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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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ㄴ,ㄷ 순으로 작성합니다.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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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Dieu et mon droit
하나님과 나의 권리
상징
국가 God Save the Queen
(하나님, 국왕(여왕) 폐하를 지켜 주소서)
국화 없음
국수 사자
국조 울새
역사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의 동군연합 1603년 3월 24일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의 통합[6] 1707년 5월 1일
아일랜드 왕국 합병 1801년 1월 1일
지리
면적 314,164km²
수도 런던
최대도시 런던
구성국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인문환경
인구 전체인구 ?명
인종 구성 백인 84%, 아시아인 8%, 흑인 5%, 혼혈 2%, 기타 2%
인구밀도 /km²
출산율 1.95명
종교 잉글랜드 성공회(잉글랜드)
국교 없음(잉글랜드 이외 지역)
언어 영어
군대 여왕 폐하의 군대
정치
정치체제 영연방 왕국,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단일국가
국가요인 국가원수
(국왕)
엘리자베스 2세
정부수반
(총리)
테리사 메이
집권내각
(여당)
틀:보수당
경제
경제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GDP
(명목)
전체 GDP $
1인당 GDP $
GDP
(PPP)
전체 GDP $
1인당 GDP $
화폐 공식화폐 파운드 스털링(£)
ISO 4217 GBP
단위
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2 ~ UTC+12
도량형 SI 단위
외교
유엔 가입 1945년
ccTLD
.uk
국가코드
826, GBR, GB
국제전화코드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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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영어: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유나이티드 킹덤 오브 그레이트 브리튼 앤드 아일랜드[*]), 약칭 연합왕국(聯合王國,영어: United Kingdom 유나이티드 킹덤[*], UK, U.K.), 브리튼(영어: Britain) 또는 가장 일반적으로 영국(英國)은 유럽 본토 해안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입헌군주국이다. 북해, 영국 해협, 아일랜드해대서양에 접하여 있으며 그레이트브리튼섬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아일랜드섬아일랜드로 네 개의 구성국이 연합해 형성한 단일 국가이다.[1] 수도는 런던이고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의 수도는 각각 에든버러, 카디프, 더블린이다.

해외 영토에는 스페인(영국령 지브롤터), 키프로스(아크로티리 데켈리아) 등이 있다. 케이맨 제도, 버뮤다와 같이 해외 본토의 일부는 아니나 영국의 군주의 지배 하에 있는 영토들도 있다. 해외 영토 거주민들과 영국 본토의 국민들은 서로의 지역에 거주할 권리가 없으며 상호간의 이민도 자유롭지 않다.[2]

영국은 입헌군주제를 기본으로 하여 근대적 의회제도의원내각제를 전 세계로 전파시킨 국가이며 산업혁명의 발원지로 제일 먼저 산업화가 된 나라이자 19세기20세기 초반 세계 인구와 영토의 1/4을 차지한 유일의 초강대국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쇠퇴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에 경제, 문화, 군사, 과학, 정치적인 영향을 끼치는 강대국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특히 대중 음악은 비틀즈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세계에 막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핵무기 보유국이고 2018년 기준으로 군사비 지출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크다. 2018년 명목 국내총생산은 세계 5위였으며,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대 기업 중 로열 더치 쉘, BHP 빌리튼, 보다폰, HSBC, BP,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유니레버가 영국 기업이었다. 대졸자 초임 연봉은 2010년 기준으로 약 25,000 영국 파운드(한화 약 3,767만원)에 달한다.

국명

영국의 정식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이며, 약칭으로 브리튼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영국이라 부르는 것은 연합왕국의 구성국인 잉글랜드한자 표기에서 나온 것으로 다른 한자 문화권에서도 수용된다. 영(英){중국어발음은 잉(병음: Yīng)}은 잉글랜드(England)의 잉(Eng-)을 음역(音譯)한 것이고, 국(國)은 랜드(-land)를 의역한 것이다. 한자 문화권에서 이 이름은 연합왕국 전체를 통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문맥에 따라서 여전히 잉글랜드만을 뜻하기도 하여 중의적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는 잉글랜드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잉글레스(포르투갈어: inglês)의 음역인 이기리스(일본어: イギリス 또는 英吉利)로도 쓰인다.

어원

1707년에 잉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왕국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현재 영국을 지칭할 때 흔히 쓰이는 ‘유나이티드 킹덤’이라는 호칭은 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부를 때 사용했던 국명으로, 다만 1707년부터 1800년까지 정식 국명은 여전히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었다. 1801년에는 아일랜드 왕국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통합되며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을 구성하였다. 1910년대 북쪽 지방을 제외한 아일랜드 독립 여론으로 인해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라는 국명이 검토되기도 했지만 1918년 이후 아일랜드 의회당이 의석 수 확보에 성공하면서 아일랜드는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영국은 현재 단일국가이기는 하지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는 여전히 상당한 자치를 가지고 있다. 영국 총리의 웹사이트에도 영국을 설명할 때에는 ‘국가 안의 국가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다만 완벽한 자치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서, 대부분의 정부 통계를 낼 때에는 ‘지방’이나 ‘행정구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부르기도 한다.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단어는 보통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칭하는 것이나, 정치적으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를 합쳐 부르는 단어이기도 한다. 가끔씩은 영국 전체를 느슨하게 묶어서 통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브리튼’이라는 단어는 그레이트브리튼과 동의어로, 영국을 부를 때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한다. 다만 영국 정부는 'UK'를 ‘브리튼’보다 선호하며, 대사관이나 외교 업무를 제외하고는 브리튼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영국 지리학회에서는 자국의 약칭을 ‘브리튼’이 아닌 ‘유나이티드 킹덤’이나 'UK'로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그레이트브리튼’이라는 단어의 경우에는 은연중에 북아일랜드를 제외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고 하여 따로 분류해놓고 있다. 다만 영국의 대표적인 방송사인 BBC의 경우, 영국을 칭할 때에 ‘브리튼’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해오고 있다.

