom of Kamuto)은 일본 열도 동쪽에 있는 왕국이다. 서쪽으로는 일본과 나루가, 북쪽으로는 일본이 있다. 수도는 반월시며, 공용어는 일본어와 한국어다.
+
| 행정구역 명칭2 = 시(市), 군(郡), 자치구(區)
 +
| 행정구역2 = 23시[* [[반월시(가무토)|반월시]]도 포함되지만, 광역자치단체로 분류된다.], 7군, n자치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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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구역 명칭3 = 3급 행정구역
 +
| 행정구역3 = n동, n면, n읍
 +
| 정치체제 =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다당제, 단일국가[* 각 섬에 [[섬의 왕(가무토)|섬의 왕]]이 존재해 연방국가라 오해할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존재로서 가무토는 단일국가다.]
 +
| 국가원수 = [[카무라 이소네]] 염왕
 +
| 정부수반 = [[이바나 미하나]] 총리
 +
| 행정각료 명칭1 = 부총리
 +
| 행정각료1 = [[정용]]
 +
| 행정각료 명칭2 = 국회의장
 +
| 행정각료2 = 이츠키다 타다히데
 +
| 행정각료 명칭3 = 대법원장
 +
| 행정각료3 = 이와기 유우세이
 +
| 행정각료 명칭4 = 헌법재판소장
 +
| 행정각료4 = 마스다 히로야
 +
| 여당 = {{정당박스 | 국민자유연합 | #000075 | #FFFFFF }}<br>{{정당박스 | 진명당 | #337CC2 | #FFFFFF }}[* 연립정부]
 +
| 경제체제 =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
| GDP = $21,375,836,137
 +
| 1인당 GDP = $23,347
 +
| 수출액 =
 +
| 수입액 =
 +
| 외환보유액 =
 +
| 신용 등급 =
 +
| 화폐 = 타마
 +
| 화폐번호 = KMT
 +
| 법정연호 = 서력기원, UVN력
 +
| 시간대 = UTTC+9
 +
| 도량형 = SI 단위
 +
| UN 가입여부 = 가입국
 +
| UN 가입일 = 1
 +
| ccTLD = .km
 +
| 국가코드 = 486, KM, KMT
 +
| 국제전화코드 = +83
 +
| 문양 = 호야문.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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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lass="wikitable" style="float: center; min-width:395px; max-width:395px; border:2.6px solid #030066; text-align:lef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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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5" style="font-size: 11pt; color: #343E40; background: #ffffff;" | <center><div style="margin: -5px -9px">[[파일:반월시 야경.jpg|100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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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olspan="5" style="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30066, #030066); color: #fff" align=middle | '''반월시'''
 +
|-
 +
| colspan="5" style="font-size: 11pt; color: #343E40; background: #ffffff;" | <center><div style="margin: -5px -9px">[[파일:경운시 야경.jpg]]
 +
|-
 +
| colspan="5" style="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30066, #030066); color: #fff" align=middle | '''경운시'''
 +
|-
 +
| colspan="5" style="font-size: 11pt; color: #343E40; background: #ffffff;" | <center><div style="margin: -5px -9px">[[파일:홍성군 해변.jpg]]
 +
|-
 +
| colspan="5" style="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 #030066, #030066); color: #fff" align=middle | '''홍성군'''
 +
|-
 +
|}
 +
= 개요 =
 +
'''가무토 왕국'''(ガムト王國)은 일본 열도 동쪽에 있는 왕국이다. 서쪽으로는 [[일본]]과 [[나루]]가, 동쪽으로는 [[조선 공화국]]과 [[파시 연방]]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샤모야 황실제국]]이 있다. 수도는 [[반월시]]며, 일본어와 한국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있다.
  
 
= 상징 =
 
= 상징 =
 
== 국호 ==
 
== 국호 ==
공식 국호는 '''가무토 왕국'''이며, 영문으로는 '''Kingdom of Kamuto'''라고 표기한다. 줄여서 '''가무토'''라 하기도 한다. '가무토'는 고대 가무토어로 '불꽃'을 뜻한다. 가무토 왕국의 별명이 '''불의 나라'''임을 생각하면 상당히 직설적인 별명이다.
+
[[가무토 왕국 헌법]]에 따라 공식 국호는 '''가무토 왕국'''이라 한다. 영문으로는 '''Kingdom of Kamuto'''표기한다. 편의상 '''가무토'''라 줄여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며 영문 약칭으로는 '''Kamuto'''를 사용한다. '가무토'라는 국명의 유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많은 의견이 분분하다.
 
== 국기 ==
 
== 국기 ==
[[파일:가무토 왕국 국기.png|300px]]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청금문기)]
곤색의 바탕에 국장이자 왕실 문장이 있는 형태다. 곤색은 왕실 색상인데, 그 위에 왕실 문장이 있는 것이니 국기 자체로 왕실의 위엄을 상징한다.
+
= [[가무토 왕국/역사|역사]] =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가무토 왕국/역사)]
= 역사 =
+
= 자연환경 =
== 문명 설립 이전 ==
+
== 지리 ==
야쿠모 문명 성립 이전, 가무토 곳곳에는 농경 생활을 하며 씨족 단위의 작은 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일본으로부터 건너 온 민족과 융합하며 현재 가무토의 초석이 되는 '야쿠모 민족(八雲 民族)'이 형성된다. 그렇게 형성된 야쿠모 민족은 일본 열도와 나아가 한반도와 교류를 하였으나, 해수면이 오르면서 일본 열도와 한반도와 교류하는 길이 끊기게 되고 바다 한 가운데에 고립되었다. 심지어 가무토 섬도 저지대의 대부분이 물에 잠기게 되어 하나였던 섬이 5개로 나누어지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
가무토 왕국의 영토는 적열도와 청한도, 초명도 그리고 민간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일백도와 신월도로 총 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섬 면적의 총합은 41,097km²로써 일본의 규슈보다 약 1,000km² 작은 수준이다. 이 중에서 가장 섬은 적열도며 가장 작은 섬은 초명도다.[* 일백도와 신월도를 제외한 것이다. 이 둘을 포함하면 신월도가 가장 작다.]
== 야쿠모 시대 ==
 
하나였던 섬이 물에 잠겨 5개가 되는 혼란이 있었지만, 인구가 가장 많은 영월도에서 중천(中川, 현재의 반월)을 중심으로 '야쿠모(八雲)'가 건국된다. 야쿠모는 일본 열도와 한반도에서 전래된 문화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문명을 형성하였고, 주변의 작은 부족과 소국을 정복시키며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그렇게 야쿠모는 적열도의 모든 소국과 부족을 복속시키며 가무토 제도에서 가장 강한 국가가 되었다. 한편 야쿠모가 영월도를 정복하는 사이 안향도와 명문도에서도 국가가 형성되어 차츰 힘을 키워가고 있었다.
 
 
 
354년, 야쿠모는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안향도의 서유국을 향했다. 야쿠모와 서유국이 처음 만난 곳은 영월도와 안향도 사이의 창해(蒼海)였다. 그렇게 야쿠모와 서유국 사이의 창해해전이 발발하였다. 서유국 역시 야쿠모 못지 않은 국력을 가져 전쟁이 장기화 될 것으로 보였으나, 서유국의 대승으로 전쟁은 끝이 난다. 이는 실전 경험의 차이로, 서유국은 초명도의 양원국이랑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이 있다. 그렇기에 두 나라는 많은 갈등이 존재했고, 서로 해전 경험이 다수 존재했던 한편 야쿠모는 해전 경험이 전무했다. 크나큰 패배를 맛 본 야쿠모는 즉시 퇴각하여 남은 병력이라도 필사적으로 구하려 했지만, 서유국의 끈질긴 추격에 야쿠모군은 전멸한다.
 
 
 
첫 패배를 겪은 야쿠모는 비참하다는 말로밖에 형용이 되지 않을 정도로 국가가 크게 흔들렸다. 대패의 충격으로 국왕이 사망하고, 무리한 전쟁의 탓인지 국가의 경제도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서유국에서 전쟁에 따른 배상을 요구하는 등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서유국의 요구대로 배상을 한 야쿠모는 국가가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던 와중 15대 왕으로 즉위한 금문대왕의 등장으로 야쿠모의 상황은 금세 역전된다. 금문대왕은 귀족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귀족들의 경제적 기반을 혁파하는 한편 그로부터 확보한 자본을 국가 부흥에 사용하였다. 또한 귀족회의인 '사족회의(四族會議)'의 수장인 대자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왕의 비서 기관인 '사감부(辭監部)'의 수장인 사감의 권한을 강화하는 등 왕권강화정책을 펼쳤다. 또한 도읍을 장경(將京, 현재의 금뇌시)으로 천도하여 중천의 귀족을 약화시켰다. 상대적으로 강해진 왕권은 곧 정치적 안정을 의미했고, 무너진 야쿠모는 다시 도약한다.
 
