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문하시중 |
|
[ 펼치기 · 접기 ] |
| 고려 제5대 문하시중 김지한 金智恨 | |
|---|---|
| 출생 | 1133년 12월 14일 |
| 고려 안산 김씨 문중 | |
| 사망 | 1205년 2월 1일 |
| 고려 안산 김씨 문중 | |
| 본관 | 안산 김씨 |
| 재위기간 | 섭정공 |
| 1157년 11월 1일 ~ 1205년 2월 1일 | |
| 안산공 | |
| 1153년 10월 27일 ~ 1205년 2월 1일 | |
| 재임기간 | 문하시중 |
| 1153년 10월 27일 ~ 1205년 1월 28일 | |
| 중서령 | |
| 1205년 1월 28일 ~ 1205년 2월 1일 | |
[ 펼치기 · 접기 ]
| |
개요
고려의 재상.
고려 최초의 여성 문하시중인 김지원의 동생이다.
생애
이자겸의 난을 진압한 누나 문하시중 김지원이 박지만의 난 때 사망하자 그녀의 뒤를 이어 문하시중 판이병부사 수태사에 임명된다. 이때 동생 김지은은 예부상서가 된다. 이후 인종에 의해 섭정공 겸 안산공에 책봉된다.
딸 왕후 김씨를 왕가에 시집 보내어 국구가 된다.[1]
유설의 난이 일어났을 때 국가 최고재상이자 섭정공으로서 자취를 감춘 국왕을 대신하여 진압을 전두지휘하였다. 유설의 난을 진압하는데 성공한 후 반란의 주축 유설과 왕위를 노리고 동참한 이저후를 참하라는 명을 내리게 된다. 이후 공신들을 승진시켜준다.
유설의 난을 진압하고 1205년 1월 28일 퇴임하여 중서령으로 삼아지나 4일 후 1205년 2월 1일 당시 유행하던 백선에 걸려 사망한다.
여담
젊은 시절 고려 최고의 미남으로 추앙받았으며 숙적인 공예왕후도 인정했을 정도다. 많은 유력 가문의 여식들과 혼담이 오갔으나 결국 정안궁주와 혼인한다. 그는 늙어서도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남았다고 한다.
사돈인 공예왕후와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공예왕후는 힘이 없었고 이것을 안 김지한은 딸 왕후 김씨와 금상을 혼인시키며 공예왕후의 뒷배가 되어줬다. 그러나 김지한의 강한 권세[2]를 경계한 공예왕후는 겉에선 웃었으나 뒤에선 항상 김지한 시중의 의중을 여쭈었다고 한다. 또한 칭제건원과 사병혁파 등에서 각자 왕실과 신하의 대표로서 충돌이 있었다. 공예왕후 사후 유설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김지한이 공예왕후를 까는 발언을 하며 사실상 둘은 갈등 관계였음이 드러났다.
둘러보기
고려 섭정공 |
|
[ 펼치기 · 접기 ] |
고려 중서령 |
|
[ 펼치기 · 접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