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월대 灣月臺 | |
|---|---|
| 건궁 | 919년 (태조 2년) |
| 소유주 | 고려의 군주 |
| 위치 | 고려 황도 개주 |
| 거주인 | 고려 왕실 |
개요
고려의 수도인 개경에 있었던 고려 왕조의 법궁(法宮) 터를 부르는 말이다. 고려를 건국한 창업군주 태조 왕건이 태어난 집터 자리로 고려 태조 2년(919)에 창건되었다.
만월대는 원래 궁궐 터를 의미하지만 현대에는 궁궐 자체를 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명칭
원래 고려의 궁은 명칭이 없다. 전 왕조인 고구려의 안한궁이나 백제의 위례성과 같은 격이지만 , 만월대 자체가 궁을 상징하는 명칭이기도 해서 만월대라고 불린다.
그래서 정식 명칭을 붙이지 않고 궁궐(宮闕),본궐(本闕),황궁(皇宮) 등등으로 불린다.
역사
주요 건축
궁성
황성 안의 고려 본궐을 둘러싸는 방어 성이며 이 궁성 내부가 국왕이 거주하는 궁궐이다. 보통 이 궁성 부분을 만월대라고 한다. 내부에 본궐의 여러 전각, 태자의 관저인 수춘궁이 있다.
- 승평문
본궐의 정문이다.
- 서화문
본궐의 서쪽문이다. 주로 상궁들이 오가는 문으로 이자겸의 난때 이자겸의 군이 이 문을 통해 범궐을 하였다.
정전으로 가는 길
• 구정(毬庭)
승평문을 지나면 나오는 큰 광장이다. 주로 나례의식이나 왕실의 주요 행사를 치루는 곳 이였으나 , 12대 선종대왕때 일어난 2차 여요전쟁으로 본궐이 점령되며 전소되고 복원되지 않아 사라졌다.
• 회경문
정전을 지나기 위한 대문이자 본궐의 남대문이다.
- 회경전
본궐의 정전으로 그 규모가 매우 장대하였다고 송나라 사신들이 감탄하였다. 여기서 상례는 감히 거행할 수 없으며, 오직 사신이 이르렀을 때 마당 아래에서 조서를 받들거나 표문을 봉한다는 말이 있고 나머지 예는 별전에서 별도로 행한다.
정면 9칸, 측면 4칸의 규모이며 전면에 4개의 계단을 만들었고 좌우에는 동행각과 서행각이 있었다.
1차 여요전쟁 , 박수경의 난 , 2차 여요전쟁때 기왓장 일부가 파괴된것만 제외하면 몇백년간 훼손되지 않고 굳건히 자리를 지킨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편전
• 위봉문
편전인 장화전을 가기위한 소문이다.
- 장화전
본궐의 편전으로 주로 이곳에서 국가의 대소사들을 해결하였다.
제 2정전과 내전
• 천덕문
제 2정전을 지나기 위한 소문
- 천덕전
태조 ~ 경종때까진 제 2정전의 역할을 했으며 이후엔 국왕의 침전으로 사용되는 중 이다.
- 만령전
역대 왕후들의 전각이다. 왕후들중 태자를 낳았거나 , 여러 후비들중 오직 1왕후만이 하사받을수 있는 귀한 전각이였다.
초기에 그 규모가 매우 작았으나 만령전 화재사건이후 새로 시공하며 더 거대해졌다. 여러 전각들중 제일 화려한 전각이며 양 옆에 부속침전이 있다.
• 자수전
인예태후가 기거했던 전각으로 주로 왕태후들이 기거한다.
금원
• 상춘전
본궐 내에서 회경전 다음으로 오래된 전각으로 이곳에서 태자와 대신들이 꽃과 관련된 시를 지었다고 한다.
• 사루
현종이 직접 연못을 파고 지었으며 규모가 매우 아담하다.2차 여요전쟁 이후 화재로 인해 무너지고 터만 남았다.
그 외 기타 전각
고려는 상시 설치된 전각 뿐만 아니라 태후, 왕후, 공주 등 왕족들에게 관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궁궐 내 전각과 관부을 새로 설치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전
• 천추전
천추태후의 전각으로 박수경의 난때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예종때 재설립되었다.
• 연총전
문종이 자신의 막내 딸 선희왕후를 위해 지어준 전각이다. 이곳에서 선희왕후가 연총공주에 봉해지기도 했으며 고려의 13대 대왕 헌종과 공효왕후가 태어나디도 했다.
• 연화전
헌종이 자신의 왕후인 공효왕후를 위해 지은 전각이다. 이곳에서 공효왕후가 연화전주에 봉해졌다.
• 경령전
빈전으로 사용되는 전각이다.
• 선덕전
태조와 신정왕후 , 그리고 작금의 금상 기준 4대조의 대왕들 어진을 모셔두는 곳이다.
• 그 외 자세한것은 고려의 궁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