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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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정당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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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정당문학
남궁희진
南宮嬉榛
출생 959년 12월 19일
고려 황도 개주
사망 986년 2월 19일
고려 황도 개주 형부 옥사
본관 함열 남궁씨
사저 공부상서 유건의 사저
재위기간 정당문학
981년 2월 12일 ~ 986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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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 정당문학
판형부사
현군
배우자 공부상서 유건
경칭 저하(邸下)
종교 불교

개요

성종시기 활동한 여성 재신으로 시댁 식구들을 살해하고 남궁씨의 난을 일으킨 후 형부 옥사에서 자결한 인물이다.

생애

그녀는 조정에서 공부시랑으로 활동했단 유마에게 시집을 갔는데 어떠한 이유로 돈을 직찹적으로 벌어들이기 시작해 시아버지를 죽이고 그 재산을 상속 받았다.

이후 딸들을 다른 귀족가에 시집보내 자기가 했던 방식으로 시댁 식구들을 살해해 돈을 버는 방식으로 재산을 불려나갔다.

남궁씨의 반란

남궁씨가 이런식으로 재산을 불려나가는걸 알아차린 시어머니 강씨부인과 동료 박수연이 조정에 이를 알리려 하자 난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다.

운영부 3주년을 기념하여 마인크래프트 인생서버에서 연등회를 치루고 있었는데 문하시중 황보제공이 축문을 읽고 있을때 미리 심어둔 화약들을 터트리고 난을 일으켰다.

폭탄으로 인해 많은 신료들이 불구가 되거나 , 청력을 잃었으며 축제를 즐기던 외명부 부인들이 폭탄으로 인해 강가로 빠져 휩쓸려 갔다. —  고려사

혼란스러운 틈을 타 사병들과 만월대를 기습하였으며 사병들이 용호군과 대립하는동안 홀로 문덕왕후가 기거하던 만령전을 습격하였다.[1]

하지만 적은 사병들로 중앙군을 상대하는데에는 무리가 있었고 결국 얼마 안지나 참지정사 설묘에게 추포 당하였다.

자결

이후 성종이 직접 행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는데

어찌 재신이 반란을 일으킨단 말이냐? 이런 괘씸한 ,

이후 직접 칼을 빼어들어 참수하려했으나 신료들이 말려서 결국 칼을 내려놓고는 형부 옥사에 하옥하라는 명을 내리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남궁희진은 이렇게 죽는게 억울하였던건지 옥사에서 자신의 비녀를 목에 찔러 스스로 자결하였다.

여담

고려 최초의 정당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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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 아무래도 왕후 납치가 주요 목적이 아니였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