 
 
재기한 야쿠모는 양원국이랑 동맹을 맺는다. 야•원 동맹은 서유국 타도라는 공통된 목적으로 동맹을 맺었으나, 그 최종적 목표는 미묘하게 달랐다. 야쿠모는 서유국을 복속시킨 뒤 바로 동맹을 파토내고 양원국을 공격하기를 원했고, 양원국은 서유국을 복속시킨 뒤 전쟁 도중 야쿠모의 병사가 양원국의 병사를 일방적으로 공격했다고 모함하여 막대한 배상을 요구한 뒤, 야쿠모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야쿠모를 공격하기를 원했다. 서로는 자신들의 뜻을 숨긴 채로 서유국을 향했다.
 
 
 
371년, 더욱 거대해진 야•원 동맹군이 서유국 해안해 나타났다. 뒤늦게 이를 확인한 서유국은 급하게나마 방어전선을 구축했으나, 야•원 동맹의 힘은 실로 막강했다. 야•원 동맹군은 서유국의 방어전선을 가볍게 돌파한 뒤 서유국의 영토에 첫 발을 디뎠다. 야쿠모의 입장에선 수백 년 만에 밟아보는 서유국의 땅이었다. 당황한 서유국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야•원 동맹군의 압도적인 힘에 모든 전투에서 패배하고 만다. 결국 야•원 동맹군은 서유국의 도읍인 충주(忠周)에 당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유국의 보웅왕이 직접 나서 지휘를 하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야쿠모 병사가 쏜 화살에 맞아 전사한다. 보웅왕이 사망하자 서유국 병사는 사기를 급격히 잃었고, 야•원 동맹군에 항복하면서 서유국은 멸망한다. 서유국이 멸망하자 야쿠모는 충주에 충주도독부를 설치한다. 또한 양원국의 도읍 항원(恒元)에도 항원도독부를 설치하는 등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양원국은 서유국 병사를 회유하여 수적으로 야쿠모를 공격하려 했으나, 야쿠모가 선수를 친 뒤였다. 압도적인 물량 공세에 양원국은 밀릴 수밖에 없었고, 야쿠모의 군대는 양원국 땅에 발을 디뎠다. 양원국에 당도한 야쿠모는 파죽지세로 항원으로 향했다. 양원국은 야쿠모를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압도적인 물량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아야 했다. 절망적인 상황, 눈 앞이 깜깜해진 양원국의 공양왕은 야쿠모에 항복하며 야양 전쟁은 끝이 난다. 이로써 야쿠모에 의해 3국이 통일되며 기원전 156년부터 이어진 야쿠모, 서유국, 양원국의 마라톤은 야쿠모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통일의 대업을 이룬 금문대왕은 마치 자신의 임무를 다 수행했다는 듯이 통일이 되는 역사적 순간을 본 후 숨을 거둔다. 이후 그의 장남 문주왕이 16대 왕으로 즉위하며 통일 야쿠모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 문주왕은 우선 민족융합정책을 펼쳤다. 친위대와 중앙군에 서유국, 양원국 출신 무인을 두루 임명하고, 사감부 주요 직책에 서유국, 양원국 출신을 앉히는 등의 정책을 행했다. 또한 서유국, 양원국의 왕가에 대해서는 야쿠모 왕가의 성을 하사하는 등 그들을 대우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 유이민들은 자연스레 야쿠모에 융합되었다. 사학자들이 높게 평가하는 것은 바로 부분이다. 외세의 개입 없이 자주적으로 민족 통합을 이루었고, 이후에 추진하는 민족융합정책은 강압적으로 실시된 것이 아닌 서유국과 양원국의 백성을 똑같이 야쿠모의 백성으로 존중해주었다는 점에서 완전한 민족 통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금문대왕과 문주왕의 노력에 야쿠모는 최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또한 일본, 일본의 알선으로 백제와도 교류를 하며 야쿠모의 입지를 다지기도 한다.
 
 
 
한편 나라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가무토 토착 신앙이라 불리는 종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각 섬마다 섬의 수호신이 존재하며 이를 기리지 않으면 화를 입는다는 기본적인 신앙으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를 기점으로 나라 곳곳에 각 섬의 수호신을 기리는 사당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대표적인 사당은 적열도의 풍요의 사당, 청한도의 뇌우의 사당, 초명도의 맹아의 사당이다. 여하튼 가무토 토착 신앙이 왕실에도 영향이 미치자 왕실은 각 섬에 섬의 왕을 임명하여 수호신의 제사를 지내게 한다. 이것이 각 섬의 제례제의 시초이다.
 
 
 
야쿠모의 안정은 오래도록 지속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는 크나큰 오산이었다. 때는 1343년, 사회 전반적으로 부패가 가득했다. 왕권은 한없이 추락하여 귀족들의 허수아비로 전락했으며, 귀족들이 권력을 잡으며 사치와 향락만을 즐길 뿐이었다.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었고, 봉기를 해도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가혹한 세금과 흉년이 겹치며 결국 농사짓던 땅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 산적이 되거나 하는 이도 보였다. 중앙 행정이 마비되니 지방이 통제가 될 리가 없었다. 이에 적열도, 청한도, 초명도에선 사회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이 등장하며 백성들의 큰 지지를 얻게 된다. 보기에는 하나의 나라이지만, 사실상 각각 나뉘어져 있는 것이었다.
 
 
 
나라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백성의 신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공자가 말하였다. 백성의 나라에 대한 신임을 잃으면 그 나라는 곧 망국이라는 소리이다. 야쿠모가 그렇다. 이미 백성들의 신임을 잃은지 오래요, 오히려 반정부 세력에 가담하고 있는 꼴이니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렇게 1천 년의 역사를 가진 야쿠모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고, 가무토 제도에는 삼국시대가 개막한다.
 
== 삼국 시대 ==
 
야쿠모가 멸망한 뒤 영월도에는 가무토 왕국, 안향도에는 연원의 동맹, 명문도에는 진안국이 세워진다. 가무토 왕국은 비록 야쿠모를 무너트리고 세운 국가이지만, 야쿠모를 계승하여 사회 전반적인 면에서 야쿠모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한편 연원의 동맹과 진안국은 야쿠모를 완벽히 부정하였다. 이들은 각각 서유국, 양원국을 계승하며 마치 과거의 삼국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들은 과거 야쿠모가 어떠한 최후를 맞이했는지 두 눈으로 보았기에 백성을 위한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오로지 백성을 위한, 백성이 중심이 되는 그런 나라를 꿈꾸었다. 이에 고려의 과거제 내지 신라의 독서삼품과를 벤치마킹하여 과거제를 실시하여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했다.
 
 
 
가무토 왕국은 야쿠모를 계승했기 때문에 가무토 토착 신앙을 유지한 한편 연원의 동맹과 진안국은 야쿠모를 부정했기 때문에 가무토 토착 신앙 역시 부정하였다. 연원의 동맹은 종교에 구애받지 않는 인간만의 세상을 추구했고, 진안국은 불교를 공인하여 국교를 불교로 삼았다. 연원의 동맹이 보기에 가무토 왕국과 진안국은 타도의 대상이었다. 사실 모두에게 서로는 타도의 대상이었다. 가무토 왕국은 과거 야쿠모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삼국을 통일해야 했고, 진안국은 일본과의 교류를 위해서는 가무토 왕국과 연원의 동맹을 이겨야만 했다. 이런 이해 관계 속에서 삼국의 첫 전쟁인 '창해의 전투'가 발발한다. 건국 31년 만인 1400년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삼국의 수군은 창해에서 만났다. 이 창해는 과거 야쿠모의 수군이 수장당한 곳이었다. 저 깊은 바다 아래에서 야쿠모의 패잔병이 손짓이라도 하는 듯 물살은 매우 셌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불온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가운데 함포 소리가 들렸다. 진안국 선박이었다. 공격을 받은 연원의 동맹 선박은 진안국 선박을 향해 포를 발사했다. 그 가운데 가무토 왕국 함대는 셋으로 나누어 1함대는 육지 방어선을, 2함대는 연원의 동맹 공격을 위한 진을, 3함대는 진안국 공격을 위한 진을 구축했다. 그렇게 창해에서 삼국의 삼파전이 발발했다. 어지러운 상황 속 갑자기 창해 곳곳에서 일어난 소용돌이에 각 국의 선박이 휩싸여 파괴되자 위험을 직감한 삼국이 후퇴하며 창해의 전투는 일단락되며 다음을 기약한다.
 
 
 
창해의 위험성을 본 삼국은 출병시키지 않았고, 오랜 기간 동안의 평화가 찾아온다. 이 평화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1730년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에 흥함과 쇠함을 겪으며 삼국은 사회 전반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또한 유럽의 네덜란드 등의 상인들과 교역을 하며 서양의 문물도 전래되기도 하였다. 이런 와중에 가무토 왕국은 과거 야쿠모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다. 1730년 9월, 가무토의 역사를 바꿀 사건이 발생한다. 연원의 동맹 측에서 진안국으로 친선의 목적으로 파견한 사신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피살당한 사건이다.(동맹 사신 피살 사건) 연원의 동맹 맹주는 분노하여 진안국에 항의를 하였으나, 진안국은 이 사건을 모르쇠로 일관하며 끝까지 연원의 동맹을 무시했다. 이에 격노한 연원의 동맹은 군사를 거느리고 진안국을 향한다. 갑작스러운 출병에 진안국은 가무토 왕국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가무토 왕국은 진안국의 사신을 투옥하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서로 싸울 때가 적기라고 판단한 가무토 왕국도 참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로써 '가무토 해방전', 일명 '4년 전쟁'이라 불리는 통일 전쟁이 발발한다.
 
