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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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평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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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서시랑평장사
천독고
千督顧
천독고.jpeg
출생 921년 8월 18일
고려 영양 천씨 문중
사망 1009년 6월 27일
고려 개경 만월대 회경전
본관 영양 천씨
사저 영양 전씨 저택
재임기간 정당문학
958년 3월 19일 ~ 998년 4월 1일
중서시랑평장사
998년 4월 1일 ~ 1009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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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 중서시랑평장사
정당문학
판공부사
중추원부사
형부상서
공부상서
수태보
부모 부친 지성사 천정각
모친 박씨
후손 천제공
경칭 저하(邸下)
종교 교종
저서 편년통록

개요

고려의 재상.

중서시랑평장사, 정당문학을 지냈으며 영양 천씨 재상지종의 시조다.

생애

921년 6월 27일 종2품 지성사를 지낸 천정각과 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래 부친이 관리였기에 이를 통해 관직에 쉽게 진출하였다. 945년 형부상서 겸 공부상서에 오르며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958년 3월 19일 정당문학에 임명되고 중추원부사가 더해진다.

문하시랑평장사 국대부인 정유자가 역심지시 해석 사건으로 헌애왕후에 의해 실각하자 박수연이 문하시랑평장사가 되었고, 천독고가 공석이 된 중서시랑평장사 판공부사에 오른다.

1001년 여든이 되자 조정에서 이를 치하하며 노구를 이끌고 정사를 보는 천독고를 수태보(守太保)에 봉했다. 이후 1009년 6월 27일 조정에서 회의를 하던 중 쓰러져 노환으로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여담

정당문학으로 유명하며 고려에서 보통 정당문학이라 하면 천독고를 지칭할 정도로 상징적이다.[1] 또한 왕명을 전달하는 중추원부사를 맡은 만큼 문장이 매우 뛰어났다고 전해지는데, 후손인 천제공에 의해 그의 글귀 몇개가 보전되었으나 이후 모두 소실되었다.

천독고는 지경서원의 초대 원장 천유역의 손자로, 노년에 이르러 할아버지의 서원을 직접 이어받고자 하였다. 그러나 정유자가 천추태후의 임조칭제를 막기 위해 지경서원에서 의인[2]들과 은밀히 회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태인[3] 세력이었던 천독고는 끝내 서원을 물려받지 못하였다. 그는 임종 때까지 이를 애통해하며 유언에도 깊은 한탄을 남겼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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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정당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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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 한참 후대의 인물인 묘향도 수십년을 정당문학을 지내며 천독고와 비슷한 포지션이 되었다.
  2. ↑ 그 당시 세간에서 정유자를 필두로 천추태후의 섭정에 반하는 자들을 의인이라고 지창하였다.
  3. ↑ 태인 역시 그 당시 황주 황보씨와 천추태후를 필두로 태후의 섭정을 보좌하는 세력들을 지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