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자겸의 난 李資謙之亂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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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간 | ||
| 1153년 11월 26일 오후 ~ 자정 | ||
| 장소 | ||
| 만월대 | ||
| 원인 | ||
| 권세를 탐한 이자겸의 반란(고려 조정) 정목대왕의 폭정과 패륜 행위(이자겸파) | ||
| 교전 세력 | ||
| 고려 조정 | 이자겸파 | |
| 지휘관 | ||
| 정목대왕 (고려 국왕) | 이자겸 (참지정사) | |
| 주요 인물 | ||
| 사숙왕후 (고려 대왕태후) 김지원 (문하시중) 곽덕순 (문하시랑평장사) 이혁 (호부상서) 척준경 (상장군) 이막장 (대장군) |
이지미 (대장군) 박지만 (대장군) 이지보 (병부시랑) | |
| 결과 | ||
| 고려 조정의 반군 진압 성공 | ||
| 영향 | ||
| 박지만의 정변 발생 | ||
개요
이자겸의 난은 참지정사 이자겸이 술만마시면 광증을 일으켜 궁녀들을 죽이는 정목대왕을 왕위에서 끌어내기 위해 일으킨 난으로 명목은 정당하지만 권력을 키우기 위해 매관매직을 하고 금서를 조작해 대신들을 모함하는 등 이자겸의 권력을 위해 꾸며진 부적절한 난이였다.
배경
세도가 이자연의 양자
이자겸은 본래 신분도 알 수 없는 버려진 아이였으나 문하시중 이자연에게 거둬져 경원 이씨가문의 양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문하시중에 누나는 왕태후고 형은 평장사였기에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이때부터 권력을 탐하기 시작한걸로 보인다.
왕실을 위협하다.
폐비 김씨는 출신이 천했던 궁인인데 후궁이 되어 아들 정목대왕을 낳았다. 이자겸은 천한 핏줄에서 대를 이을순 없다며 정목대왕의 태자 책봉을 강력히 반대했지만 예종이 이를 왕실 모욕죄로 삼아 이자겸의 식읍 오천전을 회수하고 곤장 20대를 쳤다. 이때부터 이자겸은 왕실에 악심을 품게 된다.
자신의 딸들이였던 상식 이씨와 궁인 이씨를 통해 궐 내 김씨에 대한 거짓소문을 퍼트리고 다른후궁들 처소에 저주 물품을 심은 후 폐비의 짓이라며 예종에게 고발하여 수령궁주였던 김씨를 폐위시켜 송악산으로 유배를 보냈다.
이후 비슷한 방식으로 다른 후궁들을 폐출시켰다.
정목대왕 독살계획을 세우다.
이자겸은 태자였던 정목대왕까지 폐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태자를 독살하려 한것으로 보인다.
참지정사께서 내약방에 출입한 후 은밀히 한 궁인이게 약재를 건냈다. 그 일이 있고 당일 태자의 석수라의 기미한 상궁이 피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 임언년의 약방일기
난 직전
이후 예종이 붕어하며 고려사 내용중 폐비와 관련된 모든 기록들을 금서로 지정하였는데 이자겸이 난 발생 당일 중추원을 습격해 신료들을 납치하고 금서의 내용을 조작하였다.
이자겸은 조작된 금서를 들고 사숙왕후의 진찬연이 열리고 있던 자수전으로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며 독대를 청하며 말했다.
참지정사 이자겸이 대왕태후 폐하의 팔순 기념 진찬이 한창이던 태후전에 들이닥쳐 대왕태후 폐하와 성상폐하께 "진찬중에 송구하오나 금상폐하께옵서 일전에 말씀하신 금등을 찾았사옵니다."라고 아뢰니 대왕태후 폐하께옵서 "금등은 선왕께서 그 누구도 꺼내지 말라하였다."라며 자중할것을 명하였다. — 난중필록 일부 내용
조작된 금서를 통해 정목대왕의 광증이 유발되도록 도발하려는것이였다.
정목대왕은 대장군 박지만에게 태후전의 모든 문을 걸어잠구고 아무도 못나가게 하라 명하였으며 이자겸은 난을 일으키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시작했다.
1140년 10월 3일 평산원주와 평주원부인 번갈아가며 상소를 올리기를 수령궁주는 성품이 나쁘고 행실이 바르지 않은데 감찰이 있을때마다 새치의 혀로 간사히 피하니 실로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이자겸이 발표한 금서의 일부이다. 여기까진 조작된 내용이 없었다.
내가 언제 그랬느냐 이 놈!
평산원주가 다음과 같이 호통을 치며 부인했으나 이자겸은 무시하고 계속해서 금서를 읽는데 이때부터 조작한 금서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이틀 뒤 , 호부상서 이혁이 금상께 " 수령궁주가 온양행궁에서 승려와 사통을 하였습니다. " 라는 거짓 정보를 알려 궁주가 폐위당하게 하였다.
1145년 10월 6일 , 중서시랑 국대부인 곽씨와 공부시랑 이돌쇠 등등의 신료들이 상소를 올리길 " 폐비는 자숙하지 않고 유배지에 비구니와 무당 , 대신들을 불러들어 성상과의 사이를 이간질 한다 "고 하였고 이에 금상이 분노하였다.