 
 
그렇게 삼국은 또다시 창해에서 재회한다. 모두 지난 1400년 때보다 훨씬 강해진 모습을 보였다. 전과는 달리 거센 물살에도 끄떡없는 내구와 돌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파쇄할 크기를 가진 함선들이 보였다. 적재 무기 역시 과거와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발전되어 있었다. 전쟁은 연원의 동맹의 진안국에 대한 일방적인 선전포고, 이에 개입한 가무토 왕국으로 시작되었지만, 모두 각자의 이상을 실현시켜야 할 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무토 왕국에서 연원의 동맹을 향해 함포를 쏘았다. 연원의 동맹은 이에 반격하였고, 둘이 교전을 벌이는 틈을 타 진안국의 함대가 두 함대에 맹공을 가했다.
 
  
연원의 동맹과 진안국의 관심이 창해에 쏠린 것을 이용하여 가무토 왕국은 두 나라에 따로 함선을 보냈다. 기습 상륙 작전을 실행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작전은 보기좋게 성공한다. 모든 병력을 창해에 집중한 탓에 그 외부의 방어선이 뚫려있던 것이었다. 상륙에 성공했으나, 생각보다 일찍 눈치 챈 나라는 전선을 구축하여 상륙한 가무토 왕국의 군대를 잘 막아냈다. 그렇지만 앞뒤에서 조여오는 공격을 버티는 것은 어려웠던 탓일까, 필사항전으로 구축했던 방어전선은 무너지고야 말았다. 더해서 추가로 지원되는 병력에 연원의 동맹과 진안국은 좌절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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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섬과는 달리 적열도에는 산이 많은데, 특히 적열도 중앙부에는 [[송화산(가무토)|송화산]]이라는 거대한 산이 존재한다. 가장 큰 봉우리의 높이는 1,000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이런 거대한 크기 때문에 적열도에 한해 성산으로 취급되며, [[제례제]]의 주요 행사가 이곳에서 행해진다. 반면 강의 경우는 청한도에 집중되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짧고 작은 강으로 가장 긴 강인 내성강은 200km도 되지 않는다. 초명도는 드넓은 평야 지대가 있어 가무토의 농업의 절대다수가 초명도에서 이뤄진다.
 
 
결국 가무토 왕국의 군대는 연원의 동맹과 진안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모든 병력은 전쟁에서 소실되어 가무토 왕국을 막을 병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연원의 동맹 맹주는 가무토 왕국에 항복의 뜻을 밝힌 국서를 보내며 자결한다. 진안국은 결코 가무토 왕국에 항복할 수는 없다며 소수의 병력으로 기적을 일어나길 바랐지만 신은 진안국의 뜻을 이루어주지 않았다. 결국 진안국왕은 가무토 왕국 장수에게 목이 잘리는 비참한 최후를 맞으며 가무토 해방전은 4년 만에 끝나게 된다. 1734년 8월이었다. 이로써 삼국은 야쿠모를 계승한 가무토 왕국의 주도 하에 통일되며 삼국시대는 막을 내린다.
 
 
 
삼국시대는 가무토 왕국 역사상 문화적으로 가장 융성하던 때였다. 더욱 발전된 가무토 토착 신앙의 문화, 독자적인 불교 문화, 종교에서 벗어난 인간 중심의 문화. 무려 동시대에 서로 다른 3개의 문화가 같은 땅에 존재했다. 이러한 현상은 가무토 왕국의 문화를 비약적으로 발달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특히 불교가 가장 성장하였는데, 현재 가무토 왕국을 아우르는 종파인 '경희종'이 진안국에서 개창되었다. 경제적으로도 큰 도약을 이루었다. 가무토 왕국은 당시 수도에 시장을 설치하여 상업을 적극 장려했다. 통일 후에는 시장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각 시장을 돌아다니며 시장과 시장을 이어주는 '왕래상'이 등장하기도 했다. 왕래상의 등장은 '여각'의 등장을 의미했다. 각 섬의 항구에는 시장이 크게 열리기도 했고 여각이 많이 들어서는 등 상업이 크게 발달했다. 그 시작은 가무토 왕국의 시장 설치에 있다.
 
== (구)가무토 왕국 ==
 
가무토 왕국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는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느냐였다. 백성들의 반발도 강할 뿐더러 부흥을 꿈꾸는 이들도 등장할 것이었다. 그런 가무토 왕국은 해답을 역사 속에서 찾았다. 과거 야쿠모는 삼국을 통일한 뒤 민족융합정책의 일환으로 전 왕족에게 왕실의 성을 하사했고, 주요 관직에 연원의 동맹, 진안국 출신 인물을 임명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가무토 왕국에 대한 반발심은 이러한 정책에 곧 우호적으로 변하였다. 가무토 왕국은 과거 야쿠모가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알고 있기에 이 민심을 잘 헤아려야만 했다.
 
 
 
통일 뒤 가무토는 여태 누려본 적이 없는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풍년 속에 가무토 왕국은 전반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기존 왕의 칭호를 '염왕(炎王)'으로 바꾸었다. 또한 염왕 중심 국정 운영을 재상 정치로의 변모를 꿈꾸었으며, 오랜 분단으로 와해되었던 가무토 토착 신앙을 적극 장려하여 재부흥을 시도했다. 게다가 상업을 적극 장려하여 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했고, '유화전(流火錢)'이라는 화폐를 발행하여 이를 뒷받침했다. 이러한 개혁 속에 가무토 왕국은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주변의 일본, 류큐, 나루, 백제, 조선 등과도 활발한 교류를 이어갔다.
 
 
 
상술한 것과 같이 통일 후 시장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시장과 시장을 이어주는 왕래상이 등장했고, 여각이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항구 도시에서는 왕래상의 왕래가 잦아 시장이 크게 열리기도 했다. 여각 역시 상당수가 입점하였다. 이처럼 인구가 집중되자 항구 도시를 기점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감주시와 중원시가 대표적인 그 무대였다. 이렇듯 가무토 왕국은 통일 후 승승장구하며 찬란한 앞날이 펼쳐졌다.
 
 
 
그러나 19세기로 접어들며 세계는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가무토 왕국의 연안에서 '흑주(黑舟)'라 불린 서양의 배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치안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가무토 왕국을 지나는 흑주에 대해서 단속을 실시하는 한편 급격히 나빠진 치안을 관리하기 위해 '경무감(警務監)'을 설치하여 경무관을 각지에 파견하였다. 또한 이 흑주를 보고 서양의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기 위해 비밀리에 개화정책 추진 기구인 '개정부(改政部)'를 설치하여 개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정부가 개화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가장 먼저 반발에 나선 것은 섬의 왕이었다.(왕명불승(王命不承) 사건) 섬의 왕은 자신의 섬을 떠나 포호궁 앞에서 개화 반대 상소를 올렸다. 정부는 이 상소를 기각하고 섬의 왕의 지위를 박탈하였다. 이에 불만을 품은 3명의 섬의 왕은 수구세력과 함께 봉기를 일으킨다.(섬의 왕의 난)
 
 
 
봉기 세력은 개화 정책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포호궁을 향했다. 정부는 봉기 세력을 보호하기 위하여 무장을 하지 않은 채로 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봉기 세력이 군을 사살하자 정부는 무장을 허용하며 봉기 세력을 진압하기에 이른다. 곧 섬의 왕이 붙잡히고 처형당하며 섬의 왕의 난은 실패로 끝이 난다. 이후 정부는 개화 정책의 추진을 공개적으로 할 것임을 알렸고, 이에 따라달라는 내용의 칙서를 반포한다.
 
 
 
정부의 첫 개혁은 신분제 폐지였다. 귀족과 평민의 벽을 허물고 누구든지 신분에 구애받지 않도록 하였다. 대중은 환영하는 분위기였지만, 귀족의 반발은 거셌다. 그럼에도 정부는 개혁을 강행했다. 이어서 과거제를 개편하였다. 업무 소양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더욱 실용적인 문제만을 선별하여 시험을 치르게 했다. 또한 과거 시험장에 만연한 부조리를 혁파하기 위한 정책을 펼쳤다. 또한 섬의 왕의 업무를 확대시켰다. 단순히 제사를 주관하는 것을 넘어서 염왕을 자문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등 섬의 왕의 필요성을 더했다. 첫 개혁은 단연 성공적이었다. 이후 5년 뒤인 1875년에 2차 개혁을 추진하였다. 우선 중앙 정부 조직을 8부로 개혁하였다. 또한 중구난방식으로 관리되던 재정을 재무부로 단일화하여 보다 체계적으로 재정을 관리하게 하였다. 그리고 서양 등 열강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그들의 기술을 배우게 하였다. 그러나 이후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여러 나라와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잠시 개혁이 중단되었으나, 가무토 왕국의 뜻을 막을 수 없었다. 5년 뒤인 1880년, 3차 개혁이 추진된다. 지방 조직을 개혁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3도 22시 7군의 모습이 이때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각 도, 시, 군에 도지사, 시장, 군수를 파견하였다. '교육기본서'를 반포하여 근대 교육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이에 입각하여 반월에 '반월사범학교'와 '반월학교'가 설립되었다.
 
