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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대 야화경 부운영위원장 길선ㅣ吉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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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2003년 9월 17일 (23세) |
| 개경 개성부 | |
| 국적 | |
| 직업 | 고려 국왕 섭정 야화경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
| 재임기간 | 제11대 부운영위원장 |
| 2024년 9월 4일 ~ 현재 | |
개요
길선은 야화경 운영위원회의 부위원장이다. 곽덕순을 도와 야화계 국가에서 여러 업무를 총괄하며 보조하고 있다.
생애
경탐라
길선은 경탐라 시절 유입된 인물로, 가국에 입문한 초기부터 위키 문서 작성과 관리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운영부 내에서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불과 두 달 만에 운영부에 입성하였으며, 이후에는 궁녀·상궁·내관 등 내명부 관련 직책들을 주로 맡아 활동하였다. 또한 당시 내명부의 수장이었던 곽덕순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며 김꽃순 , 김명화와 함께 내명부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밤화제국
밤화 제2제국 시기에는 부운영자의 자리에 올라 내각총리대신에 임명되었으며, ‘천서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제2제국 내내 천씨 가문을 이끌며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운영과 정치 양면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였다. 이러한 기반 덕분에 이후 국가 체제가 고려로 전환된 뒤에도 영양천씨 가문은 명문 재상지종 가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으며, 훗날 여러 재상과 고위 관료를 배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와 현재
내명부의 1인자
고려 체제로 들어선 이후에는 점차 더욱 높은 직책들을 맡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천추태후’ 역할로 큰 명성을 얻었다.
그는 계림국대부인으로 활동하던 시기부터 이미 내명부 내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나, 이후에도 세 차례에 걸쳐 왕후와 왕비 역할을 맡으며 권세를 더욱 키워나갔다. 그로 인해 내명부 안에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았으며, 당시 궁중 정치와 후궁 세력 구도에 있어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문벌귀족가의 안주인
문종대에 이르러서는 옛 신라 계통 호족 가문의 딸로 활동하였으며, 점차 세력을 키워가던 경원이씨의 수장 이자연과 혼례를 올렸다.
이후 슬하에 두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훗날 천추태후와 맞설 정도의 권세를 지녔던 인예태후와, 누이를 가까이에서 보좌하며 조정 내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중서시랑 이태주가 바로 그들이었다.
인예태후가 왕후에 봉해지자 그녀 또한 국대부인에 책봉되었으며, 외명부 부인들 가운데 훗날 사숙태후의 어머니가 되는 달성국대부인 서씨와 특히 가까이 지냈다. 그녀는 서씨의 뛰어난 장사 수완과 재물 운영 능력을 눈여겨보았고, 이때부터 재물과 상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최고의 장사치
환생 이후에는 한동안 평민의 신분으로 살아갔으나, 특유의 수완과 재능으로 끝내 달성국대부인 다음가는 개경 제일의 거상이 되었다.
그녀는 인경현비의 어머니인 국대부인 임유와 손을 잡고 무속용품과 의복을 제작·판매하였으며, 이를 통해 얻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다시 도자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그녀가 만든 도자기와 장신구들은 개경 귀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그 명성은 궁중에까지 퍼져나갔다.
이후 재산은 날이 갈수록 불어나 마침내 개경에서도 손꼽히는 재력가로 불리게 되었으며, 당시 상단과 시전 상인들조차 그녀의 자본력을 두려워하였다고 전해진다.
안산 김씨 3남매
그는 고려 최초의 여성 문하시중으로 이름을 떨친 김지원의 남동생으로 태어났다.
훗날 박지만의 정변, 이른바 무신정변이 일어나자 사숙태후와 누이 김지원이 모두 피살되는 참극이 벌어졌고, 그는 여동생 김지은과 함께 혼란한 조정에 뛰어들게 되었다.
이후 그는 문하시중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며, 김지은 또한 참지정사를 거쳐 중서시랑과 문하시랑에 이르렀다. 이로써 남매 셋 모두가 재상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들을 두고 ‘안산김씨 평장사 3남매’라 불렀다.
특히 그는 수십 년 동안 섭정공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국정을 좌우하였고, 당시 조정에서는 그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웠다고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