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평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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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문하시랑평장사 김지은 金智誾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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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135년 9월 3일 |
| 고려 안산김씨 문중 | |
| 사망 | 1210년 2월 10일 |
| 고려 안산김씨 문중 | |
| 본관 | 안산 김씨 |
| 사저 | 안산 김씨 문중 |
| 재임기간 | 참지정사 |
| 1157년 10월 27일 ~ 1205년 1월 27일 | |
| 중서시랑평장사 | |
| 1205년 1월 27일 ~ 1210년 2월 10일 | |
| 문하시랑평장사 | |
| 1210년 2월 1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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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고려의 재상.
1153년 발생한 박지만의 난에서 살해당한 최초의 여성 문하시중 김지원과 현재 역임중인 문하시중 안산공 김지한의 막내여동생이다.
박지만의 난으로 인해 조정의 많은 인사들이 궐위가 되어 국정을 돌보는데 어려움이 생기자. 1157년 10월 27일 인종이 그녀와 그녀의 오빠 김지한을 각각 중서문하성에 임명하게된다.
생애
안산 김씨 가문 출신으로 언니 문하시중 김지원이 피살되어 조정에 공백이 생기자 예부상서가 된다. 이때 오빠 김지한이 문하시중이 되었기에 그를 보좌하며 조정에서 실질적인 2인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참지정사 판예부사를 거쳐 임언년이 사망하자 중서시랑평장사로 승격되었으며 묘향이 사망한 후 관직이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른다. 그러나 왕태자 위독 사건을 조정 관리들이 성상에게 숨긴 죄를 받았다. 당시 문하시중 김지한은 이미 사망했고 문하시랑평장사 김지은이 수상이었기에 책임을 지게 되었고 장형 20대를 선고받는다.
노구의 몸을 이끌고 장형 15대를 맞다 너무 아파 도망쳤고, 형부포졸들에게 붙잡혀 남은 형인 다섯 대에 세 대를 추가로 맞았다. 안 그래도 노쇠했는데 명에 없던 형을 더 받아 허리가 부러져 위독해졌다.[1]
중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던 김지은은 궁궐 의관에게 치료를 요청했으나 태의들이 모두 죄인을 치료해줄 수 없다며 거절하여 친정 안산 김씨 문중으로 자리를 옮긴다.
1210년 2월 10일 안산 김씨 문중에서 왕후 김씨와 수비 곽씨가 자리를 지킨 가운데 장형의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문하시랑평장사에 오른 후 채 하루가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꿈속에서 생전 안나오던 언니를 마주쳤는데 그게 내 황천길 마중을 나온거였음을 지금이 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평장사로 지낸지 어느덧 50년 성상폐하께서 나를 이리 내치시니 억울함과 서운함이 동시에 올라옵니다.
하지만 살아생전 많은일들을 겪었기에 더이상 미련이 남지 않습니다. 우리 멋진아들 두한이와 개구쟁이 숭희 , 그리고 수비저하 모두들 내가 죽어도 평소처럼 잘 지내주길 바란다
내 몫의 계절은 여기까지이니 바람이 멈추는 곳 에서 쉬도록 한다.
- 문하시랑평장사 김지은의 유언
김지은이 사망하며 예종 때부터 정목대왕을 거쳐 인종 그리고 고종의 시대를 호령한 안산 김씨 재상 삼남매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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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무단으로 형벌을 늘린 형부의 관리는 모두 처벌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