 
 
3차례의 개혁은 가무토 왕국을 근대 국가로 돋아나게 하였다. 전근대적 모습을 떨쳐내고 신세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러한 가무토 왕국의 휘영찬란한 꿈은 서양 열강들에 의해 빈번히 밟히고 말았다.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 조약이 화근이 되어 가무토 왕국의 이권를 침탈해 가고 있었다. 특히 국토 개간권이라는 명목으로 산지를 깎는 등 자연도 무참히 파괴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가무토 왕국에서는 '위용회(衛用會)'를 조직하여 서양 열강의 이권 침탈을 저지했다.
 
 
 
위용회의 시위 활동 등으로 서양의 이권 침탈은 줄어들었다. 그들의 이런 행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목소리를 내면 된다'는 인식을 각인시키는 데에 충분했다. 일반 대중의 뜻은 '만인성회(萬人聲會)'라는 집회를 통해 정부에게 전달되었고 정부는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등의 민주적인 국가로 나아가고 있었다. 한편 제6대 염왕으로 경반왕 카무라 쿠마가야가 즉위하며 가무토 왕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경반왕은 즉위 후 행해진 담화에서 의회 설립을 약속했다. 전근대적 봉건 잔재를 유지하는 것은 세계의 흐름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오히려 사람들은 놀라며 민주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심지어는 민주화 반대 집회를 개최하여 현행을 유지하기를 바랐다. 이러한 강경한 반대에 경반왕의 민주화의 꿈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이는 또다른 기회를 의미했다. 당시 가무토 왕국에는 학교가 설립되고 근대적 교육이 실시되었다고는 하나, 교육 수준이 매우 낮았다. 이에 경반왕은 민주화에 해답으로 교육을 찾았다. 경반왕은 '학교령'을 실시하여 학교의 운영과 설립을 적극 지원했다. 또한 성적 우수 학생을 선발하여 외국으로의 유학을 지원하는 등 교육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경반왕 본인이 학교에 가서 민주화와 이에 대한 필요성을 강연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고, 민주화의 꿈을 뒤로 한 1926년 숨을 거둔다.
 
 
 
그의 뒤를 이어 제7대 염왕으로 성왕 카무라 케이가쿠가 즉위한다. 성왕은 경반왕의 바통을 받아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제2차 교육령'을 실시하여 지역마다 달랐던 학제를 소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으로 통일하였다. 또한 교사를 임용시험을 통해 임용하여 질 높은 교육의 제공을 꾀했다. 제2차 교육령을 통해 최초의 근대적 대학교 '팔운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외국인 강사를 초빙하여 학생들의 견문을 높이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이 빛을 보였던 것일까. 민주화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성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앞장 서서 민주화를 부르짖었다. 국가의 발전도 중요했지만, 경반왕과 성왕에게 있어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사람들의 행복이었다. 이 행복을 보장할 방안을 잠도 없이 수 일 동안 고민한 결과가 바로 '민주화'였다. 직접적인 정치 참여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그들의 길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두 왕이 선택했던 방법이다. 그리고 이제 그 꿈이 실현되는 찰나의 순간에 서 있다.
 
== (신)가무토 왕국 ==
 
2대에 걸친 염왕들의 노력에 민주화를 향한 열망은 드디어 실현되고 있었다. 그들의 교육령은 성공하여 국가의 학문 수준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을 뿐만이 아니라, 사회 다방면의 측면에서 전과는 비교도 불가능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러한 점이 가무토 왕국의 민주화를 앞당겼고, 그 결과 카브라(의회)가 설립된다.
 
 
 
1945년에 시작한 공사는 1948년 성황리에 완공되었다. 같은 해 7월 30일 1대 총선을 실시하여 1대 카브라를 구성하였다. 당시 투표율 61.7%라는 준수한 수치와 함께 가무토 왕국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던 때였다. 1대 총선에서 자유당이 36석, 민주당 31석, 무소속 의원이 3석을 점하며 자유당 내각이 수립되었다. 9월 16일 이누지마 미츠모토 총리의 취임식과 함께 카브라 준공식이 개최되며 가무토 왕국은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하였다.
 
 
 
내각이 수립되면서 성왕은 약속에 따라 정치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정통 수구파의 극렬한 반대 시위가 열리기도 했지만, 금방 수그러들었다. 많은 기대와 걱정을 안고 출범한 카브라는 훌륭한 실적을 거두었다. 우선 농지개혁을 실시하여 중구난방이던 기존의 토지 제도를 획일화하였다. 또한 기업의 설립을 정부 승인제에서 허가제로 개정하여 보다 활발한 시장경제 구축을 꾀했다. 과거의 교육령을 계승하여 교육에 대해서도 다양한 정책을 펼쳐 공교육 진흥을 위해 노력하였다. 다양한 실적을 올리며 승승장구하였던 자유당 내각이었지만, 미츠모토 총리의 임기 말기이 터진 부정청탁 혐의에 국민들은 자유당에 대한 신임을 거두었고, 차기 총선에서 민주당의 손을 들어준다.
 
 
 
1953년 실시된 2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36석을, 자유당이 24석을 가져가면서 자유당은 참패의 쓴맛을 보아야만 했다. 사실 이는 예견된 결과였다. 오히려 24석이라도 건진 것이 기적이라 할 만큼이다. 2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이후 거의 50년간 자유당의 암흑기가 도래한다. 12대 총선까지 10번의 총선을 거치는 동안 자유당은 단 한 번도 정권을 창출하지 못하였다.
 
 
 
미츠모토 총리의 부정청탁을 강렬히 비판하면서 국민들의 신임을 받는 내각을 만들겠다는 포부 아래 후나바시 나오타카 내각이 출범한다. 나오타카 내각은 국가의 기틀 마련을 위해 기초 과학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였다. 뼈대 없이는 설 수 있는 건물이 없다며 기초를 튼튼히 다지고자 했던 것이었다. 미국, 영국, 일본 등과 같은 자유세계 국가들과도 우호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큰 업적도, 큰 사건도 없이 미츠모토 총리는 임기를 무사히 마친다.
 
 
 
1958년 3대 총선이 실시되었다. 민주당이 35석, 자유당이 24석, 무소속 의원이 11석을 가져가며 민주당이 재집권하게 되었다. 가무토 왕국 최초의 한국계 총리가 배출되기도 하였다. 그 덕에 한국, 백제 등 한민족 국가들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김영환 내각은 국토개발을 1순위로 삼았다. 그의 임기 동안 반월시와 춘성시를 잇는 '월성고속도로', 성령시와 인황시를 잇는 '성인고속도로', 중원시와 겸유시를 잇는 '원유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이 과정에서 현재 건설 삼천왕이라 불리우는 '팔문건설', '경희토건', '광호건설'이 성장한다. 이 세 사(社)는 당시 가무토 왕국에서 토목 건설 실전 경험이 있었기에 공개 입찰에서 세 사(社)의 독점은 불보듯 뻔했다. 여하튼 이러한 고속도로 개통은 이후 세 섬을 연결하는 초석이 된다. 또한 포장되어 있지 않은 도로를 포장함으로써 교통의 진흥을 불러왔다.
 
 
 
김영환 전 총리가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차기 정권도 민주당에게 돌아갔다. 미치무라 카츠노부 총리는 김영환 총리의 국토개발 정책을 계승하여 중화학 공업 육성에 집중했다. 특히 철강 산업을 무척이나 신경썼는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국내 최대 철강 기업 'KANO(카노)'가 성장한다. 철강 산업의 성장으로 조선술이 발전하여 조선업도 성장하며 당시 가무토 왕국의 경제는 토목, 철강, 조선이 이끌게 된다. 카츠노부 총리는 이어서 '국민복지증진계획'을 수립하였으나, 복합적인 사유로 수립 단계에 머물며 카츠노부 총리의 임기가 끝이 난다.
 
 
 
카츠노부 총리 이후 민주당은 고착 상태에 빠지게 된다. 사실상 민주당 장기 집권의 세월 속에서 온갖 독선적이고 오만한 태도를 보이던 민주당이었다. 점차 지지율이 하락할 즈음에 호카리 카즈치 의원이 빛나는 혜성처럼 등장한다. 그는 매우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한 정신으로 악착같이 살았다. 그런 그는 결국 팔운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해외 명문대까지 유학하는 등 엘리트 중 엘리트였다. 그렇지만 당 내 입지가 작았던 탓에 외톨이라 불리던 그였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오히려 국민들의 지지를 사게 되었다. 내부 계파 없이 홀로 싸우는 모습이 마치 전장 속 관우같다며 급부상한다. 눈길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는 그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5대부터 7대까지 무려 3번 연임하는 가무토 왕국 정치사의 전설로 기록된다.
 