상징

영국의 국기는 유니언기, 다른 말로는 유니언잭(Union Jack)이라고 부른다. 초기의 유니언잭은 하얀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잉글랜드의 깃발에서 푸른 바탕에 하얀 십자가가 그려진 스코틀랜드의 기가 합쳐져 1600년대에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며, 1801년에 성패트릭의 기가 합쳐졌다. 다만 드래곤이 그려져 있는 웨일스의 깃발은 유니언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영국의 국가는 ‘신은 여왕을 보우하소서(God save the Queen)'으로, 군주가 남성일 경우에는 가사 속의 단어를 ’Queen'이 아니라 ‘King'으로 바꾼다.

영국을 의인화한 인물은 브리타니아라고 하는데, 로만 브리튼 시절에 처음 유래하였으며 금발이나 갈색 머리를 하고 그리스 투구를 쓰고 있으며 하얀 로브를 걸치고 있는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포세이돈의 삼지창과 방패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국장에는 사자와 유니콘, 혹은 드래곤이 그려져 있는데, 이 외에도 불독도 국가를 상징하는 동물로 있다. 브리타니아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존 불도 영국을 상징하는 캐릭터 중 하나이다.

역사

연합왕국 성립 이전

현생 인류는 대략 3만 년 전쯤부터 영국 지역에 살기 시작하였다. 선사시대가 끝나갈 무렵, 이들은 켈트족이라는 민족을 구성하며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켜나갔고, 브리튼 섬에는 브리튼인이, 아일랜드에는 게일인이 등장하였다. 그러던 중 기원후 43년부터 로마인들이 브리튼 섬을 침공하였고, 이들이 약 400여 년 동안 브리튼 섬 남부를 지배하며 브리튼인들을 로마화시켰다. 이후에는 게르만계의 앵글로 색슨족이 쳐들어왔고, 본래 섬에 거주하던 브리튼인들을 웨일스 지방으로 몰아낸 후에 섬의 주 지역들을 대신 차지하였다. 앵글로색슨족은 약 10세기 경 잉글랜드 왕국으로 통합되었고, 5세기 경 아일랜드에서부터 이주해와 브리튼 섬 북서부에 살고 있던 일부 게일인들은 픽트족과 통합되어 9세기 경에 스코틀랜드 왕국을 건국하였다.

1066년, 노르만족이 프랑스 북부에서 건너와 잉글랜드를 침공하였고, 웨일스, 아일랜드 대부분을 점령하였으며 이후에는 스코틀랜드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스코틀랜드에 자리를 틀며 프랑스식의 봉건제를 지역에 정착시켜나갔고, 본래 있던 앵글로색슨 지배계층들과 교류하며 섬의 엘리트층으로 떠올랐다. 이후 왕위에 오른 잉글랜드의 왕들은 웨일스 지방을 정복하는 데에 성공하였으나, 스코틀랜드를 합병하는 데에는 실패하여 1320년에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반강제적으로 인정하기도 하였다. 이후 스코틀랜드는 1700년대에 합병될 때까지 시시건건 잉글랜드와의 충돌을 반복하게 된다.

잉글랜드의 역대 국왕들은 결혼과 전쟁 등을 반복하여 프랑스 본토 내에도 상당한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고, 게다가 프랑스 왕위계승권도 가지고 있었기에 프랑스 내에서 일어나는 정치 다툼에 깊이 휘말려들 수 밖에 없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와 벌인 백년전쟁으로, 이때 스코틀랜드의 왕들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잉글랜드에 대항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 구 가톨릭과 신교 간의 싸움이 치열해지자, 잉글랜드는 새로운 국교인 성공회를 조직하고 가톨릭 교회들이 갖고 있던 토지들을 몰수하고 왕권 강화에 활용하였다. 이때즈음에 이르자 웨일스는 완전히 잉글랜드 왕국에 편입되었고, 아일랜드는 잉글랜드 왕위 하에 하나의 왕국으로 성립되었다. 한편 잉글랜드 왕국은 현재의 북아일랜드 지방에 있는 가톨릭 교회의 토지들을 몰수하여 근왕파 귀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603년, 스코틀랜드의 왕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왕위를 물려받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왕국은 하나로 통합되게 되었다. 제임스 6세는 그의 궁정을 에든버러에서 런던으로 옮겼으나, 여전히 각각의 왕국들은 따로 노는 성향이 강했으며 정치적, 법적, 종교적으로는 제각각으로 활동했다. 17세기 중반에는 이 3개의 왕국들 모두가 내전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때 잠시 왕정이 폐지되었으며 국왕 찰스 1세가 참수당했고 잠시동안 커먼웰스가 세워지며 단명한 공화국이 창설되기도 했다. 또한 17세기, 18세기에는 섬이라는 영국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영국 출신의 수많은 해적들이 활동하며 유럽과 캐리비안 해의 상선들을 약탈하여 악명을 떨쳤다.