여기서 폐비가 억울하게 폐위당하여 사사당하게끔 거짓을 보고한 자신의 만행들에 조정 대신들의 이름을 하나씩 바꿔넣어서 보고를 함으로써 자신의 정당함을 만든것이다.
결국 이 사실이 왕실에도 알려졌고 최고어른이신 왕태후 홍씨께서 금상에게 폐비의 사사를 청하였다.
금상이 분노하여 사숙왕후에게 이것이 사실이냐 물었고 사숙왕후가 사실임을 인정하자 광증이 돌기 시작한 정목대왕이 칼을 가져오라고 명하였다. 대신들이 금상을 막으려 하자 금상은 단상으로 올라가 평산원주와 평주원부인의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평산원주의 머리채를 잡고 말하길
그 간악한 혀로 내 어미를 죽음에 이르게한 네년을 고통스럽게 죽일것이다!
그러자 평산원주가 울분을 토해내며 다음과 같은 저주를 퍼부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고있소 당신이 폭군이라는것을! 태묘에 모든 조종들이 지켜보고 있고 당신에게 목숨을 빼앗긴 궁녀들의 원혼들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소..! 고통스럽게 죽게될것이다..! 죽게되는 날 천천히 온몸이 굳어가며, 사지가 찢기는 듯 한 고통을 느끼며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이다..!!!
저주를 들은 정목대왕은 그대로 평산원주의 비녀를 뽑아 심부와 복부를 찔러 평산원주를 살해하였다.
이후 정목대왕은 태후전을 빠져나갔으며 이자겸은 이를 명목으로 난을 일으켰다.
전개
작금의 금상은 술만 마시면 궁인들을 때려죽이는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보였으며 결국 선왕의 후궁인 평산원주까지 살해하였으니 어찌 국정을 맡기겠소?나 이자겸은 고려의 운명을 위해 작금의 금상을 폐위시킬것이오.
— 이자겸
만월대 함락
이자겸은 박지만과 자신의 아들들을 통해 남대문을 기습하고 궁성의 서문인 서화문을 통해 자신의 사병들과 반군들을 궐로 진입시켰다.
이후 장화전으로 가던 정목대왕의 가마를 납치해 중광전에 유폐시켰으며 폐위교서를 들고 태후였던 사숙왕후의 침전에 들이닥쳤다.
사숙태후와의 대립
대왕태후 폐하, 금상이 선왕의 후궁인 평산원주까지 살해했으니 그 다음은 누구겠습니까? 평주원부인과 귀비 최씨겠지요. 그럼 그 다음에 그 칼날이 대왕태후께 향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여 대왕태후 폐하의 안위를 지키기 위하여 어쩔수 없이 궁성으로 난입하였나이다..
작금의 금상을 폐하시고 대왕태후 폐하의 차남이신 상당후를 보위에 앉히소서!
이자겸이 다음과 같이 아뢰며 국새와 폐위교서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사숙왕후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는데
나라의 녹을 먹는 자라면 그 녹을 내리는 자에게 충성을 다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을 해야 함이 옳소. 헌데 어찌하여 참지정사는 범궐을 하여 웃어른의 궁인들을 죽이고 다짜고짜 폐위교서를 내민단 말이오! 상당후는 내 아들이긴 허나 아직 금상이 버젓이 서있거늘. 썩 물러나시오!
때마침 태후전에 도착한 문하시중 김지원이 이자겸을 회유하려 했으나 이자겸은 김지원을 포박시켜버리곤
어찌 여인네 따위가 재추를 이끌어! 일이 끝나는대로 네년은 팽형에 처해질것이다.
라는 막말을 하였다.
최후
이자겸 사숙왕후의 손에 강제로 국새를 쥐어주며 폐위 교서에 국새를 찍을 것을 재요구 하였고 사숙왕후가 교서를 찢어버리고는 치마속에 국새를 숨기며
그래요 ~ 폐위를 윤허할테니 물러 나세요 ~
라며 비꼬자 분노한 이자겸이 사숙왕후의 치마를 찢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김지원이 이자겸에게 달려들어 은장도로 등을 내려찍고 사숙왕후도 비녀를 뽑아 이자겸의 얼굴을 내려찍었다. 이자겸은 주춤거리더니 그대로 쓰러져 생을 마감하였고 허무하게 난이 끝났다. 이후 박지만이 바로 정변을 일으키는데 이를 박지만의 정변이라 한다.
여담
평가
이자겸의 왕실에 대한 분노로 인해 일어난 이 사건은 이자겸이 분노를 애꿎은 사람들에게 풀며, 스스로 난의 정당성을 파괴해버렸다. 참지정사 이자겸은 뛰어난 머리로 악한 행동을 벌여 본인의 지위와 명성을 스스로 깎아내어버렸다. 이 난은 이자겸이 결코 뛰어난 두뇌를 가진 것이 아닌 영악한 두뇌를 가진 것 이라는 것을 입증한 난이었다. — 사관 민아무개
난중필록을 보면 이자겸의 난을 이자겸과 박지만, 둘 사람이 합세하여 일으켰으니 이자겸의 난과 박지만의 정변은 합쳐서 보아야할것이다. — 사관 곽아무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