 
 
카즈치 총리는 카츠노부 총리가 추진하였던 국민복지증진계획을 계승하여 특유의 강단 있는 일처리로 시행한다. 이에 따라 국가장학재단이 설립되었고, 흔히 카즈치 케어라 불리는 국가의료보험을 실시하여 병원비 부담을 줄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임명직이던 섬의 왕을 선출직으로 변경하는 개헌을 추진하여 염왕의 비리를 사방에서 감시하는 수단을 마련하였다. 또한 자유세계와의 관계를 더욱 굳혀 가무토 왕국은 자유세계의 일원임을 세상에 천명했다. 다소 급진적일 수 있는 정책이었지만, 이러한 밑바탕이 현재의 가무토 왕국을 만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가장 좋아하는 총리가 누구냐는 질문에 카무라 이소네 염왕은 "모든 총리를 좋아하지만, 특히 카즈치 총리를 좋아한다"라고 답했다. 그만큼 국가 전체적으로 두터운 신임을 받던 총리였다.
 
 
 
83년 은퇴 후 고향에 내려가 살던 그는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카즈치 전 총리의 타계 소식에 애도의 행렬이 이어졌다. 현재까지도 그의 영향력이 남아있어 카즈치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계파가 형성되어 있다.
 
 
 
호카리 카즈치라는 거성(巨星)이 진 이후 민주당의 지지율은 급격히 하락하였고, 정권이 야당에게로 넘어가는데, 자유당이 아닌 국민당에게로 넘어간다. 최초로 국민당 타지리 요시카네 내각이 출범하자 많은 기대를 사게 되었다. 실제 행보도 나쁘진 않았지만, 많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다시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만다. 다시 민주당의 시대가 개막하자 위기 의식을 느낀 자유당과 국민당은 모 아니면 도인 심정으로 1993년 합당을 결정한다.(자유당-국민당 합당) 그리하여 국민자유연합이 결성되었고, 지지층을 다져간다.
 
 
 
이러한 국자련의 노력이 빛을 발한다. 2003년 국자련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여 50년 동안의 암흑기를 깨부쉈다. 또한 역대 최연소 총리이자 두 번째 한국계 총리인 강윤석 총리가 배출되기도 했다. 강윤석 내각은 공안부 산하의 보건청을 보건부로 독립시켰다. 또한 의회 건물을 새로 신축하기도 했다. 기존 국가장학재단을 개편하여 진정으로 장학금이 필요한 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함과 동시에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 재정을 확보하는 등의 개혁을 통해 입지를 다졌다.
 
 
 
강윤석 총리를 시작으로 국자련의 시대가 열렸다. 2003년부터 2024년인 지금까지 국자련이 집권했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나, 반세기동안 민주당이 집권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반감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유력하다. 결국 이러한 감정이 2000년대에 들어서 폭발하였고, 이것이 국자련에게 정권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국자련이든 민주연합이든 앞으로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 자연환경 =
 
== 영토 ==
 
가무토 왕국의 영토는 영월도, 안향도, 명문도, 일백도, 신월도의 5개의 섬으로 구성된 '가무토 제도'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은 총합 41,097km²로 규슈보다 약 1,000km² 더 작다. 가무토 제도의 섬들은 중앙의 '''창해(蒼海)'''라는 바다를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 육상으로 접하고 있는 국가는 없다. 해상으로는 일본과 나루와 접하고 있다.
 
 
== 기후 ==
 
== 기후 ==
국토의 대부분이 온대 기후에 속하고 있다. 영월도 북부의 일부 지역은 다소 선선한 편이다. 추위를 느낄 수 있는 날은 주로 12월에서 2월에 집중되어 있다. 이후 3월부터는 온난해지면서 4월 말로 접어들면 여름의 날씨를 보이기 시작한다. 5월 중순이 되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된다. 일부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은 냉대 기후나 한대 기후가 나타나기도 한다. 겨울이 건조한 한국과는 달리 가무토는 겨울에도 습한 날이 지속되어 평균 100mm의 강수량을 보이기도 한다. 여름에도 마찬가지로 강수가 집중되어 있어 강수량이 1,500mm~1,800mm에 달하기도 한다. 지진이 많이 발생하여 해일 등의 자연재해가 자주 일어나기도 하며, 태풍 역시 자주 발생한다. 때문에 내진 설계를 필수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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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대부분이 온대 기후에 속하고 있다. 적열도 북부의 일부 지역은 다소 선선한 편이다. 추위를 느낄 수 있는 날은 주로 12월에서 2월에 집중되어 있다. 이후 3월부터는 온난해지면서 4월 말로 접어들면 여름의 날씨를 보이기 시작한다. 5월 중순이 되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된다. 일부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은 냉대 기후나 한대 기후가 나타나기도 한다. 겨울이 건조한 한국과는 달리 가무토는 겨울에도 습한 날이 지속되어 평균 100mm의 강수량을 보이기도 한다. 여름에도 마찬가지로 강수가 집중되어 있어 강수량이 1,500mm~1,800mm에 달하기도 한다. 지진이 많이 발생하여 해일 등의 자연재해가 자주 일어나기도 하며, 태풍 역시 자주 발생한다. 때문에 내진 설계를 필수로 규정한다.
 
== 자원 ==
 
== 자원 ==
 
가무토 제도는 양질의 철이 풍부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세계 순위권에 드는 철 생산량을 자랑한다. 고등어와 갈치 등 다양한 온대성 어종이 다수 서식하고 있어 많은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반대로 농업은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농업에 부적합한 탓에 쌀 등의 생산물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농업, 스마트팜 등의 방법으로 빈약한 농업을 선두하고 있다.
 
가무토 제도는 양질의 철이 풍부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세계 순위권에 드는 철 생산량을 자랑한다. 고등어와 갈치 등 다양한 온대성 어종이 다수 서식하고 있어 많은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반대로 농업은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농업에 부적합한 탓에 쌀 등의 생산물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농업, 스마트팜 등의 방법으로 빈약한 농업을 선두하고 있다.
 
 
= 인문환경 =
 
= 인문환경 =
 
== 인구 ==
 
== 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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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
 
== 종교 ==
 
== 교통 ==
 
== 교통 ==
 
 
= 행정 구역 =
 
= 행정 구역 =
광역자치단체인 3개의 도(島)와 반월시, 그 아래에는 기초자치단체인 29개의 시(市)와 군(郡)으로 나뉘어 존재한다. 반월시는 5개의 자치구(區)가 존재한다. 시와 자치구는 동(洞)과 읍(邑)으로 나뉜다. 일부 거대한 시의 경우에는 구가 휘하에 있기도 한다. 군은 읍(邑)과 면(面)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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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가무토 행정구역2.jpg|700px|프레임없음|가운데]]
[[파일:가무토 행정구역.jpg|500px|프레임없음|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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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자치단체인 3개의 도(島)와 반월시, 그 아래에는 기초자치단체인 29개의 시(市)와 군(郡)으로 나뉘어 존재한다. 반월시는 5개의 자치구(區)가 존재한다. 시와 자치구는 동(洞)과 읍(邑)으로 나뉜다. 군은 읍(邑)과 면(面)으로 나뉜다.
 
 
 
= 정치 =
 
= 정치 =
가무토는 입헌군주국으로서 염왕이 국가원수로 재위하고 있으나, 그 권한은 헌법에 의해 제한된다. 더불어 의원내각제를 실시하고 있어 집권당 당수가 총리로 취임하여 실질적인 국가원수로 기능한다. 행정부(내각, 정부)와 입법부(카브라), 사법부로 삼권이 나뉜 형태이지만, 특히 행정부와 입법부는 서로 견제하는 것이 아닌 상호 협력을 기초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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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토는 입헌군주국으로서 [[염왕]]이 국가원수로 재위하고 있으나, 그 권한은 헌법에 의해 제한된다. 더불어 의원내각제를 실시하고 있어 집권당 당수가 총리로 취임하여 실질적인 국가원수로 기능한다. 행정부(내각, 정부)와 입법부(카브라), 사법부로 삼권이 나뉜 형태이지만, 특히 행정부와 입법부는 서로 견제하는 것이 아닌 상호 협력을 기초로 운영되고 있다.
 
== 가무토의 민주주의 ==
 
== 가무토의 민주주의 ==
 
1347년 건국된 이래로 가무토는 전제군주제를 표방했다. 16세기에 이르러 재상 중심의 정치를 실현하기는 했으나, 왕이 모든 실권을 지니고 있다는 본질은 변함이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경반왕이 6대 염왕으로 즉위하면서 국민의 행복 보장을 위한 민주화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수준 높은 근대 교육을 통한 계몽과 직접 사람들과 만나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연한 결과 성왕 대에 이르러 가무토에도 민주주의가 정착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선 민주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1347년 건국된 이래로 가무토는 전제군주제를 표방했다. 16세기에 이르러 재상 중심의 정치를 실현하기는 했으나, 왕이 모든 실권을 지니고 있다는 본질은 변함이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경반왕이 6대 염왕으로 즉위하면서 국민의 행복 보장을 위한 민주화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수준 높은 근대 교육을 통한 계몽과 직접 사람들과 만나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연한 결과 성왕 대에 이르러 가무토에도 민주주의가 정착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선 민주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 염왕 ==
 
== 염왕 ==
염왕은 가무토의 군주이자 국가원수로서, 가무토의 얼굴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국가원수이긴 하나 실질적인 권한은 없으며, 3명의 섬의 왕과 함께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총선 후에 내각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의 당수를 총리로 임명하고 내각구성권을 부여한다. 이 외에도 명목상의 의회해산권, 특별사면권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한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만큼 각 섬의 제례제를 주관하는 역할을 지니고 있다. 애초에 염왕은 쇄광교의 수장이기 때문에 제례제 주관은 필수적인 사항이다. 현재 카무라 이소네 염왕이 재위 56년 차에 있으며, 연호는 창천(昌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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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왕]]은 가무토의 군주이자 국가원수로서, 가무토의 얼굴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국가원수이긴 하나 실질적인 권한은 없으며, 3명의 섬의 왕과 함께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총선 후에 내각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의 당수를 총리로 임명하고 내각구성권을 부여한다. 이 외에도 명목상의 의회해산권, 특별사면권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한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만큼 각 섬의 제례제를 주관하는 역할을 지니고 있다. 애초에 염왕은 쇄광교의 수장이기 때문에 제례제 주관은 필수적인 사항이다. 현재 카무라 이소네 염왕이 재위 56년 차에 있으며, 연호는 창천(昌天)이다.
 