단명한 공화정이 폐지된 이후 왕정이 복고되었으나, 전제군주정은 다시는 부활하지 못했다. 또한 가톨릭교도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법이 통과되면서 로마 교황의 간섭도 타 유럽 국가들에 비하여 훨씬 뜸해졌고, 권리장전 등 국왕의 권력을 제약하고 의회의 힘을 강화하는 법들이 연이어 통과되며 이후 영국은 의회제도와 입헌군주정에 기반한 국가로 도약하게 된다. 한편 1660년에는 왕립위원회가 창설되며 과학계에 대한 후원이 대폭 증가하였고, 왕실의 후원에 힘입어 해군력이 크게 증강되었으며 해외 식민지 탐사에 눈을 뜨게 되며 북아메리카와 캐리비안 지역에 대대적인 식민지 건설이 시작되었다.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국이 서로 몇 백년 동안 반목을 거듭한 끝에, 1707년 5월 1일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양국 의회가 통합법을 가결하며 마침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됨에 따라 두 왕국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18세기에는 첫 총리로 로버트 월폴이 취임하였고, 의회내각제에 기반하여 근대 민주주의의 기반을 닦아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자코바이트의 난이 터지며 신교를 믿는 하노버 왕가를 몰아내고 가톨릭을 신봉하는 스튜어트 왕가를 복구하려 시도하였으나, 결국 1746년에 대패하고 반란을 일으켰던 스코틀랜드인들은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한편 북아메리카에 설립한 영국의 식민지는 독립전쟁을 일으켜 미국을 건국하며 떨어져나갔고,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이를 1783년에 인정하였다. 이후 영국의 관심은 아시아 쪽으로 옮겨갔고, 특히 영국이 아시아에 차지하고 있는 가장 부유하고 거대한 식민지인 인도에 집중되었다.

영국은 대서양 노예무역을 주도하며 1662년과 1807년 사이에 수많은 선박들을 이용하여 거의 330만 명의 흑인 노예들을 아프리카에서부터 실어날랐다. 노예들은 보통 북아메리카나 캐리비안 해역에 있는 거대한 플랜테이션 등으로 강제적으로 옮겨갔으며 심각한 탄압을 받으며 사탕수수나 목화 등을 재배하는 일에 동원되었다. 이들의 강제 노동은 18세기 영국의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들 중 하나였으며, 노예상인들은 이 과정에서 엄청난 이익을 남기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노예무역의 반인륜적인 실태가 갈수록 폭로되지 결국 여론의 압박을 받은 의회가 1807년에 노예무역을 금했고, 1833년에는 대영제국 전체에서 노예제를 철폐하였다. 또한 이후에는 노예제 폐지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타 유럽 국가들도 노예를 거래하거나 사고파는 일을 그만두도록 압박하기도 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인권단체인 ‘반노예인터네셔널(Anti-Slavery International)'도 1839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창설되었다.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다스린 빅토리아 여왕

