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평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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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문하시랑평장사 정유자 丁柚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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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955년 |
| 고려 여수정씨 문중 | |
| 사망 | 1000년 3월 23일 |
| 고려 승주목 | |
| 본관 | 여수 정씨 |
| 사저 | 여수 정씨 저택 |
| 재임기간 | 문하시랑평장사 |
| 981년 2월 12일 ~ 1000년 3월 22일 | |
| 판공부사 | |
| 981년 2월 12일 ~ 1000년 3월 2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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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고려의 재상. 문하시랑평장사와 판공부사 국대부인을 지냈다.
생애
제 6대 성종 ~ 제 7대 목종 시절 재임한 여성 재신으로 헌애왕후의 임조칭제를 반대하며 의인 세력들과 들고 일어서 장교 시위를 이어나가다 왕실 능멸죄로 삭탈관직 당하고 유배를 가 사후에는 정씨 부인이라고 불렸다.
이후 역지심지 사건으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하였다. 자세한 사건의 전말은 헌애왕후 문서에 있다.
여담
유정언집을 처음으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정유자 본인은 헌애왕후에 의해 축출당하였고 이후 사약까지 받았기에 마무리는 그녀의 정신을 이은 천제공이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