== 카브라와 내각 ==
 
== 카브라와 내각 ==
카브라는 가무토의 의회다. 재적 100석으로 이루어지며, 비례대표 없이 오로지 지역구 의원으로만 구성된다. 카브라 의원의 임기는 5년으로 연임의 제한은 없다. 한 정당이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연립 내각을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염왕으로부터 내각구성권을 부여받은 총리는 28일 이내에 내각을 구성해 카브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때 장관들은 모두 카브라 의원이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간혹 카브라의 동의로 외부 인사가 등용될 수 있다. 28일이 지났음에도 내각을 구성하지 못했다면 내각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정당의 당수에게 내각구성권을 부여한다. 그렇게 구성된 내각, 즉 정부는 안보 문제를 포함해 국내외 여러 업무를 관장한다. 내각은 업무 및 정책 결정 과정을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가 열리지만 필요 시 추가적으로도 소집될 수 있다. 장관회의를 통해 업무를 진행할 수도 있다. 총리가 사임, 서거, 불신임, 자격박탈 등의 사유로 총리직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내각은 카브라 의원 중 한 명을 총리 서리로 임명한다. 불신임 투표가 가결된 경우, 내각과 총리는 새로운 내각이 구성될 때까지 임무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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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브라]]는 가무토의 의회다. 재적 100석으로 이루어지며, 비례대표 없이 오로지 지역구 의원으로만 구성된다. 카브라 의원의 임기는 5년으로 연임의 제한은 없다. 염왕으로부터 내각구성권을 부여받은 총리는 28일 이내에 내각을 구성해 카브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때 장관들은 모두 카브라 의원이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간혹 카브라의 동의로 외부 인사가 등용될 수 있다. 28일이 지났음에도 내각을 구성하지 못했다면 내각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정당의 당수에게 내각구성권을 부여한다. 그렇게 구성된 내각, 즉 정부는 안보 문제를 포함해 국내외 여러 업무를 관장한다. 내각은 업무 및 정책 결정 과정을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가 열리지만 필요 시 추가적으로도 소집될 수 있다. 장관회의를 통해 업무를 진행할 수도 있다. 총리가 사임, 서거, 불신임, 자격박탈 등의 사유로 총리직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내각은 카브라 의원 중 한 명을 총리 서리로 임명한다. 불신임 투표가 가결된 경우, 내각과 총리는 새로운 내각이 구성될 때까지 임무를 유지한다.
  
 
첫 회기에서 카브라 의원들은 직무에 충실할 것을 선언하고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한다. 임기는 5년이지만 내각불신임결의를 맞아 조기에 해산될 수 있다. 선거 후 새 의회가 구성되기 전까지는 해산되는 의회가 모든 권한을 갖는다. 카브라는 본회의에서 15개의 상임 위원회를 통해 임무를 수행한다. 본회의에서는 정부 정책과 활동 및 정부나 의회 의원 개인이 제출한 법안을 두고 전체 토론을 실시한다. 정규 공공 법안이 법률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카브라에서 3차에 걸친 독회를 통과해야 한다(사적 법안은 4회의 독회를 거침). 법안은 첫 독회에서 본회에 회부되어 그 내용에 관한 간략한 토론이 진행되고, 그 후 필요할 경우 해당 의회 위원회에 회부되어 세부 토론과 초안 수정이 이루어진다. 해당 위원회의 작업이 끝나면 법안을 본회에 다시 상정하여 2차 독회를 가지는데, 이 때 유보권이 있는 위원회 의원들이 본회에 유보 의사를 밝힐 수 있다. 대체토론 후 각각의 법안 조항을 표결에 부치고, 법안을 다시 위원회에 회부할 필요가 없으면 곧바로 3차 독회가 열리고 법안 전체에 대해 최종 투표가 실시된다. 법안이 통과되면 의장이 이에 서명하고, 염왕, 총리, 의회 의장, 이 법의 실행을 담당하는 관계 장관의 서명과 함께 후에 관보로 고시된다. 끝으로 법무장관이 국가 인장을 찍고 나면 이 법안은 정식 법이 된다.
 
첫 회기에서 카브라 의원들은 직무에 충실할 것을 선언하고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한다. 임기는 5년이지만 내각불신임결의를 맞아 조기에 해산될 수 있다. 선거 후 새 의회가 구성되기 전까지는 해산되는 의회가 모든 권한을 갖는다. 카브라는 본회의에서 15개의 상임 위원회를 통해 임무를 수행한다. 본회의에서는 정부 정책과 활동 및 정부나 의회 의원 개인이 제출한 법안을 두고 전체 토론을 실시한다. 정규 공공 법안이 법률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카브라에서 3차에 걸친 독회를 통과해야 한다(사적 법안은 4회의 독회를 거침). 법안은 첫 독회에서 본회에 회부되어 그 내용에 관한 간략한 토론이 진행되고, 그 후 필요할 경우 해당 의회 위원회에 회부되어 세부 토론과 초안 수정이 이루어진다. 해당 위원회의 작업이 끝나면 법안을 본회에 다시 상정하여 2차 독회를 가지는데, 이 때 유보권이 있는 위원회 의원들이 본회에 유보 의사를 밝힐 수 있다. 대체토론 후 각각의 법안 조항을 표결에 부치고, 법안을 다시 위원회에 회부할 필요가 없으면 곧바로 3차 독회가 열리고 법안 전체에 대해 최종 투표가 실시된다. 법안이 통과되면 의장이 이에 서명하고, 염왕, 총리, 의회 의장, 이 법의 실행을 담당하는 관계 장관의 서명과 함께 후에 관보로 고시된다. 끝으로 법무장관이 국가 인장을 찍고 나면 이 법안은 정식 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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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 ==
 
== 정당 ==
 
주요 정당으로 국민자유연합과 민주연대, 진명당이 있으며 국민자유연합과 진명당이 연립 정부를 구성해 현 여당으로 있다.
 
주요 정당으로 국민자유연합과 민주연대, 진명당이 있으며 국민자유연합과 진명당이 연립 정부를 구성해 현 여당으로 있다.
  • 국민자유연합: 중도우파 ~ 우익 // 보수주의, 자유보수주의, 반공주의 (연립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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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자유연합]]: 중도우파 // 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연립 여당)
  • 진명당: 중도우파 ~ 우익 // 보수주의, 자유보수주의, 반공주의 (연립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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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명당]]: 중도우파 // 보수주의, 재정보수주의 (연립 여당)
  • 민주연대: 중도좌파 ~ 좌익 // 진보주의, 사회민주주의, 보수자유주의
+
  • [[민주연대]]: 중도 ~ 중도좌파 // 자유주의, 사회자유주의
  • 노동당: 좌익 ~ 극좌 //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
  • [[노동당]]: 좌익 //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 녹색당: 중도좌파 // 생태주의, 참여민주주의
 
 
== 국제관계 ==
 
== 국제관계 ==
국제연합(UN)과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EC)에 가입해 있다. UN 회원국에 한해 만국수교주의를 실시하고 있으나 남아프리카민주공화국과는 미수교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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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합(UN)과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EC)에 가입해 있다. UN 회원국에 한해 만국수교주의를 실시하고 있다.
 
 
 
= 경제 =
 
= 경제 =
 
가무토는 섬나라라는 특성상 어업이 발달하였으며,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광업과 제철업, 이와 연계하여 조선업 등이 발달하였다. 특히 제철업과 조선업은 가무토의 주요 산업으로서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한다.
 
가무토는 섬나라라는 특성상 어업이 발달하였으며,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광업과 제철업, 이와 연계하여 조선업 등이 발달하였다. 특히 제철업과 조선업은 가무토의 주요 산업으로서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한다.
 
== 어업 ==
 
== 어업 ==
가무토 주변 해역 일대에서 고등어와 갈치 등과 같은 다양한 온대성 어종이 주로 잡힌다. 명문도에서 어업 활동이 많이 이루어지며, 국내 어업의 70%가량은 명문도가 차지한다. 최근에는 해양바이오 기술과 결합하여 다양한 어종의 개발과 보호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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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토 주변 해역 일대에서 고등어와 갈치 등과 같은 다양한 온대성 어종이 주로 잡힌다. 초명도에서 어업 활동이 많이 이루어지며, 국내 어업의 70%가량은 초명도가 차지한다. 최근에는 해양바이오 기술과 결합하여 다양한 어종의 개발과 보호가 이루어진다.
 