대영제국과 1차 세계대전

'유나이티드 킹덤‘, 즉 ’UK'라는 국명은 1801년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아일랜드 정부가 서로 통합을 결정하면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창설되면서 정식으로 영국의 국명으로 결정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가 결국 영국과 그 연합국들에게 패한 이후, 영국은 19세기 유럽의 최강자로 떠올랐고, 전세계의 제해권을 장악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으로 뻗어나갔다. 1830년대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였으며, 영국 상선들은 막강한 해군의 비호를 받으며 전세계를 이었다. 이 시기를 일컬어 영국 주도하의 평화, 즉 ‘팍스 브리타니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시기 영국의 국력은 매우 강대해지면서 ‘대영제국’이라고 불리기 시작하였고, 1815년에서 1914년까지 서구 열강들이 서로 균형을 유지하며 견제하는 소강기 동안 세계의 패권을 쥐고 경찰국가 지위를 획득하였다. 또한 18세기에 대대적으로 일어난 산업혁명에서 주도권을 잡으며,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853년에서 1856년까지는 오스만 제국과 손을 잡고 러시아 제국과 맞서 싸우며 크림 전쟁에 참가하였다. 영국은 이 전쟁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크게 넓히는 데에 성공하였고, 인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호주 등 세계 곳곳에 방대한 해외 영토를 건설하였다. 영국은 막강한 금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경제권을 손에 거머쥐었고, 자유무역과 작은정부를 지향하면서 점차 자본주의를 전세계에 전파하였다. 인구는 전례없는 속도로 증가하였고, 도시화가 급격히 일어났으며 사회의 빈부격차는 심각한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디즈레일리 총리가 이끄는 내각과 보수당은 제국을 먹여살릴 새로운 동력을 찾기 위하여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렸고, 이집트, 남아프리카 등 미개척지에 수많은 탐험원정대들을 파견하며 국력을 과시하였다. 한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영국의 통제를 받는 자치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시간이 흐르자 압도적이었던 영국의 산업화 속도도 독일과 미국 등 신흥 강대국들에게 따라잡혔고, 유럽과 미국과의 경제력 격차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편 1900년대 이후 아일랜드 지방의 사회개혁과 자치는 영국 정가의 최고 이슈로 급부상하였고, 이후 아일랜드의 독립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한편 1900년대 이후에는 무역조합들과 조그만 사회주의 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노동당이 등장하였고, 여성 투표권, 참정권 등을 요구하는 다양한 사회단체들이 등장하여 사회의 변혁기를 이끌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 러시아, 미국과 함께 독일과 동맹국을 상대로 연합국 측에서 싸웠다. 영국은 거의 모든 식민지에서 병사들을 모집했고, 대부분을 유럽 전선에 투입하며 전세를 승리조로 이끌었다. 그러나 피해는 막대하였고, 영국은 한 세대에 달하는 젊은이들을 잃었으며 사회질서의 붕괴, 기존 질서에 대한 회의 등 여러 변화를 맞았다. 전후에는 독일과 오스만 제국의 영토들을 분할,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기 위하여 국제 연맹을 창설하는 데에 참가하였다. 대영제국은 세계대전 직후 그 국력의 절정기를 맞았다. 대영제국은 전세계 육지의 5분의 1을 다스렸으며, 전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그 신민들로 거느렸다. 그러나 세계대전의 피해도 만만치 않아서, 대략 250만 명의 사망자들을 내었으며 엄청난 양의 빚을 지게 되었다.

윈스턴 처칠 총리

제2차 세계대전

1920년대 중반에 이르자 거의 대부분의 영국 국민들은 BBC에서 송출하는 방송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텔레비전 방송이 1929년에 시범적으로 시작되었고, 1936년에는 처음으로 BBC 방송표가 결성되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한편 1900년대 이후 계속되었던 아일랜드 민족주의는 1910년대 들어 강화되면서 독립여론이 발생하였지만 1918년 총선 이후 아일랜드 의회당 의석 수가 어느정도 회복되고 중앙정부가 아일랜드 지역정부의 고도의 자치를 약속하자 독립은 무산되었다. 당시 북쪽 지방을 제외한 아일랜드 독립 여론으로 인해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라는 국명이 검토되기도 했다. 1928년에는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한 정치권과 선거권을 주었으며, 1920년대에는 빈부격차와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며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발 대공황이 도래했고, 1차 세계대전 시절에 입은 내상을 완벽히 회복하지 못한 영국은 엄청난 양의 실업률과 사회적 불안정을 맞으며 불안한 1930년대를 보냈다. 이시기 영국에서는 수많은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등장하였으며, 1931년에는 연립 정부가 구성되었다.

다만 이같은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아직까지도 세계의 중심이었으며, 런던은 세계 경제계의 핵심이었고 그 무력은 세계 최강이었다. 그러던 중 히틀러 주도의 나치 독일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도 이를 좌시하지 않고 1939년에 독일에 전쟁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였다. 1940년에는 윈스턴 처칠이 총리직에 올랐고, 내각을 이끌고 전쟁을 지속해나갔다. 다만 개전 초기에는 프랑스 등의 동맹들이 나치에게 쓸려나가며 홀로 외로운 전쟁을 계속하였으나, 처칠 총리가 산업을 독려하고 과학자, 기술자들에게 정부를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면서 점차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1940년에는 왕립 공군이 영국본토방공전에서 독일의 루프트바페를 상대로 영공을 수호하는 데에 성공하였으나, 이과정에서 런던 등을 포함한 시가지가 엄청난 폭격을 당했다. 1941년에는 영국과 미국, 소련이 대동맹을 맺었고, 점차 나치를 포함한 추축국을 상대로 대대적인 반격전에 나서며 유럽, 대서양,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등에서 엄청난 격전을 벌였다. 영국군은 1944년에 실시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유럽을 나치 치하에서 해방시키며 상당한 군공을 세웠다. 영국군은 유럽뿐만 아니라 미얀마, 태평양 등에서도 활약하였으며, 영국 태평양함대는 태평양에서 일본 함대와 맞서 싸우기도 하였다. 또한 영국 출신 과학자들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내는 데에 일조하였다.