== 농업 ==
 
== 농업 ==
 
협소한 실사용 면적, 염분이 다소 함류된 토양 등의 이유로 가무토는 예로부터 농업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작은 텃밭에서 간단한 채소 정도만 키우며, 쌀과 같은 경우는 계단식 논을 경작하여 재배한다. 이렇듯 농업에 부적합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스마트팜 농업, 도시농업 등의 해결책을 내세우고 있다.
 
협소한 실사용 면적, 염분이 다소 함류된 토양 등의 이유로 가무토는 예로부터 농업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작은 텃밭에서 간단한 채소 정도만 키우며, 쌀과 같은 경우는 계단식 논을 경작하여 재배한다. 이렇듯 농업에 부적합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스마트팜 농업, 도시농업 등의 해결책을 내세우고 있다.
 
== 광업 ==
 
== 광업 ==
가무토는 전체적으로 철과 석탄이 풍부하다. 이러한 이유로 예로부터 '철의 나라'혹은 '불의 나라'로 불렸다. 주로 안향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생산물의 질이 뛰어나 항상 주요 수출품에 그 이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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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토는 전체적으로 철과 석탄이 풍부하다. 이러한 이유로 예로부터 '철의 나라'혹은 '불의 나라'로 불렸다. 주로 청한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생산물의 질이 뛰어나 항상 주요 수출품에 그 이름을 올린다.
 
== 중화학 공업 ==
 
== 중화학 공업 ==
풍부한 철과 이를 통해 발전한 제철업을 필두로 조선업, 자동차 산업 등의 중화학 공업이 국가 정책의 기조와 맞물려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특히 조선업은 가무토의 주요 산업으로서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반면 반도체 산업의 경우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가 세계적인 기류에 따라 뒤늦게 출발선을 지났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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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철과 이를 통해 발전한 제철업을 필두로 조선업, 자동차 산업 등의 중화학 공업이 국가 정책의 기조와 맞물려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특히 조선업은 가무토의 주요 산업으로서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반면 반도체 산업의 경우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가 세계적인 기류에 따라 뒤늦게 출발선을 지났다.
 
== 건설업 ==
 
== 건설업 ==
 
1990~2000년대 인구 증가와 동시에 이를 뒷받침할 주거지 건설이 다수 진행되면서 호황을 맞이했다. 팔운건설을 필두로 산업을 이끄는 형세다.
 
1990~2000년대 인구 증가와 동시에 이를 뒷받침할 주거지 건설이 다수 진행되면서 호황을 맞이했다. 팔운건설을 필두로 산업을 이끄는 형세다.
 
== 관광업 ==
 
== 관광업 ==
 
 
 
= 사회 =
 
= 사회 =
 
== 교육 ==
 
== 교육 ==
 
 
= 문화 =
 
= 문화 =
 
 
= 군사 =
 
= 군사 =
가무토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는 군대 미보유국이다. 단 국가경찰과 해안경비대가 가무토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다. 해안경비대는 6척의 초계함과 2기의 고정익 항공기, 4기의 회전익 항공기를 운용하고 있다. 최상위 계급은 소장으로서, 그 밑으로 준장, 대령, 중령, 소령, 대위, 중위, 소위, 준위, 상사, 하사, 상병, 일병, 이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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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토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는 군대 미보유국이다. 단 [[국가경찰]]과 [[해안경비대]]가 가무토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다. 해안경비대는 6척의 초계함과 2기의 고정익 항공기, 4기의 회전익 항공기를 운용하고 있다. 최상위 계급은 소장으로서, 그 밑으로 준장, 대령, 중령, 소령, 대위, 중위, 소위, 준위, 상사, 하사, 상병, 일병, 이병이 있다.

2022년 1월 7일 (금) 14:32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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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2fGctjTlkoi hCDPmgptWfjQqmcpM0S9IoN6W9FR TfXkm5ptra6jQs5rlLqXgGlfC10fPmRg-U97cN2-igcVEC57M2z6g1kjelH-Yo7MPMo8YCIIW7ILFljFACJafYXRAXHTUINIuBhkIfFIXTw.svg 말라야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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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텔.png 미텔아프리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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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왕국 국기.png 불가리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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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토 국기.png 브렌토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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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모야 국기.png 샤모야 황실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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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코 국기.png 세이코 인민공화국
아오키 국기.png 아오키국
아이슬란드 국기.png 아이슬란드
아즈베티야연합국기.png 아즈베티야 연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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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코뮌국기3.png 프랑스 코뮌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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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기구 및 단체는 제외합니다.
* ㄱ,ㄴ,ㄷ 순으로 작성합니다.
가무토 왕국
ガムト王國
Kingdom of Kamuto

가무토 왕국 국기.png 가무토 왕국 국장.png
국기 국장
氣焰萬丈
기염만장
상징
국가 여명의 불꽃
국화 호야(벚꽃난)
국조 올빼미
국목 없음
위치
46846338-9611-4E70-8183-F1106FF7B19E.jpg
역사
삼국통일 1770년
국권피탈 1910년
광복 1945년
정부 수립 및 헌법 공포 1948년
지리
면적 41,097km²
수도 반월시
최대도시 반월시
접경국
인문환경
인구 전체인구 915,571명
민족구성
인구밀도 21명/㎢
출산율 2.3명
종교 국교 없음
종교 분포
공용어 일본어, 한국어
지역어 없음
군대 없음[1]
행정구역
도(島) 3도
시(市), 군(郡), 자치구(區) 23시[2], 7군, n자치구[* ]
3급 행정구역 n동, n면, n읍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다당제, 단일국가[3]
국가원수 카무라 이소네 염왕
국가요인 정부수반 이바나 미하나 총리
부총리 정용
국회의장 이츠키다 타다히데
대법원장 이와기 유우세이
헌법재판소장 마스다 히로야
여당 국민자유연합
진명당 [4]
경제
경제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명목 GDP GDP $21,375,836,137
1인당 GDP $23,347
수출입액 수출액
수입액
외환보유액
신용 등급
화폐 공식화폐 타마
ISO 4217 KMT
단위
법정연호 서력기원, UVN력
시간대 UTTC+9
도량형 SI 단위
외교
UN 가입 가입국
UN 가입일 1
ccTLD
.km
국가코드
486, KM, KMT
국제전화코드
+83
호야문.png
반월시 야경.jpg
반월시
경운시 야경.jpg
경운시
홍성군 해변.jpg
홍성군

개요

가무토 왕국(ガムト王國)은 일본 열도 동쪽에 있는 왕국이다. 서쪽으로는 일본나루가, 동쪽으로는 조선 공화국파시 연방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샤모야 황실제국이 있다. 수도는 반월시며, 일본어와 한국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있다.

상징

국호

가무토 왕국 헌법에 따라 공식 국호는 가무토 왕국이라 한다. 영문으로는 Kingdom of Kamuto라 표기한다. 편의상 가무토라 줄여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며 영문 약칭으로는 Kamuto를 사용한다. '가무토'라는 국명의 유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많은 의견이 분분하다.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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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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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

지리

가무토 왕국의 영토는 적열도와 청한도, 초명도 그리고 민간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일백도와 신월도로 총 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섬 면적의 총합은 41,097km²로써 일본의 규슈보다 약 1,000km² 작은 수준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섬은 적열도며 가장 작은 섬은 초명도다.[5]

다른 두 섬과는 달리 적열도에는 산이 많은데, 특히 적열도 중앙부에는 송화산이라는 거대한 산이 존재한다. 가장 큰 봉우리의 높이는 1,000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이런 거대한 크기 때문에 적열도에 한해 성산으로 취급되며, 제례제의 주요 행사가 이곳에서 행해진다. 반면 강의 경우는 청한도에 집중되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짧고 작은 강으로 가장 긴 강인 내성강은 200km도 채 되지 않는다. 초명도는 드넓은 평야 지대가 있어 가무토의 농업의 절대다수가 초명도에서 이뤄진다.

기후

국토의 대부분이 온대 기후에 속하고 있다. 적열도 북부의 일부 지역은 다소 선선한 편이다. 추위를 느낄 수 있는 날은 주로 12월에서 2월에 집중되어 있다. 이후 3월부터는 온난해지면서 4월 말로 접어들면 여름의 날씨를 보이기 시작한다. 5월 중순이 되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된다. 일부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은 냉대 기후나 한대 기후가 나타나기도 한다. 겨울이 건조한 한국과는 달리 가무토는 겨울에도 습한 날이 지속되어 평균 100mm의 강수량을 보이기도 한다. 여름에도 마찬가지로 강수가 집중되어 있어 강수량이 1,500mm~1,800mm에 달하기도 한다. 지진이 많이 발생하여 해일 등의 자연재해가 자주 일어나기도 하며, 태풍 역시 자주 발생한다. 때문에 내진 설계를 필수로 규정한다.