20세기

2차 세계대전 시기동안, 영국은 미국, 소련, 중국과 함께 세계의 4대 강대국 측에 들었다. 이들은 전후에 세계평화와 신세계질서 구축을 위하여 국제연합을 창설하였고,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지위를 얻었다. 또한 IMF, 세계은행, 나토 등 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제기구들을 설립하였다. 영국은 2번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국력이 심각하게 약화되었고, 이 때문에 미국 주도의 경제재건프로그램인 마셜 플랜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대전이 끝난 이후 노동당이 이끄는 정부가 급진적인 개혁 정책들을 펼쳤고, 사회 전반을 바꾸기 위하여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수많은 주요 산업들과 자원들이 국유화되었고, 복지국가의 개념이 형성되었으며 거대한 규모의 국민복지제도가 설립되었다. 한편 해외 식민지들 사이에서는 점차 민족주의가 대두하였고, 한창 영국이 전쟁으로 약화된 틈을 타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였다. 결국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이들을 독립시킬 수밖에 없었고, 1947년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이후 30여 년 동안 대영제국의 거의 모든 식민지들이 독립을 얻어내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영국의 지원 하에 정부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독립 이후에도 영국 주도의 코멘웰스에 가입하였고, 일부는 심지어 영국 국왕을 최고 국가원수로 모시기도 한다.

영국은 핵무기를 가지게 된 3번째 국가였다. 다만 핵무기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1956년에 일어난 제2차 중동전쟁에서 자국의 약화된 국력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고, 세계를 좌지우지하던 초강대국이 아닌,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의 눈치를 보는 국가로 위치가 격하되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1950년에는 노동력 부족 사태가 일어났고, 영국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언어가 통하는 커먼웰스 국가들에서 막대한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영국은 역사상 가장 다양한 민족들이 섞인 국가가 되었고, 사회 변동도 엄청나게 일어났다.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까지 영국은 경제가 꽤나 발전하였으나, 프랑스, 서독, 일본과 같은 경쟁국들에 비하면 딱히 좋은 성과를 보지 못했다.

전후 몇 십년 동안 유럽 통합에 대한 논의가 가속되던 차에, 영국은 1960년에 유럽자유무역연합의 창립회원국으로 참가하였으나, 1973년에는 유럽의공동체에 합류하기 위하여 탈퇴하였다. 이후 EC가 1992년에 유럽연합으로 전환되자, 영국은 12개의 창립회원국들 중 하나로 참여하였으며 2007년 조인된 리스본 조약에서 유럽 연합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

한편 1960년대 후반부터 북아일랜드 지방은 불안정한 치안으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고 있었는데, 1998년의 벨파스트 협정이 조인되면서 이도 끝났다. 1970년대에 점차 경제가 위축되고 산업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마거릿 대처 총리 주도의 보수당 정권은 규제 완화, 대규모 자본 투입과 같은 정책들을 실시하며 경제 회복을 꾀하였다. 이후 1984년부터는 북해에서 뽑아낸 석유를 팔아 얻은 대금들이 대거 영국으로 유입되며 영국의 경제는 점차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21세기

2008년 미국발 국제금융위기는 영국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2010년에 연립정부는 여러 정책들을 도입하여 금융위기로 인하여 촉발된 막대한 양의 공공부채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2014년에는 스코틀랜드 정부가 스코틀랜드 독립을 결정할 주민투표를 실시하였고, 이 투표에서 55.3%의 주민들이 독립을 거부하면서 스코틀랜드는 영국에 남게 되었다.

중국 우한에서 퍼진 코로나 19 사태는 영국 경제와 사회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대규모의 금융부양정책과 통제정책이 실시되었으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경제를 부양하기 위하여 노력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예방접종률을 기록하며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고 경제회복을 했다. 현재는 독일 다음으로 유럽에서 가장 GDP가 높은 국가이며 유럽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리

영국의 지형도

지형

빙식지형이 많다.지형적으로는 동남부의 저지와 북서부의 고지로 크게 나뉜다. 이 둘의 경계는 동부 해안 중앙부의 티스강 하구와 남부 해안의 라임만을 연결하는 선이다. 고지라고 해도 대부분은 고도 1,000m 이하의 낮은 산맥 및 구릉으로서 영국의 최고봉 벤네비스 산도 1,343m에 지나지 않는다. 고지는 지형과 지질이 다른 다음과 같은 지괴(地塊)로 나뉜다. 스코틀랜드 고지와 북아일랜드는 주로 캄브리아계의 가장 오랜 변성암으로 되어 있으며, 스코틀랜드 남부 산지, 캄브리아 산지(호수 지방) 및 웨일스는 주로 고생대 실루리아계변성암으로 되어 있다. 페나인 산맥과 스코틀랜드 중앙 지구대는 고생대의 석탄계중생대 삼첩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 석탄층이 있어 영국의 탄전(炭田)을 형성한다. 웨일스 남부와 데번 코른월 지괴는 고생대 데본계로 되어 있다.한편 저지는 잉글랜드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해발 300m 이하의 낮은 구릉평야로 되어 있다. 구릉은 백악계와 제3계의 느리게 주름잡힌 새 지층으로 이뤄져 각지에 케스타 지형이 보인다. 영국은 제4기 홍적세에 유럽 대륙에서 뻗친 대륙 빙하에 덮여 있었으므로 산지에는 빙식(氷蝕) 지형이 많으며, 황토에 뒤덮인 황무지와 습지가 많다. 더구나 북쪽의 스코틀랜드 제도에는 피오르드 해안이 발달해 있다. 템스강(전체길이 350km)을 비롯하여 이 나라의 하천은 모두 짧으며 또 산지도 낮으므로 하천의 충적(沖積)작용은 크지 않다. 그래서 템스강 하구부, 브리스틀 해협, 포스만 등처럼 묻혀 버린 삼각강이 많으며, 해안선은 굴곡이 많고 하천의 경사가 완만하므로 향항과 가항하천(可航河川)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기후