자원

가무토 제도는 양질의 철이 풍부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세계 순위권에 드는 철 생산량을 자랑한다. 고등어와 갈치 등 다양한 온대성 어종이 다수 서식하고 있어 많은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반대로 농업은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농업에 부적합한 탓에 쌀 등의 생산물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농업, 스마트팜 등의 방법으로 빈약한 농업을 선두하고 있다.

인문환경

인구

언어

종교

교통

행정 구역

가무토 행정구역2.jpg

광역자치단체인 3개의 도(島)와 반월시, 그 아래에는 기초자치단체인 29개의 시(市)와 군(郡)으로 나뉘어 존재한다. 반월시는 5개의 자치구(區)가 존재한다. 시와 자치구는 동(洞)과 읍(邑)으로 나뉜다. 군은 읍(邑)과 면(面)으로 나뉜다.

정치

가무토는 입헌군주국으로서 염왕이 국가원수로 재위하고 있으나, 그 권한은 헌법에 의해 제한된다. 더불어 의원내각제를 실시하고 있어 집권당 당수가 총리로 취임하여 실질적인 국가원수로 기능한다. 행정부(내각, 정부)와 입법부(카브라), 사법부로 삼권이 나뉜 형태이지만, 특히 행정부와 입법부는 서로 견제하는 것이 아닌 상호 협력을 기초로 운영되고 있다.

가무토의 민주주의

1347년 건국된 이래로 가무토는 전제군주제를 표방했다. 16세기에 이르러 재상 중심의 정치를 실현하기는 했으나, 왕이 모든 실권을 지니고 있다는 본질은 변함이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경반왕이 6대 염왕으로 즉위하면서 국민의 행복 보장을 위한 민주화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수준 높은 근대 교육을 통한 계몽과 직접 사람들과 만나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연한 결과 성왕 대에 이르러 가무토에도 민주주의가 정착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선 민주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염왕

염왕은 가무토의 군주이자 국가원수로서, 가무토의 얼굴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국가원수이긴 하나 실질적인 권한은 없으며, 3명의 섬의 왕과 함께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총선 후에 내각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의 당수를 총리로 임명하고 내각구성권을 부여한다. 이 외에도 명목상의 의회해산권, 특별사면권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한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만큼 각 섬의 제례제를 주관하는 역할을 지니고 있다. 애초에 염왕은 쇄광교의 수장이기 때문에 제례제 주관은 필수적인 사항이다. 현재 카무라 이소네 염왕이 재위 56년 차에 있으며, 연호는 창천(昌天)이다.

카브라와 내각

카브라는 가무토의 의회다. 재적 100석으로 이루어지며, 비례대표 없이 오로지 지역구 의원으로만 구성된다. 카브라 의원의 임기는 5년으로 연임의 제한은 없다. 염왕으로부터 내각구성권을 부여받은 총리는 28일 이내에 내각을 구성해 카브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때 장관들은 모두 카브라 의원이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간혹 카브라의 동의로 외부 인사가 등용될 수 있다. 28일이 지났음에도 내각을 구성하지 못했다면 내각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정당의 당수에게 내각구성권을 부여한다. 그렇게 구성된 내각, 즉 정부는 안보 문제를 포함해 국내외 여러 업무를 관장한다. 내각은 업무 및 정책 결정 과정을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가 열리지만 필요 시 추가적으로도 소집될 수 있다. 장관회의를 통해 업무를 진행할 수도 있다. 총리가 사임, 서거, 불신임, 자격박탈 등의 사유로 총리직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내각은 카브라 의원 중 한 명을 총리 서리로 임명한다. 불신임 투표가 가결된 경우, 내각과 총리는 새로운 내각이 구성될 때까지 임무를 유지한다.

첫 회기에서 카브라 의원들은 직무에 충실할 것을 선언하고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한다. 임기는 5년이지만 내각불신임결의를 맞아 조기에 해산될 수 있다. 선거 후 새 의회가 구성되기 전까지는 해산되는 의회가 모든 권한을 갖는다. 카브라는 본회의에서 15개의 상임 위원회를 통해 임무를 수행한다. 본회의에서는 정부 정책과 활동 및 정부나 의회 의원 개인이 제출한 법안을 두고 전체 토론을 실시한다. 정규 공공 법안이 법률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카브라에서 3차에 걸친 독회를 통과해야 한다(사적 법안은 4회의 독회를 거침). 법안은 첫 독회에서 본회에 회부되어 그 내용에 관한 간략한 토론이 진행되고, 그 후 필요할 경우 해당 의회 위원회에 회부되어 세부 토론과 초안 수정이 이루어진다. 해당 위원회의 작업이 끝나면 법안을 본회에 다시 상정하여 2차 독회를 가지는데, 이 때 유보권이 있는 위원회 의원들이 본회에 유보 의사를 밝힐 수 있다. 대체토론 후 각각의 법안 조항을 표결에 부치고, 법안을 다시 위원회에 회부할 필요가 없으면 곧바로 3차 독회가 열리고 법안 전체에 대해 최종 투표가 실시된다. 법안이 통과되면 의장이 이에 서명하고, 염왕, 총리, 의회 의장, 이 법의 실행을 담당하는 관계 장관의 서명과 함께 후에 관보로 고시된다. 끝으로 법무장관이 국가 인장을 찍고 나면 이 법안은 정식 법이 된다.

사법부

사법부의 독립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법관은 대법원 판사, 법조계 인사, 공직자들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염왕이 임명한다. 법관은 종신직이며 70세가 정년이다. 일반 법률에 대한 기본법의 규범적 우위는 1995년 대법원이 기본법을 침해하는 의회의 법률제정을 심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면서 확정이 되었다. 수년에 걸쳐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종교의 자유, 평등 등의 기본 인권을 이스라엘 법체계의 근본적 가치로서 보호하는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여러 가지 판례법이 발달했다. 대법원은 고등법원으로서 모든 정부단체나 산하기관에 대해 시정을 호소하며 개인이 제출한 청원서를 심리하기도 한다.

정당

주요 정당으로 국민자유연합과 민주연대, 진명당이 있으며 국민자유연합과 진명당이 연립 정부를 구성해 현 여당으로 있다.

국민자유연합: 중도우파 // 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연립 여당)
진명당: 중도우파 // 보수주의, 재정보수주의 (연립 여당)
민주연대: 중도 ~ 중도좌파 // 자유주의, 사회자유주의
노동당: 좌익 //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국제관계

국제연합(UN)과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EC)에 가입해 있다. UN 회원국에 한해 만국수교주의를 실시하고 있다.

경제

가무토는 섬나라라는 특성상 어업이 발달하였으며,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광업과 제철업, 이와 연계하여 조선업 등이 발달하였다. 특히 제철업과 조선업은 가무토의 주요 산업으로서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한다.

어업

가무토 주변 해역 일대에서 고등어와 갈치 등과 같은 다양한 온대성 어종이 주로 잡힌다. 초명도에서 어업 활동이 많이 이루어지며, 국내 어업의 70%가량은 초명도가 차지한다. 최근에는 해양바이오 기술과 결합하여 다양한 어종의 개발과 보호가 이루어진다.

농업

협소한 실사용 면적, 염분이 다소 함류된 토양 등의 이유로 가무토는 예로부터 농업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작은 텃밭에서 간단한 채소 정도만 키우며, 쌀과 같은 경우는 계단식 논을 경작하여 재배한다. 이렇듯 농업에 부적합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스마트팜 농업, 도시농업 등의 해결책을 내세우고 있다.

광업

가무토는 전체적으로 철과 석탄이 풍부하다. 이러한 이유로 예로부터 '철의 나라'혹은 '불의 나라'로 불렸다. 주로 청한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생산물의 질이 뛰어나 항상 주요 수출품에 그 이름을 올린다.

중화학 공업

풍부한 철과 이를 통해 발전한 제철업을 필두로 조선업, 자동차 산업 등의 중화학 공업이 국가 정책의 기조와 맞물려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특히 조선업은 가무토의 주요 산업으로서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반면 반도체 산업의 경우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가 세계적인 기류에 따라 뒤늦게 출발선을 지났다.

건설업

1990~2000년대 인구 증가와 동시에 이를 뒷받침할 주거지 건설이 다수 진행되면서 호황을 맞이했다. 팔운건설을 필두로 산업을 이끄는 형세다.

관광업

사회

교육

문화

군사

가무토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는 군대 미보유국이다. 단 국가경찰해안경비대가 가무토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다. 해안경비대는 6척의 초계함과 2기의 고정익 항공기, 4기의 회전익 항공기를 운용하고 있다. 최상위 계급은 소장으로서, 그 밑으로 준장, 대령, 중령, 소령, 대위, 중위, 소위, 준위, 상사, 하사, 상병, 일병, 이병이 있다.

  1. 국가경찰해안경비대가 국방을 담당한다.
  2. 반월시도 포함되지만, 광역자치단체로 분류된다.
  3. 각 섬에 섬의 왕이 존재해 연방국가라 오해할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존재로서 가무토는 단일국가다.
  4. 연립정부
  5. 일백도와 신월도를 제외한 것이다. 이 둘을 포함하면 신월도가 가장 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