중위도 대륙 서해안의 해양성 기후로서 멕시코 만류(灣流)와 편서풍 때문에 위도에 비해서는 따뜻하다(1월의 기온 6∼3 °C). 그러나 겨울에는 간혹 섭씨 영하 1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기도 하며 여름에는 섭씨 35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비는 서해안에는 많으나 동해안에는 적다. 또 습기가 많기 때문에 안개가 많으며 런던에서는 스모그가 1년에 90일간 생겨서 ‘안개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연평균 강우량은 서부와 북부의 산간 지방에서는 1600mm 이상이지만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는 800mm 미만이다. 비는 연중 고루 내리는 편이지만 평균적으로 3월부터 6월까지가 비가 가장 적고 9월부터 1월까지가 가장 많은 시기이다.

행정 구역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영국의 공식적인 행정구역에는 북아일랜드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를 나눠쓴다. 이는 명백히 틀린 표기이다. 북아일랜드가 지칭하는 지역은 아일랜드의 행정 주의 일부이며 북아일랜드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구어체로는 존재한다. 과거 1916년 영국 의회에서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라는 새 국명이 검토된 사실이 알려지며 대중들에게 북아일랜드가 알려지게되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갈등
일명 북아일랜드라는 지역은 과거 아일랜드에서 독립여론이 거세질 때 비교적 독립여론이 많이 약했던 지역이다. 바꿔말하면 아일랜드 평균보다 훨씬 친중앙정부인 지역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레이트브리튼에 대한 인식이 아일랜드 평균보다 훨씬 좋은 편이다. 때문에 아일랜드 지역정부와 북아일랜드 행정 주정부 사이 갈등이 항상 일어났다. 중앙정부가 아일랜드의 고도의 자치권을 인정하면서 독립여론은 잠잠해졌지만 북아일랜드와 나머지 아일랜드 지역 간 문화적 차이는 깊어져갔고 결국 북아일랜드 행정 주정부가 아일랜드 지역정부가 아닌 중앙정부의 소속으로의 전환을 선언하면서 현재는 북아일랜드 행정 주정부만 중앙정부 소속인 상황이다. 이 때문에 영국 의회에서도 북아일랜드라는 명칭 도입을 검토했으나 지역 감정만 부추긴다는 비판과 함께 사라졌다. 두 지역간 갈등이 악화되자 결국 중앙정부는 아일랜드부 산하의 북아일랜드문화교류청을 설립했고 1967년부터 매년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지역의 문화적 감정 갈등을 줄이기 위한 행사와 축제를 주관했다. 이러한 노력이 지속된 결과 2024년 현재는 두 지역 간 갈등의 사실상 완전히 사라진 상태이다.

자치령

영국은 21세기 현재 1개의 자치령을 두고 있다. 그린란드 서남부에 위치한 그레이트그린란드 자치령이다. 영국의 유일한 자치령이자 그린란드섬 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다. 1994년 덴마크로부터 10억 달러에 이 지역을 매입하여 자치령으로 삼고 지역개발을 이어나가며 인구는 20만명을 돌파했다.

해외영토

영국은 20세기까지만 해도 전세계에 식민지를 경영하며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였고, 이 잔재가 아직까지도 남아있어 해외 곳곳에 속령들이 많다. 영국은 14개의 해외영토가 있으며, 3개의 왕실령이 따로 존재한다.

14개의 해외영토에는 영국령 인도양 지역,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 영국령 남극 지역, 케이맨 제도, 세인트헬레나, 핏케언 제도, 앵귈라, 몬트세랫,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지브롤터,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버뮤다 등이 있다. 이 중 남극의 경우에는 특정 국가가 독자적으로 점유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 영국에서는 남극을 오직 과학적, 학문적 용도로만 사용한다고 한정하였다. 영국의 해외영토는 대략 1,600,000제곱킬로미터 정도이고, 인구는 다 합쳐보았자 25만 명도 되지 않는다. 이 해외영토들 중에서 워낙 바다에 위치한 섬들이 많다보니, 영국은 세계에서 5번째로 거대한 크기의 배타적경제수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1999년 영국 정부에서는 ‘영국령 해외영토들은 영국에 머물기를 원하는 한 언제까지고 영국에 머물 것이다. 영국은 해외령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다.’라고 해외 영토들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영국령에서 탈퇴하고자 하는 주민투표들이 실시된 적도 있는데, 예를 들어 1995년 버뮤다, 2002년에서 지브롤터가, 2013년에 포클랜드 제도 등에서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왕실령은 영국 국왕에 소속된 영토로, 단순한 영국의 해외 영토에 포함되지 않는다. 채널 제도맨 섬 등이 왕실령에 포함되는데, 영국 정부는 암묵적 합의에 따라 왕실령의 외교, 국방을 책임을 지며 영국 의회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국제적으로는 거의 영국의 영토로 인정받고 있다. 다만 정치 제도에는 약간 차이가 있어서, 왕실 하의 섭정위원회가 통치를 맡으며 행정수반으로 총독을 따로 두고 있다.

정치

영국은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오래된 민주주의 역사에 걸맞게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인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다. 영국은 웨스터민스터 시스템에 기반한 의회민주주의 입헌군주국이며, 영국 의회는 상원(귀족원)과 하원(서민원)으로 나뉘며, 각각 793석, 650석의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국민들의 선거로 구성되는 서민원의 경우, 전국에 퍼져 있는 650개의 선거구에서 각각 의원들이 선출되며, 총선의 실시 또한 총리의 조언을 받아 국왕이 선포한다. 군주국을 표방하고 있는 영국답게, 상원과 하원을 통과한 모든 법안들은 효력이 발휘되기 전 국왕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 다만 국왕이 실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입헌군주국이기 때문에, 실제로 국왕이 의회를 통과한 법안을 거부한 적은 없다.

영국의 국가수반은 총리로, 서민원에서 선출되며 보통 서민원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정당의 지도자가 총리직을 맡는다. 총리는 내각을 구성할 수 있으며, 보통 내각 장관들은 국왕의 허가를 받아 임명된다. 총리는 제1재무경(First Lord of Treasury)을 겸직하며, 이 때문에 본래 제1재무경의 관저였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집무를 본다. 다만 총리가 재무부 장관직을 겸직한다는 것은 아니며, 재무부장관은 재2재무경(Second Lord of Treasury)직을 따로 겸직한다. 여당과 정권은 ‘여왕 폐하의 정부(Her Majesty's Government)'라고 불리기도 한다. 반대로 제1야당의 경우에는 ’여왕 폐하의 야당(Her Majesty's most loyal opposition)'이라고 불린다. 한편 총리가 거의 실권을 틀어쥐고 있기에, 형식적인 국가수반인 국왕은 관례적으로 총리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전통으로 굳어져 왔다.

내각은 주로 총리가 여당이나 연정 정당에서 끌어온 인사들로 구성되며, 보통 서민원 출신 인사들로 기용되지만 귀족원 출신 인사들도 항상 포함하고 있다. 현재의 총리는 2019년 7월 24일에 취임한 보수당 출신의 보리스 존슨 총리이다.

주요 정당

영국의 주요 정당은 크게 보수당, 노동당, 자유민주당, 이 3개의 정당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각 보수주의, 사회주의,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정당들로 알려져 있으며, 모두 역사가 최소 몇 십년에서 몇 백년에 달하는 유서깊은 정당들이다. 본래 영국의 정계는 19세기까지만 하여도 보수당과 자유당으로 양분되어 있었으나, 20세기 들어 자유당이 크게 위축되고 그 지지세를 새롭게 등장한 노동당에게 빼앗기면서 세가 크게 약해졌다. 21세기 현대의 자유당은 심지어 지역정당이자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스코틀랜드 국민당보다도 의석 수가 적으며, 이 때문에 현대 영국의 정계는 크게 보수당과 노동당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 외에도 우파 연합주의 정당인 민주통일당, 아일랜드의 고도의 자치권을 주장하는 아일랜드 의회당, 웨일스 독립을 주장하는 플라이드 컴리 등 여러 지역정당들이 의석들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2019년 12월의 영국 국회의원(하원) 총선거에서 10석 이상 확보한 정당을 순서대로 정렬했다.

  • 보수당(43.6%, 365석) : 현재 여당(Her Majesty's Government), 전통적 중도 우파 정당
  • 노동당(32.2%, 202석) : 현재 제1야당(Her Majesty's most loyal opposition), 전통적 중도 좌파 정당
  • 스코틀랜드 국민당(7.2%, 47석) :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장, 스코틀랜드 지역정당
  • 자유민주당(1.7%, 11석) : 전통적 중도 좌파 정당, 19세기 영국 정계를 양분하던 정당이었으나, 20세기 들어 지지세가 급락하며 약화

영국은 의원내각제, 즉 의회가 곧 내각이 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만 채택하여 각 선거구마다 1명만을 뽑는 'First-past-the-post'방식으로 모든 의원을 선출한다. 법상 최장 5년마다 열리는 선거에서 의석수의 과반 이상을 확보한 당이 집권당이 되며, 이들이 내각(Cabinet)을 구성한다. 야당은 예비 내각(Shadow Cabinet)을 구성하여 집권시 어떤 정책을 실시할 것인가를 국민이 미리 알 수 있어 정치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하고 있다.

영연방

영연방은 느슨한 국가 연합이다. 53개 영연방 회원국 모두는 영국 여왕을 영연방의 수장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그 회원국들 중 캐나다, 뉴질랜드, 자메이카, 바하마, 바베이도스 등 다수 국가들의 여왕이기도 하다. 여왕은 2년마다 열리는 영연방 정부 수반 회의에 참석하며 각국의 국가 수반으로 총독과 사적인 대화를 갖는다.

영연방군

224,000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차 420대, 전술기 1,663대, 군함 99척 등을 보유하여 세계 5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핵 보유 국가이기도 하다.
영국은 세계 3위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또한 항공모함 1척, 이지스함 3척 등을 보유하여 강력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다. 잠수함들도 있다. 그리고 유럽에서 네덜란드와 함께 유일하게 토마호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영국은 육군 전력이 많이 약한 상태이다. 또한 해군 전력도 추가로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 2척을 건조했다.

국방

헌법에 의하여 1960년부터 모병제를 실시하였다. 2차 대전 후부터 1960년까지 평시 징병제가 시행된 적이 있었는데, 영국인들은 이를 'National Service'로 부르고 있다. 영국은 예로부터 해군이 강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공군인 'Royal Air Force'와 해군인 'Royal Navy'가 잘 알려져 있다.

근대국가의 출현과 동시에 징병제를 도입한 유럽 대륙과 다르게 영국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서야 징병제를 도입하였다. 트라팔가 해전 당시 영국 해군은 모집군이었지만 프랑스군은 징집병으로 구성되었었다. 이와 같은 경험 때문에 영국의 부속령 국가 및 옛 식민지 상당수는 징병제를 실시한 적이 없거나 그 경험이 상대적으로 일천한 편이다. 최근 '범죄자를 이라크로 보내자(send criminals to Iraq)' 등 일부에서 징병제 부활을 논의하고는 있지만(가끔은 유희적으로) 범죄자 등에 대한 훈육차원에서 논의될 뿐이며, 이 징병제 관련 논의가 진지하게 정치적으로 문제제기된 바는 없다.

세계 5위의 군사력이며 전략 원자력 잠수함들을 보유하고 있다. 핵 전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스키점프대 형태의 HMS 일러스트리어스 한척을 운용중이다. 함재기로 수직이착륙 기능의 시 해리어를 운용했으나 지금은 모두 퇴역시키고 각종 헬기위주의 항공단이 구성됐다. 또 차기 항공모함 2척을 건조 중이다. 무인항공기 항공모함 UXV가 2020년에 실전배치된다. 영국군은 국방개혁, SDSR (전략적 국방안보 검토서)에 의해, 조직개편을 하고 있다.
영국 신속대응군의 핵심전력인 영국 해병대는 현 영국 국방개혁을 통해 조직편성과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소폭으로 병력이 증가했으며, 장비와 편성이 개편되고 있다.

냉전체계 이후 안보환경 변화와 국가 재정 위기에 직면한 영국은 국방비 삭감을 결정한다. 이를 위해 현 국방력과 미래 안보환경 등을 전면 재검토하여 삭감, 퇴역 장비, 도입 장비 등을 새로 결정하게 된다.
이에 총리실 주재하, 5개월간의 검토기간으로 2010월 10월, SDSR(전략적 국방 안보 검토서 : Strategic Defence Security Review)이 발표된다. SDSR은 신안보 위협을 등급별로 분류하고, 사이버전, 테러 등과 같은 우선순위 위협에 대한 자원을 더 배분하는 대신 대규모 재래전에 소요되는 장비(기갑, 전투기, 함정, 대형장비 등) 등을 퇴역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SDSR을 바탕으로하는 현 영국군 국방개혁은 영국군 장군들의 반발과 국민 찬반 논란 속에 진행되고 있다. 현재 영국은 부분 징병제 국가이다. 버뮤다 지역 시민을 징집하며, 영국 왕실과 이에 속한 귀족들인 왕실의 친·외가 친인척들의 남·여들은 영국군 장교로 복무하도록 영국 병역법에 규정되어 있다.

영국군은 흔히 ‘여왕 폐하의 군대(Her Majesty's Armed Force)’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며, 크게 해군과 해상경비대, 육군, 그리고 공군 이 3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국 국방부가 군대를 총괄하며, 군 최고 책임자는 국방부 장관이다. 다만 공식적인 최고 명령권자는 영국 국왕으로, 모든 영국 군인들은 입대할 때부터 국왕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입대한다. 영국 군대는 해외 영토와 왕실령 등을 포함한 영국 영토를 지킬 책임이 있으며, 그 외에도 UN의 국제 임무에도 나서기도 한다.

현재의 영국군은 대영제국 군대을 모체로 하며, 18세기,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하여도 가히 세계 최강의 군대였다. 영국은 그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간섭하였으며, 식민지를 경영하며 막대한 부를 벌여들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들이 독립해나가며 대영제국도 무너졌으나, 그 군사력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다만 이후 소련과 미국의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강력해지면서 영국의 군사력은 점차 밀려나게 되었다. 영국은 세계에서 4위에서 5위 정도로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으며, 전체 GDP의 2% 정도를 국방비에 사용하고 있다.

한편, 2021년 보리스 존슨 총리가 사실상의 군축의 끝을 선언하고 2024년 군증 실행을 공식화하였고 이에 따라 영국의 국방비와 국방력은 다시 상승할 전망이다. 또한, 핵보유량 상한선도 180개에서 260개로 증가시켰다.

  1. 연합국의 구성을 이루는 각 나라들은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지만 정치학적으로 영국은 미국과 같은 연방 국가가 아니다.
  2. EU Relations with Bermuda Archived 2014년 3월 15일 - 웨이백 머신, European Com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